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데드가 되어 돌아왔다 60
클랜 ‘블랙 로즈’의 본부.
평소에는 좀처럼 동요하지 않는 고고한 흡혈귀 칼리아.
오늘만큼은 그녀도 당황을 감출 수가 없다.
“흑염제가 왜?”
갱단 ‘다크 파이어’의 수장 흑염제.
그간 암묵적 공생 관계를 이어온 두 집단이었다.
‘서로 물어뜯는 것보단 그 편이 이득이 더 많았으니까.’
하지만 선공을 가했다는 건 그 어린놈의 심경에 변화가 생겼다는 것.
“그게... 사유는 아직 밝혀진 바가 없습니다.”
칼리아가 뿌드득 이를 갈았다.
클랜은 둘째치고 스스로의 위신을 위해서라도 결코 용서할 수 없다.
“선포해라. 제대로 된 해명이 없으면...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고.”
하지만 그녀만큼이나 당황한 자가 있었으니.
갱단 ‘다크 파이어’의 본부.
흑염제가 벌떡 일어났다.
“내가 왜?”
그 아름다운 얼굴은 미공자라 불리기에 충분했다.
비교적 이른 나이에 조직을 대규모로 키워낸 실력자.
광역의 화염 능력. 게다가 스킬 자체에 색버프 흑(黑)이 발려 있기에 매우 강
력하다.
거기에 잔혹한 성격이 더해지자 갱단은 패배를 모르는 거대 조직이 되었다.
칼리아와도 제법 좋은 관계를 유지해왔다.
선남선녀끼리 공유하는 미묘한 바이브를 즐기면서.
그런데 갑자기 전쟁이라고?
부하의 보고가 이어졌다.
“그게... 칼리아 측에서 1시간 내에 공식적으로 해명하지 않으면 전면전도 불
사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흑염제가 거칠게 외쳤다.
“그러니까 왜!”
부하가 침울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자신도 이런 말을 하고 있는게 이해가 안 된다는 얼굴이었다.
“그게. 저희 애들 중 하나가 칼리아 클랜을... 박살내고 있답니다.”
결국 미공자가 황당함에 이성을 잃었다.
“우리... 애... 하나....? 그게 무슨 개소리야...?”
*
그 전말은 광기의 5인조의 이동 경로를 파악해야 알 수 있었으니....
“어이고... 밤공기 좋다....”
기분 좋은 우진.
드라이브를 즐기고 있다.
불타는 공장 부지를 나선 뒤 덜덜덜 이동하는 트럭.
‘슬슬 기름 떨어지겠네.’
동력부를 열어 마나 차저를 움켜쥔 우진.
자신의 마력으로 충전시켰다.
“괘, 괜찮으십니까...? 탑승물을 움직일 동력을 직접 공급하시다니....”
놀라는 르쉬에게 씩 웃어주는 우진.
“내가 누구?”
우진이다.
게다가 자신은 비상식량이 있다.
인벤에서 꺼낸 구울을 쏙 빨아먹고 마나를 회복한 우진.
“자 다시 가자꾸나. 죽일 것들이 많은 밤이니.”
그런데...
가는 길에 르쉬가 눈을 빛낸다.
“저, 저기! 저기도 칼리아의 거점입니다.”
“음?”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에는 작은 서점이 있었다.
“서점이?”
“예! 저기도 마약 보급소 중 하나입니다.”
유통 과정으로 치면 창고와 간이매점 역할을 동시에 하는 곳.
그때 칼슨도 눈을 빛냈다.
“저기 국수 파는 가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은 문을 닫았지만 뒷문으로 가
서 약속된 신호를 보내면 마약을 구매할 수 있습니다.”
홀쭉이 한센도 질세라 어딘가를 가리킨다.
“저기! 저 작은 모텔 꼭대기 층은 블랙 로즈 기동대 애들 거점입니다.”
하도 장사판을 크게 벌려놔서 가는 곳마다 조직의 영향력 아래 놓인 곳이 나
타난다.
‘무슨 바이러스처럼 퍼져있군.’
