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데드가 되어 돌아왔다 75
“광마교가 무언가를 꾸미고 있습니다.”
고요한 새벽.
마주 앉은 자리에서 흘러나온 위험한 정보.
제이슨 대장의 얘기는 실로 엄청났다.
“어느날 정찰조가 기묘한 것을 목격했습니다. 어둠의 땅 가장 깊숙한 곳까지
돌아다니던 용감한 대원들이었습니다만.... 그들이 본 것은 너무나도 끔찍했
습니다.”
우진이 경청했다.
“그게 무엇인지요.”
심각한 표정의 제이슨이 주저하며 말한 사실은.
<광신도들이... 사람을 녹여 어둠으로 만들고 있었다>
어둠의 땅 내부.
그곳은 금지이자 저주 받은 땅이지만....
그곳에 살아가는 두 부류의 ‘인간’들이 있다.
광신도와 탐욕자들.
‘광신도는 말할 것도 없이 광마교도들을 말하는 것이지.’
광마교의 간부들.
비밀 의식을 치르고 어둠의 표식을 몸에 새긴 자들.
그들에겐 오히려 이 저주의 대지가 매력적인 장소가 된다.
‘여기선 악마와의 계약이나 힘을 빌리는 것도 한층 편리해지거든.’
바쳐야 할 공물도 적어지고, 차원문을 여는 것도 한결 수월하다.
그래서 광마교에선 이곳에 입교를 위한 신전을 마련해두었다.
입회를 권유받은 자는 그곳에서 의식을 치룬 뒤, 다시 태어나 어둠의 종복이
되는 것이다.
즉, 광신도들은 악마와의 거래로 어둠을 ‘허락받은’ 자들이다.
‘탐욕자들은... 그보다 아주 하위의 존재들이지.’
탐욕자들은 말하자면 광신도의 하수인으로, 어둠을 잘못된 방법으로 흡수하는
자들이다.
‘조잡하고 허술한 표식을 하사받고 어둠에 중독되어 버린 자들이지.’
수명을 포기하고 어둠이 주는 쾌감을 탐하다 결국 광마교의 노예가 되어버리
는 존재들.
물론 그 배경엔 광신도들의 꼬드김과 현혹이 있다.
‘칼리아랑 비슷해. 어둠이란 마약을 파는 짓거리니까.’
하지만 칼리아와 비교할 수 없게 사악하다.
그 흡혈귀는 하위 악마 1개체를 불러내는데에 그쳤지만...
이 광적인 집단은 최소 수십의 악마를 불러낼 계획이었으니까.
그리하여 경비대 정찰조가 본 것은....
“사람이 녹아서 어둠 그 자체가 되었습니다.”
어둠의 핵 근처에서 목격된 충격적인 사건.
“그 표정이 매우... 매우 고통스러워서.... 도저히 현실의 일이라고 느껴지지
가 않았다고 합니다.... 아니, 그것은 현실이어선 안 됩니다....”
정찰조의 보고.
인간이 녹아 어둠이 되었다.
그리고 그 ‘융해된 인간’은 그대로 어둠의 핵에 빨려들었다고 한다.
즉 핵에다 인간 제물을 바친다는 얘기.
아마도 쓸모 없어진 노예를 마지막까지 뽑아먹는 방식이리라.
‘별의별 짓을 다 하는군.’
전생엔 인연이 없던 광마교 사태. 그리고 어둠의 땅.
그런 형태의 인신공양이라니.
처음 들어보는 얘기였으나 언데드인 자신에게도 정말 끔찍한 소리로 들렸다.
‘슬슬 이놈들이 일을 준비하는군.’
한창 세를 불리던 교단.
신전도 다 지어지고, ‘노예’가 필요없으니 어둠에 땔감으로 넣어버리는 모양
이었다.
‘그 목적은 하나 뿐이다.’
핵을 강화시켜 어둠을 바깥으로 밀어내려는 것이다.
말하자면 어둠의 땅을 ‘확장’시키려고 하는 것.
실로 대담하고 광오한 계획이지만....
