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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VIP 영주님의 품격-218화 (218/250)

VVIP 영주님의 품격 218화

VVIP 영주님의 품격 218화

218화

* * *

사절단이 출발하기 전.

나는 어째서 자신이 사절단의 대표가 되었는지 몰라 당황하는 아인츠발트를 따로 불러내 무력시위를 해야 한다는 사실을 전달했다.

“무력시위 말씀이십니까?”

아인츠발트는 사절단 대표라는 것보다도 무력시위라는 말에 더 당황했다.

하긴 공작의 작위를 받고 가장 먼저 하는 일이었으니까.

설마 자신이 그런 일을 하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분명 혼인 동맹이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동맹은 동맹인데 그냥 동맹이 아니거든.”

지금 네패스 왕국의 전력으로는 정복 전쟁을 하는 게 쉽지 않았다.

그렇다고 쓸 만한 인재를 갑자기 구하거나 마법처럼 자원을 얻을 수도 없고.

그래서 선택한 방법이 혼인 동맹이었다.

첩을 들이면서 겸사겸사 왕국의 전력까지 향상시키려는 것이다.

그래서 외국에서 첩으로 삼을 상대를 골라야 하는데 내 또래이면서 미혼인 여성 귀족을 찾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비록 내전이나 전쟁으로 혼인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 이어지기는 했으나 그래도 귀족이라면 어찌어찌 제 짝을 찾아가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가장 좋은 혼인 상대가 누구인지를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이데아 프레시아.’

본래라면 불가능한 일이다.

아무리 우리가 국력에서 앞선다고 해도 이데아 역시 프레시아 공작가를 이을 몸.

누군가와 혼인을 할 거라면 데릴사위를 들이지 일국의 군주인 나와 혼인을 할 수는 없었다.

하물며 첩이라니, 자존심 때문에라도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원래 귀족 가문의 혼인이라는 게 받아들이고 싶어서 받아들이는 건 아니었다.

받아들일 수밖에 없으니까 받아들이는 거지.

“프레시아 공작가는 피의 연회를 일으킨 반제국 동맹의 일원이지.”

나야 신경 쓰지 않지만 남들이 보기에 나와 반제국 동맹은 원수지간이었다.

그런데 원수의 가문에 혼인을 신청한다?

당연히 뒷말이 나오게 될 것이다.

그래서 이쪽에서 먼저 고개를 숙이는 방법 대신 아인츠발트를 보내 무력시위를 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거기에 아무런 연락도 없이 사절단을 보내며 몰래 국경을 넘도록 지시했다.

여기에 이데아를 첩으로 달라는 서신까지 받는다면 프레시아 공작이 아니라 누구라도 이를 참고 넘기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도 안 되고.

아무리 갑자기 찾아가도 사절단을 맞이하는 자리에 프레시아 공작 혼자 있지는 않을 터.

분명 휘하 귀족들이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프레시아 공작은 그들로부터 군주로서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화를 내야만 했다.

그러나 그 당연한 행동이야말로 프레시아 공작을 옭아매는 진짜 덫이었다.

* * *

“저희는 부탁이 아니라 협박을 하고 있습니다.”

아인츠발트가 박살 내버린 바닥을 보며 사트리안 왕국의 귀족들은 얼어붙었다.

사람이 어떻게 발을 구르는 것만으로 저런 행동이 가능하단 말인가?

아무리 뛰어난 기사라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협박이라고? 감히!”

“뭘 이런 걸로 화를 내고 그러십니까? 프레시아 공작께서는 네패스 국왕 전하에게 더한 짓도 하시지 않았습니까?”

“뭐?”

분노하던 프레시아 공작은 이어지는 아인츠발트의 말에 당황했다.

그러나 생각해 보니 틀린 소리가 아니었다.

아인 네패스의 가족들은 모두 피의 연회에서 죽었으니까.

아인은 반제국 동맹과 원수였다.

“피의 연회를 말하는 거라면 오해다! 우리는 그런 짓을 한 적이 없다.”

“하늘을 가리신다고 세상이 속아주지는 않습니다.”

아인츠발트의 말에 프레시아 공작은 이를 갈았다.

반제국 동맹은 피의 연회에 대해 끝까지 부정하고 있으나 이미 로스니아 제국에서 관련된 증거를 모두 뿌린 이후였다.

