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데드가 되어 돌아왔다 3
종족은 여전히 언데드였다.
고유스킬도 그대로였다.
그런데 그 외에도 눈에 띄는 게 있었다.
‘오. 마나가 있네?’
마나는 아주 특별한 스탯으로 태생 0인 존재는 정말 별 노력을 다 해야 겨우
1을 올릴 수 있다.
하지만 원래부터 1이라도 수치가 붙어있으면 그냥 평범하게 포인트를 투자해
서 올릴 수 있다.
이것만으로도 전생보다 조건이 훨씬 좋았다.
‘아무래도 흡혈귀 왕의 부활이라 그런가본데.’
자연스럽게 마나를 다루는 고위 마물.
그놈의 의식을 먹어치워서 우진도 마나를 다루는 존재로 구분된 것 같다.
‘다른 건 전생이랑 차이는 있지만 거의 비슷하고.’
기술은 손재주 같은 것으로 스킬을 더욱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게 해준다.
나머지는 스탯 이름을 보면 떠오르는 내용 그대로다.
‘이 계승이란 스킬은 여전히 알 수 없단 말이지.’
고유 스킬 ‘계승’의 설명을 보면 다른 존재의 힘을 계승할 수 있다는데 바로
이해하긴 힘들었다.
실전을 거치면서 알아봐야 할 것 같았다.
‘하수도에 가서 쥐새끼들과 싸우면 뭔가 실마리가 잡히겠지.’
상태창 확인을 마친 우진은 일단 강화 포인트를 근력에 투자했다.
광석들을 최대한 많이 캐서 빨리 이곳을 벗어나기 위해서였다.
‘오늘은 할당량의 거의 3배를 해냈지.’
몸이 약한 사람들은 픽픽 쓰러지는 이 유독한 광산.
다른 신입들은 일은 커녕 반죽음이 되고 난리도 아니었으니 그거에 비하면 그
의 성과는 탁월하다고 말할 정도였다.
‘내일도 버텨낸다.’
우진은 눈을 감고 휴식했다.
신음소리와 고통스러운 잠꼬대가 가득한 감옥이었지만 문제될 건 없었다.
자는 거 외에는 할 것도 없는 공간이었으니까.
*
다음날도 노역이 시작되었다.
다른 신입들은 여전히 헤맸지만 우진히 묵묵히 곡괭이질을 해냈다.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지 관리인 하나가 슬쩍 말을 걸었다.
“야... 너는 혹시 곡괭이질이 재밌냐?”
“아닙니다!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할 뿐입니다!”
관리인은 거 참 하며 혀를 차고는 다시 돌아갔다.
우진은 욕설을 참았다.
‘이게 재밌겠냐? 뒤질라고 진짜.’
그는 더욱 예술적인 곡괭이질로 분노를 뿜어냈다.
그 다음날도 기계처럼 일했다.
일하라고 하면 바로 곡괭이질을 시작하고, 밥을 주면 싹싹 먹고 자라고 하면
잤다.
노예 상인이 있다면 우진을 소개할 때 보기 드문 극상품이라고 소개할 것이다.
그건 남들이 보기에도 마찬가지였다.
지치지도 않고 계속 할당량을 넘어서 해내는 그의 모습은 분명 눈에 띄는 것
이었다.
결국 관리인이 그를 불렀다.
“신입. 감독관님이 보자고 하신다.”
우진은 무슨 일인지 알 것 같으면서도 긴장된 표정을 유지했다.
“알겠습니다!”
그는 평소에는 갈 일이 없는 감독관 사무실로 불려갔다.
브라카가 거기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감독관님!”
“그래... 인사성이 아주 바른 노예로군.”
브라카는 커피 색깔의 걸죽한 뭔가를 마시고 있었다.
그 여유로운 모습에 열이 올랐으나 우진은 꾹 참고 명을 기다렸다.
“네가 아주 열심히 일을 한다더군.”
“아닙니다! 부족한 솜씨를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그래. 건방떨지 않는 것도 아주 보기 좋아.”
— 툭...
