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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언데드가 되어 돌아왔다-16화 (16/155)

언데드가 되어 돌아왔다 16

달 밝은 밤.

작은 강가에서 신기한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변했다. 정말 얼굴이 변했어.’

위색(僞色).

카멜레온의 고유 스킬이 발동하며 우진의 얼굴이 변화했다.

그는 강물 속에 비친 그리운 얼굴을 바라보았다.

바로 지구에서부터 달고 있던 자신의 ‘진짜 얼굴’이었다.

원래 모습에 이렇게 애착이 있는지는 몰랐지만, 감쪽같아서 아주 마음에 들었다.

“이제야 나로 돌아온 기분이군.”

이어서 기억나는 몇 명의 얼굴로 위장해보았다.

“이 놈은 다시 봐도 험상궂네.”

강물 속에 비친 험악한 얼굴은 브라카의 모습이었다.

원래 덩치가 큰 놈이라 확실히 어색했다.

하지만 체구가 비슷하면 정말 감쪽같았다.

“그래도 약점이 없는 건 아니군.”

위색에는 몇 가지 헛점이 있었다.

첫째, 얼굴만 바뀐다.

즉 몸이나 다른 신체 부위는 바뀌지 않는다.

이건 카멜레온 본인이 쓸 때도 알고 있던 단점이었다.

둘째는 좀 더 치명적인 약점이었다.

바뀐 얼굴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면 말을 하거나 심지어 숨을 쉬는 것도 어

색했다.

마치 가면을 쓴 것처럼 불편하고 이물감이 드는 것이다.

각종 얼굴을 능숙하게 사용하고 싶으면 연습이 필요할 것 같았다.

그래도 자기 얼굴은 자기 얼굴이라 그런지 별 어색함 없이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건 분명 대단한 스킬이야.’

일단 위색 자체가 잘 써먹으면 매우 유용하다.

또한 위장한 상태에서 제한 시간이 없었다.

유틸성 기술인데다 전투 목적으로는 거의 쓸모가 없어서 그런지 딱히 변화에

제한이 없었다.

자는 동안 집중이 풀리면 깨어지는 정도가 아닐까 싶었다.

‘이 정도면 그냥 내 얼굴을 기본으로 두고 다녀도 되겠군.’

재생하는 축복의 육체, 그리고 원래 얼굴까지.

언데드라는 종족값을 잊을 정도로 만족스러운 모습이었다.

‘이제 월드라는 세계에서 진짜 자유에 가까워졌다.’

새 얼굴, 새로운 몸. 새로운 신분까지.

우진은 새로 태어난 기분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제 추적이 있어도 상관 없어. 날 찾아도 나인지 모를 테니까.’

홀가분한 기분이 들었다.

당장 여기 강가에서 아무 경계없이 서있는 것도 얼마나 유쾌한 일인지 몰랐다.

바로 어제만 해도 모든 것이 불안했으니까.

‘그래도 근방에서 활개칠 순 없어. 더 먼 곳으로 가자.’

우진은 조금 더 수고를 하기로 했다.

월드에서 완전한 자유를 얻기 위해 약간 더 고생하는 건 충분히 감수할 수 있

었다.

‘어디 보자... 저 산을 넘으면 작은 마을이 하나 있었지.’

우진이 전방의 산을 바라보았다.

몇 종류의 마물이 살고 있지만 지금 전투력으로는 충분히 넘을 수 있을 것이다.

‘과거랑은 모든 것이 다르니까.’

아무 것도 모르는 바보 같은 노예가 아니다.

월드에 대한 지식들은 물론 레벨조차도 월등히 높다.

저런 산 하나는 쉽게 넘을 수 있다.

‘어차피 저 마을에 가야할 이유도 있었고.’

노역장에서 밤마다 짰던 계획.

그 안에는 저 마을에 대한 생각도 있었다.

거기에 지금 레벨에 아주 좋은 던전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가장 좋은 건 ‘미개봉’ 던전이란 것이다.

달려가려던 우진이 잠깐 발을 멈췄다.

‘그래도 조금만 쉬었다가 갈까.’

