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데드가 되어 돌아왔다 4
브라카가 던져준 아이템.
그건 ‘육포’였다.
하지만 우진은 그게 무슨 고기로 만든 건지 알았다.
‘쥐고기 육포. 그것도 최하급.’
이놈들은 하수구의 쥐고기를 육포로 가공해서 바깥 세상에다가 팔아치운다.
하급 마물의 시체 하나도 알뜰하게 다 써먹는 것이다.
‘그래도 이거라도 있으면 공복 디버프는 안 걸리겠네.’
언데드라도 공복이 길어지면 디버프가 생겼다.
주는 밥만 먹고 매일 사력을 다해 싸우기엔 만복도가 아슬아슬한데 잘 됐다.
“감사합니다!”
우진은 육포를 잘 챙겨서 인벤토리에 넣었다.
상태창처럼 인벤토리도 월드의 기본적인 기능 중 하나였다.
그때 브라카가 갑자기 질문을 해왔다.
“그런데 말야...... 얼굴이 유난히 하얀데 무슨 병이라도 있나?”
순간 우진은 아차 싶었다.
자신의 얼굴은 핏기가 없어도 너무 없다.
하지만 어떻게든 둘러댈 정도는 되었다.
얼굴이 썩은 것도 아니고, 몸이 괴사해서 냄새를 풍기는 것도 아니니까.
마르고 하얀 것 정도는 거짓말이 통할 거라고 믿고 용기를 냈다.
“몸이 원래 조금 약합니다. 하지만 일에는 지장 없도록 하겠습니다.”
아무렇지 않다는 듯한 우진의 연기에 브라카는 관심을 끊고 머리를 긁적였다.
“흠. 의지는 있는데 체력이 안 따라주는 타입인가보군. 이걸 가져가서 잠자기
전에 써봐라.”
[최하급 온열석]
[차가워진 몸을 덥혀준다. 시간마다 피로 회복+1]
[4시간 30분 후 보유 에너지가 만료된다.]
‘자기가 쓰던 걸 준 모양이지만... 이거라도 고맙지.’
이거야말로 진짜 선물이다.
우진은 거의 큰절을 하듯이 인사를 올렸다.
“감사합니다!”
“그래. 잘 하자고.”
브라카는 다시 서류를 살폈고 관리인이 우진을 숙소로 데려갔다.
사람들이 우진을 잠깐 살폈지만 다시 잠을 자거나 자기들끼리 나누던 대화로
돌아갔다.
우진도 그들을 신경쓰지 않고 구석의 자기 자리에 앉았다.
‘후각이 생기니 이곳이 얼마나 악취가 심한지 알겠네.’
더러운 숙소 자체는 물론이고, 사람들이 뿜어내는 악취가 엄청났다.
하루종일 땀흘려 싸우고 제대로 씻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 냄새조차 내 희망의 일부다.’
스킬 ‘짐승의 후각’이 없었으면 맡지도 못했을 악취들.
그리고 그 짐승의 후각을 얻게 해준 고유 스킬, 계승.
갑자기 웃음이 나왔다.
‘냄새라도 맡으니 그래도 사람에 가까워진 것 같아서 좋네.’
갑자기 언데드가 된 게 정신적으로 좀 받아들이기 힘들긴 했다.
하지만 냄새를 맡을 수 있게 되자 다시 사람에 가까워지고 있는 것 같아서 기
분이 묘했다.
‘이런 식으로 점점 스킬을 얻다보면 정말 인간하고 다를 바가 없어질 수도 있
겠지.’
그냥 인간 뿐이 아니라, 엄청 재능있고 강한 인간이 될지도 모른다.
흡혈귀 왕 원본을 뛰어넘을 존재가 될 지도 모른다.
‘그래, 이번 생엔 내 손으로 직접 왕의 자격을 얻어내는 거다.’
우진은 계승이란 것이 어쩌면 ‘무한대의 가능성’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고 생
각했다.
무한대의 가능성이란 월드의 정점에 오를 자가 갖춰야 할 자질이라고 불리던
것인데, 누구도 그 진짜 정체를 몰랐다.
다만 여러가지 추측만이 무성했을 뿐.
‘계승의 능력이라면 분명 무한대의 가능성에 가깝긴 하지.’