우진 앞에 뭔가가 던져졌다.
그것은 녹슨 검이었다.
날이 거의 서지 않아서 둔기라고 봐도 무방한 그런 검이었다.
“네 것이다. 소중하게 간수해라. 잃어버리면 일당에서 깔 것이니.”
“알겠습니다!”
우진이 검을 들었다.
[녹슨 검]
[폐품에 가깝다.]
황당한 설명이지만 가까이서 보니 정말 폐품같은 검이었다.
노예에게 좋은 장비를 줄 필요가 없으니 최대한 싼 걸 주는 거다.
“넌 내일부터 하수구로 출근해라.”
브라카가 거드름을 피우며 말했다.
그토록 바라던 인사이동이었다.
우진은 기쁨을 숨기고 큰 목소리로 대답했다.
“예! 시키시는 일은 뭐든 열심히 하겠습니다!”
“음... 그래, 하수구에 일손이 모자라서 가는 거니 거기선 더 열심히 해야 할
거다.”
“알겠습니다!”
용건이 끝난 브라카가 그를 내보냈다.
짧은 대화였지만 우진은 손에 쥔 검을 보고 희망을 느꼈다.
엄청난 승진을 한 건 아니다.
시큰둥하게 보이는 감독관의 얼굴과 별 고민 없이 내린 결정을 봐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건 기회다.’
우진은 다시 검을 봤다.
이 검과 자신은 똑같다. 밖에서 뭘하다 왔든, 이곳에선 폐품에 불과하다.
하지만 차이점도 있다.
자신은 녹슬지 않았다. 과거를 기억한다.
‘니들이 무시하는 폐품이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할 수 있는지 보여주지.’
지구 시절 ‘개천에서 용난다’는 말이 생각났다.
여기선 하수구에서 용이 날 것이다.
*
다음날 우진은 일터를 옮겼다.
광산 관리인이 그가 떠나가는 걸 아쉬워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그래, 넌 어디가서든 잘 할 거다. 혹시 하수구가 힘들면 꾀병을 부려서라도
광산으로 돌아와라. 큭큭....”
“예!”
‘그럴 일은 없을 거다 요놈아.’
그렇게 우진은 하수구로 근무지를 옮겼다.
숙소도 바뀌고 주변 사람들도 바뀌었다.
“자! 신입이다! 오늘부터 하수도 일 같이 할 거니까 잘들 지내서 일하는데 지
장 없게 해라.”
관리인이 우진을 새 숙소에 넣었다.
숙소의 사람들은 우진에게 어느정도 관심은 줬지만 별 호의적인 모습은 아니
었다.
‘흠... 여긴 조용하네.’
노역장에 적응된 사람들만 있는 곳이라 광산과 달랐다.
평범한 노동자 숙소 같은 분위기가 났다.
“반갑습니다. 우진입니다.”
“.......”
먼저 인사를 하고 잘 지내보려고 했지만 다들 그냥 일이 힘들어서 쉬기 바빠
보였다.
‘됐다. 일이나 하자. 여기 평생 있을 것도 아니고.’
아침이 되자 바로 하수구로 출근을 했다.
하수구는 어둡고 기다란 통로 형태였다.
우진이 있는 곳은 제 27 하수도라고 했다.
여기도 일이 힘들긴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소량이라도 경험치를 벌 수 있다는 점이 광산과는 천지차이였다.
바로 하수구 쥐가 출현하기 때문이다.
— 찍찍!
사람 몸통만한 쥐는 분명 무서운 존재였다.
제대로 물리면 죽을 수도 있고, 넋놓고 싸우다간 반드시 큰 부상을 입는다.
‘그렇다고 이런 놈들한테 겁먹을 수는 없지.’
— 끼익!
그는 주저없이 돌진해서 쥐 한 마리의 목을 따버렸다.
그리고 그 시체를 바구니에 넣었다.
이게 바로 하수구에서 하는 일이다.
하수구를 청소하고 새로운 구역을 뚫어내는 것.
