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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VIP 영주님의 품격-233화 (233/250)

VVIP 영주님의 품격 233화

VVIP 영주님의 품격 233화

233화

* * *

“쏴라!”

첫 공격은 로스니아 제국군의 화살 세례였다.

수도를 향해 공성을 개시한 내 군대의 머리 위로 수천 발의 화살이 쏟아져 내렸다.

그중 대부분은 일반 화살이었기에 잘 무장한 병력의 방패나 갑옷에 막혔지만 모두가 그런 건 아니었다.

콰아앙!

일부 화살에는 폭발을 일으키는 화약통이 달린 불화살이 있었다.

단순히 화살인 줄 알고 얕보던 선두의 병력은 그 폭발에 휘말려 사상자를 냈다.

“약하군.”

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난 편한 심정이었다.

생각보다도 날아드는 화살의 수가 적고 명중률도 어설펐다.

애초에 궁병은 다른 병과에 비해서 육성에 긴 시간이 필요하다.

급하게 끌어모은 군대로는 제대로 된 궁병을 편성할 수 없었다.

그나마 중간중간에 끼어 있는 화약이 실린 화살은 나름대로 위력이 있었지만 그것도 즉사할 수준은 아니었다.

“사람은 어찌 모아도 전쟁에 필요한 물자는 쉬이 모을 수 없으니까요.”

키스타 자작이 설명을 덧붙였다.

그나마 날아드는 화살이 모두 화약이었다면 또 몰랐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화약을 다루기 위해서도 나름대로의 교육이 필요한데 그 잠깐 사이에 네르바가 이를 준비시킬 수는 없으니.

날아드는 화살마저도 얼마 지나지 않아 끊겨버리고 맹렬한 공격이 이어졌다.

“공성전은 전문이 아닌데.”

“그래도 한 번이라면 가능할 거예요.”

반신반의하고 있는 자크론과 티아라가 앞으로 나섰다.

두 마법사는 마법사 협회에서 사용하는 비술처럼 서로의 마나를 모았다.

자크론이 티아라를 지원해 주는 형태였는데 켈렌 원로의 제자인 티아라가 그 아래에서 어느 정도 경험을 쌓은 덕에 가능한 일이었다.

콰콰쾅!

자크론의 도움을 받은 티아라는 그대로 강력한 마법을 일으켜 수도의 벽 한쪽을 공격했다.

로스니아 제국의 마법사들이 대항했지만 속수무책이었다.

둘이 공격한 위치는 정면에서 상당히 떨어져 있었으니까.

그곳에 있는 마법사의 숫자는 몇 되지 않아 두 사람의 마법을 막을 힘이 부족했다.

“지금이다! 기사단 앞으로!”

그렇게 빈틈이 드러난 곳을 향해서 기사단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로스니아 제국은 서둘러 장애물을 가져와 기사단의 경로를 방해하고 어떻게든 성벽을 보수하려 시도했다.

그러나 기사단의 선봉에 선 인물이 다른 누구도 아닌 아인츠발트였기에 그 시도는 무위로 돌아갔다.

콰콰콰쾅!

분명 칼질인데 마법에 밀리지 않는 위력으로 아인츠발트는 자크론과 티아라가 만든 구멍을 더 크게 키워냈다.

그리고 자신을 가로막는 적들을 향해 압도적인 힘을 선보였다.

날뛰기 시작하는 아인츠발트를 막아설 정도의 실력자는 로스니아 제국에 존재하지 않았다.

“버텨라! 어떻게든 버텨야 한다!”

네르바의 명령을 받은 이들이 기사단의 침입을 막기 위해 필사적으로 싸울 때였다.

뿌우우우.

돌연 로스니아 제국 측에서 의미를 알 수 없는 신호가 전장으로 울려 퍼졌다.

“뭐지?”

혹시 정문을 열고 기사단이라도 튀어나오는 건 아닌지 경계했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그러나 그 대신 엉뚱하게도 우리의 후방에서 로스니아 제국의 군대가 몰아치기 시작했다.

“후방이라고?”

여기에는 나도 좀 당황했다.

소수의 별동대도 아니고 몇만은 될 법한 엄청난 숫자의 병력이 나타났으니.

