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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VIP 영주님의 품격-219화 (219/250)

VVIP 영주님의 품격 219화

VVIP 영주님의 품격 219화

219화

* * *

내가 처음 혼인 동맹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을 때 많은 이들이 난색을 표했다.

프레시아 공작이 이를 받아들일 리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잘 살펴보면 프레시아 공작에게 거부라는 선택지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

아인츠발트의 무력시위 때문에 귀족들이 프레시아 공작에게서 등을 돌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야 제대로 된 전쟁은 불가능하니 이데아가 할 수 있는 선택은 둘 중 하나였다.

스스로 죽거나 이를 받아들이거나.

그리고 내가 아는 이데아라면 굴욕을 감수하고서라도 절대 포기할 인간은 아니었다.

“사트리안 왕국으로부터 답신을 가져왔습니다.”

사절단으로 사트리안 왕국을 방문했던 아인츠발트가 프레시아 공작의 답을 가져왔다.

내용은 예상대로였다.

어차피 긍정 아니면 부정이니까.

하지만 답신에는 그냥 긍정이 아니라 온갖 자잘한 조건과 조항들이 달라붙어 있었다.

‘역시 이데아답군.’

이데아는 그저 허수아비가 될 생각은 없다는 듯 많은 권리와 어느 정도 자유로운 행동을 보장받으려 하고 있었다.

이는 내 왕국 내에서 자신의 세력을 키우겠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그렇게 쉽게는 안 되지.’

이데아의 능력은 확실하지만 아무리 그녀라도 혼인을 하게 되면 제약이 많이 걸리게 된다.

황후도 아니고 황비의 몸으로, 그것도 내 왕국에서 그녀가 세력을 얼마나 키울 수 있을까?

게다가 이미 이데아를 견제하기 위한 준비는 충분히 되어 있었다.

레일리를 따르던 과거 남부 연합의 귀족들이 소식을 전해 듣고 이를 갈고 있을 테니까.

이데아가 아무리 뛰어나도 그녀는 절대 제 목적을 이루지 못할 것이다.

“고생 많았네.”

“그럼 이만 돌아가서 쉬겠…….”

“다음 임무를 내리지.”

사절단 업무를 끝내고 휴식을 취하려는 아인츠발트를 붙잡았다.

쉬고 싶은 마음은 알겠지만 지금은 사람이 부족했다.

“저 방금 돌아왔습니다만?”

“다른 사람이라면 힘들겠지만 아인츠발트 공작이라면 충분히 해내리라고 믿네.”

애초에 공작 작위를 내준 이유가 무엇인가?

높은 작위는 그만큼 일을 많이 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내 속내를 뒤늦게 알아챘는지 그의 안색이 창백하게 변했다.

하지만 이미 아인츠발트는 돌이킬 수 없는 늪에 빠진 뒤였다.

* * *

“네패스 왕국의 아인츠발트 공작입니다.”

아인츠발트는 반제국 동맹의 또 다른 축을 맡고 있는 크라이더 국왕과 만남을 가졌다.

사트리안 왕국과는 달리 제대로 된 절차를 밟고 이루어진 만남이었다.

그러나 이는 다시 말해 그만큼 시간이 지체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래도 사트리안 왕국은 며칠 안 걸렸는데.’

은밀하게 이동하기 위해서 아예 규모도 줄였던 사트리안 왕국과 달리 이번에는 사절단의 규모도 나름대로 커진 상태였다.

거기에 사절단이 이동하는 동안 다른 귀족의 영지에 들러서 대접을 받다 보니 시일이 상당히 지체되었다.

“그래. 그대의 소문이라면 이미 들었네.”

크라이더 국왕은 아인츠발트의 이름을 듣자 사트리안 왕국에서 흘러나온 소문에 대해 말했다.

네패스 왕국에서 온 사절단의 대표가 무력시위를 했다는 내용이었다.

그 때문에 크라이더 국왕은 이미 왕국의 이름 있는 기사들을 모두 집결시킨 상태였다.

“사트리안 왕국의 기사단을 홀로 제압할 만큼 실력이 대단하다지?”

“저는 사절단으로 왔습니다만?”

아인츠발트는 빈손을 들어 보이며 자신의 무해함을 어필했다.

“보통 그런 무력을 가진 사람을 아무렇지 않게 사절단으로 보내지는 않지.”

그러나 크라이더 국왕의 지적에는 대꾸할 말이 없었다.

애초에 인간이 아닌 요정족이라는 점에서부터 문제였다.

물론 그 부분은 공작이라는 작위로 어떻게든 덮을 수 있다.

하지만 맨손으로 기사단을 뚫고 왕에게 접근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자를 보내면 누구나 진의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건 두고 보면 알게 되겠지. 그래서 그대는 무슨 목적으로 내 왕국을 방문한 것인가?”

크라이더 국왕의 물음에 아인츠발트는 대답 대신 서신을 꺼냈다.

