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데드가 되어 돌아왔다 83 (여기까지 무료 분량입니다.)
— 휘오오오....
창공에서 우진이 바람을 맞고 있었다.
어둠이 사라진 대지.
바람마저 더욱 상쾌하게 느껴진다.
본 드래곤을 타고 날아가며 주변의 어둠 생물들을 바라보았다.
‘레이스, 스펙터, 원혼.... 그림자들까지.’
지금은 소환을 해제했지만 든든하게 지상을 담당하는 본 골렘들까지.
하늘과 땅을 덮은 공포의 존재들이 모두 자신의 부하다.
몸 속 어둠에서 소환된 존재들.
당연하지만 역소환하면 다시 체내의 어둠으로 복구된다.
‘내가 걸어다니는 어둠의 땅이다. 아니, 날아다니는 어둠의 땅이다!’
그야말로 1인 사령관.
다수의 병력을 운용할 수 있게 되었다.
여기에 모래 병사들까지 함께 한다면 네크로맨서 카이스를 카운터치는 정도가
아니라 절망 속에서 죽어가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끝없는 군대 vs 끝없는 군대>
‘진짜 무한에 가까운 게 누군지 알아보자고.’
본 드래곤의 등허리에 여유롭게 드러누운 우진.
어둠의 땅에서 정말 많은 것을 얻어간다.
파도는 이제 치지 않을 것이며, 어둠도 모두 사라졌다.
‘제이슨 대장과 약속은 지켰군.’
방벽의 용사들이 떠오른다.
이제 어둠땅 경비대는 할 일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미안하지만 내가 할 일을 좀 만들어줘야겠군.’
그건 바로 이 땅의 진정한 마무리.
청소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우진의 기억이 몇 시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
악마와의 사투 후.
거대한 어둠의 핵을 조사하기 전.
광마교 신전터를 수색하는 우진.
일단 금고부터 턴다.
‘큼직한 어둠 보석들이 제법 있네.’
이 땅의 ‘특산품’들 중 하나.
농장에 있던 녀석들은 자잘해서 별 의미가 없었는데.
아무래도 실한 놈들은 다 신전에 모아둔 모양이다.
언데드 폼으로 와그작 와그작 씹어 먹으면서 조사를 지속했다.
‘차가운 초콜릿 코팅이 된 아이스크림 같구만.’
다 먹자 어둠 보유량이 제법 증가했다.
대단한 양은 아니지만 맛있는 걸 먹었다는 사실만으로 만족스러웠다.
손을 탁탁 털고 남은 일을 이어가는데.
‘자 이제 아이템 수거다.’
여기저기 쓸만한 걸 자루에 모조리 빨아들였다.
커다란 자루가 3개나 가득 차버렸다.
‘아이템이야 어디든 쓸 데가 있을 거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스킬 정리.
‘광마교 별 거 없네.’
대부분의 공격 스킬은 자신의 하위 호환이었고 정신계 능력도 암시나 매혹,
지령과 환각통을 능가할 만한 것은 딱히 보이지 않았다.
단 하나.
총신관의 스킬을 빼면 말이다.
‘기억 약탈이라.’
사람들 홀려먹기에 아주 좋은 스킬.
자신보다 정신력이 강하면 사용할 수 없지만, 평범한 사람들이나 어중간한 강
자들을 조종하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기억을 볼 수 있다면 그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놀랍게도 이 능력은 ‘시체’에도 적용이 되었다.
죽음의 서 덕분에 위력이 2배가 되어서 그런 건지 총신관이 쓸 때도 그랬는지
는 모르겠지만....
‘덕분에 죽어버린 놈들의 모든 기억. 그걸 샅샅이 살필 수 있었다.’
간부와 총신관의 시체에서 흘러나온 기억.
흉측한 것들, 끔찍한 것들, 잔인한 것들....
그리고 혼란도 느껴졌다.
<나를 비난하지 마라...!>
<주교님... 저희를 이끌어주소서....>
<세상이 날 욕하면 그 세상을 부숴버리겠다.......>
우진이 어처구니가 없어 헛웃음을 터트렸다.
