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데드가 되어 돌아왔다 33
할당량은 중요한 단어다.
특히 여기 어촌에서는 더 중요하다.
그걸 못 지키면 관리인 샤다스에게 ‘처벌’을 받기 때문이다.
그건 다름아닌 물고문.
어인(魚人) 샤다스는 자기 종족의 이점을 살려서 사람들을 획기적으로 괴롭혔다.
‘물에 끌고 들어가서 갑자기 잠수를 하면 진짜 영혼까지 털려버리는 느낌이었
지.’
놈은 그걸 수영놀이라고 불렀지만 당하는 입장에선 생사가 오가는 끔찍한 경
험이었다.
‘그냥 죽도록 처맞는 거랑 수영놀이. 어느 쪽이 더 괴로운지 분간이 안 갈 지
경이었으니까.’
샤다스는 매우 흉폭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자기는 쾌활하고 호탕하다고 생각하는데, 옆에서 보면 그냥 기분파에 충동적
인 미친놈이었다.
‘거기다 엄청나게 쪼잔하기까지 했지.’
남자답다고 주장하는 거 치고는 정말 쫌생이 같은 놈이었다.
할당량이 안 나오면 개맞듯이 맞았다.
종족도 강력한데다 레벨도 높아서 도저히 반항할 수 없는 상대였다.
‘사실 할당량은 채웠지만 그 새끼 사리사욕 때문에 생긴 추가분을 못 채운 거
였지.’
도망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버티는 사람들도 많았다.
샤다스는 그걸 이용해먹었다.
‘인부들에겐 대부분 돈을 벌어야 한다는 절실한 목표가 있었으니까.’
여기 흘러들어온 사람들은 다 강제로 끌려온 게 아니다.
돈이 필요해서 온 거다.
샤다스는 그 사정을 이용해 악독하게 사람들을 괴롭혔다.
게다가 월급도 중간에서 얼마 떼먹기도 했다.
일하는 입장에서 가장 미치는 일이었다.
‘이건 복수라기보다는... 그래. 보답이라고 하자.’
놈이 자신에게 한 걸 되돌려주는 거 뿐이다.
그 정도면 놈도 불만 없을 거다.
그때 익숙한 거리가 등장했다.
그가 있던 사무실로 가는 골목이었다.
‘물고기 새끼야 오랜만이다. 물론 이번 생의 넌 내가 처음이겠지만.’
놈의 뺨다구를 후려칠 생각을 하기만 해도 가슴이 짜릿하다.
‘나도 뒤지게 처맞았으니까.’
아주아주 ‘그리운’ 얼굴을 보기 위해 그가 달려갔다.
*
‘입장은 시원하게. 복수는 화끈하게.’
— 쾅!
발로 뻥 차고 들어간 사무실.
우진이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나 왔다 개새끼야.”
책상에 다리를 올리고 장부를 들여다보고 있던 덩치 어인이 화들짝 놀랐다.
“뭐야? 니, 니가 누군데?”
음파 감지를 쏴서 다른 놈이 없는 걸 확인한 우진이 저벅저벅 책상으로 다가
갔다.
“나? 우진. 네 묘비에 적힐 이름이다.”
잠시 패닉에 빠졌던 샤다스가 이내 정신을 차리고 본색을 드러냈다.
“우진? 묘비? 이거 웬 미친놈이 갑자기 사후세계가 궁금해졌나.”
그러면서 책상 밑에서 뭔가를 꺼내려고 하는 게 보였다.
우진도 무형시를 꺼내들었다.
“손 들어. 손들면 쏜다.”
말도 안 되는 소리에 잠시 버벅거리던 어인 샤다스.
“에이 미친 새끼가...!”
결국 삼절곤 같은 걸 꺼내서 휘두른다.
‘나왔군. 처벌 몽둥이.’
익숙한 무기였다. 저걸로 개맞듯이 많이 맞았으니까.
저걸 샤다스는 처벌 몽둥이라고 부르면서 자기가 매우 정의로운 일을 한다는
듯이 말했다.
