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데드가 되어 돌아왔다 25
마지막 구역.
그건 리치의 처소 그 자체였다.
— 쿠구구궁....
문을 열고 도착한 거대한 백색 공간은 얼핏 텅 비어있었다.
‘무섭도록 공허한 곳이지.’
하지만 잘 관찰하면 저 멀리 중앙 건물이 있다는 게 보인다.
‘저기가 바로 리치의 처소로군.’
마물도 지형도 아무 것도 없다.
그저 네모난 건물이 있을 뿐.
‘새하얀 곳에 입구가 없는 건물 하나만 있다. 정보 없는 사람은 여기서부터
혼란에 빠지지.’
마지막 구역.
여기는 진입 방법부터가 까다롭다.
구조상 저 안으로 가야 것은 확실한데, 문이 있는 것도 아니고 다 막혀있다.
그저 사방이 벽으로 둘러싸인 건물.
저기가 바로 리치 본인의 처소이자 안식처였다.
그러나 우진은 방법을 알고 있었다.
‘점멸을 쓰면 들어갈 수 있다.’
바로 자신의 스킬인 점멸이다.
이건 원래 주인인 리치가 드나들던 방법이기도 했다.
살아있을 때 리치는 고위 마법사였고 타락한 후엔 마법 능력이 더 강해졌다.
짧은 거리의 공간 도약 정도는 쉽게 할 수 있는 강력한 마법사.
‘점멸 정도는 연속해서 쓸 수도 있겠지.’
그렇기 때문에 그는 처소를 보호하는 가장 완벽한 방법으로 입구가 없는 형태
를 취했다.
혹시 모를 침입자들을 원천 봉쇄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당연히 벽은 마법으로 보호받고 있고, 그 마법을 유지하는 와드는 벽 내부에
있기 때문에 평범한 방법으론 파괴할 수도 없다.
‘그래서 여길 처음 공략한 팀은 그냥 허탕을 쳤고 벽을 무식하게 파괴한 파티
가 처음으로 처소에 진입했다고 했지.’
지난 생의 기억을 떠올렸다.
며칠간 물리 공격과 마법 공격을 퍼부어 벽을 파괴했던 파티.
그 파티도 마지막 보스를 잡지 못해서 다음 팀에게 영광을 양보 했다고 한다.
힘을 다 쏟은 상태로 갑자기 보스를 만나니 싹 쓸려버린 것이다.
우진은 그런 강력한 보스를 직면하기 직전이었다.
‘일단은 준비부터 하고 들어가자.’
필살기나 마찬가지인 점멸.
여기선 그게 봉인된다.
정확히는 진입을 그걸로 해야하기 때문에 쿨타임 동안 사용하지 못하게 된다.
‘이제 대략 몇 분 정도면 점멸 쿨이 돌 것 같다만....’
그 몇 분이면 보스전에서는 수십 번을 죽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그렇기에 모든 상황을 대비해야 했다.
‘체력이랑 마나는 융합 때문에 만땅이고. 아이템 손상된 것도 없고.’
일단 기본적인 준비는 이미 되어있다.
융합으로 쿨타임까지 회복되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불가능했다.
‘그렇다면 내가 준비할 수 있는 건 하나지.’
처음부터 변신을 하고 들어가는 것.
언데드 폼은 일반 상태의 육체보다 월등하게 강력하다.
‘물론 그만큼 전투를 빨리 끝내야 할 필요가 있다.’
변신에 제한시간이 있다거나 그런 건 아니다.
그냥 힘들다.
지쳐서 풀파워로 전투를 이어갈 수 있는 시간이 한정되어 있다.
단순하게 생각해도 폭발적으로 날뛰면 그만큼 빨리 지치기 마련이다.
언데드 신체라 버티는 것이지 평범한 인간의 육체면 이 정도 변화를 수용하지
못하고 그냥 무너질 것이다.
‘흠, 그래도 아까 해보니 대략 몇 분은 버틸 수 있을 것 같던데.’
시간을 잘 맞춰야 한다.
힘이 빠지면 의지와 상관없이 육체가 원상복귀할 수도 있다.
‘괜찮아. 그때는 점멸이 다시 돌아올 테니까.’
몇 분의 변신 후.
