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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VIP 영주님의 품격-231화 (231/250)

VVIP 영주님의 품격 231화

VVIP 영주님의 품격 231화

231화

* * *

남부에서 북상하고 있던 우리가 북부에서 남하하는 병력을 막는 건 불가능했다.

아무리 마법사 협회의 원로들이 순간 이동 마법진을 준비하더라도 그만한 거리를 단숨에 뛰어넘을 순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설령 그게 가능하다고 해도 넘어갈 수 있는 병력에는 한계가 있었고.

그건 비교적 거리가 가까운 서부 국경의 지원군을 막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우리 본대에는 그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 만한 실력자가 한 명 있었다.

아인츠발트.

단신의 무력으로도 군대의 발목을 붙잡을 수 있는 실력자.

그런 아인츠발트에 탈론과 릴리아나 등 최정예 기사만 소수 빼내어 보내는 건 마법사 협회의 힘으로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정말 그게 가능합니까?”

그러나 이런 내 행동에 대해 키스타 자작은 믿을 수 없다는 의혹을 보였다.

순간 이동 마법진을 통해 서부의 지원군을 요격하러 떠난 이들의 숫자가 고작해야 수십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이는 상식적으로 군대의 발목을 붙잡을 만한 전력이 아니었다.

물론 키스타 자작도 아인츠발트를 비롯한 내 측근들의 실력은 알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게 가능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듯했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렇다.

아인츠발트의 무력은 초인적이지만 그렇다고 아스카처럼 혼자 로스니아 제국을 무너트릴 수준은 아니다.

이는 아인츠발트가 아스카보다 약해서만이 아니라 마법사가 아닌 검사이기 때문이다.

“가능하다.”

하지만 이번에 투입되는 건 아인츠발트 혼자가 아닐뿐더러 적을 정면으로 막아내라는 것도 아니다.

그저 시간을 지연시키기만 하면 되는 일.

아인츠발트나 릴리아나 등 전투형 영웅들의 활약은 제한되고 대부분의 공격은 협회의 원로들이 담당할 것이다.

“마법만 쏘고 달아나면 그만이니까.”

마법사는 전장에 고립되면 달아날 능력이 없다.

그렇지만 고티어의 전투형 영웅들이 마법사를 데리고 이동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유리 대포가 기병과 같은 기동력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목표물은 거대한 군대인 것에 반해 아군은 고작해야 소수의 별동대.

한번 쏘고 달아나기만 하는 건 어렵지 않다.

만약에 달아나지 못하고 붙잡힐 상황이 온다면 그때서야 아인츠발트가 나설 것이고.

“그리고 이건 꽤 효과적인 전술이 될 거야.”

국경 부대의 사기는 절대 높을 수 없었다.

그들이 국경을 비운 것으로 인해서 국경 너머에 있는 이들이 어떤 행동을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로스니아 제국이 예전처럼 건재했다면 국경이 열려도 눈치를 봤을지 모르나 지금 로스니아 제국의 상황은 그렇게 좋지 못했다.

탐욕스러운 이들은 절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을 것이다.

“자기가 지켜야 할 것들을 버리고 수도로 올라오는 이들의 사기가 높을 순 없으니.”

당장 크레시안 왕국 시절만 해도 지역에 따라서 서로를 깔보거나 무시하는 일이 있었다.

하물며 그와 비교할 수 없이 거대한 영토를 가진 로스니아 제국에 지역감정이 없을까?

평생 본 적도 없을 제국의 수도나 황태자를 위해서 가족들을 버리라는 명령을 받은 군대는 충성심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그런 와중에 적들이 마법으로 공격을 날리고 달아나는 걸 반복한다면?

아무리 지휘관이 애써봐야 희생되는 이들의 불만을 달래는 건 불가능하다.

이변이 없다면 서부의 지원군은 수도에 도착하기도 어려울뿐더러, 수도에 도착해도 오히려 폭탄이 되어버리고 말 것이다.

* * *

리처드 백작은 서부 국경의 책임자였다.

