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데드가 되어 돌아왔다 89 >
본 드래곤이 창공을 날고 있었다.
목적지는 화산.
‘슬슬 더워지는구만.’
근처의 평원에 도착하자 간만에 보는 익숙한 풍경이 나타났다.
거기 보이는 반가운 녀석.
‘불성큼이...!’
다리가 긴 여우 같이 생긴 마물.
자신에게 화염 속성을 계승시켜준 고마운 녀석이었다.
그런데 놈들의 움직임이 좀 이상하다.
‘어디로 가는 거지?’
시선을 돌리니 대량의 불성큼이가 중형 규모의 상단을 쫓고 있었다.
‘어우... 저러다 다 죽겠네.’
지체 없이 뛰어내린 우진.
— 쿠구궁...!
일단 대지의 힘으로 상단 행렬 전체를 쭉 밀어올려서 격리시켰다.
“어어어...!”
깜짝 놀라는 상단.
좀 당황스럽겠지만 이게 안전하다.
그리고 자신은 수력으로 힘을 끌어올려 주먹을 쥔다.
푸른 빛으로 빛나는 구슬.
강력한 통제력 속에 대기가 얼어붙고.
‘얼어붙는 한기.’
마지막으로 주먹을 부풀린다.
‘의지의 거인.’
— 쿠구궁...!
그건 대지에 꽂힌 얼음의 유성이었다.
공격 범위가 대폭 상승하니 한기의 파동만으로도 모조리 쓰러지는 불성큼이들.
— 키에에엑....
모든 게 바닥에 닿기 전 순간적으로 이루어졌다.
“괜찮으십니까?”
다시 단을 내려 상단과 마주한 우진.
절망에 빠져있던 사람들이 앞다투어 인사를 보내왔다.
“가, 감사합니다!”
“꼼짝없이 죽는 줄 알았습니다.”
그때 상단주가 앞으로 나섰다.
“저, 정말 감사합니다! 위대하신 모험가님의 존함이 어찌 되시는지요?”
“그냥 지나가던 여행자입니다. 하하.”
정체를 밝히고 싶지 않아한다는 것을 알아차린 상단주가 공손히 예를 갖췄다.
“부디 사례를 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제가 고귀한 분들의 예법은 모르지만 사례금이라도 드려야 극심한 무례는 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자신이 고귀한 분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의 마음은 충분히 전달되었다.
“돈은 괜찮습니다.... 그보다.......”
우진이 상단의 깃발을 살폈다.
‘이거 나로서도 귀인을 만난 거 같은데.’
명주 ‘불꽃의 정수’.
판타지 세계에서 온 자들이 빚어낸 유명한 술.
그 강렬한 맛과 향을 인정받아 대단한 가격에 거래된다.
무엇보다 생산되는 수량이 그리 많지 않아 돈을 떠나 구하기 힘들었다.
우진이 조금 멋쩍게 요구한 건 그 술 1병이었다.
“아! 저희 술을 아십니까?”
“워낙 유명하니 소문을 들었습니다.”
“물론입니다! 몇 병이라도 드릴 수 있습니다. 아니! 여기 이 상자를 전부 가져가 주십시오!”
1병이면 충분하다지만 한사코 넉넉히 챙겨주려는 상단.
딱 3병만 받아가기로 했다.
가격을 알기도 하고, 자신이 욕심을 부리면 약속된 구매자들이 곤란을 겪게 되기 때문이다.
— 쩡....
쥐는 소리만으로도 아름다운 술병.
도자기 호리병에 불로 꽃이 그려져 있었다.
‘화산에 딱 어울리는 술이군.’
“감사합니다. 그럼.”
그리고 순간 훌쩍 날아오른 우진.
상단이 두리번 거릴 때 이미 신비한 여행자는 보이지 않았다.
“어라?”
그리고 자신들의 상처가 모두 회복되어 있는 것을 발견한 상단원들.
‘우리가... 기적을 겪은 건가...?’
그때 저 멀리 기이한 소리와 함께 거대한 뼈 용의 뒷모습이 보였다.
“오늘은... 정말 신비한 날이로군.......”
*
탑승과 동시에 르쉬와 하이파이브를 한 우진.
“돌아오셨습니까!”
“으음, 아주 멋진 선물과 함께 돌아왔다. 이제 가보자꾸나.”
“예!”
다시 목적지를 향하는 본 드래곤.
마침내 먼 곳에 월드의 신비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대지에 솟아난 불의 정수.
화산이었다.
“일단 열기에 대한 대비를 하자꾸나.”
자신이야 체력 스탯이 어마어마하니 화기를 버틸 수 있다.
