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데드가 되어 돌아왔다 95 >
악룡이자 사룡(邪龍).
세계를 위협하던 거악 레비아탄.
그는 지금 오싹오싹할 정도의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 쿠구구구...!
자신 앞에 있는 존재.
그것이 품은 막대한 힘 때문이었다.
‘공포? 내가 공포를 느끼고 있단 말인가?’
이건 자신이 세계에 주어야 할 감정일진데...
어째서 스스로가 느끼고 있단 말인가.
그때 아득할 정도의 힘을 담은 ‘거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보다시피 이게 내 진짜 어둠의 힘이다.”
“진짜 힘...? 그럼 지금까지는.......”
“이걸 쓰면 본의 아니게 세상에 피해를 끼칠 거 같아서 말이야. 그래도 한번쯤 끝까지 뽑아내보고 싶었는데 좋은 무대를 만들어줘서 고맙다.”
‘끝까지... 뽑아낸다... 설마...?’
그제야 우진의 몸 속에 있는 핵을 알아본 악룡.
“마... 말도 안 된다... 그건... 한 존재가 ‘근원의 핵’을 품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가능하더라고. 핵과 나의 진심이 통한 것이지. 하하하하!”
우진이 허공에 주먹을 붕붕 휘둘렀다.
“그보다 이거 진짜 끝내주네!”
— 훙...! 훙...!
거인이 다시 주먹을 몇 번 휘두르며 몸을 풀었다.
그 모습을 보며 경악하는 악룡.
“넌 정체가 뭐냐.... 그건 진마 수준의... 아니 그 이상의 막대한 힘. 인간이 품을 수 없는 수준의 어둠이다...!”
“글쎄. 내 짐작이지만 난 어둠의 양으로만 치면 이미 진마 윗줄일 거다.”
“지... 진마보다 강한 힘이라고...?”
어이가 없는 말이지만 느껴지는 기운이 그만큼 강대하니 반박할 수 없다.
“그래, 이걸 멋대로 풀어놨다간 휘둘릴 것 같아서 서서히 내 몸 속에 융화시키고 있는 중이지....... 흐흐....”
그 말에 충격을 받은 악룡.
‘히, 힘이 있는데 자제력을 발휘한다고...? 오로지 더 큰 힘을 위해서...?’
레비아탄에겐 이해할 수 없는 일.
힘은 분노와 같아서 터트리기 위해 존재한다.
하지만 더 큰 무언가를 위해 그걸 참는다...?
‘그, 그런 게 가능하다고?’
자신 앞의 인간 속에 담긴 진득한 인내심과 깊은 목표의식을 알 것도 같았다.
“너... 무언가를 강하게 염원하고 있군. 무엇인지 모르겠다만.... 존재의 이유 자체가 그것이 되어버린.......”
우진이 상대의 말에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나는 힘이 필요하다. 정점에 가기 위해서.”
레비아탄의 얼굴에 순간 미소가 떠올랐다.
“정점은... 바깥 고리 최강의 생물이라 불렸던 나조차도 꿈꾸기 힘든 자리다. 감히 인간 따위가...?”
“아니, 할 수 있어. 일단 너부터 꺾고 나서!”
우진이 기세를 피워올렸을 때.
그에 뒤지지 않는 악룡의 포효가 세상을 울렸다.
“난... 레비아탄이다...! 세상을 먹는 붉은 용...! 한 시대가 두려워한 공포의 존재...! 감히 그리 쉽게 담을 이름이 아니니라!”
“어, 난 우진이야.”
마침내 두 존재의 모든 힘이 개방되고.
“크아아아아...!”
— 크워어어어어어...!
붉은 악룡이 섬전처럼 날아들 때.
어둠의 거인이 무서운 속도로 주먹을 휘둘렀다.
— 쿠구궁...!
거인폼으로 펼치는 시원시원한 난타전이 시작됐다.
보통 사람이라면 크기만으로도 손쓰기 힘들만큼 거대한 녀석이지만...
— 후웅...!
자신도 거대하니 그저 사납고 멋진 조류 한 마리와 싸우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제법이야. 방심할 틈을 안 주네.’
한 시대를 지배했던 용이라는 건 과연 강해서 사투를 벌여야 했다.
중급 악마와는 또다른 느낌의 강적이자 초대형 적.
무엇보다 뻥뻥 쏘아대는 저 붉은 광선이 엄청났다.
‘무슨 브레스급을 그야말로 숨쉬듯이 쏴대네.’
하지만 이거야말로 싸움다운 싸움이다.
우진이 즐겁게 외쳤다.
“너 정말 강하구나!”
“시대를 위협하던 공포를 이제야 깨달았구나!”
서로 강렬한 공격과 초속의 회복을 반복하며 싸우는 가운데.
우진의 머리가 승리를 위한 전략을 짜내기 시작했다.
‘좋아. 내 어둠의 양이 확실히 크긴 한데.... 저 녀석은 태생부터 지니고 있던 거라 훨씬 매섭네.’