‘누가 보면 너희가 착한 놈들인줄 알겠군.’
쓸데 없는 헛소리들.
그래도 성과는 있었다.
— 끼이익....
놈들의 기억에서 읽어낸 건 당연하지만 자질구레한 자기합리화 뿐이 아니었다.
광마교의 귀중한 비밀들.
‘히야... 이놈들 아주 철두철미하구만.’
외채의 지하실로 내려선 우진.
샤다스도 그렇고 구린내 나는 짓을 하는 놈들은 비밀공간 하나는 아주 기가
막히게 만든다.
‘여긴 신전의 창고로군.’
보급품과 특산품.
그리고 장비 아이템이 가득가득하다.
다시 자루를 열어 모조리 빨아들인 우진.
그 바닥에 또 하나의 비밀문이 있었다.
그건 지하의 지하, 최심부의 방이었다.
아마도 총신관의 비밀방.
‘어 일단 현금 땡큐고.’
금고를 깔끔하게 갈라서 모든 돈을 챙겼다.
벽장에는 여러가지 잡다한 아티팩트가 있었다.
뭔가 실용성이 있다기 보단 총신관의 수집품 같았다.
‘강한 어둠의 마력을 품은 아이템들이군.’
효과는 중구난방.
쓸모 있는 것은 거의 없다.
‘일종의 수석 전시나... 아니면 난을 치는 거랑 비슷한 느낌인데.’
광마교 총신관은 과연 취미도 독특하다.
평범한 사람에겐 외양만으로 꺼려질 물건이지만 자신은 그런 것도 가리지 않
으니 몽땅 챙겼다.
‘아이템마다 어둠의 마력이 가득하군. 몽땅 갈아서 힘을 뽑아내면 쓸만하겠어.’
그런데 순간 무언가가 느껴졌다.
물건 중 유난히 눈에 띄는 것.
영롱한 광채의 검푸른 구슬.
[마옥(魔玉)]
이건 뭔가 다르다.
‘보주랑 느낌이 비슷해.’
전설 아이템의 강화에 쓰였던 보주.
그것처럼 아주 귀중한 느낌이 난다.
그런데 보주보다도 더 강력한 기운과 희귀도를 지닌 것 같았다.
‘짐작가는 바는 있는데.... 확실하진 않군.’
등급도 없고 설명도 없는 걸 보면 특수한 공정으로 제작된 아이템인 것 같다.
‘이런 건 또 물어볼 사람이 있지.’
애쉬라인이 정체를 밝혀줄 거다.
일단 소중하게 구슬을 챙겼다.
아무래도 굉장히 큰 쓸모가 있을 게 분명하니까.
— 드르륵...
이제 서랍과 책장을 뒤지기 시작한 우진.
‘서류는 솔직히 내 전문이 아니고. 책은 보기만 해도 졸려죽겠지만....’
꼭 알아내야 할 게 있었다.
그렇기에 열심히 조사하는데.
수상쩍은 기운이 느껴지는 책꽂이가 있었다.
그 안에서 마침내 찾아낸 계획서.
서류마다 마력으로 보호가 되어있지만 이건 또 자신의 전문이다.
일단 서류 한 장을 들어올린 우진.
“진실을 드러내라.”
겉을 가리고 있던 환영을 벗겨내자 나타난 건 ‘지도’였다.
월드 전역에 가득한 점들이 보인다.
이 모두가 광마교 지부의 위치다.
몇 장의 세부 지도에는 더욱 자세한 사항들이 적혀있었다.
만족스럽게 모든 서류를 챙긴 우진.
‘이걸로 일단 최소한의 준비는 끝났군.’
전생의 광마교 사태.
본대를 털었으니 대규모 발생은 저지했다.
하지만 아직 월드 전역에 잔당이 남았다.
그 수는 자신이 죽인 숫자에 비해 결코 적지 않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 마무리가 필요했다.
‘아직 광마교 사태는 완전히 끝난 게 아니다. 모조리 뿌리 뽑기 전까진 안심
할 수 없어.’
최악의 경우 이 수많은 지부 모든 곳에서 악마가 현신할 수 있다.
