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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VIP 영주님의 품격-228화 (228/250)

VVIP 영주님의 품격 228화

VVIP 영주님의 품격 228화

228화

* * *

흥미로운 정보를 얻기는 했으나 어디까지나 작은 조각에 불과했다.

좀 더 자세한 정보를 얻으려면 사로잡은 이들을 고문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잘 나아가고 있던 군대를 모두 멈출 수는 없는 일.

일단 생포한 이들은 포로로 붙잡아 두고 진격을 재개했다.

“적들의 숫자는 얼마나 되었지?”

“불과 수천이었습니다. 그리고 대체로 실력도 변변찮았습니다.”

아인츠발트는 적들과 맞섰던 지휘관으로서 대략적인 정보를 알려주었다.

그야말로 무모하다고밖에는 생각되지 않는, 이해 가지 않는 행동.

로스니아 제국군의 주력 부대와 만나면 이 의문이 풀릴지 궁금해졌다.

* * *

“항복하겠습니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그 의문은 실제로 쉽게 풀렸다.

로스니아 제국의 국경에 도착했을 때 그곳에 백기가 걸려있었기 때문이다.

“이게 무슨?”

당연히 격렬한 저항을 예상하고 있던 아군은 당황했다.

한 번의 매복이 있었기에 이미 격전은 예정된 것과 마찬가지였으니까.

그래서 공을 세우고 싶어 안달 난 이들은 아인츠발트와 함께 선봉에 세워달라고 요청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갑자기 항복이라니?

기껏 전의를 다지던 상황에서 기운 빠지는 일이었다.

“정말 항복할 생각인가?”

“이기지 못할 싸움으로 죄 없는 이들을 희생시킬 수는 없지요.”

혹시나 해서 재차 확인했으나 상대의 지휘관인 피레타 공작의 말은 달라지지 않았다.

무조건 항복.

매복으로 기습을 가해 왔던 이들을 생각하면 앞뒤가 맞지 않는 행동이었다.

“이해가 되지 않는군. 매복으로 기습을 할 때는 언제고.”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알겠습니다. 하지만 거기에는 오해가 있습니다.”

“오해라고?”

“그들은 제 뜻에 따르지 않고 멋대로 움직인 자들입니다.”

피레타 공작은 항복하는 귀족들과 우리를 기습했던 귀족들을 명확하게 구분 지었다.

같은 제국의 귀족인데도 매정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그런 말을 우리가 납득할 거라고 생각하나?”

“부디 노여움을 풀어주십시오. 대신이라고 하기는 뭐하지만 먼 길을 오느라 고생하셨을 분들을 위해 작은 주연을 준비했습니다.”

피레타 공작의 제안에 주변의 귀족들이 나를 돌아봤다.

이대로 공격을 개시할지 아니면 항복을 받아들일지 그 결정권이 나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좋아. 대신 대접이 형편없다면 각오해야 할 것이다.”

슬슬 피레타 공작의 노림수가 무엇일지 감이 왔지만 난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이를 받아들였다.

“감사합니다! 부족함 없이 모시겠습니다.”

피레타 공작은 내 말에 뛸 듯이 기뻐하며 서둘러 국경의 문을 열었다.

“무언가 수상하지 않습니까?”

탈론은 피레타 공작의 행동을 의심스럽게 느꼈는지 조심스레 나에게 주의를 주었다.

“당연히 수상하지.”

“그런데 왜?”

“적 본진에 들어갈 기회를 놓칠 수는 없지.”

상대가 뭘 준비했는지는 몰라도 이런 좋은 기회를 스스로 포기할 수는 없었다.

들어가자마자 기습을 해 오는 것만 조심한다면 얼마든지 역이용할 만한 상황이었으니.

“그리고 이렇게 제 발로 들어가 줘야 숨겨진 전력도 나올 거고.”

로스니아 제국처럼 역사가 깊은 나라를 상대할 때 조심해야 할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전력이었다.

의용병이 갑자기 튀어나올 수도 있고, 알려지지 않은 비밀 부대 같은 게 있을 수도 있다.

