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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언데드가 되어 돌아왔다-93화 (93/155)

< 언데드가 되어 돌아왔다 94 >

<연자여.... 내 목소리가 들리느냔 말이다....>

오밤 중 자신을 찾아온 기이한 음성.

“신기한 일이네.”

우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차피 잠도 오지 않아 누워서 눈만 감고 있던 상태였다.

소리의 근원을 찾아 주위를 살필 필요는 없었다.

이게 정신을 통해 전달되는 사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문제는, 누가 자신의 정신에 이 정도의 의지를 전달해올 수 있냐는 점이었다.

‘뭐하는 놈일까?’

그때 다시 들려오는 음성.

<나를 믿고...... 나를 찾아와라.......>

우진이 어둠 속에서 씩 웃었다.

방금 그 말로 놈은 자신의 정체를 드러낸 셈이다.

‘다짜고짜 믿으라는 놈치고 멀쩡한 놈 없더라고.’

우진이 정신을 집중했다.

목소리가 뭐라고 하든 그냥 호기심이 일어서 근원을 추적해볼 생각이었다.

‘음, 일단 비공선 내부는 아니고.’

딱히 수상한 기운은 없다.

범위를 넓히자 지상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우진이 선체 후미로 이동해 밤의 전경을 내려다보았다.

<그래... 목소리를 듣고... 이쪽으로.......>

음성도 우진의 움직임을 느낀 것인지 더욱 애달픈 목소리로 부르고 있었다.

‘생각보다 멀어.’

이 장거리까지 자신을 콕 찝어서 의사를 전달해올 정도면 보통 녀석은 아니었다.

— 펄럭...!

날개를 펼친 우진이 어두운 하늘을 가로질렀다.

뭇사람들이 보면 밤의 악마가 나타난 것처럼 보이리라.

다만 쏜살같이 날아가고 있기에 어렴풋한 형체를 인지했을 땐 이미 시야 밖에 사라졌을 것이다.

<그래...... 이리로...... 이리로......!>

그때 음성이 더욱 간절해졌다.

마치 이제야 성공했다는 듯한 느낌.

‘음성에 환술이 걸려있었나보군.’

자신이야 그냥 호기심에 움직이는 거지만, 보통 사람은 홀린 듯이 이끌릴 것이다.

‘분명 달콤한 목소리지만... 본체는 사악한 존재야.’

그 사악함이 물을 탄 것처럼 희석되어 있다.

숨기려는 것 같기도 하고, 무언가에 가로막힌 것 같기도 했다.

그때 빠르게 밤을 가로지른 우진의 눈앞에 무언가가 나타났다.

그건 산중 호수였다.

그냥 평범한 장소는 아니고 인위적으로 무언가 힘이 작용하고 있었다.

‘뭔가 엄청난 술수가 부려진 공간 같은데.’

그의 눈에는 분명 이곳을 짓누르는 강대한 기운이 보였다.

그것은 ‘가둔다’는 느낌으로 층층이 쌓여있는 거대한 힘의 층이었다.

‘봉인지(封印地)...!’

우진이 결국 그 정체를 깨달았다.

자연지기가 이런 기세로 특정 구역을 뒤덮을 이유가 없다.

누가 목적을 띄고 무언가를 봉인해둔 땅이다.

평범한 사람은 접근하는 것조차 불가능할 것이다.

‘엄청난 힘의 응축이야.’

자신조차도 잔잔한 수면을 보자니 빨려들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호수 전체에서 흉흉한 기운이 느껴졌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모든 것은 너를 위함이니....... 안으로 걸어와라.......>

걸어오라고?

가만히 보니 호수가 주는 오싹함이 마치 중독성 있는 쾌감처럼 자신을 이끌고 있었다.

아무 걱정 말고 호수로 들어오라는 것처럼.

‘물귀신이야 뭐야?’

안심시키려는 듯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늘... 난 네 기운을 느꼈다....... 아름다울 정도로 강대한....... 넌 필시 중심부로 향하려는 것이겠지...... 그곳으로의 여정에 내가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음... 아무리 봐도 니가 내 도움이 필요한 거 같은데.’

우진이 일단 장단을 맞춰 호수 근처로 접근했다.

보글보글 거품이 올라오며 꼬드기는 목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옳지...... 옳지...... 더 강한 힘을 가지고 싶지 않더냐.......>

그때 호수 아래 거대한 제단이 보였다.

<그래... 그곳에 네 몸을 바쳐라.... 너 정도의 강자라면 이 봉인을 풀고 날 다시 세상 밖으로 내보내줄 수 있을 것이다....>

‘음? 몸을 바쳐? 다시 세상 밖으로 내보내?’

그때 우진의 기억이 무언가를 떠올렸다.

이런 엄청난 봉인으로 갇혀있을만한 놈.

그리고 그 와중에도 자신의 사념을 세상에 전달할 수 있을만한 의지.

그가 씩 웃으며 ‘놈’의 정체를 말했다.

“너 레비아탄이냐? 이런 곳에 갇혀 있었군.”