본래라면 죽고 나서도 그 자리에 뼈를 묻어야 했을 그는 남부 국경이 뚫렸다는 소식에 다급하게 수도로 이동을 명령했다.

당연히 그의 명령에 반발하는 의견도 있었다.

국경을 지켜내는 것이 그들의 역할.

카시안 공작과 아드리안 황태자의 내전에서도 그들은 중립을 지킨 채 침묵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국경을 비우라는 건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명령이었다.

비록 그것이 황태자의 뜻이라고 할지라도.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리처드 백작 역시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의 가문도, 그의 식구들도 다 서부에 있었으니까.

그런 와중에 갑자기 국경을 비우게 된다면 자칫 외적이 침입할 수도 있었다.

현재 서부에 국경을 맞대고 있는 건 다름 아닌 네패스 제국.

그들은 남부를 통해서 침략해 왔지만 서부의 국경도 맞닿은 상태였다.

자신들이 자리를 비운 틈을 타 침공해 올지도 모른다.

‘수도가 넘어가면 그때 이 제국은 끝이야!’

그러나 리처드 백작은 로스니아 제국의 존속을 위하여 자신의 임무와 지켜야 할 것들을 포기했다.

이대로 네패스 제국의 손에 수도가 함락된다면 그때 자신들은 아무런 싸움도 못 한 채 해산당하거나 적들에게 흡수될 운명이란 걸 알았기 때문이다.

‘나라를 지키는 군대가 싸움 한 번 하지 않고 패배를 받아들일 순 없다!’

리처드 백작은 그래도 아랫사람들의 반발을 최대한 억누르기 위해 최소한의 병력은 국경에 남겨두었다.

그들의 역할은 적의 침입을 막는 게 아니라 주민들의 대피를 지원하는 것이었다.

적어도 국경 지역에서 벗어나기만 한다면 어딘가에 숨거나 할 수는 있을 테니까.

그렇게 병사들의 마음을 달래며 수도로 급속 행군을 이어가던 리처드 백작은 생각지도 못한 습격을 맞이해야 했다.

“어어?”

적들의 습격을 가장 먼저 알아차린 건 마법사들이었다.

그들은 심상치 않은 마나의 흐름을 감지하고는 당황하며 리처드 백작을 찾았다.

“백작 각하! 뭔가 이상합니다!”

“갑자기 무슨 소리냐?”

급속 행군으로 정신이 없던 리처드 백작은 마법사들의 돌발적인 행동을 제대로 받아주지 못했다.

그리고 이는 뼈아픈 대가로 돌아왔다.

콰콰콰쾅!

갑자기 날아든 거대한 화염의 폭풍에 선두에서 움직이던 기사들이 휩쓸린 것이다.

로스니아 제국군답게 좋은 장비로 무장한 이들이었지만 상대의 화력 역시 만만치 않았다.

눈 깜짝할 사이에 수십의 기사들이 잿더미가 되어버렸다.

“네패스 제국의 마법사 협회입니다.”

제국의 마법사들은 침착하게 상대의 정체를 간파해 냈다.

직접 대면한 적은 없으나 이만한 힘을 발휘할 마법사의 집단이라고는 그들뿐이었기에 금세 알 수 있었다.

“마법사 협회라고? 네패스 제국군이 이곳에 있단 말이냐?”

그러나 리처드 백작은 상대의 정체를 알아내고 오히려 혼란을 느꼈다.

남부에서 북상하고 있어야 할 적들이 느닷없이 서부에서 나타나 자신들을 습격한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도 한 번의 습격 이후 추가적인 공격이 없는 건 다행이었다.

리처드 백작은 서둘러 피해를 수습할 것을 지시한 뒤 자신들이 공격받은 사실에 대해 보고를 올렸다.

그리고 다시 이동을 개시했다.

“또 습격입니다!”

마법사 협회의 습격은 매우 용의주도했다.

그들은 무리해서 공격을 퍼붓지 않고 한 번의 공격만 날리고는 재빠르게 도주했다.

덕분에 아군 마법사들은 제대로 된 대응을 할 수 없었다.

아군의 덩치가 워낙 컸기 때문에 모든 곳을 지키는 게 불가능했던 것이다.

