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데드가 되어 돌아왔다 32
희귀종을 죽이는 건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죽인다면 말그대로 ‘희귀한 소재’를 입수할 수 있다.
가령 물초롱이의 거대한 두개골처럼 말이다.
— 쿠궁....
‘이걸로는 건틀렛이랑 다리 보호구 세트 하나 만들어야겠다.’
우진이 거대한 마물의 머리통을 보며 생각했다.
‘변화 옵션 넣으려면 비용이 좀 들겠지만 그래도 색이 완전 하얘서 멋있네.’
언데드 폼에 사용할 새하얀 갑주 역할을 해줄 것이다.
팔다리 위주로 해서 기동력은 살리고 파괴력은 올리기로 했다.
‘물초롱이가 뼈다구 강도는 아주 단단하니까.’
희귀 마물 소재이니 괜찮은 유니크가 하나 튀어나올 것이다.
게다가 하도 거대한 두개골이라 건틀렛과 다리 보호구 다 만들어도 재료가 넉
넉했다.
‘영차.’
멱살을 잡듯이 끌고 나와서 해체한 뒤 인벤토리에 보관했다.
주변의 새들이 겁도 없이 구경을 하다가 포르르 날아갔다.
‘휴, 이제 뼈 파밍은 끝났고. 이제 더 중요한 게 남았네.’
어마어마한 살덩이.
이 거대한 마물은 뼈다귀를 제외해도 살점도 제법 맛있을 거다.
‘다른 사람 입맛에는 몰라도 내 입맛에는 무조건 맛있겠지.’
왜냐면 자기는 그냥 먹는게 아니라 융합으로 먹어서 종족 경험치를 채우기 때
문이다.
‘융합.’
발동된 스킬.
해체된 살점을 쑥쑥 빨아들였다.
‘맛있다 맛있어. 진한 물고기 스프 같아.’
언데드의 달콤한 육즙만큼 맛있진 않았지만, 벌레와 물고기의 혼종이라 두 가
지 종족의 맛이 느껴져서 좋았다.
그리고 차오르는 종족 경험치.
[생명 에너지를 모으는 중....]
[절반의 생명력을 확보했습니다.]
‘와 벌써 50%야 거의 반이네.’
이 핏빛 액체가 가득 차면 또 멋진 일이 생길 것이다.
‘지금도 희귀종 하나는 쉽게 사냥하는데 변신 능력까지 강화되면 얼마나 더
강해질까?’
우진이 즐거운 상상과 함께 시체 파밍을 마쳤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게 남아있었다.
스킬 파밍.
자신에게만 허락된 최고급 능력.
우진이 물초롱이의 스킬을 써봤다.
‘물의 가호.’
— 우우웅....
이름처럼 물의 구슬이 자신을 감싼다.
돌아다니는 것도 자유롭고 방어력도 좋은 훌륭한 스킬이었다.
‘마나를 좀 먹긴 하는데 나는 마나통을 엄청 올려놔서 괜찮지.’
현재 우진의 마나는 28포인트.
동레벨 마법사 수준은 아니어도 30렙 법사 정도는 우스운 수준이다.
이 넘쳐나는 마나로 스킬 응용을 해볼 시간이다.
‘이런 식은 어떨까.’
— 불룩....
손가락으로 콕콕 찌른다.
마음대로 움직이는 물구슬의 변화가 보인다.
‘물 속에 들어와 있는 셈인데 그 안에서 물이 조종이 되네.’
손으로 내미는 곳으로 구슬이 넓어진다.
즉 확장이 가능한 것이다.
‘그럼 축소는 어떨까? 아예 옷처럼 입는 것도 가능할까?’
전신에 얇게 물의 막을 씌우는 형태라면 더 편리하고 눈에 띄지 않는다.
‘해보면 되지.’
정신을 집중한다.
그러자 구슬이 줄어들어 자기를 감싼다.
마치 진공 압축을 한 거처럼 몸에 밀착되었다.
‘된다!’
극도로 얇게 몸을 감싼 수막.
처음 시작은 이거였다.
자기에게 있는 ‘사념’이나 ‘강혼’ 등으로 조종스킬을 물의 가호에도 적용하는
것.
‘스킬 연계가 내 진짜 힘이니까.’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생각보다 더 자유자재야.’
사념은 시체, 강혼은 무생물에 적용되는 조종술이지만 물이라는 액체에도 어
느 정도 적용이 가능했다.
거기에 유류로 파동을 만들어서 손에 씌우는 식으로 물을 움직이니 별 게 다
가능하다.
‘구슬을 키우는 건 물론이고 줄이는 것까지 가능하다.’
구슬 형태가 아니라 몸에 밀착된 얇은 막으로 만들 수도 있다.
게다가 구슬의 범위를 더 넓혀서 다른 존재를 보호해줄 수도 있었다.
이게 끝이 아니다.
최대한 줄여서 손바닥 위에 작은 물구슬을 만들수도 있었다.
