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VIP 영주님의 품격 245화
VVIP 영주님의 품격 245화
245화
갤러운은 아인을 발견한 순간 깨달았다.
상대는 절대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네패스 제국의 황제가 뛰어난 마법사라는 건 들었지만 본능이 경고할 정도의 상대는 흔치 않았다.
‘강적이다!’
심지어 주변에는 본 적도 없는 완성도를 자랑하는 정예가 가득했다.
이곳을 빠져나가는 것조차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그런데 이들을 뚫고 아인에게 도달한다는 건 아무리 자신을 높이 평가하는 갤러운이라도 장담할 수 없는 문제였다.
하지만 그래도 갤러운은 움직였다.
움직여야만 했다.
제자리에 멈춰 서는 순간 압사해 버릴지도 모를 정도로 오밀조밀하게 압박해 오는 네패스 제국군이었으니.
살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는 길은 이것이 유일했다.
콰앙!
하지만 앞을 가로막는 이들을 피해 높이 도약하는 순간 갤러운은 곧장 마법에 직격당했다.
처음에는 우연이라고 생각했다.
하필 이 넓은 전장에서 자신 하나를 정확히 노린 마법은 상상할 수 없었으니까.
그러나 다시금 같은 상황이 반복되는 순간 갤러운도 깨달았다.
이 마법은 절대 우연으로 자신을 맞힌 게 아니라는 걸.
자신의 움직임에 반응해서 날아드는 마법.
놀랍게도 상대는 병사들을 뛰어넘는 방법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있었다.
‘이건 도대체 무슨 마법이지?’
갤러운은 마법사를 조금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전장에서 활약하는 마족이나 마법사를 본 일은 많았지만 그들에게는 한계가 분명했기 때문이다.
특히 아군이 뒤섞인 전장에서 마법사는 허수아비와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지금 자신을 공격하는 네패스 제국의 황제는 그런 마법사의 단점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있었다.
아군에게는 일절 피해를 주지 않으며 일방적으로 자신을 공격하는 것이다.
그래도 완벽한 마법은 아닌지 단점도 있었다.
자신을 밀어낼 정도는 되지만 딱히 치명적인 피해는 입히지 못했다.
그저 병사들을 넘지 못하게 견제하는 것이 전부일 뿐.
원리는 모르겠지만 위력을 낮춘 대신에 명중률을 극단적으로 올린 게 분명했다.
‘크고 화려한 마법 대신에 위력은 약하지만 견제하기에는 적당한 마법이다. 본래라면 마나를 낭비하는 쓰레기 같은 마법일 텐데…….’
쓰레기여야 할 마법이 이 상황에서는 이보다 더 적절할 수가 없었다.
만약 빗나가는 한이 있더라도 아군의 희생은 나오지 않을 테니까.
거기에 자신을 막는다는 목적만큼은 어떤 마법보다 훌륭하게 달성하고 있었다.
“이놈이!”
게다가 갤러운이 아인을 노린다는 걸 깨달은 뒤 네패스 제국군의 압박은 한층 더 거세졌다.
기사들은 아예 틈을 전혀 내주지 않기 위해서 간격을 좁혀왔다.
본래라면 그만큼 빈틈도 늘어나 갤러운에게 기회가 되어야 했다.
그러나 기사들은 바보가 아니었다.
혼자서 무리하게 들어오는 게 아니라 모두가 동시에 틈을 좁히며 빈틈이 생길 여지를 차단했다.
‘끝이로군.’
갤러운은 자신의 죽음을 예상했다.
사방에서 좁혀오는 기사들이 기어이 자신의 몸 곳곳에 무기를 꽂아 고슴도치와 같은 몰골로 만들 게 분명했다.
마지막까지 저항하겠다는 전의는 생기지 않았다.
단 하나의 상대조차 쉬운 놈이 없었다.
이들을 모두 뚫고 아인에게 간다는 건 애초에 불가능했다.
거기에 자신이 이렇게 붙잡힌 사이 이종족 부대와 연합군의 상황이 어찌 되었을지는 안 봐도 뻔했다.
이미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전황이 나빠졌을 것이다.
“항복! 항복하겠다!”
최후를 앞둔 순간 갤러운은 저항을 멈춘 채 소리쳤다.
비참하게 바닥에 엎드린 채 목숨을 구걸했다.
그런 갤러운의 돌발적인 행동에 그를 둘러싼 움직임이 아주 잠깐 멈추었다.
“폐하,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기사들은 아인이 명령을 내려주기를 기다렸다.
강한 적을 쓰러트리는 건 영광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네패스 제국은 점령지의 군대를 흡수하는 일을 대륙 어떤 곳보다도 많이 행해왔었다.
끝까지 저항하거나 반드시 죽여야 할 명단에 포함된 상대라면 모를까 그게 아니라면 어느 정도는 받아들여 줄 수 있었다.
“일단은 잡아두고 처우는 나중에 결정하지.”
아인은 포획을 명령한 뒤 갤러운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다.
