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데드가 되어 돌아왔다 42
거대한 퍼즐방.
우진이 그 앞에서 진지한 생각에 잠겼다.
‘하. 드워프들... 단순무식한 종족이라는 오명을 씻기 위해 복잡한 장치를 선
호한다는 말은 들었다만....’
실제로 억울하긴 할 것이다.
대장장이는 힘으로 때려박는 직업이 아니라 섬세함과 치밀함을 요구하니까.
그렇기에 그들은 자신의 ‘똑똑함’을 과시하기 위해 이런 퍼즐을 만들곤 했다.
문제는 우진은 별로 똑똑한 편이 아니었다는 점.
‘지력 스탯이야 마법에 좋을 뿐이지 일상생활에서 똑똑해지는 건 아니니까.....’
지력을 높인다고 똑똑해지는 건 아니다.
마법에 대한 이해력이 높아질 뿐.
물론 엄청 많이 올리면 마법에 대해 통달하게 되면서 ‘속도’가 상승하긴 한다.
그렇다고 현명해지거나 지혜로워지는 건 아니다.
‘말하자면 인간 컴퓨터가 되는 셈이라고 할까.’
마법 연산력 뭐 이런 게 상승하는 거다.
‘뭐 지력을 뺀다고 해도 내가 똑똑한 편은 아니긴 하지.’
오히려 그는 좀 단순무식한 편에 가까웠다.
노력만으로 강해지려도 한 것도 좋게 말하면 우직한 거고 나쁘게 보면 무식한
짓이었으니까.
‘그 대신 나에게는 포기하지 않는 근성이 있다.’
우진이 퍼즐을 풀기 시작했다.
기본은 이거였다.
스위치를 조작하면 불을 뿜어내는 용모양 석상.
그걸 이리저리 옮겨서 정확한 위치에 둬야한다.
그 과정에서 석상이 움직이는 ‘레일’을 조정하고, 장애물 등을 잘 치워야 한다.
‘와 일단 석상 움직이는 거 자체가 보통 일이 아니네.’
크고 무거운 용 석상.
옮기는 것만 해도 강한 근력이 필요했다.
‘드워프는 자신들에게 힘과 지성이 다 있는 걸 매우 자랑스러워했지.’
그렇기에 퍼즐은 힘도 요구한다.
다행히 우진의 근력은 석상을 옮기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조금 옮겨보니 목적지를 알 것 같다.
네모난 홈.
거기에 석상을 끼워서 그 앞의 장치에 불을 뿜어내게 하면 된다.
‘아하 이 석상의 불로 화력을 만족시키면 되는 거구나.’
레일이 깔린 퍼즐방.
석상은 이제 고작 처음 위치에서 몇 m를 움직였다.
목적지까지는 수십 m를 더 이동해야 한다.
— 쿠궁....
그때 첫 번째 장애물이 가로막았다.
거대한 큐브 형태의 돌덩이.
‘이걸 뭐 어떻게 레일을 조정해서 치워야 하는 거 같은데....’
어렵다.
일단 장애물부터 다 파괴했다.
‘영격!’
영격으로 부수고.
‘도약!’
언데드 폼에 풀파워 도약의 데미지 부스트를 이용해서 부수고.
‘영격!’
다시 쿨타임이 돌아온 영격으로 부수고.
그렇게 석상을 가로막는 큐브를 몽땅 박살냈다.
‘와 이제 석상 옮기기가 훨씬 쉽겠네.’
수수께끼 하나가 풀렸다.
장애물은 그를 막아세울 수 없다.
‘이제 석상을 저기로 옮겨야 하는데.’
그런데.... 레일을 여기저기 해봐도 안 된다.
‘아 저거 조작하고 이거 조작한 다음 저놈 조작하면 되는 거 아니야?’
안 된다.
길이 자꾸만 꼬인다.
‘에이 모르겠다.’
— 쿠궁....
석상을 들어서 옮기려고 하는데 그것도 안 된다.
‘석상의 머리만 떼서 가져갈까?’
불 뿜는 부분만 잘라서 가져가는 해결책.
안 된다. 실패하면 큰일난다.
‘아니 잠깐. 그러고보니까 화염만 뿜으면 되는 거 아니야? 그걸 꼭 석상이 할
필요가 없잖아?’