특히 피레타 공작가라는 이름은 그런 부분을 의심하기에 충분했다.

‘아무리 정치에 관심이 없다고 해도 그렇지 가문이 공작가라 불리기에도 민망해졌다. 개국공신이라고 하지만 강등을 시켜도 이상하지 않아.’

한번 내렸던 작위를 회수하는 경우가 흔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아주 없는 것도 아니다.

피레타 공작가는 개국공신이라는 것을 빼면 공작가로서의 자리를 지키기에는 많이 부족했다.

게다가 뻔히 매복을 준비해 놓고 자신은 그런 적 없다며 발뺌하는 태도 역시 수상쩍었고.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네패스 황제 폐하.”

완전히 벽을 넘자 조금 전 대화를 나눴던 피레타 공작이 다가와 먼저 머리를 숙였다.

“조국을 짓밟으러 온 적에게 영광이라.”

“힘이 없으니까요. 부족한 것은 받아들여야지요. 그저 폐하의 자비만 바라고 있습니다.”

마음에도 없을 소리였다.

“안으로 들어가서 말하지.”

“이런. 귀하신 분을 세워두고 실례를 저질렀습니다. 이쪽입니다.”

피레타 공작은 직접 나서서 나를 안내했다.

난 호위를 위하여 아인츠발트와 몇몇 기사들을 동행시켰다.

“기사들도 함께 들어오는 겁니까?”

“문제가 되나?”

“그럴 리가요. 기사들의 몫까지 준비하겠습니다.”

피레타 공작이 안내한 장소에는 그야말로 호화로운 만찬이 준비되어 있었다.

여기가 무슨 황궁도 아니고 국경에서 이렇게 준비한 건 상당히 놀라운 일이었다.

적어도 제대로 대접하려고 노력했다는 티는 났다는 말이다.

‘더 수상하게 말이지.’

뭐가 좋다고 침략자의 비위를 이렇게 맞춰줄까?

하지만 내색하지는 않았다.

무엇을 노리고 있더라도 곧 본색을 드러낼 테니.

“제가 먼저 따라드리겠습니다.”

내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피레타 공작은 조심스럽게 잔에 술을 따랐다.

“저희 피레타 공작가에서 직접 만든 술입니다.”

“그렇군.”

난 처음으로 받은 술잔을 뒤따라온 기사에게 넘겼다.

그에 기사는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술잔을 받아 내용물을 삼켰다.

“당연히 독은 없습니다.”

피레타 공작은 이런 내 행동이 술에 독이 들었는지를 의심하는 것으로 여긴 모양이었다.

“그걸 어떻게 믿겠나?”

“그럼 저도 한 잔 마시겠습니다.”

피레타 공작은 직접 술을 따라 마시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이후에도 내가 술에 손을 대는 일은 없었다.

의심스러워서 그렇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그보다 더 좋은 대처법이 있었다.

“나에 대해서 뭘 모르는 모양이군.”

“무슨 말씀이신지?”

“술을 좋아하지 않아서 말이야.”

피레타 공작의 표정이 대번에 굳어졌다.

실제로 나는 이 세계에서 술을 마신 일이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그마저 당연히 취할 정도로 마시지는 않았고.

딱히 술을 싫어해서가 아니라 위니스에게 호되게 당한 기억 때문이었지만.

“제가 실수를 했군요. 그렇다면 다른 마실 것을 준비하겠습니다.”

한쪽에 준비된 명주들이 아무 쓸모도 없는 신세로 전락하자 피레타 공작은 다급하게 음료를 바꾸었다.

그러는 동안 난 가장 먼저 술을 받아 마셨던 기사의 안색을 살폈다.

“끄으응.”

기사의 안색은 좋지 않았다.

독에 당했다는 말이 아니다.

그는 체질적으로 술을 잘 마시지 못하는 기사였다.

대접한다고 했을 때부터 미리 준비시켜 뒀는데 트집 잡기에 딱 좋았기 때문이다.

