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데드가 되어 돌아왔다 61
— 저벅 저벅....
칼리아에게 다가가는 우진.
벽에 박힌 그녀의 눈에 서서히 공포가 깃들었다.
그때였다.
— 드르르륵....
복도 바깥의 병력이 문짝에 마력탄을 갈긴다.
“너흰 포위됐다! 칼리아님을 당장 인계해라!”
잠깐이나마 칼리아의 얼굴에 희망이 돌아왔다.
‘살아남은 녀석들이 있었군...!’
하지만 다음 순간.
우진이 손가락을 들어올렸다.
정신을 집중하여 날린 사령 거미줄.
그리고 바깥의 그림자가 기괴하게 움직이더니 스스로에게 총구를 겨눈 모양새
가 되었다.
“어... 어 마력총이......!”
— 드르르륵....
이번엔 좀 다르게 들려온 총성.
그리고 잠잠해진 복도.
이해할 수 없는 힘.
그리고 자신의 자리에 앉은 악마가 혀를 차며 말한다.
“의자 좋은 거 쓰네. 하긴 돈도 많을 텐데.”
— 빙그르르....
자신의 값비싼 의자에 앉아 빙글빙글 돌던 악마의 주위로 둥글게 불길이 치솟
는다.
순간 환각에 시달리는 칼리아.
‘권좌다. 저건 권좌야.... 내 자리 따위가 아니라....’
순간 열두 마리의 늑대가 그의 권좌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아있었다.
— 크르르르....
‘아니, 꿈이다. 이건 꿈이야. 지독한... 웃기지도 않은 악몽이라고...!’
현실을 부정해봐도 너무나 생생하게 들리는 악마의 발자국 소리.
그 걸음마다 내리치는 것은 번개.
어느새 공간을 이동해 자신에게 다가오고 있다.
— 콰르릉...!
다가온 악마가 가면을 벗었다.
드러난 것은 깊이를 알 수 없이 심원한 눈동자.
그 낯선 얼굴이 무표정하게 말한다.
“넌 약하다.”
순간 느껴지는 전신이 불타는 듯한 고통.
“그리고 난 지금부터.... 네가 약자에게 하던 짓을 그대로 돌려줄 것이다.”
무감정한 목소리.
그녀는 깨달았다.
자신이 무슨 짓을 하든 살 수 없다는 걸.
칼리아가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였다.
자신은. 죽을 것이다.
그때 우진이 뒤를 돌아보았다.
“복수 해야지?”
뒤에 있던 자루 머리 같은 것이 고개를 끄덕인다.
“예! 총대장님!”
자루 머리가 가볍게 손목을 푸는 가운데.
우진이 손가락을 튕겼다.
— 풀썩....
억제력이 사라지자 바닥에 쓰러지는 칼리아.
그 몸이 다시 강제로 일으켜졌다.
“어억....”
그 귀에 우진의 목소리가 심판처럼 꽂혔다.
“싸움을 준비해라 칼리아. 넌 오늘 미뤄왔던 죄값을 치르게 될 테니.”
그리고 대전 상대가 앞으로 나섰다.
지금껏 복면을 쓰고 있던 르쉬.
급조한 것인지라 할로윈 꼬마가 뒤집어 쓴 자루 정도였지만.
그 아래서 드러난 얼굴은 칼리아를 놀라게 하기 충분했다.
“르... 르... 르쉬...?”
붉은 머리를 정리한 르쉬가 이글거리는 눈으로 고개를 들었다.
“그래, 나다.”
칼리아가 믿을 수 없는 충격에 빠졌다.
“네, 네가 어떻게...?”
그때 우진이 바닥의 가구를 모조리 강혼으로 밀어냈다.
그리고 그 중앙에 뇌전으로 새겨진 원을 만들어냈다.
“커억....”
그 안으로 던져진 칼리아의 몸.
르쉬는 스스로 뛰어들었다.
상황을 정리하는 우진.
“말보다 빠른 건 몸의 대화. 복수에는 그게 더 어울리겠지.”
이제야 진정한 운명을 깨달은 칼리아의 눈에 경악이 차올랐다.
룰을 설명하는 우진.
“특능 없이. 스킬 없이. 육탄전으로 싸우는 거다. 손톱까지는 특별히 봐준다.”
— 콰쾅...!
가볍게 칼리아 근처에 낙뢰를 떨어트린 우진.
“특능 쓰면 바로 전기구이 흡혈귀 된다?”
그걸로도 부족해서 무형시의 구슬 몇 개를 날려보낸 뒤 연결로 번쩍이는 쇠창
살을 만들어줬다.
넌 이미 보이지 않는 감옥에 갇혀 있다는 경고.
