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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VIP 영주님의 품격-216화 (216/250)

VVIP 영주님의 품격 216화

VVIP 영주님의 품격 216화

216화

【 정복 전쟁의 준비 】

아스카의 봉인을 준비하며 그 장소에 머무르기를 며칠.

왕궁에 있을 다니엘이 갑자기 나를 찾아왔다.

하지만 그를 맞이해 주기 전, 곁을 지키고 있던 근위기사들이 다니엘을 향해 검을 겨눴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게 다니엘이 피범벅이 된 모습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런 몰골로 국왕을 찾아다니고 있으니 아무리 다니엘의 얼굴을 알고 있던 기사들이라도 경계하는 게 당연했다.

“대체 무슨 짓을 했기에 그런 모습이 된 거지?”

나 또한 그 모습이 어이가 없어서 용건보다 왜 그런 꼴이 되었는지를 먼저 물었다.

내가 다니엘에게 마지막으로 내린 명령은 베이브를 고문해서 아스카를 죽일 만한 방법을 찾아보라는 것이었다.

이 명령은 베이브를 생포한 몇 주 전부터 내려진 것이었지만 지금까지 실현되지 못하고 있었다.

숙달된 고문 기술자들조차 베이브의 입을 열 순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봉인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마법사 협회는 이미 봉인 의식을 준비하고 있었다.

내가 봤던 과거의 기억과 아인츠발트의 증언을 바탕으로 고대의 봉인을 재현하려는 것이다.

아인츠발트에게는 안된 일이지만 이는 피치 못할 선택이었다.

지금도 거듭해서 되살아나는 아스카를 언제까지고 그에게만 맡길 수는 없으니까.

아무리 초인적인 무력을 지닌 아인츠발트라도 한계는 있었다.

교대로 다른 기사들을 투입하는 방법도 있지만 그만큼 확실하지는 않았다.

거대한 아스카의 육신을 베어낼 실력자는 흔하지 않으니까.

게다가 다른 기사들에게 맡겼는데 자칫 실수라도 해서 아스카가 부활한다면 더는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두 번은 힘들다.’

고작 이 한 번의 싸움에서 아스카에게 입은 피해만 해도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소수 정예였기에 희생자들의 숫자가 절대 많은 편은 아니지만, 그 모두는 내가 이름과 얼굴을 기억할 가치가 있을 정도의 기사들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추가 피해까지 입게 된다면 정복 전쟁은 영영 물 건너갈 것이다.

“마족 놈의 입이 드디어 열렸습니다.”

다니엘의 눈가가 번뜩였다.

광기와 분노가 뒤섞인 시선에서는 암살자 출신답지 않게 강한 감정이 엿보였다.

이해할 만도 한 게 이번에 희생된 이들 중에는 다니엘의 아래에 있던 기사들도 몇 명 포함되어 있었다.

암살자 출신이라고 감정이 없는 건 아니니 다니엘이 분노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보다 신경 쓰이는 건 지금까지 어떤 모진 고문이라도 견디며 입을 다물고 있던 베이브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는 사실이다.

물론 베이브가 끝까지 믿고 있던 아스카가 당한 이상 시간문제이기는 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지켜본 베이브의 정신력은 상당히 단단했기에 이렇게 빨리 무너지는 건 예상 밖이었다.

“대체 어떻게 한 거지?”

아인츠발트뿐 아니라 전문적인 고문 기술자들조차 해내지 못한 일이다.

다니엘 역시 암살자 출신으로 고문에는 일가견이 있지만, 지금까지 성공하지 못했다가 갑자기 해냈다는 것에 의문이 들었다.

“죽는 것보다 사는 게 끔찍하다는 걸 알려주었습니다.”

다니엘의 목소리는 더할 나위 없이 차가웠다.

정확히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피범벅이 된 모습으로 말하니 묘한 설득력이 느껴졌다.

어차피 중요한 건 어떻게 입을 열었는지도 아니고.

상세한 이야기는 일이 끝난 뒤에 들어도 충분하기에 적당히 납득하고 넘어갔다.

“그래서 아스카의 불사를 깰 방법이 뭐지?”

* * *

‘물건에서 마나가 계속 나온다니, 신기하기는 하군.’

내 앞에는 마족들의 아지트에서 회수해 온 조각상이 하나 놓여 있었다.

가이스트가 내주었다고 하는 이 조각상에서는 상당한 양의 마나가 계속 흘러나오는 중이었다.

