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데드가 되어 돌아왔다 99 >
죽음의 바다.
입장 방향에 따라 서로 다른 영역을 지닌 마물 중 한 종류가 튀어나온다.
‘그 한 종류가 죄다 터무니 없이 거대해서 문제지만.’
그때 마침내 첫 번째 수생 마물이 나타났다.
거대한 아가리를 벌리고 튀어오르는 괴물.
검목상어.
놈들의 한 방은 엄청나다.
크기답게 강한 힘은 물론이고, 한번에 승부를 거는 구조로 턱이 발달해 있다.
즉.
‘1번 씹히면 유령선 구멍난다.’
조타장의 다급한 외침.
“우현 회피!”
하지만 우진이 고개를 저었다.
“회피는 필요 없다! 최고 속력으로 계속 전진해라.”
“그, 그러면 정면으로 충돌하게 될 것입니다...!”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그때 마침내 덤벼오는 초대형 마물.
“뛰... 뛰어올랐다...!”
“배를 덮친다...!”
— 푸슛...!
순간 선체 위에 나타난 우진.
“내 배를 막지 마라.”
엄청난 기합성과 함께 대흑검을 휘둘렀다.
“흐아아아압!”
— 스컥...!
가로막는 거대 상어를 일격에 반으로 가른다.
일도양단!
빌딩이 잘려나가는 느낌이었다.
“우와아아아!”
하지만 환호도 잠시.
패널을 보던 관측병이 다수의 거대한 붉은 점을 보며 경악한다.
“구... 군집입니다...!”
덮쳐오는 것은 수십의 검목 상어.
이대로면 거선은 갈기갈기 찢겨버릴 수밖에 없는 상황.
그때 우진이 검을 움켜쥐고 하늘로 치솟았다.
응축된 것은 가공할 위력의 힘.
의도를 깨달은 선장이 다급히 외쳤다.
“그대로 전진해라!”
선체 위에 찬란한 빛이 터져나왔다.
“무한(無限) 질풍참!”
바다 전체를 가를 듯한 참격.
목표 뿐 아니라 뒤에 따라오던 다른 거대 상어들까지 일시에 반으로 갈라져 죽었다.
그야말로 초월적인 일격.
‘후우... 성공이군.’
진 흑참도의 기술을 더 출력이 큰 대흑검으로 뿜어낸 기예.
이것만으로도 경이로운데 그 안에 극대량의 어둠을 담아냈다.
하지만.
숨을 몰아쉬며 착지한 우진이 피식 웃었다.
‘아직 무한의 이름을 담기엔 부족하군.’
기적과도 같은 일을 해내고도 아직 만족스럽지 않다.
그래도 자신의 한계까지 쏟아냈기에 후회는 없다.
터질 듯이 부푼 검푸른 근육.
언데드 폼으로 이 정도 힘을 낸 것은 처음이다.
‘몸 쓰는 법이 발전했어.’
거대한 기술의 반동을 버텨낸 믿음직한 육체다.
이제야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인 우진.
‘중요한 건 나 자신의 한계를 돌파하는 거다.’
어제의 자신보다 오늘의 자신이 강하다면.
무한히 강해지는 것은 꿈이 아니다.
— 스팟!
다시 선내로 돌아오자 선원들이 쭈뼛쭈뼛 얼어붙었다.
지금까지는 아주 강한 ‘우리의 사령관님’이었지만...
방금 전의 초월적인 현상을 보니 경외심을 넘어 거리감이 생겼다.
이제 도저히 범접할 수 없는 존재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하지만 씩 웃은 우진.
평소처럼 주먹을 움켜쥐며 모두를 독려했다.
“이제 가로막는 것은 없다.”
“오오...!”
그리고 시원하게 울리는 외침.
“가자! 캐스케이드!”
“우오오오!”
“사령관님의 뜻을 받들어! 캐스케이드 전진!”
다시 시원하게 달려나가는 거선.
우진은 자리에 앉아 거대 상어 녀석들의 스킬을 확인했다.
[철식(鐵食) 악력]
대단한 턱 힘을 갖게 되었다.
‘언데드 폼으로 뜯어먹을 때 좋겠군.’
한동안 평탄한 항해가 이어졌다.
한숨 돌리나 싶었을 때.
“전방에 어둠이 밀려옵니다...!”
전방에 암흑 지대가 펼쳐졌다.
“어둠의 바다....”
갑자기 태양이 사라진 것 같은 풍경이었다.
“세, 세상에.......”
“여긴 도대체 무슨 장소입니까...?”
그때 섬뜩한 신호음을 내는 대형 패널.
해저에 거대한 기운들이 도사리고 있었다.
지형을 살핀 선장이 지혜를 발휘했다.
“정말 거대한 존재들이군요. 다만 움직임이 전혀 없으니 조용히 지나가면 어떨까 싶습니다.”
잠항(潛航).
이 거선은 원체 조용하다.
게다가 선장 휘하 모든 선원들의 실력이 탁월하니 정말 구름처럼 홀연히 지나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고개를 젓는 우진.
