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VVIP 영주님의 품격-232화 (232/250)

VVIP 영주님의 품격 232화

VVIP 영주님의 품격 232화

232화

【 시대의 종막 】

“라이트닝 플레어!”

내가 날린 마법이 앞을 가로막던 로스니아 제국의 군대를 휩쓸었다.

처음에는 키스타 자작의 도움 덕분에 적들의 방해 없이 이동할 수 있었지만, 그것도 수도에 가까워지자 무용지물이었다.

이동할 수 있는 경로가 얼마 남지 않은 데다 군대의 움직임을 숨길 수도 없었다.

이에 로스니아 제국의 충신을 자처하는 귀족과 그들과 뜻을 함께하는 자들이 우리 앞을 계속해서 가로막았다.

그나마 정면에서 길을 틀어막고 버티는 쪽은 어렵지 않게 처리할 수 있었지만, 역으로 습격을 가해 오는 이들은 대처하는 게 쉽지 않았다.

지금도 그렇다.

교대로 잠을 자도록 했지만, 적들이 습격한 이상 결국 모두 기상할 수밖에 없는데 적들은 이를 노려 습격과 후퇴를 반복하고 있었다.

이는 내가 서부의 지원군을 상대하도록 했던 방법과 유사했다.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서부의 지원군은 별다른 대응을 하지 못했던 것과 달리 우리는 제대로 된 대응은 가능했다는 것이다.

“후우!”

하지만 거기에는 대가가 있었다.

바로 적극적으로 대응에 나섰던 내 체력과 마나가 크게 소모되었다는 것이다.

아군의 피해나 피로감을 줄이기 위해서는 적들이 습격할 때 빠르게 처치할 필요가 있었고 거기에 가장 적합한 게 나였다.

그러나 사람인 이상 나에게도 한계는 있었다.

강력한 마법사인 내 존재를 알아차린 적들이 병력을 더욱 잘게 쪼개어 공격을 개시한 것이다.

이에 그랜트가 기사단을 이끌고 내가 감당하지 못하는 곳을 막았으나 덕분에 기사단의 피로 역시 상당히 누적된 상태였다.

“예상은 했지만 만만치 않군요. 제대로 된 정규군도 아닌데.”

로스니아 제국의 저항이 거셀 거라고는 예상했지만 그걸 생각만 하는 것과 직접 부딪치는 건 그 느낌이 완전히 달랐다.

그랜트마저 시도 때도 없이 달려드는 이들에게 질린 얼굴이었다.

“병사들은 제대로 훈련받지 못했어도 지휘관은 제대로 된 놈이니까.”

어차피 병사들은 시키는 것만 잘 따라주고 도망만 안 쳐도 충분하다.

제대로 된 전략을 아는 지휘관 하나만 있으면 얼마든지 우리를 괴롭힐 수 있었다.

그리고 운 나쁘게도 이번에 우리가 상대하는 적에게는 그런 지휘관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절대적인 열세 탓에 이제는 한계겠지만.

“이대로라면 이기고 나서도 점령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길 겁니다.”

키스타 자작은 거센 저항을 보며 로스니아 제국을 제대로 점령할 수 있을지 의문을 표했다.

무력으로 제국을 점령한다고 해도 저항군이 나올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여기에는 나도 마땅한 대응책이 없었다.

그나마 타국은 왕가가 다 갈아엎어지기라도 했지 로스니아 제국은 그런 것도 아니니까.

아스카가 먼저 로스니아 제국을 공격해 준 게 천만다행이었다.

여기에 40만의 대군이 더 남아 있었다면 아무리 나라도 승리를 장담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어쩌면 네르바가 이기고 내가 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가능성의 이야기일 뿐, 역사에 만약이라는 가정은 없다.

‘이 전쟁은 우리가 이긴다.’

서부의 지원군을 막으려고 움직였던 마법사 협회와 측근들로부터 희소식이 전해졌다.

누적되는 피해를 버티지 못한 이들이 군대를 돌려서 다시 국경으로 철수했다고 한다.

