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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VIP 영주님의 품격-249화 (249/250)

VVIP 영주님의 품격 249화

VVIP 영주님의 품격 249화

249화

전쟁이 중단됐다.

네패스 제국의 황제인 아인이 동부의 국가들에 혼인을 청하면서 싸운다는 선택지가 잠시 미뤄진 것이다.

그러나 이는 다른 국가들의 이야기일 뿐 마르시아 제국으로서는 이 상황 역시 전쟁과 다를 게 없었다.

그것도 일방적으로 피해를 보는 상황이었다.

“바트란 백작. 정말 회군할 것이오?”

“왕실의 명령인지라 저도 어쩔 수 없습니다.”

바질 후작이 매달렸으나 바트란 백작은 군대를 회군시켰다.

아직 혼인이 결정된 건 아니나 일단 받아들이는 쪽으로 귀족의 의견이 모이면서 병력을 회군하라는 명령이 내려왔기 때문이다.

‘내 말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군.’

바트란 백작은 마르시아 제국이 무너지면 네패스 제국의 독주를 막을 수 없다는 이유로 연합군에 남아야 한다는 의견을 보냈다.

그러나 소용없었다.

이미 다른 국가들이 죄다 빠져버리면서 기껏 모였던 연합군이 와해되었기 때문이다.

이종족 국가와 약소국들은 하나하나는 별 볼 일 없으나 전부가 빠지니 눈에 띌 정도의 공백을 가져왔다.

이에 인간들의 왕국도 전쟁에 패하는 게 두려워 서둘러 회군을 명령했고.

마르시아 제국 다음이 자신들이라는 건 알지만 적어도 그건 협상을 해볼 여지가 있었다.

반면 여기서 싸우면 패배할 경우 지위 보전은 고사하고 목숨을 걱정해야 할 팔자였다.

‘국경을 너무 형편없이 뚫린 게 치명적이었다.’

네패스 제국이 노린 지점은 다른 곳도 아닌 마르시아 제국의 사령관인 바질 후작이 지키던 곳이었다.

그곳에서의 패배는 마르시아 제국의 패배를 점치기에 충분했다.

물론 겨우 한 번의 패배로 두 국가의 전력을 모두 파악할 수는 없으나 분위기라는 게 있었다.

‘그냥 정면 힘 싸움으로만 밀린 것도 아니니.’

아인츠발트를 중심으로 한 기사단의 강력함도 문제지만 그 삼엄한 국경의 방비를 뚫고 후방에 기사단을 침투시킨 것도 우려를 샀다.

그 일이 타국이라고 반복되지 말라는 법은 없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여기까지 계산하고 전쟁을 일으켰다면 네패스 제국의 황제는 정말 무서운 자로군.’

국경이 뚫리지 않게 막거나 약소국들을 버리지 말고 지켰어야 했다.

아니, 그 이전에 네패스 제국 기사단의 침투를 허용해서는 안 되었다.

그때부터 모든 게 꼬였다.

‘발상이 놀랍다는 게 아니다. 그런 생각 정도는 누구나 할 수 있어. 하지만 그걸 실현해 낼 능력을 가지는 건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지.’

바트란 백작은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싸워야 한다고 의견을 내기는 했으나 그도 승산을 논하는 일에 대해서는 소극적일 수밖에 없었다.

아군은 갈수록 줄어들고 그중 대다수는 적으로 돌아설 게 분명한 상황.

마르시아 제국이 아무리 동부의 최강국으로 군림한다지만 이건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다.

그리고 그가 생각하기에 아인은 마르시아 제국을 무너트리기 위한 수단을 이미 준비했을 것이다.

여기까지 계산한 자가 마르시아 제국을 공략할 방법을 빼놓지는 않았을 테니까.

그리고 이런 바트란 백작의 예상은 적중했다.

그가 본국에 귀환하기 직전 마르시아 제국의 영토가 습격당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 * *

콰앙!

성벽이 무너지며 기사단이 돌입했지만 저항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지금 우리가 습격한 곳은 마르시아 제국 국경과는 거리가 있는 영지였기 때문이다.

영주를 비롯해 많은 이들은 꿈나라를 헤매다가 갑자기 성벽이 부서지는 소리를 듣고 이제야 눈을 떴을 것이다.

당연히 대응이 될 리 없었다.

“치, 침입자다!”

그나마 밤에 순찰을 돌던 경비병들이 우리의 존재를 가장 먼저 발견했다.

