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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VIP 영주님의 품격-242화 (242/250)

VVIP 영주님의 품격 242화

VVIP 영주님의 품격 242화

242화

웅크리고 있는 상대를 유인하기 위해서 서약을 받아내는 건 이전에도 쓴 적 있는 전략이었다.

그러나 그때와 지금의 나는 상황이 달랐다.

당시에는 남부 연합의 귀족 중 한 사람이었다면 지금 나는 대륙 절반을 지배하는 대제국의 황제였다.

그런 만큼 내 기사단을 상대해야 할 영주의 부담 역시 클 터.

영주가 어떻게든 토벌을 나오도록 미끼를 뿌릴 필요가 있었다.

그 첫 번째가 바로 자경대였다.

무장을 해제한 뒤 자경대를 끌고 다닌다는 걸 알게 되면 그들이 합세하는 걸 기대할 수 있을 테니 영주의 부담이 많이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할 수 있었다.

어차피 무장을 못 한 자경대라면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할 수도 있었으니.

그래서 두 번째로 준비한 게 국경에 발각되지 않는 것이었다.

국경으로부터 제국군이 침공했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던 영주는 우선 국경에 사실을 파악하려고 할 테니까.

그리고 국경에서 적들이 넘어온 적 없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눈앞에 있는 기사들이 전부라는 오판을 할 것이다.

하지만 이는 함정이었다.

실제로 기사단의 근처에는 별도의 병력이 숨어서 대기하고 있던 것이다.

그들을 투입해야 할 상황은 나오지 않아 모습을 드러내는 일은 없었지만.

‘같은 전략을 또 써먹으려면 추가 병력이 있었다는 건 끝까지 감추는 게 좋으니까.’

이 방법을 또 써먹어야 할 상황이 언제 생길지 모르는데 다른 병력이 숨어 있다는 소문이 퍼진다면?

어떤 영주도 바깥으로 나오려 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이를 역이용하는 것도 방법이지만 아직은 그럴 때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훌륭한 전략이었습니다.”

릴리아나의 보고를 확인한 루시우스도 만족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본대는 이제야 국경에 도착했는데 영주들은 이 소식을 듣고도 국경에 합류해야 할지 자신들의 영지를 지켜야 할지 고민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경우 보통은 자신의 것을 먼저 지키기 마련이었다.

기사단 80명과 후속 병력까지 더해도 고작 수백의 병력으로 수십 배는 될 적들의 발을 묶은 것이다.

크게 남는 장사였다.

‘기사단은 어차피 순간 이동 마법으로 다시 불러왔으니까 이쪽의 손실은 없지.’

지난 수년 동안 내가 제일 신경 썼던 분야는 순간 이동 마법진을 개량하는 것이었다.

전략적인 측면에서 이보다 더 효과적인 마법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다른 이들도 바보가 아니라면 순간 이동 마법진의 가치는 익히 알고 있었을 테니까.

그런데도 지금까지처럼 보주를 퍼부어야만 겨우 한 번 쓸 수 있는 선에서 그친 건 그만큼 어려운 마법이란 방증이었다.

그러나 이 어려운 마법을 막대한 예산을 쏟아가며 연구한 집단이 하나 있었다.

바로 로스니아 제국이었다.

‘제국의 기관에 꽤 양질의 기록들이 있어서 일이 쉬워졌지.’

마법사 협회로서는 엄두도 내지 못할 예산을 황실에서 지원해 준 덕분에 기관은 협회보다 좋은 성과를 내고 있었다.

덕분에 이를 흡수한 마법사 협회의 연구도 빠르게 발전할 수 있었고 결국, 전쟁을 재개하기 이전에 좀 더 향상된 순간 이동 마법진을 만드는 것에 성공했다.

나로서는 그야말로 천군만마를 얻은 것과 같은 일이었다.

‘그동안 보주도 제법 모았고.’

로스니아 제국을 흡수하고 다시 전쟁을 시작할 때까지 총 4년이 걸렸다.

이마저 아랫사람들을 쥐어짜서 앞당긴 성과였다.