자신의 어둠 보유량이 진마 이상인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아직 그걸 완벽히 다루긴 어렵다.
이 거인폼도 어쩔 수 없이 거대해진 것에 불과하다.
‘진짜들은 이 거대한 힘을 투기 한 겹에 담을 수 있거든.’
그래도.
자신이 밀릴 이유는 없다.
우진이 정신을 집중해 새로운 기술을 시전했다.
분리의 묘.
‘거인 분신술.’
순간 셋으로 늘어난 어둠의 거인을 보며 악룡이 경악했다.
“그, 그게 무슨... 어떻게 그 상태로 분신을......!”
“넋 놓을 시간 없다!”
달려드는 삼인분의 거력.
앞에서 정권을 찌르나 싶을 때 옆에서 어퍼가 날아온다.
— 뻐억...!
“크어어억...!”
악룡이 붉은 광선을 쏘아낼 때 믿을 수 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뒤에도 있다!”
— 쿠웅...!
양손을 모아 해머처럼 내리찍는 세 번째 거인.
이게 본체였다.
— 뻐어억...!
정타를 허용한 악룡이 어질어질하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이런... 비겁한....”
“비겁해? 그럼 이건 어떨까.”
— 쿠구구궁....
순간 여섯이 된 거인.
이제 악룡의 눈에 드디어 두려움이 깃들기 시작했다.
“아... 아... 아... 안....”
“돼!”
동시에 같은 단어를 외치며 달려드는 여섯의 거인.
— 뻐버버벅...!
순식간에 난타당한 악룡의 거체가 휘청일 때.
거인 중 하나가 콰득하고 용의 몸통을 물어뜯었다.
— 콰득....
우진 본체였다.
“크아아악...!”
그리고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분노에 터져나온 악룡의 광역기.
— 콰과과광...!
막대한 범위를 원형으로 소멸시키는 힘이 붉은 빛과 함께 번쩍였다.
순간 거인들이 모습을 감추고.
하나로 돌아온 우진이 씩 웃었다.
“와, 멋지네. 그게 니 궁극기냐?”
“한때 멸세룡(滅世龍)이라 불렸던 나다. 고작 한 명의 인간에게 이 힘을 쓴다는 게 어이가 없지만... 호락호락하게 당할 생각은 없다.”
주변은 과연 초토화된 상태.
인근에 원형의 새로운 지형이 생길 정도였다.
우진이 뜯어낸 살점을 우물우물하다가 꿀꺽 삼켰다.
“근데 넌 어둠의 맛이 좀 다르구나?”
“난 악룡이자 사룡. 순수한 파괴이자 완전히 소멸시키는 힘. 네놈의 단순한 어둠보다 더욱 날카롭고 빠르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우진.
“그래... 내 어둠은 약간 위스키 같은데 네 어둠은 약간 데킬라 같네. 근데 결국 둘 다 술이거든.”
“아직도 헛소리를 할 생각인가...!”
“아니 공략법을 알 거 같아서. 지금부턴 아마 회복이 안 될 거다.”
놈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먹는다.
왜냐?
“어차피 먹으려고 시작한 싸움이거든!”
— 콰득...!
“어...!”
거인이 사라지고 수백의 우진이 나타나 용에게 달라붙었다.
크기는 작아졌지만 집념은 더욱 크다!
용을 와구와구 먹어치우는데.
“한 몸이 되자꾸나......!”
악귀처럼 달려들어 베어먹는 모습은 누가 악(惡)인지 모를 광경이었다.
“크악... 크아아악...!”
발악하는 레비아탄.
몸을 마구 털며 여기저기 광선을 쏘아대지만 이런 식의 공격은 받아본 적이 없는지라 난감했다.
게다가 몇 마리를 터트리면 귀신같이 다시 더 많은 숫자가 충원되어 자신을 물어뜯고 있었다.
“그만... 그만 먹어라...! 난 고작 이런 식으로 패퇴당할 수 없다...!”
그리고 마침내 너덜너덜해진 레비아탄의 몸 속에서 새빨간 핵이 나타나났다.
‘그거구나...!’
분신 우진 하나가 핵을 쥐고 머리 위에 치켜든 채 냅다 달아났다.
그러자 몇 마리의 분신이 합체해 그걸 받아들었다.
본체 우진이었다.
“하하하하! 네 핵은 내 손에 들어왔다 악룡아! 이제 이걸 먹으면 넌 나와 한 몸이 되겠지?”
누더기가 된 악룡.
이미 죽었어야 했지만 심상 세계라 버티고 있던 레비아탄이 절규하듯 외쳤다.
“진심으로 경고하는데 나를 그런 식으로 받아들였다간 네 정신과 육체가 견디지 못할 거다...!”
“글쎄. 네가 복속되기 싫어서 그런 건 아니고?”
