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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VIP 영주님의 품격-243화 (243/250)

VVIP 영주님의 품격 243화

VVIP 영주님의 품격 243화

243화

【 힘을 따르는 자 】

극히 소수의 이종족이 인간들의 눈을 피해 숨어 사는 서부와 달리 동부에는 다양한 종족이 공존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차별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았다.

마족을 밀어내고 대륙의 패권을 지닌 존재는 엄연히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이를 증명하듯 동부에서 가장 큰 세력을 자랑하고 있는 국가인 마르시아 제국 또한 인간들의 나라였다.

그러나 대놓고 차별하기에는 이종족의 숫자 역시 적지 않았기에 인류는 이종족 사이에 차등을 두는 것으로 그들이 단합하지 못하게 견제했다.

이때 차등을 나누는 기준은 종족의 외모였다.

인간과 외모가 닮은 종족은 우대하고 차이가 두드러지는 종족은 멸시한 것이다.

그리고 갤러운은 이렇게 멸시받는 종족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웨어울프족이었다.

“갤러운! 바질 후작 각하께서 너를 찾으셨다!”

이종족 부대를 통솔하는 부대장은 바질 후작의 명령에 냉큼 갤러운을 호출했다.

그에 후방에서 늘어지게 누워있던 검은 형상이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전쟁터 한복판에서 잠을 잘 수 있을 정도로 그에게서는 여유로움이 물씬 풍기고 있었다.

‘기분 나쁜 자식.’

부대장은 갤러운을 혐오했다.

이종족 부대의 지휘관으로서 갤러운이 이종족이라는 이유로 혐오하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부대장은 본래 이종족들에게 매우 호의적인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런 그조차 갤러운에 대한 인상은 나쁠 수밖에 없었다.

갤러운의 인격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전장에서 아군이 죽어가는 상황에 한가하게 잠이나 자는 것 역시 갤러운이 가진 많은 문제점 중 하나였다.

“하암. 출전인가?”

갤러운은 졸음이 채 가시지 않은 것처럼 늘어지게 하품을 내뱉었다.

툭 튀어나온 맹수의 주둥이가 쩍 벌어졌다.

“그래. 적들은 강하다! 지금까지 우리 부대가 경험한 상대 중 최강일 게 분명해.”

갤러운은 부대장이 주는 경고에도 아랑곳하지 않으며 따분한 표정을 지었다.

갤러운이 보기에 눈앞의 부대장은 아직도 이종족 부대의 전력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그 문제는 부대장이 무능해서는 아니었다.

자고로 전력을 보여주려면 그럴 만한 상대가 있어야 하는데 지금까지 그들이 상대해 온 어떤 적도 적수가 되지 못해서 생긴 문제일 뿐.

하지만 그렇기에 갤러운은 부대장의 말이 도무지 신뢰가 가지 않았다.

실제로 위험할 수도 있다는 전장에 몇 번이나 나갔으나 지금껏 목숨의 위협을 받았던 일은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페톤 남작보다 강한가?”

갤러운은 자신이 상대했던 자 중 그나마 강했던 상대의 이름을 거론했다.

페톤 남작은 마르시아 제국의 내전에서 갤러운과 맞붙었던 기사로 나름대로 공방을 주고받은 유일한 인물이었다.

물론 그조차 갤러운을 위협하기에는 역부족이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패해 처참하게 죽고 말았다.

하지만 그나마 기억할 가치 정도는 있었다.

“그딴 놈과 비교도 되지 않아!”

고작 페톤 남작을 거론하는 갤러운의 모습에 부대장은 발끈해서 소리쳤다.

사전에 확인된 네패스 제국의 위험인물인 아인츠발트 공작의 무력은 페톤 남작 따위와 비교할 것이 아니었다.

페톤 남작이 열 명쯤 있더라도 시간이나 제대로 벌 수 있을지 의심스러웠다.