“네패스 국왕이 보낸 것이로군.”

크라이더 국왕은 서신의 내용을 살피고는 미간을 찌푸렸다.

“선전포고로군.”

아인츠발트는 울고 싶었다.

서신의 내용 자체는 선전포고와는 관련이 없었다.

그저 피의 연회에 대해 항의하면서 크레시안 왕국이었던 시절 일어난 내전에 대한 배상을 요구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피의 연회에 대한 책임 자체를 부정하고 있는 반제국 동맹의 입장에서 이는 받아들일 수 없는 일.

당연히 배상을 해줄 리 없고 아인은 이를 명분 삼아서 선전포고를 할 계획이었다.

전쟁의 명분을 가져온 것이니 선전포고라는 크라이더 국왕의 말도 틀렸다고 할 순 없었다.

오히려 정답이면 정답이었지.

“설마 로스니아 제국에서 봤던 젊은 왕이 이렇게 나에게 선전포고를 보내올 날이 올 줄이야.”

크라이더 국왕은 로스니아 제국에서 아인과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

처음에는 그저 젊은 군주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빌헬름의 계획을 일찌감치 알아차리고 군주들을 이용해 그를 처치하려고 할 때 크라이더 국왕은 내심 놀라고 말았다.

겉보기와 달리 어리숙하지 않고 깊은 속내를 품고 있다고.

“그때 빌헬름이 아니라 네패스 국왕부터 처치했어야 했는데.”

하지만 그 음흉한 속내가 이렇게 자신을 향하게 되리라고는 미처 알지 못했었다.

“말을 삼가주시지요.”

아인을 죽였어야 했다는 말에 아인츠발트가 경고를 보냈다.

그러나 크라이더 국왕은 물러서지 않았다.

“이곳은 내 왕국이고 나는 국왕이다. 내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날 막을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그 말 한마디가 전쟁으로 이어질 수도 있음을 아셔야지요.”

“이미 전쟁을 할 생각이 가득하면서 쓸데없는 소리를 하는구나. 명분이 하나나 둘쯤 늘어난다고 달라질 일은 없다.”

로스니아 제국이 반제국 동맹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켰을 때와 같은 상황이었다.

압도적인 군사력의 차이 때문에 상대가 전쟁을 할 생각이 있다면 그걸 막을 방법이 없었다.

크라이더 국왕이 할 수 있는 선택이라고는 얌전히 항복하거나 최선을 다해서 저항하는 것뿐이었다.

“돌아가서 얼마든지 덤벼보라고 전해라.”

“그러지요.”

아인츠발트는 크라이더 국왕의 말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어차피 선전포고를 위한 대외적인 명분 만들기를 위해서 온 자리였기에 미련은 없었다.

그렇게 아인츠발트가 떠나가자 크라이더 국왕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겉으로는 당당함을 유지했으나 아무리 생각해도 어떤 승산도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굳건했던 반제국 동맹의 유대도 이미 흔들린 이후였다.

‘사트리안 왕국에서는 혼인을 청했다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크라이더 국왕은 귀족 영애 하나를 양녀로 들여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인은 프레시아 공작 때와 달리 그에게는 혼인 동맹을 요청하지 않았다.

이것이 의미하는 건 한 가지였다.

‘나는 받아들일 생각이 없다는 거군.’

사트리안 왕국과 달리 정식 절차를 밟아 사절단을 보낼 때부터 짐작하고는 있었다.

그나마 똑같이 아인츠발트가 온다고 해서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였다.

크라이더 국왕은 아인의 의중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후계가 아니라면 받아들여 봤자 의미가 없다는 거겠지. 왕국을 삼킬 수 없으니까.’

이데아는 본디 프레시아 공작의 뒤를 이을 몸이었다.

이는 곧 프레시아 공작가, 나아가 사트리안 왕국을 통째로 흡수할 수 있는 명분이었다.

반면에 크라이더 국왕은 양녀 정도를 생각하고 있었고 이는 왕국을 장악하거나 흡수하기에는 상당히 부족했다.

“딸을 낳을 걸 그랬나.”

크라이더 국왕은 씁쓸히 중얼거렸다.

피할 수 없는 결말이 다가오고 있었다.

* * *

아인츠발트는 이후에도 반제국 동맹을 모두 돌아다니며 선전포고를 위한 명분을 쌓았다.

군주들은 모두 내 노림수를 알아차렸지만 이를 극복할 방법은 없었다.

로스니아 제국도 빌헬름의 명분 없는 선전포고 한 번에 전쟁을 시작했으니까.

그나마 할 수 있는 저항이라고는 서로 동맹을 맺고 로스니아 제국을 끌어들이는 것뿐이다.

그러나 그건 불가능했다.

우선 반제국 동맹에서 사트리안 왕국이 이탈했다.

