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데드가 되어 돌아왔다 15
카멜레온.
우진의 타겟이 된 남자의 별명이었다.
위장 능력을 가진 범죄자.
정작 놈에게 당한 건 그 능력 때문이 아니라는 점이 더 허탈했다.
‘그냥 좋은 아이템을 구해준다는 얘기에 홀랑 넘어갔지.’
순진하고 어리석었다.
3년의 노역 생활이 그를 바보로 만들었다는 핑계를 대고 싶었지만, 그런다고
과거가 바뀌는 건 아니다.
게다가 놈이 우진에게 한 짓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나중에 다른 놈을 털어먹을 때 내 얼굴로 위장하기까지 했지. 그 덕에 난 뭐
때문에 쫓기는지도 모르고 쫓겨다니기도 했고.’
나중에야 카멜레온이 그런 짓을 하게 됐다는 걸 알았지만 그땐 이미 놈은 누
군가에게 살해당한 상태였다.
‘이번엔 내 손에 죽는다.’
가진 돈을 다 털리고 누명까지 썼으니 갈아마셔도 시원치 않았다.
‘생각해보면 내 전생은 뒤통수로 시작해서 뒤통수로 끝났군.’
하지만 이젠 다르다.
이번엔 그가 먼저 카멜레온에게 접근할 것이다.
돈을 털어먹는 것은 물론이고, 그의 신분증과 또다른 귀중한 능력까지 빼앗을
생각이었다.
‘기다려라 카멜레온.’
날이 밝자 우진은 이 도시의 정보 상점으로 향했다.
카멜레온이 단골로 다니던 가게였다.
과거에 우진은 여기서 모험 관련 정보를 입수하려고 했다.
그리고 카멜레온을 만났고, 이후는 빈털털이가 된 뒤 쫓겨다니게 되었다.
‘이번엔 정보를 구하러 가는 게 아니다. 반대로 정보를 파는 거다.’
계획은 이렇다.
카멜레온의 귀가 솔깃할 정보를 흘린다. 도저히 무시할 수 없는 치명적인 정
보를 슬쩍 뿌리는 것이다.
미끼를 뿌려서 유인하는 계략.
무엇으로 유인할지는 이미 정해놨다.
‘놈이 절대 외면할 수 없는 정보지.’
— 끼이익...
도착한 정보 상점.
문을 열고 들어가자 주인 털복숭이가 흘깃 우진을 쳐다봤다.
그리고 허름한 행색에 다시 서류로 눈을 돌렸다.
“간단한 건 거기 게시판을 보고 주문하시오. 복잡한 건 돈이 없을 테니 묻지
말고.”
우진은 로브 안에서 피식 웃었다.
월드는 이런 곳이다. 돈과 힘이 전부다. 어찌보면 노역장이 그나마 정다운 곳
이라고 할 수 있다.
“정보를 사러 온 게 아니라 팔러 왔는데.”
우진의 말에 그제야 털복숭이가 관심을 보였다.
“무슨 정보?”
“수배가 붙은 범죄자 중 카멜레온이란 자가 있을 거요.”
“글쎄, 들어본 것도 같고.”
“그 자의 진짜 얼굴을 알고 있으니 관심있는 자와 연결해주시오.”
우진의 계획은 이거였다.
카멜레온의 진짜 얼굴.
별 의미도 없는 정보다. 이 시점의 카멜레온은 그렇게 유명한 범죄자도 아니
고, 놈의 진짜 얼굴을 돈까지 내가면서 궁금해하는 사람도 없을 테니까.
하지만 카멜레온 본인은 다르다.
놈은 반드시 궁금할 것이다.
누가 자신의 얼굴을 알고 있고, 또 그걸 가지고 정보 장사를 하려고 드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래서 찾아온 곳이 바로 여기.
놈의 단골 정보 상점이다.
장본인이 방문하면 주인장이 지나가는 말로라도 얘기를 할테니.
무조건 미끼를 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털복숭이가 잠시 고민하더니 물었다.
“정보료는?”
“밥 한 끼 사주면 몽타주까지 그려준다고 하시오.”
주인이 피식 웃었다.
“사려는 사람이 없을 텐데.”
“두고 볼 일이지. 아, 참고로 난 저기 ‘거인의 발굽’ 여관에서 묶고 있으니
구매자가 나타나면 그쪽으로 보내주시오.”
주인장이 건성으로 답했다.