계승의 힘으로 월드의 정점에 오른다.
자신이?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벅차는 미래였다.
그러나 그것도 이 지하의 노역장을 벗어나야 꿈꿀 수 있는 미래다.
일단은 여기서 할 수 있는 일을 최선을 다하며 버티기로 했다.
우진은 화장실에 가는 척하며 육포를 우걱우걱 먹고 자리에 돌아왔다.
그리고 온열석을 끌어안고 누웠다.
‘등따시고 배부르고 좋네.’
분명 고독하고 힘들었지만 그냥 여기가 안락한 호텔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주위의 드르렁거리는 소리와 잡담소리는 클래식 음악이다.
그렇게 또 한 밤이 지나갔다.
*
다음날 다시 하수구 노역이 시작되었다.
이 어두운 통로의 악취는 숙소보다 더욱 심했다.
온갖 오물이 흘러드는 장소니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와 코를 그냥 뜯어버리고 싶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우진은 새로운 사실을 알아차렸다.
자신은 진짜 코를 뜯어버릴 수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말이 그렇다는 거고, 후각 자체가 스킬로 생성된 것이라 온오프가 가능
했다.
‘후각 오프. 하수구에 오면 무조건 오프다.’
그렇게 후각이 사라지고 한결 쾌적하게 사냥을 이어갔다.
이제 사람들은 우진의 스타일을 알아서 멀찍한 곳에서 따로 일을 하고 그에게
마구 처치할 공간을 마련해주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소량의 경험치를 획득했습니다.]
[소량의 경험치를 획득했습니다.]
경험치는 오르지만 레벨이 오르지 않는다.
‘고작 하루만에 한계선에 도달해버렸군.’
현재 그의 레벨은 3이다.
강화 포인트를 다 분배하여 근력은 7이 되었다.
그래서 하수구 쥐를 잡는 속도는 빨라졌다.
하지만 경험치가 너무 조금 오른다. 게다가 레벨은 오를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예상은 했지만 하루만에 이렇게 될 줄이야.’
물론 자신이 좀 심하게 날뛰긴 했지만, 정상적인 속도로도 금방 한계선에 도
달했을 것이다.
게다가 문제는 그게 끝이 아니다.
하수구 쥐에게선 이제 아무것도 계승되지 않았다.
‘계승이 내 유일한 희망인데 말이지.’
우진은 쥐새끼들을 노려보았다.
쟤들한테선 더 뽑아먹을 게 없다는 판단이 들었다.
고민을 멈춘 그는 일단 열심히 사냥을 했다.
그리하여 오늘도 가득찬 시체통을 가지고 돌아왔다.
“오, 좋아. 이 정도면 이번 통로는 금방 치우겠군.”
관리인이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기 구역에 이런 인재가 들어왔으니 콧노래라도 부르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런 건 상관없고 딴 걸 원했다.
숙소로 돌아가는 우진이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일터를 옮겨야 해.’
새로운 계승의 대상이 필요하다.
강해지기 위해서. 그리고 이곳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
다음날 일과가 시작되었다.
오늘의 업무는 청소였다.
뚫어낸 구역을 청소하고 깨끗한 통로로 만드는 일이었다.
— 슥... 슥...
우진도 오물 밀어내며 하수구 청소에 힘을 기울였다.
마물과 싸울 필요도 없고, 그냥 청소만 하면 되는 일이라 쉬웠다.
“빨리 하고 쉬자!”
“그래! 후딱 하고 쉬자고!”
다른 사람들은 즐거워보였으나 우진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계속 하수구에 있는 이상 즐거울 이유가 없다.
일이 빨리 끝나든 쉬든 별 의미가 없다.
통로의 끝에 도달하자 그 너머에 다음 통로가 있었다.
안쪽에 여전히 쥐들이 돌아다녔다.
당연히 저 통로도 자신들이 치워야 하고 저 쥐들도 자신들이 잡아야 한다.
사람들은 일이 끝나서 기뻐하고 있었으나 우진은 묵묵히 방벽 너머를 노려보
았다.
‘이런 식이면 영원히 하수도 작업만 하게 될 거야.’
오후엔 쥐 도축 작업이 시작되었다.
— 서걱... 서걱...
우진은 묵묵히 쥐 도축 작업을 했다.