솔직히 지쳤다. 엄청나게 지친 상태였고 그냥 24시간 정도 아무 것도 안 하고

쉬고 싶었다.

트롤의 재생력이 아니었다면 애초에 이미 어디 쓰러져있었을 지도 모른다.

‘아니다. 그래도 지금 가야 한다. 위험을 1%라도 줄이려면 쉬지 않고 행동해

야 해.’

우진은 이를 악물고 산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마을까지는 아마도 사흘 쯤 걸릴 것이다. 지쳐 쓰러지더라도 그 뒤에 쓰러지

기로 했다.

“헉... 헉....”

그렇게 달밤에 언데드가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

며칠 뒤.

작은 마을 ‘셰인폴’에 낯선 방문자가 도착했다.

외부인이 자주 오는 곳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예 방문자가 없는 곳도 아니기

에 주민들은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방문자는 마을의 유일한 여관으로 향했다.

며칠을 제대로 먹지 못한 것처럼 많은 양의 음식을 먹어치운 그가 이번엔 씻

을 물을 요구했다.

다소 창백한 걸 제외하면 별로 수상한 점은 없었기에 여관 주인은 선선히 요

구를 들어주었다.

약 1시간 뒤.

멀끔한 모습으로 나타난 방문자는 좀 마른 걸 제외하면 평범한 모험가처럼 보

였다.

호감을 사는 외모에 말씨도 매우 정중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방을 하나 빌려 죽은 듯이 자기 시작했다.

그리고 6시간 후.

방문자가 잠에서 깨어났다.

그는 세상 끝까지 닿을 기세로 기지개를 켰다.

“와아아아! 이제 살겠네.”

지난 사흘 쉬지 않고 달려온 우진이었다.

그는 여기저기 몸을 풀며 상태를 점검한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정도면 당장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저 산을 잠도 안 자고 돌파하다니. 트롤의 재생력이 없었으면 골병 들었을

거다....’

도중에 자잘한 마물을 만났지만 우진도 레벨 20의 모험가였다.

쉽게 돌파한 것은 물론, 덕분에 레벨도 1이 더 올라 21이 되었다.

‘돌진, 그리고 기척 감추기란 스킬도 계승했지.’

멧돼지 형태 마물에게서 얻은 돌진.

그리고 초식 마수에게서 얻은 기척 감추기.

둘 다 유용하게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일단 이 마을에서 처리할 일부터 진행하자.’

우진은 1층으로 내려가 꾸벅 인사를 했다.

고맙게도 돈 얘기는 한 번도 안 한 여관주인에게 주머니를 열어 가격을 지불

했다.

“신경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이고 별 말씀을.”

인상이 좋은 아주머니가 푸근한 미소로 가격을 조금 깎아주었다.

우진도 꾸벅 인사를 하며 예의를 갖췄다.

여기 마을을 초반 행선지로 잡은 이유 중 하나였다.

월드에서 보기 드물게 친절하고 좋은 마을이었기 때문이다.

‘도시에서 보기 힘든 소박한 느낌이 있지.’

일단 그는 노역장에서 매일 밤 꿈꾸던 것을 실행했다.

“크으... 시원하다.”

테이블에서 맥주 한 잔을 시켜 벌컥벌컥 마신 우진이 남은 돈을 계산해보았다.

카멜레온의 소지금이 원래 푼돈이라 돈이 거의 다 떨어졌다.

‘돈은 금방 벌 수 있어. 문제는 전력을 강화하는 거다.’

허세가 아니었다. 우진 정도의 실력이라면 생활비를 버는 것은 금방이었다.

그것보다는 실질적인 전투력을 올려서 더 상위 퀘스트와 더 상위 마물을 잡을

준비를 하는게 중요했다.

‘그럼 한 번의 임무로 벌 수 있는 돈의 단위가 달라지니까.’

입을 슥 닦은 우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마을에 온 첫 번째 이유를 해결할 시간이었다.

‘우선은 미라클 포션이다.’

미라클 포션.