“예 알겠수다.”
우진은 다시 가게를 나섰다.
그는 이 계획이 반드시 성공할 걸 알고 있었다.
그건 주인장이 이 쓸데없는 정보의 가격을 묻는 순간부터 정해진 거였다.
‘주인장과 저 놈은 서로 아는 사이거든.’
카멜레온의 귀에 안 들어갈 수가 없다.
그리고 놈은 반드시 자기를 찾아올 거다.
‘정보를 사러? 아니, 내가 뭐하는 놈인지 확인하러.’
우진이 씨익 웃으며 거인의 발굽 여관으로 향했다.
*
— 척....
도약으로 여관 지붕에 올라선 우진이 입구가 잘 보이는 곳에 웅크리고 앉았다.
돈이 없으니 진짜 여관을 사용할 순 없지만 이런 건 가능하다.
‘실제로 여관에 묵을 필요도 없고.’
그냥 여기서 죽치고 있다가 카멜레온이 나타나면 작전 성공이다.
2번째 플랜도 있지만 일단은 내일까진 기다려볼 생각이었다.
‘밥도 안 먹어도 되고 잠도 안 자도 되니 잠복하기 편하군.’
인벤토리에 두더지 시체가 조금 있으니 급하면 그걸 먹으면 된다.
그는 카멜레온을 기다리며 다른 문제에 대해 생각했다.
‘추적은 이제 그렇게까지 신경쓰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제법 먼 도시까지 왔
고, 내가 반드시 이 도시에 왔을 거란 보장도 없기 때문에 찾는 건 불가능에
가까워.’
물론 세상에 절대라는 건 없다. 그러니 염두에는 둬야 한다.
위장 스킬을 얻기 전까진 최대한 주의를 기울일 생각이었다.
그리고 밤이 왔을 때였다.
기다리던 것이 모습을 드러냈다.
‘카멜레온...!’
밤거리를 걸어오고 있는 것은 분명 놈이었다.
‘걸렸구나.’
전생의 우진은 사람의 마음은 잘 몰랐다.
하지만 마물들에 대해선 잘 알았다.
교활할수록 제 꾀에 넘어간다. 그게 마물을 잡는 기본 전략이었다.
사람도 똑같다.
죽음을 겪으며 깨달은 작은 사실은, 사람도 결국 악의를 품은 순간 마물과 다
를 바 없다는 것이었다.
그에 기반한 작전은 성공했다.
인간의 모습을 한 마물 ‘카멜레온’은 자신의 계략에 걸려들었다.
이건 그의 이번 삶이 완전히 달라지리란 신호탄과도 같았다.
‘결국 못 참고 모습을 드러냈구나. 어리석은 놈.’
우진은 전생의 원한을 품은 채 밤거리를 걸어오는 형체를 노려보았다.
놈이 미끼를 물고 여관으로 오고 있는 것이다.
‘저 꼴보기 싫은 습관들은 여전하군.’
놈은 당연히 위장을 하고 왔다.
그게 자기 스킬인데 안 쓸 이유가 없다.
하지만 우진은 놈을 분명하게 알아볼 수 있었다.
습관적으로 두리번거리는 눈.
남의 얼굴을 유심히 살피는 버릇.
게다가 가장 큰 특징.
카멜레온의 종족은 리자드맨이다.
위장했을 땐 기다란 꼬리를 감추기 위해 항상 펑퍼짐한 로브를 입고 허리를
수그리고 다닌다.
‘눈에 띄는 특징을 가진 놈은 반드시 거기에 신경쓸 수밖에 없지.’
저 구부정한 모습은 딱 우진의 기억에 있는 그 자세였다.
‘스킬로 바뀌는 건 얼굴 뿐이고 체형이나 동작까지 완전 다른 사람이 될 수는
없으니까.’
우진은 일단 창문을 통해 놈의 동태를 살폈다.
종업원과 몇 마디를 나눈 놈은 가만히 홀을 살피더니 몇 분 동안 계속 계단과
입구를 반복해서 살폈다.
그리고 거기 서서 기다리기 시작했다.
두 사내의 끈질긴 인내심 싸움이 이어졌다.
‘포기해라. 포기하고 가라.’
그때 마침내 놈이 다시 여관을 나섰다.
그리고 여관의 입구를 한 번 돌아보고는 밤거리로 향했다.
‘오케이, 역할 변경이다.’
이제 추격자와 타겟이 바뀌었다.