거기에 속성 내성까지.
‘하지만 르쉬는 맨몸으로 가기엔 조금 힘들겠지.’
저항 포션을 마시게 하고 내성 장신구, 그리고 스크롤로 저항 마법까지 걸어줬다.
“이제 이틀 정도는 쾌적할 것이다.”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본 드래곤 전체에 물의 가호를 건 뒤 화산에 진입했다.
그리고 도착한 절벽.
그 전에는 느껴지지 않던 거대한 규모가 저절로 파악이 된다.
‘정말 대단한 시설이야.’
이제 소환을 해제하고 날개를 편 두 존재.
험한 지형을 따라 비행을 이어가는데.
저 아래에 반가운 얼굴이 보였다.
“애쉬라인!”
마침내 만난 애쉬라인이 경악하고.
“우진...? 정말 우진이라고...?”
뿌듯한 우진.
“하하. 제가 좀... 많이 강해졌죠?”
그때 한 발을 물러서는 애쉬라인.
“그... 그... 모습은 무엇이지...?”
금의환향 느낌을 내기 위해 백색 악마를 입고 대흑검과 진 흑참도를 교차해서 찼다.
그리고 팔괘선의를 허리에 두르고 바이저를 내렸다.
양손에는 각자 무형활 캐논폼과 유물 장갑을 잘 보이게 들고 착지했는데 역시 좀 과했나보다.
‘휘장은 안 꺼내서 다행이군.’
“에이 솔직히 멋있잖아요.”
그러나 농담은 거두고 차분히 바라보는 엘프.
화려한 복장이 아니라 그 안의 무언가를 보는 듯한 깊은 시선이었다.
이내 빙긋 웃는 애쉬라인.
“뭐... 대단히 강해진 것만은 인정하겠다. 이제 무력으론 당해내기 힘들겠군.”
묘한 울림과 함께 이상하게도 감동이 느껴졌다.
우진이 어색한 마음에 씩 웃으며 답했다.
“제가 어찌 감히 스승님과 무력을 견주겠습니까?”
“음? 스승? 내가 왜 네 스승이 되는 건가...?”
그가 포권과 함께 척 고개를 숙였다.
“마나 수련 사부님이시잖습니까. 정말 많이 배웠습니다.”
이건 그의 진심이었다.
애쉬라인을 만나지 못했다면 이렇게 빨리 성장하진 못했을 것이다.
‘힐을 익힌 것도 마나 각성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그 외에도 마나에 대한 귀중한 조언들.
“전 이제 어디서 사문을 밝히라면 화산파라 하겠습니다.”
“화... 화산파...?”
“예. 화산에 은거기인이 사는데 그분께 배움을 얻었지 않습니까. 하하하하!”
혀를 차는 애쉬라인.
“못 본 사이에... 정신이... 더... 나가버렸군.”
사실 그 유명한 화산파는 화산(火山)이 아니라 화산(華山)이지만......
그 정도는 우진도 안다!
그저 친밀감의 표현일 뿐이었다.
그때 우진이 잊고 있던 것을 떠올렸다.
“아 그리고 이쪽은 제 동료입니다.”
르쉬가 우진 뒤에서 빼꼼 나왔다.
자신은 흡혈귀.
그런데 상대가 엘프라 하니 걱정이 된 것이다.
순간 빛나는 애쉬라인의 눈.
반드시 알아봤을 거다.
하지만 아무 내색도 없는 엘프.
“그래, 얘기는 들었다. 우진의 친구라면 내 친구기도 하지. 편하게 지내도록.”
“가, 감사합니다!”
그때 쭈뼛거리던 르쉬가 커다란 목소리로 말했다.
“저... 그런데 사부님이시면 제게는 대사부님이 되시는 게 아닌지요. 저... 절 받으십시오...!”
넙죽 엎드리려는 르쉬를 보며 기겁하는 애쉬라인.
우진이 겸연쩍게 웃었다.
“아, 죄송합니다. 제가 오는 길에 이상한 교육을 시켜버려가지고. 르쉬야. 이분은 그냥 인사면 된다고 하신다.”
“아, 그렇습니까! 안녕하십니까! 저는 르쉬라고 합니다!”
결국 웃어버리는 애쉬라인.
“그래, 이 녀석과 서로 좋은 조화를 이루는구나. 어서 오거라.”
“감사합니다!”
“하하하하!”
우진도 껄껄 웃다가 마침내 품을 뒤졌다.
“이거... 오다가 애쉬라인 생각나서 사왔습니다.”
경매장 물건이 정체를 드러냈다.