사실 이것도 전투에 비하면 쉬운 일이었다.
가죽을 벗겨내고 내장을 빼서 고기만 통에 넣으면 되는 거니까.
그렇게 통에 쥐고기를 채워넣던 와중이었다.
— 푹......
다음 사체의 배를 갈라 내장을 꺼내는데 뭔가 이상한 게 잡혔다.
내장 사이에서 무언가가 빛나고 있었다.
우진은 자신의 행운을 믿을 수가 없었다.
‘이게 하급 마물에서 나온다고......?’
손에 들린 아이템은 지하 노역장에서 보기엔 너무나 귀중한 아이템이었다.
물론 확률이니까 이게 드랍될 가능성은 있다.
복권도 누군가는 1등에 당첨되지 않는가.
그래도 자신이 그 주인공이 되다니.
이번 생은 진짜 뭔가 풀리려는 모양이었다.
우진은 차분히 주위를 살폈다.
다행히 아무도 그의 행운을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이걸 멍청하게 상납할 수는 없지.’
그는 모종의 아이템을 잘 숨긴 뒤 도축을 계속 이어갔다.
일이 끝나고 숙소로 돌아갈 때는 조마조마했다.
하지만 다행히 몸수색을 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고작해야 하수구 쥐 사체를 도축하는 일에 뭐 대단한 변수가 생길 리 없으니까.
‘원래라면 말이지.’
숙소에 돌아온 그는 화장실에서 몰래 아이템을 확인하며 설렘을 만끽했다.
이 ‘작은 행운’이 자신을 어디로 데려다 줄 지 벌써부터 궁금해졌다.
다음날은 새로운 구역에서 쥐사냥이 이어졌다.
다들 고된 노동에 힘들어하는 와중에 우진은 묵묵히 사냥을 이어갔다.
[소량의 경험치를 획득했습니다.]
쥐를 잡고. 다시 쥐 한 마리를 잡았다.
[소량의 경험치를 획득했습니다.]
말그대로 쥐꼬리만큼 오르는 경험치라도 열심히 챙겼다.
그리고 마침내 허리가 뻐근해지고 언데드의 육체에도 피로가 몰려왔을 때였다.
[레벨업!]
‘그래도 오르긴 오르네.’
죽어라 사냥해서 남들 몇 배를 잡았더니 겨우 1레벨업을 했다.
상태창을 부른 우진은 이번엔 체력에 포인트를 주었다.
이제 체력 5, 근력 7의 나름 밸런스있는 일꾼이 되었다.
‘그래봐야 레벨 4 일꾼이지만.’
주위에선 여기저기 곡소리가 나고 있었다.
어제 편한 하루를 보낸 여파로 다들 힘들어서 죽어나는 것이다.
하지만 그 강행군에도 우진은 혼자 멀쩡하게 버티고 있었다.
그에게는 뚜렷한 목표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사냥터를 옮겨야 해.’
그에게 이건 노동이 아니라 사냥이었다.
그리고 레벨이 찬 사냥꾼은 사냥터를 옮겨야 했다.
그래야 정상적인 경험치가 들어오고, 새로운 계승의 대상도 찾을 수 있으니까.
‘하지만 어떻게 옮길까.’
우진은 성질 포악해보이는 관리인을 바라보았다.
저 관리인은 일 잘하는 일꾼을 굳이 딴 데 보내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럼 브라카 뿐이다.
감독관인 브라카는 자기를 예쁘게 봐줬으니 부탁을 해보면 가능성이 있다.
‘위험한 도박이지만 잃을 건 거의 없다. 최악의 경우 채찍질 정도, 아니면 며
칠 굶으면 되겠지.’
생각을 마친 우진이 바로 행동에 돌입했다.
“저 관리인님.”
최대한 공손히 말을 걸었다.
“바쁜데 무슨 일이야?”
“브라카님과 면담을 하고 싶습니다.”
관리인이 피식 웃었다.
“너 같은 애들 많이 봤다. ‘뭔가 착오가 있는 거 같은데요? 전 여기 있을 사
람이 아닌데요? 나는 노예가 아닙니다!’ 그런 애새끼 같은 소리나 할 거면 가
서 쥐나 더 잡아.”
하지만 우진은 물러서지 않고 다시 말했다.