‘가이스트의 물건이라.’

마족들이 아스카의 부활에 필요한 충분한 숫자의 장소를 확보하지 못하자 대체품으로 준비했다고 하는 물건이었다.

아스카의 불사와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물건이지만 그 불사를 깨기 위해서는 이것부터 파괴할 필요가 있었다.

‘일단 무한한 마나를 끊어낸다.’

조각상을 비롯해 마족들이 아스카의 부활에 사용한 모든 장소를 틀어막아 아스카에게 공급되는 마나를 차단하는 것.

그게 아스카의 불사를 깰 첫 번째 방법이었다.

이에 대해서는 마법사 협회에서도 긍정하는 눈치였다.

아스카의 부활이 어떤 형태로 이루어지는 건지는 알 수 없으나 기본적으로 마법이란 마나를 소모하는 행위였으니까.

상대에게 마나가 공급되지 못하도록 하는 건 마법을 막는 기본 전략이었다.

“라이트닝 플레어.”

굳이 시간을 끌 필요도 없었기에 바로 조각상을 향해 마법을 날렸다.

혹시 가이스트가 만든 물건이라서 내 마법 정도는 견뎌내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이 있었지만, 다행히 조각상은 쉽게 파괴되었다.

조각상 말고 마나가 솟아나는 장소들은 협회에서 처리할 테니까 이걸로 일단 아스카가 가진 무한한 마나는 무력화된 셈이다.

‘이제부터가 진짜다.’

하지만 여기까지는 선행 과정일 뿐, 아스카의 부활을 막아내려면 다른 조치가 필요했다.

바로 아스카의 보주를 확보하는 것.

‘설마 그런 짓이 가능할 줄은 몰랐는데.’

아스카가 어떻게 계속해서 되살아날 수 있을까?

그 비밀은 다른 곳에 마나 공급원이 있기 때문이었다.

베이브의 설명에 의하면 아스카는 고대부터 자신의 몸에서 직접 보주를 분리해 내 부활에 필요한 마법을 건 뒤 세계 곳곳에 숨겨둔 상태였다.

마족들이 아스카를 부활시킬 때 쓴 것과 비슷한 방법인 것이다.

차이가 있다면 마족들은 외부의 마나를, 아스카는 자신의 보주를 이용했다는 것뿐.

하지만 그 보주들을 일일이 찾아서 파괴하는 건 불가능했다.

과거 아스카가 숨긴 보주의 숫자가 엄청나게 많아 그 위치를 모두 알아낼 순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보주를 하나씩 찾는 대신 아스카의 보주들과 아스카 사이의 연결을 끊어내는 방법을 선택했다.

이를 위해서 필요한 게 내가 가지고 있는 아스카의 보주였다.

이 보주를 통해 아스카의 마나 파장을 분석하고 같은 파장을 내는 마나를 밀어내도록 하면 아스카는 불사의 효과를 받을 수 없었다.

비록 이 과정에서 내가 가진 장비도 손상되어 쓸 수 없게 되겠지만…….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루안이 아스카의 보주로 만들어 준 장비를 잃게 되는 셈이지만 충분히 감수할 가치가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저주를 풀면 그대는 괜찮겠나?”

아스카를 죽이기에 앞서 우선 아인츠발트를 찾았다.

끝없이 부활하려는 아스카를 상대로 몇 날 며칠을 세워가며 칼질을 해온 아인츠발트는 상당히 피곤해 보였다.

하지만 내 설명을 모두 들은 뒤 아인츠발트는 시원스럽게 웃어 보였다.

“괜찮습니다. 저주가 풀린다고 바로 죽지는 않으니까요. 그리고 아무리 오래 살더라도 봉인지나 지키는 삶은 저도 원하지 않습니다.”

불사의 육체인 아스카와 달리 아인츠발트가 이 시대까지 생존할 수 있었던 비결은 스스로 저주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아스카와 목숨을 공유한다는 저주.

아스카가 불사인 이상 아인츠발트 역시 불사.

다만 아인츠발트의 경우 고대 영웅이 직접 쓰기도 했던 만큼 해주 방법 역시 따로 알고 있었다.

“그럼 저주를 풀도록 하지.”

아인츠발트의 저주를 푸는 방법은 상당히 쉬웠다.

아스카와의 연결을 끊어버리기만 하면 그만이었으니까.

다만 약간의 문제가 있었다.

