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데드가 되어 돌아왔다 80
악마에게 던져진 대담한 선공.
— 쿠구궁...!
거대하게 꽂히는 빛의 힘.
그 충돌 순간 우진은 깨달았다.
없다.
빠르게 계산된 사각으로 점멸한 순간.
상대의 반격기가 허망하게 허공을 갈랐다.
— 후웅...!
날카로운 원형의 암흑 투기를 피하자.
가까스로 몸을 빼낸 악마가 사라진 어깨를 감싸쥐고 씩 웃고 있었다.
“휘유! 아슬아슬했네. 팔 하나로 끝난 게 다행이야. 그건 도대체 뭐냐?”
“내 가장 강한 공격이었던 것.”
빙긋 웃는 악마.
“어쩌냐 피해버렸는데.”
우진이 상대의 사라진 팔을 보며 무감정하게 말했다.
“숨이 가빠보이는군.”
“아 이거?”
— 후우우웁...!
순간 회복되는 놈의 팔.
“어둠을 먹는 거야. 맛있어. 한 점 해.”
얼핏 융합과도 비견되는 강력한 회복력.
하지만.
‘틀려. 일종의 트릭이다. 본신의 힘을 이용해서 회복한 후, 그 일부를 외부의
어둠으로 충원한 거다.’
자연치유력을 억지로 땡겨 쓴 후 배불리 먹어서 체력을 채운 셈이다.
저건 반드시 몸에 무리가 간다.
‘저런 조건 없는 회복이 가능하다면 어둠이 깔린 마계에서 악마들이 죽을 일
도 없겠지.’
하지만 미소 짓는 우진.
“대단하네.”
허세가 먹히지 않았음을 깨달은 악마가 시선을 돌렸다.
주변에 시체가 가득했다.
“벌써 한 탕 한 거냐? 이거 섭섭한데.”
“아냐. 나도 이제 시작한 참이라. 몸 좀 풀고 기다렸지.”
담담한 대답.
악마는 오히려 만족스러웠다.
겁먹지도 않고 이성적으로 설득할 생각도 없어보인다.
당연히 한판 거하게 싸울 거라는 듯한 반응.
“이거... 행운이 가득한 날이군. 이런 맛좋은 먹잇감이라니.”
그때 우진이 투기만으로 남아있는 신전의 벽을 전부 날려버렸다.
“이거 신기하네. 나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씩 웃는 그 얼굴에선 진짜 즐거움이 엿보였다.
무미건조한 대화 속에서 서로 느껴지는 동질감.
내앞의 저놈도 흥분하고 있다.
둘 다 진심으로 미소를 지었다.
“누가 죽든 한쪽에겐 마지막 싸움이 되겠군.”
“오! 이런 거 처음이야? 난 여러 번 겪어왔지. 그리고 다 이겼어. 내가 살아
있는 걸 보면 알 수 있지?”
“애석하게도 난 그러지 못했고. 한 번 죽었지. 오늘은 다를 거다.”
대화 속에 전초전이 이뤄지고 있었다.
악마가 회복된 팔을 확인하며 상대를 살폈다.
‘지금 어둠이 넘쳐서 흘러나온 건가? 인간이? 아니 그건 상관 없다.
총량은 어느 정도지? 내가 근소하게 우위야.
그런데 다른 능력은?
아까 그 빛은 정확히 뭐였지?
저 놈은 얼마나 강한 거지?’
우진도 마찬가지였다.
‘크기에 신경 쓰지 마라. 응축되어 있다.
보여준 속도에 속지 마라. 더 빠르다.
어둠의 땅에서 더 강해지겠지. 얼마나?
날 관찰하고 있다. 숨겨야 할 것은?
저 놈은 어디까지 드러낸 걸까.
저 놈은 얼마나 강한 거지?’
순간 두 존재가 주먹을 움켜쥐고.
<그건 상관 없다. 내가 더 강하다.>
판단이 동시에 내려지고, 누가 옳은 지를 가리는 첫 번째 격돌이 시작됐다.
— 콰아아앙...!
주먹이 부딪힌 후 서로를 확인한 우진과 악마.
“나쁘지 않아. 일단 싸움은 성립하겠군.”
“그런가.”
다시 뒤로 물러나 생각을 가다듬는다.
‘중급 악마는 이성이 있기에 더 강하고, 더 비합리적인 판단을 하지. 그걸 노
려야 한다.’
신중한 우진과 반대로 조급한 악마.
‘저 인간 생각이 너무 많아. 귀찮은데. 그냥 마구잡이로 힘을 썼다간 수에서
밀린다. 성가시네.’
일단 연기를 하는 악마.
가장 신경 쓰이는 그 ‘빛의 힘’의 정체부터 알아내기로 했다.
