< 언데드가 되어 돌아왔다 102 >
녹림(綠林).
경계 지대의 산적떼들을 고상하게 일컫는 말이다.
이들의 주수입은 통행세.
즉, 각 잡고 ‘초보자 사냥’을 하는 놈들이다.
중심부로 건너온 신규 도전자들을 털어먹는 양아치 놈들.
수도 많고 하나하나의 무력도 나쁘지 않아 초보자에겐 상당히 곤란한 집단이 된다.
‘물론 통행세를 내면 무혈 입성이 가능하지만, 길을 닦아 놓은 것도 아니고 너희들이 그걸 왜 받아 챙겨?’
만약 자신을 막아세우면 힘이 좀 들더라도 정리를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캐스케이드를 타고 순식간에 돌파했더니 마주칠 일이 없었다.
‘원래라면 해안선에서부터 ‘검문’을 당했겠지.’
입항하는 배를 보면 신이 나서 달려드는 놈들.
저항하면 72채나 되는 곳에 우글거리는 산적들이 지원을 온다.
이놈들이 그렇게 조직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이유.
‘우두머리인 녹림왕이 있기 때문이지.’
녹림도의 왕.
일대를 지배하고 있으니 그럭저럭 왕이라 할 만하나...
아직 부족하다.
‘중심부의 진짜 강자가 오면 1초 컷도 가능할 테니까.’
그들 입장에서 녹림은 무슨 존재일까.
‘그냥 숫자가 많은 벌레라고 여기겠지.’
그 말은, 자신도 이 녀석들을 때려잡을 수 있어야 비로소 중심부에서 두각을 드러낼 수 있다는 뜻이다.
‘어차피 직업이 산적인 놈들이다. 힘들게 넘어온 도전자들이 약해진 틈을 타서 목숨을 빼앗는 경우도 자주 있고.’
전생엔 통행세를 내고도 모욕을 당했다.
<우리가 달라고 하기 전에 알아서 줘야지. 왜 길을 지나가면서 뻔뻔하게 돈을 안 내?>
산적 중에서도 가장 설치던 놈.
바로 1채주 육지보의 말이었다.
일종의 나팔수 같은 놈.
녹림 세력 송사리 중 최강자. 반대로 말하면 강자 중 최약체.
‘그래도 우리는 통행료라도 있었으니 다행이지.’
그게 없으면?
얄짤 없다.
그 어려운 도전 끝에 고작 산적 따위에게 목숨을 잃는 것이다.
‘물론... 산적으로 치부하기엔 좀 괘씸하게 강한 놈들이지.’
아무리 그래도 중심부다.
신입이 함부로 반기를 들 상대는 아니다.
‘하지만 1채주가 내 눈앞에 나타난 이상, 그냥 가기엔 너무 섭섭할 것 같다.’
경계 일대의 모든 땅을 지배하는 강자.
녹림 72채의 주인.
녹림왕을 꺾겠다.
‘이걸 내 중심부 신고식으로 삼겠다.’
결심을 마친 우진이 대로를 향했다.
판단은 신중한 편이지만, 결정을 내리면 거침 없는 것이 자신의 장점이기에.
“이야! 육형! 오랜만이오!”
— 쿵... 쿵....
일부러 기세 좋게 걸어가는 발걸음 속에 상대의 정보를 하나 하나 되새겼다.
1채주 육지보.
그의 스킬명. ‘힘의 무게’.
특이하게도 몸무게가 늘어나면 스탯 보정을 받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위압감 버프도 지니고 있기에 도전자들 앞에서 제법 폼을 잡았지.’
그걸 가볍게 흘려낸 우진이 정말 반갑다는 듯이 팔을 쫙 벌렸다.
“이게 도대체 얼마만이오!”
그러자 기세에 당황한 1채주가 얼굴을 찌푸렸다.
“못 보던 얼굴인데......?”
“반갑소! 나 우진이오!”