“아니다. 우린 아무 것도 피하지 않을 것이다. 어차피 지나가면 공격해 올 것이니. 계속 전진해라.”
그가 덧붙였다.
“단, 물 밖으로. 다시 하늘로 경로를 바꾼다.”
“예!”
부유의 구슬이 빛을 발할 때.
우진이 힘차게 지시했다.
“숨죽일 필요 없다. 당당하게 가는 거다. 우리의 존재를 알려라!”
“예!”
— 쿠구구궁...!
하늘로 떠오른 캐스케이드.
우진의 지시에 따라 밝은 빛을 뿜어냈다.
“모든 항해등을 켜라!”
밀려나가는 어둠들.
드넓은 바다에 비하면 작은 빛이지만 이 정도면 도발로는 충분하다.
— 펄럭...!
그 거선 아래서 날개를 펼친 우진이 나타났다.
그가 망설임 없이 바다 속으로 파고 들었다.
— 풍덩...!
여전히 어두운 수면 아래.
빛으로 몰아낼 수 없는 진득한 무언가가 존재한다.
하지만.
“모습을 드러내라.”
어둠은 그의 종복일 뿐이다.
모든 어둠이 빨려들고 섬광탄이 터진 것처럼 밝아진 해저의 공간.
— 시시시싯....
물 속에 거인들이 가득하다.
거대한 인어들이 석상처럼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물 속에 도사린 채 먹잇감을 기다리던 존재들이다.
그때 일제히 미소 짓는 거인들.
“웃어?”
솔직히 저 녀석들이 살아있는 건지, 아니면 무슨 영적인 존재인지, 혹은 희귀종 마물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막아세우면 없앨 뿐이다.”
우진이 양손을 펼치고 힘을 펼쳤다.
“물이 안식처라 생각했겠지.”
— 파지지직...!
“너희는 죽음 속에 있는 것이니라.”
사방에 깔린 무형시 천화만개.
이게 끝이 아니다.
“분리.”
반복되는 확산.
수백이 수천이 되고 수천이 수만이 되었다.
이제 해저가 별이 빛나는 하늘처럼 변했다.
— 스슷...!
순간 물 밖으로 솟구쳐오르는 우진.
무언가를 깨달은 인어들이 기이한 고성을 뿜어냈다.
— 끼이에에엑...!
그리고 마침내 발동한 트리거.
“무량(無量) 번개의 낙인.”
바다가 터질 듯한 빛이 번쩍였다.
전류로 연결된 모든 무형시 속에서 고통스럽게 울부짖는 거인들.
— 쩌저저정...!
— 키에에엑...!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다.
한 번의 연계가 더 들어갔다.
장갑으로 완벽히 컨트롤 된 번개에서 자연스럽게 인계된 다음 속성은.
“멸(滅).”
어둠.
모든 번개에서 어둠이 뿜어져 나왔다.
칼날처럼 붉은 어둠!
— 촤차차착...!
먼지처럼 찢겨지는 거대한 인어들.
이 기술을 ‘종족의 멸망’이라 불러도 될 지경이었다.
수십의 거대한 시체가 스러지고.
막대한 경험치와 함께 마침내 200을 돌파한 레벨.
7개의 속성에 적용되는 배율이 상승하고, 새로운 항목이 생겨났다.
그것은 속성 극대화.
즉 크리티컬을 터트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제 속성에 실컷 투자할 수 있겠군.’
[’폭류’를 계승했습니다.]
때마침 들어온 새로운 수(水)계열 스킬.
수압만으로 재해를 일으킬 수 있는 강대한 능력이 생겼다.
이제 Lv.217이 된 우진이 캐스케이드로 돌아왔다.
“사령관님...!”
“도,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긴 것입니까?”
담담하게 말한 우진.
“많은 일이 있었다.”
그리고 다시 내려앉은 캐스케이드.
— 쿠우웅...!
폭류로 부스트를 받아 시원하게 바다를 가른다.
“바다가... 바다가 전진을 돕고 있습니다...!”
“으음! 가자!”
“예! 전진! 전진!”
그렇게 내달리는 거선.
“다음 구역은 무엇일까요 사령관님?”
“휴식이다.”
“예...? 휴식이라면...?”
그때 등장한 푸른 바다.
마치 평범한 바다처럼 아름답고 고요하다.
다만, 너무 고요했다.
“바람이... 없습니다.”
무풍지대.
선박의 지옥이었다.
게다가 세상의 모든 마나가 사라진 것처럼 천공석도 힘을 잃었다.
“허... 이제...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이곳은 상실의 바다. 모든 것을 앗아가는 신비한 장소지.”
“상실의 바다...!”
우진이 선행자로서 이곳의 규칙을 설명했다.
“우리는 이제부터 일주일이라는 시간 동안 이곳을 정처없이 떠돌며 머물러야 한다.”
“일주일.......”
놀라는 선원들.
하지만 우진은 그저 미소지을 뿐이었다.
“항상 해오던 일이지 않나.”
“오오...?”
부유를 생의 업으로 삼던 캐스케이드.
이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다.
“음식은 충분!”
