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VVIP 영주님의 품격-221화 (221/250)

VVIP 영주님의 품격 221화

VVIP 영주님의 품격 221화

221화

* * *

크라이더 국왕은 눈앞에서 처참하게 무너지는 자신의 군대를 보며 절망했다.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상대는 그 예상보다도 훨씬 강했다.

선봉과 본대를 분리할 때만 해도 선봉에는 궤멸적인 타격을 주리라 예상했는데 오히려 자신의 군대가 포위되어 무너지고 있었다.

‘어떻게 저렇게까지 강하지?’

병력의 숫자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양측의 실력만 놓고 봐도 그 차이는 가히 압도적이었다.

‘로스니아 제국도 아니면서.’

병사들에 대해서도 막대한 군비를 지출할 수 있는 로스니아 제국이나 정예병을 키우는 게 가능했다.

그러나 네패스 왕국의 병사들 역시 그에 못지않은 저력을 갖고 있었다.

‘게다가 저들은 대체 뭐냔 말이야?’

하지만 제일 큰 차이는 전황을 뒤집는 실력자의 유무였다.

네패스 왕국에는 혼자서 수백을 감당할 만한 실력자가 하나도 아니고 여럿 존재했다.

그런 이들이 선봉 부대에서 포함되어 날뛰기 시작하니 크라이더 왕국으로서는 마땅한 대응을 하지 못했다.

물론 그런 실력자는 크라이더 왕국에도 있었지만…….

‘어찌 저토록 쉽게?’

크라이더 왕국 휘하에는 그가 자랑하는 네 명의 기사가 있었다.

4기사라 불리는 그들은 왕국의 각 지역을 대표하는 실력의 기사들로 혼자서 다른 기사 열을 감당하고도 남을 정도였다.

그런데 그 기사들이 선봉의 아인츠발트 한 명을 상대로 밀리고 있었다.

“크윽!”

크라이더 왕국의 4기사 중에서도 가장 실력이 뛰어나다고 평가받는 라르고는 이 상황이 기가 막혔다.

자신 혼자서 상대하는 것도 아니고 다른 4기사까지 모두 함께 한 협공이었다.

상대가 아무리 뛰어난 기사라도, 설령 로스니아 제국의 이름 높은 카시안 공작이라고 할지라도 자신들 넷을 동시에 감당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아인츠발트는 별로 어려움을 느끼는 기색도 없이 4기사를 몰아붙이고 있었다.

“어찌 이럴 수가 있단 말이냐!”

라르고는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다.

어렸을 때부터 검술에 대해 천부적인 재능이 있다고 평가받아 온 그였다.

그런데도 단 하루도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부지런히 실력을 갈고닦아 지금에 이르렀다.

물론 세상에는 그런 라르고조차 범접하지 못할 괴물 같은 실력자가 존재하고는 했다.

레이칸 국왕이라거나 제국에서도 최강이라 평가되는 카시안 공작 그리고 그에 밀리지 않는 다른 실력자들까지.

하지만 그 어떤 상대라도 눈앞에 있는 아인츠발트만큼 압도적인 실력을 보이지는 않았다.

4기사 모두를 동시에 상대해서 오히려 압도하는 실력자라니?

도무지 사람으로 보이지가 않았다.

‘그저 머릿수로 밀어붙이는 게 아니다! 우리 4기사가 얼마나 오랜 시간 합을 맞춰왔는데.’

로스니아 제국과의 회전에서도 4기사는 혁혁한 전공을 쌓았다.

만약 그들의 활약이 없었다면 크라이더 왕국군은 로스니아 제국군을 뚫고 사트리안 왕국으로 지원군을 보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자부심이 지금 아인츠발트 앞에서 처참하게 무너졌다.

“솜씨가 좋군.”

아인츠발트는 잠깐 공격을 멈추고 4기사에게 말을 걸었다.

하나하나를 보자면 네패스 왕국의 단장들보다는 살짝 아래의 실력자였다.

그러나 그 실력의 차이는 결코 크지 않았다.

무엇보다 네 명의 합이 잘 맞아서 힘을 합치면 아무리 이름 높은 강자라도 감당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벽을 넘지 못했을 때의 기준이었다.

“이쪽도 예의를 다해서 실력을 보여주마.”

아인츠발트의 기세가 일변했다.

4기사는 재빨리 흩어져 아인츠발트의 주의를 분산시키려고 했으나 소용없었다.

콰콰쾅!

아인츠발트는 패도적인 검격으로 선두에 있던 라르고를 날려버렸다.

“쿨럭!”

충격을 감당하지 못한 검이 부러지고 라르고는 피를 토해내며 나가떨어졌다.

남은 세 기사는 그 처참한 광경에 공포에 질리고 말았다.

4기사의 실력이 서로 엇비슷하다고 하지만 라르고는 반 수 정도는 앞서 있는 실력자였다.