그때면 점멸쿨이 돌아올 것이다.
그걸로 마무리를 하거나 하면 된다.
— 쿠드드득....
결심을 굳힌 우진이 변신했다.
언데드 폼 최대 출력의 육체가 기존의 인간형 육신을 대체하여 전신을 갑옷처
럼 감쌌다.
그게 끝이 아니다.
또 하나.
— 후우웅....
무형활에 최대출력의 화살을 장전했다.
이제야 진짜 모든 준비를 마친 셈이었다.
‘약간 오바하는 것 같지만... 여기선 긴장할 수밖에 없거든.’
철저히 대비하는 이유.
내부의 보스가 뭔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안에 있는 것은 리치의 본체가 아니다.
본체는 이미 오래 전에 죽었고, 그가 생명력을 담아두었던 라이프 베셀도 마
력을 대부분 잃었으니까.
하지만 베셀 안에 일부 남아있는 마력이 원래 리치의 수호자 노릇을 했던 ‘의
체’들을 움직이고 있다.
의체란 리치가 사용하던 가짜 육체로 일종의 대체 몸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인간형에 크기는 그리 크지 않지만, 마법으로 만들어진 의체라 하나하나가 매
우 강력하다.
‘마도공학의 정수라고도 할 수 있지.’
마도공학은 말하자면 기계와 마법의 결합이었다.
정교하고, 강력하다.
그 정수가 바로 의체다.
‘마법과 기술력의 장점만 골라담았으니 그럴 수 밖에 없지.’
대신 약점이라고 할만한 것도 있다.
에너지가 다 떨어지면 작동을 하지 못한다는 것.
이 역시 마법과 기계가 동시에 갖는 약점이었다.
‘전력 공급이 없으면 기계는 멈추지. 마도공학 장치도 비슷해. 동력원만 제거
하면 되는 싸움이야.’
반드시 동력 장치가 있다.
그걸 부수는게 계획이었다.
정면승부가 아니라 동력원만 부수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대비를 갖춘 이유는...
놈들이 지독하게 빠르기 때문이다.
‘점멸.’
마침내 벽 안으로 들어섰을 때.
그야말로 리치의 처소라고 할만한 고풍스럽고도 음산한 장소가 나타났다.
벽에 박혀있는 것은 라이프 베셀.
그 아래에 끈 풀린 인형처럼 앉아있는 것은 모두 4개의 의체들이었다.
인간형이지만 평범한 인간은 절대 아니다.
철저히 전투를 위해 구성된 신체들.
그때 침입자를 감지한 베셀의 구슬에서 붉은 빛이 번쩍이고 동시에 의체들에
동력이 공급되기 시작했다.
‘역시 동력원은 베셀 그 자체였군.’
리치의 힘이 담겨있던 그릇, 라이프 베셀.
저걸 부수는 것이 이번 전투의 목표다.
— 콰콰쾅!
일단 최대출력의 무형시를 날려보았으나 택도 없었다.
베셀에는 흠집도 나지 않았다.
‘배리어가 있다. 의체 자체가 베셀과 공명하며 지키고 있는 거야.’
베셀에는 모두 4개의 붉은 구슬이 있었다.
얼핏 무형시로 충분히 깨트릴 수 있을 것 같으나 기이할 정도로 단단했다.
아무래도 의체들이 마법 술식의 일부가 되어 일종의 진을 형성하고 있는 것
같았다.
‘설마 저놈들 다 부숴야하는 건 아니겠지?’
그때 순식간에 하나 둘 눈을 뜨는 의체들.
언뜻 신비한 광경이었으나, 넋놓고 바라보지 않았다.
대신 바로 움직였다.
전투인형은 사람과 달리 상황을 파악하는데 시간을 할애하지 않으니까.
그저 침입자를 죽일 뿐이다.
지독하게 빠른 속도라는 건 이런 걸 말한다.
전투개시에 돌입하는 시간 약 0.3초.
— 키기긱.
투두두두.
날아드는 마력의 탄환들.
그걸 피하며 우진이 가진 이동 스킬을 섞어 복잡한 무빙을 했다.
하지만 정확히 추적하는 마력 탄환들.
— 파파파팟...!
