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데드가 되어 돌아왔다 79
광마교 신전을 덮친 것은 거수 베히모스.
그리고 그 위에서 뛰어내린 것은 단 한 명의 인간이었다.
‘아니... 저게 인간이 맞긴 한가......?’
눈을 의심하는 광마교의 간부들과 총신관.
광기 어린 육체.
감히 대적할 수 없는 검푸른 괴물의 몸. 깊은 눈동자를 지닌 얼굴이 무표정하
게 주위를 살피고 있었다.
“네가 총신관이냐?”
우진이 묻는 순간 뛰어내린 천장의 호위병들.
후방 기습이 성공하나 싶었을 때.
언제 나타났는지도 모를 손톱이 그들을 몇 조각으로 나눠버렸다.
“이 몸은 너무 강해서 별 맛이 안 난다.”
이내 스르르 모습을 바꾸는 괴물. 이제야 정말로 인간 하나만이 남았다.
‘호... 혼자서 신전을 공격해왔다고...?’
내부에 있던 간부들이 일제히 모습을 드러낸다.
기도를 올리듯이 핵 앞에 앉아 무릎을 꿇고 있던 모든 간부들도 허둥지둥 일
어섰다.
‘잽싸네.’
우진 입장에선 일사분란한 시궁창 쥐들처럼 보이는 광경이었다.
더 가관인 건 그에 응답하듯이 웅웅거리는 핵이었다.
‘신전을 아예 핵을 보호하는 형식으로 지어버렸구나.’
어쩐지 대규모다 했다.
저걸 지키기 위한 최후의 방어선이었던 것이다.
직경 3m 가량의 검은 원기둥.
맨질맨질한 수정처럼 보이는 그것이 어둠의 핵이었다.
그때 정신을 못 차린 총신관이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우진을 향해 팔을 벌렸다.
“존재여. 넌 제법 강하구나. 이곳엔 무슨 일로 왔느냐?”
이 소란 속에서도 침착한 목소리.
그도 그럴 것이 그 음성엔 사악한 술수가 걸려있었다.
그냥 인사나 건넨 게 아니란 뜻이다.
‘상당히 강력한 정신계 능력자군.’
태생적이거나 스킬북을 통한 획득은 아닌 것 같았다.
그런 평범한 경로로 얻었다면 저렇게 눈알이 어둠으로 물들진 않았을 테니까.
‘의식을 통해 하사받은 능력인 것 같은데.’
유혹, 현혹, 사술 등등.
시선과 음성, 손짓과 요사스런 기운.
모든 걸 섞어가며 우진을 홀리려고 하는데.
“뭐가 많네. 다 한 거냐?”
면역인 그로서는 그저 하품이 날 뿐이다.
오히려 반격에 들어간 우진.
순간적으로 환영을 덧씌워 귀신처럼 지령을 날린다.
놈에겐 이글이글 불타듯 일렁이는 악귀의 모습이 보일 것이다.
<너는 죽는다.>
순간 공포에 질린 놈의 감정이 느껴지고.
연결된 정신을 통해 목소리마저 들려오는 듯했다.
‘아직... 아직 준비가 덜 끝났건만... 어찌 이리도 강한 존재가 우리를 방해
한단 말인가...! 저 힘은... 저 힘은 도대체.......’
우진이 웃으며 걸음을 옮겼다.
“나도 궁금해. 내가 지금 얼마나 강한 건지.”
발산되는 투기.
악의 신전을 가득 채울 정도로 강력한 투기에 총신관이 자신도 모르게 몇 걸
음을 물러서며 물었다.
“어째서. 어째서냐. 왜 우리를 공격하는 거지?”
“반대항. 너희처럼 악의로 세계를 갉아먹는 괴물들이 있으면, 나처럼 너희를
잡아먹는 괴물도 있어야지.”
결국 멈춰선 총신관.
“노옴....... 광마교를 감히 무엇이라 여기는 것이냐.”
칠공에서 어둠을 분출하기 시작한 광마교의 총책임자.
그의 몸 전체가 어둠으로 끓어올랐다.
탐욕자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진짜 자신의 의지로 사용하는 어둠의 힘.
그가 환희에 젖은 얼굴로 말했다.
“어둠을... 받아들여라.... 이것만이 유일한 구원이자... 유일한 힘이니...!”
껄껄 웃은 우진.
“뭔 개소리냐. 난 어둠의 힘조차도 너보다 강한데.”
우진도 손을 들어 본격적인 어둠을 사용했다.
‘마도 사령술.’
사령술의 새로운 형태.
어둠을 먹고 먹으며 자신이 깨달은 것이 있다.
