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VIP 영주님의 품격 244화
VVIP 영주님의 품격 244화
244화
아인츠발트가 틈을 만들며 전투의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될 때쯤 적들도 이를 바로잡기 위한 대응에 나섰다.
물론 충분히 예상하던 상황이었다.
로스니아 제국과 맞먹는 또 다른 국가인 마르시아 제국이 설마 이 정도로 허무하게 무너지지는 않을 테니까.
나는 그들이 어떤 대응을 해오는지를 알아내기 위해 마법사들에게 신호를 보냈다.
“선봉에 속한 마법사들은 적들의 움직임을 보고하라.”
내가 마법사 협회장이 되기 전에도 마법사 협회의 젊은 마법사들이 나에게 찾아와 종군을 신청하는 일은 많이 있었다.
그들의 실력은 그리 대단하지 않았다.
협회에서 쉽게 내주지 않을 정도의 인재라면 애초에 자유롭게 바깥을 돌아다니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실력이 부족한 마법사들에게도 쓰임은 있었으니 바로 마나 파장을 통해 전장의 상황을 전달하는 것이었다.
마나 파장도 나름대로 마법사의 실력에 좌우되지만, 전장이라는 한정된 범위 안에서는 저티어의 마법사로도 지장 없는 통신이 가능했다.
그것도 안 되면 아예 마법사라 불릴 자격이 없다는 소리였으니.
- 선봉에 이종족들이 다수 출현. 기사단이 대응에 나서고 있습니다.
이렇게 모인 정보는 미리 만들어 둔 보고 체계를 통해 빠른 속도로 나에게 전달되었다.
사실 이런 식으로 마법사를 활용하는 방법은 기존에도 몇 번 쓰인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리 흔하게 사용되지는 않았다.
마법사가 워낙 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영주가 아니라면 통신망을 만들 수 있을 만큼 마법사를 구하는 것은 아예 불가능했다.
그리고 대영주라도 전투에 쓸 마법사를 남기지 않은 채 이 일에만 몰두할 수는 없었다.
마법사의 가장 큰 활용성은 역시 압도적인 화력의 투사와 이를 통한 상대의 사기 저하에 있기 때문이다.
그걸 포기하고 통신망에 집중한다면 마법사를 제대로 활용한다고 볼 수 없었다.
그러나 마법사 협회장이자 황제로서 군림하고 있는 나는 이런 제한을 벗어나 얼마든지 필요한 마법사를 보충할 수 있었다.
이른바 마법사의 빈부 격차인 것이다.
- 적들의 전력이 만만치 않습니다.
그런데 이후 마법사의 보고는 내 예상을 뛰어넘고 있었다.
아인츠발트의 지휘를 받는 기사단은 네패스 제국에서도 최고라 부르는 것에 주저함이 없을 자들이었다.
최저 3티어 수준의 전투형 영웅으로 이루어진 최정예 부대였기 때문이다.
이는 선봉 부대의 중요성, 그리고 최강의 전력인 아인츠발트의 발목을 잡지 않아야 한다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특별 조치였다.
‘그놈들 만드느라 보주를 얼마나 썼는데.’
이를 위해 측근들을 5티어 영웅으로 만든 뒤 남은 보주는 그들에게 모두 투자되었다.
더구나 아인츠발트가 지난 4년간 매일 훈련을 봐주기도 했고.
이런 노력이 통해 그들은 3티어에서도 능히 상위권에 속하는 강자들이 되었고, 드물게는 4티어 영웅도 존재했다.
솔직히 일개 기사단치고는 말도 안 되게 강한 전력이 된 것이다.
그런 이들을 내 직속도 아닌 아인츠발트에게 붙인 건 대륙 통일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특별 조치였다.
하지만 마법사는 그런 아인츠발트의 기사단으로서도 적들이 쉬운 상대가 아니라고 말했다.
‘좀 더 자세히 보고하라.’
- 이종족 부대는 상대가 가능한데 우두머리로 보이는 놈 때문에 힘을 온전히 쏟을 수가 없습니다. 최소 단장급으로 추정됩니다.
네패스 제국에서 말하는 단장급이란 5티어 전투형 영웅을 의미했다.
벽을 넘은 아인츠발트와 릴리아나를 제외하면 루시우스, 탈론, 그랜트 등 극소수의 영웅만이 도달한 위치였다.