벽에 탄환이 튀며 무서운 소리가 들렸지만 우진은 에어블로우로 반대쪽을 향
해 신형을 날렸다.
그리고 마침내 발사된 첫 번째 무형시.
— 콰쾅...!
대응사격이라고 하기엔 훨씬 강력한 보답이었지만 우진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먼지 속에서 의체 하나가 솟구쳐올라 우진을 향하고 있었다.
‘역시 피했군.’
하지만 우진은 놀라지 않았다.
이걸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난 안 피하고 받아주지.’
날아드는 의체를 움켜쥔다.
마기가 감도는 언데드 팔이 목을 틀어쥐고 그 미간에 무형시의 끝이 닿았다.
— 콰아앙!
일종의 근접 사격.
머리가 날아간 의체가 바닥에서 꿈틀거리며 다시 일어나려 했다.
그때 베셀의 구슬 하나가 힘을 잃은듯 붉은 빛이 사라진 것이 보였다.
그때를 놓치지 않고 베셀에 달라붙어 속사를 갈겼다.
— 콰아앙!
결국 터져나가는 첫 번째 구슬.
하지만 끝난 게 아니다.
의체 하나의 동력 공급을 막았을 뿐이다.
‘아무래도 동력이 끊어졌을 때 베셀의 방어력도 약해지는 것 같은데.’
공략법을 알아낸 것 같았다.
정면승부는 피하려고 했지만 아무래도 의체들과 싸움을 완전히 안 할 수는 없
을 것 같았다.
‘치고 제압하고 터트리고. 이걸 반복하면 되겠군.’
그때였다.
동력이 끊긴 의체가 널부러진 걸 확인하는 순간.
생각도 못했던 알림이 떴다.
[주인을 잃은 강대한 영혼이 느껴집니다.]
[영혼 약탈을 사용해서 습득]
당황스러운 얘기였다.
‘강대한 영혼이라고? 여기에 영혼이 어딨어? 다 의체인데.’
그때 순간 눈에 들어온 부서진 의체.
리치가 몸의 대용품으로 쓰려고 했던 존재였다.
‘설마 리치의 영혼이?’
일단 망설이지 않고 사용했다.
‘영혼 약탈!’
머리가 사라진 의체가 경직을 먹는다.
마치 누워서 덜컥이는 듯한 모습.
‘정말로 약탈이 먹혔잖아...?’
[주인 잃은 강대한 영혼의 힘을 습득했습니다.]
[지력 +3]
게다가 영혼의 힘을 습득했다.
아무래도 혼과 관련된 리치의 특수성, 그리고 보스라는 판정이 특이한 결과를
만들어낸 것 같았다.
‘영혼 계열 스킬이 이런 식으로 도와주네.’
그때 문득 머릿속을 스치는 엄청난 생각.
‘그럼 설마 스킬까지 계승되는 거 아니야?’
무생물인 의체는 따로 스킬이 없다.
하지만 그 안의 존재는 다르다.
리치의 영혼을 죽인 판정이 들어간다면?
그때 떠오르는 상쾌한 알림.
[적을 죽여 그의 힘을 이어받습니다.]
[’의혼’을 계승했습니다.]
‘그렇지! 계승했다!’
리치는 매우 특이한 존재인데, 아마도 혼이 본체로 판정되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의혼이라니, 지금 상황에 아주 적절한 걸 줬네.’
의혼은 리치의 스킬이다.
혼을 덮어씌워 무생물을 조작하던 리치의 능력.
역설적이게도 계승된 이유가 바로 이 스킬 때문이다.
의체가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영혼을 죽였기에.
말하자면 저 안에 남아있는 리치 영혼의 일부를 죽인 판정이 된 것이다.
‘원본 리치는 이미 죽었지만... 의체를 조종하는 부분만 던전의 법칙에 따라
남겨진 것 같군.’
어찌되었든 자신에게는 좋은 일이었다.
일단 바로 사용해봤다.
‘의혼.’
머리가 날아간 의체.
혼을 잃은 의체가 덜그럭거리며 움직임을 보여주었다.
제대로 된 조종이라기보단 그저 발작적인 행동에 가까웠다.
‘사령술이랑 비슷하게 바로 능숙해지긴 힘들겠군.’
