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데드가 되어 돌아왔다 70
대협곡에 이상 현상이 일어났다.
땅이 치솟고 모습을 드러낸 거대한 괴수.
— 그르르르....
아득할 정도로 거대한 모래 거수 위에 우진의 신형이 앉아있었다.
그 야수의 이름은.
“베... 베히모스다...!”
“하필 이때...!”
이미 죽어버린 거수의 흙인형.
르쉬나 3얼간이 인형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거대한 크기였다.
우진이 그 머리에 앉아 위풍당당하게 적들을 내려다봤다.
하지만 속으론 고민이 좀 됐다.
‘이거 너무....... 크다. 힘들어서 허리 부러질 거 같애.’
단순히 장벽을 발동하거나 마구잡이로 움직이면 규모를 더 키울 수 있다.
근데 ‘형상화’를 유지하면서 움직이게 하려니 등골이 휜다.
‘언데드... 살려....’
그래도 기왕 만들었는데 한바탕 놀지 않으면 섭섭하다.
젖먹던 힘까지 끌어올려 거수를 조종하는 우진.
‘탭댄스다! 베히모스!’
그 거대한 몸의 움직임이 정신을 통해 전해지고.
‘유후우!’
— 쿵! 쿵! 쿵! 쿵!
“으어어어어!”
사방팔방 달아나는 놈들.
그중에서도 몇 놈은 결국 무게에 짓이겨 죽어버렸다.
— 콰직...
— 콰드득....
처참한 광경.
그래도 워낙 쪽수가 많은 놈들이라 아직도 수십이 남아있었다.
어쩔까 고민하던 우진.
‘에이 몰라! 천지역전 가자...!’
있는 힘 없는 힘 다 끌어모아 발동한 것은.
‘토룡승천이다 색기들아!’
— 그워어어...!
거대한 모래의 뱀이 사방을 뒤엎으며 또 몇 놈을 저승으로 데려갔다.
시원시원한 살육의 광경.
하지만 그때.
‘컥.... 더이상은 오바다.’
과부하를 느낀 우진이 광란의 댄스를 중지시켰다.
마나로 연결된 이 거체를 직접 움직이고 있는 것이니까.
‘이거 마나통 문제가 아니라 좀 연습이 필요할 거 같다.’
그래도 괜찮다.
어차피 저런 놈들은 한입 거리고.
그냥 힘 자랑이나 한 것이다.
그리고 그 목적은 성공.
위엄을 제대로 과시했다.
거수의 형상화를 해제하면서 위엄있게 모래 폭풍을 일으킨다.
바닥에 착지해 광소를 터트리는데.
“하하하하! 놀라는 꼴이 우습구나.”
갑자기 사라진 거수에 두리번 거리는 놈들.
멀리 달아나 우진을 극도로 경계하고 있다.
오고가는 시선.
작은 대화소리.
“환술(幻術)이군.”
“순간이지만 베히모스를 부리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어리석은 놈들에게 날아가는 조소.
“그래, 그게 너희 수준으로 떠올릴 수 있는 최선이겠지.”
흑참도를 빙글 돌려 어깨에 얹은 우진.
“하지만 이 시체들은 무엇이더냐?”
피비린내 나는 황야.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다.
대신 누군가가 손짓을 하며 지시하는데.
“벌을 풀어라!”
그 말에 후방에 있던 녀석들이 등에 매고 있던 거대한 호리병을 들고 나선다.
사막마귀단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
그건 어떤 암호가 아니라 말 그대로의 ‘벌’이었다.
‘사막벌떼를 길들여서 쓴다는 발상. 참 지독하고 웃긴 놈들이야.’
벌이라고 해도 주먹만한 크기다.
게다가 엄청난 독을 지닌 존재들.
‘빠르고 수가 엄청나게 많지.’
처리하는 과정에 한 방이라도 쏘이면 순식간에 독이 퍼지며 몸을 마비시키거
나 시야를 흐린다.
그러면 쓱싹.
사막마귀단 인간 본대에게 찢기는 것이다.
하지만 독은 우진한텐 안 통한다.
게다가.
‘저 벌 녀석들을 회복약으로 쓰면 딱 좋겠구만...!’
위협적인 존재가 아니라 몸에 좋은 약으로 보인다.
크기도 적당하고, 쏙쏙 집어먹으면 바로 회복되는 ‘마물 사체.’
즉 한 마리 한 마리가 엘릭서가 되는 셈!
— 스스스스스!