본래라면 4년이 아니라 한 세대 정도는 걸렸을 테니까.

덕분에 내 밑에서 일하면 노예처럼 혹사당한다는 안 좋은 소문까지 퍼지고 말았다.

‘뭐, 그런 사소한 것까지 신경 쓸 필요는 없겠지.’

네일에게는 심심한 위로를 전하며 전황을 살폈다.

우리가 힘을 키우고 있던 만큼 대륙 동부도 가만히 시간만 보내고 있지는 않았다.

로스니아 제국과 쌍벽을 이루며 대륙에 영향력을 행사한 또 다른 제국을 중심으로 우리와 싸우기 위한 준비를 갖춘 상태였다.

‘국경의 방비는 잘되어 있었지.’

다니엘을 통해서 알아본 결과 국경에는 쉽게 파고들 틈이 보이지 않았다.

내가 정면으로 상대를 누르지 않고 릴리아나를 적들의 후방으로 보낸 이유 역시 정면에서 그들과 힘 싸움을 하는 건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이기려고 한다면 이길 수야 있겠지만 얼마나 되는 피해를 입게 될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러니 일단 틈을 내야 했던 거고.’

영주들이 지원군을 보낼 수 없는 상황을 만들었으니 이제는 좀 해볼 만할 것이다.

물론 그것을 고려해도 여전히 엄청난 숫자의 군대가 밀집되어 있었지만 그건 이쪽도 마찬가지였다.

원정군 50만.

로스니아 제국의 전성기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그렇다고 한들 제국이 아니라면 엄두조차 내지 못할 대군이었다.

거기에 영웅들의 면면도 화려했다.

당장 릴리아나는 7티어에 오르며 아인츠발트의 밑을 바짝 따라붙었다.

루시우스나 다니엘, 티아라 등 4티어였던 영웅들도 승급권을 통해서 5티어까지 올라왔고.

탈론이나 그랜트처럼 5티어였던 영웅이 6티어로 올라가지는 못했지만 그건 어쩔 수 없었다.

릴리아나 같은 세기의 재능이 아니라면 벽을 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으니.

하지만 이 정도의 성장만으로도 과거에 비해 훨씬 강력해졌다고 평가할 수 있었다.

적어도 대륙의 나머지 절반을 정복하기에 부족함은 없을 만큼.

“그럼 우리도 슬슬 시작하지.”

* * *

네패스 제국의 움직임이 확인된 뒤 국경의 방비를 책임지는 이들은 인근 영주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요청을 받은 영주 중 국경에 합류한 이들의 숫자는 극히 적었다.

그들은 국경의 허술한 방비 때문에 근처 영지에 나타난 네패스 제국의 기사단을 경계하느라 지원군을 보낼 수 없다고 항의했다.

철저하게 경계를 진행하고 있던 국경의 병력들로선 기가 막힌 이야기였다.

“이게 도대체 무슨 말도 안 되는 이야기입니까?”

국경의 책임자 중 한 사람인 바트란 백작이 어이없어하며 말했다.

국경의 방비는 빠짐없이 완벽했다.

이미 각국이 네패스 제국을 상대하기 위해 동맹을 맺어둔 상태였기 때문이다.

덕분에 경계가 어렵거나 책임이 애매한 지역도 모두 제대로 배정해 철통같은 보안을 자랑하고 있었는데 후방에 적이라니?

그것도 한둘이 아니라 중무장한 기사 수십이었다.

“대체 어디를 뚫고 들어갈 수 있었던 건지 짐작도 되지 않습니다.”

보병 수십이었다면 이렇게 놀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사람이 하는 일이니까 어디든지 틈은 있을 수 있으니.

그러나 기병은 다르다.

말은 절대로 은밀하게 움직일 수 없었다.

그렇다고 맨몸으로 넘어간 뒤 호흡도 맞지 않는 처음 보는 말들을 길들여서 타고 다니지는 않았을 것이고.

“어떻게 들어갔는지는 몰라도 결국에는 백 명도 안 되는 인원이라고 하지 않았소? 그런데 지원군을 보내지 않겠다는 영주의 숫자는 열이 넘소.”

