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데드가 되어 돌아왔다 86 >
“비상...!”
“비상이다...!”
건설 이래 최대의 위기를 맞이한 무법도시 자이하츠.
그곳을 향해 덮쳐오는 건 암흑의 군대였다.
그리고 그 선두에 선 것은 단 한 명의 사내.
흑색의 대검을 어깨에 얹고 여유롭게 걸어오는데.
— 후웅...!
순간 검풍이 일게 휘두르더니 신비한 일이 벌어졌다.
빨려들 것 같은 광채와 함께 점점 길어지는 흑대검.
그건 우진이 선보이는 강화 ‘증폭’의 신비였다.
“처음부터 3단계로 가볼까나.”
— 훙...! 훙...! 후웅...!
마침내 거대하게 변한 대검.
우진이 미소를 짓는 순간.
“어... 어... 어어어...!”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지 짐작한 초병들이 죄다 망루와 성벽에서 몸을 던졌다.
“달아나라...! 살고 싶거든 몸을 피해라...!”
— 쩌저정...!
순간 찢어진 허공.
흑대검 최고단계의 증폭으로 통로를 발생시킨 것이다.
“발사!”
마치 맨몸으로 대포를 발사한 듯한 강력한 반동과 함께.
— 퉁...!
도시를 가로지르는 어둠의 대로가 뚫렸다.
— 콰아아아앙!
그건 난다긴다 하는 오만 강자들도 보지 못한 경이로운 기적.
수성전이 성립하지 않는 압도적인 힘이었다.
그렇게 열린 진입로.
그 사이를 마치 바다를 가르듯 걸어가는 우진.
여유로운 휘파람과 함께 거침없는 발걸음.
좌측엔 베히모스가 우측엔 본 드래곤이 함께한다.
다시 그 양 옆으로 본 골렘이 밀어붙이고.
마침내 하늘의 병력들이 휩쓸기 시작했다.
— 낄낄낄낄...!
“끄아아아!”
— 꺌꺌꺌꺌...!
“끄어어억...!”
만족스럽게 걸어나가는 우진.
걸음마다 번개가 꽂히고 불기둥이 솟아오른다.
— 크르르르....
어느 순간 그의 옆에 늑대 열두 마리가 나타나 모든 것을 물어 뜯고.
하늘엔 세 마리의 거대한 박쥐들이 날기 시작했다.
“이거 너무 쉽구만.”
점령? 토벌? 정벌? 그런 거창한 단어도 필요 없었다.
그저 땅에 떨어진 동전을 줍듯 쉬운 일.
무력화된 도시.
공포와 한기로 얼어붙은 병사들.
그 사이에서 감히 누구도 막아세우지 못하고 중앙 광장까지 진입한 우진.
“대장 나오라고 해라.”
그의 명령과 함께.
도시의 운명이 이제 놈들의 ‘왕’의 손에 달렸다.
*
— 콰콰콰쾅...!
“오늘은 뭔데 또 저렇게 시끄러워?”
“그... 그게....”
란돌프가 곰가죽 의자 위에 시큰둥하게 앉아 부하의 보고를 들었다.
“침입자? 나를 불러? 아니, 내 이름을 불렀다고?”
무법왕에 즉위한 지가 이제 8년.
감히 자신을 이름으로 부르는 존재가 있다니.
게다가 자신의 영토에서?
그때 창 밖에서 들려오는 요상한 외침.
확성기처럼 웅웅거리는 소리였다.
“아아—! 너희는 포위됐다. 란돌프는 당장 튀어나와 오라를 받아라. 너희에겐 변호사를 선임할 권리가 있고...! 아니 없고! 묵비권은 무슨 권법일까나?”
뭔 개소리인지는 둘째치고.
“거 목청 한 번 더럽게 큰 놈이네.”
결국 자리에서 일어난 란돌프.
무법도시에 오는 놈들은 원래 좀 별종이 많다.
이런 일이 처음도 아니고 머리나 좀 쥐어박아서 정신을 차리게 만들어주려고 하는데.
강대한 근육질의 육체를 꼿꼿이 세우고 나오니 도시가 풍비박산이 났다.
“이게 무슨....”
기가 차는 광경이었다.
도시의 전원이 포로였다.
감히 단 하나도 고개를 들지 못하고 저 미친놈의 개소리를 얌전히 듣고 있는 것이다.
