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데드가 되어 돌아왔다 93 >
하늘에 빛나는 별이 떠올랐다.
그건 바로 우진.
날아오른 그의 몸에서 백색 악마의 새로운 능력, 자동 착용이 발동했다.
수많은 금속의 띠에 휘감기듯 몸을 감싸는 갑주.
— 촤르륵...!
완성된 모습은 백색 악마 극(極).
엘프 명장이 우진만을 위해 만들어준 특별한 갑옷이 더욱 강렬한 전투형 외관을 드러냈다.
“이거 이제 차원이 다르거든.”
신속에 신속이 더해지며 나오는 아름다운 속도.
전체를 감싼 검은 투기는 백이 뿜어내는 흑의 조화였다.
일단 공간을 파고들며 익룡들의 사이를 가른다.
세인들이 보기엔 무모하다 느껴졌을 움직임.
그러나 우진에겐 너무도 자연스런 전투의 첫 수였다.
“와라!”
등 뒤에 장검만한 발톱이 날아드는 것이 느껴졌을 때였다.
‘이중 반격.’
출수된 대흑검이 번쩍이고.
압도적인 파괴력이 닿는 느낌조차 없이 적을 썰어내렸다.
“이거 시원해서 좋구만!”
난전은 언제나 정신을 고양시킨다.
자신은 아무래도 사선을 넘나들 때 쾌감을 느끼는 몸이 되어버린 것 같다.
‘죽고 싶어서가 아니다. 살고 싶어서다...!’
오늘도 버텨냈다는 가슴 벅찬 감정.
그건 대강대강 살아서 느낄 수 있는 게 아니다.
전생에도 이번 생에도 매일매일 치열하게 싸웠다.
‘모든 일에 혼을 담아!’
전사에겐 싸우는 것이 일이다.
그리고 자신은 전사다.
“보람찬 일과 시작이다!”
한 마리를 죽였기에 새로운 스킬을 획득했다.
[’대선풍(大僊風)’을 계승했습니다.]
놈들의 위협적인 능력이 자신의 힘이 된 것이다.
‘좋아. 이거라면 멋진 조화가 가능하겠군.’
일단 적진의 중심으로 파고들어 갑옷의 능력을 발동했다.
“이 몸. 하늘에 강림.”
— 쿠구구궁...!
광역 스턴이 발동되고.
“미안하지만 너희는 단 한 마리도 살아돌아갈 수 없다.”
얼어붙은 놈들 사이에서 우진이 유령선을 바라보았다.
승패는 중요한 게 아니다.
어떻게 이기느냐.
‘나로서도 저들에게 보여줄 필요가 있거든.’
말하자면 나름의 ‘증명’을 하는 것이다.
<믿고 따라다오.>
진정 믿고 따를만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흐으읍...!”
눈을 감은 우진.
그 주변으로 순식간에 진식(陣式)을 따라 불줄기가 뻗어나갔다.
천공을 지배하는 거대한 화염진.
그건 들어온 순간 재가 될 때까지 빠져나갈 수 없는 불의 미로였다.
‘중급이 이 정도라니. 대단하군.’
자신의 화염 숙련도가 출중하고 뿜어내는 마력이 강대하니 이 정도 위력이 나오는 것이다.
‘그래도 확실히 진법은 최상급 스킬이라 불릴만 하다.’
최대 위력으로 전개하자 까마득한 창공에 불의 평원이 생겨난 것 같았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유령들 사이에서 경악성이 터져나왔다.
“진법을...!”
“사령관님께선 진법에도 조예가 있으신 건가...!”
하지만 이건 기술의 첫 단계일 뿐이다.
‘좋은 능력도 얻었으니... 풍화의 기운을 섞는 거다.’
유물 장갑의 빛이 두 가지 색을 발하고.
우진의 눈도 마찬가지로 번쩍였다.
본격적인 속성 조합 개시.
“화끈하게 놀아보자꾸나!”
‘대선풍.’
창공에 펼쳐진 화염진.
그것을 강력한 기류가 회전시키기 시작했다.
그 가공할 위력의 기술명은.
“풍화류. 화염 폭풍.”
강렬한 기류는 그 자체로 살을 찢는다.
날름거리는 화염이 함께하니 하늘에 불지옥이 펼쳐졌다.
진의 모든 면이 사신의 칼날이 된다.
작열하는 불꽃 분쇄기처럼 모든 것을 태우고 찢어버렸다.
— 키에에엑...!