동맹군의 총사령관인 바질 후작은 의문을 뒤로한 채 영주들의 행태를 지적했다.

아무리 중무장한 기사라고 해도 그렇지 고작해야 100명도 안 되는 적이었다.

그런데 그들이 자신의 영지를 침범하는 것이 두려워 열 명도 넘는 영주들이 지원군을 보내지 않았다.

영주들이 본래 데리고 합류하기로 계획되어 있던 병력의 숫자가 1만이 넘어가니 적들로서는 엄청나게 이득을 본 셈이었다.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시오?”

“당연히 안 되지요! 영주들에게 책임을 엄히 물어야 합니다.”

다른 귀족들은 바질 후작의 의견에 적극적으로 동의하며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소리 높였다.

그러나 이는 눈앞에 들이닥친 네패스 제국군을 물리친 뒤에야 가능한 일이었다.

“일단 당장이라도 지원군을 보내지 않으면 내통한 것으로 간주하고 적대할 거라는 뜻을 전하시오.”

바질 후작은 영주들에게 경고를 보낸 뒤 눈앞에 들이닥친 적들을 향해 관심을 기울였다.

네패스 제국군의 50만 대군.

국경을 따라서 모인 그 대규모 군세를 생각하니 입이 바싹 타들어 가는 기분이었다.

‘이쪽도 나름대로 준비는 했지만, 전력 차이가 심하군.’

머릿수의 차이가 생각보다 심했다.

자신들로선 드넓은 국경을 전부 막아야 했던 반면, 상대는 그 많은 병력을 한곳에 모았기 때문이다.

다행히 지리적인 이점은 아군에게 있었지만, 그것만으로는 안심할 수 없었다.

네패스 제국의 황제라면 그 정도쯤은 가볍게 뚫고 들어올 것 같았으니.

‘기록을 살펴보고는 도무지 믿기지 않았지. 실로 인간 같지도 않은 자야.’

동부가 내전과 전쟁으로 정신이 없는 틈을 타서 변방 영지의 영주가 서부를 통일했다.

이 소식을 처음 전해 들었을 때 바질 후작은 자신의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혼란한 시기에 영웅이 나타나는 법이라고 하지만 거기에도 한계란 게 있으니.

제대로 된 세력도 갖추지 못한 변방의 영주라면 아무리 커봐야 대영주가 되는 정도가 상상할 수 있는 최고점이었다.

그런데 서부를 완전히 통일하다니?

상상조차 벗어나는 말도 안 되는 위업을 달성한 상대였다.

‘운도 나름 따라준 모양이지만 그게 상대를 얕잡아 볼 근거는 안 되지.’

아스카라고 불리는 마족이 로스니아 제국군을 전멸시켰다거나, 빌헬름이 선전 포고를 했을 때 다른 군주들이 그를 제거한 일 등.

아인에게는 분명 나름대로의 행운도 함께 따랐었다.

그러나 바질 후작은 고작 그런 이유로 상대의 성과를 폄훼하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그런 알량한 마음가짐으로 싸웠다가는 상대에게 패배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일단은 사전에 준비한 계획대로 대처하는 게 좋겠소. 적들도 이쪽의 전력을 파악하기 위해 처음부터 전력을 다하지는 않을…….”

바질 후작의 말은 끝까지 이어질 수 없었다.

그는 마법사였기에 마나의 흐름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 바질 후작의 감각에 터무니없는 수준으로 응축되고 있는 거대한 기운이 감지되었다.

콰르르릉!

그 사실을 전달하기도 전에 귀를 먹먹하게 만드는 굉음이 울려 퍼졌다.

한순간 청각이 망가진 듯한 느낌이 들었지만 바질 후작은 그 정도는 사소하다고 여겼다.

그럴 수밖에 없을 정도로 느껴졌던 마나의 규모가 오싹했기 때문이다.

“저게 무슨…….”

그리고 그런 바질 후작의 감각은 절대 잘못되지 않았다는 게 증명되었다.

국경을 지키고 있는 방벽 한쪽이 통째로 무너졌으니.