이 어둠이란 녀석은 성질이 악마들과 비슷하다.
즉, 같은 힘을 가지면 내성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더 강한 쪽에 휘둘리게 되
는 것이다.
그렇기에.
“복종해라.”
순간 번진 어둠의 기세.
그의 말 한 마디에 모든 간부가 무릎을 꿇고 엎드렸다.
“이... 이게 무슨....”
자신의 의지를 빼앗긴 간부들.
숨쉬듯 받아들이던 어둠이 그들을 옭아매는 사슬이 되었다.
“그대로 굳어있어라.”
조아리듯 고개를 숙이고 얼어붙는데.
마치 자신들의 주교를 배알한 듯 더없이 극진한 자세였다.
경악에 잠긴 총신관.
저 녀석만큼은 남겨뒀다. 시험해 볼 것이 있기에.
“너... 너... 너는 대체.......”
“막아봐.”
무감정하게 말한 우진이 자신의 어둠의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 쿠구궁....
일그러지는 공간.
마치 수압으로 찌그러트리듯 놈의 전신을 짓누른다.
이것은 압력과 압력의 대결. 버티기 위해선 더 강한 힘으로 밀어내야 한다.
점점 일그러지는 총신관의 얼굴.
이내 안간힘으로 버티고 있다는 모든 징후가 드러났다.
— 까드득....
무서울 정도로 흘리는 땀.
씹혀 파고드는 치아들.
터질 것 같은 핏줄.
그가 비명을 지르듯 말했다.
“표식도 없이... 이 정도의 어둠의 힘을... 어찌......!”
“내 종족도 그렇고 능력도 그렇고. 좀 특이하거든.”
“그건... 그건 불가능하다...!”
그때 의미심장한 목소리.
“문제는. 이게 내 힘의 전부가 아니란 거지.”
“그게 무슨... 흡...!”
우진이 손가락을 튕기자 공간의 모든 존재이유가 바뀌었다.
적을 짓누를 것.
순간 감기는 총신관의 눈.
대화에 쓸 여력조차 없이 온 힘을 다해 어둠의 압박을 막아내는 것이다.
우진이 그 모습을 잠시 감상하다 말했다.
“하나 묻자. 강한 힘이 있는데 왜 그렇게 쓰냐?”
“으... 으으읍... 으아아아...!”
마치 재갈이 물린 듯 대답하지 못하는 총신관.
“아, 애초에 그렇게 쓰려고 키운 힘이지? 이제 끝내자.”
순간 힘을 풀어주자 허물어지는 놈의 몸.
“아... 아... 아... 안.......”
“돼.”
우진이 손을 움켜쥐자 터져버리는 놈의 머리.
대답을 할 사이도 없이 목이 사라졌다.
— 푸슉...!
피의 분수 속에서 우진이 저벅저벅 신전 본당을 가로질렀다.
그리고 얼음처럼 굳어있는 간부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내가 이 핵을 좀 가져갈 생각인데. 괜찮지?”
순간 뿜어져나오는 어둠의 투기.
모두는 깨달았다.
대답을 하건 안 하건,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으... 아... 아....”
기나긴 공포.
질식할 것 같은 두려움.
차라리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마침내 그들이 안식을 찾았다.
— 스릉....
단검 하나가 허공에서 춤을 추고. 일시에 무너지는 육신들.
— 풀썩....
‘끝인가.’
뒤를 돌아본 우진이 그들의 허망한 최후를 확인했다.
교주가 없이 간부로만 이루어진 광마교.
강림한 악마 중 가장 강한 녀석이 교주가 되는 형태다.
‘어떤 의미론 정말 어둠에 충직한 녀석들이야.’
대장 자리도 비워놓고 마의 현신만을 기다리고 있다.
그렇기에 총신관이 죽은 이상 머리가 잘린 셈이다.
다시 걸어간 우진.
이제 핵을 조사하려는데.
그때 무언가 강대한 기운이 느껴졌다.
— 오싹....
‘음?’
짜릿할 정도의 강함을 지닌 무언가가 지하에 있었다.
*
간부 해밀턴은 충직했다.
또한 영리했다.
가장 중요한 점은, 그는 재빨랐다.
그리하여 베히모스가 들어오기도 전에 지하로 숨은 것은 해밀턴 뿐이었다.
차단 결계를 발동시키고 재빨리 모든 기척을 감춘 것도 해밀턴 뿐이었다.
그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길 수 없는 존재가 오고 있다.’
정확한 판단을 내린 것. 그리하여 모든 일이 시작되기도 전에 공포에 질린 것.
또한 그 공포에 적절한 방식으로 대응한 것은.
오직 해밀턴.