이 중 절반에서 1마리의 하위 악마만 나타나도 월드는 심각한 피해를 입을 것
이다.
그러니.
지도를 바라보는 우진.
‘내가 이 모든 곳을 다 돌아다닐 순 없어. 그렇기에 그들의 도움을 빌려야 한
다.’
— 휘오오오....
우진의 정신이 다시 현재로 돌아왔다.
창공을 가르며 되돌아가는 본 드래곤의 등 위.
방벽으로.
그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이었다.
‘음? 어둠의 기운이...?’
방벽 쪽에서 어둠이 느껴졌다.
정화된 대지와 어울리지 않는 난폭한 혼돈의 기운.
‘어둠의 잔재다.’
방벽과 핵은 거의 대지의 끝과 끝.
핵의 통제를 벗어난 잔재들이 남아있는 것 같았다.
즉, 방벽이 위험하다.
‘최후의 발악이군.’
우진이 본 드래곤의 등에 손을 얹고 정신을 집중했다.
“가자! 최대 속도로 가는 거다!”
어둠의 마력이 공급되자 점점 빨라지는 본 드래곤의 속도.
인간의 육체는 가속을 이기지 못할 정도로 빨라졌다.
그리고 잠시 후.
방벽에 도착했을 때 우진이 하늘로 날아올랐다.
*
— 끼에에에!
— 끄아아아!
르쉬가 고개를 들었다.
전쟁터에 돌아온 기분이었다.
흡혈귀가 되기도 전.
아주 먼 옛날이 떠오르는 순간.
— 낄낄낄낄!
다시 달려드는 그림자 하나를 쿠크리로 베어냈다.
그리고 몸을 날려 병사 하나를 구해낸 뒤 곧바로 첨탑에 올라 3놈을 찢어버렸다.
‘총대장님.’
첨탑의 꼭대기에서 저 먼 곳을 바라보는 르쉬.
그분께서 달려나간 이후 놀랍게도 점점 이 땅의 어둠이 줄어들었다.
멀리서도 보이는 광휘와 함께 확연히 감소하는 어둠들.
‘성공하셨구나...!’
그렇게 몇 시간이 지나고.
다시 밤이 지나며 어둠은 점점 옅어졌다.
거기까진 좋았다.
문제가 생긴 건 오늘 오후였다.
궁지에 몰린 괴물들이 발악을 시작했다.
어둠이 옅어지자 어차피 이제 상관 없다는 듯 방벽을 넘으려는 괴물들.
그 모습은 마치....
“지옥의 악귀들이 밀려온다.... 우리를 죽이러 오고 있어....”
병사 하나가 원혼의 능력에 당해 공포에 질렸을 때.
르쉬가 그 앞을 막아서고 무시무시한 형상의 악귀를 베어내렸다.
“버티셔야 합니다!”
절망, 공포, 두려움.
병사의 어깨를 흔들어 그것들을 털어준 르쉬가 다시 달려나갔다.
몇 마리의 그림자를 베어냈는지.
또 몇 마리의 원혼들을 찔렀는지 모르겠다.
분투하는 흡혈귀.
그러나.
‘너무 많다.’
그렇다고 포기할 순 없다.
총대장님의 마지막 말을 떠올리는 르쉬.
— 쿠구구궁...!
그때 하늘에 이변이 생겨났다.
다시 고개를 든 르쉬가 절망을 맛보았다.
저 먼 하늘에서 본 드래곤이 날아오고 있었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
‘결국 너까지 오는구나.’
쿠크리를 애써 움켜쥐는 르쉬.
총대장님의 명이 있기에.
<방벽을 지키는 거다 르쉬.>
저 거대한 괴물에게 한 방이라도 먹여야 한이 남지 않을 것 같다.
그런데 거기서 느껴지는 친숙한 기운.
‘어?’
문득 본 드래곤이 사라지고.
무언가가 펄럭이며 날아올랐다 싶었을 때.
그때였다.
“사라져라.”
너무도 안심되는 목소리와 함께.
공간의 모든 그림자들이 일시에 소멸했다.
*
“초... 총대장님...?”
수하의 얼굴을 보며 윙크한 우진.