아인츠발트에게 걸린 저주에 아스카의 소행으로 보이는 흔적이 남아 있었다.

‘몇 개의 저주가 아인츠발트에게 가도록 꼬아놨군. 봉인당한 상태로 아인츠발트에게 저주를 내린 게 이 연결 덕분이었나?’

아스카가 사트리안 왕국 산맥에 있는 안개를 조종하거나 아인츠발트에게 저주를 묻히거나 할 수 있었던 건 모두 이 연결 때문이었다.

덕분에 해주에 생각보다 시간이 걸렸다.

그나마 아스카 역시 봉인 상태라 복잡한 저주를 걸어두지 못한 게 다행이었다.

“체감이 있나?”

저주를 모두 풀고 묻자 아인츠발트는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 봤다.

“그리 달라진 느낌은 없습니다.”

별다른 변화는 느끼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혹시나 해서 다시 확인해 봤지만, 저주는 분명 풀려 있었다.

아무래도 저주가 풀렸다고 갑자기 극적인 변화가 일어나지는 않는 듯했다.

“하지만 제 몸에 걸린 저주가 사라졌다는 건 알 수 있습니다.”

아인츠발트는 담담하게 대꾸하고는 검을 휘둘러 부활하려던 아스카를 재차 베어냈다.

눈으로 보고 있던 것도 아닌데 깔끔한 솜씨였다.

자신의 몸에는 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자신보다 훨씬 큰 상대를 순식간에 해치우다니.

“감사합니다. 네패스 국왕 전하.”

아인츠발트가 나에게 허리를 숙였다.

“할 말이 그게 전부는 아니겠지?”

그러나 난 그런 아인츠발트의 행동에 아무런 감흥도 느낄 수 없었다.

내가 아인츠발트에게 듣고 싶은 말은 감사 인사 따위가 아니었으니까.

아인츠발트 역시 그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아스카를 물리쳐 준 국왕 전하의 행동은 이 대륙 모든 종족에게 있어 축복일 겁니다. 하지만 국왕 전하께서는 여기서 멈출 생각이 없으시겠지요.”

“뻔한 소리를.”

처음부터 내 목표는 대륙 정복이었다.

이는 내가 이 세계에서 눈을 뜬 순간부터 지금까지 단 한 순간도 바뀌지 않았다.

마족이나 아스카를 상대한 것도 그 목적을 이루는 데 방해가 되기 때문이지 개인적인 감정이나 인류를 위해서라는 대의명분 때문이 아니었고.

“내 밑으로 들어오면 공작의 작위와 함께 많은 특권을 약속하지.”

지금까지 아인츠발트는 나에게 줄곧 협력해 줬다.

그러나 그건 아스카라는 강적에게 맞서 싸울 협력자에 대한 존중이자 한 국가의 군주에 대한 예의를 차린 것일 뿐이다.

아인츠발트가 진정으로 나에게 충성을 바쳐왔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이번에 아스카는 진정으로 죽게 될 것이다.

그러면 이제 나와 아인츠발트가 협력해야 할 이유도 남지 않게 된다.

그렇기에 우리의 관계를 재정립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아인츠발트는 반드시 필요한 인재다.’

이 세계에 맞지 않는 초인적인 무력을 보유한 강자.

아인츠발트의 존재는 혼자서도 충분히 강력하지만, 그에게 가르침을 받은 기사들의 비약적인 성장 또한 이끌어 주고 있었다.

5티어와 6티어 사이에 있는 벽을 넘을 방법을 알기 위해서는 자신의 능력으로 그 벽을 넘어선 아인츠발트의 존재가 필수적일 것이다.

게다가 원활한 정복 전쟁을 위해서도 아인츠발트의 도움이 절실했고.

“만일 제가 거부한다면 어떻게 됩니까?”

“나에게 맞서지 않겠다는 서약을 해야 한다.”

내 제안은 절대 나쁜 조건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인츠발트를 잡을 만한 충분한 조건인 것도 아니었다.

솔직히 아인츠발트의 실력이라면 어느 국가를 가더라도 공작의 자리를 받을 수 있을 테니까.

내가 정복 전쟁을 할 것이기에 더욱 그렇다.

자신의 나라가 멸망을 앞두고 있는데 수단과 방법을 가릴 군주는 없을 테니까.

물론 아인츠발트도 나와의 충돌을 원하지는 않겠지만 혹시 모를 일이었다.

