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데드가 되어 돌아왔다 82
하늘에서 정신을 집중한 우진.
— 쿠구궁....
대지가 갈라지고 암흑의 땅에 둥근 균열이 생겼다.
상상하기 힘든 거대한 이적이었다.
‘마력이 강해지긴 했어.’
그리고 마침내 어둠의 핵.
그것이 대지에 완전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 둘레만으로도 수km에 달하는 크기.
하늘에서 보지 않으면 그냥 암흑의 벽과 마주친 느낌일 것이다.
— 후웅....
착지한 우진이 핵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스스로 어둠을 생성하는 녀석이라니 참 신기해.’
이 땅에 어둠을 뿜어내던 거대한 존재.
원래 계획은 이걸 먹어치워서 자신 몸 속에 어둠 생성기를 만드는 거였다.
실제로 보니 크기만으로 압도적이라 가능할까 싶었지만....
‘시도는 해봐야지.’
그런데 손을 올린 순간 느껴졌다.
이 녀석. 살아있다.
‘아니, 살아있다기 보다.... 의지가 있다.’
뭐라 설명할 수 없는 느낌.
자신이 놈을 관찰하듯, 놈도 자신을 관찰하고 있었다.
— 콰드드득....
팔을 변화시킨 뒤 바라본 우진.
이 죽어있지만 강대한 오른팔처럼, 이 녀석도 죽어있지만 어마어마한 의지가
느껴진다.
동족이다.
무생물에게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게 신기하긴 하지만.
동류라는 것이 더없이 명확하게 느껴졌다.
‘그럼 어디 확인을 해볼까.’
융합을 시도한 순간.
깜짝 놀란 우진.
세계가 자신 속으로 빨려드는 기분이었다.
‘와... 이거 버틸 수 있을라나.’
아니.
버텨야 한다.
가능하다는 걸 알아차린 이상. 이걸 포기하고 그냥 가는 건 자기와의 싸움에
서 도망치는 거다.
‘그래... 내가 남한테 진 적은 있어도 나한테 진 적은 없지.’
어둠의 핵.
이건 꿀꺽 먹어치울 정도로 허접한 물건이 아니다.
하지만 자신 또한 그렇다.
‘해보자.’
— 쿠구궁....
만약을 대비해 언데드 폼으로 완전히 변화한 뒤 다시 핵에 손을 올렸다.
마치 핵과 힘싸움을 하듯 밀어내는 자세.
그리고 요구가 관철된 순간.
“내 힘이 되어라!”
세계가 변화했다.
*
— 휘오오오.....
눈을 뜬 우진.
거대한 대지가 펼쳐졌다.
‘여긴.... 어둠의 땅이다.’
방금까지 있던 곳.
하지만 자신이 알던 그 장소는 아니다.
하늘은 지독하게 어둡고 태양이 사라진 듯 온 사방이 깜깜했다.
결국 우진이 알아차렸다.
‘일종의 심상 세계로군.’
자신의 정신과 핵의 의지가 이어져 새로이 만들어낸 가상의 공간.
‘실제 어둠의 땅보다 훨씬 더 위험하군.’
대기에 깔린 어둠도 더욱 짙다.
뒤를 돌아보니 방벽도 없다.
‘이런 느낌이었어.’
지켜주는 것이 없이 최전선의 방어선이 된다는 것.
순간 어둠땅 경비대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들 모두가 해냈다면, 나도 할 수 있다.’
홀로 이 땅과 맞서는 것.
핵이 원하는 것은 분명했다.
자신이 요구한 것처럼 어둠의 핵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증명해라.>
주먹을 몇 번 움켜쥔 우진.
‘힘은 극도로 제한되어 있군.’
빛의 힘도, 다른 모든 힘도 사용할 수 없다.
오직 단 하나.
언데드의 육신만이 자신의 부름에 응답한다.
— 콰드드득....
“뭘 확인하고 싶은지 알 것도 같고.”
거침없이 달려나가는 우진.
세상에서 가장 빠른 야수처럼 질주를 하기 시작하는데.
— 스스스스....
— 샤사사사....
몰려드는 괴물들.
새까맣게 하늘을 덮은 그림자가 일시에 쇄도한다.
— 끼아아아!
— 낄낄낄낄!
“방해하지 마라!”
단숨에 그 모두를 찢어버리며 다시 달려나간다.
그때 대지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아주 막 나가는군.’
고개를 들자 보이는 건 지평선.
그걸 가득 채운 본 골렘이었다.
모두가 달려오기 시작하는데.
“좋다! 와라!”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이 오히려 더 빠른 속도로 달려가는 우진.
— 콰콰콰쾅...!
마치 거대한 탄환처럼 모두를 관통하며 부숴버린다.