사념을 다루는 것처럼 의혼도 익숙해질 필요가 있었다.
순간 새로운 발상이 떠올랐다.
‘잠깐. 둘을 합친다면 어떨까. 의혼에 사령술까지 보조한다면?’
의혼을 베이스로 사념을 통해 조작하는 방식을 연계한다면 능숙하지 않은 스
킬들로 뭔가를 할 수 있을 지 모른다.
‘일단 의체를 일어서게 해볼까.’
의혼으로 의지를 전달하고 사념으로 자꾸 벗어나려는 조작력을 감싸준다.
그러자 무릎을 세워 몸을 일으키는 의체.
첫 조작이라고는 믿을 수 없게 성공해버렸다.
‘된다! 의체가 일어섰어.’
초보자 수준에 이 정도라면 대성공이었다.
‘이제 혼이 남은 의체는 3기. 어쩌면 정면 승부 비슷하게 해볼 수도 있겠는데?’
그때 마력탄이 우수수 날아들었다.
— 파파파팟!
변신한 신체로 다시 전장에 뛰어든 우진.
동시에 인형들도 흩어지며 포위하듯 마력탄을 날려왔다.
적의 움직임에 대응하는 속도도 초속이라고 할만한 것이었다.
‘역시 빠르다. 언데드 폼이 아니었으면 따라가기 힘들었을 거야.’
어느새 천장에 붙어 탄환을 피한 뒤 무형시를 장전하던 우진이 생각했다.
일반적인 템포가 아니라 기계적 반응을 따라가야 하는 빠른 속도의 전투.
‘그런데 그게 3:1이라 틈을 만들기가 힘들단 말이지.’
하지만 그에게는 지원군이 있었다.
그건 바로 머리가 날아간 의체.
다시 조작이 풀려 드러누웠지만 가능성은 있다.
‘저놈과 함께라면 싸움을 훨씬 쉽게 풀어갈 수 있어.’
복잡한 걸 지시할 순 없지만 단순한 동작은 가능하다.
그것만으로 큰 도움이 될 것이다.
— 투투투투!
쉴 새 없이 날아드는 마력탄.
놈들은 이제 접근하지도 않고 빠른 속도로 기동하며 우진을 공격하고 있었다.
가까이 가면 신체적으로 불리하다는 것을 깨닫고 자기들이 유리한 방식으로
싸우는 것이다.
‘그럼 내가 아니라 다른 걸로 붙잡으면 되지.’
우진이 벽을 타고 달리며 아군 의체에게 지시했다.
‘저놈의 발을 묶어라!’
딴 거 다 필요없고 한 번만 묶어주면 된다.
그러자 성의없는 듯하면서도 묵직한 동작으로 다른 의체의 발목을 움켜쥐는
아군 의체.
— 키기...긱
다 죽어가면서도 물귀신 역할을 한다.
그 처절한 광경 속에서, 우진이 용수철처럼 튀어나가 근접 무형시를 박아넣었다.
— 퍼펑...!
‘그렇지!’
혼이 있어도 근접 차지샷은 버티지 못한다.
— 퍼퍼펑!
동력이 끊긴 사이 우진이 빠르게 베셀의 구슬을 파괴했다.
그리고 빠져나온 리치의 혼을 약탈했다.
[주인 잃은 강대한 영혼의 힘을 습득했습니다.]
[지력 +3]
이걸로 작동을 멈춘 의체는 2개.
멀쩡히 움직이는 의체도 2개다.
‘다시 말하면 아군이 2명이 된 셈이지.’
바닥에 쓰러진 놈들을 방금처럼 지뢰로 사용할 수 있다.
‘혹은 수류탄처럼 쓸 수도 있고.’
쓰러진 의체 하나를 집어든 우진이 냅다 집어던지며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던진 의체에게 내린 명령은 ‘끌어안아라’.
— 키기긱...!
양방향의 공격에 당황한 듯한 적.
좌우를 골라야 하는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빈 공간을 택해 회피 기동을 한다.
하지만 그것이 우진의 노림수였다.
‘걸렸어!’
회피한 놈에게 뜻밖의 아이템이 날아들었다.
‘포박해라 염주!’