“내 기사의 몸 상태가 좋지 않군. 술에 이상한 게 있었던 건 아닌가?”

피레타 공작이 직접 보기에도 기사의 상태는 영 좋지 않을 것이다.

체질적인 문제라는 건 짐작도 못 하겠지만.

“아, 아닙니다! 같이 술을 마셨던 저는 멀쩡하지 않습니까?”

“미리 해독제를 섭취했을 수도 있지.”

“그렇지 않습니다!”

항변하는 피레타 공작을 뒤로한 채 아인츠발트에게 신호를 보냈다.

실제로 내가 마실 술에는 아무것도 없을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아니더라도 다른 지휘관이나 귀족들 혹은 병사들에게 내주는 음식에 뭔가를 탔을 가능성은 높다.

그러나 숫자가 숫자인 만큼 모두를 한 번에 중독시키는 건 불가능할 터.

게다가 순서상 술상은 내가 가장 먼저 받는 게 당연했다.

그러니 아직까지 다른 병력은 이상한 짓을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로스니아 제국 놈들이 술에 독을 탔다!”

그런 상황에서 아인츠발트의 목소리가 퍼진다면 이후 상황은 어떻게 될까?

피레타 공작이 독을 썼든 쓰지 않았든 무언가 노림수가 있다면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할 터.

하지만 이렇게 먼저 선수를 쳐버리면 그게 무엇이든 제대로 준비하지 못할 것이다.

스르르릉!

아인츠발트의 외침이 울리기 무섭게 바깥에서 병장기 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쳐라!”

“으아악!”

뒤이어 들리는 처절한 비명 소리.

피레타 공작은 멍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왜 그러지?”

“저, 저희는 정말 아무 짓도…….”

“그랬을 수도 있지.”

술에 독을 타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냥 단순히 취하게 만들려는 목적이었을 수도 있고 나를 이 자리에 붙잡아 두는 게 목적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지 내가 거기에 어울려 줄 필요는 없다.

“그런데 그게 중요한가?”

“처음부터 항복을 받아들일 생각이 없었구나!”

피레타 공작은 뒤늦게 내가 왜 이런 행동을 했는지를 깨달았다.

애초에 그가 무엇을 준비했든 간에 내가 받아들일 생각이 없었다는 걸.

“당연하지. 상대가 뭘 준비했는지 모르는데 내가 위험을 감수해야 할 필요가 있나? 그것도 그 로스니아 제국인데?”

괜히 역대급으로 만든 군대를 이끌고 온 게 아니다.

아무리 큰 피해를 입었다고 해도 로스니아 제국의 명성은 낮지 않으니까.

게다가 제국민들 특유의 오만함도 염두에 둬야 한다.

조금이나마 봐주거나 틈을 보이면 다른 국가들과 달리 어떻게든 나를 물어뜯으려고 할 것이다.

“이노오옴!”

피레타 공작이 분노하며 소매에서 단검을 빼 들었다.

영웅 정보로 본 그는 2티어의 전투형 영웅이었다.

촤악!

그렇기에 그의 검이 나에게 닿는 일은 없었다.

피레타 공작이 채 팔을 뻗기도 전에 아인츠발트의 칼날이 그를 베었으니까.

“덕분에 쉽게 이기겠군.”

공성전도 마법을 사용하면 얼마든지 가능하지만 이렇게 무혈입성한 상황 역시 나쁘지 않았다.

절대적인 병력의 우위가 있으니까.

“정말 아무것도 안 했을 수 있지 않습니까?”

돌아가는 상황을 살피던 아인츠발트가 의문을 표했다.

희생을 최대한 줄이기로 한 내가 과도한 살생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떳떳했다.

“거짓말을 하더군. 매복한 병력은 분명 피레타 공작가의 기사들이었는데.”

“그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타르타로스. 보이거든.”

자세한 설명까지는 필요 없었다.

아인츠발트는 타르타로스에 대해서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인물이니까.

이 정도만으로도 납득시키기에는 충분했다.

아직 포로도 남아있고.