순간 호수가 잔잔해지더니 얼빠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걸 어찌...?>

세상을 지배하려던 야욕을 가진 악룡(惡龍).

놈은 한 시대를 자신의 힘으로 호령하다 용감하고 강대한 전사들에 의해 봉인당했다.

물론 우진과 연이 없는 아주 오래된 과거의 일이지만....

‘예전에 대단한 강자가 홀려서 소동이 벌어진 적이 있었지.’

누군가 이 용한테 씌어 봉인을 풀고 세상을 파괴하려 들다가, 결국 제압당하고 다시 갇히게 되었다.

다행히 빙의자의 힘이 부족해 큰 일은 없었지만 말이다.

‘아마 내가 이른 시점에 경계의 해안선에 오면서 그 자의 역할을 대신하게 된 거 같군.’

순간 내부의 존재가 놀랐다.

우진의 호승심과 함께 그의 ‘진짜 힘’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럴 수가...... 넌 설마...... 진마(眞魔)더냐...?>

우진이 갈무리가 풀려 드러난 자신의 어둠을 투기로 만들어 밀착시키며 말했다.

“아니, 우진이다.”

<이런... 이 정도는 내가 감당할 수 없는....... 돌아가라... 모든 걸 잊고 돌아가라......!>

하지만 저벅저벅 호수로 향하는 우진.

“잊긴 뭘 잊어. 이제 시작인데.”

<안 돼...! 오지 마라...! 이건... 이건 우리 모두에게 좋지 않은 일이다...!>

“너한테만 안 좋은 일이지. 사람 잘못 본 대가를 치르게 해주마.”

자신을 봉인 파괴자로 낙점해준 건 고마운 일이다.

보기 드물 정도로 강한 존재로 인정해 준 거니까.

‘그래서 아껴둔 힘까지 발휘해 외부에 의념을 전달한 거겠지.’

아끼고 아껴둔 힘.

천천히 떨어지는 물을 한 방울씩 모으듯 챙겨둔 잔력.

그것으로 쏘아낸 최후의 의지.

‘강자를 알아보는 눈은 좋았다만... 그 힘의 크기를 잘못 짐작한게 네 패착이다.’

여기까지 온 이상 빈손으로 갈 순 없다.

최소한 놈의 생김새 구경이라도 해야겠다.

“우진을 불렀으면 우진을 감당하거라. 하하하하!”

우진이 마침내 호수로 뛰어들었다.

— 쿠구구구...!

호수가 살아있는 것처럼 덤벼온다.

이건 놈의 의지라기보단 봉인지의 힘일 것이다.

“갈(喝)!”

순간 호령하는 우진의 기세.

“매!”

그가 기이한 동작과 함께 사자후를 마쳤다.

“기!”

그것은 갈매기를 형상화한 춤으로 사실 별 의미 없는 행위였다.

그러나 호수만큼은 잠잠해졌다.

‘마력으로 만든 봉인이라면 마력으로 제어할 수 있지.’

이게 끝이 아니다.

“조사에 방해가 되니 잠시 이사를 하자꾸나.”

대지의 힘으로 호수만한 땅을 파버린 뒤 물을 그대로 옮겼다.

— 쿠구궁...!

이제 깔끔하게 드러난 호수의 바닥.

거기에 알 수 없는 술진이 새겨져 있었다.

호수가 거대하니 술진 역시 대단한 규모였다.

“이거 어떻게 푸냐?”

<네 마력을 그곳에 흘려넣고 총력을 다해.......>

“그건 너한테 밥주는 꼴이 될 거 같은데. 그냥 이렇게 하자.”

우진이 대흑검을 최대로 증폭시켜 호수 바닥을 내리찍었다.

— 쿵...!

<그... 그런 식으로는...... 나까지 영향이 온다! 이 머저리 같은...!>

호수 자체를 갈라버릴 듯한 기세.

그 바닥이 반으로 쪼개졌다.

— 샤아아아아...!

거기서 사악한 기운 마구 흘러나왔지만 우진의 상대가 될 순 없었다.

모조리 다 흡수하면서 내부로 진입했다.

— 시시싯...!

검은 연기의 뱀 수천 마리가 아가리를 벌리며 덤벼든다.

술진이 깨지며 힘이 조금 생긴 건지 대단한 기세로 밀려오고 있었다.

“오우! 뱀!”

<노옴...! 내게 이런 모욕을... 내게 이런 식으로 접근하고도 무사하리라 생각했느냐......!>

“뭐야, 아직 진짜 힘은 아닌 거 같은데.”

가볍게 뱀들을 손바닥으로 빨아들이며 동굴 바닥에 착지한 우진.

거대한 동공의 중심에 무언가가 있었다.

목갑(木匣).

그곳에 열기처럼 마기가 퍼져나오고 있었다.

‘이런 미친....’

그러니까 지금까지의 이 강렬한 마의 기운은 모두 진짜의 아지랑이 정도 밖에 안 되는 수준이었다는 거다.

우진이 눈을 감고 냉철한 어림짐작을 시작했다.