“정말 죽을지도 모른다. 이번에는 진짜야!”

“그래?”

페톤 남작과 비교할 수 없이 강하다는 이야기에 갤러운은 서서히 흥미를 보였다.

처음 전장에 섰을 때는 갤러운에게도 나름대로 의욕이란 것이 있었다.

실제로 전장이란 온갖 위험이 들끓는 장소였으니.

그러나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갤러운은 목숨의 위협이나 적수라고 할 만한 상대를 전혀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강해져도 너무 강해졌기 때문이다.

심지어 같은 웨어울프족 사이에서도 갤러운은 돌연변이로 취급받았다.

“그건 좀 재미있겠군.”

갤러운은 부디 상대가 자신의 지루함을 해소할 수 있을 만한 강자이기를 바라며 뒤를 돌았다.

이종족 부대의 막사가 규칙성 없이 지저분하게 설치되어 있었다.

“얘들아.”

갤러운이 가볍게 부르자 이종족 부대의 막사 곳곳에서 흉흉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부대장은 그 강렬한 존재감에 몸을 떨었다.

형식적으로는 그가 부대장이었으나 이종족 부대는 나약한 부대장을 따를 마음이 없었다.

그렇기에 그들에게 있어 지시를 내릴 수 있는 상대는 압도적인 무력을 가진 갤러운이 유일했다.

다행히 갤러운은 바질 후작이 웨어울프족에게 막대한 재물을 주는 것을 대가로 권력에 순종하고 있었기에 통솔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부대장이 갤러운을 내칠 수 없는 이유였다.

“사냥 시간이다.”

* * *

콰콰쾅!

일대를 뒤덮고 있는 검은 번개와 그 속에서 들려오는 아군의 비명.

동부 연합군은 압도적인 네패스 제국의 전력 앞에 전의를 상실하고 말았다.

이건 전쟁이 아니었다.

자고로 전쟁이란 양측의 싸움이 성립될 때에나 붙이는 말이니까.

지금처럼 어디서 날아왔는지 모를 마법의 폭격에 기사단이 쓸려나가고, 알 수 없는 마법으로 아군 마법사들이 족족 쓰러지는 상황은 전쟁이라 부를 수 없었다.

“도, 도망쳐야 돼!”

곧이어 들이닥칠 끔찍한 결말을 예상한 병사는 탈영을 결심하고 몸을 돌렸다.

탈영병에 대한 처분이 즉결 처형이라는 건 병사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잡혔을 때의 경우에 불과했다.

반면 지금 이곳에서의 죽음은 어떤 회피의 여지도 없을 만큼 확실했다.

툭!

그런데 몸을 돌려 달아나던 탈영병은 갑자기 불쑥 튀어나온 거대한 벽에 가로막히고 말았다.

병사는 당황하며 뒤로 물러났다.

자신을 막아선 벽의 정체는 그보다 두 배는 큰 거대한 웨어울프였다.

“이런. 이건 무슨 상황일까?”

갤러운은 눈앞에서 탈영을 시도하려 한 병사를 바라보며 조소를 흘렸다.

이종족 부대는 매우 강력하지만, 공을 세울 기회를 간절히 원하는 귀족들은 이종족 부대를 쓰는 걸 꺼렸다.

그들이 활약하면 아무래도 이종족의 강함이 두드러질 뿐, 지휘관의 능력이 주목받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기껏 있는 전력을 놀게 내버려 둘 수도 없는 일이기에 평상시 지휘관들은 이종족 부대에 가장 곤란한 임무 중 하나를 맡기고는 했다.

그 대표적인 일이 바로 탈영병을 막는 것이었다.

물론 막는다는 말은 물리적인 저지를 넘어 탈영병이 생기지 못하도록 본보기를 보이라는 의미였다.

“탈영병은 즉결 처형이라구?”

“으아아아!”

갤러운이 히죽 웃으며 살기를 보이자 병사는 당황하며 창을 내질렀다.