아무리 부정한다고 한들 믿는 사람이 없다는 건 프레시아 공작도 충분히 알고 있었다.

“하, 그러면 대체 이 서신을 보낸 이유는 뭐지? 내 딸을 욕보이는 것으로 분풀이라도 하겠다는 것이냐?”

“맞습니다.”

프레시아 공작의 물음에 아인츠발트는 냉큼 긍정했다.

그 행동에 도리어 프레시아 공작이 당황했다.

“이데아 프레시아를 국왕 전하의 첩으로 삼고 사트리안 왕국의 모든 권리를 가져갈 생각입니다.”

기가 막힌 이야기였다.

프레시아 공작은 당장 근처의 기사들에게 아인츠발트를 죽이라는 명령을 내리려 했다.

아무리 상대가 범상치 않은 실력자라도 사절단의 규모는 겨우 수십.

기사단을 동원하면 처리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 대가로 원한을 잊겠습니다.”

“뭐?”

그때 아인츠발트가 꺼낸 말이 프레시아 공작의 행동을 붙들었다.

“피의 연회에 대해 용서할 뿐 아니라 지금 사트리안 왕국 귀족들의 작위를 모두 인정하고 그들을 네패스 왕국의 귀족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아인츠발트는 프레시아 공작이 아니라 왕궁에 자리한 다른 귀족들을 돌아봤다.

이데아는 그런 아인츠발트의 행동에서 아인이 무엇을 노렸는지 깨달았다.

‘귀족들을 흔들려는 거야!’

피의 연회와 관련된 일이 밝혀지며 프레시아 공작가는 명예를 잃은 상태였다.

하지만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기존 사트리안 왕가에 충성하던 귀족들이 프레시아 공작가에 반감을 갖고 있다는 것.

그게 사트리안 왕국이 가진 최대의 약점이었다.

그들은 지금까지는 프레시아 공작가의 눈치를 보느라 고개를 숙여야 했다.

하지만 이렇게 네패스 왕국이 끼어들면 상황이 달라진다.

작위를 인정하고 귀족 대우를 해주겠다고 했으니 여차하면 네패스 왕국에 붙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감히 내 눈앞에서 내 사람들을 빼 가겠다는 건가?”

“정녕 공작님의 사람이라면 이런 말에 흔들리지는 않겠지요.”

아인츠발트의 말에 프레시아 공작은 말문이 막혔다.

명백하게 프레시아 공작가를 조롱하고 모욕하는 상황이다.

충신이라고 부를 만한 귀족이라면 마땅히 화를 내고 목숨을 바쳐서 싸우려고 할 터.

그러나 그런 이들 대부분은 이미 로스니아 제국과의 전쟁에서 희생되었다.

지금 프레시아 공작의 파벌과 그에 반하는 파벌의 힘의 격차는 그리 큰 편이 아니었다.

“저놈을 죽여라!”

눈이 뒤집어진 프레시아 공작이 마침내 명령을 내렸다.

사절단은 사방에서 달려드는 기사들을 보며 몸을 떨었다.

그들 대부분은 실무를 담당하는 이들로 제 몸 하나 지키지 못할 이들이었다.

콰콰쾅!

그러나 프레시아 공작가의 기사들은 달려들던 속도 이상으로 튕겨 나가 바닥을 뒹굴었다.

검을 들고 있지 않아도 아인츠발트의 무력은 보통 기사들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던 것이다.

“좋은 검이군. 잠깐 빌리지.”

더구나 알현을 위해서 반납해야 했던 무기의 공백도 기사의 검을 빼앗는 것으로 간단히 해결할 수 있었다.

검까지 손에 넣은 아인츠발트를 막을 수 있는 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왕궁 내에 있던 기사들이 계속해서 달려들었지만 그들 대부분은 검을 맞대지도 못한 채 나가떨어졌다.

프레시아 공작은 참담한 눈으로 쓰러진 기사들을 보았다.

자신의 왕국, 그것도 왕궁 안에서 면전에 대고 모욕하는 자를 징벌할 능력이 없다는 것.

이는 그가 군주로서 무능하다는 걸 귀족들에게 각인시키는 행동이었다.

“모두 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기사들을 제압한 아인츠발트는 프레시아 공작의 허락도 받지 않고 몸을 돌렸다.

마지막까지 상대를 무시하는 완벽한 무력시위였다.