더러운 하수도에 출현하는 것은 하급 마물에 불과하니 노예들이 하기에 딱 맞
는 일이다.
“흠....”
우진의 대담한 사냥이 성공하자 숙소를 같이 쓰는 노동자들의 시선이 좀 바뀌
었다.
여기 처음 온 사람은 커다란 쥐를 보면 절로 뒷걸음질을 치거나 자기도 모르
게 소리를 지른다.
그런데 저 신입은 미친놈처럼 혼자 돌격해서 한 마리의 목을 따버렸다.
여기저기 수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우진은 그딴 시선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에게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경험치를 획득했습니다.]
[레벨업!]
경험치와 레벨 알림은 당연했다.
레벨 1 짜리가 혼자 하급 마물을 잡았으니 레벨업을 할만도 하다.
하지만 그 아래 메시지는 정말 특이한 내용이었다.
[적을 죽여 그의 힘을 이어받습니다.]
[’짐승의 후각’을 계승했습니다.]
우진은 어안이 벙벙했다.
‘짐승의 후각이라면 마물 스킬일텐데... 이걸 계승했다고?’
허겁지겁 상태창을 보니 진짜로 스킬란에 새로운 게 생겨있었다.
[고유 스킬 : 계승]
[계승 목록 : 짐승의 후각]
‘말도 안 돼. 계승이 이런 스킬이었단 말이야?’
우진은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었다.
그가 놀란 이유는 2개가 있었다.
첫째로 남의 스킬을 입수했다는 점.
둘째로 그게 마물의 스킬이었다는 점이다.
스킬은 일반적으로 스킬북이나 특수 이벤트를 통해서만 입수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 자기는 특별한 조건 없이 적을 사냥해서 얻었다.
‘스킬이 무슨 노말 등급 아이템도 아니고 이렇게 간단히 얻어진다고?’
다른 조건이 있거나 할 수 있지만 일단은 엄청난 일이었다.
이런 식이면 자신은 남들이 상상할 수 없는 방법으로 강해질 터였다.
— 찍찍!
그때 다시 쥐가 한 마리 다가왔다.
상태창을 보며 너무 오래 있었더니 약간 이목이 집중된 것 같기도 했다.
‘일단은 하수구 청소에 집중하자.’
우진은 미친 사람처럼 쥐 사냥에 몰두했다.
— 퍽! 퍽! 퍽!
칼이 아니라 둔기에 가까운 검을 망나니처럼 휘두르며 쥐들을 때려잡았다.
보기 드문 모습이자 숙련된 노동자들도 보여주기 힘든 과감한 모습이었다.
이런 데서 죽어봐야 개죽음이니까.
하지만 반대로 우진은 목숨을 걸고 싸웠다.
‘쥐새끼들이 정말 많기도 하군... 하지만 그래서 좋아!’
[경험치를 획득했습니다.]
[경험치를 획득했습니다.]
계속 울리는 알림은 마치 버프처럼 우진의 몸을 움직이게 만들었다.
“뭐야 저 신입...?”
“하수구 쥐한테 원한이라도 있나...?”
관리인은 물론 다른 노동자들도 입을 벌리고 우진을 바라보았다.
저 정도로 겁 없이 싸우는 놈은 처음봤기 때문이다.
“뭐... 저렇게 열심히 잡아주면 우리야 좋지.”
“신입이 선배들 쉬라고 저렇게 열심히 하나 보구만. 껄껄.”
우진은 개소리를 무시하고 사냥에 집중했다.
‘미친 소리들 하네. 모든 걸 나를 위해서다.’
다른 노동자들도 상태창이 있다.
쥐를 잡으면 경험치를 얻고 레벨이 오른다.
하지만 아마 한계치까지 거의 다 올랐을 거다.
‘그리고... 언젠가는 여기서 나간다는 상상도 하기 힘들겠지.’
목표가 없으니 성취욕구가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저 하루하루 일을 떼우고 빨리 쉬고 싶은 마음만 가득한 상태였다.
‘뭐 내가 신경 쓸 바는 아니지. 난 여기서 반드시 나갈 거니까.’