“어! 란돌프 나왔냐!”
그때 이쪽을 보는 침입자.
어떻게 만든 건지 높다란 기둥을 세워놓고 그 위에 서 있다.
란돌프가 별별 생각과 오만 의문을 다 농축해서 하나의 질문으로 뱉었다.
“넌 뭐냐 도대체?”
우진이 놈의 패기에 만족하며 답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페인텔의 성자이자 어둠땅의 정화자, 전설적 모험가이자 3휘장의 보유자. 단신으로 중급 악마를 살해한 마멸자 우진이다.”
긴 설명에 하품하는 시늉을 하는 상대.
“뭐 들어본 것도 같고.”
살짝 쫄았으면서 허세를 부리는 란돌프.
그도 최소한 중급 악마를 잡은 강자에 대한 알림은 보았기에.
그건 우진도 아주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어떻게 아느냐.
‘놈의 부하들은 벌써부터 움찔움찔하고 있거든.’
눈을 질끈 감은 부하들.
<개 좆됐다....>
<어젯밤 꿈자리가 뒤숭숭하더라니....>
<씨발 중급 악마 살해자가 왜 여길 와....>
실로 악인다운 생각.
반성보다 자신의 운없음을 한탄하는데.
그들의 왕은 과연 달랐다.
란돌프가 허세를 이어갔다.
“넌 내 위명을 모르는 것 같구나.”
그의 위에서 떨어지듯 펼쳐지는 금빛 탐구자 휘장.
펼치는 방식이나 형태가 보유자 마음대로인 것을 감안하면, 제법 자주 펼쳐본 솜씨였다.
“5속성을 달성하여 받았느니라.”
거드름을 피우는 란돌프.
유물 장갑으로 만들어낸 전설적 위업은 과연 자랑할 만한 성취였다.
근데 뭐 어쩌라는 말인가.
‘바보냐?’
우진의 머리 위에 같은 휘장이 펄럭 떠올랐다.
그리고 그의 좌 우에 펼쳐진 것은 각각 수호자와 악마 살해자의 휘장이었다.
찬란한 위엄을 과시하는 3개의 휘장.
“악마 살해자가 무슨 뜻인지 알면 휘장으로 기선제압할 생각은 접었어야지. 나 3휘장이라고 말했잖아.”
도시 전체를 밝히는 수호자의 휘장 덕에 모두가 눈이 부신듯한 느낌을 받고 있었다.
이를 악무는 란돌프.
원래는 이 정도에서 상황이 정리가 되었어야 했다.
솔직히 상대의 수준이 짐작이 안 간다.
이런 경우엔 2가지다.
‘말도 안 되게 강하거나.... 터무니 없이 강하거나.’
둘 다 큰일난 경우다.
하지만. 약한 모습을 보이면 끝이다.
자신이 통치하던 모든 것을 잃을 수 없기에.
그는 절대로 물러날 수 없다.
만약 그가 도시를 박살내던 본 골렘과 본 드래곤을 보았다면.
혹은 베히모스의 끝자락이라도 보았다면.
최소한 그림자 한 마리라도 보았다면.
그랬다면 그의 선택은 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 그런 행운은 없었다.
우진이 영리하게 소환을 해제했기 때문이다.
‘해보자. 네 본성을 보여라 가짜왕.’
결국 인생 최고의 오판을 내린 란돌프.
그가 손을 들자 모습을 감추고 있던 친위대가 일시에 달려들었다.
왕의 친위대.
수하 중 가장 강한 5인조의 기세는 과연 흉흉했다.
하지만.
“르쉬.”
그에 맞서 자신의 친위대를 보낸 우진.
무슨 일이 생겼는지도 모를 순간 혈폭풍이 일었다.
볼품 없이 쓰러진 5명을 뒤로 한 채 르쉬가 척 목례했다.
“죽일까요.”
우진이 고개를 끄덕이자 모두의 가슴에서 솟아난 혈검.
그가 만족스럽게 웃었다.
“점점 강해지는구나.”
“모두 총대장님 곁에서 배운 것들입니다.”
돌아선 우진이 말했다.
“보다시피 내 부하는 자비심이 전혀 없다. 그러니까 너희도 신중하게 판단하는 게 좋을 거다.”
기세를 몰아 대지를 들어올려 거대한 단을 만든 우진.
일종의 무대였다.
— 쿠구궁....