하지만 중무장한 기사들을 향해 달려드는 간 큰 이들은 없었다.

눈이 마주치기 무섭게 달아나거나 바닥에 엎드리고 항복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하지 못하고 넋이 나간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막아라!”

그래도 시간이 좀 지나자 어설프게나마 대응이 이루어지기는 했다.

갑옷도 제대로 입지 못한 기사들이 무기 하나만 챙겨 부랴부랴 뛰쳐나온 것이다.

물론 그런 상태로 제대로 된 싸움이 성립할 리 없었다.

이쪽은 만반의 준비를 갖춘 정예인 반면 이곳은 작은 변두리의 영지에 불과했으니.

“제압해라.”

아인츠발트는 굳이 선두에 서지도 않았다.

아군의 피해를 줄이고자 하는 그가 보기에도 이곳에서는 우리에게 해를 끼칠 만한 상대가 없었기 때문이다.

열심히 뛰어온 기사나 경비병들은 순식간에 제압당해 무기를 빼앗기고 한쪽에 포박되었다.

그렇게 영주의 침실까지 돌파했을 때였다.

잠옷 차림의 영주가 몇몇 이들의 호위를 받으며 맨발로 뛰쳐나오다 우리와 마주쳤다.

어둠 속에서 서슬 퍼렇게 빛나는 칼날을 본 영주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침입자를 향해 소리칠 기백도 없는 자였다.

“무릎을 꿇어라.”

“뭐, 뭐라고?”

그래도 무릎을 꿇으라는 아인츠발트의 말에는 발끈하는 모습을 보였다.

제국의 귀족으로서 남에게 무릎을 꿇어본 일이 없을 테니 자존심을 세운 것이다.

“네패스 제국의 위대한 태양, 아인 네패스 황제 폐하시다.”

“허어억!”

그러나 그런 만용은 기사단 뒤편에 있던 내 정체가 밝혀진 순간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

영주는 기겁하더니 진위 여부를 확인할 생각조차 못 한 채 정말로 무릎을 꿇었다.

영주가 그렇게 나오니 다른 이들이라고 저항할 리 없었다.

“짐이 왜 그대의 영지를 찾았는지 알겠나?”

“모, 목숨만 살려주십시오! 충성, 충성을 바치겠습니다.”

슬쩍 질문을 던졌을 뿐인데 의외로 정확한 대답이 나왔다.

뒷걸음질 치다가 쥐를 잡은 것 같지만.

그의 말대로 내가 바라는 건 충성 서약이었다.

딱히 이 영주의 충성이 필요한 게 아니라 굳이 마르시아 제국 내부로 침투했으니 임팩트를 주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아무리 생각해도 충성 서약만큼 효과적인 게 없다.

깔끔하게 싹 다 죽이는 방법도 고려해 봤지만 변방의 영지를 없앤다고 해서 황실이나 대영주들이 흔들릴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대영주 이상을 치는 건 고작해야 수십의 병력만 이동할 수 있는 순간 이동 마법진으로는 무리가 있었고.

그 구성원을 4티어 이상으로 한정하면 어쩌면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리스크도 컸다.

반면 지금은 아인츠발트와 나를 제외한 기사들을 계속 바꾸는 것으로 피로를 최소화하여 하룻밤에 수십 곳의 영지를 털어버릴 수 있었고.

“그럼 서명해라.”

“예예!”

영주는 내가 내민 문서를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고 자신의 인장을 찍었다.

정말 심약한 자였다.

뭐, 굳이 조건을 하나하나 따지려고 했다면 불호령이 떨어졌겠지만.

“그대의 충성이 변하지 않기를 바라지.”

“사, 살펴 가십시오.”

영주는 여전히 바닥에 엎드려서 우리를 배웅했다.

난 굳이 순간 이동 마법진을 숨기지 않았다.

지금은 이걸 숨기는 것보다 드러내는 쪽이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어차피 알아도 막지 못하니까.

* * *

“이, 이게 무슨?”

다음 날 아침부터 마르시아 제국의 황실은 터무니없는 보고를 받았다.

간밤에 네패스 제국의 황제가 직접 나타나 여러 영주들을 습격하고 충성 서약을 받아냈다는 내용이었다.

“감히 짐의 땅에서 짐의 영주들에게 충성을 받아낸단 말인가? 그리고 영주들은 그걸 또 그대로 받아들여?”