반제국 동맹이나 로스니아 제국까지라면 몰라도 대륙 반대편에 있을 동부에는 이종족이 많이 살고 있다고 하니까.

그때라도 아인츠발트와 적대하고 싶진 않았다.

‘아스카와 달라.’

아인츠발트는 아스카보다 약하지만 상대하기에 더 까다로운 상대였다.

왜냐하면 그는 함께 싸우면서 우리 전력을 모두 파악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마법사이기에 기습과는 거리가 먼 아스카와 달리 아인츠발트는 은밀하게 침투해 나를 직접 노리는 게 가능했다.

만약 아인츠발트가 나를 암살하려고 한다면 탈론이나 릴리아나가 곁에 붙어 있더라도 막아내기 어려울 것이다.

“서약을 하면 보내주시는 겁니까?”

아인츠발트는 굳이 서약을 하면 된다는 내 대답을 다시 확인했다.

그리고 그건 옳은 행동이었다.

아인츠발트가 나에게 맞설 생각이 없더라도 나로서는 방치하기 어려웠으니까.

가장 좋은 방법은 그가 나에게 자발적으로 충성하는 것이고, 차선은 두 번 다시 내 앞에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최선과 차선 사이의 간격이 너무 컸다.

아인츠발트를 얻느냐 얻지 못하느냐에 따라서 내 목적이 이루어질 시기가 크게 앞당겨지거나 늦춰질 수 있으니까.

“당장은 보내주겠지. 잡을 능력이 없으니. 하지만 나중에는 어떨지 모르겠군.”

“속내를 숨기지 않으시는군요.”

“어차피 뻔한 걸 굳이 숨겨서 뭐 하겠어?”

경우에 따라서는 아인츠발트가 나에게 검을 휘두를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지금 말하는 것이다.

아직 아스카를 완전히 죽이지 못한 지금이 아니라면 아인츠발트가 어떤 행동을 저지를지 나도 장담할 수 없으니까.

“제가 이 대륙을 피로 물들일 선택을 하리라 여기십니까?”

“그러지 않을 걸 아니까 제안하는 거다. 지금의 전쟁은 내가 죽는다고 해도 멈추지 않는다고 이미 말했을 텐데?”

반제국 동맹과 로스니아 제국은 큰 피해를 입었다.

어쩌면 서로 더 이상의 전쟁을 원치 않고 평화협정을 맺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다른 국가는 어떨까?

약소국들이야 볼 게 없지만 로스니아 제국 너머에 있는 대륙 동부의 국가들은?

특히 로스니아 제국과 맞먹는 것으로 평가되는 또 다른 제국의 입장에서 서부가 스스로 몰락해 버린 지금을 놓치고 싶을까?

장담하는데 절대 그럴 리 없었다.

내가 멈춰봐야 다른 제국이 움직일 뿐.

“차라리 압도적인 힘으로 밀어버리는 쪽이 희생이 적다는 건 증명된 사실이지.”

전쟁에서 제일 골치 아픈 건 양쪽의 전력이 엇비슷할 때다.

서로 건드리지 않고 못 본 척하면 다행이겠지만 일단 방아쇠가 당겨지면 자존심 때문에라도 멈출 수가 없다.

먼저 멈추는 쪽이 패배한다는 걸 아니까.

“그리고 나는 그럴 능력이 있다.”

약소국들을 무너트리고 아스카까지 물리쳤다.

비록 그 과정에서 로스니아 제국이 궤멸적인 피해를 입었지만, 그 책임을 온전히 나에게 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았다면 아스카를 물리칠 방법이 없었을 테니까.

“국왕 전하께서는 타르타로스에서 말한 군주가 되어 신과 같은 힘을 얻길 바라십니까?”

그런 게 있다는 것조차 마족들에게 설명을 듣고서야 알았다.

처음부터 내 목표는 나를 증명하는 거였지 신이 되고 싶다거나, 초월적인 존재가 되겠다는 공상 같은 이야기는 아니었다.

“난 그냥 날 증명하고 싶을 뿐이야.”

아인츠발트는 잠시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오직 희생을 줄이기 위한 일에만 제 검을 쓰겠다고 약속해 주십시오. 그럼 따르겠습니다.”

“쉬운 조건이군.”

당장은 적이라도 결국에는 내가 정복하고 지배해야 할 땅과 백성들이다.

희생을 최소화하는 건 나 역시 바라는 바였다.

“진정으로 내 기사가 된 걸 환영한다. 아인츠발트 공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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