이번엔 이쪽에서 놈을 미행할 차례였다.
우진이 지붕을 타고 바람처럼 움직이기 시작했다.
*
카멜레온은 기본적으로 범죄자였고, 여관에 우진이 없자 이상한 낌새를 느낀
것인지 주의를 기울이며 이동했다.
하지만 우진에겐 도약이 있었다.
고지대를 점한 그에게 미행은 식은 죽 먹기였다.
‘놈은 약아빠졌을 뿐 엄청난 강자인 건 아니니까.’
전생에 구르고 구른 우진이다.
고작 작은 도시의 범죄자 하나를 미행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렇게 도착한 놈의 거처는 예상보다 허름했다.
초보자 등쳐먹는 솜씨를 생각하면 이런데 사는 게 이해가 안 될 정도였다.
낡은 2층 건물, 그것도 1층은 창고로 쓰이는 건물을 보며 우진은 혀를 찼다.
‘도박을 좋아한다더니 돈을 다 거기다 처박은 모양이군.’
일단 지붕에서 밤이 더욱 깊어질 때까지 기다렸다.
몇 시간이 지났을 때.
아주 살며시 창문에 내려앉은 그가 다시 몇 분 정도 기척을 살폈다.
‘자는 모양이지만... 확인은 필수지.’
확실하게 하기 위해 창문에서 아주 작은 소리를 냈다.
— 퉁....
그리고 다시 지붕으로 가서 몇 분을 기다렸다.
놈의 성격상 깨어있다면 소리를 확인하지 않고는 못 견딜 테니까.
하지만 놈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마침내 마음을 굳힌 우진이 대범하게 창문으로 다가가 안을 살폈다.
그 순간 창문이 벌컥 열리며 단검이 날아들었다.
“이 새끼 너 뭐야...!”
납짝 웅크리고 대기하고 있던 카멜레온이었다.
하지만 이 또한 예상한 바였다.
우진은 날렵하게 단검을 피하며 자신도 무기를 꺼냈다.
그리고 적을 상대하는 척했다.
“너 누구냐고...! 나한테 왜이래...?”
카멜레온이 재차 물었다.
우진은 로브를 뒤집어쓴 채 스산하게 말했다.
“자기 목숨은 끔찍하게 아끼는군. 근데 왜 남은 그렇게 쉽게 등처먹지?”
“뭐... 뭐라고?”
우진이 이를 갈며 말했다.
“넌 그날 밥 한끼 먹을 돈은 남겨줘야 했다. 최소한 동전 한닢은 남겨줬어야지.”
“뭐...? 너... 너 미켈슨이냐?”
말을 하면서도 계속 쉭쉭 내지르는 단검.
우진은 그걸 쳐내며 놈을 창문 안으로 밀어붙였다.
“아니면 내 얼굴이라도 팔아먹지 말던가.”
“너... 너 누구냐고 이 새끼야!”
우진이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있어. 과거에 너를 죽이고 싶어하던 놈이.”
“과거...?”
“아니면 미래라고 해야할까?”
“도대체 그게 무슨....”
우진은 대답 대신 집중을 시작했다.
카멜레온의 칼을 기계적으로 쳐내며 정신집중이 필요한 스킬을 준비했다.
방심했다고 생각한 카멜레온이 달려들었다.
“이, 이 새끼, 내가 쉽게 뒤질 거 같아...!”
하지만 그게 노리고 있던 타이밍이었다.
카멜레온이 자신의 꼬리를 이용해 변칙적인 공격을 해올 때.
마침내 준비된 스킬을 발동했다.
‘점멸.’
순간 카멜레온의 등 뒤에서 나타난 우진.
그가 양손으로 온 힘을 다해 놈의 등을 찔렀다.
“컥... 커억....”
등 뒤의 일격.
이건 예상할 수도 없고, 예상해도 못 막는다.
점멸이 엄청난 스킬인 이유가 있었다.
엄청난 강자라면 알아서 보호막이나 호신강기로 막아낼 거다.
아니면 움직임을 포착해서 방어하거나.
하지만 카멜레온은 그저 양아치 범죄자일 뿐이다.
이런 놈에게 당했다는 게 피눈물이 나도록 억울한 그런 잡범.
“쉬....”
우진이 놈의 입을 틀어막으며 재차 단검을 찔렀다.
목, 다시 심장.
마지막으로 헤드락을 걸듯이 목을 조른다.