그런 라르고가 고작 한 번의 검격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고 나가떨어지다니?

악몽도 이런 악몽이 없었다.

“대체 세상이 어떻게 돼먹은 거야?”

한 기사가 허탈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로스니아 제국에서는 갑자기 나타난 마족이 40만 대군을 몰살했다고 하지를 않나.

그것만으로도 공포심을 느꼈는데 심지어 네패스 왕국군은 그런 괴물 같은 마족 또한 죽인 이들이었다.

그리고 지금 눈앞에 있는 아인츠발트의 존재는 절대 그것이 우연이거나 거짓이 아님을 증명해 주고 있었다.

콰콰쾅!

무방비 상태가 된 기사는 당연히 아인츠발트의 공세를 버텨내지 못했다.

또 협공을 통한 균형이 무너지자 다른 기사 역시 형편없이 쓰러졌다.

“포위망이 무너진다! 막아라! 어떻게든 막으란 말이다!”

“예비대를 있는 대로 투입해라! 절대 포위망을 뚫려서는 안 된다!”

크라이더 왕국의 영주들이 악에 받쳐서 소리쳤다.

이대로라면 포위망이 무너지는 건 시간문제였다.

4기사를 해치운 아인츠발트는 여유로운 얼굴로 주변을 둘러봤다.

그의 초인적인 무력 때문에 크라이더 왕국군은 누구도 덤벼들지 못하고 있었다.

덕분에 전장을 살필 틈이 있었다.

‘뭐, 걱정할 필요는 없었군.’

아인츠발트는 크라이더 왕국군을 쓸어버리다시피 하는 동료들의 모습에 마음을 놓았다.

크게 걱정한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혹시나 했는데 기우였다.

시뻘건 불길과 혹독한 냉기가 포위망의 측면을 깨부수고 있었다.

“항복하면 목숨은 살려주겠다.”

아인츠발트는 자신을 둘러싼 이들에게 경고를 보냈다.

그 말에 누군가가 다급히 들고 있던 창을 버리고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헉!”

그 눈치 빠른 행동에 다른 이들도 허둥지둥 무기를 버리며 항복을 외쳤다.

4기사마저 당하고 포위망도 무너지기 직전.

아무리 생각해도 승산이라고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 전투였다.

“하, 항복입니다!”

“항복하겠습니다! 목숨만 살려주십시오!”

병사들은 말할 것도 없고, 기사들도 병사들의 항복을 억제할 방법이 없었다.

그들이 보기에도 이 전장에는 아무런 승산도 없었기 때문이다.

네패스 왕국의 군대는 악몽 같은 강함을 자랑하며 크라이더 왕국군을 휩쓸었다.

* * *

콰아앙!

시위를 놓기 무섭게 쏘아진 화살은 적진의 한가운데를 꿰뚫었다.

크라이더 왕국을 지원하기 위하여 병력을 끌고 왔던 지휘관은 그 공격에 휘말려 단숨에 절명하고 말았다.

“이, 이런 말도 안 되는!”

양측의 군대가 충돌하지도 않았는데 지휘관이 전사해 버린 상황.

지원군은 말도 안 되는 전력 차이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어떻게 화살 한 발로 이런 짓이 가능하단 말인가!”

지휘관을 죽인 화살의 다음 타깃은 지위가 높아 보이는 이들이었다.

여러 귀족과 기사들이 어떻게든 화살을 피하기 위하여 발버둥 쳤으나 소용없었다.

소리보다도 빠르게 날아오는 화살은 눈으로 보고 반응할 수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

“이대로라면 모두 죽을 뿐이다! 전원 돌격…….”

콰아앙!

재빨리 상황을 파악하고 돌격 명령을 내리던 귀족 역시 날아오는 화살에 머리가 날아가 버렸다.

근처에 있던 이들은 명령을 들었으나 차마 돌격하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다른 것보다 상대의 무기가 활인 게 문제였다.

앞에 바글바글한 네패스 왕국군을 뚫지 못하면 그 너머에 있을 상대를 잡을 방법이 없는데 그때까지 과연 몇 명이 희생될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이런 멍청한!”

그때 한 기사가 말을 몰고 앞으로 뛰쳐나갔다.

이름 높은 기사의 행동에 다른 기사들이 눈을 빛냈다.

가장 실력이 뛰어난 그라면 이 말도 안 되는 화살 세례에서도 어떤 활약을 보여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콰앙!

그러나 기사가 낸 용기는 사실 만용이었다.

앞으로 나아가기 무섭게 날아든 화살은 기사의 몸을 꿰뚫었다.

“퇴, 퇴각하라!”

허망한 죽음을 연달아 목격한 기사들은 제정신을 유지할 수 없었다.

자신들의 목적이 크라이더 왕국에 대한 지원이라는 것도 잊은 채 그들은 기수를 돌려서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를 제지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괜히 후퇴를 막으려고 나섰던 귀족이 날아든 화살에 처참하게 죽는 광경을 봤기 때문이다.