“정말 중요한 일입니다.”
“그건 네가 판단할 게 아닌데.”
“그럼 말씀이라도 전해주십시오. 온열석을 받았던 노예가 긴히 드릴 말씀이
있다고 하면 꼭 불러주실 겁니다.”
관리인이 그제서야 조금 놀란 얼굴이 되었다.
“네가 브라카님께 온열석을 받았다고? 무슨 이유로?”
“그분이 선물로 주셨습니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사용하라고요.”
관리인이 갑자기 신중한 표정이 되었다.
노예에게 선물? 명백한 특별 대우다.
“제발 부탁드리겠습니다. 한번만 말씀을 전해주십시오.”
“흠.......”
관리인은 고민했다.
오늘 기분도 안 좋고 원래 성질 같아서는 채찍을 꺼내와서 마구 갈기고 싶었
으나, 브라카의 눈에 띈 노예를 괴롭혔다간 자기도 귀찮아진다.
결국 관리인이 입을 다물고 손짓으로만 따라오라고 했다.
브라카 사무실 앞에서 그가 마지막으로 엄포를 놓았다.
“너 여기 들어가서 개소리를 했다간 뒤져서 나올수도 있다. 그래도 괜찮냐?”
“예. 모든 책임은 제가 지겠습니다.”
“알겠다. 그럼 잘 해봐라. 내 이름을 팔았다간 내가 널 죽일 거니까 그렇게
알고.”
“예! 기회를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렇게 겨우 입장한 감독관 사무실.
“면담 신청을 했다고?”
하지만 브라카는 생각보다 시큰둥했다.
자기를 알아보고 반가워하지도 않고, 노예가 귀찮게 한다고 화를 내지도 않았다.
그냥 자기를 물건으로 생각하는 기분이었다.
말도 하고 걸어다니면서 일까지 하는 물건.
‘하긴 노예가 뭐 사람으로 느껴지기야 하겠나.’
갑자기 걱정이 몰려왔다. 괜히 부탁같은 걸 해서 조금이라도 쌓아올린 호감을
다 날려버린 건 아닐까.
하지만 여기까지 온 이상 물러날 곳은 없다.
여차하면 그냥 맞아서 떼우자는 생각으로 채찍질을 각오하니 무서울 것도 없
었다.
“예, 저를 제 14 하수도로 보내주십시오.”
우진의 말에 브라카가 마침내 시선을 들어 그를 보았다.
“제 14 하수도라. 거기 뭐가 나오는지나 알고서 얘기하는 건가?”
“예, 공동묘지와 연결된 곳으로 독각귀들이 등장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독각귀는 일종의 구울로, 손톱이 길고 장발을 한 마물이다.
하수구 쥐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해서 숙련된 노예가 아니면 상대할
수 없다.
“그런데도 가겠다고? 뭘 잘못 생각하는 것 같은데, 위험한 일을 한다고 노역
장에서 빨리 나갈 수 있는 건 아니다. 어차피 기간을 다 채워야 해.”
“알고 있습니다. 3년간 일을 해야 한다는 것도, 제가 위험한 일을 한다고 그
기간이 짧아지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굳이 그런 위험을 감수하려고 하지?”
우진은 결연하게 말했다.
“제 능력을 증명해서 감독관님께 인정받고 싶습니다.”
“크크크......”
브라카가 웃음을 터트리더니 우진을 한참 바라보았다.
미소 띈 입과 달리 눈에는 웃음기가 전혀 없이 냉정하게 평가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성공인가? 실패인가?’
우진이 긴장한 가운데.
“그럼 일단 내일 아침에 출근하지 말고 내 사무실로 와라. 제 14 하수도가 얼
마나 처참한 곳인지 보여주지.”
마침내 브라카가 입을 열었다.
그건 허락도 거절도 아닌 미묘한 답변이었으나, 그걸로 충분했다.
‘오케이! 일단 가능성이 생겼다.’
하수도를 벗어날 희망.
그 가능성을 절대 놓치지 않을 것이다.
숙소로 돌아온 우진은 준비를 시작했다.
‘이걸 사용할 시간이군.’
그에 손에 들린 건 쥐의 사체에서 나온 비밀의 ‘아이템’.
폐품의 반격을 시작할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