아인츠발트의 무력시위가 프레시아 공작과 휘하 귀족들 사이에 내분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그 충돌이 직접 나타난 건 아니었으나 프레시아 공작이나 이데아는 귀족들의 배신을 우려해서라도 전쟁을 주장하지 못할 것이다.

억지로 전쟁을 일으키려고 하면 당장 내전이 일어날 테니까.

그렇게 자연스럽게 사트리안 왕국이 제외되면서 우리는 단 세 개의 국가만 상대하면 충분한 상황이 되었다.

‘기사단이 문제지만.’

그러나 막상 선전포고까지 마치고도 군대를 일으키지는 못하고 있었다.

아직 부상을 입은 기사들이 모두 복귀한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로크, 루시우스, 그랜트 등 실력 있는 기사들을 제외할 수는 없었기에 약간의 시간이 생겼다.

“그래서 말인데 다른 장비를 좀 만들어 주면 좋겠어.”

루안은 내 앞에서 입을 떡하니 벌리고 있었다.

날밤을 새워가면서 애써서 만들어 주었던 장비가 그대로 증발해 버렸기 때문이다.

“아니, 제가 그걸 만드는 데 얼마나 고생했는데!”

“필요한 곳에 썼네.”

갑옷은 아인츠발트에게 돌려받았지만 지팡이는 영영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래도 아스카의 보주를 제외한 재료들은 그대로 가져왔지만 루안은 세상이 떠나가라 슬퍼했다.

“아이고! 어떻게 재료도 없이 그거랑 비슷한 수준의 장비를 만들어요? 설령 같은 재료가 있어도 못 만듭니다!”

루안은 그대로 파업을 선언했다.

물론 안 될 말이었다.

나만이 아니라 아스카와의 전투에서 기사들의 장비도 많이 망가졌으니까.

어떻게든 루안을 쥐어짜 내야 했다.

“정말 안 되나?”

“안 됩니다.”

“그래? 아쉬운 일이군. 새로운 재료들을 이렇게 잔뜩 준비해 왔는데.”

레이드 시스템을 이용해 준비한 재료들을 꺼내자 루안의 입이 벌어졌다.

아인츠발트 이전에도 군대를 이용해 나름대로 희귀한 몬스터들을 잡을 수 있었지만 거기에도 한계는 있었다.

그러나 아인츠발트의 실력은 그런 한계마저 뚫어버렸다.

레이드 중에서도 최상위 난이도에 있는 몬스터들을 가볍게 썰어버린 것이다.

“안 된다니, 어쩔 수 없군.”

“아, 안 되긴요. 제가 아니면 누가 하겠습니까? 네패스 왕국 공방의 책임자가 바로 저인데.”

“방금 안 된다고 하지 않았나?”

“그럴 리가요!”

눈이 돌아간 루안은 내가 내준 재료들을 허겁지겁 챙기고 사라졌다.

다행이었다.

이전과 똑같은 수준의 장비가 나와줄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기사단의 전력을 보충하는 것 정도는 가능할 테니까.

‘이 정도면 준비가 부족하지는 않겠지.’

전력은 지금도 충분히 압도적이다.

이제 관건은 얼마나 적은 피해로 반제국 동맹을 무너트리고 흡수할 것인지였다.

제일 신경 쓰이는 상대는 크라이더 국왕.

전력 차이는 명백하지만 그는 절대 쉬운 상대가 아니었다.

로스니아 제국과의 전쟁에서도 혼자 회전을 나가 제국의 10만 대군을 물리쳤으니.

비록 그 대가로 적지 않은 피해를 입기는 했으나 만만한 상대가 아님은 분명했다.

게다가 반제국 동맹과의 싸움은 게임에서도 없었던 일.

난 그들의 전력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사트리안 왕국이 필요했던 거야.’

하지만 그리 걱정되지는 않았다.

사트리안 왕국을 끌어들인 건 굳이 이데아 때문만은 아니었으니까.

그들은 게임에서 유저의 메인 스토리에 나오는 장소로서 사트리안 왕국에 소속된 영웅이라면 대부분 다 꿰고 있었다.

익숙한 자들이기에 다루는 것 역시 쉬울 것이다.

‘유일하게 신경 쓰이는 건 프레시아 공작의 행보인데.’

혼인을 맺게 되면 나로서는 이데아를 인질로 잡는 것과 다를 게 없었다.

그러니 어지간하면 프레시아 공작도 내 뜻을 따를 것이라 생각하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이다.

프레시아 공작이 뒤에서 다른 마음을 품지 않으리라고 장담할 수는 없으니까.

‘어리석은 생각은 하지 않으면 좋겠는데.’

프레시아 공작이 쓸데없는 행동을 한다면 이데아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다.

미안해서라도 그녀를 가혹하게 대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것도 프레시아 공작의 선택에 따라 달라지게 될 것이다.

“뭐, 두고 봐야 알게 될 일이겠지.”

루안 다음으로 다니엘을 호출해서 임무를 맡겼다.

물론 그 임무는 프레시아 공작에 대한 감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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