이 주변은 이미 꼼꼼하게 확인한 상태였는데 어디에 있었는지 들키지도 않고 기습을 성공시킨 것이다.

‘대체 어느 부대지?’

깃발을 확인한 결과 상대는 북부의 지원군이 틀림없었다.

“어떻게 벌써 북부의 부대가?”

“정보가 잘못되었나?”

북부 지원군의 움직임은 직접 눈으로 확인한 정보가 아니었다.

하지만 군대의 움직임이 목격된 것 자체는 사실일 터.

아예 보이지 않았더라면 내가 속았을 리 없다.

‘시선을 끌기 위한 미끼를 따로 빼서 우리를 속였군.’

알려져 있던 북부 지원군의 위치는 가짜고 저들이 진짜였다.

덕분에 아직 북부의 지원군이 오지 않았다고 여기고 있던 나로선 큰 오판을 한 셈이었다.

‘예비대가 있기는 하지만.’

준비된 예비대가 있으니 대응하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다.

그렇지만 앞뒤로 적을 두게 된 상황이 달갑지는 않았다.

양측의 전황을 동시에 살피는 것도 피곤한 일이었고.

‘후방에 집중하면 전방의 방어를 뚫지 못할 수도 있겠지. 그렇다고 전방에 집중했다가는 생각보다 큰 피해를 입을지도 모르고.’

예비대가 있다고 해도 적들 역시 작정하고 공격해 오는 중이었다.

제대로 된 지휘가 필요했다.

“제가 후방을 맡겠습니다.”

“저도 나서겠습니다. 폐하.”

이런 내 생각을 알아차렸는지 전장에 나선 몇몇 귀족들이 후방으로 몸을 돌렸다.

어차피 아인츠발트가 맹활약하는 정면을 공격해 봐야 전공을 모두 그가 챙기게 될 테니 차라리 후방의 적이라도 막는 게 낫다는 생각인 듯했다.

현명한 판단이었다.

결과까지 따라와 줬다면 더 좋았겠지만.

“생각보다 쉽게 진압하지 못하는군.”

후방의 적들을 맞으러 간 귀족들은 팽팽한 접전을 벌이고 있었다.

북부 국경의 병력은 로스니아 제국의 여러 국경 중에서도 가장 정예가 모여 있기로 유명한 곳.

그들과 비등하게 겨룬다는 점에서 귀족들 역시 나름대로 능력이 있다고 볼 수 있지만 이는 내가 바라던 결과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병력을 쉽게 빼낼 수도 없고.’

활을 다루는 탈론을 비롯해 전체적인 지휘를 맡은 루시우스는 따로 빼내기 어려웠다.

자크론과 티아라는 벽을 뚫는 것으로 역할을 다했고 아인츠발트는 아예 최선두에서 싸우는 중이었고.

“아무래도 후방에 지원군을 보내야 할 거 같군.”

“그랜트가 적당할 겁니다.”

전황을 살피고 있던 키스타가 말을 받았다.

“아직 휴식이 필요할 텐데?”

나도 아직까지 피곤한 시점이었다.

선봉 부대에 함께했던 그랜트를 보낸다면 부담이 클 것이다.

“하지만 녀석만큼 확실한 패가 지금은 없지 않습니까?”

그러나 키스타의 말은 옳았다.

예비대에 있는 5티어 영웅을 내버려 두고 굳이 전투에 집중하고 있는 다른 영웅을 뺄 필요는 없었다.

“어쩔 수 없군.”

다니엘을 보내는 방법도 있겠지만 기사가 아닌 암살자들에게 전면전은 그리 좋은 선택지가 아니었다.

과거 카이로스 백작이 저질렀던 실수를 굳이 내가 반복할 필요는 없기에 나는 키스타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 * *

“쳇! 역시 쉬게 해준다는 말은 쉽게 믿으면 안 된다니까.”

명령이 떨어지자 그랜트는 혀를 차면서도 서둘러서 요격 준비에 나섰다.

사실 후방에 적들이 나타났을 때부터 이런 상황이 되리라 예상은 하고 있었다.

북부의 지원군은 로스니아 제국의 국경을 지키는 병력 중에서도 가장 정예로 유명했으니까.