그가 폭주하는 괴물들에게 명했다.
“사라져라.”
놀랍게도 놈들이 흩어지더니 모조리 자신의 몸으로 빨려들었다.
“그래, 네 주인이 바뀌었으니 이제 잘 모셔야지.”
어둠 보유량이 또 한번 상승한 가운데.
창공의 우진이 아래를 바라보았다.
“다행히 늦지 않았군요.”
순간 짧은 정적이 흐르고.
사태를 파악한 모두가 짜릿한 외침을 내질렀다.
“서... 성자님...!”
“와아아아!”
“성자님이 돌아오셨다...!”
환희에 젖어 무기를 치켜드는 병사들.
그림자와 싸우던 자세 그대로 굳어서, 자신의 눈을 의심하는 자들도 있었다.
“사라졌어... 모든 괴물이 사라졌어...!”
그리고 시작된 함성.
“성자님이 우리를 구원하셨다...!”
“우리가 승리했다...!”
“성자님의 가호 아래 우리가 승리했다...!”
죽음의 위기에서 살아났으니 그들의 전율은 말할 것도 없이 폭발적이었다.
“페인텔의 성자님의 우리를 수호하신다...!”
“아니다! 이제 어둠땅의 성자님이시다...!”
목이 터져라 승리의 고양감을 맛보는 병사들.
“여러분! 모두 고생하셨습니다! 방금이 마지막 공세였으니 이제 마음을 푹 놓
으십시오!”
우진이 손을 들고 그들을 안심시켰다.
그제야 여기저기서 탈진하듯 주저앉는 병사들이 나타났다.
— 펄럭....
우진이 착지하여 도열한 병사들과 마주했다.
대장 제이슨을 필두로 모두가 반가움과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성자님!”
그때 르쉬가 제일 먼저 튀어나와 푹! 안기려다가 물러났다.
“총대장님! 괜찮으십니까!”
“그래 르쉬. 방벽에서 고생이 많았겠구나. 여러분도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때 제이슨 대장이 허겁지겁 달려나왔다.
“서... 성자님...! 도대체 무슨 일이... 무슨 일이 일어난 겁니까...?”
“핵을 없애버렸습니다.”
모두의 얼굴에 경악이 떠올랐다.
“핵을.... 없앴다면.... 설마... 어둠이 끝난 겁니까...?”
“예. 방금은 마지막 최후의 여파... 여진 같은 것이라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
니다. 그마저도 여러분께서 훌륭히 막아내셨으니 이제 이 땅의 모든 혼란은
끝난 셈입니다.”
— 털썩....
제이슨 대장이 혼이 나간 듯 주저앉았다.
“저, 정말 어둠의 땅을 정화되었단 말인가.... 그런 일이... 그런 일이 가능
하다니...!”
역시 믿을 수 없다는 듯 외치는 병사들.
“어둠이... 어둠의 땅이... 어둠의 땅이 아니게 되었어......!”
“기적이 일어났다....”
“아니야 이건 기적이란 말로는 부족해... 대기적... 대기적이 일어난 거야...!”
번져나가는 희망의 목소리.
병사들이 하나 둘 무기를 치켜들었다.
“성자님!”
“어둠땅의 성자님!”
“아니다! 이제 빛의 성자님. 빛의 땅의 위대한 성자님이시다...!”
그때 펄쩍 뛰어오르는 누군가.
“이야아아! 총대장님이 해내셨다...!”
그 커다란 목소리는 역시 르쉬였다.
*
잠시 후.
식당에서 본격적인 설명에 들어간 우진.
모여 앉은 병사들과 제이슨이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이제 파도는 치지 않을 것이며 어둠의 땅은 평범한 대지가 될 것입니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의 경비대들.
“그, 그렇다면 그림자는....”
“세상에 다시 모습을 드러낼 일이 없을 것입니다. 제가 원하지 않는다면요.”
“성자님이 원하지 않는다면 말씀입니까...?”
진실을 밝힌 우진.
“예. 그 이유는.... 핵이 제 몸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잠시 충격의 침묵이 흐르고.
모두의 얼굴에 경악이 떠올랐다.
“설마?”