우진이 그 위로 풀쩍 뛰어올랐다.
“너희는 힘을 숭배하고 약자를 괄시하지.”
강약약강 더럽게 잘 되는 놈들이다.
이건 역겹지만, 반대로 아주 쉽게 놈들을 통제할 수단이 된다.
“란돌프. 네가 나와 일대일로 싸워 승리하면 살려주겠다.”
그러나.
“그러지 못하면. 이 도시의 전원은 죽는다. 네 수하들을 스스로의 힘으로 지킬 수 있겠느냐?”
망설이는 란돌프에게 던져진 마지막 말.
“기회를 주는 것이다.”
굴욕적인 얘기.
하지만 정말 미칠 것 같은 사실은...
수하들이 모두 자신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빠드득 이가 갈리고.
표정이 개박살난 밥그릇처럼 변한 란돌프.
망설일수록 체면이 구겨진다.
그걸 보며 미소짓는 우진.
이건 그냥 들어도 굴욕적인 얘기.
자존심이 강한 자라면 죽음보다 두려운 상황.
가뜩이나 저 놈처럼 공포로 철권 통치를 해온 놈이라면...
‘이건 절대 못 도망친다.’
그때 유물 장갑의 힘이 발동되고.
손등의 둥근 보석에서 신비한 빛이 번쩍였다.
“감히... 누가... 누구에게...!”
분기가 폭발한 가짜왕의 공격.
“기회를 준단 말이냐......!”
— 후우웅...!
그의 스킬이 발현되었다.
의지의 거인.
순간적으로 신체 부위를 거대하게 만들 수 있다.
이번엔 오른팔이었다.
그냥 커지기만 하는 것이 아니고 공격력에 큰 보정이 붙는데다 순간적으로 리치가 대폭 상승하고 범위도 커지기에 위협적이다.
‘장갑이랑 궁합도 제법 잘 맞지.’
하지만.
자신도 궁합 잘 맞는 스킬 있다.
‘빙의된 거인과 궁합이 잘 맞겠군. 내놔라.’
놈의 공격을 쉽게 피한 우진.
“그래, 네가 주먹에 자신이 있다지?”
우진의 손이 검게 물들었다.
마치 심연에서도 가장 어두운 색을 발하듯이.
그리고 연달아 겹쳐지는 투기들.
중급 악마가 남긴 귀중한 테크닉이 발현되고.
‘악마의 오른팔.’
다음 순간 가볍게 내지른 정권.
공기의 파동이 상대를 덮쳤다.
— 퍼엉...!
저 멀리 날아간 가짜왕.
“커어어억...!”
버틴다고 버틴 것인데 대지에 자국이 남을 정도로 밀려난 몸.
“내 주먹맛은 어떻더냐?”
지독한 어둠을 뿜어내며 걸어가는 우진.
모든 것을 삼키는 어둠에 짓눌려 바닥에 꽉 붙여버린 란돌프의 몸.
도시의 다른 이들은 마치 대낮에 밤이 찾아온 것 같은 환각을 보고 있었다.
운명을 깨달은 란돌프가 쓰러진 채로 광소를 터트렸다.
“너... 어둠의 힘을 몸에 받아들였군. 광마교와는 또다른 방식이야.”
능력을 알아본 란돌프.
그래도 왕을 참칭할 정도의 고수니 이것저것 견식이 있는 모양이었다.
그가 조롱하듯 말했다.
“흐흐흐... 지금은 무력에 취해서 즐겁겠지만 그건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은 힘. 결국 너를 파멸시킬 것이니.... 네 최후는 결코 나에 비해 아름답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귀를 후비는 우진.
“뭔 개소리야? 나 인간 아닌데?”
“음...?”
저벅저벅 걸어가 놈의 멱살을 쥐고 끌어당긴다.
그리고 천천히 얼굴만을 변화시켰다.
마침내 눈에서 귀기 어린 안광이 흘러나왔을 때.
“난 이미 태생부터 어둠에 속한 존재다. 가짜왕아.”
검푸른 야수의 얼굴을 본 란돌프의 얼굴에 공포가 떠올랐다.
“이... 괴, 괴물...!”
빙긋 웃은 우진이 기둥처럼 솟아오른 대지 위에서 몸을 일으켰다.
“정말 괴물을 보고 싶다면... 소원대로.”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강대한 언데드의 육체.