석상을 버린 우진.
퍼즐방을 풀쩍 가로질러 목적지에 다가갔다.
“자 이제 내가 석상이다.”
그냥 그 위치에 자기 자신이 섰다.
그리고 용 흉내를 내며 기를 끌어모아 입에서 불을 뿜어냈다.
‘우진류 드래곤 파이어다.’
— 후우우욱...!
자신이 석상 역할을 하는 계책.
그런데.
‘이게... 되네...?’
그냥 홧김에 해본 행동이었다.
퍼즐 풀다 기분 전환 삼아 해본 스킬 자랑.
‘공략법도 솔직히 한 개도 기억 안 나서 답답하고.’
그런데 분출한 화염이 워낙 강력하니까 조건이 만족되어버렸다.
‘어... 땡큐...? 땡큐...!’
다음 방으로 가는 문이 열렸다.
— 쿠구궁....
우진이 싱글벙글 다음 구역으로 향했다.
‘클리어!’
*
그러나.
‘다음 방도 퍼즐이네. 아 드워프들 진짜....’
또 등장한 퍼즐방.
이번엔 높다.
등반형 시험이었다.
‘바닥에 있는 그림을 잘 맞추면 사다리가 하나씩 내려오는 거 같은데.’
그걸 타고 꼭대기까지 올라가야 한다.
‘근데 풀어야 하는 퍼즐이 5개나 되네.’
바닥에 있는 도합 5개의 퍼즐.
마치 조각난 그림처럼 보이는 걸 원래 모습으로 복구시켜야 하는 거 같다.
‘근데 퍼즐이 네모가 아니라 불규칙한 모양이라 엄청 빡세.’
기괴한 톱니처럼 돌아가는 퍼즐.
우진이 바로 시선을 돌렸다.
‘어 못 풀어.’
빡통이어도 괜찮다.
그걸 인정하는 용기가 중요하다.
자신의 단점보다 장점을 살려야 한다.
‘어떻게든 위에까지만 가면 될 거 같은데. 엄청나게 높네.’
우진이 저 먼 꼭대기의 목표물을 바라보았다.
빛나는 구슬.
저걸 획득하면 방이 클리어되는 거 같다.
‘강혼 능력도 안 닿고. 단검도 중간에 조작력이 풀려서 떨어져버리네.’
워낙 높아서 이런 저런 수단이 안 통한다.
그리고 아마 구슬을 떨구는 게 인정 안 될 확률도 크다.
앞의 방으로 보아서, 저 위에 올라서서 홈을 밟고 구슬을 잡아야 할 거다.
‘어떻게 중간까지는 가도 목표에 도달하기는 어려울 거 같아. 즉 퍼즐을 풀어
서 사다리를 움직이게 만들어야 한다는 건데....’
못 풀겠다.
퍼즐이 아니라 악령들린 공포의 조각들 같다.
‘에라 모르겠다.’
— 쿠드드득....
일단 언데드 폼으로 변신했다.
그리고 절벽의 바위를 타고 미친듯이 달려 올라갔다.
— 크르르릉....
진짜 야수처럼 바위에 매달린 우진이 위를 올려다보았다.
이제 위로는 매달릴 곳이 없다.
‘일단 1/4은 왔지만 아직 엄청 멀다. 그냥 점프로는 안 되고. 이건 어떨까.’
— 후우웅!
언데드 폼의 강력한 육체로 1차 풀파워 점프.
그리고 그 상태에서 허공에 2연격 에어블로우를 쓰면서 동시에 도약을 발동.
그러면 허공에서 한 번 더 강한 추진력이 생긴다.
‘즉, 3단 점프라는 거지.’
— 퍼퍼펑!
이제 반은 넘었다.
‘자 한 번만 더...!’
양손 삭풍을 아래로 뿜어내며 최대한 버틴다.
잠깐이지만 공중에 뜬 효과.
그때 다시 쿨이 돌아온 에어블로우와 도약 연계.
— 퍼엉!
‘이제 거의 다 왔다!’
마지막으로 허공에 날리듯이 체이서를 소환했다.
“체이서!”
거기로 점멸하며 탑승.
인간폼으로 돌아와 구르듯이 손잡이를 잡았다.