“설마...?”
“설마!”
결국 누군가의 입에서 나온 충격적인 얘기.
“설마 자신을 희생하여......!”
‘응?’
“성자님...!”
달려오는 병사들과 제이슨.
오해를 푸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날 밤.
— 텅...! 터텅...!
성대한 연회가 벌어진 식당.
“이것은... 저희 모두의 마음이 담긴 선물입니다. 부디 받아주십시오.”
서임을 받는 기사처럼 무릎 꿇은 제이슨.
그가 들어올린 것은 정말 뜻밖의 물건이었다.
< 언데드가 되어 돌아왔다 84 (여기부터 유료 시작입니다.) >
전투가 끝나고.
부상당한 병사들을 치유시켜준 우진.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성자님!”
일단 자신의 방에 돌아왔다.
그리고 엄청난 양의 식사를 해치웠다.
‘어우... 먹으니까 좀 살 것 같네.’
솔직히 진짜 힘들었다.
하루동안 1시간 쉬고 계속 싸운 셈이니까.
‘이걸 밥 한 끼에 회복하다니. 초강력 스태미너로다.’
그때 르쉬가 쭈뼛쭈뼛 그의 눈치를 살폈다.
아무리 봐도 좀 다른 존재가 된 자신의 총대장.
결국 르쉬가 살며시 다가와 속삭였다.
“저.... 초, 총대장님 맞으십니까...?”
“왜 그러느냐?”
잠시 망설이던 르쉬가 결국 자신의 속마음을 실토했다.
“그... 뭔가 귀족적인 느낌이 나는 게... 어딘가... 고귀한 존재가 되신 것 같습니다....”
“흐흐... 조금 크게 성장해버렸다.”
르쉬가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그... 그 상태에서 더 성장하셨다고...?’
도대체 어떤 존재가 되어버리신 걸까.
자초지종을 들은 르쉬.
거의 숨이 막힐 지경이 되었다.
“어... 어둠의 주인이자... 핵의 새로운 주인이 되셨다는 말씀이십니까...?”
“음. 그렇지. 이해가 빠르구나.”
흡혈귀가 칼각으로 차렷 자세가 되었다.
“영원... 영원히 충성하겠습니다!”
“음. 그래야지. 안 그러면... 내가 너무 섭섭할 테니.”
“아닙니다! 그럴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때 자리에서 일어난 우진.
“병사들에게 들었다. 가장 많은 그림자를 죽였다고.”
“아... 아닙니다. 그냥 주어진 일을 열심히 했을 뿐입니다.”
쭈뼛거리는 르쉬.
그 대답이 노역장의 자신을 떠올리게 했다.
거만한 브라카 대신, 우진은 진심을 담아 따뜻하게 수하의 어깨를 다독여 주었다.
“고생 많았다.”
붉어진 르쉬의 얼굴.
우진이 빙긋 웃었다.
‘내가 수하 하나는 참 잘 뒀다.’
잠깐의 휴식과 식사를 마친 후엔 식당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시작된 설명.
어둠은 왜 사라졌는가.
“그 이유는... 핵이 제 몸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믿을 수 없다는 제이슨과 병사들의 얼굴.
“설마...!”
“설마 성자님 스스로를 희생하여......!”
순간 번져나가는 거대한 슬픔.
“성자님...!”
오열하는 제이슨과 병사들.
자초지종을 아는 르쉬마저도 눈시울이 붉어졌다.
“총대장님...!”
‘아니 너는 왜...?’
결국 머리를 긁적이며 설명을 시작한 우진.
오해가 완전히 잘못된 방향도 아니고, 계승의 신비에 관해 밝히기도 어려워 정말 간단히 설명했다.
몇 번의 무용담 끝에 결국 이해한 경비대들.
그 요점은 이것이었다.
<어둠을 때리고 때리고 또 때려잡으니.... 자신을 주인으로 인정하고 복종하게 되었다.>
“오오...!”
이야기가 광마교 신전을 박살낸 데까지 가자 모두가 손에 땀을 쥐며 몰입했다.
“과연 성자님...!”
“정말 대단하십니다....”