해밀턴 뿐이었다.
‘주교님... 우리를 구원하소서...!’
지하실에서 붉은 단검을 꺼낸 해밀턴.
그가 말하는 주교는 인간이 아니었다.
광마교의 모든 이가 한 마음으로 비워둔 자리.
강림할 악마를 위해.
그들 중 가장 강한 존재를 위해.
하지만 이제 오직 하나.
자신이 불러낼 악마 하나 뿐이겠지만.
‘이런 식이... 이런 식이 아니어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시간이 없다.’
허겁지겁 강림 의식을 시작하는 해밀턴.
시간도 공물도, 자신의 힘도 부족하다.
그리하여 자신의 몸과 영혼을 전부 바치는 방식이었지만.
‘저희를... 인간을 이끌어주소서...!’
실로 광신도 같은 소리와 함께 단검을 치켜든 해밀턴.
이건 광마교 믿음의 근간이었다.
악에 물든 자들은 끝내 하나의 의문을 품게 된다.
<나는 정말 악인가?>
자신이 악인이라면 그건 누가 정했을까.
세상이? 내가? 나는 악인이 되기를 선택했나?
내 선택이 아니라면?
혹은 너희의 기준이 틀린 것이라면?
그렇다면 나는 왜 비난 받아야 하는가?
그렇기에 그들은 악마에 이끌린다.
본질적으로 마를 행하는 악마를 동경하게 된다.
<나는 악이다.>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존재들.
그걸 자부심으로 삼는 위대한 강자들.
존재 자체가 악(惡)이자 마(魔)인. 악마.
그렇게 생겨난 것이 광마교의 시작이었다.
마계가 진짜 세상이 되고, 월드가 가짜 세상이 되게 하는 것.
그리하여 악이 곧 정의가 되게 하는 것.
<부정당하는 쪽이 부정하는 쪽을 침공한다.>
이 얼마나 매력적인 이야기인가.
해밀턴도 같았다.
왜 나를 악인이라 부르지?
내가 악이라면.
누구도 부정하지 못하는 진정한 악이 되고 싶다.
그는 지금 이 순간 그 소망을 이뤘다.
해밀턴의 전신이 폭발하며 날아갔다.
그 안에서 껍질을 벗듯 무언가가 나타났다.
— 저벅....
한 걸음을 걸어나온 그것은...
놀랍게도 인간의 형태였다.
중급의 완전 현신.
악마가 아무 제약 없이 세상에 풀려난 것이다.
“완전 현신이라. 이거 재밌는 일이군.”
자신의 몸을 둘러보며 미소를 지은 악마.
인간형, 인간의 얼굴, 인간의 몸이었다.
그러나 풍기는 기운은 결코 인간이라 할 수 없었다.
그가 흩어진 해밀턴의 시체를 보며 혀를 찼다.
“불러냈으면 차라도 한 잔 내올 것이지. 죽어버리긴.”
어깨를 풀며 답답하다는 표정을 지은 악마.
“지하로군.”
마계는 어둡고 지겨운 곳이다.
여기서까지 이런 답답한 곳에 있고 싶진 않았다.
“월드의 참맛은 밝고 아름다운 세계지. 그래야 부술 맛이 나니까!”
근데 숨을 들이쉬니 훅 들어오는 어둠.
쩝... 입맛을 다시는데.
“여기구만. 음, 여기야.”
어둠의 땅.
온통 깔린 어둠이 좋기야 하다.
편하고 부드럽고 맛있으니까.
하지만 이건 마계에서도 충분히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이다.
그런데 천장 위로 무언가가 느껴졌다.
순간이지만 오싹함이 느껴질 정도.
전투 종족임에도 즐거움보다 공포가 먼저 떠오를 정도의 투기.
하지만 이내 악마의 얼굴에도 폭력적인 미소가 떠올랐다.
‘강자...!’
그때 강자 측에서 먼저 공격을 걸어왔다.
— 콰콰콰쾅...!
정확히는 지하실의 천장을 부수고 자신이 올라올 길을 터준 것이다.
‘화끈한 놈인데...!’
활짝 열린 천장.
악마가 고개를 들고 상대를 살폈다.
눈이 마주친 순간 빙긋 웃는 그 얼굴은 인간이었다.
“인간이 이 정도라고? 싸울 맛 나겠구만!”
생각한 순간 그는 이미 우진의 등 뒤에 있었다.
문제는.
우진이 그의 앞에 없었다는 사실이다.
“언제....”
“까꿍.”
고개를 들었을 땐 이미 코앞이었다.
악마를 향해 내리찍히는 건 거대한 빛의 힘.
0거리 1식.
거대한 별의 형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