마침내 결정한 우진.
“얘들아.”
“예!”
“그냥 다 밀면서 가자.”
“예!”
자신이 전력을 발휘하면 여기서 목적지까지 일직선으로 4차선 대로를 뚫을 수
도 있다.
그러는 대신 그 힘으로 그냥 싸그리 몽땅 정리하면서 전진하기로 했다.
“작전 변경. 성동격, 에브리웨어.”
동에서 소리를 내고 서를 치는 것이 아니라.
일단 동쪽을 박살낸 뒤 다시 모든 곳을 박살내는 작전으로 변경한다.
왜냐?
가능하니까.
그럴 힘이 있으니까.
“일단 이 근방부터 밀자.”
“예!”
그렇게 시작된 정화 작업.
우진이 밤안개를 흘려넣으면 나머지가 정리하고 복귀하는 식으로 거의 순식간
에 하나의 거점을 털어먹을 수 있었다.
“다음은 한 블럭 너머다!”
그렇게 페인텔을 가로지르는 광기의 직선이 생겨났다.
— 쾅! 콰쾅! 콰콰쾅!
무서운 속도로 전진한 5인의 파괴전대.
마침내 2번째 공장에 도착했을 때.
“갈겨!”
13야수의 레이저 쇼.
창고가 거의 녹아내리는 가운데.
“분기! 압수탄!”
우진의 새로운 ‘투척술’이 빛을 발하고.
또 하나의 창고가 터져버렸다.
[돌이킬 수 없는 인연]
[페인텔의 주요 세역 ‘블랙 로즈’와 완전한 적대 관계가 되었습니다.]
[이 변화는 돌이킬 수 없습니다.]
“어 상관 없고.”
애진작에 감수한 일이다.
적대가 아니라 불구대천의 원수여도 상관 없다.
그리고 수없이 반복되는 알림들.
[스탯 강화 포인트 +1]
[스탯 강화 포인트 +1]
[스탯 강화 포인트 +1]
“포인트 너무 고맙고!”
[경험치를 획득했습니다.]
[경험치를 획득했습니다.]
.
.
[경험치를 획득했습니다.]
[레벨업!]
“레벨업도 너무 고맙고!”
새로 획득한 주요 스킬은 2개 정도였다.
[’천벌’을 계승했습니다.]
[’지령’을 계승했습니다.]
‘오, 괜찮은 스킬이 2개나 들어왔네.’
아무래도 압수탄에 휘말려 강한 녀석들 2놈이 죽은 것 같다.
일단 ‘천벌’은 표적형 공격 스킬.
단일대상 지정으로, 가히 하늘의 심판이라 부를 수 있는 낙뢰를 내리꽂을 수
있다.
쿨타임이 길고 범위가 좁지만...
자신은 둘 다 커버할 수 있다.
‘단일 대상 지정기는 강력하지만 범위가 좁지. 하지만 그걸 연달아 발동한다면?’
작정하고 발동하면 낙뢰의 비도 가능하리라.
섬광처럼 꽂히는 수많은 번개의 향연.
‘칼리아의 최후에 아주 잘 어울리는 스킬이 되겠군.’
[지령]은 마침내 등장한 유틸형 정신능력.
일종의 텔레파시다.
‘원래라면 거의 쓸모가 없었겠지만... 이제는 혈서약 관계인 수하들과 긴밀하
게 연락을 취할 수 있다. 좋은 스킬이야.’
이제 사냥 9단의 마지막 솜씨를 발휘할 시간이다.
양손을 뻗은 우진이 정신을 집중해 새로운 기술을 선보였다.
“광역 융합.”
인간 거르고, 파괴된 자재 거르고 흡혈귀의 사체만 쏙쏙 빨아오는 융합의 힘.
‘융합이 대상을 가린다는게 이럴 땐 아주 도움이 되는군.’
그렇게 모두 빨아먹자 순간적으로 전신에 투기가 번쩍인다.
[혈액 공급]
[다음 승급까지 필요한 혈액을 2/3 이상 확보하였습니다.]