‘이 상태로 에어블로우와 조합한다면?’
— 퍼펑...!
물포탄을 쏠 수 있다.
‘공격력은 그렇게 높지 않지만 순간적으로 변수를 만들어낼 수 있어.’
게다가 공격력도 추가가 된다.
바로 이런 식으로.
‘물포탄에 뱀장어의 술을 씌우면?’
— 찌리리릿!
허공에서 폭발하는 전기공을 보며 우진이 미소지었다.
‘전기 충격기가 생겼군.’
우진의 원수 반인 반어.
놈이 믿는 건 물에 대한 저항 능력이다.
어쩌면 그걸 역이용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전생에 놈은 정말 미치도록 두려운 존재였지. 하지만 이제는 진다는 상상조
차 되지 않는다.’
계승은 진짜 엄청난 능력이었다.
원래대로면 여러 스킬을 한 몸에 가지고 있는 거 자체가 이상한 일이다.
강자들은 스킬북으로 여러 개 운용하기도 하지만 우진처럼 수십 개를 쓰는 건
불가능하다.
‘게다가 이게 끝이 아니야. 앞으로 스킬은 더 많이 늘어날 거다.’
그는 점점 더 강해질 터였다.
어쩌면 무한대로 말이다.
눈앞에 빛나는 길이 깔린 느낌이었다.
거기로 계속 걸어가기로 했다.
아니, 질주하기로 했다.
“가자 체이서!”
우진이 다시 길을 나섰다.
목적지는 북서쪽.
자신의 전력을 또 한 번 상승시켜줄 곳.
화산에 가기 전 마지막으로 들려야 하는 목적지가 있었다.
*
— 타타타탓
달려오는 인수일체의 형상.
그게 어렴풋하게 보이는 새벽이었다.
— 쿠궁....
체이서가 묵직하지만 정확하게 멈춰섰다.
드디어 평원이 끝나고 목적지에 도착한 것이다.
“고생했다 체이서.”
진짜 짐승처럼 등을 쓸어준 우진이 다정하게 마나 차저를 교체해줬다.
그리고 일단 인벤토리에 체이서를 수납했다.
“일단 안에서 기다려. 다음에 또 신나게 달려보자.”
우진이 먼 곳의 경치를 봤다.
수평선에 떠오르는 해.
여긴 해안선이었다.
‘동이 틀 때까지 달렸어. 하루 아낀 셈이네.’
원래 호수에서 야영을 할 계획이었다.
근데 거대한 물고기 한 마리의 살점을 다 빨아먹었더니 힘이 넘쳐났다.
‘원래 융합은 체력을 채워주는 스킬이니까 말이지.’
그리고 밤새 여기까지 달려왔다.
마침내 도착한 목적지.
“생선 냄새는 여전하네.”
북서부의 어촌 마을.
그 근처에 도달했다.
여기는 그에게 있어 추억의 장소.
정말 그리운 마을이자 다시 올 거라곤 예상하지 못한 마을이었다.
‘왜냐면 여기엔 정말 보고 싶기도 하고 절대 보기 싫기도 한 놈이 살거든.’
이 마을엔 정말 보고 싶은 얼굴이 있었다.
너무 보고 싶어서 눈물이 날 것 같은 얼굴이었다.
‘널 상상하기만 해도 짜릿해서 눈물이 나.’
그 놈은 다름아닌 전생의 악연.
‘꼭... 눕혀놓고 뒤질 때까지 패버리고 싶은 놈이지. 그걸 생각만해도 속이
시원하다.’
그래서 실행하러 간다.
놈한테 얻어맞은 거 다 돌려주고 더하기 1대만 더 때려줄 생각이다.
‘왜냐면 그게 막타니까.’
곧 뒤질 놈의 얼굴을 떠올리며 우진이 어촌의 깊숙한 곳으로 향했다.
*
“야이 새끼들아! 그렇게 실어서 오늘 내로 일 끝나겠냐! 한 번에 10개씩!”
“한 번에 10개씩!”
상자를 옮기는 인부들.
그리고 닥달하는 관리인들.
어촌의 익숙한 풍경 속에서 우진이 걸어갔다.
‘이 냄새. 이 소리. 이 분위기. 정말 지독하게 익숙하네.’
이 개같은 어촌은 오늘도 잘도 돌아간다.
촌이라고 하니까 너무 작은 마을 같은데, 실제론 제법 규모가 있었다.
그냥 깡촌에서 벗어난 정도지만 그래도 몇 가구만 사는 정도의 마을은 아니었다.
이 외진 마을을 잘 아는 이유는 하나다.
‘여기서 나는 또 한 번의 기나긴 인부 생활을 했으니까.’
살기 위해선 돈을 벌어야 했다.
여기로 온 이유는 노동력만 있으면 돈을 벌어먹을 수 있어서였다.
지원자가 별로 없고, 그래서 계속 일할 사람을 구한다.