“단신으로 그런 엄청난 일을.......!”
그리고 핵을 복속시킨 부분은 아주 깔끔하게 요점만 정리했다.
<내 힘이 되어라.>
“우와아아...!”
“핵이... 의지를 가지고 한 인간을 따르다니.......”
‘휴.’
됐다. 이 정도면 오해는 다 풀렸을 거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어둠의 땅의 현 상태에 대해서도 정확히 알게 되었을 것이다.
이제 방벽을 지킬 필요가 없다는 사실.
모두의 얼굴에 신비한 표정이 떠올랐다.
“방벽을... 지킬 필요가... 없다.......”
우진이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의 위대한 업적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잠시 환호성이 퍼지고 이내 잠잠해졌다.
“정말... 정말 끝난 거구나.......”
“그 긴 시간동안의 노력이... 헛되지 않게.......”
모두의 눈에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제이슨이 다가와 붉어진 눈으로 고개를 숙였다.
“모두의 마음을 담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희의 숙원이 마침내 달성 되었습니다.”
그의 뒤에는 모든 병사들이 도열하여 예를 갖추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성자님!”
끝이 없을 것 같던 방벽의 수호가 마침내 끝났다.
그건 경비대와 우진.
모두의 완벽한 승리였다.
*
연회가 준비되는 동안 우진이 바깥을 살폈다.
어둠에 잠기지 않은 방벽.
따스한 햇살 속에 본 방벽은.... 생각보다 상처가 많고 허름했다.
‘이런 곳에서 그런 대단한 방어선을 펼친 거였군.’
그렇기에 아름답다. 방벽의 흠집 하나하나가 모두 찬란한 흉터로 보인다.
인류를 지켜주던 숭고한 방어선.
‘그 위에 있던 용사들은 말할 것도 없지.’
하지만 이제 그것도 끝. 어둠이 사라졌다.
그건 한편으로는 이제 이곳에 있을 필요가 없다는 뜻이었다.
우진 뿐 아니라 몇몇의 병사들도 방벽을 바라보며 감회에 젖어있었다.
모든 것이 끝나서 안심도 되지만....
‘이제 이곳을 떠나겠구나.’
하지만 우진은 그들을 편히 쉬게 둘 생각이 없었다.
정확하게는 그들처럼 훌륭한 인재들에게 꼭 부탁해야 할 일이 있었다.
다시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우진.
무언가를 챙겨 제이슨의 방으로 향한다.
그건 바로 어둠땅 특산품들.
쓸 데가 있는 광석을 빼고 식물과 동물 소재를 나눠줄 생각이었다.
실로 어마어마한 양의 아이템.
그걸 본 제이슨의 입이 떡 벌어졌다.
빙긋 웃는 우진.
“전리품 같은 것입니다. 이 땅에서 오래도록 고생하셨는데, 어울리는 전리품이 있어야겠지요.”
“저, 저도 이 물건들의 가치는 알고 있습니다. 어마어마한 거액이 되겠지요. 그러니 부디....”
“제가 따로 부탁드릴 일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뇌물이라 생각해주십시오.”
그러나 끝내 망설이는 제이슨.
“저번에 주신 돈만으로도 이미 너무 많은 걸 받았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어두운 방벽에서 고독하게 그림자를 막아내던 시간.
그가 스스로 말한 것만 15년의 세월. 어쩌면 그 이상일 수도 있다.
우진 뿐이 아니다.
세상은 이들에게 너무 많은 걸 받았다.
그렇기에 그 작은 일부를 돌려줄 뿐이다.
우진이 웃으며 악수를 청했다.
“부하들을 위해서.”
한참 후 끝내 얼굴이 붉어진 제이슨이 일어나 그 손을 잡았다.
“부하들을 위해서. 감사합니다.”
빙그레 웃은 우진이 결국 용건을 꺼냈다.
“방금 말씀드린 대로 어려운 부탁이 있습니다.”
“무엇이든지요. 명령만 내려주십시오.”
“그게... 정말 어려운 부탁입니다.”
순간 제이슨의 표정이 바뀌었다.
그건 주저함이나 우려가 아니었다.
결의였다.