그렇게 드넓은 어둠의 땅을 자신의 영토처럼 달리고 또 달렸다.
— 끼에에엑...!
— 크아아아...!
그림자를 가르고 본 골렘을 박살내며.
— 흐흐흐흐...!
— 꺌꺌꺌꺌...!
‘망자의 공포.’
‘얼어붙는 한기.’
‘액토플라즘.’
정신에 스며드는 공포와 육체에 파고드는 한기.
그리고 진득하게 달라붙는 스펙터까지 모두 떨쳐내며.
전진만이 유일한 생의 목표인 것처럼 달려나갔다.
그리고 어느 순간 찾아온 극심한 피로감.
‘무겁다.’
몸이 무겁다.
그리고 그림자와 괴물들은 끝이 없다.
‘이게 보통 사람들이 느끼는 어둠의 땅이로군.’
상관 없다.
더 열심히 움직이면 된다.
땅을 박차는 사지.
‘대략 1/3 정도 남은 느낌인가.’
끝없는 대지도 점점 목표를 드러낸다.
서서히 가까워지는 무언가.
그리고 다시 괴물들이 덮쳐오는데.
무아지경으로 그것들을 죽이다보니 어느 순간 깨달음이 찾아왔다.
‘난 무엇과 싸우고 있는 거지?’
여긴 핵이 만든 공간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정신이 만든 공간이기도 하다.
나는 왜 계속해서 괴물들을 불러내는가.
‘나 또한 어둠에 속한 종족이다.’
그걸 잊고 살았다.
‘난 지금 적진에 파고드는 것이 아니다. 집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어인의 숨결때도 느꼈다.
물은 죽음을 부르는 공간이 아니라 편안한 휴식처였다.
어둠도 마찬가지다.
왜 자신은 이곳과 싸우려들었나.
‘난 지금 내 고향 속에 있는 것이다.’
그 순간 어둠이 가볍게 느껴졌다.
그리고 자신을 돕기 시작했다.
마치 갈라지듯 길을 여는 어둠.
그 끝에 최후의 관문이 나타났다.
본 드래곤.
‘그래. 넌 쉽게 보내줄 순 없다 이거군.’
시험은 시험.
확인은 이루어져야 한다.
그건 종족이나 어둠에 대한 적합성 따위를 보려는 게 아니다.
바로 투쟁하는 의지.
핵이 이 땅을 포기하고 새로운 주인으로 받아들일 만한 가치가 있는 존재인가.
하지만.
“시험은 지겹게 받아왔다. 네가 기갑룡보다 강할까?”
여기 무형활은 없다.
하지만 우진은 있다.
육탄전으로 덤벼드는 대형 언데드.
드래곤의 거대한 머리를 감싸쥐고 바닥에 슬램한다.
와르르 무너지는 본 드래곤.
하지만.
놈을 쓰러트린 순간 깨달았다.
‘이게 끝이 아니군.’
미소 짓는 우진.
그의 앞에서 거대한 무언가가 몸을 일으켰다.
그건 핵 자체였다.
“멋있구나. 핵 골렘 뭐 그런 건가?”
초거대 골렘처럼 모습을 바꿔 공격해오는 핵.
쿨하게 주먹부터 내리꽂고 본다.
— 쿵....
그걸 가볍게 피한 우진.
“네가 뭘 원하는 건진 알겠다만.”
걸어가며 핵에게 대화를 건다.
어둠은 악마의 기질을 닮았다.
그 핵은 어떨까?
우진의 눈엔 저 모습이 이렇게 보였다.
<날 얻고 싶다면 날 복속시켜라.>
‘사실 이 모든 질주가 같은 과정의 일환이었지.’
그리하여 자신은 여기에 도착했다.
저 괴물처럼 보이는 살아있는 핵 앞에 말이다.
“하지만 말이다. 이건 네가 아니라 내가 널 선택하는 과정이다.”
계속 공격하는 핵 골렘.
기를 모아 가슴에서 어둠의 통로와 비슷한 걸 뿜어낸다.
그걸 가볍게 피하며 우진이 달려나갔다.
“걱정 마라. 어둠의 땅보다 내 몸에 정착하는 게 더 즐거울 테니.”
대답이 없는 골렘 앞에 멈춰선 우진.
“난 네가 박혀 있던 지하가 아니라 저 꼭대기까지 갈 거거든.”
무한히 먼 하늘을 가리키고.
이내 손톱을 뽑아내고 투기를 발산했다.
그 무엇의 힘도 아닌, 자기 자신의 투기를.
“덤벼라...!”
세계가 파괴될 것 같은 공격을 피하고.
상대의 머리에 주먹이 닿는 순간.
“반갑다. 내 새로운 힘아.”
모든 것이 끝났다.