말 그대로 기적의 포션이란 뜻으로, 신적 존재들이 월드에 숨겨놓은 일종의

상품이었다.

미라클 포션은 두 가지 의미에서 기적이란 이름이 붙게 되었다.

첫째는 그 효능이 너무 탁월해서.

둘째는 찾으려면 기적처럼 운이 좋아야해서.

우진이 있는 월드의 ‘바깥고리’에는 대략 100개 정도의 미라클 포션이 존재했다.

그것도 소문을 다 종합해봤을 때 그 정도라는 거지, 실제론 정확히 몇 개가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그 중 우진이 정확히 소재를 아는 것이 10개 정도.

그리고 확실히 아직 아무도 발견하지 못한 것이 단 2개 뿐이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여기 있었다.

지도에서 보면 그저 점처럼 보이는 산 너머 마을.

이 작은 마을에 꽁꽁 숨겨진 던전을 발견하고 클리어하는 게 조건이니 훗날

이걸 찾아낸 녀석은 정말 기적처럼 운이 좋았던 것이다.

‘이제 그 운이 내 것이 된다.’

그는 곧장 마을 촌장의 집으로 향했다.

그의 기억이 맞다면 촌장 가문에서 대대로 미라클 포션을 보관하고 있을 것이다.

“안녕하십니까 촌장님.”

“아, 새로운 방문객이 있다고 하더니 자네였구만.”

“예, 인사가 늦어 죄송합니다.”

예의바르게 대화를 나누던 우진은 뜻밖의 말을 했다.

“오늘 그저 인사를 드리러 온 것이 아닙니다.”

“음?”

“제가 마을 뒤의 우물이 다시 작동되게 해드리겠습니다.”

촌장이 다소 놀랐다.

“우물을 말인가?”

“예, 여기 뒷산에 입구를 막아놓은 동굴이 있지요?”

“음, 그걸 어떻게.......”

“마을로 오다 봤습니다. 거기 열쇠를 좀 주실 수 있겠습니까?”

“허나 그 안에는 마물들이.......”

“예, 기척이 느껴지더군요. 하지만 괜찮습니다. 우물을 뚫으려면 거기부터 청

소해야 합니다.”

망설임 없는 대답을 듣던 촌장이 결국 열쇠를 내주었다.

“허허, 아무래도 이 작은 마을에 무엇이 있는지 알고 온 것 같군. 좋은 결과

있길 바라네.”

“감사합니다. 제가 촌장님의 과업을 끝내드리겠습니다.”

열쇠를 받은 우진은 곧장 뒷산으로 향했다.

그냥 뒷산이 아니라 더없이 귀중한 공간을 숨기고 있는 산이었다.

그것은 ‘던전’이었다.

“그럼 열어볼까.”

빠르게 올라간 뒷산.

그 중턱에 숨겨진 바위굴이 있었다.

마치 봉인이라도 된 듯이 굳게 닫혀 있는 굴이었다.

— 끼리릭... 쿠궁........

열쇠를 넣고 돌리자 육중한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그 안에 던전이 있었다.

우진은 이 던전의 목적을 알고 있었다.

그건 여기를 깨끗하게 ‘청소’하는 거다.

“하수구에서도 청소는 지긋지긋하게 했지. 이제는 진짜 나를 위한 청소다.”

던전은 커다란 동굴 형태였다.

— 키이이!

박쥐형 마물이 등장하는 장소.

덤벼드는 놈들을 사냥하며 우진이 동굴을 나아갔다.

다수의 박쥐가 등장했지만 이미 초보자 수준의 레벨을 벗어난 우진에겐 탐스

러운 먹잇감에 불과했다.

박쥐를 죽이자 역시 스킬이 계승되었다.

[적을 죽여 그의 힘을 이어받습니다.]

[’음파 감지’를 계승했습니다.]

‘음파 감지라. 탐지 계열 능력인 것 같군.’

우진은 스킬을 사용해보았다.

‘음파 감지.’

순식간에 전방의 사물들이 뇌에 직접 전달되듯 파악되었다.

그뿐 아니라 순간적으로 야시경을 켠 것처럼 박쥐들의 형체가 구분되었다.