하지만 바질 후작은 이를 기뻐할 수 없었다.

시작은 가볍게 공격해 올 거라는 예상과 달리 네패스 제국군은 처음부터 총력을 퍼붓고 있었기 때문이다.

“쏴라!”

바질 후작이 지휘를 하기도 전 현장의 하급 지휘관들이 서둘러 명령을 내렸다.

적들이 방벽의 무너진 틈을 향해 새까맣게 몰려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를 저지하기 위해서 수천 발의 화살이 쏘아지고 마법사의 공격이 이어졌다.

콰콰쾅!

그러나 적들을 요격하기 위해서 사용한 모든 공격은 적에게 도달하기도 전에 갑자기 나타난 마나 실드에 가로막히고 말았다.

바질 후작은 수백의 병력 위에 덧씌워진 마나 실드를 보며 소름이 끼쳤다.

‘무슨 마나 실드가 저렇게 커?’

보통 마나 실드는 마법사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며 다른 이에게 씌워준다고 해봐야 그 크기는 별로 대단치 않았다.

그런데 지금 눈앞에 펼쳐진 마나 실드는 그런 상식을 벗어난 규모였다.

‘게다가 저 단단함은 뭐냔 말이다!’

화살은 그렇다 쳐도 이름 있는 마법사들의 공격만 수십 회에 이르렀다.

그런데 거대한 마나 실드는 그 공격들에 조금의 손상도 입지 않았다.

“어서 마나 실드를 부숴라!”

“기사단은 방벽을 막아라! 적들이 안으로 들어오게 둬선 안 된다!”

하급 지휘관들의 대응은 신속했다.

동부 역시 긴 내전과 전쟁의 시기를 거치며 나름대로 경험을 쌓은 이들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신속한 대응은 아무런 성과도 내지 못했다.

콰콰쾅!

폭음을 내며 날아든 화살이 목소리를 높이던 하급 지휘관들을 꿰뚫기 시작했다.

방패와 창을 내세우며 방벽의 틈을 틀어막은 기사들은 선두에 선 요정족 검사에게 무참히 무너졌다.

어떻게든 아군을 지원하기 위해 발악하던 마법사들은 갑자기 감전이라도 당한 것처럼 몸을 떨더니 영문도 모른 채 고꾸라졌다.

“대체 이게…….”

무수한 전쟁을 경험했던 바질 후작조차 이러한 광경은 단 한 번도 목격하지 못했다.

지휘관들을 저격해 버리는 화살에 기사들이 뭉쳐서 만든 방어진을 볏짚처럼 베어버리는 검사.

거기에 영문도 모른 채 마법사들을 무력화시키는 의문의 적까지.

그야말로 악몽 그 자체였다.

“이런 게 가능하다고? 이럴 리가, 이런 게 어떻게?”

어디를 보나 인간 같지 않은 활약이었다.

바질 후작은 머릿속이 새하얗게 물들었다.

“후작 각하! 정신을 차리셔야 합니다!”

그런 바질 후작을 바트란 백작이 일깨웠다.

설마 적들이 이렇게까지 압도적일 줄은 몰랐지만 그렇다고 자신들이 정신을 놓아선 안 되었다.

어차피 이쪽의 전력도 10만은 넘어서는 대군.

아무리 쉽게 방벽이 뚫린다고 해도 상대 역시 나름대로 소모는 될 터.

이후 전투까지 그리 호락호락 당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국경에는 네패스 제국에 대항할 만한 전력도 존재했다.

“아직 우리에게는 그들이 있지 않습니까?”

바트란 백작의 말에 바질 후작의 눈이 번쩍 떠졌다.

그러고 보니 아직 절망하기에는 한참 일렀다.

동부가 서부와 다른 점은 인간이 아닌 이종족의 숫자가 훨씬 많다는 것.

자신의 휘하에는 그런 이종족으로 이루어진 특수한 부대가 존재했다.

“그래. 이종족 부대라면 충분히 활약하겠지.”

그들은 동부의 크고 작은 전투에서 활약하며 이미 자신의 실력을 충분하게 입증한 상태였다.

“갤러운을 불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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