*
어둠의 땅.
— 아우우우...!
마력 늑대들이 안절부절하며 자신들의 주인을 둘러쌌다.
모든 땅의 어둠이 한 점으로 밀려들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우진.
— 파지지직....
경련을 일으키며 발작하는 근육들.
피부의 여기저기가 불쑥불쑥 튀어올랐다.
그러다 결국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터져버린 피부.
그 틈으로 새까만 어둠이 새어나온다.
하지만 한 줌도 넘겨주지 않겠다는 듯 다시 빨아들인 후 아물어버리는 피부.
그리고 어느 순간이었다.
소용돌이가 가라앉듯 모든 어둠이 우진의 체내에 안착했다.
[어둠의 시련을 이겨내 그 힘을 이어받습니다.]
[’어둠의 핵’을 계승했습니다.]
눈을 뜬 우진.
그의 몸에서 막대한 양의 연기가 흘러나왔다.
천천히 일어난 그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존재였다.
“고맙다.”
그가 웃으며 주위의 늑대들을 하나씩 쓰다듬어주었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눈을 감았을 때와 완전히 다른 장소가 되었네.”
어둠의 땅이 밝아졌다.
마치 평범한 평야처럼 보인다.
하늘도 맑고 깨끗했다.
전부 자신의 속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 핵마저도 말이지.’
핵은 사라졌다.
원래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하지만 우진은 그것이 어디로 갔는지 알고 있다.
자신의 가슴을 내려다보는 우진.
‘이 안 어딘가에 있겠지 뭐.’
그 결과.
‘탈인간을 넘어서서 초인간이 되어버렸다.’
스스로 어둠을 생성하는 존재.
어둠의 근원 그 자체가 되어버렸다.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하니 확연한 변화가 느껴진다.
‘진마(眞魔)들이랑 비슷한 격이 되어버렸네.’
고위 악마 중에서도 혈통 좋은 놈들.
그들 사이에서도 귀족 중 귀족으로 여겨지는 존재.
감히 왕의 이름을 노리는 존재들.
놈들과 대등한 능력을 얻게 된 것이다.
‘나 이러다 흡혈귀 왕보다 악마 왕이 먼저 되는 거 아니냐.’
흐흐 웃은 우진이 주먹을 움켜쥐었다.
순서는 상관 없다.
방법도 상관 없다.
월드의 정점에 갈 수 있다면, 그리고 ‘놈들’을 모조리 찢어 죽일 수 있다면.
‘그럼 정확히 뭐가 바뀐 건지 알아볼까.’
자신의 힘을 확인하는 우진.
이건 좀 놀라운 변화였다.
자신의 일부가 된 핵.
이 녀석이 ‘공물’을 받던 방식을 자신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쉽게 말하면... 인간을 녹여서 먹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얼굴을 찌푸린 우진.
‘이건 너무 끔찍하니 정말 악인에게만 사용하자.’
어차피 어둠은 계속 자신의 몸 안에서 생성될 거다.
형벌 외의 의미는 없으니 ‘융해’는 힘을 키우는 목적보다는 무시무시한 징벌
기술로 쓰기로 했다.
‘그보다... ‘창조’까지 가능하다니. 정말 예상 밖의 능력이군.’
더 중요한 것.
어둠의 땅을 자신의 안에 품었으니.
그 어둠 속에서 태어나던 괴물들도 자신의 것이 되었다.
“구경 좀 해보자꾸나. 나와라! 어둠의 생물들아.”
순간 하늘을 덮은 그림자들.
그리고 유령과 거대한 본 골렘들.
그 가운데서 크기만으로도 폭력적인 흉흉함을 선보이는 것은....
“내 첫 번째 드래곤이 네가 되었구나.”
본 드래곤.
묵묵하고 충직한 어둠의 종복.
언데드인 자신의 처지와 비슷하게 느껴져 더욱 마음에 들었다.
“내가 이제 어둠의 군단장이 되어버렸구나.”
주위를 둘러본 우진이 감개무량한 심정이 되었다.
이 모두가 ‘자신의 어둠’ 속에서 탄생해 불려나온 것이다.
핵을 먹는다는 초월적인 행위를 해서 그런 건지.
아니면 계승이 그만큼 대단한 건지 모르겠지만.
중요한 건 자신이 또 한 번 강해졌다는 거다.
언데드? 흡혈귀? 악마? 어둠?
그런 건 상관 없다.
자신은 우진이다.
“좋다. 그럼 날아보자!”
하늘로 점멸한 순간.
본 드래곤이 그를 등에 태우고 날고 있었다.
“승전보를 알릴 시간이다!”
어둠의 땅.
쏜살같이 창공을 가로지르는 본 드래곤.
그 위에 당당히 선 우진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