그리고 시작된 1대1의 일기토.
— 빠드득....
르쉬가 지금껏 보여주지 않았던 무서운 표정으로 말했다.
“일단 기회를 주마.”
“기, 기회라고...?”
고개를 끄덕인 르쉬.
“우리 애들. 무시한 거 사과해라.”
여기까지 온 이유.
모든 거 다 재껴놓고 그거 하나 뿐이었다.
자신을 무시한 건 상관 없다.
하지만 클랜원을 무시한 건 절대 용서할 수 없었다.
‘너 따위가 클랜을 만들어?’
그건 괜찮다.
‘고작 그 따위가 클랜이라고?’
‘저것들 따위가 클랜원?’
‘너희들 따위가 흡혈귀 클랜이라고?’
이건 용납 못한다.
자신에겐 무슨 말을 해도 신경쓰지 않았다.
하지만 애들은 달랐다.
블랙 로즈의 문양만 봐도 주눅이 들고 기가 팍 죽어버리는 모습.
반드시 갚아주리라 다짐했다.
그때 싹싹 비는 칼리아.
살려면 이 방법 밖에 없다.
“미안하다... 미안해!”
“미안해?”
“그래... 내가 잘못했다. 르쉬! 진심으로 사과하마...!”
하지만 정신을 집중해서 힘을 끌어올리는 르쉬.
“늦었어.”
사과할 기회를 줬지 용서받을 기회를 준 건 아니다.
흡혈귀의 룰.
몸에 새겨진 종족의 규칙.
약자는 죄인이다.
지금껏 자신이 약자였으니, 죄값을 치러왔다.
굴욕과 모멸을 감당하며.
하지만 이제 죄인은 칼리아다.
모든 걸 감내해야 할 죄인.
“억울하면 니가 좋아하는 마약이라도 먹고 덤벼라. 덜 아프게는 죽을 수 있겠
지.”
르쉬가 자세를 잡고 투기를 끌어올렸다.
오늘밤 제법 많은 피를 빨았기에.
— 콰콰콰콰...!
머리가 온통 하늘로 치솟을 정도의 멋진 투기였다.
박수를 치는 우진.
“예술 점수. 100점.”
그리고 일방적인 전투가 시작되었다.
— 뻐억!
르쉬의 주먹.
바닥에 널부러진 칼리아가 뺨을 움켜쥔다.
그리고 드러내는 본색.
“때, 때렸어...? 나를? 르쉬가...?”
“그래. 때렸다.”
“네... 네가 감히 나를...! 르쉬 따위가...!”
격노한 칼리아.
혈검을 꺼내려는데.
— 콰쾅...!
낙뢰와 함께 우진의 말.
“아, 혈검도 금지야. 이건 칼리아 너를 위한 조건이니 날 믿어도 좋아.”
르쉬의 은닉 비도술.
순간순간 혈검을 섞어쓰는 예술적인 스타일.
실제로 본 그건 정말 아름답고 강력한 기술이었다.
‘장을 맞았나 했을 때 살이 찢기고, 권을 맞았나 했을 때 급소가 꿰뚫리지.’
하지만 그럼 복수가 너무 덧없어진다.
특능이 봉인된 칼리아는 몇 합 안에 찢길 테니까.
즉, 이건 르쉬에게 맘놓고 패보라고 기회를 준 것이나 다름 없다.
다시 격돌한 두 흡혈귀.
손톱이 칼리아의 급소를 찌르고 피가 비산한다.
“크어억...!”
순간 칼리아의 눈이 붉어질 때.
— 콰쾅...!
본능보다 무서운 낙뢰의 공포로 다시 특능을 봉인한다.
“어허. 특능 금지.”
“크아아악!”
분노를 터트리는 칼리아.
하지만 소용없다.
그렇게 육탄전으로만 이어지는 싸움.
— 훅...!
우진이 즐겁게 수하의 복수를 감상했다.
‘더킹. 원투. 그렇지.’
— 뻐벅...!
‘잽잽. 어퍼!’
— 뻐억...!
‘나이스 샷!’
안면 정타를 몇 번이나 허용하고 박살난 칼리아.
“꺼어억....”
그때 르쉬가 달려들어 목을 휘어감고 테이크 다운으로 전투를 이어간다.
— 쿵....
제압당한 칼리아 위로 올라탄 르쉬.
눕혀놓고 파운딩을 시작하는데.
— 뻑...! 뻑...! 뻐억...!
피를 줄줄 흘리면서 발악하는 칼리아.
“르쉬 따위가! 르쉬 따위가! 르쉬 따위가...!”
이제 뒤가 없으니 본색을 드러낸다.