— 쿠궁...!
“이... 이건...?”
거대하고 맛있는 냄새를 풍기는 무언가.
그것은 대형 ‘뱃살 돼지’를 통으로 훈제시켜놓은 멋진 물건이었다.
‘희귀 마물에다 강한 녀석을 원형 그대로 잡는 것만해도 쉬운 일이 아니지.’
한 조각만 떼어 팔아도 값비싼 녀석.
최고의 실력을 가진 셰프들이 조리와 후처리를 했으니 경매에 나올만한 물건이었다.
‘놈의 희귀도를 생각하면 정말 천금이 아깝지 않다.’
아마 자신이 입찰하지 않았으면 어디 부호나 귀족가에서 과시용으로 사다가 파티를 열었을 거다.
하지만.
자신은 이미 그들의 재력을 뛰어넘는 돈이 있다.
우진이 그 외에도 각종 신선한 식자재를 꺼내며 웃었다.
“귀찮으면서도 꼭 구비해둬야 하는 것. 그게 식량 아니겠습니까. 다른 거보다 장 볼 시간을 아껴드리는게 좋을 거 같아서 준비해 보았습니다.”
홀린 듯한 시선의 엘프.
“마음에... 정말... 쏙 드는군.”
운반을 시작한 우진.
“분해해서 냉장고에 넣어두면 오래오래 드실 수 있을 겁니다. 저번에 보니까 훈제 고기를 좋아하시는 거 같아서.”
“넌 정말 관찰력이 좋군.”
“밥 준 사람 까먹는 스타일이 아니라서. 하하....”
“고맙다. 참으로.”
내친김에 분리해서 대형 냉장고에 넣어주었다.
통돼지로 보여준 것은 임팩트를 위해서였고, 해체해서 보관하는 편이 먹기에 편할 것이다.
날아다니는 칼의 춤을 보며 놀라는 애쉬라인.
“넌 고기 해체에도 일가견이 있나...?”
“그건 아니고 생선 해체를 아주 오랫동안 했었는데...... 고기도 생각보다 잘 되네요? 이게 바로 만류귀종인가 봅니다.”
그리고 내려선 지하 작업장.
이번엔 우진이 놀랄 차례다.
“기갑룡...? 이게 기갑룡이라고요...?”
애쉬라인도 가슴을 펴고 뿌듯함을 만끽한다.
“장담하지. 이게 널 중심부에서 최소한 1번은 살려줄 거다.”
새로운 기갑룡은, 뼈대만을 남긴 채 완전히 새로 태어난 괴물급 마도병기.
그야말로 명장의 혼을 담은 걸작품이었다.
‘이게... 내가 알던 기갑룡 맞냐...?’
기갑룡 2.0.
도색부터 싹 새로했다.
게다가 소재부터 교체된 부분들이 있다.
명장의 창고에서 나온 것이니 이만저만 귀중한 금속이 아닐 것이다.
‘내구도나 버틸 수 있는 출력이 어마어마해졌겠어.’
슈퍼 합금 드래곤이 된 셈.
거기다 각종 무장이 추가되었다.
경험상 저 거대한 입에서도 반드시 광자포가 나갈 것이다.
하지만 역시 가장 마음에 드는 건 색 변화!
블랙과 레드의 조화는 정말 언제 봐도 사랑스러울 정도로 멋졌다.
“애쉬라인... 이거는 최종보스 기체로 나와도 손색이 없는 디자인입니다!”
그로서 떠올릴 수 있는 최고의 극찬.
던전 보스가 바깥고리 전체의 보스처럼 변했다!
애쉬라인은 우진의 괴이한 화법을 이미 알고 있기에 신경도 쓰지 않고 설명했다.
“헌데 단 하나 문제가 있다.”
“문제라면...?”
“동력부에 대형 ‘차저’를 사용하고 있다. 다소 불안정한 방식에 의존하는 셈이지.”
“흐음... 그럼 문제가 많을까요?”
“글쎄. 여기에 주기적으로 마력을 공급해주려면 그것도 일이겠지. 최대 출력도 다소 아쉽게 느껴질 테고.”
“체이서와 결합한다면요?”
체이서의 구조는 이미 스캔을 해뒀으니 당장이라도 결합이 가능하게 개조된 상태였다.
“물론 체이서와 함께라면 아무런 문제가 없지. 그때는 기갑룡이 완전해지는 셈이니.”
일단 한시름 덜었다만....
그래도 뭔가 아쉽다.
체이서가 지상을 달릴 때도 이 거대한 녀석은 계속 쌩쌩 날아다니게 할 방법이 없을까?