“상대가 어느 세력에 속했는지 보는 것만으로 알 수 있다는 말씀입니까?”

“좋은 능력이지. 덕분에 첩자 가리는 일이 쉬우니까.”

내가 첩자로 고생하지 않고 별도로 뒤통수를 맞지 않는 게 다 이 덕분이었다.

“대체 타르타로스에서는 무엇을 위해서…….”

아인츠발트는 조금 혼란스러운 눈으로 나를 보았다.

그가 생각하기에도 타르타로스가 나에게 해주는 것이 과해 보였나 보다.

실제로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처음에는 위니스가 나에게 엿을 먹였다고 생각하지만 지금 와서 보면 위니스는 나에게 호의를 베푼 것이었다.

하지만 내가 그렇듯이 위니스의 호의에도 분명 대가가 있을 것이다.

“그건 진짜 군주가 되어보면 알 수 있겠지.”

* * *

‘이게 무슨 상황이지?’

네르바는 불길이 올라오는 국경의 모습을 보며 어안이 벙벙해졌다.

네르바는 일정 병력을 데리고 인근에서 멀리 떨어진 장소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상대의 경계가 풀릴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기습을 가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막상 자신이 움직이기도 전에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다고?’

피레타 공작이 네패스 제국의 군대를 받아들이고 불과 한 시간이 지나기도 전이었다.

무언가 일을 진행하기에는 한참 이른 시간이었다.

“황태자 전하.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당황하는 네르바의 뒤로 불안에 떠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피레타 공작가의 정예기사들은 이미 결말을 짐작하고 있었다.

작전은 실패했다.

그것도 압도적인 피해와 함께.

로스니아 제국이 자랑하는 성벽이 적을 막지도 못한 채 무혈입성시켰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그야 피레타 공작을 구하러…….”

네르바는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저곳에 있는 병력의 숫자도 몇만이 되지 않으나 네르바가 데리고 있는 병력은 더욱 적었다.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던 피레타 공작가의 정예들로 모두 실력은 있지만, 전황을 뒤집을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피레타 공작만 빼내 오는 것도 불가능했다.

당연하지만 피레타 공작은 아인과 함께 가장 깊은 곳에 있을 테니까.

“대체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이냐?”

네르바는 어떤 지시도 내릴 수 없었다.

피레타 공작을 버리라는 명령도, 불가능한 일을 해내라는 명령도.

그런 네르바의 마음을 이해한 기사는 스스로 그 부담을 떠안았다.

“남은 병력이라도 온존하기 위해서 퇴각하겠습니다.”

기사의 심정을 이해한 네르바는 이를 악물었다.

피레타 공작은 아직 아무 짓도 하지 않았을 테니 정황상 네패스 제국이 먼저 공격했다고 봐야 했다.

항복하겠다고 한 이들에게 칼날을 휘두른 것이다.

‘아인 네패스!’

네르바는 입술을 짓씹었다.

비릿한 피 맛이 느껴졌으나 네르바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 * *

“매복이었겠군.”

국경을 완전히 점령할 때까지 딱히 눈에 띄는 적의 전력은 나타나지 않았다.

하다못해 내부에 숨어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전혀 발견되지 않은 걸로 봐선 그것도 아니었다.

“아마 외부에 매복했을 겁니다.”

아인츠발트도 내 의심에 신빙성을 더해줬다.

혹시 밀실 같은 곳에 숨어있었더라면 아인츠발트나 탈론처럼 감각이 예민한 이들이 눈치채지 못했을 리 없으니까.

너무 독만 의식한 것이 실수였다.

“쫓을 수 있겠나?”

“전투가 시작되었을 때부터 작전이 실패한 걸 알고 도망쳤을 겁니다. 규모가 크다면 따라잡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리 많은 숫자는 아니겠지.”

아인츠발트의 말을 내가 받았다.

그렇게 많은 병력을 제대로 매복시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이미 중앙군을 상실한 로스니아 제국에 우리를 위협할 만한 군세가 남아있을 리도 없고.

“아쉬운 승리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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