황제의 분노는 지당했다.

그러나 영주들로서는 어쩔 수 없었다.

이를 받아들이지 않은 어느 강단 있는 영주는 본인은 물론 그 일가족이 모두 목이 떨어지고 말았으니.

순식간에 가문 하나가 박살 나버린 것이다.

“네패스 제국의 황제가 몸이 수십 개도 아닐 텐데 대체 어떻게 하룻밤 사이에 그런 일이 가능했지?”

“순간 이동 마법진을 썼다고 합니다. 딱히 숨기지도 않았습니다.”

“순간 이동 마법진?”

보고를 들은 귀족들은 당황했다.

그들도 순간 이동 마법진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지만 그건 그렇게 입맛대로 쓸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엄청난 숫자의 보주와 양쪽에서 마법진을 준비할 마법사가 필요했다.

그것도 그냥 마법사가 아니라 손꼽힐 정도로 뛰어난 마법사만 가능했다.

“영지마다 마법사를 침투시켜서 마법진을 사전에 준비하고, 그 많은 이동을 위해 보주를 썼다?”

“그게 가능한가? 마법진이라는 게 규모가 제법 있어서 숨길 수는 없을 텐데?”

“그뿐만이 아니라 아무리 기습이라도 영주의 저택 바깥에서 침입했을 텐데 그 전부를 뚫고 들어가는 게 가능한가?”

마법에 대해 잘 아는 귀족일수록 오히려 깊은 의문이 들었다.

사전에 필요한 준비도 많았고 들어가는 재물이나 위험성, 기사단의 피로 등 고려할 요소가 산더미였다.

어지간히 자신 있는 게 아니고서야 절대 못 할 일이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했다.

“언제든지 국경의 방비를 무시하고 제국에 침투할 수 있다는 걸 증명했군.”

병력의 숫자가 수십이라는 점은 그나마 유일한 한계라고 할 수 있었다.

그게 아니면 당장 이 황궁으로 침입해 들어왔을지도 모르니.

그러나 그 수십으로 영지 하나를 몰살할 능력이 있다는 것만으로 대부분의 영지는 풍전등화와 다를 게 없었다.

밤새도록 경계를 세운다고 해도 뚫릴 곳은 뚫리고 말 테니까.

“노림수가 보이는군.”

귀족들은 금세 아인의 목적을 파악했다.

영주들에게 두려움을 심어서 그들을 전쟁으로부터 이탈시키는 것.

가뜩이나 한 번의 패배와 연합군의 와해로 부정적인 분위기가 퍼져나가는 상황이다.

이 소문까지 퍼진다면 결정타가 될 것이다.

“대응할 방법은 없나?”

황제의 물음에 귀족은 잠시 고민하다 대답했다.

“딱 하나뿐입니다.”

“그게 무엇이지?”

“당장 바질 후작에게 총공격을 명하십시오. 그리고 승리해야 합니다.”

터무니없는 이야기에 황제는 말문이 막혔다.

연합군이 건재했다면 모를까 이미 와해되어 버린 상황에서 마르시아 제국 혼자 승리를 거둘 가능성은 요원했다.

“그것도 그냥 승리로는 안 됩니다. 네패스 제국의 황제를 사로잡거나 적을 전멸시켜 후환을 없애야 합니다.”

아인이 패퇴해서 물러난다고 할지라도 얼마든지 재정비해서 다시 침공해 올 가능성이 있었다.

그걸 막지 못한다면 몇 번이고 전쟁이 거듭될 것이고 마르시아 제국의 국력이 먼저 고갈될 것이다.

“조금 더 현실적인 대안은 없는가?”

“공격을 밤에 해야 합니다.”

“밤에?”

“네패스 제국의 황제를 비롯해 그를 따르는 기사들도 틀림없이 최정예일 겁니다. 그들이 일제히 자리를 비우면 지휘에 조금이나마 공백이 생길 터.”

귀족은 보고를 올리면서도 내심으로는 자신의 생각을 부정했다.

상대가 바보가 아니라면 마르시아 제국에 남은 선택이 최후의 공격뿐이라는 걸 모를 리 없었다.

더구나 황제가 직접 움직이는 중요한 상황에서 자리를 비운 사이에 가해질 습격을 대비하지 않았을까?

이건 그냥 마르시아 황제를 설득시키기 위한 핑계에 불과했다.