“쉬쉬....”
심각한 출혈.
그리고 막혀오는 숨통.
리자드맨인 놈의 꼬리가 파르르 떨리더니 축 늘어졌다.
[레벨업!]
레벨 차이가 아주 심하지 않았는지 1번의 상승이 찾아왔다.
하지만 원하던 건 레벨업이 아니라 다른 거였다.
[적을 죽여 그의 힘을 이어받습니다.]
[’위색’을 계승했습니다.]
‘그렇지. 바로 이거다.’
놈의 고유스킬 ‘위색’.
비록 얼굴 모습만 바꿔주는 유틸형 스킬이지만, 도망자인 우진에겐 아주 절실
한 능력이었다.
‘잘 가라.’
우진은 일단 숨을 거둔 카멜레온의 시체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이제부터 빠르게 움직여야 했다.
놈의 집은 외진 골목이었지만 그래도 제법 소란이 있었다.
의복과 서랍, 장롱등을 뒤져 쓸만한 걸 전부 챙겼다.
돈, 신분증, 그리고 튼튼한 신발까지.
‘돈은 얼마 없군. 그래도 신분증은 매우 유용하겠어.’
위색을 얻었으니 남의 신분증을 사용하기 매우 편해졌다.
도시마다 몰래 잠입해서 은밀히 다닐 순 없으니 일단 놈의 신분을 이용하기로
했다.
‘그러려면 작업이 좀 필요하겠군.’
일단 피를 싹싹 닦아 바닥을 치우고 커다란 이불에 시체와 청소에 쓰인 옷가
지들을 몽땅 박아넣었다.
‘이놈은 원래 범죄자다. 어딘가로 몸을 숨겼다고 생각하겠지. 최소한 내가 죽
였다고 생각하긴 힘들다.’
장롱을 뒤져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은 우진이 약간 헐렁한 바지의 허리띠를 꽉
조였다.
‘그래도 꼬리 구멍은 좀 어색하군.’
리자드맨이라 바지마다 꼬리 구멍이 달려있었다.
옷 하나를 둘러서 가리기로 했다.
‘이제 한동안 몸을 숨기자. 그리고 새로운 얼굴로 월드에 나서면 절대 밝혀질
리 없을 것이다.’
우진이 심호흡을 했다.
지금부터 단숨에 먼 곳까지 가야 했다.
일단 상태창을 불러 근력과 체력을 20으로 만들었다.
한계를 넘어선 스탯이 더욱 강력한 효과를 내며 우진에게 힘을 불어넣었다.
‘브라카 덕분에 폭업을 한 게 이렇게 도움이 되는군.’
그는 포대의 시체를 짊어지고 도약으로 성벽을 넘었다.
다행히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도시에서 멀어질 수 있었다.
“헉... 헉....”
거의 1시간의 질주 끝에 완전히 도시가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는 강가에 쓰러져서 숨을 몰아쉬었다.
‘아직 끝난 게 아니다.’
체력을 회복한 그가 벌떡 일어나 으슥한 곳에 ‘땅굴 파기’를 시전했다.
그리고 그 안에 시체 포대를 넣고 다시 흙으로 덮었다.
‘이걸로 어느정도 수습은 끝났군.’
강가에 가서 물에 얼굴을 처박고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물도 꿀꺽꿀꺽 마시자 완전히 정신이 돌아왔다.
“크으.......”
물맛은 그저 시원했다.
사람 하나를 죽였지만 죄책감은 들지 않았다.
이건 복수니까.
그건 앞으로의 모든 복수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기본적으로 남 뒤통수치는데 거리낌 없는 놈들이다. 내가 처맞을 바엔 먼저
치겠어.’
과거로 돌아왔으니 놈들의 악행은 실제론 일어나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우진의 기억 속엔 선명했다.
구구절절 합리화하고 싶진 않았다.
그냥 개같은 기억들을 바꾸고 싶었다.
이번 생엔 니들이 나 대신 당하는 거다.
지난 생 빌빌거리던 우진에게 누군가 말했다.
억울하면 강해지라고.
그걸 똑같이 돌려줄 셈이다.
‘억울하면 니들도 뒤진 다음 회귀해.’
입가를 슥 훔친 우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여유가 생겼으니 가장 큰 전리품을 확인할 시간이었다.
‘위색.’
강물을 바라보고 스킬을 사용하자, 우진의 얼굴에 신비한 변화가 생겨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