‘이거라면 아주 쓸모있겠군.’

적을 찾아내는 건 물론이고 지형 파악까지 할 수 있는 귀중한 능력이었다.

탐지를 켜자 사냥은 더욱 쉬워졌고, 박쥐들은 썰려나갔다.

[경험치를 획득했습니다.]

[경험치를 획득했습니다.]

너무나 기분 좋은 알림들이 계속 울렸다.

이게 끝이 아니다. 동굴을 다 뚫고 다음 구역에 도달하면 또 대량의 경험치를

퍼먹을 수 있다.

이중 구조인 던전이라 최소한 몇 레벨업 정도는 보장된 것이나 다름 없었다.

‘게다가 던전 끝에 있을 보상까지.’

아무도 오지 않았던 던전이라 모든 걸 독식할 수 있었다.

우진은 엄청난 기세로 동굴을 돌파해나갔다.

*

사흘 뒤.

— 쿵....

“오늘도 박쥐를 엄청나게 잡았구만.”

가게 주인이 진심으로 감탄했다.

“예, 동굴도 거의 끝이 보입니다.”

“그 큰 던전을 혼자서 뚫어내다니 정말 대단하군.”

우진은 그저 미소를 지었다.

‘그래야 혼자 다 먹거든요.’

주인이 박쥐 사체를 분류하여 우진에게 대금을 지불했다.

마물의 소재는 쓰임새가 많고 하다못해 버프 요리의 재료로도 쓰이기에 귀중

했다.

“덕분에 요즘 살맛이 나네. 이 작은 마을에서 이런 대량의 시체를 팔아주다니.”

“별 말씀을요. 저도 덕분에 사냥에만 집중할 수 있는걸요.”

실제로 이 상점 덕에 일이 매우 편해졌다.

당연히 주인도 우진 덕분에 쏠쏠한 수입을 올리고 있을 것이다.

마물만 제대로 공급받을 수 있으면 가게는 무조건 이득보는 장사를 하니까.

“자네가 처음 거기 들어간다고 했을 때 마을 사람들 다 믿지 않았네. 고작해

야 초입에서 도망칠 줄 알았지. 그런데 이렇게 강한 모험가일 줄 누가 알았겠

나.”

“밖에는 더 강한 사람들도 많습니다. 제가 그냥 운이 좋아서 던전을 먼저 발

견한 것 뿐이에요.”

우진은 작은 마을의 상인에게 겸손하게 말했다.

이건 그의 진심이기도 했다. 월드는 넓고, 이런 작은 마을에서 허세를 부려봐

야 아무 의미가 없다. 우진은 월드의 진짜 강자들을 알고 있었다.

‘아는 것 뿐 아니라 직접 만나고 그 실력을 눈으로 확인했지.’

그들과 비교하면 지금 우진은 초보 모험가 수준 정도였다.

‘더 강해져야 해.’

대금을 챙긴 그가 다시 마을을 걸어 여관으로 향했다.

식사를 하며 생각에 잠겼다.

‘이틀 안으로 이번 던전을 마무리하자.’

벌써 며칠이 지났다.

첫 동굴은 제법 넓었고 아마 우진 정도 레벨의 4인 파티면 충분히 돌파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걸 혼자 먹으려고 하니 시간이 좀 걸렸다.

‘그래도 다음 구역은 금방 뚫겠어.’

경험치를 독식했더니 레벨이 많이 올랐다.

첫날 2업을 한 뒤로 다시 3업을 더 해서 현재 레벨은 26이었다.

이 정도면 다음 구역은 식은 죽 먹기일 것이다.

‘일단 남은 포인트를 전부 민첩에 밀어주고 속도전으로 가자.’

3대 스탯 중 민첩만 20을 달성하지 못했다.

남은 포인트를 다 밀어주고 던전을 쭉쭉 밀기로 했다.

‘상태창.’