우진이 무언가를 왕창 꺼냈다.
“혹시 이걸 에너지원으로 쓸 수 있을까요?”
그건 바로 어둠땅 특산물들.
자신이 가진 마력 아이템들 중 수량이 가장 많은 녀석들이다.
‘광물, 결정 소재도 많으니 마력이 정말 풍부한 녀석들이지.’
그게 무엇인지 알아본 애쉬라인.
“이... 이게 전부......?”
“옙. 어둠땅에서 수거해 온 녀석들입니다.”
“넌...... 대량이 아니면 취급을 하지 않는 건가......?”
경악하는 엘프.
놀라는 것도 이해는 간다.
또다시 작업장을 가득 채워버린 우진의 통 큰 대방출.
대농장 4개를 털어오고, 신전 창고까지 털어왔다.
이 정도면 월드 전역에 퍼져있는 어둠땅 소재들 전체와 맞먹을 것이다.
거기에 총신관의 각종 수집품까지.
애쉬라인은 그 기이한 모습에도 놀라지 않고 면밀히 아이템을 살폈다.
“강대한 어둠의 마력이 가득하군. 이런 물건들은 어디서 구했지?”
광마교 얘기를 해주자 혀를 찬다.
“흠... 광마교라. 내가 화산에 들어온 이후 그런 세력이 창궐했을 줄이야.”
“좀 맛탱이 간 놈들이 잔뜩 있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이건 그놈들 우두머리의 수집품 비슷한 거였습니다.”
그때 눈을 빛내는 애쉬라인.
“오호... 이건 뭐지?”
엘프가 집어든 것은 커다랗고 둥근 구슬.
빨려들 것 같은 암흑의 구체.
마옥(魔玉)이었다.
‘오... 안 그래도 조사를 부탁하려 했는데, 역시 단숨에 알아보는구나.’
“저도 사실 정체를 몰라서 애쉬라인에게 부탁하려고 했거든요.”
“그렇다면....”
커다란 기계에 놓고 스캔을 시작하는 애쉬라인.
잠시 후 감정 결과가 나왔다.
감탄한 엘프의 표정.
“이 녀석 에너지 수용량이 엄청나다. 어쩌면... 기갑룡의 심장보다도 한 수 위. 정말 엄청난 출력을 제공하겠군.”
“그 정도입니까?”
“그래, 아마도 뭔가 특별한 목적이 있었던 것 같군. 일상에서 쓰려고 만들기엔 너무 강력해.”
머릿속에 광마교의 몇 가지 흉계가 스쳐지나갔다.
그 중 가장 가능성이 있는 것은.......
‘설마 마계로의 게이트?’
대형 차원 균열을 만들면 악마를 줄줄이 불러낼 수 있다.
단순무식하고 그만큼 어려운 방법이지만....
‘그놈들이라면 일단 시도는 해봤을 거야. 앞뒤 없이 열정적인 악인들이니까.’
아마 이건 그 계획을 목표로 만들고 있던 초강력 에너지 구슬 같았다.
“아직 미완성 상태지만... 네가 가져온 모든 어둠 마력 아이템과 소재를 죄다 추출해서 넣으면 완성이 될 거다.”
우진이 수거해 온 어둠땅 소재들.
어둠을 잔뜩 품은 광물 위주에다가 총신관의 수집품을 갈아버리면 또 대량의 에너지가 나올 거다.
그렇게 마옥을 완성해 기갑룡의 ‘심장’으로 사용한다.
그건 즉.
“그냥 용이 아니라 어둠의 힘으로 움직이는 마룡!”
흥분한 우진을 보며 애쉬라인이 신비한 미소를 지었다.
“게다가... 이 정도면 내 최신 기술을 적용시킬 수 있겠군.”
“오? 그게 무엇입니까?”
“도저히 에너지 허용량이 나오지 않아 제거한 기능이 있다. 동력이 부족해서 사용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는데.... 이 정도라면 하고도 남겠어.”
잠시 미묘한 웃음을 보내는 애쉬라인.
“음?”
마치 잘 생각하면 자신도 알 수 있을 거라는 듯한 표정.
‘기갑룡에 적용할 최신 기술이라......’
과거의 기억을 하나 둘 되짚고....
순간 우진이 무언가를 알아차렸다.
“설마...?”
빙긋 웃는 애쉬라인.
“그래. ‘그거’다.”
순간 전율을 느낀 우진.
“세상에...!”
그거라면 하나 밖에 없다!
“워프!”
애쉬라인의 숙원이 드디어 이루어진 것이다!
< 언데드가 되어 돌아왔다 89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