‘잘 쓰지도 못하는 무기면서 근력빨로 더럽게 아프게 때렸지.’
그냥 몸부림에 가까운 솜씨였지만 맞는 입장에선 내장이 흔들리는 느낌이었다.
거기다 교묘하게 패는 솜씨만큼은 뛰어나서 죽지 않을 정도로 조절도 잘 했다.
‘그리고 자기가 이 어촌의 질서를 지키고 있다고 생각했지. 정말 미친놈이야.’
하지만 이제 그런 건 불가능할 거다.
자신이 진짜 정의를 집행할 거니까.
‘이게 우진식 정의야 받아들여.’
일단 실력차를 보여주기로 했다.
십이 단검을 꺼내서 가볍게 상대해줬다.
— 채챙....
거의 놀아주는 수준이었지만 샤다스는 점점 뒤로 밀리고 있었다.
“어어....”
심지어 단검의 비행과 분열 능력은 쓰지도 않았다.
그냥 짧다는 단점만 있는 무기로 삼절곤의 어지러운 움직임을 다 쳐내버렸다.
“아... 아이씨! 너 뭔데? 누구야? 왜 찾아와서 지랄인데...?”
결국 화를 내는 샤다스.
놈의 입장에선 당연한 일이다.
누군지도 모르는 놈이 갑자기 사무실에 찾아와서 행패를 부리는 거니까.
‘거기다 자기가 밀리니까 슬슬 쪽팔리겠지.’
허나 말없이 계속 삼절곤을 흘려내는 우진.
이걸론 부족하다. 더 화내야 한다.
그래야 옛날 기억이 떠오르면서 더 찰지게 패줄 수 있다.
“다시 말하지만 내 이름은 우진. 니가 살려달라고 빌어야 할 사람이다.”
결국 샤다스가 폭발했다.
“뭔 개소리야 미친 새끼가...!”
한껏 밀려난 놈이 이제 더는 안 된다는 듯 무기를 회수했다.
삼절곤이 합쳐지더니 트라이던트, 즉 삼지창의 형태가 되었다.
— 치치칭....
끝에서 사출된 3개의 창날.
샤다스가 의기양양하게 무기를 들이밀었다.
우진은 그저 빙그레 웃었다.
‘길이의 격차를 최대한 이용하겠다는 거군. 어디서 양아치 개싸움은 좀 해보
긴 했나보네.’
사실 샤다스가 그렇게까지 허접한 놈은 아니다.
마물과 싸워서 레벨업도 했고, 아마 자기 레벨 평범한 수준은 될 것이다.
하지만 상대가 너무 안 좋았다.
그것도 좀 무서운 방식으로 안 좋았다.
우진은 악인 한정으로 자비심이 없기 때문에.
“잠깐.”
우진이 잠깐 하고 손바닥을 들어올렸다.
“내가 신기한 걸 보여주지.”
새로 얻은 스킬을 자랑해야 한다.
일단 도망 못 치게 문을 닫아버렸다.
‘강혼.’
— 쿵...!
귀신들린 것처럼 닫혀버리는 문짝.
어인이 당황한다.
‘오 이제 강혼의 물리력 개입도 제법 강해졌네.’
무생물에 혼을 개입시켜 조작하는 리치의 스킬 강혼.
체이서로 연습했더니 이제 이런 것도 가능해졌다.
말하자면 스킬 숙련도가 올라간 것이다.
그걸 모르니 놀랄 수밖에 없는 어인.
“뭐... 뭐야, 설마 마법사냐...?”
우진은 어이가 없었다.
‘멍청한 놈. 내가 마법사면 무릎꿇고 빌어야지 반말을 지껄이고 있을 때가 아
닐 텐데.’
그냥 솔직하게 말했다.
“나 마법사 아닌데?”
그러자 놈이 다시 삼지창을 들어올린다.
“그럼 뭐야 너! 나한테 왜 지랄인데?”
우진이 피식 웃었다.