“으응...?”
“지난 번엔 신세 많이 졌소.”
그러자 그 단어에 반응하는 덩치.
“지난 번...? 신세...?”
머리를 굴리며 기억을 더듬는 1채주.
신세란 얘기를 빌미로 뭔가를 울궈내려는 속셈이다.
“그, 그래... 이제 기억이 나는 것 같기도 하고....”
“아! 나 이제 첫 번째 구역으로 갈 생각인데 그 전에 해야 할 일이 있소.”
“응...? 그, 그게 무엇이냐...?”
그가 자신의 투기를 내보였다.
“그것은 녹림 72채의 파멸이오.”
순간 하얗게 질린 채주의 얼굴.
“무, 무엇이...?”
놈이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다.
그 걸음에 맞춰 우진이 거침없이 나아갔다.
“경계 지대는 이제부터 통행세 없는 곳이 될 것이다.”
“무... 무슨... 어, 어떻게...? 네가 무슨 수로.......”
“힘.”
어디선가 굵은 꼬리가 날아와 그의 목을 졸랐다.
“컥...!”
그리고 붉은 안광 앞으로 끌려온 덩치.
“압도적인 힘.”
꼬리가 목을 더욱 세차게 조르고.
“초월적인 힘이다.”
마침내 우진이 자신의 모든 힘을 거침없이 드러냈다.
— 쿠구궁...!
강대한 기운이 마을을 휘어감았다.
“이제 새로운 질서가 생길 것이다.”
그것은 선전포고였다.
— 콰드드득...!
거침 없이 변신한 우진.
순식간에 십이단검을 날려 육지보의 부하들을 터트렸다.
— 퍼퍼펑...!
강대한 마력으로 이제 이기어검의 경지에 이른 비검술.
‘단순히 검이 날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그 검에 내 힘을 온전히 담는 신검합일의 경지.’
이걸 보여준 건 일종의 경고였다.
<네가 누구든 나를 막지 마라.>
과연 주춤거리며 물러나는 모든 마을의 행객들.
‘좋다.’
중심부까지 와서 힘을 아끼는 건 바보나 하는 짓이다.
그는 지금부터 전력으로 달려나갈 것이기에.
“가자꾸나.”
— 파팟!
뛰어오른 우진이 마을 밖으로 향했다.
꼬리에는 여전히 휘감긴 1채주가 있었다.
*
— 타타타탓...!
산을 타고 달리는 검푸른 야수.
그 꼬리에는 육지보가 매달려 있었다.
‘이,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당황을 넘어 사고가 엉켜버린 육지보.
자신의 몸집이 크다는 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게 바로 자신의 힘의 근원이니까.
그런데 그 허리를 가볍게 휘어 감아 끌고가는 괴물.
종이 인형이 된 기분이었다.
‘이건... 이건 말이 되지 않는다....’
상대는 도대체 스탯이 얼마란 말인가?
꼬리 자체는 놀랍지 않다.
별별 능력을 다 가진 놈들이 모여드는 중심부니까.
하지만 꼬리의 ‘힘’이 두렵다.
신체 부위에 감겨 있는 것이 아니라 강대한 봉인에 묶인 듯한 속박감.
게다가 그 꼬리 끝에 있는 존재.
그것은 강대한 육체를 지닌 하나의 ‘괴물’이었다.
‘오늘이구나....’
1채주가 눈을 감았다.
죄를 지으면 벌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아무도 자신들을 처벌하지 않았다.
항상 궁금했다.
우린 어쩌면 죄를 짓지 않은 게 아닐까?
아니라면 왜 누구도 우릴 징벌하지 않지?
지나가는 놈들한테 통행세를 걷고, 돈을 내지 못하면 죽인다.
간단하고 정확한 규칙.
그걸 따랐을 뿐인데.
어느날 다시 깨달았다.