그러나 갤러운의 움직임이 훨씬 빨랐다.

병사의 창날이 닿기도 전에 갤러운은 날카로운 발톱을 내리그었다.

촤아악!

병사가 입고 있던 가죽을 덧댄 얇은 철제 갑옷은 제 기능을 하지 못한 채 산산이 쪼개졌다.

이는 갑옷에 둘러싸인 육체라고 해서 다를 게 없었다.

“크크. 역시 피를 봐야 흥분된다니까?”

병사의 피를 묻힌 갤러운은 그 비릿한 냄새에 만족스럽게 웃었다.

이제야 좀 전장에 선 기분이 들었다.

“안 그러냐?”

“맞습니다!”

갤러운의 물음에 뒤를 따라오던 이종족 부대원들도 낄낄거리며 웃었다.

이종족 부대가 강한 건 인간과 거리가 먼 온갖 종족이 섞인 덕분이었다.

하지만 이는 다시 말해 인간이 주도한 종족 차별의 주된 피해자였단 소리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이종족 부대 중 인간에 대해 호의적인 감정을 가진 이들은 매우 드물었다.

그나마 아군을 공격하지 않을 정도의 이성은 있었지만, 탈영 같은 죄를 지은 자들에게는 그런 자비도 보이지 않았다.

“보자, 아인츠발트라는 놈은 어디에 있으려나?”

갤러운은 눈을 큼직하게 뜨고 전장을 살폈다.

인간과는 비교할 수 없이 발달한 온갖 감각들이 전장의 정보를 속속들이 알려주고 있었다.

죽어가는 아군의 비명.

그 중심에서 아군의 무리를 돌파하는 적 기사단의 존재가 감지되었다.

“얘들아, 저쪽이다!”

“크하하! 먼저 갑니다!”

“늦게 오시면 재미는 못 보실 겁니다!”

갤러운이 방향을 지시하기 무섭게 이종족 부대는 사나운 포효를 내지르며 앞으로 내달렸다.

그들에게 기사들과 같은 말은 필요치 않았다.

튼튼하고 민첩한 다리만으로 말과 비슷한 속도를 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요정족 검사는 남겨라! 놈은 내 몫이다!”

갤러운은 부하들이 귀찮은 잔챙이를 정리하는 사이에 아인츠발트를 찾아 처치할 심산으로 느긋하게 뒤를 따랐다.

그로부터 얼마나 지났을까?

앞서 나갔던 부하들의 족적을 따라 전장에 도착한 갤러운의 눈에는 생각지도 못한 광경이 들어오고 있었다.

촤악!

어느 기사가 내지른 일검에 부하의 육신이 둘로 쪼개지는 광경.

어쩌다 운 나쁘게 한 놈이 죽은 거였다면 갤러운도 동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종족 부대가 강하다고 해도 무적은 아니니까.

하지만 그 녀석이 자신 휘하의 부대원 중에서는 손꼽힐 정도로 강하다는 사실에는 갤러운도 동요할 수밖에 없었다.

마르시아 제국의 이름 있는 기사와 맞붙어도 절대 밀리는 녀석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크헉!”

게다가 죽은 건 놈만이 아니었다.

다른 부대원들 역시 고전을 면치 못하고 하나둘씩 바닥에 쓰러졌다.

상대가 자신이 처치해야 할 아인츠발트 공작이었다면 갤러운도 당황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를 보고 저기로 봐도 상대는 그냥 인간이었다.

한 가지 차이점이 있다면 그 실력이 무척이나 출중한 기사라는 것.

그리고 그런 이들이 한둘이 아니라 자그마치 수십이나 모여있다는 게 문제였다.

전체적으로 이종족 부대가 일방적으로 밀리고 있던 것이다.

“이게 무슨?”

한 지역에서 크게 이름을 떨칠 만한 실력자가 한둘도 아니고 수십이 모여 이뤄진 기사단의 존재에 갤러운은 경악했다.