우진은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이건... 십중팔구 실패했을 거야.’
지난 생 이 땅이 영역을 넓혔다는 얘기를 들은 적은 없다.
그렇다면 누군가가 이 사악한 계획을 막아냈다는 뜻이다.
우진이 눈앞의 남자를 바라보았다.
제이슨과 용감한 병사들.
짐작컨대 이 위대한 경비대원들이 놈들의 계획을 저지한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어떤 피해가 발생했을지... 몇 명이 목숨을 잃었을지. 그 또한
나는 알 수 없다.’
어쩌면...
어쩌면 눈앞의 이 경비 대장도 분투 끝에 숨을 거두고.
세상은 보기 드문 용사 중 하나를 잃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이번 생에는. 절대 그런 일이 생기지 않게 하겠다.’
자신이 나설 것이다.
어둠의 땅 내부의 광마교 세력이 얼마나 큰 지, 또한 교도는 몇 명이며 또 탐
욕자는 몇인지. 그런 건 상관 없다.
‘인간을 어둠으로 만든다? 난 너희를 모조리 갈아서 세상의 거름으로 만들어
주마.’
우진이 확신을 담아 얘기했다.
“걱정 마십시오. 파도는 다시 원래 수준으로 돌아올 것이며.... 모든 것이 정
상으로 회복될 것입니다.”
어쩌면 파도 그 자체를 사라지게 만들 수도 있다.
혹은 어둠의 땅 전체를 정화시킬 수도 있겠다는 얘기는 하지 않았다.
‘핵이 어떤 형태로 되어 있고, 파괴가 가능한 수준인지, 혹은 융합을 할 수
있을지 확실하지 않거든.’
하지만.
광마교는 모조리 쓸어버릴 것이다.
그럼 파도는 반드시 정상 수준으로 돌아온다.
“그것만큼은 약속드리겠습니다.”
제이슨이 애써 미소를 지었다.
“성자님이 오늘 해주신 일만으로도 저희에겐 충분한 기적이었습니다. 특히 저
희의 마음을 알아주신 것이 정말 감사했지요.”
“그렇습니까.”
“뒤에서 몰래 우는 녀석도 있었습니다. 솔직히 저도 눈시울이 좀 시큰하더군
요. 큼직한 접시로 빨리 가려버리긴 했지만요.”
농담을 하며 껄껄 웃는 제이슨.
즐거워서 웃는 게 아니다.
버티기 위해 웃는 것이다.
‘그래도 힘들 때 웃는 게... 1류...!’
진심으로 대단하다고 생각한 우진.
이런 자리에 사령관으로 있다는 것은 외부의 적을 막으며 내부의 결속을 다져
야 한다는 뜻이다.
결심한 우진이 품에 손을 넣었다.
‘세상에 악인만 있는 건 아니야. 보통 사람, 그리고 선량한 사람들도 섞여서
살아가는 거지.’
이런 사람들 덕에 월드는 어찌저찌 살만한 공간이 되는 것이다.
‘나도 거기에 한몫을 보태고 싶다.’
우진이 인벤토리에서 거대한 자루를 꺼냈다.
“이거 아무 말도 말고 받아주십시오. 저도 월드의 주민이고, 저를 위해 모든
고생을 감수해주시는 것과 마찬가지인데. 작은 도움이라도 드리고 싶습니다.”
그 안에 든 것은 모두가 돈.
돈만으로 해결되는 일은 아니지만, 돈이 넉넉하면 많은 부분이 편해질 것이다.
한참을 망설이다가 얼굴이 붉어져서 말하는 제이슨.
“저희 병사들을 위해 감사히 받겠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일어나서 90도가 넘게 고개를 숙이는 제이슨.
우진이 말리지 않았으면 절이라도 했을 기세였다.
“제이슨 대장. 이제부터 저를 용병이라고 생각해주십시오. 저는 어둠땅 경비
대를 전력으로 도우러 온 것입니다. 아시겠지요?”
“예, 명심하겠습니다.”
만족한 우진.
“자 그럼 묻겠습니다. 최대한 보급을 돕고 싶은데 혹시 더 필요한 것이 있으
십니까?”