— 끼이이이...!
사람을 꿀꺽 잡아먹는 거대한 마물들이 마치 날파리처럼 스러져가고 있었다.
그러나 우진의 기술은 아직 남았다.
‘난전에 용(龍)이 빠지면 섭섭하지.’
기왕 강력한 풍계열 능력을 얻었다면 제대로 써줘야 아쉬움이 없다.
“치솟아라! 풍룡승천!”
— 구오오오오...!
아가리를 벌리고 하늘을 향해 치솟는 바람의 용.
주변을 휘감은 용오름만으로도 산을 뽑아낼 듯한 기세였다.
— 키에에엑....
남은 녀석들이 모조리 휘말렸다.
놈들의 장기인 토네이도를 더욱 규모를 키워 되갚아 줬으니 섬멸의 쾌감이 더욱 크다.
화염의 잔재가 빨려올라가 마치 저 하늘에 화산처럼 시체를 분출하고 있었다.
‘아직 조금 남았군.’
마지막으로 창공이라는 조건 덕에 어찌 살아남은 십여 마리를 처리하기로 했다.
‘속도의 악마.’
— 콰드드득...!
포효하듯 언데드 폼으로 변신한 후 모든 이동기를 사용해 삽시간에 남은 놈들을 휩쓸었다.
— 콰콰쾅...!
검은 번개가 번쩍이나 싶더니 모든 녀석들이 일시에 폭발하듯 사라졌다.
그리고 다시 나타난 우진.
커다란 기술을 연달아 몇 개나 사용했지만 여전히 쌩쌩하다.
‘오우... 활력이 넘쳐흐르는구만...!’
이 정도로 날뛰었는데 아직 지칠 낌새도 안 보인다.
다시 돌아온 본선.
승리의 쾌감에 젖어 가볍게 착지했다.
“적 전멸. 위험 요소는 사라졌다.”
“우와아아...!”
다들 자신들이 본 광경을 하나라도 잊지 않기 위해 가슴에 새기는 동안, 선장이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조심스레 물어왔다.
“도대체 능력이 몇 가지십니까...?”
“아직은 나도 모른다. 강한 힘을 최대한 많이 가지고 싶을 뿐이지. 가능하면 무한에 가깝게.”
마지막 말은 웃으며 했으나 선장은 그마저도 감탄스러운 듯했다.
“무한대의 힘......!”
터무니 없는 얘기지만 어쩐지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앞의 이 남자라면 말이다.
그렇게 들뜬 마음으로 사령관의 전공을 칭송하는 사이.
이내 선장이 정신을 차리고 자신의 역할로 복귀했다.
“출항은 언제가 되겠습니까?”
“오늘 바로 경계의 해안선으로 출발한다. 필요한 게 있다면 바로 준비를 시작하도록.“
“예! 즉시 시작하겠습니다.”
“준비 과정에 내 조력이 필요하다면 무엇이든 주저말고 얘기해다오.”
그러자 선장이 멋쩍게 말했다.
“괜찮습니다. 그저 정신이 잠들어 있었으니 깨울 시간이 필요할 뿐.... 그나마도 화끈한 전투를 보고 나니 다들 개안하여 활력이 돌아왔을 것입니다.”
우진이 빙긋 웃었다.
“그런가. 그렇다면 출발 준비가 완벽히 끝나면 약속대로 성대한 출정의 연회를 벌려야겠군.”
흥분하는 조타장과 르쉬.
“다들 들었지! 준비가 끝나면 연회가 시작된다!”
“우오오!”
아니나 다를까 삽시간에 끝난 정비.
연회마저도 폭발적인 기세로 이루어진다.
“먹고 싸우고 이기자!”
“사령관님이 계신데 우리가 싸울 일이 있을까...?”
“우리는 바다와 싸우는 것이지.”
“으음! 승부다!”
그 모습을 흡족하게 바라보던 우진.
“좋다. 그럼 르쉬야, 우리도 준비를 해볼까나.”
미리 준비한 챙모자를 비스듬히 눌러썼다.
자신의 것은 검은색에 크기가 더 크고, 르쉬는 붉은 띠에 깃털 장식이 있었다.
“이제 사령관 느낌이 좀 나는군.”
“부선주 르쉬도 준비 완료입니다!”
감탄하는 유령들.
“이 정도로 완벽한 준비라니.”
“과연 비범한 분들이로다....”
그때 우진이 단 위에 섰다.