그의 명에 따라 다시 한 번 하늘과 땅을 뒤덮은 어둠의 존재들.
모두를 도륙하기 시작했다.
“약속대로 집행한다.”
도시를 가득 채운 살육의 축제.
본 골렘들이 악인들의 머리를 똑 따서 하늘로 던지면 몇 마리의 그림자가 그것을 찢어발겼다.
— 끼에에에...!
— 낄낄낄낄...!
정신이 나갈 것 같은 귀신들의 웃음소리가 도시를 휩쓸고.
하늘엔 본 드래곤, 대지엔 베히모스.
눈에 보이는 모든 인간이 죽고 있었다.
단 한 명을 제외하고.
우진이 마도 사령술로 묶어두었던 란돌프에게 다가가 장갑을 벗겼다.
“땡큐다. 잘 쓰마.”
“그게... 그게 목적이었군.”
“겸사겸사.”
끝까지 폼을 잡으면서 웃는 란돌프.
“넌... 우리가 왜 무법지대의 이름을 이어갈 수 있었는지 아느냐?”
“음?”
“정말로 토벌 당할 때가 온다면 죽음조차 불사할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우진이 진심을 담아 얘기했다.
“미안한데 내가 어렵게 말하면 잘 못 알아듣는다. 뭔 소리냐?”
란돌프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눈을 번쩍였다.
“이 도시엔 폭탄이 매설되어 있다.”
“폭탄...!”
“마도공학의 정수로 그 폭발력은 가히 끔찍할 정도지.”
“끔찍...!”
“그런 것이 도시 전역에....”
“전역...!”
“그 숫자는 족히 수백으로....”
“수백...!”
“나를 죽이면 내 심장과 마력으로 연결된 기폭장치가.......”
“심장!”
“으음?”
란돌프가 그제야 이상한 것을 깨달았다.
대화하면서 얻은 정보들로 사령 거미줄 펼치고 있던 우진.
강대한 마력이 더해지면 모든 폭탄을 찾는 건 식은 죽 먹기다.
그렇게 정확히 81개의 폭탄과 연결된 우진.
‘강혼.’
마공학 이해로 모두 해제시켜버렸다.
“이제 됐다. 잘 가라. 네 계획은 잘 들었다. 끝까지 허세네. 수백 개는 무슨 백 개도 안 되는구만.”
“나... 나를 죽이면 정말로... 도시 전체가 날아갈......!”
손가락을 흔든 우진.
“응 아니야 날아가는 건 너 혼자야.”
특별히 1인 불기둥으로 깨끗하게 터트려버렸다.
펑! 치솟아서 공중에서 폭사하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피의 불꽃놀이로군.’
설혹 폭탄이 1천개가 터져도 전능의 가호를 펼치면 자신과 르쉬는 무사할 수 있다.
하지만 도시의 다른 시체들이 가루가 되는 것은 막아야했다.
‘르쉬도 먹여야 하고... 나도 먹을 게 좀 있거든.’
다시 전투를 이어가는 어둠의 군단.
가장 열심히 싸우는 건 검푸른 언데드와 날개 달린 흡혈귀였다.
그리고 마침내 모든 것이 끝났을 때.
높게 솟은 단 위에서 거대한 살육을 바라보는 우진.
그의 손톱 끝에서 핏방울이 똑 떨어져 대지를 적셨다.
그러나 한 방울로는 아무 변화도 없는 피의 바다.
후회는 없다.
이곳에서 무슨 일들이 있었고 무슨 일들이 벌어질 지 모두 알고 있기에.
그건 르쉬에게 들려주고 싶은 얘기도, 자신이 다시 떠올리고 싶은 얘기도 아니었다.
누가 무슨 권리로 이들을 심판하냐 묻는다면?
‘알 게 뭐야.’
자신의 수하는 이 참혹한 광경 속에서도 무표정하다.
궁금한 것도, 의아한 것도 없어보였다.
느껴지는 건 오로지 단단한 충성과 믿음.
우진도 별 말 없이 빙긋 웃어줄 뿐이었다.
그리고 시작된 식사.
저기 깔린 모든 시체가 자신들의 힘이다.
“먹자!”
날개를 펼친 흡혈귀와 언데드.
도시 1개 분의 성장을 할 시간이었다.
그건 그들의 ‘기억’을 포함한 거대한 만찬이었다.
< 언데드가 되어 돌아왔다 86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