두 팔을 벌리고 과장되게 숨을 들이쉰다.
“이곳은 마계의 느낌이 나는 좋은 장소야.”
“그런가.”
“그런데 너에게선 마계의 냄새와 더러운 빛의 냄새가 동시에 나는데. 어찌 된
일일까?”
피식 웃은 우진.
“내가 좀 섞어섞어 섞어탕이야.”
“섞어... 무슨 소리냐 그게?”
“나도 몰라. 널 죽여죽여 죽여주마.”
“죽여? 나를...? 크하하하!”
자세를 잡은 우진.
“진짜야. 난 더 강해져야 하거든. 네 어둠도 내놔라.”
“어둠? 나와 어둠의 힘으로 겨루겠다는 거냐...?”
“그래, 내 방식으로.”
악마가 어처구니 없는 표정을 지을 때....
— 스스스....
흑참도가 환검처럼 흔들리는가 싶더니...
우진이 유령처럼 여럿으로 불어났다.
“환영? 이제 뭐 어쩔 셈이지? 가짜들과 합동 공격이라도 할 셈인가?”
태연한 악마에게 던져지는 무감정한 선언.
“이 중 하나만 정답이다. 잘 피해봐.”
순간 모든 흑참도가 공간을 가르며 통로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서늘한 예기가 교차하며 노리는 것은 단 하나의 목표.
피할 수 없는 각도로 교묘하게 짜여진 필중진.
“야 이건 너무......!”
그때 흑참도로 발현된 어둠의 통로가 상대의 가슴을 뚫고 지나갔다.
“컥....”
그러나 다시 구멍에 어둠이 스물스물 차오르며 회복하는데.
‘순간적으로 같은 크기의 어둠을 쏴서 상쇄시켰다.’
예상보다 적은 데미지. 하지만.
‘괜찮다. 타격은 있다.’
저렇게 상처를 수복시키는 것 자체에 어둠을 소모한 것이나 다름 없다.
그리고.
저걸 본 순간 자신도 재밌는 방식을 깨닫게 되었다.
‘상쇄라. 좋은 방식이군.’
그때 완전히 아문 가슴을 툭툭 턴 악마.
“이건 어둠의 통로...? 감히 인간이 어찌 그 능력을.......”
순간 기를 모으더니 손바닥을 열어 자신도 어둠의 통로를 뿜어낼 준비를 하는
악마.
하위급과는 다르게 통로를 자신의 몸에 발생시키고 있었다.
“그게 중급의 방식인가. 손바닥. 나도 그거 좋아하지.”
우진도 놈의 방식을 사용해서 본체의 어둠을 끌어올렸다.
“흐아아압...!”
순간 발사된 두 줄의 섬광.
그리고 격돌하여 사라진 강대한 기운들.
“사... 상쇄시켰다고...?”
우진이 뻐근한 손목을 털었다.
“내가 잡기술은 좀 빨리 배우는 편이라.”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다.
경악한 악마의 목덜미에 느껴지는 서늘한 기운.
점멸로 접근한 우진의 흑참도가 날아들었다.
“나는 무기도 잘 쓰거든. 방심 금물이다.”
그 예리한 날에 어린 것은 놀랍게도 빛의 기운.
응축된 힘이 빛의 칼날이 되어 터져나올 때.
“백광질풍참.”
마지막 순간 손을 뻗어 어둠의 배리어로 간신히 막아낸 악마.
몇 m를 밀려나며 겨우 멈춰선다.
그 얼굴에 처음으로 경악이 어렸다.
“저... 정말로 빛의 힘이라고...? 빛과 어둠을... 동시에 다루는 건... 불가
능한...!”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 그게 내 힘이다.”
그러자 드디어 송곳니를 드러내는 악마.
“흐흐흐흐흐...! 흐하하하하...!”
대지에 손을 얹고 힘을 집중하자 등 뒤에 날개가 솟아난다.
그리고 땅이 폭발할 듯한 투기가 터져나왔다.
— 크아아아아...!
어둠의 땅 전체에 퍼질듯한 포효.
‘이게 진짜 힘인가. 과연 강하군.’
하지만 목청이라면 자신도 뒤지지 않는다.
우진도 지지않고 맞받아치고.
— 크아아아아아아!
어처구니 없다는 듯 뒤로 물러서는 악마.
그때 거대한 빛의 날개가 펼쳐졌다.
“따라와라!”
우진이 자신의 날개를 펴고 모습을 바꾼 악마에게 도발을 시전했다.
하늘에서 마주 선 두 존재.
— 후웅...!
가볍게 손을 든 악마가 허공에서 대검을 불러내고.
“무기술에 자신이 있는 것 같으니 같은 방식으로 상대해주지.”