그때 후 숨을 내쉰 르쉬.
앞머리를 쓸어올려 꽉 묶는다.
“그래... 난 너 때문에 내가 진짜 ‘나 따위’인 줄 알았거든.”
분한듯 이를 악무는 르쉬.
— 뻐억!
“하지만 총대장님이 알려주셨다.”
잠시 숨을 고른 르쉬가 다시 강력한 안면부 펀치를 꽂아넣는다.
— 뻐억!
그리고 절규하듯 외치는 말.
“나도.... 이런 나도! 뭔가를 할 수 있는 소중한 존재라는 걸.”
— 뻐어억...!
그때 잠시 매질을 멈춘 르쉬.
“넌 이걸로 때리기도 아까워.”
우진이 사준 너클을 벗고 맨손이 된다.
그리고 칼리아의 멱살을 잡고 일으켜세우는데.
마지막 확인을 구하듯이 우진을 바라본다.
‘음. 죽여야겠지.’
살려두면 복수의 기회를 주는 꼴이 된다.
갱생 불가능한 자들의 특징을 다 가진 녀석이니까.
저 우월감은 뿌리 뽑을 수 있는 게 아니다.
‘그 마녀가 생각난단 말이지.’
전생 파티원 중 하나였던 그 여자.
강림계 스킬, ‘아그니’의 보유자. 불의 마녀 아젤리아.
화속 마법사보다 더 강한 능력을 사용하던 그 여자는 자기보다 약한 자는 인
간 취급도 안 했다.
‘파티장이랑만 제대로 말을 섞고, 나 뿐 아니라 거의 모든 파티원을 벌레 취
급했지.’
그런 자들은 바뀌지 않는다.
설령 바뀐다 하여도, 그 기회를 가질 자격이 없다.
우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르쉬 네 뜻대로 하여라.”
“감사합니다.”
고개를 척 숙이는 르쉬.
칼리아가 발악했다.
“어디서 저런 강력한 용병을 구했는진 모르겠지만, 그거 하나 끼고 거들먹거
리는 꼴이 우습구나! 고작 르쉬 따위가...!”
르쉬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저분은 나의 주군이시다.”
“뭐...? 주군이라고...?”
“그래. 너와 다르게. 저분은 날 있는 그대로 봐주셨다. 심지어 흡혈귀가 아니
심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수하로 품어주셨지.”
르쉬도 알고 있었다. 우진이 흡혈귀가 아니란 것을.
빙그레 웃는 우진.
“음. 알고 있었나.”
고개를 척 숙이는 르쉬.
“예. 처음엔 매우 강력한 흡혈귀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 후엔 뭔가 다
른... 더 위대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총대
장님은 총대장님이시라는 겁니다.”
우진도 예상은 하고 있었다.
그는 단순한 흡혈귀라기엔 너무 강하다.
선보인 수많은 능력만으로도 이미 흡혈귀의 범주를 아득히 벗어났다.
그때 냉소하는 칼리아.
“주군은 얼어죽을. 넌 결국 개가 된 거야! 인간의 개가!”
매도하는 칼리아에게 르쉬가 피식 웃는다.
“넌 네 수하들을 전부 개로 생각하는 모양이로군.”
“뭐... 뭐?”
그리고 손톱을 뽑아내어 기세를 피워올리는 르쉬.
칼리아의 멱살을 쥔 채 한참 그 얼굴을 바라보았다.
“불쌍한 칼리아.”
칼리아가 피 섞인 절규를 내질렀다.
“지금 동정이라도 하는 게냐? 감히 르쉬 따위가...? 나를...?”
피식 웃는 르쉬.
“동정? 천만에. 어떻게하면 널 더 고통스럽게 죽일까. 그리고 마지막 인사를
뭐라 남길까 생각하던 중이었다.”
처연하게 웃는 칼리아.
“쓸데없는 고민이군. 내 죽음은 내가 스스로 선택한다.”
순간 사기가 터져나오며 칼리아의 공간이 격리되었다.
마치 현세가 아닌듯 분리된 원형의 결계.
“컥...!”
— 콰아아앙!
그 속에서 혈검을 불러낸 피투성이의 흡혈귀.
지체없이 자신에 몸에 박아넣는 구불구불한 형상의 단검.
그 부위는 심장이었다.
“꺼어어억....”
지독한 신음성과 함께.
눈코입을 포함한 7공에서 피를 흘리며 사악한 주문을 외우는 칼리아.
— 쿠우우웅...!
그리고 결계가 폭발하며 엄청난 기운이 터져나왔다.
“끄아아아아아!”
지독한 비명과 함께 발산되는 사악한 기운.
— 스아아아아아아!