“무엇이든 좋습니다. 부디 말씀만 해주십시오.”
우선 식당으로 간 두 사람.
모든 병사들과 함께 얘기를 하는 편이 좋을 것 같았기에.
주방에서 연회를 준비하던 인원까지도 모두 집합했다.
우진이 계획서를 건네주고.
제이슨이 살피는 가운데 설명이 시작되었다.
“이것은 월드 전역에 퍼진 광마교의 지부입니다. 놈들은 이곳에서 1지부마다 최소 1개체의 악마를 불러낼 계획입니다.”
“그... 그런 사악한...!”
당장 분노를 토하는 병사들과 제이슨.
그 모습을 보며 우진은 오히려 안심이 되었다.
“하여 여러분께 이들의 토벌을 부탁드리고자 합니다.”
오면서 떠올린 대략적인 경로와 계획을 설명했다.
제이슨이 믿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병사들을 북돋았다.
“다들 이 컴컴한 방벽보다는 세상을 모험하는 것이 더 좋지 않겠는가!”
“예! 제이슨 대장님과 함께라면 어디든 가겠습니다!”
“성자님의 명이라면 지옥의 마귀들도 죽이러 갈 것입니다!”
미소 짓는 우진.
월드는 넓다.
바깥고리만 해도 어마어마한 규모다.
조사는 길고 힘든 일이 될 것이다.
드릴혼 너머까지 각 마을을 구석구석 뒤져야 할 테니까.
하지만.
저들이라면 믿고 맡길 수 있다.
많은 말보다 짧은 한 마디로 마음을 전했다.
“믿겠습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이었다.
무언가를 준비하는 듯 분주하던 병사들.
갑자기 도열하여 우진 앞에 섰다.
“이것은... 저희 모두의 마음이 담긴 선물입니다. 부디 받아주십시오...!”
서임을 받는 기사처럼 무릎 꿇은 제이슨.
그가 들어올린 것은 정말 뜻밖의 물건이었다.
“위대한 성자님께 경의를 표합니다.”
— 척... 처처척....
모두가 한쪽 무릎을 꿇고 기사처럼 예를 갖춘다.
그 엄숙한 광경 속 물건을 받아든 우진.
그건 둥근 달에 박힌 검의 표식이었다.
“성자님은 이제 저희에게 동료이자, 가족입니다. 저희에게 그 영광스러운 이름을 허락해주시겠습니까?”
경비대의 표식을 움켜쥔 우진.
더없는 감동과 함께 대답했다.
“당연하지요.”
“와아아아...! 성자님이 우리의 동료가 되어주셨다...!”
그렇게 명예 어둠땅 경비대 일원이 된 우진.
— 띠링!
[최고의 인연]
[어둠땅 경비대의 호감도가 최대치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주방장의 선언.
“연회를 시작한다! 오늘은 정말 끝까지 달리는 거다!”
“이야아아...!”
르쉬의 포효를 시작으로 모두가 흠뻑 마시고 진탕 취했다.
그 많던 고기가 싹싹 비워졌을 때.
“성자님을 위하여!”
“어둠땅 경비대를 위하여!”
또 하나의 소중한 인연을 얻었다.
*
다음날 아침.
오크통 하나를 번쩍 들고 마시던 르쉬가 숙취도 없이 벌떡 일어나서 짐을 챙겼다.
<내일 아침 일찍 떠나자꾸나.>
우진의 말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
그리고 시작된 작별의 걸음.
천천히 걸어가는 연병장.
초병들이 놀란다.
“헛. 성자님!”
“벌써 떠나시는 겁니까!”
분주하게 짐과 자재를 정리하던 병사들도 인사한다.
“성자님!”
“다시 한 번 모든 일에 감사드립니다!”
“언젠가 또 뵐 수 있기를 진심으로 고대하고 있겠습니다!”
그리고 마주한 제이슨.
새벽부터 우진을 기다리던 그가 진심을 다해 말했다.
“마음 같아선 며칠이라도 더 모시고 싶지만... 제가 무슨 말씀을 드려도 떠나시는 걸 막을 순 없겠지요.”