모욕을 받은 프레시아 공작은 몸을 떨었지만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 * *

“선택의 여지가 없어요.”

귀족들을 물리고 프레시아 공작과 독대를 하는 자리에서 이데아가 말했다.

그녀가 봤을 때 이미 자신들에게는 선택지가 남아 있지 않았다.

“설마 그놈의 첩으로 가겠다는 소리냐?”

프레시아 공작은 그 말을 듣자마자 경기를 일으켰다.

비록 이데아가 여성의 몸으로 태어났다지만 그 능력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더구나 이렇게 혼란스러운 세상에서는 성별보다 능력이 중요한 법.

자신의 딸이라면 능히 자신의 자리를 물려받아 일국의 군주가 될 자질이 있었다.

그런데 고작 첩이라니?

“내가 그딴 꼴을 보려고 너에게 내 뒤를 맡기겠다고 한 줄 아느냐?”

“아니면 다른 방법이 있으세요?”

그러나 이데아는 현실을 지적했다.

로스니아 제국과 동맹이 가능할지는 불확실하고 반제국 동맹만으로 아인에게 맞서기는 어려웠다.

그나마 직접 충돌한 적이 없는 이전까지는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으나 이번 무력시위를 보자 얼마나 멍청한 생각이었는지를 알 수 있었다.

고작 한 명의 기사에게 프레시아 공작이 자랑하는 기사들이 모두 나가떨어졌으니.

비록 실력 있는 기사들이 로스니아 제국과의 전쟁에서 많이 희생되었다고 하지만 그걸 고려해도 말도 안 되는 격차였다.

“어떻게든 찾아야지!”

“그럴 시간이 없어요. 애초에 시간은 우리 편이 아니니까.”

아인츠발트의 말에 혹한 귀족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딱히 프레시아 공작가에 불만이 없던 귀족이라도 눈앞에서 군주인 프레시아 공작이 모욕을 받고도 아무런 처벌도 하지 못한 걸 목격했다.

네패스 왕국의 우위가 분명한데 귀족 작위도 보전해 준다니 넘어가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프레시아 공작가는 피의 연회와 관련해 명예를 상실했기 때문에 더욱 문제가 컸고.

‘이쪽의 약점을 완벽하게 당했어.’

본래 이렇게 상대가 힘으로 억압하고 나서면 없던 반발심도 생기는 법이다.

그러나 아인츠발트는 피의 연회를 명분으로 삼아 모든 책임을 프레시아 공작에게 떠넘겼다.

그 사건에 대해서는 귀족들도 변명의 여지가 없었기에 명분은 네패스 왕국에 있었다.

거기에 단신으로 무력시위를 펼치는 퍼포먼스까지.

설령 프레시아 공작에게 충성을 바치는 이들이라도 네패스 왕국과 전쟁이 일어나면 가망이 없다고 느낄 것이다.

“이미 많은 귀족들이 네패스 왕국의 제안에 흔들렸을 거예요. 이 상황에서 무리하게 전쟁을 해봐야 결과는 뻔하죠.”

“아무리 그렇다고 한들 첩이라니? 그런 걸 어떻게 받아들인단 말이냐?”

프레시아 공작은 차라리 죽고 싶었다.

설마 피의 연회에 대한 내용이 밝혀질지도 몰랐고 그것이 이렇게 발목을 잡을지도 몰랐다.

그것도 자신이 아니라 자신의 딸의 목을 조르게 될 줄이야.

“첩이라는 게 정확히 첩인가요?”

이데아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분명 상대의 목적은 프레시아 공작과 다른 귀족들을 분열시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게 노림수의 전부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들었다.

그럴 만도 한 게 자신들이 자존심 때문에라도 끝까지 받아들이지 않고 싸움을 선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내분을 일으켰기에 전쟁이 쉬워지기는 하겠지만 그 정도로 머리가 좋은 자라면 분명 이쪽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조건을 걸 수도 있었을 것이다.

“아니, 그건 아니다.”

프레시아 공작은 서신의 내용을 떠올렸다.

아인이 적은 서신의 정확한 내용은 혼인 신청을 받아들이면 네패스 왕국이 제국이 될 때 이데아를 황비로서 대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프레시아 공작은 그 말이 담고 있는 속내를 알고 있었다.

황제의 곁에 있을 사람을 부르는 호칭은 비 따위가 아닌 후.