“그건 부차적인 문제다! 나도 너 같은 숙주를 언제 또 만날 수 있을지 모르니 최대한 안전하게 해야할 필요성이 있단 말이다!”
우진이 껄껄 웃었다.
“그 상태에서도 내 몸을 노리고 있다니... 투지 하나는 진짜 끝내주는구나. 근데 말이다. 넌 아직도 네가 어떤 존재를 마주했는지 잘 모르는 거 같다.”
다시 거인이 된 우진이 왁하고 핵을 먹어치웠다.
“난 모든 걸 정말 잘 먹는다.”
순간 경악하는 악룡.
“아... 안 돼...!”
자신의 핵을 먹는 것을 지켜보던 레비아탄이 순간 사라졌다.
“크어어억...!”
다시 나타난 것은 거인의 내부.
우진의 몸 속에서 재구성 된 채 불룩불룩 튀어나오려고 발버둥을 친다.
“음... 얌전히 있거라. 우린 하나가 되는 거다.”
어둠 속에서 붉은 용의 모습이 언뜻언뜻 보이며 절규하고 있었다.
그건 마치 피막 속에 갇혀 발버둥치는 사악한 용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 꺼어어억....
긴 트림 소리와 함께 어둠의 거인이 배를 탕탕 두드렸다.
“불닭 맛이네. 잘 먹었다.”
그리고 주위를 보는 우진.
아무 것도 없이 쓸쓸한 대지 뿐이었다.
방금 전까지 생사를 가르며 사투를 벌인 존재는 이제 자신의 몸 속에 있기에.
“오, 이제 여긴 나만의 심상 세계로군.”
그렇다면?
— 따아악!
거대한 손가락 튕기기와 함께 모든 것이 끝났다.
*
— 똑... 똑....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눈을 뜬 우진.
어느새 정좌한 채 동굴에 앉아있었다.
— 츠츠츠츠....
그때 가슴에 화끈한 감각이 들며 무언가가 새겨졌다.
‘오.......’
그건 붉은 용의 문양이었다.
이제 레비아탄의 모든 잠재력이 자신에게 흡수된 것이다.
그리고 떠오른 알림들.
[악룡 레비아탄을 토벌하여 ‘용살자’의 칭호를 획득했습니다.]
[용살의 휘장이 주어집니다.]
[모든 스탯 +300]
[개인의 명성이 대폭 상승합니다.]
[현재 단계 : 바깥 고리 최강자]
‘와... 이걸 시스템이 인정해주네.’
이 녀석이 진짜 이쪽 대륙 최강이었던 것 같긴 하다.
물론 과거지만.
— 쿠구궁....
휘장을 불러내니 자주빛으로 아름답게 빛난다.
‘용살의 휘장. 내가 진짜 괴물 모험가가 되었구나.’
용을 상대할 때 버프를 받을 수 있고, 또한 단계가 상승하면 추가 효과가 생긴다.
악마 휘장과 거의 비슷한 원리였다.
그런데 그때 떠오른 마지막 알림.
[’붉은 어둠의 힘’을 계승했습니다.]
‘오. 레비아탄 스킬!’
무려 용의 스킬!
녀석이 쓰던 날카로운 어둠의 힘이 자신의 것이 되었다.
그때 머릿속에 레비아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크아아아...!>
“어! 너 거기 있구나!”
반가운 얼굴의 우진과 달리 분노를 토하는 레비아탄.
<믿을 수 없다... 이해할 수 없다... 어떻게 나를 몸에 받아들이고도 미치거나 폭주하지 않는 거지...? 넌 대체... 넌 대체 무엇이냐...?>
“말했잖아. 우진이라고.”
<수백 년만에 찾아온 기회가 하필이면 이리도 불가해한 존재라니.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우진이 피식 웃었다.
아마도 자신의 몸에 들어온 뒤 정신이 취약해진 시점에 진짜 ‘마지막 기회’를 노릴 생각이었던 거 같다.
하지만 그의 정신력은 이미 일반인 수준은 아득히 넘어선 데다가 온갖 특수 능력으로 보호받고 있다.
악룡의 사기(邪氣) 정도야 즐거운 자극으로 느껴질 정도란 뜻이다.
우진이 망연자실한 듯한 레비아탄을 향해 말했다.
“너는 한 시대에 악명을 떨쳤지. 나는 내 시대에 전설이 될 거다. 그러니까 우린 노력하면 서로 이해할 수 있는 존재야. 앞으로 잘 지내보자.”
어이가 없는 듯한 레비아탄.
<너... 넌 정말 생각이 단순하군.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이라 생각하느냐?>
우진이 빙긋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 쉬워야 할 걸?”
순간 느껴지는 오싹함.
<이... 이 기운은 도대체...?>
가벼운 말 속에 담긴 거대한 압박감.
그 순간 악룡은 깨달았다.
자신이 정녕 무엇에게 먹힌 것인지.
그건 인간을 뛰어넘은 초월적인 존재였다.
< 언데드가 되어 돌아왔다 95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