그렇게 그날 일과가 종료되었다.
우진 혼자서만 쥐를 열다섯 마리 잡았다.
그 결과.
[레벨업!]
레벨이 하나 더 올랐을 뿐 아니라.
[월드가 당신의 탁월한 적응력을 인정합니다!]
[스탯 강화 포인트가 1 개 주어집니다.]
월드의 특별 보상도 받을 수 있었다.
‘일단 포인트들은 아껴두고 성장 전략을 짜보자.’
그렇게 저녁 식사도 마치고 숙소로 돌아왔을 때.
녹초가 되어 쓰러진 동료들 사이에 우진만 쌩쌩했다.
전투의 긴장으로 하루를 보내면 다들 피곤에 쪄들기 마련이었다.
벌써 드르렁거리며 코를 고는 사람들과 삼삼오오 얘기를 나누는 사람들 사이
에서 우진은 혼자 생각에 잠겼다.
‘지력과 마나는 당장 쓸데가 없다. 그러니까 체력과 근력에 우선 투자하면서
민첩을 올리는 식으로 가자.’
기술 스탯은 나중에 전투 스킬을 배우면 조금씩 투자해서 밸런스를 맞출 생각
이었다.
‘무엇보다 계승이 제일 중요해. 마물의 스킬이라니 이건 정말...’
계승으로 얻은 ‘짐승의 후각’.
오늘의 제일 중요한 성과였다.
원래 언데드의 몸이라 후각 따위는 없었다.
그런데 저녁 식사 때 개밥의 냄새가 훅 들어와서 놀랐다.
후각 없이 밍밍하던 세상에 갑자기 느껴진 역한 냄새.
‘짐승의 후각’이라는 예민한 탐지능력으로 느꼈으니 더 지독했다.
하지만 이딴 음식을 먹고 있었나 하는 자괴감보다는, 마물의 스킬이 정말 자
신에게 계승되었고 그게 제대로 작동한다는 게 더 놀라웠다.
우진은 보물을 얻은 것처럼 상태창을 들여다보았다.
[계승 목록 : 짐승의 후각]
‘계승... 정말 엄청난 스킬이다. 내가 아는 고유스킬 중에 1등이라고 봐도 무
방해.’
스킬을 늘려주는 스킬?
그 무엇하고도 바꾸지 않는다.
그때 숙소로 관리인이 불쑥 들어왔다.
사람들은 잔뜩 긴장하는데 관리인은 우진에게만 관심이 있었다.
다름 아니라 감독관 브라카가 따로 보자는 얘기였다.
“예! 바로 가겠습니다!”
우진은 잽싸게 관리인을 따라 브라카에게 찾아갔다.
험상궂은 덩치가 서류를 살피다가 고개를 들었다.
“오늘 업무보고를 보니 특이사항이 있더군. 혼자서 하수구 쥐 15마리를 잡았
다고?”
우진은 최대한 긴장된 표정으로 연기를 했다.
“할당량을 채워야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최대한 열심히 하다보니 생각보
다 좋은 결과가 나온 것 같습니다.”
“그래? 원래 있던 차원에서 전투 직종을 했나?”
“그런 건 아니고 원래 몸쓰는 일을 하다 왔습니다.”
브라카가 살찐 턱을 두툼한 손가락으로 쓰다듬었다.
“흠... 그런 것 치곤 적응이 너무 빠른데.”
“원래 시킨 일은 반드시 끝내는 성격이라 열심히 해보려고 합니다!”
씩씩한 우진의 모습에 브라카가 그제야 피식 웃었다.
“할당량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군. 그건 관리관들의 입장에서 업무를 바라보
고 있다는 뜻이지. 좋아좋아.”
브라카가 아주 만족스럽다는 듯한 표정으로 서류를 내려놓았다.
“이걸 받아둬라. 잘 먹어야 일도 잘 하는 법이지.”
브라카가 테이블 위로 무언가를 던졌다.
‘이건...?’
우진이 뜻밖의 아이템을 받아들었다.
그건 정말 예상치 못한 먹을거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