하지만 빈손으로 주먹을 쥔 우진.
“아, 그건 이제 질렸어.”
순간 우진의 옆에 나타난 빛의 분신.
다시 다섯으로 갈라져 임전태세를 갖춘다.
“난 이제부터 격투로 간다.”
그게 끝이 아니다.
‘환영 투사.’
분신과 본체에 모두 가짜 환영이 생기며 수십 명이 된 우진들.
‘그림자로 아직 이 정도 수는 불가능하지만.... 눈을 속이는 것은 가능하다.’
거기에 마지막으로.
— 쿠구궁...!
꽂힌 악마 휘장.
모두가 오오라의 효과를 받아 빛나는 피의 투천사가 된다.
동족의 살해자를 알아본 악마.
“그건 악마를 죽인 자의 증표...!”
미소 짓는 우진.
“내가 어둠의 힘을 어떻게 얻었을 것 같나.”
“좋아. 좋아좋아좋아좋아!”
방심할 수 없다는 기세.
더욱 강해지는 악마의 투기.
“오랜만의 현신인데 즐거운 일이 가득하구나...!”
광소를 터트리는데.
순간 모조리 달려드는 우진들.
‘환영은 고기 방패. 분신이 각자 한 방씩만 먹여주면 성공이다.’
사막마귀진을 흉내내는 우진.
잠깐만 시간을 벌어주면 된다.
즐겁다는 듯이 그 모두를 박살내는 악마.
“가짜! 가짜! 너도 가짜!”
— 펑! 펑! 펑!
마침내 모든 가짜가 사라지고.
그 사이에서 나타난 우진이 길게 당긴 정권을 찌르는데.
얕은 수를 조롱하듯 미소짓는 악마.
“그런 게....”
하지만.
“컥....”
그것은 특별히 막대한 힘을 부어 만든 가짜.
진짜는 후방에서 악마의 가슴을 관통한 우진이었다.
튀어나온 주먹을 내려다본 악마.
그의 입에서 검은 색의 핏물이 흘러내렸다.
“솜주먹이라고 말하기엔...... 좀 아프네.”
“힘들어?”
“천만에.”
“이제 힘들어질 거야.”
찬란한 광휘.
상대를 관통한 상태로 움켜쥔 우진의 주먹에서 순간 거대한 빛의 폭발이 일어
났다.
빛을 응축시킨 강대한 힘의 폭발.
너덜너덜해진 악마의 가슴.
몸을 뺀 우진이 상대를 확인했다.
‘슬슬 한계일 텐데.’
연기 속에서 드러나는 그 모습은 과연 처참했다.
하지만.
— 뚜두둑....
목을 풀더니 무표정하게 모든 상처를 회복시키는 악마.
사라진 오른쪽 가슴이 재생되고, 날아간 머리의 반이 다시 돌아온다.
그건 마치 세상에 존재할 수 없는 기적을 보는 느낌이었다.
‘대단하군.’
감탄하는 우진. 이번엔 진심이었다.
저건 기적 따위가 아니다.
전투 종족의 지독한 투지.
‘선천지기를 끌어 쓰고 있다.’
중원의 말로 선천지기라는 것이 있다.
인간이 타고 태어난 기운으로, 사용하면 마지막 불꽃처럼 초월적인 힘을 발휘
할 수 있는...
하지만 생명의 근간이기에 결국 목숨을 잃게 되는 최후의 한 수.
악마에게도 비슷한 것이 있으며, 놈은 지금 그걸 사용하려는 것이다.
그 뜻은.....
‘죽음을 각오했다.’
순간 점멸로 퇴각한 우진.
그야말로 생명을 태워 발산하는 마지막 불꽃이 타오르고.
— 콰아아앙...!
지독할 정도로 무서운 투기가 솟아올랐다.
적의 결의에 만족스러운 우진.
자신도 강력한 기운에 맞서며 몸을 변화시킨다.
“나도 재밌는 걸 보여주지.”
— 콰드드득....
언데드 폼 최대출력이 되자 감탄하는 악마.
“그게 네 진짜 모습이냐?”
“그런 셈이지.”
“멋있네. 이제야 진짜 대 진짜로군.”
이건 사실 무모한 행동이다.
지금 우진이 택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방법은 ‘퇴각’.
초시계가 째깍거리듯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저 존재를 두고 멀리 달아나는 것
이다.
그럼 시간이 흐르고, 상대는 알아서 죽는다.
‘어렵지도 않아. 내가 가진 이동기를 일시에 사용하면 단숨에 10km는 거리를
벌릴 수 있다.’
그걸 추격하는데 다시 소모되는 적의 힘.
결국 죽음을 쫓아 달리는 신세가 된다.