정말 쑥쓰럽다는 듯이 말하는 제이슨.
“최근... 어둠의 기운이 강해진 이후에 여유가 없어서... 고장난 동력원이 있
는데 차저 보충을 못하고 있었습니다.”
우진이 미소를 지었다.
‘그거라면 내가 해결해 줄 수 있지.’
안내 받은 동력기.
서쪽 방벽의 전력을 책임지고 있었다는데.
그 앞에 선 우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전기 끊기면 진짜 괴롭지.’
일단 대형 차저 5개를 전부 결속시킨 뒤 마나까지 빵빵하게 채워주었다.
— 웅웅웅...!
멀쩡하게 작동하기 시작하는 동력기.
그 주입 방식이 제이슨을 놀라게 했다.
“지금... 직접 마나를 주입하신 겁니까?”
차저를 움켜쥐고 씩 웃는 우진.
“제가 좀 통이 큽니다.”
마나통도 크고, 어둠통도 커질 거다.
감사를 표하며 기뻐하는 제이슨.
“감사합니다. 이제 병사들의 거주 환경이 훨씬 나아질 것입니다. 진심으로 감
사드립니다!”
“마침 제가 필요한 물건을 가지고 있었으니 다행입니다.”
거대한 동력기를 돌리는 5개의 차저.
애초에 체이서에 쓰려고 구입했으니 보통 용량이 아니긴 하다.
비싸지만 아까울 건 전혀 없다.
게다가 이제 고대 코어라는 유일무이급 동력이 있는데 건전지 좀 나눠준다고
째째하게 굴 필요도 없다.
‘정 필요하면 1000개 더 사도 돈이 넘쳐난다.’
오히려 더 사다주고 싶을 지경이다.
하지만 이런 걸 준다고 방벽의 일이 모두 해결되는 건 아니다.
‘이제 근본적인 고민을 좀 덜어줘야겠군.’
이들의 고민이라면.
방벽을 어떻게 수호할 것인가.
‘당연히 그림자와 괴물들의 수를 줄여주면 되지.’
그건 자신에게 가장 자신있는 일이다.
인근을 청소할 거다.
어둠 속에서 계속 생겨나는 괴물.
그걸 밀면서 핵에 접근한다.
그럼 방벽은 한동안 평온해진다.
어둠 강화가 바로 자신의 목적이기도 하니 잘 됐다.
‘공조할 수 있으면 나한테도 좋은 일이지.’
계획을 정리한 우진이 입을 열었다.
“부탁이 있습니다.”
“예. 무엇이든 말씀해주십시오.”
“정찰조와 공격조 가리지 않고 전부 복귀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당황하는 제이슨.
“복귀... 명령을요?”
“이 근방을 무차별로 좀 쓸어버리려고 합니다. 적과 아군을 구분하기 힘드니
모든 대원을 방벽으로 불러주십시오.”
의문을 표하는 제이슨.
“성자님의 능력은 아군은 치유하고 적은 공격하는 신성한 힘 아니었습니까...?”
“내친김에 광마교 신전 쪽에도 가보려고 합니다. 그쪽 정찰조, 혹은 본대와
마주치면 ‘다른 능력’을 사용해야 하거든요.”
“광마교 신전에 직접요...? 게다가 다, 다른 능력이라니....”
도저히 믿지 못하겠다는 얼굴의 제이슨.
별의별 강자들을 많이 만나봤지만 그 정도의 힘을 갖추고 다른 능력까지 휘두
르는 인물은 처음이었다.
“알겠습니다. 저희를 도와주시는 일인데 당연히 협조해야지요.”
“감사합니다. 그리고 광마교 신전의 좌표, 혹은 정찰된 정보가 있거든 무엇이
든 좋으니 알려주십시오.”
굳건히 고개를 끄덕이는 제이슨.
“예. 저희 측 보고서를 드리겠습니다. 부족하지만 개괄을 파악하시는 데는 제
법 도움이 될 것입니다.”
보고서를 받아든 우진.
그의 감상은 하나였다.