다시 과격해진 말투.
마법사가 아니면 해볼만 하다고 생각한 거다.
이렇게 단순하고 멍청한 놈을 이제와서 다시 보니 진짜 한심했다.
“너 그거 잘 쓰지도 못하잖아. 무슨 바다의 아들이라고 허세만 부리고. 너 싸
움 개못하는 거 알거든?”
샤다스의 특징. 남자다움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런 놈이 가장 화나는 말.
바로 ‘너 허접’이라는 말이었다.
“이, 이런 미친 놈이....”
다시 달려들려고 하는 샤다스.
그러나.
“잠깐.”
아직 자랑할 게 남았다.
그는 수많은 스킬의 보유자이기 때문에.
— 포퐁....
손바닥 위에 물의 가호를 집중시켜 작은 물구슬 하나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사념으로 천천히 날려보낸다.
— 두둥실....
“뭐... 뭐야...?”
어인이니 물을 무서워하지는 않는다.
다만 구슬 형태로 날아오니 당황했다.
그때 물구슬이 갑자기 살아있는 것처럼 확 커지더니 놈의 얼굴을 덮쳤다.
“흐어어억!”
잠깐 놀라더니 이내 멀쩡하다.
킬킬 웃는다.
당연하다. 보통 사람이라면 숨이 막혀서 꺽꺽 거리고 있을 거다.
근데 물 속에서도 아무렇지도 않은 어인 능력이 발휘되었다.
“뭐야, 이게 네 스킬이냐? 물방울 공격?”
우진이 다시 솔직히 말했다.
“어 그거 내 스킬인데?”
샤다스의 얼굴에 회심의 미소가 떠올랐다.
“난 어인이다. 이런 건....”
그때 다시 들어올린 우진의 손바닥.
“근데 내가 스킬이 하나라고 말한 적 있냐?”
“그게 무슨... 크아아악!”
— 치지지직...!
순간 놈의 얼굴을 감싼 물구슬에 강력한 전류가 흘렀다.
“크아아악!”
멍청하게도 버둥거리며 얼굴을 쓸어내다가 손에도 전기가 올라 쓰러진 어인.
놈에게 우진이 저벅저벅 다가갔다.
“야, 강도 최대한 낮춘 거야. 그냥 찌릿한 정도인데 엄살이 너무 심한 거 아
니냐?”
비틀비틀 일어나는 샤다스.
“이... 이... 이게 도대체... 넌....”
정신이 하나도 없다.
아마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 지도 모를 거다.
뭐에 당했는지도 모르고, 상대가 누구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너무 강하다.
“이... 이... 내가... 이.... 너....”
뭔 소린지도 모를 말을 지껄인다.
아직은 기운이 남았는지 허세를 부린다.
“너... 이 새끼...!”
‘그래. 벌써 포기하면 재미없지. 넌 진짜 오장육부 전체가 개털려야 되니까.’
절대 그냥은 못 끝내준다.
그때 삼지창으로 공격해오는 어인.
— 훙!
피하지 않았다.
대신 양손의 손톱을 일시에 꺼내서 엑스자로 휘두르며 무기를 동강내버렸다.
— 스캉!
인간의 것이 아닌 길고 검은 손톱을 본 샤다스가 겁에 질렸다.
“뭐... 뭐야 그거... 너... 너도 수인족이냐?”
“아닌데? 이런 수인족 봤냐 넌?”
“그... 그럼 뭐 스킬인가...?”
“아닌데? 나 마물이야.”
샤다스가 어안이 벙벙해졌다.
“마... 마물?”
“어. 마물.”
그리고 최대 출력으로 변신한 우진.
그의 몸이 순식간에 괴물의 모습이 되었다.
— 쿠드드득...!
거대한 신체. 흉폭한 기세.
놈의 입장에선 사무실에 갑자기 무시무시한 악마가 나타난 셈이었다.
“어... 어.....”
놈이 풀썩 주저앉으며 뒤로 물러났다.
쿵.