‘대처는 어떻게 하고 있지?’
- 사전에 훈련받은 것을 따라 교묘히 후방으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다행히 상대는 강했지만, 아예 대적하지 못할 수준은 아니었다.
물론 아무리 강해도 아인츠발트가 나서면 그 시점에서 모든 게 마무리될 것이다.
하지만 그가 직접 나서서 놈을 상대하는 건 하책이었다.
아인츠발트가 자리를 비우면 선봉에서 길을 뚫어야 하는 역할에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릴리아나 혹은 다른 단장급 기사를 투입하는 방법도 있었지만, 이 또한 문제가 있었다.
그들 각자가 이 전장에서 나름대로 중책을 맡고 있기에 쉽게 자리를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돌발 사태에 대해서는 단장들이 나서지 않고도 대응할 방법이 필요했다.
그리고 거기서 중요한 게 최정예 부대인 아인츠발트 휘하의 기사단이었다.
그들은 만약 단장급이나 그 이상의 실력자가 출현할 경우 아군 본대 한복판으로 그 적을 유인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맡고 있었다.
보주를 투자한 값을 하도록 만든 것이다.
이것이 불가능한 일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이미 다른 단장들의 협조를 받아 몇 번이고 연습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 노력이 헛되지 않았는지 기사들은 실전 상황에서도 주어진 임무를 성공적으로 달성했다.
그야말로 투자한 보람이 있었다.
‘저놈인가?’
그 뒤 나는 드러난 놈의 외형을 살폈다.
녀석은 웨어울프족이었다.
동부에 이종족이 많고 나름대로 국가를 세운 종족도 있지만 그렇다고 종족 차별이 전혀 없지는 않았다.
오히려 이종족끼리도 서로를 차별하는 마당이었으니.
웨어울프라면 외모 때문에 가장 많은 차별을 당하고 사는 종족 중 하나라 볼 수 있었다.
‘확실히 만만치 않아 보이는군.’
웨어울프는 덩치에서부터 다른 기사들보다 훨씬 컸다.
단순히 신장으로 따지면 두 배쯤 되었고 이는 기사들이 말에 오르고서도 높이의 우위를 점할 수 없단 이야기였다.
수십의 기사들에게 둘러싸이고도 별다른 상처 없이 뚫고 온 걸 보면 민첩함이나 경험 역시 충분할 것이다.
‘영웅 정보.’
그리고 이런 내 예상은 그대로 맞아떨어졌다.
최정예 기사단을 뚫고 나타난 녀석답게 녀석의 정보는 무척이나 훌륭했다.
[영웅 정보]
이름 : 갤러운
국적 : 마르시아 제국
소속 : 바질 후작가
유형 : 전투형
등급 : 6티어
칭호 : 잿빛 악몽
스킬 : 난전(6), 격투(6), 혈전(5)…….
‘저놈 봐라?’
아닌 게 아니라 녀석은 무려 6티어의 전투형 영웅이었다.
이는 굉장히 특이한 일이었다.
6티어는 아인츠발트의 표현을 빌리자면 벽을 넘어야만 하는 경지였으니.
아인츠발트나 아스카처럼 자연적으로 높은 경지에 오른 케이스도 존재하지만, 이는 지극히 예외적인 경우였다.
최고의 천재인 릴리아나조차 아인츠발트의 가르침이 없었다면 절대 쉽게 벽을 넘지는 못했을 테니까.
마족이나 나는 외부 세력의 힘을 빌렸으니 아예 비교 대상이 아니었고.
‘재미있는 녀석이군.’
대륙 동부에 대해서는 게임을 했던 나조차 별로 아는 바가 없었다.
이미 로스니아 제국을 마지막으로 내가 아는 지식과 정보들은 그 끝을 다했기 때문이다.
로스니아 제국의 흡수를 서두른 것도 그래서였다.
과연 동부를 손에 넣는 데 얼마나 긴 시간이 걸릴지, 내가 살아생전에 모든 걸 이룰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기에.
자칫하면 나도 아스카와 같이 세월에 못 이겨 무너질 수도 있었다.
“내 이름은 갤러운이다! 아인츠발트 공작! 이리로 와서 나와 맞서라!”
갤러운은 아군을 살피더니 갑자기 아인츠발트를 찾아 결투를 신청했다.
생긴 것과 달리 머리까지 짐승은 아닌지 나름대로 괜찮은 선택지를 찾아낸 것이다.