<우리에게 힘이 있기에 그렇구나...!>
경계 지대의 누구도 녹림왕을 건드리지 못한다.
최강자이기에!
더욱 강해지는 충성심.
그분 휘하 산채의 책임자라는 자부심.
그때 새로운 힘이 나타났다.
낯설고 공포스런 얼굴.
그것이 우리를 죄인이라 말한다.
돌려줄 말이 없다.
힘이 부족하기에.
거대한 괴물은 거침 없이 숲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마치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정확히 아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끝엔 녹림 1채부터 72채가 있을 것이다.
눈을 감은 1채주.
그가 깨달았다.
‘유예가 끝났다.’
녹림의 파멸.
항상 궁금하던 그날은, 오늘이 될 것이다.
— 후쿵...!
순간 속도가 빨라지고, 검푸른 야수가 초속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그 옆에는 역시 엄청난 속도로 누군가가 달리고 있다.
붉은 머리에 역시 붉은 육체를 지닌 괴인은 근방에서 보지 못한 강자였다.
‘마치... 마치 붉은 섬광과도 같다.’
도대체 이들은 누굴까?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처음 보는 얼굴들이다.
‘서, 설마... 백호와 주작?’
백호와 주작은 신수이니 사람 모습을 흉내낼 수 있지 않을까?
‘아니다. 색이 다르니 흑호?’
그것보다는.... 흑표.
‘대흑표다...!’
육지보는 서서히 미쳐가고 있었다.
*
— 콰르릉...!
마침내 멈춰선 우진.
번개가 치는 듯한 투기가 그를 휘감았다.
도착한 곳은 높은 산봉우리였다.
거기서 훤히 보이는 산세를 내려다보았다.
‘넓기도 하구나. 하지만 바다만큼은 아니지.’
시험의 바다. 그곳을 건너며 자신은 한층 더 강해졌다.
비기 ‘이기어검’은 상실기 1주일 간 중점적으로 수련한 항목이었다.
그 외에도 여러 기술을 연구했으니 녹림은 좋은 상대가 될 것이다.
그가 육지보를 내려다보았다.
“넌 이제부터 생체 네비게이터가 된다.”
“허... 허어억....”
기억 약탈을 사용한 우진.
원하는 정보를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육지보가 계속 생각하고 있던 것.
자신의 편이 있는 장소.
그건 바로 ‘1채의 위치’였으니까.
고개를 들자 저 멀리 목적지가 보였다.
‘저기로군.’
일단 변신을 해제하고 명령했다.
“르쉬.”
“예!”
이제 눈빛만으로 마음이 통하는 수하가 고개를 숙였다.
내려진 명령은 ‘살해’.
“아... 아... 안......!”
“된다.”
순간 놈의 전신에서 터져나온 혈검.
광역 흡혈로 멋지게 모든 피를 흡수한 르쉬가 고개를 척 숙였다.
“시체는 어찌할까요.”
“신호하면 투하해라.”
간단한 명령을 바로 알아들은 르쉬.
“알겠습니다.”
우진이 새로운 스킬을 확인했다.
[’힘의 무게’를 계승했습니다.]
‘좋은데?’
몸무게만큼 능력 보정을 주는 스킬.
자신의 무게는 신장 대비 평범한 편이다.
하지만 스탯 보정을 주는 스킬은 언제나 유용하다.
특히 크기가 큰 언데드 폼에서 비밀 병기가 되어줄 것이다.
“먼저 들어갈테니 뒤따라 와라.”
“예!”
우진이 어슬렁거리는 초병 하나를 밟고 그대로 하늘로 솟구쳤다.
“누구냐!”
“우진.”
순식간에 경계 병력을 뛰어넘어 산채 중심부에 떨어져내린 우진.
적진에 홀로 선 꼴이지만 기세는 이쪽이 점하고 있었다.
— 채채챙...!
각자 병기를 뽑아 허둥거리며 일어서는 놈들을 향해 말했다.