‘좋았어!’
거의 급행열차 탄 속도로 성장하는 우진.
‘승급이 아니니 새로운 능력 개방은 없지만.... 특능의 위력은 더욱 강해졌다.’
밤안개를 테스트하는 우진.
주위를 질감이 있는 연기처럼 물들인다.
그를 중심으로 생겨난 암흑지대.
그건 하나의 심연이었다.
‘야수 레이저쇼에다 자욱한 밤안개. 내가 걸어다니는 축제로구나.’
두 손을 들어올린 우진.
마지막으로 광활한 밤하늘을 향해 13야수의 레이저를 쏘아낸다.
하늘을 물들이는 화려한 레이저쇼.
그 마지막은 새로 얻은 스킬 ‘천벌’이 장식했다.
— 꽈르르릉... 꽈광!
“내가. 이 밤의 주인이다.”
— 쿠구궁....
그렇게 2차 창고까지 완벽히 우진의 손아귀에 함락되었다.
*
한편 칼리아측.
뒤늦게 전말을 파악한 그녀의 본부에서 다급한 보고가 이어진다.
하룻밤 사이 폭탄과도 같은 사건들이 연달아 터지고 있었다.
“뭐? 공장 뿐 아니라... 거점들이...? 일시에...?”
당황한 표정의 칼리아.
“저, 정확히 동시에 공격받은 건 아니지만... 여기저기가 괴멸 수준으로 함락
되고 있습니다.”
보고가 끝나자 다른 부하가 다시 긴급하게 외친다.
“그보다 중요한 건 1, 2차 공장 라인이 모두 정지했다는 겁니다. 복구조차 할
수 없게 완전히 파괴되었습니다...!”
칼리아의 눈에 공포가 깃들었다.
“내... 내 공장이...? 전부...?”
그건 그냥 ‘시설’ 정도가 아니다.
자신의 돈, 자신의 권력, 자신의 힘이 전부 담긴 정수......!
그때였다.
또 다른 부하가 입술을 깨물며 말한다.
“창고에 있던 물량도 죄다... 죄다 불에 타버렸다고 합니다. 전소, 완벽히 폐
기되었으며 즉, 당분간 물건 공급에 차질이......”
“창고가...? 창고까지 왜...? 도대체....”
기절할 것 같은 칼리아의 귀로 새로운 보고가 흘러들어왔다.
“게다가... 그렉과 자이로가 사망했다고 합니다.”
클랜의 공격대장과 2공장 총지휘 책임자.
그 핵심 간부 2명이 모두 죽었다.
비틀거리는 칼리아.
“그렉... 자이로....가 모두...?”
순간 그녀가 눈을 번쩍인다.
“감히 누가? 감히 누가 이런 짓을 하고 있다는 말이냐!”
그리고 흘러나온 말은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것이었다.
“예상과 달리, 첫 번째 보고가 사실이었나봅니다. 모든 파괴 현장에서 목격된
것은 다크 파이어의 문양이었습니다!”
다크 파이어.
정말로 다크 파이어의 짓이란 말인가.
거짓이라 생각했다.
아니길 바랬다.
하지만 정말로. 정말로 흑염제였다.
그만한 인원수가 아니라면, 감히 이 도시에서 누가 이렇게 동시다발적으로 자
신을 공격할 수 있단 말인가.
어떻게 모든 곳에서 동시에 문양이 목격될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 목격자의 말에 따르면... 이상하게도... 그 모두가 랭크 1의 말단 단
원이라고 합니다.”
문양에 새겨진 작대기.
그건 분명 1개 뿐이었다.
이리저리 움직이던 칼리아의 눈.
“흑염제 네 이놈.......”
랭크가 몇이건, 숫자가 몇이건 그런 건 이제 중요하지 않다.
선전포고가 들어온 이상, 반격에 나설 뿐.
“전쟁이다. 전쟁이야! 우리의 모든 병력을 소집해라!”
그때 마지막 부하의 나직한 목소리.