무서운 속도로 접근하는 치명적인 벌떼.
마치 피할 수 없는 광역기를 맞이하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광역기에는 광역기로.’
구울 한 마리를 꺼내 먹은 우진.
베히모스 형상화 덕에 줄어든 마나가 가득 찬다.
“뭐... 뭐야 방금.”
“구울...?”
“구울을 빨아들였어?”
놈들의 놀란 시선은 무시하고 양손을 들어올렸다.
‘쌍박쥐 곡예.’
순간 불꽃처럼 피어나 날아간 것은 흑염의 박쥐.
빠르게 발사되어 공간을 점한 것은 붉은 혈박쥐였다.
— 후두둑
사막벌들이 떨어진다.
다시 곡선을 그리며 돌아오는 박쥐들.
그야말로 싹쓸이.
‘잘 했다 블러드 & 파이어 드래곤.’
두 마리의 박쥐가 모두 우진의 손바닥에 안착한 뒤 빨려들었다.
— 띠링!
[’독샘’을 계승했습니다.]
사막벌의 스킬.
‘오... 손톱에 독뎀을 부여할 수 있겠구만.’
그때 좌절하는 놈들.
“우... 우리가 몇 년동안 키워온 사막벌들이....”
흉악한 놈들의 동요.
이 때를 놓칠 우진이 아니었다.
마침 두 박쥐가 공간을 휩쓴 직후.
대기 중의 모든 힘의 잔재들을 이용해 지령과 암시를 퍼트린다.
<너희는 내게 죽는다.>
그러자 순간 퍼져나가는 공포.
마치 진짜 죽음을 체험한 것처럼 겁에 질린 놈들.
“헉...”
강한 놈들은 흠칫 하는 정도로 버티지만 약한 놈들은 손을 벌벌 떨며 무기를
떨어뜨린다.
“으아아아!”
“추태 보이지 마라!”
“으어...!”
“정신 집중해!”
놈들이 패닉에 빠진 사이.
자루 하나를 허공에 던져 입구를 활짝 열었다.
떠오른 사막벌들이 그 안으로 순식간에 빨려들어가는 모습은 경이로운 마법
그 자체였다.
— 슈와아악....!
사막벌 시체를 모두 챙긴 우진.
이제 [회복약 x 99] 같은 느낌이 되었다.
“흐흐하하하! 든든하구만!”
기분이 좋아진 김에 광소를 한 번 터트려주고.
놈들에게 위엄있게 말했다.
“귀여운 마물들이 주인을 잘못 만났군. 그건 너희 모두가 마찬가지다.”
좌중을 둘러본 그가 선포했다.
“두목을 잘못 만났으니 전원이 죽을 것이다. 대신 대장은 살려주지. 따로 할
일이 있거든.”
— 빠드득
누군가 이를 가는 소리.
섣불리 덤벼들기엔 위험한데 우진의 말을 그저 듣고 있기엔 괴로운 것이다.
결국 놈들 사이로 빠르게 수신호가 오가더니 새로운 대형으로 펼쳐졌다.
우진이 그 정체를 알아보았다.
‘사막마귀진.’
월드에서도 제법 이름을 알린 ‘합격진’.
크기로 승부하는 무식한 대형진이지만 앞뒤 없이 덤벼드는 놈들의 성정과 합
쳐지면 꽤나 위협적이다.
저걸 꺼냈다는 건...
‘필사적이군. 진짜 목숨을 걸고 싸우려는 생각이야.’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다.
하지만 수십이 한 몸처럼 펼친 그 흉험한 기세가 놈들의 각오를 짐작케했다.
하지만.
이게 바로 도발 타이밍이다.
“떼거지로 싸우는 연습을 했다는 건 개인의 실력이 부족하단 증거지.”
그때 도발에 걸려든 놈.
“감히 우리의 신성한....”
— 콰득....
순간 흙에 집어삼켜진다.
말을 다 마치지도 못한 채 짓이겨진 고기가 되어 나타났다.
“자고로 처음 입 여는 놈은 잔챙이지. 자. 이제 말해라 대장이 누구지?”
그때 움직이는 대열의 좌방.
“이놈이...!”
날아든 흙의 주먹에 머리가 사라졌다.
— 뻐어엉...!
‘거인의 영격 저리 가라군.’
“전열 다 돌입해!”
다음에 달려들던 녀석들은 개미지옥 행이다.
— 슈우우욱...
