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데드가 되어 돌아왔다 23
아이템의 성능은 옵션에서 결정된다.
매직 이상의 아이템부터 옵션이 붙지만 보통은 스탯 상승 등의 기본 옵션만이
붙는다.
그러나 레어부터는 특수 옵션이 붙고 이것이 시너지를 내며 특별한 성능을 뽑
아낼 때 비로소 유니크라는 등급을 부여받게 된다.
지금 우진이 보고 있는 염주 또한 마찬가지였다.
[덧없는 원한의 염주]
[유니크]
[이 특별한 무기는 사용자의 마나를 매개로 움직인다]
[포박]
[염동]
얼핏 별 대단한 무기는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실제론 귀중한 특수 옵션이 2개나 붙어있는 장비였다.
‘포박에 염동이라. 그래서 아주 살아있는 뱀처럼 움직였던 거였군.’
칼리는 이걸 자기 분신처럼 써먹으며 화려한 기술들을 선보였다.
원래 가지고 있는 능력에 아이템 옵션으로 증폭까지 되어서 더 자유자재였을
것이다.
‘굳이 해골이라는 소재를 사용한 것도 사령술을 극한으로 써먹기 위해서였군.’
이제 자신에게 사령술이 있으니 똑같이 써먹을 수 있다.
‘어디 한 번 위력을 볼까.’
우진이 테스트를 시작했다.
시작은 염주에게 ‘명령’을 하는 것이었다.
‘움직여라.’
그것은 사념을 통한 의지의 전달이었다.
— 촤르륵...
허공에 1자로 펴진 염주.
물리법칙을 거스르고 온전히 우진의 뜻에 따라 모습을 바꾼다.
일종의 의지대로 움직이는 밧줄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알이 굵은 염주라서 조금 운용이 복잡했다.
‘두꺼운만큼 많은 마나를 받아들여 강력한 공격을 할 수 있지만, 통제는 더
어려워진다.’
— 촤르륵... 촤륵....
우진이 이런저런 형태로 염주를 운용하며 허공에 휘둘렀다.
몇 번 실패를 겪고 다시 성공도 하다보니 감이 올 것 같았다.
그리고 칼리가 왜 이걸 주무장으로 사용했는지 명확히 알 수 있었다.
사령술과의 궁합이 아주 딱이었다.
‘염주에 마나와 사념을 동시에 불어넣으니 마치 내 신체가 된 것 같다.’
팔을 구부리고 펴고 휘두르고 하는 것처럼 염주도 비슷하게 움직일 수 있었다.
게다가 던진 상태에서도 사념을 통해 마나를 공급할 수 있다.
즉, 몸에서 염주를 떼어내고도 조종이 가능한 것이다.
다만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해서 능숙해지려면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칼리는 이걸 주로 제압용으로 사용했었지.’
염주를 던져서 적을 묶어두고 인형과 본체가 공격하는 방식이었다.
우진은 흐뭇하게 염주를 회수했다.
‘마나를 많이 올려둬서 다행이군.’
익숙하지 않은 장비지만 마나빨로 쓰는데는 전혀 불편함이 없었다.
사념 조종 능력만 제대로 익히면 엄청난 위력을 발휘할 것 같았다.
‘그럼 나머지 장비는 뭐가 있나 볼까.’
우진이 칼리의 나머지 장비를 확인했다.
아쉽게도 그 외에는 별 게 없었다.
먼 훗날이라면 모를까 지금은 그렇게 강한 상태도 아니라 대단한 물품은 없는
것이다.
방어구로만 치면 지금 자신이 입고 있는 게 더 나을 지경이었다.
‘그래도 이건 건졌군.’
입고 있는 겉옷이 그럭저럭 쓸만해 보였다.
‘은신 아이템은 제법 비싼데. 거의 전재산을 털어서 샀겠군.’
방풍복 형태로 은신 효과가 약간 있는 물품이었다.
아무래도 정신집중, 즉 채널링 스킬이 많은 유형이라 파수꾼과 더불어 자기를
보호할 수단으로 마련한 모양이었다.
입고 있던 평범한 방풍의 대신 이걸 입기로 했다.
기척 감추기와 잠복이라는 은신계 스킬이 2개나 있기 때문에 시너지가 아주
좋을 것 같았다.
‘고맙다 내가 잘 써먹으마.’
탈탈 털어가는 느낌이었다.
그 보답이라기엔 뭣하지만 최대한 깊은 땅굴을 파서 칼리를 잘 묻어주기로 했다.