네패스 제국군 역시 잘 훈련되고 좋은 장비로 무장했지만 쉽게 꺾을 만한 상대는 아니었다.

“나를 너무 원망하지는 마라!”

그랜트가 전장에 서자 팽팽하던 대치 구도는 순식간에 기울기 시작했다.

그랜트 본인이 가진 일신의 무력도 뛰어났지만 그의 명성을 알고 있던 북부의 병력들이 당황한 탓도 컸다.

“그랜트다!”

“제기랄! 저 반역자 놈이!”

그들은 그랜트를 반역자라고 욕했지만 동시에 두려워했다.

비록 카시안 공작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그랜트 역시 상당한 명성을 가졌던 강자였기 때문이다.

그것도 보통은 관심도 주지 않는 타국의 실력자가 아니라 이 로스니아 제국 출신이었기에 그 영향력은 더욱 컸다.

“반역자라서 미안하게 됐군!”

그랜트는 자신을 욕하는 목소리를 적당히 무시하며 전장을 헤집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런 그랜트의 앞길을 가로막는 상대가 등장했다.

쐐액!

섬뜩한 느낌에 그랜트는 재빨리 검을 휘둘러 대응에 나섰다.

쩌어엉!

“큭!”

손끝에서 전달되는 충격에 그랜트는 인상을 찡그렸다.

“네놈이 반역자 그랜트 백작인가?”

그랜트를 막은 인물은 단호한 인상의 중년 남성이었다.

그랜트는 그를 알고 있었다.

비록 얼굴을 직접 대면해 볼 기회는 없었으나 소문을 접해본 일이 있었다.

“그쪽이 체임버스 백작인가?”

체임버스 백작은 가장 위험한 북부 국경을 책임지는 만큼 뛰어난 실력을 가진 기사였다.

하지만 그는 그랜트에 비해서는 명성이 낮은 편이었다.

국경에서 나오는 일이 없다 보니 뛰어난 실력에도 불구하고 명성이 부족한 것이다.

“제국의 유망한 기사가 반역자가 된 것도 모자라 타국의 개가 되어 조국을 침범하다니!”

체임버스 백작은 그랜트를 비난하며 공세를 퍼부었다.

그랜트는 그런 체임버스 백작을 맞아 정신없이 검을 휘둘러야 했다.

‘젠장! 이 사람을 완전히 잊고 있었네.’

그랜트는 미처 체임버스 백작을 떠올리지 못했던 자신의 실수를 책망했다.

콰앙!

“큭!”

그랜트와 체임버스 백작의 전투는 한참을 이어졌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그랜트는 연거푸 손해를 보며 밀려나고 말았다.

‘이 정도라면 거의 카시안 공작에 준하는 것 같은데!’

변방에 틀어박혀 있느라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직접 겨뤄본 체임버스 백작의 실력은 카시안 공작과도 비교할 만한 것이었다.

실제 승패는 겨뤄봐야 알 수 있겠지만 아무리 카시안 공작이라도 체임버스 백작을 상대로는 쉽게 승리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북부에 괴물이 있었어!’

계속해서 밀리던 그랜트는 결국 체임버스 백작의 칼날에 틈을 내주고 말았다.

“크윽!”

부상을 입은 그랜트는 창백해진 얼굴로 거리를 벌렸다.

“이런 실력이 있었으면서 지금까지 잘도 숨겨왔군.”

“구태여 숨긴 적 없다.”

그랜트의 비아냥에 체임버스 백작은 담담하게 대꾸했다.

실제로 그는 의도해서 실력을 숨긴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단지 국경에서 나서지 않았기에 소문이 잘 퍼지지 않았을 뿐.

“그럼 계속 국경에 처박혀 있든가! 야만족 놈들은 어쩌고 이 자리에 온 거냐?”

“걱정하지 마라.”

야만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체임버스 백작은 짙은 미소를 지었다.

“크게 혼쭐을 내놓고 왔으니 내가 없더라도 쉽게 국경을 침범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랜트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설마 국경의 책임자로서 농담으로 저런 소리를 하지는 않을 터.

정말로 체임버스 백작은 야만족을 걱정하는 낌새가 아니었다.

‘하긴, 이런 실력이라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지.’