“체이서 부스터다!”
쏘아지는 폭발적인 마나 스트림.
무서운 속도로 날아가는 야수 모드의 체이서.
“가자아아아!”
올라탄 우진이 손잡이를 잡고 강력한 발진을 버텼다.
— 후쿠우웅!
그리고 마침내 도착한 꼭대기.
우진의 손에 빛나는 구슬이 들어왔다.
‘클리어.’
— 쿠구궁....
아래의 문이 열린다.
퍼즐 풀이에는 여러 방법이 있다.
그 중에는 제작자의 의도를 박살내버리는 게 제일 짜릿하다.
‘어 복잡한 퍼즐? 나 못 풀어~.’
그림을 맞추라고?
머리를 쓰라고?
그런 건 평범한 인간들이나 하는 짓이다.
‘몸이 약하면 머리가 고생하는 법이지. 수고.’
깔끔한 인사와 함께 우진이 퍼즐방을 떠났다.
*
다음 구역은 대놓고 전투력을 요구하는 방이었다.
‘도전자의 강함을 보여주라는 거네.’
이건 쉽다.
풀파워 변신.
‘힘을 요구했으니 힘을 보여주마. 내 진정한 힘을.’
— 콰드드득.
인간과는 다른 구조의 신체.
자세를 낮춘 그가 압도적인 속력으로 쏘아져나갔다.
목적지는 거대한 방 전면의 동그란 징.
일종의 전투력 측정기다.
처음 들어올 때 내려쳤던 용머리처럼 일정 파괴력을 맞추면 문이 열리는 방이다.
— 꽈아아앙...!
양손을 모아쥔 우진의 강펀치가 징에 꽂혔다.
바로 열리는 문.
마치 그 정도면 됐으니 그만 때리라는 듯 울리는 징.
— 쿠구구궁....
‘클리어.’
우진이 두 손가락으로 브이를 만들며 유유히 문을 통과했다.
무서운 속도로 방 하나가 또 뚫렸다.
*
[산 자여 출입을 금하노라...!]
다음 방은 트랩 지대였다.
‘와 많이도 깔아놨네. 이건 너무 심한 거 아니냐...?’
수없이 깔린 와드형, 바닥형, 부유형 트랩들.
드워프들의 장기인 마도공학 장치를 활용해서 아주 제대로 깔아놨다.
이 정도면 날아서 통과하는 것도 힘들어보인다.
‘어? 그런데 작동을 안 하네?’
일단 하나씩 돌파해보려고 이동하는데.
이상하게 트랩들이 작동을 안 한다.
모든 트랩이 고장난 것처럼 멀뚱멀뚱 가만히 있는다.
‘아... 혹시...?’
그제야 처음 울린 웅장한 목소리가 기억났다.
‘산 자여... 출입을 금하노라.....? 난 산 자가 아니라서 그런가?’
우진이 자신을 내려다보았다.
자기도 가끔 까먹는데. 그는 죽어있다.
무슨 비유가 아니고 진짜 죽어있는 몸이다.
‘그래서 진짜 하나도 작동 안 한다고?’
우진이 무슨 트랩 판매 매장에 온 것처럼 두리번 거리며 걸어간다.
그때 이유를 알아냈다.
‘감지 센서!’
심장 박동이나 체온 등으로 감지하는 모양이다.
여긴 도전자를 제외하면 죄다 기계니까.
‘근데 나는 심장도 안 뛰고 체온도 비정상적으로 낮으니까...?’
감지 장치들이 바보가 되어버렸다.
심지어 건드려도 작동 안 하는 트랩.
그가 문워크 동작으로 여유롭게 방을 가로질렀다.
‘클리어.’
드워프의 유적이 그의 발 아래 정복되고 있었다.
*
다음 방엔 반가운 놈들이 있었다.
계속 퍼즐과 트랩만 상대하다가 드디어 ‘적’이 나온 것이다!
“와! 적이다! 싸움이다!”
양손을 들고 환호성을 울리는 우진.
— 쿵... 쿵....
일종의 문지기 역할로 중형 크기의 적이었다.
‘안드로이드 같은 거라고 보면 되겠네. ‘
금속으로 만들어진 매끈매끈한 놈들이 3m 정도 되는 크기를 과시하며 걸어온다.