아직 전투가 끝나지 않은 상황에 고작 포로 하나를 살필 여유는 없었기 때문이다.
* * *
연합군과의 첫 전투는 약 하루 동안 이어졌다.
결과는 당연히 우리의 승리였고 연합군은 잔존 병력을 데리고 후퇴해야 했다.
그 뒤 전장의 정리는 지휘관들에게 맡긴 채 나는 다니엘에게 보고를 받고 있었다.
“이름을 듣고 정보들을 살핀 결과 이종족 부대의 갤러운이 맞는 것 같습니다.”
“정확히 어떤 놈이지?”
전장에서의 활약이나 영웅 정보를 통해서 갤러운의 전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파악했다.
하지만 솔직히 좀 놀란 상태였다.
사전에 파악한 정보에 따르면 갤러운의 추정 등급은 4티어에서 상급 정도가 아닐까 싶었기 때문이다.
이런 추정이 나온 이유는 갤러운이 상대한 녀석 중에 그리 이름난 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 본 갤러운의 등급은 5티어도 아닌 무려 6티어.
예상에서 벗어나도 한참 벗어난 상태였다.
“종족은 보셨다시피 웨어울프족이며 부대의 충성을 받는 실질적인 우두머리입니다. 따로 부대장이 있지만 부대원들은 갤러운만 따르는 듯합니다.”
“그런 부대가 유지될 수가 있나?”
군대를 유지하려면 돈이 든다.
말을 제대로 듣지도 않는 부대를 위해서 귀족이 자신의 돈을 써야 할 이유는 없었다.
갤러운을 내쫓거나 이종족 부대 자체를 해산시키는 게 맞는 것이다.
“서로에게 이득이 되니까 어떻게든 타협을 본 것 같습니다.”
서로에게 이득이 된다는 말은 금세 파악할 수 있었다.
애초에 이종족 부대는 이종족 중에서도 가장 차별을 많이 받는 이들로 이루어져 있으니까.
다른 것으로는 벌이가 쉽지 않을 테니 아무리 부대장을 무시해도 전장에 나서는 일 자체를 거부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면 돈을 대는 귀족의 입장에서도 용병처럼 부리면 그만이었고.
“그럼 거기에 회유의 여지가 있겠군.”
돈으로 움직이는 자만큼이나 회유하기 쉬운 상대도 없다.
대륙의 절반을 지배하는 대제국의 황제인 내가 돈으로 아쉬울 일은 없으니까.
물론 예산을 책정하는 것에 있어 언제나 골치 아파 하고 있지만 그것과 이건 다른 문제였다.
개인적으로 쓸 돈은 언제나 넉넉하다.
“좋아. 한번 시도해 보지.”
찔러야 할 부분을 알았으니 이제는 갤러운의 영입을 위해서 움직여야 할 때였다.
* * *
“따르겠습니다!”
갤러운은 내 이야기를 듣고는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나를 따르겠다고 대답해 주었다.
그러나 이를 바라보는 나는 전혀 기쁜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건 절대 엎드려 있는 갤러운의 모습이 너무 짐승 같아서는 아니었다.
그저 고민도 하지 않고 쉽게 받아들이는 모습이 미심쩍어서일 뿐.
“대답이 너무 쉽게 나오는군. 아직 대우를 어떻게 해줄지도 말 안 했는데 말이야.”
나는 붙잡혀 있는 갤러운에게 이렇게 말했다.
- 내 밑으로 들어올 생각이 있는가?
돈을 얼마를 주고, 웨어울프족을 어떻게 대우하며 작위나 영토를 어찌 분배할지는 전혀 논하지 않았다.
내가 갤러운이라면 황제가 자신을 회유하려는 시점에서 적어도 대우에 대해서는 묻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갤러운은 그런 것들이 전혀 궁금하지 않은 듯했다.
혹시 나를 속이려고 하는 건가 싶어서 영웅 정보도 봤는데 벌써 소속이 네패스 제국으로 바뀐 상태였다.
적어도 거짓말은 아닌 것이다.
‘혹시 목숨에 대한 집착이 강한 편인가?’
먼저 항복을 선언한 것도 그렇고 갤러운이 소인배 같은 성격은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정말 그런 성격이라면 나도 그를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제 목숨을 먼저 아끼는 자를 전장에 세웠다가 도망치기라도 한다면 그 뒷감당이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대우 따위는 관심 없습니다.”
그러나 갤러운은 대우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고 대답했다.
이 또한 이해하기 힘든 모습이었다.
이종족 부대가 바질 후작을 따르는 이유가 돈에 있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
그게 아니라면 대체 뭐 하러 자신들을 차별하는 인간 밑에 붙어서 살았겠는가?
“이해가 안 되는군. 이종족 부대는 바질 후작으로부터 거액을 받는 것으로 아는데.”
“물론 돈은 중요하지요. 동족을 위해서. 하지만 저에겐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이 부분을 지적하자 갤러운은 돈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고 대답했다.
거기에는 신념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확고한 감정이 느껴졌다.
“흥미롭군. 동족보다 중요한 게 있다니. 그게 뭐지?”