벽에 등이 닿았을 때야 겨우 입을 열었다.
“뭐... 뭐야 너 도대체... 뭐냐고....”
우진이 손톱을 칭칭 부딪히며 저벅저벅 걸어갔다.
‘수영놀이보다 더 재밌는 추격놀이하자.’
그가 각도를 조절했다.
일부러 공간을 열어주면서 접근했다.
냅다 도망치면 문으로 갈 수 있게 길을 내준 것이다.
“에... 에이씨... 으아아아!”
역시 슬금슬금 눈치를 보다가 튀어나간다.
그래서 그냥 보내줬다.
강혼으로 친절하게 문까지 열어줬는데 그것도 모르고 신나서 도망친다.
‘그래 튀어. 이제 시작이니까. 난 너를 그냥 죽일 생각이 없거든.’
갚아주려면 아직 멀었다.
사람을 그렇게 괴롭혀놓고 쉽게 죽으려고 하면 양심이 없는 거다.
어인의 도망치는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았다.
‘평소에 용감한 척이나 하지 말던가. 진짜 추하네.’
사실 저게 본 모습이다.
원래 강한 모험가를 보면 굽신거리던 놈이다.
‘넌 어쩌면 그렇게 살게 두는 거 자체가 벌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마냥 둘 생각 없다.
이곳의 지리를 훤히 알고 있는 우진.
그가 샤다스를 인적이 드문 해안가로 몰아갔다.
‘죽이러 왔으니까 죽이고 가야지.’
비틀거리는 놈을 천천히 추격하며 마치 사냥감을 몰듯이 쫓아갔다.
계속 도망가던 어인이 해안가에 도착하더니 의기양양하게 외쳤다.
“네가 아무리 강해도 수영까지 잘 할 순 없지. 난 어인이라고!”
— 풍덩!
그리고 바다로 뛰어든 샤다스.
‘진짜 개 멍청하네. 그럴 시간에 1m라도 더 수영쳐서 도망가겠다.’
저거는 그냥 본능인가 보다.
모자란 짓을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운명 같은 게 있는 것이다.
‘그래도 완전 허세는 아니지. 어인은 진짜 물고기 수준으로 수영을 잘 하니까.’
우진이 십이 단검을 꺼냈다.
‘분열.’
— 스스슷....
그의 뒤로 펼쳐지는 분열된 단검들.
‘비행.’
12개의 단검이 각자 자리를 찾아 초고속으로 날아갔다.
— 퓨퓨퓨퓩.
샤다스가 아니다.
바다. 거기에 꽂히듯이 자리를 잡은 12개의 단검.
— 치치치칭.
샤다스를 중심으로 일종의 진을 형성했다.
‘고기잡는데는 그물. 그중에서도 전기 그물이 제격이지.’
단검으로 커다란 어망같은 것을 만들어서 뱀장어의 술을 부여할 생각이다.
“자 문제다 지금부터 내가 뭘 할려고 할까?”
자기를 둘러싼 단검의 포위망을 보는 샤다스.
아까 당한 전기 충격기가 떠올랐다.
“서... 설마...?”
그의 눈에 떠오른 경악.
“어 좀 짜릿할 거야. 참아.”
빙그레 웃은 우진.
그걸 본 샤다스의 얼굴에 공포가 떠올랐다.
“아... 아... 아.... 안.........”
“돼.”
펼친 손을 움켜쥐며 외친 시동어.
— 쩌저저정...!
순간 바다에 찬란한 빛이 번쩍였다.
누군가에겐 절망. 우진에겐 짜릿하고 상쾌한 복수의 빛이었다.
*
그리고 얼마 뒤......
모든 수모를 갚아준 우진.
그가 만족스러운 얼굴로 샤다스의 열쇠를 찾았다.
‘역시 항상 가지고 다니는군.’
무거운 금속 열쇠.
이게 비밀 지하실의 문을 열어줄 거다.
그건 바로 샤다스의 수탈 창고.
이 마을에 온 진정한 목적을 달성할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