숫자가 몇 명이라도 화살 한 발을 감당하지 못해서야 애초에 승산이 없었다.

“후우.”

탈론은 퇴각하는 적들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어차피 나중에는 다 싸워야 할 적이었지만 현재 네패스 왕국이 우선해서 노리고 있는 건 크라이더 왕국이었다.

이를 위해서 아인츠발트를 비롯해 다수의 실력자들이 투입되었기에 이곳에 있는 병력은 그리 많지도, 강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만약 상대가 피해를 감수하고 무리해서 돌격해 온다면 솔직히 승리를 장담할 순 없었다.

그리고 만약 이긴다고 해도 탈론으로선 기뻐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가 이끌고 있는 병력은 자신을 따르는 북부의 전사들과 드래고니안들이었으니.

“다행이군.”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아군의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적들을 내쫓았다.

일부러 지휘관이나 지시를 내리는 자들만 노린 보람이 있었다.

“훌륭하십니다.”

드래고니안들은 탈론의 압도적인 무위에 감탄했다.

같은 드래고니안 사이에서도 탈론은 입지전적인 영웅이었다.

자신의 원수를 직접 처치하고 일국의 귀족 작위까지 받아내 동족들을 자유롭게 만든 영웅.

드래고니안이라면 탈론은 존경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반응은 북부의 전사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탈론의 경이로운 무력은 어떤 전장에서도 함께한다면 반드시 승리할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흐하하하! 놈들이 달아나는 꼴 좀 보라지!”

“화살 몇 발로 적들을 내쫓다니 대단하십니다.”

탈론은 자신을 환호하는 부하들의 목소리에 잠시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무언가 반응하기를 바라는지 환호가 멈추지 않자 마지못해 화답해 주었다.

* * *

“쓰읍.”

탈론과 달리 루시우스는 직접적인 충돌을 피할 길이 없었다.

지원군을 막기 위해 길목을 차단한 루시우스는 휘하 병력과 함께 한바탕 혈투를 벌였다.

그러나 전황은 압도적이었다.

아인 역시, 탈론과 달리 루시우스는 어쩔 수 없이 고전할 것임을 알고 추가 병력을 붙여주었기 때문이다.

“아직 부족하군.”

하지만 루시우스는 이런 상황 자체가 아쉽게 느껴졌다.

아인츠발트처럼 초인적인 무력은 아니더라도 탈론 정도의 실력만 되어도 홀로 전황을 뒤집을 수 있었다.

그러나 루시우스는 그 정도가 아니었다.

기사 여럿을 상대로도 충분히 실력을 뽐낼 수 있었지만 결국 근접해서 싸워야 하기에 한 번에 해치울 수 있는 적의 수에는 한계가 있었다.

더구나 지휘까지 같이 맡다 보니 전방에서 싸우는 것도 쉽지 않았다.

“단장님은 이해할 수가 없군. 진심으로 이게 부족하단 말씀이신가?”

그러나 루시우스의 이야기를 들은 기사들은 도무지 그의 말을 납득할 수 없었다.

아무리 미리 좋은 자리를 선점했다고 하지만 루시우스는 몇 배나 되는 적군을 상대로 압도적인 교환비를 이루며 승리를 이끌었다.

아군의 질이 적들보다 월등했기에 가능했다고 해도 그의 지휘가 아니라면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루시우스는 뒤에서 지시만 내리는 게 아니라 상대의 실력자가 등장하면 직접 나가서 처치하고 있었다.

이런 루시우스의 행동은 자신의 존재감을 부대에 각인시키기에 충분했다.

“냅둬. 한두 번 있는 일도 아니고.”

그래도 몇몇 기사들은 그의 갈증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었다.

네패스 왕국군은 강하다.

특히 아인의 곁에 붙어 있는 측근들은 하나같이 엄청난 실력을 갖고 있었다.

그들에 비해서 루시우스의 실력은 확실히 평범하다고 말할 만했다.

그러나 군대의 전투에서 개인의 무력은 그리 중요한 요소가 되지 못했다.

“그리고 우리 단장님의 최대 특기는 무력이 아니잖아?”

엄청난 활 솜씨로 유명한 드래고니안 탈론과 천재적인 검술 재능으로 명성이 자자한 릴리아나.

거기에 갑자기 나타나 공작의 자리에까지 오른 요정족 검사 아인츠발트까지.

하나같이 괴물이라고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으나 부대를 이끄는 카리스마나 지휘 능력에 있어선 루시우스를 당해낼 자가 없었다.

실제로 아인은 자신이 없는 곳에서의 지휘는 보통 루시우스에게 일임했고 이는 그를 따르는 기사들에게 있어 큰 자부심이었다.

정작 루시우스 본인이 만족하지 못하는 게 문제일 뿐.

그렇게 네패스 왕국은 모든 방면의 전투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며 크라이더 왕국을 무너트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