반대로 버티기만 하면 안 짤리고 돈을 벌 수 있었다.
‘그래서 이 악물고 버티고 괜찮은 검 한 자루를 마련한 다음 사냥을 시작하려
고 했지.’
진짜 꾹 참고 일만 했다.
장비를 갖춰서 사냥할 생각만 하면서 다 참았다.
그때 놈을 만났다.
‘정말 개같은 놈이었지. 지금 생각해도 치가 떨린다.’
놈은 그냥 악연도 아니고 아주 개새끼였다.
‘정확히는 인어새끼라고 해야하나.’
좀 특이한 놈이었다.
수인족으로 어인(魚人)이라는 종족이었다.
완전 마물처럼 특이한 생김새는 아니다.
기본적으로 사람 형상을 하고 있다.
하지만 지느러미도 있고 물에서 숨도 쉬고 수영도 엄청 잘한다.
어인의 기본 종족빨이다.
‘그게 이 지역에선 엄청난 메리트라 문제였지.’
공장처럼 굴러가는 수산업 마을이라 어인 종족이 떵떵거리기가 좋았다.
놈은 자신의 장점을 아주 잘 써먹었다.
‘물에 들어갈 일도 많고, 어인은 기본적으로 체구가 크고 힘이 강하니까.’
인부들은 다 저렙 노동자들이고 그 어인 새끼는 가끔 사냥도 다니고 하면서
레벨도 얼추 높인 상태였다.
‘한 60쯤 됐나. 이 어촌에선 거의 왕처럼 군림할 수 있는 레벨이었지.’
종족빨과 레벨빨로 사람들을 엄청나게 부려먹었다.
거기다 지위까지 있었다.
말하자면 관리인 같은 거였다.
‘노역장으로 치면 감독관 같은 놈이니까.’
힘있고 강한 놈이 권력까지 있다?
마물이 나은 수준일 정도로 사람들을 거의 쪽쪽 빨아먹었다.
그중엔 우진 자신도 있었다.
‘고생 진짜 많이 했지. 월드에 온 이래 진짜 세상의 혹독함을 배웠다고 할까.’
어찌보면 노역장과 비슷했다.
근처에 북부 노역장이 있다.
광산처럼 지하에 처박혀서 일하지는 않는다.
대신 춥고 싸늘한 이곳에서 제대로 된 의복 없이 개처럼 굴러야 한다.
하는 일도 어찌보면 하루종일 생선 만지고 다듬는 일이라 더 미칠 것이다.
여기도 거기랑 하는 일은 비슷하다.
생선을 잡고 다듬고 가공하고 상품화하는 것.
‘그리고 또 관리인들한테 시달리고 처맞는 것.’
그래도 버틸 수 있었던 이유.
그건 쥐꼬리만한 자유와 보다 가까운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는 지하처럼 노예는 아니었으니까. 최소한 자유인 신분으로 일을 했으니
까.’
그거 생각하면서 ‘나는 행복하다 나는 버틸만하다’ 노래를 속으로 부르며 겨
우 버텼다.
그야말로 행복회로의 끝판왕이었다.
‘반대로 생각하면 자유인이면서도 노예 취급을 받은 거였지만....’
그때는 돈이 너무 급했다.
처맞고 온갖 굴욕을 버티면서도 돈을 벌어야 했다.
‘하지만 이제 다르다. 난 그 시절의 나와는 차원이 다른 존재가 되었다.’
이제 참을 이유가 없다.
지금 자신의 레벨은 55.
하지만 수많은 보상 포인트와 스킬들을 통해서 90레벨 정도의 전투력은 나올
거다.
게다가 그건 그냥 기본이고 언데드 폼 상태에선 추정 불가 수준이다.
그 상태로 스킬 연계까지 들어간다? 상대를 갈아서 마시는 것도 가능할 거다.
‘즉, 그 새끼는 이제 뒤졌다고 보면 된다는 거지.’
어찌보면 일종의 금의환향을 한 셈이다.
무시무시한 힘을 가지고 고향에 돌아온 거니까.
‘물론 여기 사람들 아무도 나를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미래의 일이니 여기서는 없던 일이다.
즉 발생하지 않은 사건들.
하지만.
자신의 기억 속에는 선명하다.
그걸 없던 일로 하라고하면 못 참는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 타임 패러독스? 제2의 기회? 그런 건 개나 준다.’
모조리 돌려준다.
모든 것을 갚아준다.
무조건 10배 갚아주고 1대 더 친다.
자신은 그러려고 되살아난 셈이니까.
‘그래 그러려고 나는 다시 돌아왔다. 이 언데드의 몸을 하고서라도.’
우진이 익숙한 골목을 지나 어느 사무실을 뻥 차며 입장했다.
— 쾅!
거기에 앉아 있는 것은 너무나 그리운 그 얼굴.
“나 왔다 개새끼야.”
시작부터 ‘전기 충격기’를 만들어낸 우진.
그가 입이 찢어져라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