‘아 그 전에.... 하나가 더 남았군.’
잠시 고민하던 우진이 손바닥을 뻗어 시동어를 준비했다.
진짜로 탈탈 털어가려면 스킬 하나를 더 써야했다.
‘융합.’
인간에게 쓰기는 좀 그런 스킬이었다.
이 세상에서 아예 지워버리는 셈이 되는 거니까.
‘단순히 회복하자고 굳이 이런 짓을 할 이유는 없으니까.’
그래도 실험을 해볼 필요는 있었다.
소형 마물은 소량의 회복을, 보스는 완전 회복을 시켜주었는데, 인간은 또 어
떨까 궁금했다.
‘인간은 좀 특별한 대상이니까 확인해둘 필요는 있어. 아마 보스 타입이 아니
니 별 대단한 보상은 없겠지.’
그런데 뜻밖의 결과가 나타났다.
아예 융합이 되지 않았다.
스킬 자체가 대상이 없는 듯 발동하지 않았다.
‘흠... 결이 안 맞는다는 건가.’
사람을 융합을 해보는 건 처음이었지만 이런 결과가 나올 줄은 몰랐다.
문득 보스 악어가 부하 악어들을 흡수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동종 마물이니 가능한 것일 터였다.
자신은 마물과는 융합할 수 있으나, 반대로 사람은 융합이 되지 않는다.
‘내가 인간보다는 마물에 가깝다는 뜻이겠군.’
그게 아니면 인간에게만 반응하지 않을리가 없다.
시전자가 마물이니까 마물만 융합할 수 있는 거다.
‘그래. 내 종족은... 언데드니까.’
착잡하지도 않고 그냥 그런가보다 싶었다.
이제 그냥 자신이 언데드라는게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먹고 자고 살아가는데 불편함은 없으니 신세한탄을 할 이유가 없었다.
‘오히려 좋은 점도 많다. 피가 안 돌아서 그런가 더 냉정해진 것 같기도 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굳이 인간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도 들지 않았다.
다만, 이거 하나는 분명했다.
‘내가 언데드라면 언데드의 정점에 서면 된다. 월드에 왔으니 월드의 정점에
서는 것처럼.’
그것만 잊지 않으면 된다.
다시 주어진 삶, 자신은 힘을 계승하는 자가 된 것이지 비관하는 자가 된 것
이 아니다.
육체가 언데드가 되었다고 정신까지 죽어버릴 생각은 없었다.
‘이제 던전으로 가자.’
목초지에서 걸어나온 우진이 다시 광활한 사막으로 향했다.
*
사막 중간에 도착한 우진.
그가 거대한 석판을 바라보았다.
‘삭풍.’
일단 삭풍으로 모래를 걷어냈다.
그렇게 여러 번을 쓰자 마침내 석판이 완전히 모습을 드러냈다.
‘역시 스킬이 많으니 편하군.’
원래라면 입구를 발견하는 이 행위 자체가 좀 귀찮았을 거다.
그런데 역시 물리력을 발휘하는 스킬이 있으니 여러모로 편했다.
[대사막 드릴혼의 비밀 중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의문의 거대한 석판]
[지력 +1]
우선 탐험 보상이 주어졌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일단 석판 중앙으로 가서 채널링을 하라고 했지.’
거대한 석판의 가운데로 걸어갔다.
거기 선 우진이 자신의 존재를 밝히고 개방을 요청했다.
실제로 무슨 말을 했다기 보다는 정신 집중을 하고 의지를 전달하는 행위였다.
시동어로 스킬을 발동하는 것과 비슷한 감각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우진의 뜻에 따라 월드가 자신의 비밀을 드러냈다.
[대사막 드릴혼의 비밀 중 하나가 진실을 드러냈습니다.]
[석판 형태의 던전 입구]
[지력 +3]
— 쿠구궁......
석판이 접히며 계단이 생성되었다.
그 아래에서 음산한 공기가 흘러나왔다.
[최초로 숨겨진 던전을 발견하였습니다.]
[칭호 ’탐험하는 자’ 획득]
[모든 스탯 +1]
[최초로 고대 던전을 발견하였습니다.]
[칭호 ’도전하는 자’ 획득]
[모든 스탯 +3]
‘역시 고대 던전 발견은 보상이 엄청나군.’
한정된 고대 던전 중 하나를 발견한 거라 보상이 무지막지했다.
이런 숨겨진 요소들을 챙겨먹으면 남들보다 압도적으로 앞서나갈 수 있다.