“사기도 충분!”
정신을 갉아먹기 위해 존재하는 공간이지만, 기한을 아는 이상 두려울 것은 없다.
선원들은 매일 하던 것처럼 늘어지게 쉬고 식사를 하고 노래를 부르며 술을 마셨다.
우진과 르쉬는 가끔 선원들과 대화를 하거나 영양 보충을 하는 것을 빼곤 계속 수련과 명상을 반복했다.
“그것으로 정말 괜찮더냐?”
피 대용품으로 피의 스튜를 잔뜩 만들어준 우진.
매일 한 솥씩 먹으면서 즐거워하는 르쉬에게 물었다.
“맛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고마운 얘기로군.”
그리고 마침내 7일 째.
‘모두 쌩쌩하구만.’
드디어 끝난 상실기.
원래 이 정도면 탑승물과 연료가 버텨도 선원들이 지친다.
몸이 성해도 정신이 무너지는 것이다.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무풍지대에서 버티는 건 쉬운 일이 아니지.’
게다가 마나가 모두 사라졌기에 그 힘에 의존하던 자들은 절망감마저 느끼게 된다.
하지만 유령 선원들은 지치긴 커녕 오히려 기운이 넘친다.
자신이나 르쉬는 말 할 것도 없다.
“잘 쉬었다!”
“잘 쉬었습니다!”
— 쿠구구궁...!
그때 천공석에 다시 빛이 돌아왔다.
마나가 허락되기 시작한 것이다.
“오오!”
그때 다가온 선장.
“이제 어떻게 되는 것인지요?”
“슬슬 바다가 알려줄 거다.”
그때였다.
바다에 길이 생긴 것처럼 한 줄의 빛이 나타났다.
그 길을 따라 이동하는 캐스케이드.
그 끝에 다음 구역이 있었다.
이 종잡을 수 없는 바다에서도 가장 기이한 장소.
백색의 바다가 펼쳐졌다.
“새... 새하얀 세상이...!”
“바다가... 온통 하얗습니다...!”
기겁하는 선원들을 독려하는 우진.
“다들 놀라지 마라. 여긴 실제 세계가 아니다.”
일종의 심상 공간.
앞으로 기묘한 일들이 생기겠지만 대규모 환상이라 생각하면 두려울 것도 없다.
— 끼아아아아.......
바다를 울리는 귀곡성.
방향 감각조차 이상해져 전진을 하면서도 세상이 멀어지는 느낌이 든다.
그렇게 한 나절을 나아가자 저 멀리 무언가가 나타났다.
바위에 앉아있는 누군가의 뒷모습.
그런데 서서히 가까워지며 공간 감각이 이상해졌다.
멀리서 보던 그 바위가 자신들의 뒤에 있었다.
해로를 파악하는데 익숙한 선원들이 기묘한 경로에 당황한다.
“이 무슨....”
그때 그 뒷모습의 누군가가 앞쪽에 나타났다.
바다 위 허공에 표표히 서 있는 백의인(白衣人).
마치 홀로 이 거선을 막아세운 듯한 모습이었다.
“헉... 저, 저건 도대체......”
선장이 자신도 모르게 속삭이듯 말했다.
“그냥 전진할까요...?”
“아니 이제야 말로 잠시 멈춰야 한다. 모두 대기해라.”
마치 귀신처럼 보이는 상대.
처음보면 당황하는게 자연스럽다.
그 고강한 힘에 질릴 정도의 압박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것은 ‘놈’이 혼자가 아니기 때문.
저것은 이 바다에서 죽은 자들의 원혼 집합체 같은 녀석이다.
영(靈)의 수호자.
이 바다의 마지막 문지기인 셈이다.
그때 백의인이 선체 위의 우진에게 말했다.
“지나가봐야 별 거 없다. 돌아가라.”
“지나가지 못한 자의 얘기 들을 생각 없다.”
“건방지군.”
평범한 백의의 남자.
갑자기 괴물처럼 변한 모습으로 거대한 주먹을 날려온다.
— 크아아아!
“엄청난... 영력(靈力)이다...!”
유령들이기에 더욱 절감하게 되는 영체 수호자의 힘.
하지만.
“너도 큰 거 좋아하나보군.”
— 콰드드득...!
변신한 우진.
지금까지와는 다른 차원의 힘이 그의 주먹에 몰려들었다.
더더욱 경악하는 선원들.
“으아아아...! 저... 저게 한 사람의 몸에서...!”
하지만 끝이 아니다.
우진이 한계를 넘어 한 번 더 힘을 끌어올렸다.
“더!”
— 콰과광...!
이제 공간을 일그러트릴 정도로 모인 주먹의 힘.
“내 진정한 힘을 보여주마.”
날아들던 영체조차 밀려나는 엄청난 기운이었다.
“어, 어떻게 도전자가 그 정도의 힘을...!”
“나에겐, 이제 시작일 뿐이니까!”
우진이 주먹을 뻗은 순간.
경악한 백의인의 몸을 거대한 어둠이 파고들었다.
< 언데드가 되어 돌아왔다 99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