“그리고 이건 좀 의외의 보고입니다만.”
“전시다! 명확히 얘기해라!”
흠칫 놀란 부하가 빠르게 정보를 토설한다.
“빨간 머리 흡혈귀가 목격되었다는 얘기가....”
“흡혈귀?”
이 도시에 자신의 클랜을 제외한 흡혈귀는......
순간 떠오른 이름.
‘르쉬? 아니, 그건 불가능하다.’
그러고도 다시 차오르는 의심을 애써 걷어냈다.
‘도대체 르쉬 따위가 어떻게...?’
— 와장창......!
그때 창문이 깨지며 누군가 빙그르 덤블링을 해서 나타났다.
“까— 꿍!”
칼리아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악마?’
유령처럼 나타나 우뚝 선 것은 새하얀 악마였다.
그 뒤로 나타난 것은 머리에 헝겊 자루를 뒤집어 쓴 정체불명의 4인조.
‘위, 위험하다!’
일어서서 방어하려고 하는데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그리고 그 순간.
하얀 악마에게서 방출된 새까만 연기.
‘바... 밤안개라면... 흡혈귀? 하지만 누가 이 정도로 강력한 밤안개를...?’
— 스아아아...!
클랜 간부는 모두 흡혈귀다.
즉 동족 스킬에 내성이 있다는 것.
하지만 그런 내성을 지닌 수하들이 모두 밤안개에 뻣뻣하게 굳어버렸다.
‘뭐, 뭐야...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냐......!’
그때 발작이라도 하는 듯 일시에 손발을 번쩍 들어올린 수하들.
눈을 까뒤집으며 침을 질질 흘리더니.
마지막으로 모두 ‘동시에’ 목이 사라져 죽었다.
— 촤차착....
십이 단검을 회수한 우진.
“어우 시설 좋네. 여기가 본부라 그런가?”
칼리아가 비현실적인 광경 속에서 넋이 나간 사람처럼 말했다.
“누... 누구.... 누구냐......!”
살면서 이런 식으로 반응해본 적은 없었다.
그만큼 엄청난 당황스러움이었다.
그런데.
손을 흔들며 해맑게 인사하는 악마.
“아 칼리아 하이? 난 우진. 네 새로운 원수야.”
“새, 새로운 원수?”
“어, 그리고 마지막 원수기도 하지. 왜냐면, 넌 오늘 밤 죽거든!”
구연동화처럼 설명하는 우진.
칼리아는 이 비현실적인 광경을 믿을 수가 없었다.
자신의 본부.
자신의 방이 10초도 안 되어 완벽히 제압당했다.
그리고.
‘왜 몸은 움직이지 않는 거냐...!’
육신이 보이지 않는 사슬에라도 묶인 것처럼 옴짝달싹을 할 수가 없다.
유일하게 자유로운 것은 입과 눈 뿐.
마치....
마치 누군가가 그 부분만을 ‘허락’해준 것처럼.
하지만 얼굴이라도 움직이면 최후의 수단을 쓸 수 있다.
암시의 능력을 끌어올려 매혹을 발산하려고 하는데.
그때였다.
“끄어억...!”
— 쾅!
허공을 날아 벽에 처박힌 칼리아.
십자가처럼 손을 들어올린 채 사지가 고정되어버렸다.
이유는 단 하나다.
저 악마의 손가락이 움직였기 때문.
“한결 보기 좋군.”
굳어버린 근육. 움직일 수 없는 몸.
이제는 얼굴까지 속박되어 버렸다.
“아... 아아....”
단어조차 되지 못한 신음만을 흘리는 칼리아.
그 순간.
그녀에게로 저벅저벅 악마가 다가오기 시작했다.
“밤은 이제 시작이니까. 버텨.”
— 콰득......
일시에 몸을 조이는 압박감.
마치 압축 프레스에 깔린 것처럼 으스러질 것 같다.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그 음성에 담긴 힘을 느낀 순간.
칼리아는 예감했다.
오늘밤 자신의 목표는......
곱게 죽는 것이란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