과거 칼리와 같은 강자들은 이런 걸 몇 개나 독식하며 힘을 키운 것이다.
이제 자신의 차례다.
‘다시 나올 땐 많은 게 달라져 있겠지.’
던전을 찾았으니 클리어하는 일만 남았다.
마지막으로 광활한 사막을 바라본 우진이 계단 아래로 향했다.
*
[경험치를 획득했습니다.]
[경험치를 획득했습니다.]
[레벨업!]
[대량의 마물을 학살하여 업적 ‘일기당천’을 달성했습니다.]
[체력 +3]
[민첩 +3]
[근력 +3]
첫 번째 난관은 구울이었다.
수많은 구울이 그를 반겨주었다.
사방에서 덮쳐오는 구울은 분명 숫자가 아주 많았다.
하지만 난전은 익숙했고, 최근의 전투로 감이 최고조에 이른 상태라 별 어려
울 것은 없었다.
— 푸슉!
마지막 구울의 머리가 사라졌다.
언데드가 언데드를 죽인 셈이니 동족상잔이었다.
우진은 그런 건 신경쓰지 않고 주위를 살폈다.
창고 여기저기에 구울들의 시체가 누워있었다.
‘첫 번째 구역은 다 정리가 되었군.’
아주 긴 계단의 끝에는 복도가 있었다.
여기가 리치의 고성이라고 불린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건축양식이 오래된 성의 지하와도 같은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나타난 공간은 매우 거대했다.
마치 창고 같은 장소.
여기서 구울들이 쏟아져 나왔다.
미리 알고 있었기에 어렵지 않게 몰살했다.
속사만으로 가볍게 제압할 수 있었다.
그런데 순간 이상한 알림이 떠올랐다.
[적을 죽여 그의 힘을 이어받습니다.]
[’시체 먹기’를 계승했습니다.]
구울의 스킬 자체는 평범하게 계승이 되었다.
문제는 그 다음에 떠오른 알림이었다.
[종족 성장에 매우 적합한 생명 에너지를 발견했습니다]
[시체 먹기를 사용하여 습득]
‘음? 종족 성장이라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죽은 구울들에게 시체 먹기를 사용해보았다.
별 건 아니고 그저 시체를 뜯어먹는 행위였다. 스킬 효과는 ‘먹은 후 부여되
는 버프’에 가까웠고, 먹는 건 알아서 뜯어먹어야 했다.
‘음....’
역겨운 맛이 날 줄 알았지만 그럭저럭 먹을만 했다.
— 콰득... 콰득...
‘이게 먹을만 하다니... 언데드 입맛 진짜 대단하네.’
썩은 시체를 뜯어 먹는다.
누가 보면 기겁을 할 광경이었고, 실제로 자신도 본능적으로 거부감이 들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맛은 그렇게 구역질이 나지 않았다.
‘그래도 이건 좀 아닌데.’
썩은 시체를 뜯어먹는 건 정신적으로 너무 역겨웠다.
게다가 한 마리씩 먹다보니 너무 오래 걸렸다.
솔직히 후자의 문제가 더 귀찮았다.
그래도 먹긴 먹어야 한다.
알림을 따라서 손해볼 일은 없다.
하지만 수십 구의 구울 시체를 뜯어먹고 있기엔 처지가 한심했다.
‘잠깐. 융합이라면 어떨까.’
발상의 전환.
시체를 먹는다는 건 위장에 넣는다는 거다.
악어 보스가 부패 악어들을 덩어리처럼 흡수하던 걸 떠올렸다.
어차피 몸에 넣으면 비슷한 효과를 발휘하는 거 아닌가?
‘그래 먹지말고 손바닥에 양보하자.’
일단 바로 융합을 사용해보았다.
‘융합.’
근처 몇 구의 시체가 모조리 빛으로 변해 우진의 손에 빨려들었다.
그런데 뭔가 느낌이 좀 색달랐다.
‘평소랑 느낌이 조금 다른데?’
원래 융합을 사용하면 뭔가 애매만 느낌이 들었다.
맛없는 선식을 먹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이번엔 아주 육즙 넘치는 고기를 먹는 느낌이었다.
‘설마 얘들도 언데드라서...?’
그 추측을 뒷받침하기라도 하듯 알림이 떴다.
[융합된 에너지를 흡수할 새로운 경로가 생겼습니다.]
[시체 먹기로 적들의 힘을 계승하십시오.]
‘된다! 역시 사람이 머리를 써야지.’