잠깐 눈속임을 위해서 철수하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상관없었다.

이미 수도는 코앞이었고 나와 선봉은 주어진 역할을 거의 달성했으니까.

“감수하는 수밖에.”

“일단 최대한 황제 폐하를 존경할 수 있도록 해야겠지요.”

키스타 자작은 점령 이후의 안정에 대해서 말했다.

하지만 침략자에 대한 존경이라.

어려운 일이었다.

명성이든 젊은 나이든 무엇을 쓰더라도 그게 로스니아 제국이라는 자부심을 무너트릴 만한 수준은 되지 않을 테니까.

“그나마 우리도 제국인 건 다행이지.”

로스니아 제국의 자부심 혹은 자존심이라고 할 만한 건 그들이 최강국이란 사실이다.

다행히 난 그 자부심을 어느 정도 충족해 줄 만한 조건을 갖고 있었다.

우리 네패스 제국이 로스니아 제국과 비등한 영토를 가졌다는 것.

여기에 로스니아 제국이 흡수되면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한 규모의 국가가 나타나게 된다.

이는 로스니아 제국조차 이루어 내지 못했던 숙원에 다가섰다는 의미였다.

게다가 뛰어난 기사와 마법사들을 가진 로스니아 제국 못지않게, 아니, 그보다 더 뛰어난 기사와 마법사를 보유했다.

기존에 제국 최고가 대륙 최고와 동의어였다면 그건 네패스 제국에 흡수된다고 해도 바뀌지 않을 것이다.

뭐, 고작 이런 허영심으로 우리에게 넘어와 주지는 않겠지만 그나마 제국민이라는 자부심을 누를 만한 조건은 이런 것들뿐이었다.

‘고아나 가난한 이들을 구제하는 건 로스니아 제국에는 잘 통하지 않을 방식이고.’

어느 나라든지 약자는 존재하기 마련이지만 가장 긴 내전과 전쟁을 거듭해 온 로스니아 제국이었다.

인구가 많기에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이들도 많아 절대 가벼운 마음으로 구제할 수 없었다.

효율이 나오지 않는 것이다.

“황제 폐하!”

그때 후방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본대를 이끌고 움직이던 루시우스였다.

“왔군.”

본대의 합류를 본 나를 비롯한 선봉 부대 모두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피어올랐다.

우리를 습격해 오던 적들과의 지긋지긋한 싸움이 드디어 끝났다는 소리였으니.

“좀 더 빨리 합류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본대의 피로도와 사기는?”

“물론 만전입니다. 오늘 새벽까지도 충분한 휴식을 취했습니다. 모두 폐하께서 적들을 막아주신 덕분입니다.”

“그럼 수도에서의 전투는 맡겨도 되겠지?”

루시우스는 자신을 믿어달라는 듯 당당하게 소리쳤다.

“반드시 승리를 가져오겠습니다.”

그렇다고 진짜 루시우스에게 뒷일을 모두 맡길 생각은 없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믿음직한 모습을 보여주니 마음이 놓였다.

실제로 본대의 상태는 엉망이 되어버린 우리 선봉과 달리 팔팔한 듯했고.

“교대하지.”

본대의 합류를 확인하고 선봉 부대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자리를 바꾸듯 본대의 병력이 선봉 부대를 앞질렀고 뒤처진 선봉 부대에게는 휴식 시간이 주어졌다.

“눈치 보지 말고 모두 편히 쉬도록.”

이제 경계나 전투는 본대에서 담당하게 될 것이기에 나는 최소한의 경계도 남겨두지 않은 채 편안한 휴식을 취할 것을 명령했다.

이에 계속해서 시달려 왔던 선봉 부대의 병사들은 환하게 웃으며 꿈처럼 달콤한 휴식을 받아들였다.

정확히는 그냥 바닥에 드러누웠다.

혹시나 남들이 눈치를 보지 않도록 나 역시 솔선수범해서 바닥에 앉았고.

내가 그러니 귀족이나 기사들이라고 딱히 이를 지적할 리 없었다.