우진이 씩 웃었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어려운 부탁을 드리고 멋대로 떠나게 된 모양새라 민망하군요.”
제이슨이 고개를 저으며 따스하고 단단한 악수를 청했다.
“아닙니다. 성자님이 행하시는 바가 곧 세상을 돕는 일이 될 것입니다. 어디서든 세상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우진이 빙긋 웃었다.
“세상에는 2종류가 있겠지요.”
“헛... 설마...? 어디로 가십니까?”
우진이 명확한 대답 대신 미소를 지었다.
“바깥고리를 잘 부탁드립니다. 이곳엔 강하고 선량한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바깥고리.
의미심장한 한 단어에 무언가를 알아차린 제이슨.
그가 멀어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 모습이 어느 때보다 위대하게 보였다.
“과연.... 과연.... 중심부를 노리고 계신 분이셨구나....”
기적의 성자.
그는 정녕 다음 세계를 꿈꾸는 바깥고리 최강자였던 것이다.
‘그런 분께서 자신의 목숨을 걸고 이 대지를 정화시켜주셨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월드.
각자 자신의 인생을 어디에 바치느냐도 다르다.
자신들이 방벽 수호에 뜻을 세웠다면.
저 분은 저 분 나름의 뜻이 있는 것.
‘부디... 부디 뜻하는 바를 이루시길.’
그리고 자신 또한.
그분께서 주신 임무를 완벽하게 완수할 것이다.
돌아선 제이슨이 힘차게 외쳤다.
“자! 어둠땅 경비대! 새로운 임무 시작이다!”
정화된 어둠의 땅에 새 아침이 밝았다.
*
[체력 +30]
[근력 +30]
[민첩 +30]
[레벨 100이상 특별 보상이 주어집니다.]
[어둠 내성 +10%]
[어둠 공격력 +10%]
‘이거 참. 생각지도 못한 선물을 받았군.’
어젯밤의 알림을 다시 확인하는 우진.
어둠땅에서 오랜 시간 활약한 세력이라 그런지 어둠과 관련된 특별 보상이 있었다.
‘고맙습니다 모두들.’
경비대의 표식을 소중하게 인벤토리에 보관한 우진.
그때 함께 걷던 르쉬의 질문이 찾아왔다.
“저... 총대장님?”
“음?”
“이제 저희는 어디로 가는 겁니까?”
우진이 빙긋 웃었다.
“일단은... 날아볼까?”
수하를 데리고 펄쩍 뛰어오른 우진.
— 후웅...!
다음 순간 본 드래곤이 그들을 태우고 날고 있었다.
“우와아아...!”
감탄하는 르쉬.
얘기는 들었지만 정말로 총대장님의 명령에 따라 움직인다니!
우진이 흐뭇하게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르쉬를 데리고 자리를 이동했다.
— 후우우웅...!
이제 거대한 뼈 용의 머리에 앉아 세상을 내려다보는 두 존재.
그 시원한 바람을 맞다가 우진이 물었다.
“기분이 어떠하냐?”
“세상을 다 가진 기분입니다...!”
손을 쫙 벌리고 대답하는 르쉬.
“흐흐... 그런데 세상이라 하면 2 종류가 있지.”
“헛...? 설마?”
짐작하는 르쉬에게 미소 짓는 우진.
“어디로 가는 것이냐 물었지?”
“예!”
우진이 아래를 가리키며 물었다.
“본 드래곤보다 대단한 탑승물이 있다면 믿을 수 있을까?”
“보... 본 드래곤보다요?”
전설과도 같은 이야기.
자신을 목적지로 데려다 줄 녀석.
자신의 ‘모선’이 되어줄 막강한 존재.
“그건 바로 이 세상을 떠도는 거대한 유령선.”
르쉬의 입이 벌어지고.
“유령선...!”
우진이 손가락을 들어올렸다.
“낡고 허름한 배를 상상하면 곤란해. 그건 최고의 마법으로 움직이는 최강의 비공선이니까.”
그가 선언했다.
“우린 그걸 타고 중심부로 넘어갈 거다.”
< 언데드가 되어 돌아왔다 84 (여기부터 유료 시작입니다.)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