시체를 갈아서 먹는 느낌이다.
말하자면 음식을 그냥 먹는 게 아니라 융합으로 잘 갈아서 진액만 쭉쭉 뽑아
먹는 거랑 비슷했다.
‘시체 먹기로 흡수.’
[종족 성장에 적합한 에너지를 흡수합니다.]
[생명 에너지를 모으는 중....]
새로운 알림이 떴다.
이제 방법을 알았으니 빠르게 진행할 일만 남았다.
‘융합.’
창고에 쌓인 남아있는 시체더미를 손바닥을 뻗어 쭉쭉 빨아들였다.
‘시체 먹기로 흡수.’
그리고 그렇게 수많은 시체의 에너지를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
몇 번을 반복하여 모조리 먹어치우자 드디어 종족란에 추가 설명이 생겼다.
그건 좀 뜻밖의 설명이었다.
[종족 : 언데드(성장형, 1단계)]
[지위 - 죽음을 극복한 자]
[생명 에너지를 모으는 중...]
‘지위? 죽음을 극복한 자?’
의문을 갖는 것도 잠시.
순간 몸에 변화에 찾아왔다.
[새로운 지위 획득으로 신체가 변화합니다.]
[전신 강화]
— 콰드득....
순간 우진의 손에서 강력한 검은 손톱이 뻗어나왔다.
독각귀들의 것과 비슷하게 길고 날카로웠다.
‘뭐, 뭐야 이거? 설마 종족 진화가 이런 뜻이야...?’
대량의 구울을 빨아먹자 변화한 신체.
놀랍게도 손톱은 그의 의지에 따라 넣었다 뺐다가 가능했다.
게다가 그게 끝이 아니었다.
— 투둑... 툭....
근육에 변화가 찾아왔다.
메마른 육신에 진정한 힘이 깃들기 시작했다.
— 콰드드득....
몸이 좀 더 ‘강력하게’ 변하고 있었다.
우진이 마치 의지를 가진 것처럼 꿈틀거리며 변화하는 몸을 바라보았다.
‘이... 이게 도대체.....’
우선 다리.
독각귀의 속도가 엄청나게 빠른 건 훈련을 해서 그런게 아니다.
그냥 신체 구조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팔.
구울이 어마어마한 힘으로 사람을 찢고 뜯어먹는 것도 근력 운동을 해서 그런
게 아니다.
인간과 신체가 작동하는 원리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 강화된 몸이 우진에게도 생겼다.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 이건....’
우진이 힘줄과 근육이 툭툭 불거진 창백한 육신을 바라보았다.
마치 야수와도 같은 구조로 발달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존나 멋있잖아...?’
영화에서 보던 강화 인간이 된 것 같았다.
언데드의 참맛에 대해 알게 된 기분이었다.
그게 끝이 아니다.
어둠 속에서도 선명하게 보인다.
[어둠에 속한 종족이 되었습니다.]
[야간 시야를 획득했습니다.]
뭔가 얼떨떨하지만 엄청난 변화가 찾아왔다.
게다가 하나 더.
[체력 +5]
[근력 +5]
[민첩 +5]
[스태미너 회복 +100]
이건 기본이라는 듯 주어지는 스탯 상승.
다른 것보다 스태미너가 엄청났다.
아예 전용 세팅을 해야 얻을 수 있는 수치.
그게 종족값에 기본으로 포함이 된 것이다.
‘첫 번째 지위로도 이 정도라면 난 도대체 얼마나 더 강해지는 걸까.’
속단은 이르다는 듯 계속해서 새로운 알림이 떠올랐다.
[내성 강화]
[독에 면역되었습니다.]
[냉기 저항이 대폭 상승합니다.]
[하급 공포에 면역되었습니다.]
[하급 정신 공격에 면역되었습니다]
이제껏 체감만 하던 여러 효과들이 정식으로 부여되었다.
지금까지가 언데드 체험판이었다면, 이제 본격적인 언데드로서의 삶이 시작된
기분이었다.
‘그래, 기왕 언데드로 살 거면, 최강의 언데드가 되어주마. 전생처럼 어설프
게는 안 한다.’
이 지위라는 체계가 어디까지 있는진 모르겠지만, 반드시 정점에 도달하기로
했다.
어둠 속에서 우진이 씩 웃었다.
최하급 신체에서 탈피하여 본격적인 변화가 시작된 몸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창백한 야수와도 같은 육신에선 ‘강자’의 아우라가 느껴졌다.