그들도 피곤하기는 마찬가지였으니.

“내일은 수도에 대한 전면 공세가 있을 예정이다. 선봉 부대는 예비대로 재편성될 것이다.”

겨우 하루를 쉬는 것으로 피로가 풀리지는 않을 것이기에 선봉 부대는 수도 공격 때는 예비대로 물러나게 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거기에 있어 나는 해당되지 않았다.

아무렴, 아무리 고생했어도 황제인 내가 전투에 얼굴을 보이지 않을 수는 없으니까.

처음으로 병사들이 부러워지는 순간이었다.

* * *

로스니아 제국의 수도에 내 군대가 도열하는 광경은 가히 장관이었다.

이를 바라보는 입장에서는 감탄보다는 두려움이 먼저 들겠지만.

국경 부근도 아니고 수도에 적이 들어온 시점에서 이는 역사에도 기록될 치욕이었다.

그 역사조차 사라지게 되는 게 아닐지 걱정해야 할 처지라는 표현이 더 알맞겠지만.

“휴식은 없어도 되나?”

수도의 앞에서 휴식을 취하는 사이에 서부 국경의 지원군을 상대하러 갔던 아인츠발트가 귀환했다.

“저와 기사들은 끄떡없습니다. 다만 마법사들은 부담이 컸던 모양입니다.”

아인츠발트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마법사들은 순간 이동 마법진까지 사용해서 복귀해야 했으니까.

가뜩이나 연로한 원로들에게 이는 상당히 가혹한 일이었을 것이다.

“쉬어야지. 뭐, 남은 마법사들이 있으니까 괜찮을 거야.”

나 또한 상당히 지친 상태이기에 마법사 전력이 크게 약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럴 때를 대비해서 자크론과 티아라를 아직까지 쓰지 않은 것이다.

“부탁드립니다.”

내 요청에 자크론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까지 끌고 와놓고 설마 나설 일이 없는 건 아닌지 걱정했잖느냐.”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사실 가급적이면 자크론을 내보낼 생각은 없었다.

예비대가 괜히 존재하는 게 아니니까.

어느 정도 전력에 여유를 남겨두지 않으면 여차할 때 낭패를 당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른 변수가 없으니 자크론에게 맡길 만했다.

“지시한 건 알아보았나?”

자크론이 전장으로 향하고 뒤를 돌아보니 다니엘이 다가와 있었다.

선봉 부대가 어느 정도 수도에 가까워졌을 때 다니엘과 암살자 출신 기사들은 잠입 임무를 받고 수도로 향했다.

경계가 까다롭기는 했지만 워낙 넓은 곳이기에 파고들 틈은 있었다.

어차피 해야 할 임무도 간단한 것이었고.

“아드리안 황태자가 수도에 있는 병력을 이끌고 있다고 합니다.”

적의 사령관이 누구인가?

어디서든지 쉽게 얻어들을 수 있는 정보였고 다니엘은 이 정도 임무는 어렵잖게 수행했다.

역시나 상대는 네르바였다.

“적들의 규모는?”

“급하게 끌어모은 이들까지 합쳐도 6만이 조금 안 될 겁니다. 그리고 북부의 지원군은 아직 하루 정도의 거리가 있습니다.”

다행히 네르바는 많은 병력을 모으지 못한 상태였다.

정확히는 그럴 만한 여유가 없었겠지만.

설령 순간 이동 마법진으로 한 번에 수도로 이동했다고 해봐야 불과 몇 주도 안 되는 시간이다.

그사이에 가망 없는 전쟁에 목숨을 바칠 이들을 모아봐야 얼마나 모이겠는가?

네르바를 도울 세력 역시 없어진 상황인데.

‘오히려 그런 와중에 잘도 6만이나 모았군.’

치안 유지를 위해 수도에 남아 있었을 병력을 고려해도 절대 적다고는 할 수 없다.

게다가 퇴각해 버린 서부의 지원군과 달리 북부의 지원군이 아직 남아 있기도 했고.