형태는 인간. 숫자는 여섯.
‘방어력이 좀 강하겠군.’
금속질이니 어지간한 공격은 안 통할 거다.
일단 단검을 날려봤다.
— 깡......!
튕겨나오는 단검.
‘역시 그냥 단검은 안 먹히네.’
방어력 강한 놈이 여럿.
하지만 속도는 다소 느리다.
‘몸통엔 단검 데미지가 거의 안 들어가니까... 헤드샷은 어떨까.’
우진이 정신을 집중해 단검을 하나의 위치로 날려보냈다.
‘12발 연속 헤드 일점사.’
— 촤르륵... 퓨퓨퓨퓩!
도달하는 순간 마나를 더 넣어서 푸른 늑대의 공격까지 넣었다.
— 퍼퍼퍼펑....!
하나의 점을 공격하는 12개의 단검.
그리고 후속타로 폭발하듯 데미지를 넣는 마나 늑대들.
‘애쉬라인이 알려준 마나 폭발이 먹힌다!’
그러자.
— 콰지지직....
전기가 끊긴 듯 쓰러지는 문지기.
‘역시 이건 못 버티지.’
자신의 마력과 엘프가 손봐준 단검의 위력을 믿은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그렇게 비슷한 놈들을 다 헤드 일점사로 정리했다.
— 쿵... 쿵... 쿵....
픽픽 쓰러지는 놈들을 보니 자신의 힘이 무서울 지경이었다.
[대량의 경험치를 획득했습니다.]
[대량의 경험치를 획득했습니다.]
[레벨업!]
[레벨업!]
‘음 아쉽게도 스킬은 없네. 드워프 놈들 혼이라도 있으면 좋은데.’
기계형 적이라서 스킬은 없다.
리치처럼 영혼으로 스킬을 주면 좋은데 아쉽게 됐다.
그래도 레벨이 2개나 올랐다.
‘와 벌써 레벨 62야.’
그의 레벨은 이제 60이 넘었다.
레벨 공개할 일 있을 때 당당할 정도는 됐다.
아니, 오히려 현재로선 어깨에 힘 좀 줘도 된다.
‘중견 모험가 우진 완성.’
문지기들의 부품을 챙겼다.
크기가 큰 놈들인데다 터져버리지도 않아서 정말 엄청나게 모을 수 있었다.
‘애쉬라인이 기뻐할 걸 생각하니까 나도 기분이 좋네.’
이 정도면 그녀의 연구도 크게 진척될 것이다.
여길 온 건 정말 좋은 선택이었다.
그 어렵다는 드워프 던전이 자신에게는 식은 죽 먹기다.
‘퍼즐 풀기가 제일 쉬웠지.’
어깨가 으쓱해진 우진이 다음 방으로 향했다
*
‘좋아 드디어 보스다.’
자신만만한 우진.
보통은 보스방 앞에서 제일 긴장해야 한다.
하지만 우진은 반대였다.
그가 유일하게 공략법을 ‘정확히’ 기억하는 놈이기 때문.
퍼즐? 기억 안 난다.
보스. 기억 난다.
즉.
‘넌 뒤졌다.’
우진이 문양에 손을 올렸다.
빛이 차오르고 마침내 보스방의 문이 열린다.
— 쿠구구궁....
‘유 레디? 아임 레디.’
유창한 영어실력으로 자신이 빡통만은 아님을 과시한 우진이 보스방에 진입했다.
놈을 순삭하기 위해서.
‘유 다이. 아이 윈.’
지혜가 없어도 된다.
승리의 여신은 용감한 자를 좋아한다.
지혜로운 놈은 다른 여신을 알아봐야 할 거다.
“기갑룡 컴 온!”
호기롭게 외친 순간.
거대한 동굴 저 멀리.......
용의 외침이 들려왔다.
— 쿵...... 쿵......
발소리만으로도 무시무시한 거대 기계용.
우진이 오싹함과 즐거움을 동시에 느끼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여기가 놈의 무덤이 될 것이다.
‘히어 유어..... 무덤!’
그리고 예언은 현실이 되었다.
‘3분.’
컵라면 하나를 끓이기에도 빠듯한 시간.
기갑룡이 세상에서 지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