본처라고 할 수 있는 황후의 자리를 언급하지 않은 건 그 자리를 기존의 부인에게 주고 자신의 딸은 두 번째 부인으로 대하겠다는 것이었다.

그건 첩과 다를 게 없었다.

“황비란 말이군요.”

“황후가 있는 이상 황비는 첩과 다르지 않다.”

프레시아 공작은 혹시나 하는 생각에 황비와 첩이 다르지 않다는 걸 상기시켰다.

그는 절대 자신의 딸이 남에게 있어 두 번째가 되는 걸 바라지 않았다.

“그 정도는 알아요. 하지만 진짜 첩이 아닌 게 어디예요?”

그러나 이데아는 지금 이 제안이 그리 나쁘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다.

아인은 분명 원한을 잊겠다고 말했으니까.

그 약속만 제대로 지켜준다면 이건 구사일생의 기회였다.

어차피 이데아 자신이 이를 거부해 봐야 남는 건 이기지도 못할 전쟁뿐이었으니까.

그러면 그 결말은 뻔했다.

피의 연회를 언급한 이상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들을 살려두지는 않을 테니까.

“안 된다, 이데아. 너는 군주가 되어야 할 몸이야.”

“이런 상황에서 제가 군주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세요?”

로스니아 제국을 상대로 싸움이 성립이라도 할 수 있던 건 적어도 귀족들에게 지켜야 할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네패스 왕국은 귀족들에게 손을 내밀어 굳이 피를 흘리지 않아도 될 길을 열어주었다.

진정 충성스러운 이들을 제외한다면 이번 네패스 왕국과의 전쟁에는 참가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네패스 왕국에 붙어야 하는 이유는 또 있어요.”

“이유가 또 있다고?”

프레시아 공작의 의문에 이데아는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방금 나눈 일련의 대화에서 프레시아 공작과 자신은 한 가지 부분에 대해서 전혀 의문을 표하지 않았다.

“네패스 왕국이 제국이 될 거라는 것에 아무 의문도 갖지 않았잖아요.”

이데아의 말에 프레시아 공작은 눈을 부릅떴다.

생각해 보니 서신에도 제국의 황비라는 표현을 썼고 자신들이 제국이 되겠다고 하였다.

하지만 프레시아 공작은 그 부분을 지적하지 못했다.

로스니아 제국군을 학살했던 마족조차 최소한의 피해로 처치한 네패스 왕국이었으니까.

더구나 아인츠발트가 눈앞에서 보인 무력시위에 압도되어 그들이 제국이 될 거라는 걸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말았다.

“그게 현실이란 거겠죠.”

이데아의 말에 프레시아 공작은 인상을 찡그렸다.

그러나 부정할 수 없었다.

네패스 왕국은 제국이 될 것이다.

반제국 동맹에게도, 로스니아 제국에도 이를 막아낼 힘은 남아 있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냥 같이 죽자꾸나. 그곳에 가게 되면 네가 어떤 모욕을 받을지 모르는데 차라리 모든 걸 끝내는 게 낫지 않겠느냐?”

프레시아 공작은 자신의 딸을 걱정했다.

원한을 잊겠다고 했지만 상대가 정말 제대로 대우를 해줄지는 의문이었다.

원한이라는 건 절대 쉽게 잊히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렇게 협박을 당해 첩으로 들어간다면 네패스 왕국 내에서 이데아의 입지가 어떻게 될지는 뻔했다.

“그건 너무 성급한 결정이에요.”

“무슨 방법이 있는 것이냐?”

“제가 군주가 되지 못한다면 제 아이가 군주가 되면 될 일이에요. 첩이 아니라 황비라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죠.”

프레시아 공작은 제 딸의 말에 너무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지금 그 말은 아인을 유혹해서 자신의 아이를 황제로 만들겠다는 소리였으니까.

“진심이냐?”

이데아의 외모는 매우 아름다웠지만 그 외모를 제대로 활용해 온 일은 없었다.

외모를 내세우는 행동 자체가 군주가 되어서는 구설수에 오를 수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데아는 철저하게 자신의 능력만을 보여왔다.

“적어도 그냥 죽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어요? 그리고 딱히 익숙하지는 않지만…….”

이데아는 자신의 얼굴을 매만졌다.

“외모라면 충분히 자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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