야만족들도 만만치 않게 강하지만 눈앞에 있는 체임버스 백작만큼은 아닐 게 분명했다.

“그것참. 부럽군.”

자신에게도 이런 실력이 있었다면 친구를 잃을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랜트는 그 사실이 못내 아쉬웠다.

“이만 죽어라!”

체임버스 백작은 신세를 한탄하는 그랜트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카각!

그러나 체임버스 백작의 검은 목적을 이루지 못한 불똥을 일으키며 궤도가 뒤틀렸다.

어느샌가 끼어든 얇은 칼날이 그의 검을 흘려내고 있었다.

‘무슨!’

체임버스 백작은 두 눈을 부릅떴다.

훼방꾼은 그저 그의 공격을 흘려낸 게 아니었다.

순식간에 무게중심을 옮겨 그의 균형을 무너트리고 손에서 검을 놓치게 만들었다.

미숙했던 젊은 시절을 빼곤 당해본 적 없는 상황에 체임버스 백작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훼방꾼의 정체는 다름 아닌 릴리아나였다.

“대체 어떻게?”

상대의 힘과 무게마저 자연스럽게 이용하는 기예에 체임버스 백작은 두려움을 느꼈다.

“아, 그 기분 내가 잘 알지.”

릴리아나의 등장에 그랜트는 안도하며 체임버스 백작을 위로했다.

분명 체임버스 백작은 자신보다 뛰어난 기사였고, 카시안 공작과도 비교할 만했다.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고작 그뿐이었다.

그 카시안 공작이 살아 있다고 해도 상대가 되지 않을 만한 기사가 네패스 제국에는 하나도 아니고 둘씩이나 존재했다.

그리고 그중 하나가 눈앞의 릴리아나였다.

그래도 처음 대련을 했을 때는 나름대로 접전을 이뤘으나 지금의 그랜트는 릴리아나에게 전혀 상대가 되지 못하고 있었다.

그건 체임버스 백작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크윽!”

체임버스 백작은 놓쳐버린 무기를 대신하여 주변을 뒹굴고 있던 다른 검을 집어 들었다.

평소에 쓰던 무기가 아니라고 한들 기사라면 웬만한 무기는 모두 다룰 수 있었다.

하지만 릴리아나를 상대로는 부족했다.

파악!

릴리아나는 미끄러지듯 간격을 좁히고는 체임버스 백작의 빈틈을 향해 검을 내질렀다.

카앙!

급하게 검면으로 공격을 받아낸 체임버스 백작은 뒤로 두 걸음을 밀려났다.

채챙!

그러나 릴리아나의 공세는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체임버스 백작은 자신에게 그랜트가 당할 때보다 더 형편없이 밀려나고 말았다.

‘제대로 검을 뻗을 수가 없다!’

공방이 오갈 때마다 체임버스 백작은 두려움을 느껴야 했다.

상대는 자신의 검술을 정확하게 읽어내고 한발 앞서 대응하고 있었다.

덕분에 제대로 된 공격은커녕 막아내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반면 상대는 깔끔한 동작으로 공세를 이어나갔다.

이에 얼마 지나지 않아 체임버스 백작은 다시 검을 놓치고 말았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무기를 잃은 상황에 체임버스 백작은 기가 막혀 말도 나오지 않았다.

‘뭐 이런 괴물이 다 있지?’

차라리 상대가 힘으로 자신을 찍어 눌렀다면 이해라도 하련만.

신체 능력은 딱히 밀리지 않는데 기술에서 완패했다는 것에 체임버스 백작은 넋이 나가고 말았다.

상대가 자신과 비슷한 정도의 경험을 쌓은 몸이라면 또 모르겠지만 릴리아나의 나이는 기껏해야 절반이나 될까 싶을 정도로 젊었기 때문이다.

쐐액!

체임버스 백작이 무방비한 모습을 보이자 릴리아나는 망설임 없이 검을 휘둘렀다.

체임버스 백작은 죽기 직전 자신에게 휘둘러지는 검의 궤적을 보며 감탄했다.

“아름답군.”

일평생 검을 단련해 왔던 사람으로서 감탄할 수밖에 없는 일격이었다.

릴리아나는 그대로 체임버스 백작을 베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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