마르시아 제국이 자랑하는 황실의 기사단조차 이런 압도적인 힘을 보여준 적은 없었다.

“대, 대장! 구해주십시오!”

그 처참한 광경에 넋이 나가있던 갤러운은 자신을 부르는 애달픈 목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이미 온갖 상처가 가득한 부하 한 녀석이 간절한 눈으로 구원을 요청하고 있었다.

“이런 멍청한 것들이!”

갤러운은 화가 나서 소리쳤다.

상대가 강하면 강한 것에 맞춰 대처해야 했는데 평상시 그랬던 것처럼 아무 생각 없이 달려들었다가 낭패를 본 게 분명했다.

“수준 차이를 알면 적당히 물러설 줄도 알았어야지!”

갤러운은 부하들을 책망하며 전장으로 뛰어들었다.

인간보다 두 배는 되는 체격을 가진 갤러운이 난입하자 네패스 제국의 기사단도 급격한 동요를 보였다.

“모두 대형을 바꿔라! 단장급이다!”

단장급이란 말에 기사단의 눈빛에 긴장이 역력했다.

하지만 이는 눈빛만 그럴 뿐, 갑작스러운 명령에도 불구하고 기사단은 순식간에 새로운 대형을 갖추어 갤러운에게 대항했다.

그 유기적인 대응에 갤러운은 또 한 번 놀랐다.

일부러 혼란을 일으키기 위해서 기존 대형의 측면을 파고들었으나 어느새 정면으로 대형이 바뀐 상태였다.

자신의 부하들은 갖추지 못한 그야말로 물 흐르듯이 자연스러운 반응이었다.

콰앙!

연이어 기사단 내에서 실력자로 보이는 이가 튀어나와 갤러운과 충돌했다.

갤러운은 어지간한 명검보다도 날카로운 자신의 발톱을 휘둘렀으나 상대 기사는 이를 방패로 막아냈다.

압도적인 힘의 차이를 감당하지 못하고 잠시 휘청거리기는 했으나 낙마하거나 균형을 완전히 상실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훌륭했다.

‘강하다!’

그 한 수의 공방만으로 갤러운은 상대 기사의 실력이 페톤 남작과 대등하다고 파악했다.

실제로 페톤 남작 역시 자신의 일격을 어찌어찌 감당해 냈으니.

다만 상대에게는 페톤 남작과 결정적으로 다른 부분이 있었다.

바로 이 정도 수준의 실력자가 그 한 사람만이 아니란 것이다.

쐐애액!

갤러운의 돌파를 저지시킨 네패스 제국의 기사단은 순식간에 포위망을 형성한 뒤 사방에서 창칼을 휘둘렀다.

하지만 그들은 절대 무리하게 파고들지 않았다.

갤러운의 간격을 정확하게 재어 아슬아슬한 거리에서 번갈아 공격하는 일만 반복해 왔다.

철저하게 체력을 고갈시키려는 의도를 보인 것이다.

갤러운은 이런 네패스 제국 기사단의 모습을 통해 그들이 압도적인 강자와 겨룬 경험이 풍부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나 정도 되는 놈과 여러 번 겨뤄봤다는 거냐?’

갤러운으로서는 경악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네패스 제국의 기사단, 특히 선봉을 맡은 아인츠발트 휘하의 기사단에게 이는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일전에 로스니아 제국을 정복하는 과정에서 기사단이 아인츠발트의 발목을 잡은 일이 생기자 아인츠발트가 그들을 혹독하게 훈련했으니.

그들은 주어진 4년 동안 로스니아 제국의 반란군을 토벌하거나 아인츠발트와 겨루며 실력을 충실히 갈고닦았다.

더구나 네패스 제국의 황제인 아인이 특별히 하사한 영약까지 먹어 놀라울 정도의 성취를 이루었다.