날려보낸 것은 칼리의 염주.
그 굵은 알들이 의체의 허리를 감싸고 자신의 능력을 발현했다.
— 샤아아아아......
해골들이 일제히 입을 벌리고 음산한 소리를 쏟아낸다.
단순히 물리력으로 감싸는 것이 아니라 원혼의 힘으로 [포박]이란 신비를 만
들어낸 것.
‘넌 일단 그러고 있어라.’
우진이 놈의 머리 위를 에어블로우로 빠르게 이동하며 마지막 의체에게 뛰어
들었다.
— 투투투투!
당연히 회피하며 마력탄을 날리는 의체.
허나 이 역시 노림수였다.
‘니 뒤에 뭐가 있게? 끌어안아라!’
명령에 따라 대기하던 아군 의체가 놈을 껴안는다.
염주 대신 방금까지 동료였던 놈에게 포박당한 의체.
그 미간에 근접 풀차지샷이 박혔다.
— 콰콰쾅!
이어서 베셀의 구슬까지 파괴하고 다시 복귀한 우진.
리치의 영혼도 놓치지 않고 먹어줬다.
[주인 잃은 강대한 영혼의 힘을 습득했습니다.]
[지력 +3]
마침내 온전한 적은 1체 남은 상황에서, 일단 염주의 성능을 더 시험해보기로
했다.
‘적을 옭아매어 죽여버려라.’
— 샤아아악!
염주가 마치 뱀처럼 적의 어깨를 타고 올라 목을 감싸더니 보아뱀처럼 머리를
부러트렸다.
— 푸쉬식....
고장난 것처럼 쓰러지는 의체.
마지막 리치의 영혼까지 약탈해버렸다.
그렇게 무려 ‘12 포인트’를 획득한 지력.
놀랍고 어이가 없었다.
‘리치 이 새끼 도대체 얼마나 똑똑한 거야...?’
영혼 일부를 습득한 것만으로 12 포인트의 지력을 획득했다.
물론 자기한테 영혼 약탈이라는 악마 계통 능력이 있어서 그런 거지만 도대체
살아있을 땐 얼마나 강했을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하긴 그러니까 이런 의체도 만들어서 쓰고 그러는 거지.’
그래도 이미 죽은 놈이다.
아무리 대단해도 살아남은 놈만은 못하다.
자기의 스킬 연계는 그 대단하다는 의체마저도 4:1로 승리했다.
‘그런데 염주가 생각보다 더 쎄네. 역시 좋은 아이템이다. 앞으로 더 적극적
으로 써먹어야겠어.’
스스로 의체의 목을 따버리던 염주의 모습.
처음부터 이 정도인 줄 알았으면 4:2의 전투를 할 수도 있었을 것 같다.
염주가 최소한 0.5인분은 해줬을 거다.
— 콰드드득
우진이 변신을 풀고 인간 형태로 돌아왔다.
그래도 언데드 폼 덕분에 자신이 5인분은 한 것 같았다.
그때였다.
— 콰지직... 펑!
의체들을 다 처리하자 라이프 베셀이 완전히 깨지고 모든 힘을 잃었다.
이제야 전투가 끝난 것이다.
‘이런... 의체까지 다 박살이 나버렸네.’
아쉽게도 의체들은 라이프 베셀과 강력하게 연결되어 있었는지 재활용은 불가
능할 정도로 파괴되었다.
베셀이 터지는 동시에 산산조각이 나버려 힘을 잃었다.
그래도 혹시 몰라서 부품들을 최대한 모아서 인벤토리에 보관했다.
그가 날려버린 머리통도 조각난 것을 소중히 모아서 인벤에 넣었다.
‘이런 부품도 또 언제 쓸모가 있을지 모르거든.’
그리고 마침내 떠오른 짜릿한 알림들.
[대량의 경험치를 획득했습니다.]
[레벨업!]
[레벨업!]
[고속이동을 유지한 상태로 전투에 승리하여 업적 ‘찰나의 승부’를 달성했습
니다.]
[민첩 +3]
[적의 원거리 공격을 200회 연속 회피하여 업적 ‘광속 기동’을 달성했습니다.]
[민첩 +3]
레벨업은 당연한 거고, 업적 보상이 그야말로 달콤하다.