모래가 우물우물 되새김질을 하듯 움직이더니 푸! 시체들을 뱉어냈다.
“으으으아!”
“빈 자리 채워라 머저리들아! 상대는 고작 한 놈이다!”
“안 돼... 바닥이... 바닥이 흔들린다...!”
나머지가 혼이 빠져있더니 바닥으로 쑥 사라졌다.
다음 순간 모래 아래서 나타나는 시체들.
하나로 움직이는 합격진이 오히려 놈들을 한 묶음으로 죽여버리고 있다.
‘이 몸의 컨트롤 실력. 정말 무서울 정도로 빠르게 성장하는군.’
우진은 의심했다.
자신은 정말 천재일지도 모른다고.
그러다 문득 마법 이론이 떠올랐다.
‘음.’
그리고 현 상황에 집중하기로 했다.
“다시 말한다. 대장은 살려준다. 대장 나와.”
남은 놈들이 나서려는데 다 고만고만한 놈들이다.
‘너희는 판별도 필요 없다.’
— 휘오오오....
순간 모래바람이 불어오고.
뭐에 당했는지도 모르는 놈들이 하나씩 픽픽 쓰러졌다.
‘독성 모래바람. 좋네.’
마침내 단 두 놈만 남았을 때였다.
대열의 최후방에 있던 것으로 보아 진의 핵심이다.
즉 가장 고수거나...
‘가장 중요한 인물이겠군.’
다소 말랐지만 기세가 대단한 중년인.
비교적 젊고 건장한 놈.
우진이 마지막으로 포고했다.
“이제 죽을 놈은 하나군. 대장은 앞으로 나와라. 살려줄테니.”
그때 건장한 놈이 먼저 앞으로 나섰다.
“내가... 내가 대장이다...!”
그러자 흰머리와 수염이 희끗희끗한 중년인이 손수 단검으로 놈을 죽인다.
스르륵 쓰러지는 청년.
“한심한 놈.”
침을 뱉은 중년인이 우진을 바라보았다.
“내가 대장이다.”
그러자 빙긋 웃는 우진.
“너 지금 살고 싶어서 부하를 죽인 거냐?”
“헛소리. 이미 마음이 꺾인 놈은 싸움에 방해가 될 뿐이다. 그러니 덤벼라!”
우진이 어깨를 으쓱였다.
“부하 보는 눈이 없군. 난 아닌데.”
“무... 뭐라고?”
그때 뒤에서 등장한 르쉬가 목을 꺾어 놈을 기절시킨다.
등 뒤에 솟아나게 길을 터준 것이다.
지령과 대지의 힘, 그리고 르쉬의 멋진 콤보.
“퍼펙트다 르쉬.”
“감사합니다...!”
다가가서 반백의 중년인을 살피는 우진.
명령대로 숨통을 붙여놨다.
기절한 놈을 질질 끌어다 눕힌 뒤.
— 쿠구궁....
흙벽의 감옥을 만들어 가둬놓았다.
“너는 다른 용도가 있거든.”
일단 놈들 시체부터 정리한다.
커다란 단을 만들어 시체를 늘어놓았다.
사령술로 차곡차곡 오와 열을 맞추자 슈퍼마켓 정육점 코너가 되었다.
“르쉬야. 이 녀석들 지갑이랑 아이템 다 털고 피는 모조리 마셔버려라.”
“예!”
그리고 놈들의 스킬을 확인하는데 괜찮은 것이 몇 개 있었다.
[’뇌권(雷拳)’을 계승했습니다.]
‘오 전기?’
그거 자신이 좋아하는 속성이다.
일단 써보기로 했다.
주먹질을 하자 전기가 치지직 나온다.
리치가 늘어나는 효과에 전기 버프가 붙은 셈.
‘나쁘진 않은데.’
뭔가 아쉽다.
‘무형시랑 조합해보면 어떨까.’
팔찌 무형활을 낀 왼손. 순간 가볍게 주먹을 뻗었다.
— 훅...!
황야 저 멀리까지 순식간에 날아가는 번개의 창.
‘역시 연계기. 이게 최고거든.’
무형시로 경로를 만들자 유턴까지 해서 돌아온다.
그리고 이후에도 우진의 손가락을 따라 대협곡 여기저기를 누볐다.
‘오케이. 뇌권. 접수.’
쿨하게 새 힘을 승인한 우진.
아직 알림은 많이 남았다.
두근두근 대규모 확인의 시간.
‘자 쭉쭉 까볼까나.’
펼쳐진 스킬 목록.