일반적으로 결투를 신청받으며 이를 거부하는 경우는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군대는 그런 멍청한 명분에 휘둘리지 않았다.
명예를 몰라서가 아니다.
애초에 이 자리에 아인츠발트는 없고, 그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지휘관 모두 알고 있다.
게다가 기껏 상대를 함정에 빠트렸는데 그걸 결투로 날려버리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물론 일부 기사들이 여기에 반발심을 가질지도 모를 일이었지만…….
‘그런 멍청이는 이쪽에 배치하지 않았지.’
상대의 저런 행동마저 내 예상 범위였다.
선봉을 아인츠발트가 맡아주고 있는 이상 주어진 역할에 성공할 건 자명한 일.
그렇기에 나는 아인츠발트가 제 임무에 성공한다는 것을 전제로 부대를 운영하고 있었다.
특정한 성향의 기사나 지휘관들을 배치하거나 배제하는 것 역시 그런 일환이었다.
“밀어버려라.”
나는 갤러운을 밀어버리라며 휘하 병력에게 진격을 명했다.
당연히 그 명령은 즉각 이행되었다.
아인츠발트와 기사단이 뚫어놓은 길을 따라서 수만의 대군이 노도와 같은 기세로 몰아친 것이다.
갤러운은 재수 없게 그 사이에 놓인 짓밟고 가야 할 돌멩이에 불과했다.
“크아악!”
위기를 감지했는지 녀석은 양팔을 미친 듯이 휘두르며 달려드는 이들을 찢고 물어뜯었다.
하지만 움직일 공간을 내주지 않는 촘촘한 돌격 앞에 별다른 힘을 쓰지 못했다.
과거 진형 사이로 루퍼스가 뛰어들어 날뛸 때와는 상황이 달랐다.
당시에는 실력이 부족한 병사들이 루퍼스가 파고들 틈을 내주었으나 저곳에 배치된 병사들에게 그런 어설픈 모습은 전혀 없었다.
지위가 일반 병사일 뿐 수십 번의 전투를 경험하고 살아남은 베테랑들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기나 무장 상태 역시 그때와 비교할 수조차 없는 수준이었다.
“으아아아!”
병사들은 갤러운에게 당하는 와중에도 놈에게 악착같이 매달렸다.
그런 투지는 곧 결실을 맺어 기어이 갤러운의 몸에 창칼을 꽂는 데 성공했다.
일단 하나라도 유효한 공격이 나오자 갤러운의 기세는 눈에 띄게 수그러들고 말았다.
죽음을 불사하고 덤벼드는 군대의 움직임에 당황한 것이다.
‘지금까지는 저런 일이 없었겠지.’
아무리 잘 훈련된 이들이라고 해도 덩치가 두 배나 큰 괴물을 상대로 물러서지 않을 순 없다.
강자를 이기기 위해서는 반드시 강자를 상대한 경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휘하의 군대엔 그런 경험을 갖춘 이들이 부지기수였다.
피의 연회가 촉발한 크레시안 왕국의 내전부터 지금까지 살아남았으니.
‘그래도 이 이상 피해를 늘려서는 좋지 않겠지.’
그래도 아직 갤러운은 수십 명은 더 학살할 능력이 남아있었다.
반면 전쟁 경험이 풍부한 병사들은 기사만큼이나 육성이 어려운 전력이었고.
이 이상 그들의 희생을 내버려 두는 건 현명한 선택이 아니었다.
“길을 열어라!”
갤러운이 상처를 입고 약화한 것을 깨달은 기사들이 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숙련된 병사들은 그런 기사들의 움직임을 미리 예측하고 그들이 통과할 수 있는 길을 내주었다.
열심히 훈련한 보람이 있는 광경이었다.
그렇게 아군을 넘어 갤러운에게 도달한 기사들은 녀석에게 협공하는 것에 아무런 망설임도 보이지 않았다.
애초에 자신들보다 강한 적을 상대하기 위해 준비된 이들이 정정당당하게 일대일을 고집할 리 없었기 때문이다.
자존심이나 명예는 중요하지 않았다.
저들도 한때는 그런 걸 신경 쓰는 기사였지만 단장들에게 여럿이 덤비고도 무참히 짓밟히며 버린 상태였다.