유령 일동 주목하는 가운데 그가 실전 압축 스피치를 시작했다.
잔을 들어올린 우진.
“믿음은 시간 위에 쌓인다. 그러나 진심은 시간을 뛰어넘어 전해진다. 우리가 서로의 진심을 느낄 수 있다면, 이미 우린 하나다.”
“우오오오...!”
기본적으로 파이팅이 있는 녀석들이라 금방 불이 붙는다.
“우린 하나다!”
“우린 하나다!”
마침내 즐거운 식사가 끝나고 모든 게 준비되었을 때.
우진의 목소리가 거대한 선체를 쩌렁쩌렁 울렸다.
“자! 이제 출항 시간이다...!”
목적지를 알기에 방향은 이미 정해졌다.
“북부로!”
모든 선원이 자리로 향했을 때 거선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북부로!”
*
— 고오오오....
아주 작은 소리만이 들려오는 선내.
외부에서 보면 작은 흔들림조차 없이 움직이고 있다.
그 안의 어느 방.
검은 눈의 사내가 생각에 잠겨 있었다.
‘드디어 그곳으로 가는군.’
우진이 중심부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를 떠올렸다.
그 도전의 땅에 대한 설명은 항상 ‘눈동자’를 두고 이루어진다.
사람의 안구 중 검은자.
그게 중심부다.
그리고 겉에서 보이는 흰자위가 시험의 바다가 된다.
그 외에 보이지 않는 나머지 안구가 모조리 바깥 고리인 셈이다.
하지만 그 규모가 상상초월.
모든 게 극도로 거대할 뿐이다.
단순히 ‘눈’으로 생각하기엔 너무나 넓은 세계.
검은자위의 면적만 해도 지구의 몇 배가 되니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그 안에 월드의 정수가 존재한다.
‘누군가에겐 명예가 있는 땅. 누군가에겐 위대한 재보가 있는 땅.’
누군가에겐 모든 것을 걸어서 도달하고 싶은 도착점이자...
누군가에겐 이제야 모든 것이 시작되는 출발점.
자신에겐?
죽여야 할 놈들이 있는 땅.
그리고... 그 끝에 정점이란 목표가 있는 땅.
전생 자신은 스스로의 힘으론 닿을 수 없는 상태로 그곳에 도착해 3류에서 2류가 되기 위해 처절한 시간을 보냈다.
강자들끼리의 기준이라곤 하나, 힘을 추구하는 자들에게 그런 말은 의미가 없다.
이번엔 달라야 한다.
모든 것이 달라져야 한다.
— 쿠구궁....
그때 마침내 비행을 마친 거선이 정지했다.
경계의 해안선에 도착한 것이다.
— 휘오오오....
우진이 선체 위로 이동해 바람을 맞으며 섰다.
까마득한 고도에서 지상을 내려다보았다.
평범한 바다가 보인다.
철썩철썩 파도가 밀려와 포말을 일으키고 물러가는 모습은 아름답고 평화롭게 보이기까지 했다.
게다가 주변의 마을까지.......
조업을 하는 배마저 보인다.
시험의 바다라고 볼 수 없는 평범한 풍경.
하지만 이곳 주민들이 철석같이 지키는 수칙이 있다.
<한계선을 넘어가면 죽는다.>
즉, 여긴 육지로 치면 지표와도 같은 공간.
점점 파고들면 멘틀을 지나 외핵과 내핵의 무시무시한 위협이 닥쳐온다.
저 너머에 있을 극한의 험로.
그것이 진정한 시험의 바다다.
— 피슝...!
그때 선장이 나타나 우진의 명을 기다렸다.
“어찌할까요.”
“출발은 새벽. 오늘 밤은 마지막 휴식을 취한다.”
“알겠습니다.”
마지막 정비가 시작되었다.
우진이 저 멀리 까마득한 마을을 바라보며 빙긋 웃었다.
“휴식 간 성대한 식사가 있을 예정이니 기대하도록.”
“그...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저희는 이 배 밖으로는 못 나갑니다.”
본선에선 순간이동으로 자유로운 운신이 가능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캐스케이드 밖으로 나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근처의 몇m 정도는 가능하지 않나.”
“괜찮습니다. 물고기가 물 밖을 벗어날 수 없다고 서러워하겠습니까. 새가 하늘이 지겹다 한탄하겠습니까. 저희는 이대로 괜찮으니 사령관님과 부선주님께서 마음껏 즐기고 오십시오.”