그렇다고 마물처럼 변한 건 아니다.
역설적이게도 오히려 더 인간다워진 것 같았다.
아주 강력한 인간말이다.
‘생명 에너지를 많이 빨아먹어서 그런가?’
생명력 흡수의 대표주자였던 흡혈귀 왕도 인간 형태였다.
물론 괴물 형상으로도 변화할 수 있었지만, 기본은 인간이었다.
‘나도 기본이 인간이라는 점은 비슷해.’
자기도 손톱을 넣다 빼거나 근육을 부풀리고 축소하는 등 변화할 수 있지만
기본은 인간이었다.
‘악마들도 비슷하지. 하위급들은 괴물 형상이고, 고위 존재가 될수록 인간과
비슷해지잖아.’
악마들은 자기들끼리 죽고 죽이며 서로 힘을 빼앗아 점점 인간과 같은 모습이
된다.
그러다 최상위의 ‘대공’급 존재가 되면 필연적으로 인간과 구분하기 힘든 형
상이 된다.
언데드도 비슷한 느낌이었다.
하위 존재들은 괴물, 힘을 얻을수록 인간과 비슷해진다.
‘계속 지위를 상승시켜보자. 그럼 더 명확해지겠지.’
어차피 자신은 계속 성장할 거다.
지위에 대한 건 자연스럽게 알게 될 거다.
‘그렇다면 지금 할 수 있는 걸 하는 게 우선이겠지.’
일단은 이 던전을 돌파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렇게 결심한 우진이 던전의 다음 구역으로 향했다.
그건 창고 끝의 거대한 문이었다.
아치 형태의 문은 역시 고성의 분위기를 내고 있었다.
‘여기부터 어려워진다고 했지.’
칼리는 수많은 구울을 죽이는 대신 이 문을 뚫고 유체를 진행시켜 정보를 얻
어냈다.
— 끼이익....
문을 열자 예상 외의 풍경이 펼쳐졌다.
그건 넓은 공간에 자리잡은 세 개의 게이트였다.
그거 외엔 아무 것도 없었다.
반드시 3개 중 하나에 들어가야 된다는 듯이 말이다.
일렁이는 마법적 게이트는 각자 다른 색깔을 띄고 있었다.
하나는 붉은색.
하나는 초록색.
마지막은 검은색이었다.
그걸 보는 순간 과거의 기억이 선명하게 되살아났다.
‘여기가 3중 선택 관문이었구나.’
공략법이 기억날 정도로 유명한 구역이었다.
잔인하기로 유명한 구역이었기 때문이다.
원래는 3분의 2확률로 죽는 도박을 해야만 한다.
‘함정이 있으니까.’
1개만 정답이고 나머지는 사람을 죽이는 목적으로 설치되었다.
‘우선 검은색은 미로에 빠지는 거였지.’
첫째, 검은색 게이트.
이건 환각에 걸려서 무한히 돌게 되는 미로 속으로 처넣는다.
그래도 그나마 괜찮다. 정신만 차리면 나올 방법이 있으니까.
두번째, 초록색 게이트.
이건 기생충이 드글거리는 구덩이 위에 포탈이 열린다.
기생충에게 영혼이 다 빨려나가서 리치의 실험체가 되는 것이다.
세 번째 붉은색이 바로 다음 구역으로 가는 길이다.
‘3개 중 유일한 정답이지.’
칼리의 유체는 운 좋게 한 번에 1/3 확률을 뚫고 다음 구역까지 갔다고 했다.
우진도 원래라면 세 번째 게이트를 택해서 진행하면 되는 거였으나, 좀 다른
선택을 하기로 했다.
‘일단 초록색 게이트로 간다.’
그건 기생충이 득시글거리는 함정에 스스로 들어가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수많은 기생충을 단숨에 상대할 수 있는 사냥터라는
뜻이기도 하다.
‘나한테는 특별한 능력이 있으니까.’
시체먹기와 융합의 조화라면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
수백 마리의 기생충이라는 특별한 ‘식사'를 마다할 수 없었다.
결심을 굳힌 우진이 만찬을 준비했다.
‘모조리 먹어치워주마.’
기생충이 사람의 혼을 먹는다면, 자기는 그런 기생충을 대량으로 먹어치우는
존재가 될 것이다.
‘미안하지만 언데드는 먹을 걸 가리지 않거든.’
함정조차도 자신의 힘으로 삼아버리기 위해, 우진이 위험한 게이트를 향해 몸
을 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