특히 릴리아나와 아인츠발트는 기사단 하나를 통째로 상대하는 저력을 선보였는데 그래도 남는 자존심이 있다면 그건 그저 아집이었다.
“네놈들은 명예도 모르는 것이냐?”
기어이 갤러운이 울분을 담아 소리쳤다.
하지만 역시 통하지 않았다.
그나마 고명한 기사가 저런 말을 했다면 조금은 통할 여지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갤러운은 웨어울프족이었다.
종족 차별을 하지 않으려고 해도, 겉모습에서부터 사람이 아니라 몬스터나 마족을 상대하는 느낌이 물씬 풍길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상대적으로 거부감이 낮았다.
원래 사냥이란 건 집단으로 하는 게 정석이었으니.
“전장에 그딴 게 어디 있느냐!”
“한낱 짐승에게 보일 명예는 없다!”
그래도 보고 있자니 조금 비겁하게 여겨지기는 했다.
상대는 하나인데 아군은 여럿이 달려들고 그 기저에는 웨어울프에 대한 무시도 깔려있으니.
그러나 별로 대수로운 일은 아니었다.
승리 시 주어지는 달콤한 보상에 비해 찝찝한 기분 같은 건 시시한 문제에 불과하니까.
게다가 병사들의 시선에서는 명예를 따지는 기사는 그리 곱게 보이지 않는다.
그 기사의 명예를 위해서 작전에 차질이 생긴다면 가장 피해를 보는 게 병사들이라는 걸 스스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만 해도 기사의 피해를 줄이고자 병사들을 일정 부분 희생시킨 상황이기도 했으니.
여기서 뜬금없이 명예 타령을 하며 그들의 죽음을 헛수고로 바꾼다면 병사들의 눈이 뒤집힐 것이다.
“크윽!”
그런데 그때였다.
이리저리 밀리고 밀리던 갤러운의 눈이 돌연 나를 찾아냈다.
전장 한복판에서 얼굴도 몰랐을 나를 용케 찾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생각해 보니 입고 있는 복장이 너무 눈에 띄었다.
‘황제라고 너무 힘을 줬어.’
장비 자체는 과거 루안이 만들어 준 것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황제의 위엄이 살지 않는다는 이유로 몇몇 귀족이 장식을 추가할 것을 건의했다.
나로서는 당연히 달갑지 않았다.
유인책을 쓸 때가 아니라면 굳이 내 위치를 노출해 좋을 게 없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귀족들과 나 사이에서 사소한 언쟁이 일어났는데 여기서 승리한 건 귀족들이었다.
대제국의 황제에 걸맞은 위엄을 보이라는 말을 거부할 명분이 없었기 때문이다.
실용성을 따지는 건 대제국 황제다운 면모가 아니라나.
결국 근위기사단의 수를 늘리는 것으로 나도 타협을 보아야만 했다.
‘뭐, 상관없겠지.’
나를 찾았다고 해도 쉽게 돌파해 올 수 있을 만큼 허술한 곳에 자리를 잡지는 않았다.
거기에 아인츠발트 휘하의 기사단이 최강이라면 그 뒤를 잇는 건 근위기사단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이 혼란스러운 전장에서도 내 곁에 바짝 붙어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탈론처럼 저격이 가능하다면 모를까.’
이 엄청난 숫자의 장벽을 뚫고 나를 노리려면 탈론과 같은 솜씨 좋은 저격수가 있어야 했다.
하지만 정말 탈론과 동등한 수준의 저격수가 있다고 해도 실제로 나를 죽일 수는 없을 것이다.
이미 마나 실드를 사용하였고 급소는 루안의 장비로 방비가 되니.
내 안전을 지키는 일은 절대 허투루 준비하지 않았다.
“크아아아!”
그래도 갤러운은 일단 시도라도 해볼 생각인지 움직이기 시작했다.
당연히 나로서는 이를 가만히 두고 볼 이유가 없었다.
“올 수 있으면 와봐라.”
기사들의 공격을 받아내며 달려오는 갤러운을 향해 즉시 마법을 준비하여 요격을 개시했다.
놈의 곁에 아군이 잔뜩 뭉쳐있는 상태이기는 했지만, 그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복잡한 전장에서 아군이 휩쓸리는 상황은 언제든 나올 수 있기에 이에 대한 대비 또한 해놨으니.
자고로 전쟁이란 이기기 위한 모든 준비가 끝난 뒤에 시작하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