일단 눈에 띄는 것은.
[상급 도(刀) 마스터리]
언월도 들고 설치던 첫 사망자의 스킬.
역시 믿는 구석이 있었다.
‘오우! 이 짜식 좋은 거 가지고 있었네.’
말 그대로 마스터리 능력.
도법 같은 걸 제공하진 않지만, 무기 다루는 실력은 확실히 증가한다.
흑참도를 휙휙 휘둘러본 우진.
그 감상은.
‘손맛이 좋아졌구만.’
이 기다란 장도에 무게를 실어 찍고 가르고 할 수 있으니 아주 기분이 상쾌하다.
다른 스킬은 은신계가 많았다.
뒤통수 치기를 좋아하는 놈들이었고, 더러운 술수도 많이 사용하던 놈들이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런데 나한텐 이미 기척 감추기가 있단 말이지.’
그 말은 ‘기척 감추기’를 능가하지 못하면 포인트에 불과하단 뜻이다.
빨랫감을 던지듯이 스킬을 정리하는 우진.
대부분은 하위 호환이었다.
‘포인트, 포인트, 포인트....... 너도 포인트.’
그런데 그때.
‘오! 너는 완벽한 투척이 있구나!’
능숙한 투척의 상위 호환.
[상위 스킬로 교체되었습니다.]
‘나이스!’
엄청 좋은 스킬은 아니지만 업그레이드 되는 건 언제나 기분이 좋다.
그렇게 계속 스킬을 정리하는데.
‘오! 이것도 상위 스킬!’
[완벽한 기척 감추기]
[’기척 감추기’의 상위 스킬입니다.]
‘기척 감추기’가 최상급으로 진화했다!
확인을 마친 우진.
‘오케이, 이제 스킬 쪽은 끝났고.’
이제 새로운 일에 착수한다.
“대지야 쉴 곳을 좀 만들어다오.”
땅에 손을 올리고 정신을 집중하자 신비한 일이 생겼다.
— 쿠구궁....
솟아난 반듯한 흙의 가옥.
지붕에 벽까지 있는 집이 생겨났다.
‘이건 거의 ‘호이포이의 술(術)’이로군.’
황야에 갑자기 돋아난 깔끔하고 아름다운 흙집.
그 문 앞에서 심호흡을 한 우진.
‘내부도 깔끔하기를!’
조각가로서의 실력을 확인할 시간!
흙의 가옥에 들어가서 방을 살핀다.
약 10평 정도의 깔끔한 원룸.
‘오 성공!’
비록 지금은 텅 비어서 허전하지만...
— 딱!
침대.
테이블.
의자까지.
손가락을 튕길 때마다 형상을 갖춰 가구가 된다.
테이블에 도시락과 물병까지 올려놓고 나니 이거 제대로다.
“좋군. 여기서 하루 묵지.”
슬슬 밤이다.
굳이 잠을 잘 필요는 없지만 여기서 아주 중요하게 할 일이 있다.
가급적이면 어둠의 땅 넘어가기 전에 하고 싶은 일.
그건 바로.
— 쿠구궁...
밖으로 나온 우진이 손을 휘젓자 흙의 감옥이 무너지고.
두목이 기절한 채 모습을 드러냈다.
‘이놈한테 힐 스킬을 연습해봐야겠어.’
한 명을 굳이 살려둔 이유.
힐을 사용할 수 있으면 어둠의 땅에서 아주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다.
이론은 다 외웠다.
자다 깨워서 물어봐도 4페이지 17번째 줄이 뭔지 바로 말할 수 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르쉬가 격투기를 수련할 때도, 르쉬가 밥을 먹을 떄
도, 르쉬가 코를 골 때도... 르쉬가 이를 갈며 잘 때도...! 나는 이 지옥의
필기를 달달 외웠다.’
노트를 번쩍 들어올린 우진.
이제 남은 것은 실전 뿐.
‘그리고 난 실전파야.’
아름답고 예리한 혈검.
그것이 메스처럼 우진의 손끝에 피어났다.
‘100번만 버텨라.’
우진의 목표는 하나.
실험체가 죽기 전에 힐을 터득하는 것.
— 푸욱...!
일단 배에 혈검을 푹 찔러넣는다.
“컥....”
눈을 뜬 환자.
“상태가 위중하군. 수술을 시작한다.”
장갑을 끼는 의사처럼 손을 든 우진.
정신을 집중하고....
“힐!”
집념의 힐 수련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