하지만 리처드 백작 역시 첫 습격에서 그 사실을 간파한 상태였다.

그는 마법사들로 상대 마법사에 대항하는 게 불가능하단 걸 알았기에 대신 적들의 위치를 빠르게 파악하게 한 뒤 추격대를 보냈다.

추격대의 구성은 속도를 위해 무장을 간소화시킨 기병 부대로 이루어졌다.

리처드 백작은 자신이 보낸 추격대에 의해서 적들이 금방 붙잡힐 것이라 여겼다.

상대를 얕보는 건 아니지만 그 숫자는 추정하기로 고작해야 수십.

반면에 자신이 보낸 추격대의 수는 그 열 배가 넘었다.

게다가 마법사들의 기마술이 좋을 리 없으니 그들은 기사들과 함께 이동하고 있을 터.

그런 이들이 걷는 것보다 말 타는 게 편할 정도로 잘 훈련된 기병 부대를 따돌릴 수 있을 리 없었다.

이런 리처드 백작의 추측은 실제로도 그대로 적중했다.

추격대는 어렵지 않게 달아나는 네패스 제국의 습격자들을 따라잡는 데 성공했다.

문제는 그다음 일어났다.

습격자들을 잡아야 할 추격대가 도리어 학살당하기 시작한 것이다.

마법사 협회의 저항도 거셌지만, 무엇보다 위협적인 건 그들을 지키고 있는 기사들의 실력이었다.

제국 최강의 기사로 이름 높던 카시안 공작을 떠올리게 하는 실력자가 하나도 아닌 여럿.

그리고 그런 카시안 공작조차 넘볼 수 없을 압도적인 강자까지 끼어 있었다.

‘저게 그 아인츠발트 공작이란 말인가!’

멀리서 자신의 기병 부대가 학살당하는 광경을 지켜보던 리처드 백작은 공포에 몸을 떨었다.

도무지 인간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무력이었다.

휘둘러진 칼날은 궤적 안에 있는 것은 무엇이든 잘라냈으며 심지어 닿지 않는 거리에 있던 자들마저 베어버렸다.

마법보다도 더 마법 같은 기예 앞에 평범한 기사들은 짚더미와 다를 게 없었다.

그렇다고 아인츠발트만 강한 것도 아니다.

아인츠발트의 존재를 알아차린 후 측면으로 돌아 마법사를 노리던 이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멀리서 날아드는 화살이나 앞을 막은 엄청난 실력의 여기사에게 죽어 나갔다.

그렇게 추격대가 크나큰 피해를 당한 뒤 리처드 백작은 자신이 심각한 위기에 봉착했음을 깨달았다.

‘습격자들을 잡을 능력이 없다!’

아군 부대의 덩치가 커서 소수의 습격자들을 막아내는 건 애초에 불가능했다.

마법사들이 기습을 감지하더라도 한둘로는 대응이 안 되고 거의 모든 마법사를 모아야 했으니.

그런 상황에서 어느 방향에서 공격해 올지 모르는 적들을 대비할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래서 어느 정도 희생을 감수하고 놈들을 쫓을 추격대를 준비한 것이다.

하지만 무력에서 압도당했다.

수도에 도착하기까지 아직 제법 시일이 남아 있으니 그때까지 적의 집요한 습격을 피할 길이 없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적들은 반나절에서 한나절 정도마다 한 번씩 나타나 마법을 날리고 도망치기를 반복했다.

리처드 백작은 매복을 해보고, 병력을 나눠보고, 아예 무시하고 진격해 보기도 하면서 어떻게든 피해를 줄이려 노력했다.

그러나 모든 행동이 헛수고였다.

적들은 요리조리 달아나며 절대 틈을 내주지 않았고 그런 주제에 부지런하게 습격을 가해 아군의 피해를 누적시켰다.

하지만 인명 손실보다 더 큰 피해는 사기 저하였다.

수도에 도착하기도 전에 리처드 백작이 이끄는 부대의 사기는 바닥까지 떨어지고 말았다.