“힘입니다.”
“힘?”
“저의 일족은 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어느 마족의 아래에서 지배당하고 있었습니다.”
갤러운은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했다.
“제가 아주 어릴 때 어머니는 실수를 저질렀다는 이유로 그 마족에게 맞아 죽었습니다.”
슬픈 과거를 이야기하면서도 갤러운은 별다른 감정을 느끼지 않는 것처럼 무덤덤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누구도 어머니의 복수를 하지는 않았죠. 모두 못 본 척 외면했습니다. 왜냐하면 힘이 없었으니까요.”
오래전 일이라 더는 슬픔을 느끼지 못해서는 아니었다.
갤러운은 그 일 자체를 별로 슬퍼하지 않는 데다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있었다.
“그 일을 통해서 배웠습니다. 힘이란 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강자에게는 마땅히 숙이고 복종해야 하는 법입니다.”
강자가 약자를 짓밟는 것.
갤러운에게 있어서 그건 옳은 일이었으니까.
“그대는 이미 충분히 강하지 않나?”
“하지만 말 한마디로 수십만의 군대를 움직일 수는 없지요. 그 군대를 상대할 수도 없고 말입니다.”
그 형태가 무력이 되었든 권력이 되었든.
설령 지력이나 다른 무언가라도 갤러운은 자신보다 강한 자에게 굴복하는 걸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왜냐하면 갤러운이 따르는 건 특정한 개인이 아니라 힘이라고 하는 추상적인 존재였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 힘의 주체가 누구인지는 갤러운에게 있어 전혀 중요하지 않은 문제였다.
나로선 좋은 일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갤러운 휘하의 이종족 부대에 사상자가 많이 나와서 그걸 이유로 회유를 거부할 가능성이 있었으니.
하지만 지금 알게 된 사실에 의하면 갤러운은 그런 걸 신경 쓰는 타입이 아니었다.
“저를 받아주십시오! 황제 폐하의 가장 날카로운 무기가 되겠습니다.”
그러나 결국 갤러운이 따르겠다고 말하는 건 내가 아니라 내가 가지고 있는 힘이었다.
만약 최악의 순간이 와서 내가 목숨을 위협받는다고 해도 갤러운은 절대 나를 위해서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아스카처럼 위협적인 적이 내 앞을 가로막으면 그쪽으로 넘어갈 가능성도 있다.
“좋아. 받아주마.”
하지만 그렇다고 지금 그를 거부할 수는 없었다.
이종족 부대의 생존자들을 회유하려면 갤러운의 역할이 클 것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동부에서 차별받고 있는 종족들이 나를 지지하게 하기 위해서도 갤러운은 필요한 존재였다.
그러니 지금 당장은 써먹을 것이다.
그러나 그뿐이다.
‘쓰고 버리는 말.’
갤러운의 가치는 딱 그 정도였다.
탈론과는 다르다.
갤러운은 아무리 많은 것들을 베풀어 줘도 그 은혜를 기억하는 녀석이 아니었다.
그러니 나도 적당한 거리를 둘 필요가 있었다.
이놈에게 중책을 맡기면 뒤통수를 맞을지도 모르니까.
‘바질 후작이 제대로 써먹고 있었군.’
그런 점에서 바질 후작과 갤러운의 관계는 딱 적당한 거리로 보였다.
나 또한 그 정도 위치로 갤러운을 쓰게 될 테니까.
갤러운 역시 거기에 그리 큰 불만을 품지는 않을 것이다.
애초에 나에게 충성을 바치는 게 아니기에 기대하는 것 역시 크지 않을 테니까.
갤러운의 회유를 끝마치고 바깥으로 나오자 다니엘이 내 뒤로 따라붙었다.
“어이가 없는 놈이군요.”
다니엘 역시 갤러운의 이야기를 들었는지 황당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녀석의 방침이 틀렸다고 생각하나?”
“힘을 따른다는 게 잘못되었다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저놈은 힘의 주체는 어디까지나 감정이 있는 사람이라는 걸 망각하고 있습니다.”
나와 같은 평가였다.
대놓고 내가 아닌 내 힘을 따르겠다고 말하는 녀석이 이뻐 보일 수가 있나.
솔직하다는 말로 덮을 수준이 아니다.
녀석은 내가 약자가 된다면 나를 잡아먹을 게 분명했으니까.
“그래도 일단 써먹을 건 써먹어야지.”
모두가 나에게 목숨을 바쳐 충성하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내가 아무리 베풀어 준다고 해도 그런 충성을 바칠 수 있는 상대는 흔치 않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힘을 키워줄 상대는 최소한 내 등에 칼을 꽂지는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어야 했다.
“단물이 떨어지면 그땐 적당히 내치면 되겠지.”
웨어울프족만 안타깝게 되었다.
적어도 주고받는 관계만이라도 구축할 수 있었다면 드래고니안들처럼 나름대로 혜택을 줄 생각이 있었는데.
하지만 이래서야 내가 그들을 위해 무언가를 베풀 일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