즉, 시간은 우진의 편인 것이다.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다. 그냥.... 그러고 싶지 않다.’
순간 발산되는 우진의 투기.
상대에게서 최대한 많은 것을 배워야 한다.
“해보자. 가장 강한 순간의 너와 싸우고 싶다. 너무 늦기 전에.”
당혹감이 번지는 악마의 얼굴.
이내 웃음을 되찾는다.
“내가 뭘 한 건지 알고 있는 거냐?”
“그래, 그러니 말할 힘도 아껴서 덤벼봐라.”
“그렇다면... 사양하지 않고...!”
— 후웅...!
순간 날아드는 악마의 발차기.
속도부터가 차원이 다르다.
‘회복에 힘을 반 이상 썼을 텐데도 이 정도라니.’
인지조차 할 수 없는 순간에 몇 합을 주고 받은 두 존재.
서로가 서로를 일격사시킬 수 있는 공격이 허공을 찢는다.
죽지 않는 것은 오로지 치밀하게, 혹은 본능적으로 계산된 배리어의 방어 덕
분이었다.
‘공방을 동시에.’
우진이 주먹이 닿을 때마다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악마의 검은 배리어.
타격 부위만을 정교하게 방어한다.
‘부분 배리어. 재밌는 방식이군.’
그 방식을 흉내내는 우진.
적의 공격을 부분적인 물의 가호, 블러드 배리어와 수호의 방벽으로 막아낸다.
하지만 타격을 완전히 흡수할 순 없다.
‘처음부터 최대출력을 꺼내길 잘 했군.’
언데드 폼과 마기의 보호가 아니었으면 누적된 피해로 이미 누더기가 되었을
것이다.
그때 배리어로도 막을 수 없는 공격이 날아왔다.
우진이 한참을 밀려난 뒤 물었다.
“그건 어떻게 하는 거냐?”
“뭐? 이거?”
어둠을 덧바른 듯 강화시킨 주먹.
“투기 두르는 법 알지? 몇 번 더 두른다고 생각해봐. 여기에만 집중해서.”
“아하. 고맙군.”
다시 대등한 공세를 이어가는 두 존재.
악의 현신과 죽음에서 돌아온 야수.
그 둘의 끝없는 격돌과 함께 시간은 점점 흘러가고 있었다.
치열한 공방 속 차분히 기술을 준비하는 우진.
‘다음은 점멸로 회피.’
그때 악마의 웃음기 넘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거 알아? 수싸움에 너무 몰두하면 전투가 재미없어져.”
“난 즐거우려고 싸우지 않는다. 이기려고 싸우지.”
“그런 것치곤 너무 즐기고 있는데.”
“상대가 좋아서.”
극찬에 기뻐하는 악마.
다시 몇 합을 나누고.
일말의 아쉬움도 남기지 않겠다는 듯 묻는다.
“근데 어둠의 배리어는 못 쓰는 거냐? 그게 네 배리어들보다 더 강할 텐데.”
“아직 못 배웠다. 아마 널 죽이면 얻게 되겠지.”
“아하! 못 쓰는 거구나? 그럼 나도 할 수 있는 걸 다 해봐야지. 이번엔 내가
네 방식을 좀 빌려볼까 한다.”
마치 거리를 벌리려는 것처럼 밀어내는 공격.
우진이 기계적으로 그걸 막아내는 가운데.
순간 훌쩍 멀어진 악마.
그가 마지막 힘을 끌어모아 최후의 공격을 준비한다.
“아마 이게 마지막일 거 같다. 잘 막아봐라. 지금까지 쓴 배리어로는 힘들 거
야.”
공간이 얼어붙는 듯한 기세와 함께 악마의 힘이 쏘아졌다.
생을 불살라 던지는 최후의 공격.
공간을 찢어발기는 거대한 어둠의 통로가 창공을 가르고.
최후의 배리어를 사용하려던 우진이 무언가를 깨달았다.
‘가짜다.’
눈속임이 아니다.
상대는 정말 최후의 진기까지 모두 사용했다.
하지만 그가 어둠에 바칠 수 있는 마지막 제물이 있었다.
그건 악마 자신의 몸.
존재의 소멸을 각오한 진신의 힘.
그걸 대가로 한 진정한 마지막 수가 남아있었다.
“상쇄.”
우진이 첫 공격을 전력으로 상쇄해냈을 때.
그 뒤에 가려졌던 진짜 최후의 불꽃이 날아들었다.
그리고 그제야 발동한 마지막 배리어.
“전능의 가호.”
모든 것을 찢어버리는 폭풍 가운데.
금빛 구체에 휩싸인 우진의 모습이 나타났다.
악마가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시고.
“내가 졌네.”
우진의 신형이 하늘을 갈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