상쾌하도록 폭발적인 성장.
우진이 흐뭇하게 웃었다.
‘좋아 나도 이제 빈익빈 부익부 사이클에 들어왔다. 민첩 능력으로 다시 민첩
보상을 얻어내니 강자들이 계속 강해질 수 밖에 없지.’
물론 업적이 무한대는 아니니 언젠가 사이클이 끝나긴 한다.
하지만 그때가 되면 이미 범접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있다는 게 중요하다.
‘강자 반열에 들어가려면 최소한 동레벨 5인은 상대할 수 있어야 하니까. 보
상 포인트 퍼먹는 게 매우 중요해.’
지금같은 추세라면 아무 문제 없다.
오히려 강자 소리 듣던 놈들 중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속도로 성장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다.
[강대한 적을 죽여 그의 힘을 이어받습니다.]
[’강혼’을 계승했습니다.]
갑작스런 알림에 우진이 당황했다.
‘또? 스킬이 또 계승된다고?’
강혼이라면 의혼의 상위 능력이었다.
리치가 베셀에 자신의 혼을 넣으며 사용했던 스킬.
‘음? 설마 베셀 안에 리치 영혼의 더 큰 부분이 있었던 건가?’
아무래도 의체에 남아있던 영혼과 다른 판정이 적용된 모양이다.
한 보스에게서 두 가지 스킬이라니.
역시 고대 던전은 고마운 놈이었다.
‘뭐 나처럼 특수한 놈이 나타날 걸 알지는 못했을 테니 그냥 내 운이 좋은 걸
로 하자.’
뭐가 됐든 좋다.
의혼을 얻자마자 강혼으로 업그레이드가 된 셈이니까.
‘강혼이라. 써보고 싶은데 마땅한 대상이 없네. 염주에다 해볼까?’
의체들은 산산조각이 났고, 일단 염주에라도 강혼을 섞어 조작해 보았다.
의체를 사령술로 보조했듯이 이번엔 염주를 강혼으로 보조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억...?’
강혼 이거 해도해도 너무 강력하다.
진짜 우진의 영혼 일부가 들어가기라도 한 것처럼 염주가 날뛰기 시작했다.
— 훙훙훙....
방을 따라 미친듯이 움직이던 염주가 마침내 공중에 멈춰섰다.
생각을 조금만해도 바로바로 반응하니 폭주한 것처럼 보인 것이다.
‘와 이 정도면 별게 다 가능하겠는데?’
우진이 염주를 가지고 여러가지 시도를 해보았다.
‘차렷, 경례, 열중쉬엇.’
염주가 1자로 섰다가 양끝으로 박수를 쳤다가 다시 직각으로 휙 꺾여서 대기
했다.
‘오케이 이제 와서 감겨라.’
팔을 내밀자 훈련된 새처럼 날아와 뱀처럼 타고 감기더니 마침내 품에 쏙 들
어간다.
‘인벤토리 자동 수납까지 되네. 고맙다 잘 쓸게.’
칼리가 아주 끝내주는 아이템을 만들어놓고 갔다.
자기가 쓰려고 제작한 거니 공을 들여도 이만저만 들인 게 아닐 것이다.
그런데 그때였다.
기분 좋게 보스 스킬 시험을 마친 우진의 눈에 뭔가 이상한 게 포착되었다.
‘어라... 저거 뭐지?’
음파 감지를 얻은 후로 습관적으로 한번씩 날려보는데, 그 스캔 과정에 요상
한 것이 걸려들었다.
‘뭐야... 의자 밑에 버튼이 있네?’
여기는 리치의 처소.
베셀이 박혀있던 자리 바로 아래에는 돌로 만든 권좌가 있었다.
그 아래 숨겨진 버튼이 보인다.
‘흐음. 아무래도 이 던전에 비밀이 더 있었던 것 같군.’
완전 공략은 해줘야 한다.
우진은 버튼을 눌렀다.
— 쿠구궁....
그러자 의자가 옆으로 밀려나며 계단이 나타났다.
그 아래에 있는 것은 작은 방.
‘음? 저거 설마...?’
그 방에 있는 건... 정말 뜻밖의 물건이었다.
‘너... 도대체 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