“큭....”
“크억....”
힘이 약한 얼간이 3인방이 휘청거리며 밀려날 정도의 기세.
르쉬도 이를 악물고 사악한 기운을 간신히 버텨낸다.
오직 우진만이 멀쩡히 서서 그 정체를 알아차렸다.
도저히 믿고 싶지 않은 그 정체는.
“너....... 악마와 계약했군.”
거센 바람 속을 뚫고 울려퍼지는 음산한 목소리.
— 흐흐흐흐흐....
어른거리는 새까만 기운 속에서 이제 이 세상의 것이 아니게 된 얼굴이 엿보
인다.
사악하게 변한 칼리아의 얼굴, 전신, 그리고 영혼.
그건 세상을 등진 존재의 뒤틀림이었다.
마치 지옥 속 울림과도 같은 목소리가 말했다.
“고민했다. 이 힘을 받아들여서라도 내 존재를 한층 끌어올릴 것인지. 아니면
안온한 삶 속에 안주할지. 그리고 마침내 난 선택했다. 이 위대하고 아름다운
힘을 내 몸에 품기로.”
“어리석은 선택을 했군.”
우진의 표정은 착잡했지만, 머리로는 빠르게 정보를 정리하고 있었다.
계약된 존재를 강림시키는 것이 아니다.
지금 계약을 맺기 위해 불러내는 것.
즉. 이제부터 나타날 악마는 아직 계약된 존재가 아니다.
‘불완전 강림. 최악이지만 일말의 희망은 있군.’
그때 칼리아가 자신의 심장에서 검을 뽑아냈다.
“끄아아아악...!”
비산하던 피가 허공에 정지하여 마치 공간에 새겨진듯 머문다.
그리고 전해지는 마지막 목소리.
“내가 지옥으로 갈 바엔... 세상을 지옥으로 만들겠다...!”
순간 그녀의 심장이 뽑히고.
그 구멍에서부터 무언가의 손가락이 엿보였다.
그건 아주 끔찍한 존재의 손가락이었다.
우진이 그 정체를 알아차렸다.
‘놈이 이쪽 차원으로 넘어오고 있다.’
저기서 악마가 다 빠져나오면 칼리아는 사망.
그리고 인근 지역도 ‘삭제’되어 버릴 것이다.
‘최후의 수단치곤 매우 지독하군.’
빠르게 판단을 내리는 우진.
이미 시작된 현신을 막을 방법은 없다.
하지만.
완료된 현신을 끝내는 방법은 존재한다.
그건 바로....
‘악마를 죽이는 것.’
일반적으론 성립하지 않는 문장.
하지만 우진은 가능하다.
‘하위급 악마를 불러내서 다행이군. 아니, 그 이상은 애초에 불가능했겠지.’
악마의 격이 하위라는 것.
거기다 불완전 강림.
또한 자신의 특별한 힘.
이 세 가지 조건이라면 어떻게든 막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우선 준비를 해야한다.’
양손을 뻗은 우진이 일단 목이 잘린 클랜 간부들의 시체부터 전부 빨아들였다.
— 슈와아악...!
중상급 흡혈귀들의 시체가 전부 그의 힘으로 치환되었다.
[혈액 공급]
[상급 흡혈귀의 능력이 완전히 개방되었습니다.]
‘느낌 좋은데.’
이제부터 자신은 한층 강력한 존재가 되었다.
우선 손을 뻗은 우진이 자신의 패밀리어를 불러냈다.
“내게 와서 날 도와라.”
그것은 밤을 배경으로 떠오른 혈박쥐였다.
하지만 제일 특별한 건 이제부터다.
악마를 상대하기 위한 새로운 수단.
“결속.”
— 키리리릭...!
거대한 날짐승이 우진의 등에 안착하고.
그대로 주인의 육체와 결합한다.
“흐읍!”
피어오른 것은 거대한 피의 날개.
피의 날개 블러드 윙.
— 샤아아...!
고개를 든 우진이 자신의 거대한 날개를 한 번 펄럭였다.
그리고 피어난 만족스러운 미소.
“확인해보자고. 악마와 날개 달린 우진. 누가 더 강한지.”
순간 발산된 우진의 투기가 방을 가득 채우고.
— 콰콰콰쾅...!
그 순간.
마침내 세상에 존재해선 안 될 것이 모습을 드러냈다.
— 크아아아...!
흡혈귀의 사체를 뚫고 나타난 것은 거대한 악의.
오로지 파괴만을 위해 존재하는 전투 생물.
일생토록 마주치지 않길 기도해야 하는 살아있는 절망.
“왔구나.”
월드는 그것을 두고 악마(惡魔)라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