“자 규칙은 간단하다.”
“규, 규칙이라고?”
— 차르륵...!
손톱을 뽑아낸 우진.
“이 산채의 1인을 죽이는 순간 전원을 죽일 것이다.”
“무, 무엇이라...?”
“대신 한 명도 죽일 필요가 없다면 아무도 죽지 않겠지.”
혼이 나간 놈들에게 설명이 이어졌다.
“죽이는 기준은, 내게 대항하는가. 즉, 모두가 고개를 숙이고 항복하면 살 수 있는 것이다.”
“이... 이이익...!”
당연히 반발하는 산적들.
“그렇게 나와야 녹림도지.”
그때 부채주 정도로 보이는 놈이 어울리지도 않는 쌍검을 차고 걸어나왔다.
“넌 뭐하는 놈인데 목숨을 이리 날리려 하느냐?”
“통행세가 아까운 구두쇠다. 인간적으로 너무 비싸.”
혀를 차는 부채주.
“쯧... 객기로군. 우리에게 반감 갖는 것은 이해한다만, 그렇다고 죽을 자리에 찾아오면 안 되지.”
“누가 죽을 자리일지 한번 알아보자꾸나.”
실소하며 쌍검을 뽑는 상대.
“그래, 애송아.... 네가 여기서 한두놈 모가지는 거둬갈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통행료 장사라는 것이 원래 목숨 내놓고 하는 것이다. 네가 그 용기를 알겠냐마는.”
용기?
어이가 없다.
애초에 중심부까지 넘어와 더 원대하게 삥 좀 뜯어보려는 놈들 마음을 이해해 보려는 게 문제였다.
“그 용기 계속 간직하길 바란다.”
싸늘한 우진의 목소리.
“르쉬.”
예! 하고 나타난 르쉬가 피가 다 빨린 1채주의 시체를 내던졌다.
“흐억...!”
“채... 채주님...!”
부채주가 쌍검을 움켜쥐며 이를 갈았다.
“이런 건방진.... 그래, 녹림의 영역에서 채주를 죽인 기백은 인정하마. 하지만 너희 둘이서 뭘 어쩌겠다는 것이냐?”
“둘?”
우진이 빙긋 웃었다.
제각기 병장기를 꼬나쥔 놈들의 숫자는 13명.
다만 실력은 바깥 고리 강자 130인을 상회할 것이다.
‘산적이라도 중심부의 산적이니까.’
하지만.
“누가 둘이래?”
그가 간단히 명했다.
“나와라.”
순간 긴장감이 맴도는 산채.
하지만 아무도 나오지 않는다.
“으응...?”
“뭐, 뭐냐?”
나올 녀석들이 하도 많으니 누구에게 내린 명령인지 헷갈린 것이다.
우진이 다시 자세를 잡고 외쳤다.
“나와라. 모두여!”
— 쿠구궁...!
그제야 등장하는 ‘모두’.
시작은 하늘을 뒤덮은 그림자 군세였다.
— 낄낄낄낄...!
— 끼에에에...!
원혼들은 말할 것도 없다.
— 쿵... 쿵....
그리고 산 여기저기를 점거한 본 골렘들.
산채 주위로 걸어오니 거대한 포위진이 형성됐다.
“이... 이게 무슨......!”
하지만 끝이 아니다.
“레비아탄.“
“으음!”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우고 하늘에 붉은 용이 떠올랐다.
— 푸슝...!
어둠을 뚫고 나타난 본 드래곤과 워프로 등장한 기갑마룡까지.
— 고오오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광경에 산적들이 털썩 주저앉았다.
“컥....”
“흐어어....”
— 쿠구구궁...!
마지막으로 베히모스에 올라탄 우진.
“내가 1채를 찾아온 것 같더냐?”
그의 음성에 대지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난 오늘 녹림 전체를 상대할 것이다.”
< 언데드가 되어 돌아왔다 10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