“아니다. 정 그렇다면 내가 저 마을 전체의 음식과 술을 이곳으로 옮겨주겠다.”
“예...?”
지체 없이 지상으로 뛰어내린 우진.
구름을 지나 날개를 펴고 가볍게 착지했다.
그 뒤를 따라 도착한 자신의 수하.
두 존재가 중간 규모의 마을을 싸그리 털기 시작했다.
“르쉬. 먹고 싶은 것을 모두 골라라.”
“예!”
대량으로 구매해도 상인들은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일들이 흔한 것처럼 능숙하게 준비해준다.
경계의 해안선에선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풍경이기에.
그리고 어마어마한 양의 음식과 함께 돌아온 우진.
“자, 사령관님께서 내리는 포상이다! 모두 배불리 먹고 최고의 항해를 준비해라!”
“으아아앗...!”
“하루에 연회를 2번이나...!”
“저장고에도 새로운 음식이 잔뜩 쌓였다!”
“우리는... 우리는 무슨 복을 받았기에 이런 행운을....”
그리고 다시 한 번의 즐겁고 시끌벅적한 식사가 끝나고.
늦은 밤이 찾아왔다.
“소등!”
모든 선원이 내일을 위해 잠자리에 들었을 때.
유령마저도 정신적 휴식을 위해 영체를 눕히는 시간.
누군가 홀로 선교 위에 앉아있었다.
— 쿠구구구....
높은 고도에 정박한 캐스케이드.
모습을 감추고자 하면 쉽게 감출 수 있는 거선.
원체 조용한데다 은폐장까지 켰기에 이건 밤의 구름이나 마찬가지였다.
그 조타실에서 우진이 달빛 아래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시험의 바다.’
그 너머의 중심부에선 성장 속도도, 방식도 모든 것이 달라진다.
그걸 위해 바다에 도전했던 많은 강자들.
건너는 방법도 모두 제각각이었다.
중원에서 온 투신(鬪神) 진광은 이 바다를 맨몸으로 건넜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내가 목격한 투신은 정말 그게 가능할 것처럼 강한 존재였다.’
외공의 극한에 달한 그 자는 신기하게도 신체가 적색에 가까웠으며, 숨결에도 투기를 실을 수 있는 살아있는 전신(戰神)이었다.
‘그 자라면 정말 단신으로 바다를 뚫을만 하지.’
또한 아주 평범한 탑승물을 가지고 오직 ‘속도’로만 이 바다를 뚫어낸 자도 있었다.
‘고양이 수인계의 전설. 레이카.’
그 신비한 괴인은 예지에 가까운 반응속도로 모든 위험들을 ‘회피’했다.
‘물론 그런 신비한 강자들만 있는 것은 아니었지.’
그 외에는 다소 ‘평범한’ 방식이 대부분이었다.
여러 파티원이 자신들의 능력을 합쳐서 각종 시련을 통과하는 것이 기본적인 대응법.
전생의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의 역할은 아주 미미했지만, 그래도 하나의 작은 톱니바퀴가 되어 이 바다를 건너는데 기여했다.
그러나... 이번엔 조금 다르다.
‘내가 리더가 되어 이 바다를 다시 마주하게 되었군.’
과거의 백치 시절이 떠올라서일까.
어딘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때 무언가가 느껴졌다.
그건 어느새 저 멀리 정좌하고 앉아 자신과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르쉬였다.
대해원의 기운을 받아들이듯 눈을 감고 명상하는 르쉬.
결행을 대비하여 차분히 힘을 키우고 있는 모습이다.
‘그래. 걱정할 것 없다.’
자신에게도 최고의 탑승물과 선원들.
그리고 최고의 수하와 최고의 능력 계승이 있다.
그때 근처에 선장의 영체가 솟아났다.
“저희가 정말 할 수 있는 걸까요?”
“안 되면 되게 하자고.”
“흐흐흐... 그거 참 재밌는 얘기입니다.”
선장이 눈치껏 인사를 한 뒤 물러났다.
“쉬십시오.”
“건너편에서 다시 즐거운 얘기 나누도록 하지.”
“물론입니다.”
그 후로도 한참동안 조용히 바다를 지켜본 우진.
그렇게 마지막 휴식의 시간이 저물어갔다.
*
그날 밤.
모두 자고 있을 때.
우진의 귀에 기이한 음성이 들려왔다.
<내 목소리가 들리느냐?>
< 언데드가 되어 돌아왔다 9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