[상태창]

[우진]

[LV : 26]

[종족 : 언데드]

[체력 : 20]

[근력 : 20]

[민첩 : 15]

[지력 : 1]

[기술 : 5]

[마나 : 1]

[스탯 강화 포인트 : 7]

[고유 스킬 : 계승]

[계승 목록 : 짐승의 후각, 도약, 하급 점멸, 트롤의 재생력, 땅굴 파기, 위

색, 돌진, 기척 감추기, 음파 감지]

레벨이 어느새 26이 되었다.

Lv. 14로 탈출한 노역장.

강적 브라카를 잡고 19가 되었고, 카멜레온을 잡고 20이 되었다.

산 하나를 넘으며 21이 되었고 이 던전에서만 5레벨업을 한 것이다.

‘눈물날 것처럼 빠른 성장이다. 전생의 내가 봤다면 억울해서 피를 토했겠군.’

비어있던 계승 목록도 이제 제법 많이 찼다.

일단 포인트 분배부터 했다.

‘남은 포인트를 전부 민첩에 투자한다.’

[민첩 : 22]

이제 3대 스탯이 전부 20을 돌파했다.

그 효과인지 몸이 예전과는 다르게 훨씬 가벼운 느낌이었다.

마물과 싸울 때 외에도 일상생활 전반에서 강해진 걸 체감할 수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값을 지불한 우진이 다시 마을을 가로지르며 자신의 몸을 살폈다.

‘그것보다 확실히 점점 몸이 재생되고 있어.’

트롤의 재생력.

그 패시브 스킬이 계속 작용하면서 언데드의 육체가 점점 생기있게 변하고 있

었다. 점점 인간에 가까워지는 것이다.

‘이제 종족만 모르면 사람이라고 해도 믿겠군.’

물론 아직 인간스러움을 회복하지 못한 부분이 있었다.

다쳐도 피가 흐르지 않는다.

심장도 뛰지 않고 얼굴도 여전히 창백하다.

‘뭐. 완벽할 순 없는 법이지.’

가볍게 생각을 털어낸 우진이 다시 뒷산의 동굴로 향했다.

오늘은 동굴 구역을 끝내고 드디어 그 끝의 다음 구역을 개봉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마을을 조금 벗어났을 때였다.

저 멀리서 누군가가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역광 속에서 걸어오고 있는 것은 어딘가 익숙한 형체였다.

‘음...? 저 사람은...?’

우진이 순간 경계심을 느꼈다.

그리고 이내 상대가 누군지 알아차렸다.

‘노역장의 감독관...!’

*

마르고 키가 큰 남자는 노역장의 감독관이었다.

키다리 제론.

마지막 날 브라카와 대립각을 세우던 모습이 생생했다.

“음?”

그때 제론 쪽에서도 우진을 보고 잠깐 걸음을 멈췄다.

서로 경계하듯 탐색하는 시선이 몇 번 오갔다.

우진은 극도의 긴장을 억눌렀다.

‘침착하자. 원래 이 마을 출신이고, 그저 휴가를 받아서 방문한 걸 수도 있다.’

감독관들이라고 무슨 하늘에서 떨어진 괴물들이 아니다.

다들 근방에서, 혹은 일자리를 찾아 먼 곳에서 온 평범한 주민들이다.

월드에 새로 유입된 우진 같은 존재일 수도 있고, 그런 존재들이 가정을 이뤄

서 낳은 토박이일 수도 있지만 중요한 건 미지의 괴물이 아니라는 거다.

“흐음....”

다행히 알아보지 못한 듯 제론이 먼저 시선을 돌렸다.

고개를 살짝 갸웃했을 뿐, 그저 목례하고 지나갔다.

우진도 목례를 하고 그를 스쳐 지나갔다.

충분히 멀어졌을 때 우진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얼굴이 바뀌었으니 알아봤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 일단은 던전부터 제대로

클리어하고 생각하자.’

며칠동안 공을 들인 던전이다.

마무리를 제대로 못해서 보상을 못 먹으면 그것만큼 아까운 게 없었다.

갑자기 마음이 급해졌다.

제론이 자기를 추격해왔을 가능성은 낮았지만, 머뭇거리고 있기도 불안했다.

우진이 빠르게 산을 올라 던전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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