‘길다.’
정말 길다.
그의 읽는 속도를 고려하면 이건 너무 오래 걸린다.
“죄송하지만. 가장 말솜씨가 좋은 정찰대원 한 명과 대화를 할 수 있겠습니까.”
“말솜씨라면....”
“유창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빠르고 정확하게 원하는 정보를 말할 수 있는 인
물이 필요합니다.”
“아, 그거라면 칼릭이 아주 도움이 될 것입니다.”
불려온 칼릭.
“성자님...!
“칼릭 대원. 부탁이 있습니다.”
“저는 성자님 덕에 목숨을 구했습니다. 죽었다고 생각하던 때에 갈라진 배가
다시 붙고 근처의 그림자가 모두 사라졌습니다. 그러니 부탁이 아니라 명령해
주십시오. 무엇이든지요.”
그와의 대화로 빠르게 파악된 정보.
종이에 좌표와 간단한 지도까지 그려주는 칼릭.
설명하는 솜씨가 좋아 요충지와 지리를 금방금방 파악할 수 있었다.
패널에 다시 옮겨 기록하였다.
“고맙습니다 칼릭.”
“도움이 되었다니 영광입니다!”
칼릭이 물러가고.
우진이 마지막 부탁을 한다.
“그럼 대원들의 복귀 신호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예. 바로 긴급 복귀 나팔을 울리겠습니다.”
아침의 미명 속에 지휘실로 간 두 사람.
뿔나팔을 불자 방벽과 인근의 초소마다 나팔 소리가 번진다.
그리고 하늘에 떠오른 몇 개의 신호탄들.
잠시 정신을 집중한 우진이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돌아오고 있군.’
여기저기 크고 작은 기운들이 본부를 향해 접근하고 있다.
설명하는 제이슨.
“1시간 내로 대부분이 복귀할 것입니다. 멀리 나가있는 대원들에겐 우회로를
택하라 신호하겠습니다.”
잠시 생각에 잠긴 우진.
“멀리 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멀리 있습니까?”
“그건......”
방에 걸린 커다란 지도에서 특정 지점들을 설명하는 대장.
그 거리를 가늠해본 우진이 씩 웃었다.
“그 정도라면... 제가 전 대원을 순식간에 복귀시켜 드리겠습니다.”
“수, 순식간이라면...?”
“제겐 좋은 동료들이 있지요. 어차피 이 땅 전체와 싸우려면 그 모두의 힘이
필요하니 이참에 불러내겠습니다.”
성자님의 동료라... 도대체 그것은 무엇일까?
생각에 잠긴 제이슨.
‘혹시 그 붉은 머리 분도 성자님 정도의 힘을 가지고 계신 걸까...?’
강자 2인이 길을 뚫어준다면 우회로 같은 것도 필요 없이 전 대원 직선 복귀
가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우진이 생각한 건 그 정도가 아니었다.
연병장으로 향한 우진과 대장.
소문을 들은 사람들이 모여든다.
‘전 대원을 복귀시켜달라 부탁하셨대.’
‘그리고 그걸 자신이 돕겠다고 하셨다는데?’
복귀를 돕는다?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성자님이 또 어떤 기적을 보여주실까...?’
‘설마 날개로 대원들을 직접 옮겨주시려는 건가...?’
수근거리는 소리 속에 미소 짓는 우진.
아니다.
그보다 훨씬 좋은 방법이 있다.
새로 얻은 능력 ‘액토플라즘’.
그 능력은 영적인 것의 실체화.
이를 통해 든든한 동료들을 ‘진짜’로 만들어낼 생각이다.
‘마나에 실체를 부여하는 거다.’
게다가.
‘너희 모두에게도 내 새로운 힘을 달아주마.’
두근두근한 심정으로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우와아아!”
— 훙. 훙. 훙. 훙. 훙....
찬란한 광채 속에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내는 우진의 ‘동료’.
형상을 갖춰 세상에 실체화 된 것은.
“어서 와라 십이 늑대.”
그건 빛의 수호수.
날개 달린 빛의 늑대 12마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