“그 한 번에 제국의 총력을 쏟아붓는 것만이 답입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전력의 차이가 크다는 보고는 짐도 이미 받아서 알고 있다.”

“그러니 제국의 총력을 쏟아야지요.”

대영주나 중소 영주들은 물론이고 가능하다면 황제의 곁을 지키는 근위기사단까지 동원해야 할 일이었다.

그야말로 마르시아 제국의 전부를 쏟아 넣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를 설명하는 귀족은 이게 얼마나 허황된 이야기인지를 알고 있었다.

‘승리보다 패배할 가능성이 높은 전장에 황제 폐하께서 나갈 리 없다.’

만에 하나 이기더라도 자신이 죽으면 의미가 없다고 여길 황제였다.

그런데 이기는 것조차 불확실하다면?

구태여 자신의 목숨을 걸고 전장에 설 이유가 없었다.

황제의 생각이 그렇다면 마르시아 제국의 강력한 전력 중 하나인 근위기사단 역시 황궁에 발이 묶이게 될 것이고.

상대는 황제가 직접 친정을 나와서 지휘하고 전투를 주관하는데 이쪽은 황제가 숨어서 근위기사단까지 감추니 결과가 어떨지는 자명했다.

‘제국의 모든 걸 걸고서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데 심지어 모든 걸 걸려고도 하지 않는다. 결과가 뻔하군.’

이해는 할 수 있었다.

패배할 전장에 황제를 내보내는 건 이치에 맞지 않으니.

그러나 지금은 그것 말고 그 어떤 최선의 수도 생각할 수 없었다.

황제가 움직여야만 겁먹은 영주들도 항전을 마음먹고 나올 테니.

“용단을 내려주십시오.”

“불가하다.”

황제의 선언에 귀족은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황제가 안 된다고 한 이상 그건 정말로 안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으로 마르시아 제국의 운명이 결정되었다.

‘투신한다면 받아주려나?’

귀족은 네패스 제국으로 넘어갈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 * *

제국 동부를 점령하는 데는 3년이 걸렸다.

마르시아 제국 자체를 무너트리는 건 1년으로 충분했다.

이길 수 없는 전투라 생각해서인지 적은 소극적인 대응으로 일관했고 이는 야금야금 피해를 누적시켰으니.

대규모 회전은 일어나지 않아 상대하는 입장에서 지루하기는 했으나 결국 마지막 순간에는 마르시아 제국도 뛰쳐나올 수밖에 없었다.

난 이를 입을 벌린 채 얌전히 받아먹었다.

마르시아 제국의 귀족 중에 가망이 없다는 걸 알고 나에게 충성을 맹세한 이들도 많아 점령까지 순조롭게 진행할 수 있었다.

나머지 2년은 마르시아 제국을 흡수하는 과정과 혼인과 관련된 문제로 뒤덮였다.

마르시아 제국이 무너진 이상 대세는 기울었다고 여긴 국가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애썼기 때문이다.

당연히 앞서 항복한 이들보다는 낮은 대우를 하려 했고 그들이 반발하면서 상당히 긴 협상이 시작되었다.

그렇게 협상이 진행되는 한편 뒤에서는 몇 가지 공작을 해야 했다.

위니스가 말한 조건이 그저 대륙 통일이 전부라고 볼 수는 없었기에 나에 대한 여론을 우호적으로 만들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매우 귀찮고 지난한 일이었다.

게다가 큰 전쟁이 모두 끝나버리니 남은 군대를 어떻게 해야 할지도 큰 골칫거리가 됐다.

지금까지 네패스 제국은 전쟁을 위해 비정상적으로 많은 군비를 지출했는데 이를 정상적인 형태로 되돌려야 했기 때문이다.

전쟁과 관련된 이권을 가진 귀족들이 한둘이 아니었기에 그들을 상대하는 것도 진땀을 빼는 일이었다.

솔직히 전쟁보다 내정이 몇 배는 힘들었다.

“통일 제국 선언을 하는 것도 문제고.”

왕국에서 제국이 되었을 때처럼, 이제는 내가 대륙을 통일한 황제이며 통일 제국을 이뤘다는 것도 별도로 선포할 필요가 있었다.

당연히 이전처럼 나름대로 신경 쓸 부분이 많아서 쉽지 않았다.

준비에만 다시 한세월이 걸려 연도가 다시 바뀌었다.

그래도 어찌어찌 준비를 모두 마쳤을 때쯤 한 손님이 나를 찾아왔다.

위니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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