‘느긋하게 외곽을 점령하고 들어왔으면 두 배 이상은 늘었겠지.’

서둘러서 온 게 다행이었다.

저기에 국경의 병력과 추가 합류까지 고려하면 수도를 미는 게 쉽지 않았을 것이다.

‘마음 같아서는 네르바의 정체를 폭로라도 하고 싶은데.’

지금 수도에 모인 병력은 아드리안 황태자라는 마지막 희망을 믿고 있을 것이다.

그가 진짜가 아닌 가짜라는 걸 증명할 수 있다면 그들에게 심대한 타격을 줄 수 있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아무리 나라도 그건 불가능했다.

로스니아 황실이나 피레타 공작가는 바보가 아니었고 네르바의 정체를 증명할 만한 증거는 전혀 남기지 않았으니까.

어쩌면 이쪽에서 찾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으나 지금은 의혹을 제기하는 것조차 어려웠다.

살아생전의 아드리안 황태자에 대해서 알고 있던 귀족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마저 아주 예전에 만남을 갖고 지금은 은퇴한 연로한 귀족들뿐일 테니 그들의 증언은 신빙성을 갖기 어려웠다.

“결국 마지막까지 황태자로 기록되겠군.”

네르바의 정체를 밝혀낼 방법이 없었다.

그러니 역사에 네르바는 정말 아드리안 황태자로서 기록될 것이다.

* * *

“결국 왔군.”

네르바는 제국의 수도를 둘러싸고 있는 적들을 보며 눈을 빛냈다.

가능하면 이곳에 도착하기 전 어느 정도 유의미한 타격을 주고 싶었으나 결과는 실패였다.

네패스 제국군의 기세는 여전히 강렬했고 이쪽은 서부의 지원군을 잃었다.

‘리처드 백작.’

리처드 백작이 자결하고 지원군이 철수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네르바는 그가 어떤 심정으로 그런 선택을 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상대에게 처절하게 농락당하며 무의미하게 병력을 잃고, 그들에게 원망을 받으며 내몰린 처지.

게다가 사기가 떨어질 대로 떨어진 병력이라 자칫 네패스 제국에 대한 두려움을 퍼트릴 위험성도 있었다.

리처드 백작은 이를 고려하여 지원을 포기하였고 자신은 명령을 수행하지 못한 책임을 지기 위하여 자결했다.

‘내 실수였다. 설마 다른 지역에 있는 지원군을 노릴 줄은 몰랐으니.’

네르바는 리처드 백작을 죽음으로 내몬 원인이 전적으로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아무리 적들이 집요하게 괴롭혔다고 한들 부대의 사기가 떨어진 결정적인 이유는 국경을 비우게 만든 자신의 명령 때문이었다.

그것만 아니었다면 리처드 백작이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너도 실수를 저지르기는 마찬가지다.’

현재 수도에는 북부의 지원군이 언제 도착할지를 놓고 많은 이야기가 오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 의견은 대부분 하나로 통일되어 있었다.

앞으로 적어도 하루는 더 있어야 도착할 것이라고.

네르바는 아인이 이 틈을 놓칠 리가 없다는 걸 알았다.

그들이 오기 전에 먼저 수도를 공격하든 서부 지원군을 상대로 그러했던 것처럼 이번에도 지원군을 먼저 노리든.

분명 둘 중 하나의 선택을 취할 것이다.

하지만 소문과 달리 북부의 지원군은 이미 수도에 도착한 상태였다.

다만 수도에 들어오지는 않고 모습을 숨겼지만.

‘수도와 하루 떨어진 곳에 있는 건 눈속임을 위한 떨거지 부대일 뿐이다. 멋모르고 전면 공격을 시작한다면 그땐 후방을 당하게 될 것이다.’

제국군을 노려보고 있던 그때였다.

뿌우우우.

팽팽한 긴장감을 갖고 서로를 노려보던 상황에 전쟁의 시작을 알리는 나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네패스 제국군의 공격이 시작된 것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