이를 본 아인츠발트가 세상에 그런 약은 없다는 이상한 말을 해서 의문이 들기는 했지만.

‘잠깐! 그러고 보니 이놈들은 아인츠발트인지 뭔지가 아니잖아?’

네패스 제국의 기사단과 쉴 새 없이 겨루던 갤러운은 뒤늦게 자신이 상대하려 했던 아인츠발트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자신이 받은 명령은 아인츠발트를 처치하고 네패스 제국의 기세를 꺾어내는 것.

하지만 이래서는 어디선가 날뛰고 있을 아인츠발트에게 아군이 밀릴 게 분명했다.

“비켜라! 난 네깟 놈들과 어울릴 수준이 아니다!”

갤러운은 어느 정도 피해를 감수하기로 하며 기사단을 맹렬히 공격했다.

거대한 덩치에도 불구하고 민첩한 갤러운이 적극적인 공세로 나오자 기사단도 애를 먹기 시작했다.

압도적인 힘에 속도, 기술.

거기에 익숙하지 않은 종족적 특징까지.

어지간한 단장급 기사보다 더한 난적이었다.

‘생긴 것만 괴물이 아니라 진짜 괴물이로군!’

전력을 다한 갤러운의 맹공에 네패스 제국 기사단은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아무리 머릿수에서 절대적인 우위를 보인다고 해도 갤러운의 능력은 그 이상으로 출중했다.

“아무도 날 막을 수 없다!”

이윽고 기사단에 빈틈을 만들어 낸 갤러운은 이를 통해 포위망을 뚫어냈다.

하지만 그 사실에 안도할 틈조차 없었다.

갤러운은 긴장한 눈으로 주위를 살폈다.

사아악!

그의 본능이 실로 오랜만에 위험을 감지하고 주인에게 경고를 보냈다.

네패스 제국의 기사단과 싸우느라 자신도 모르는 사이 아군과 떨어져 적진 한복판에 들어와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재수 없는 우연이라 생각했으나 뒤에서 단숨에 퇴로를 막아버리는 기사단의 모습을 보자 이게 우연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젠장! 저놈들이 일부러 날 유인했구나.’

네패스 제국의 기사단은 절대 쉽게 갤러운에게 틈을 내준 게 아니었다.

선봉을 맡은 기사단의 바로 뒤로 본대가 몰려들었고 그들은 선봉의 상황을 파악해 대비를 갖춘 상태였다.

‘기사단만 강한 게 아니었어.’

재능, 노력, 경험.

모든 것이 훌륭한 기사단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기사단만의 특징이 아니었다.

네패스 제국의 군대 전체가 기이할 정도로 대응력이 높았다.

마치 누군가가 전장의 상황을 읽어내고 지시를 내리는 것처럼.

‘선택지는 하나뿐이다.’

갤러운은 이 상황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지 고민했고 금세 답을 얻었다.

이 위기를 벗어나고 전장의 분위기를 반전시키려면 적의 우두머리를 잡을 필요가 있었다.

“내 이름은 갤러운이다! 아인츠발트 공작! 이리로 와서 나와 맞서라!”

갤러운은 어딘가에 있을지 모를 아인츠발트를 찾아 결투를 신청했다.

그러나 적들은 이에 대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포위망을 이중 삼중으로 더욱 굳건하게 형성하고 갤러운을 처단하려 했다.

‘미친!’

갤러운은 어이가 없었다.

기사들이 그토록 환장하는 명예를 챙기려는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부의 기사들은 동부의 기사와 문화가 다른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밀어버려라.”

그때 누군가가 명령을 내렸다.

갤러운은 다급하게 시선을 돌려 상대의 모습을 확인했다.

거대한 신장과 예민한 감각이 전장 한복판에서 명령자를 찾아냈다.

전장에서 한눈에 들어오는 하얀 머리칼과 갑옷을 입은 자.

네패스 제국의 황제 아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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