‘이거 베히모스랑은 또 다르다. 애초에 그냥 돌아다니던 영물이랑 한 시대(時代)가 목숨을 걸고 토벌해서 가둔 거악이랑... 차원이 다를 수밖에 없어.’

쪼그려 앉아서 손가락을 꼽으며 계산을 시작했다.

<너... 무얼 하느냐...?>

“아니 계산 좀 해보고.”

<그러니까 무얼 계산하느냔 말이다...!>

“아 물건을 살 거면 고민을 해야 할 거 아니냐.”

<물건...? 지금 나를 물건 취급하는 것이냐...?>

‘정신 사나우니까 조용히 기다려라. 내가 요즘 좀 똑똑해져서 금방 끝난다.’

우진 스타일의 위험요소 체크가 시작됐다.

그건 목갑을 열까 말까에 대한 진지한 고뇌.

‘나는 본체가 마물이라 마를 받아들이는 게 위험하지 않고... 저 놈이 현혹을 걸어도 정신 방어 능력이 탁월하고... 너무 큰 힘에 먹힐 위험도 없지 어둠의 핵이 있으니까.’

그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차해서 싸워야 할 경우엔.... 근처에 사람도 없으니 제대로 놀아볼 수 있고.... 아니 잠깐....’

고개를 든 우진이 목갑을 향해 물었다.

“야 내가 너랑 싸우게 되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넌 지금 육체가 없잖냐.”

<그야 당연히 널 내 심상세계 속에서...... 아니 그걸 나한테 묻는 이유가 뭐냐......?>

“아하, 심상세계라면 내가 또 한 정신력 하니까 승산이 매우 높고.... 오케이! 열자!”

우진이 목갑을 바라보았다.

금속이 아니라 나무 재질이라는 점.

그게 저 안의 녀석을 더욱 불길하고 무서운 것으로 만든다.

나무가 저런 괴이(怪異)를 봉인하기엔 더욱 적합하니까.

‘아마 신성한 나무 중에서도 축성을 수백 수천 번 받은 녀석이겠지.’

그리고 우진이 목갑을 향해 손을 뻗었다.

이제 필사적일 정도로 느껴지는 음성이 동굴을 울렸다.

<너... 네놈... 그걸 열면 우린 정말로 한 쪽이 사멸할 때까지 진명의 승부를 벌여야 한다...! 그냥 가라...! 가거라...!>

“아하, 날 먹어치우지 못하면 네가 먹히는 거로군.”

빙의하여 몸을 차지하지 못하면 놈은 자신의 몸속에 갇히는 꼴이 된다.

“좋다! 낙장불입!”

우진이 목갑을 연 순간.

천지가 뒤바뀌었다.

— 스아아아...

구축된 것은 광활한 평야였다.

사방이 어둡고 지독한 혈향이 가득했다.

“심상 세계가 참 음침하고 좋네.”

하늘에서는 불의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앞에는 거대한 악룡이 있었다.

“네가 토벌될 때의 기억이냐?”

“그건 토벌이 아니었다. 간악한 인간들이 감히 일대일로 맞설 수 없는 존재에게 펼친 비열한 술수였지.”

“어느 정도 동감해. 다구리는 좀 기분 더럽더라.”

“도... 동감한다고...?”

“그렇다고 우리가 한판 뜬다는 사실이 바뀌진 않지. 흐흐흐.... 덤벼라 한 때 세계를 노리던 용가리야.”

그가 눈을 들어 상대를 마주했다.

그것은 한때 세상을 위협하던 거악.

이제야 진정한 기세를 피워올리고 있었다.

“심상 세계에서 보니까 좋네. 크기도 커서 멋있고.”

우진의 말에 용이 날개를 활짝 폈다.

놈의 목소리가 대기를 울렸다.

“얌전히 몸을 내놓았다면 좋았을 것을. 그렇다면 중심부까지는 네 정신을 유지한 채 조금이라도 명줄을 이어갔을 진데.”

그때 달라지는 우진의 기세.

“그러냐...? 근데 말이다. 내가 얼마 전부터 정말 하고 싶었던 게 있거든.”

— 스아아아...!

순간 무제한의 어둠이 방출되었다.

지금까지 한 번도 뿜어낸 적 없었던 최대한의 출력.

그것이 스멀스멀 그의 주위를 감싸고 무언가의 형체를 이루기 시작했다.

그건 우진을 핵으로 하는 어둠의 거인이었다.

“오우... 이게 내 진짜 힘이구나...?”

거인이 된 우진이 주먹을 몇 번 쥐었다폈다.

그 가공할 힘에 악룡이 경악했다.

“그... 그건 대체......?”

빙긋 웃는 거인.

“내 본신이라고 할까?”

악룡이 그 말에 담긴 의미를 깨닫고 전율했다.

“보, 본신...? 그럼 지금까지는.......”

“참아야 했어. 너무 과하니까.”

“그... 그런......!”

우진이 스산한 미소를 지었다.

억제할 필요가 없는 심상 세계.

이곳으로 자신을 불러들인 순간, 악룡의 운명은 결정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 언데드가 되어 돌아왔다 94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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