낮이든, 저녁이든, 새벽이든 적들이 시간의 구분 없이 나타나 아군을 괴롭혔기 때문이다.

그러자 언제 갑자기 날아오는 마법에 당할지 모른다는 공포가 병사들에게 심어졌다.

게다가 국경에 남겨두고 온 가족들에 대한 걱정 역시 더해져 탈영병이 속출하기 시작했다.

“죽여라!”

리처드 백작은 이런 탈영병들에 대해 단호한 처분을 명령했다.

이렇게라도 해야만 수도에 도착하기 전에 부대가 와해 되는 걸 막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탈영병을 처형하려는 그 순간에 다시 적들의 습격이 시작되었다.

“습격이다!”

“사, 사람 살려!”

아군이 혼란에 빠진 걸 알았는지 이번에는 이전보다 좀 더 강한 공격이 날아왔다.

물론 그 뒤에 달아나는 건 변함없었고 리처드 백작의 부대는 처참한 꼴로 도망치는 적들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봐라! 달아나지 않으면 모두 개죽음을 당할 거야!”

“적들에게 아무것도 못 하면서 저희에게 대체 어쩌란 말입니까?”

“당신은 마법사들이 지켜주겠지만 우린 아니라고!”

탈영병들은 그 혼란 속에 리처드 백작을 저주하기 시작했다.

리처드 백작은 차마 그 말을 부정할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의 병력이 지켜보는 가운데 표정 관리에 실패하고 말았다.

‘이대로라면 수도에 도착할 때는 병력이 절반으로 줄어들 것이다. 아니, 어쩌면 그조차 남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날 리처드 백작은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열심히 훈련시킨 병력들이 아무런 보람도 없이 죽어 나가고, 그들이 자신을 무능하다며 저주하는 끔찍한 현실.

거기에는 명예도 없고, 충성도 없었다.

‘다 내가 부족한 탓이다.’

그렇게 얼마쯤 지났을 무렵.

당연히 그날 밤에도 적들의 습격은 어김없이 이어졌다.

“피, 피해라!”

“으아악!”

리처드 백작은 바깥에서의 소란을 들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몇 개의 막사가 활활 타오르며 어둠을 밝히고 있었다.

불을 끄기 위해서 달리는 병사들의 얼굴에는 두려움과 함께 숨길 수 없는 피로감이 엿보였다.

싸워보지도 않은 채 이미 짙은 패배감이 새겨진 패잔병의 모습이었다.

‘어차피 이대로 수도로 간다고 한들 우리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겠지. 오히려 적군에 대한 두려움을 퍼트리며 아군의 사기를 깎아버릴 것이다.’

리처드 백작은 자신들이 수도로 가더라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모든 게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그는 펜에 잉크를 묻힌 뒤 양피지에 글을 적기 시작했다.

그건 부관을 비롯해 자신을 따라온 지휘관들에게 전하는 마지막 명령이었다.

[수도로 가봤자 우리는 짐밖에 되지 않는다. 모두 국경으로 회군하라.]

무의미한 희생을 줄이기 위하여 회군하라는 명령을 남긴 뒤 리처드 백작은 자신의 검을 빼 들었다.

제국의 국경을 담당하게 되었을 때 선대 황제가 직접 하사했던 보검이었다.

리처드 백작은 이 보검에 자신의 의무를 다할 것이라 맹세했던 젊은 날을 떠올렸다.

‘크흑!’

상념이 이어질수록 괴로움은 커졌다.

적에게 농락당하여 검 한 번 맞대지 못한 채 무너져 버린 자신도, 그런 자신을 믿고 따라왔던 이들의 기대를 배신한 것도.

리처드 백작은 한참을 울다가 고통을 끝내길 선택했다.

“죄송합니다, 황제 폐하. 죄송합니다, 황태자 전하. 명령을 지키지 못한 절 용서하지 마십시오.”

죽은 선대 황제와 아드리안 황태자에게 보내는 사죄를 마지막으로 리처드 백작의 검이 움직였다.

다음 날 새벽 리처드 백작의 유언을 확인한 지휘관들은 서둘러 병력을 철수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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