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VIP 영주님의 품격 212화
VVIP 영주님의 품격 212화
212화
“고작 팔 하나 베어 간 것으로 기고만장해진 것이냐!”
아스카는 눈을 부릅뜬 채 소리쳤다.
팔 하나를 잘린 것.
물론 치명적인 부상이다.
그렇지만 어차피 육체 능력보다 마법을 중시하며 죽어도 부활이 가능한 아스카에게 이는 대수롭지 않은 축에 속했다.
아인츠발트의 기습은 위협적이었지만 적어도 한 번에 숨통을 끊지는 못했으니까.
“가이아 브레이크!”
아스카가 힘껏 바닥을 내리쳤다.
아까부터 주변을 잠식하고 있던 마나가 땅속 깊이 파고 들어가 주변을 뒤엎었다.
쿠구구구구!
무지막지한 진동과 함께 대지가 갈라졌다.
운 나쁘게 하필 그 범위에 있던 기사 한 명이 갈라진 바닥으로 떨어져 추락했다.
시신조차 찾을 방법이 없는 아득한 어둠.
하지만 그뿐이었다.
숫자가 많았다면 모를까 내가 데리고 온 병력은 극히 적어서 이런 광범위한 위력의 공격으로는 오히려 큰 피해를 주기 어려웠다.
“아직이다!”
아스카도 그 사실을 알아차리고 연달아서 마법을 펼쳤다.
갈라진 틈 사이로 시뻘건 마그마가 솟구치기 시작했다.
“창의성이 없어.”
하지만 난 그 광경을 시큰둥하게 바라보았다.
바닥을 가르고 마그마를 끌어 올리는 마법은 이미 예전에 말릭이 사용한 바 있었다.
“블리자드!”
마법사 협회의 원로들이 즉각 대응에 나섰다.
켈렌을 중심으로 마법을 펼치자 솟구치던 마그마가 그대로 얼어붙으며 갈라진 바닥도 모두 얼음으로 채워졌다.
난 아스카를 보며 혀를 찼다.
보기에는 화려하고 무시무시할지 모르지만 소수 정예를 상대로 지진이나 마그마는 지극히도 비효율적이었다.
마나가 부족하다고 느낀 적이 없었을 것이기에 효율적으로 마법을 쓰는 방법을 모르는 것이다.
‘물론 효율적으로 싸워본 경험이 없을 테니까 당연하겠지만.’
“이건 어떠냐!”
아스카는 연달아서 대규모 마법을 펼쳤다.
하늘 위에 거대한 마법진이 만들어져 지상에 에너지를 쏘아냈다.
“지구에서도 레이저는 비효율적인 무기라고 판별 난 지 오래라고.”
마법사들이 재빨리 마나 실드를 펼쳤다.
범위 안의 모든 걸 초토화시킨다.
듣기에는 나쁘지 않지만 힘을 집중하지 않고 퍼트리는 이 공격 역시 효율과는 거리가 멀었다.
대기의 불순물을 통과하느라 거리가 멀수록, 범위가 클수록 위력이 형편없어지기 때문이다.
그래도 맨몸으로 맞는다면 위험하겠지만 고티어 마법사들이 나서서 막으면 그뿐이었다.
“날 그딴 눈으로 보지 마라!”
한심하게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에 아스카가 이를 악물었다.
이런 마법들이 통하지 않더라도 선택할 수 있는 마법은 얼마든지 있다는 듯이.
그걸 증명하기라도 하듯 아스카의 주변으로 거대한 팔이 솟아났다.
로스니아 제국군 40만을 순식간에 해치웠던 거대한 마나의 덩어리.
마법사가 아닌 이들도 눈으로 알아볼 수 있는 압축된 마나의 결정이었다.
“학습 능력도 없군.”
난 그를 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탈론이 쏜 화살이 허공을 날았다.
* * *
콰아앙!
아스카가 불러낸 거대한 팔은 탈론의 화살 한 방에 폭발을 일으키며 사라졌다.
아스카는 멍한 얼굴로 탈론을 보았다.
탈론의 화살에 아인이 마나 웨폰을 걸어주는 것만으로 마나 실드를 없애듯 팔을 소멸시켰다.
형태가 어떻든 그것이 마나로 구현한 마법이라면 저 조합을 당해낼 수가 없는 것이다.
‘직접적으로 사용하는 마법은 아예 통하지 않는다는 거냐?’
지진을 일으키거나 마그마를 끌어 올리는 등 간접적인 방법으로만 저 어처구니없는 마법으로부터 대항이 가능했다.
그러나 아스카에게는 그런 마법을 고민할 틈이 없었다.
콰콰콰쾅!
아인츠발트는 아스카를 맹렬히 몰아붙였다.
부활한 아스카에게 형편없이 밀렸던 때와는 상황이 달랐다.
그때와 달리 지금의 아스카 곁에는 도와줄 마족들이 없었다.
반면 아인츠발트에게는 자신을 엄호해 줄 이들이 차고 넘쳤다.
더구나 어느 정도는 충격을 받아넘길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난 장비들까지 갖춰진 상태였다.
‘과거에 쓰던 것과는 비교도 안 되는 장비다.’
루안이 만든 장비는 고대 영웅들이 남겨둔 장비가 무색할 정도로 뛰어났다.
아스카의 봉인지를 지키고 있던 아인츠발트는 동료들이 어떤 논의 끝에 장비를 남겼는지 정확하게는 알지 못했다.
그러나 그들이 장비를 남긴 이유는 결국 후손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일 것이다.
결과적으로 말해 그 행동은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그나마 혹한의 땅인 레이칸 왕국은 문명이 발달하지 못해서 영웅들의 장비만 해도 대단한 명품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국가에서는 그 정도 수준의 장비는 충분히 만들고도 남음이 있었다.
특히 네패스 왕국에서 루안이 만드는 장비들은 고대 영웅들의 장비를 능가했다.
당시 영웅들의 장비가 대륙 전역에 이름이 알려졌을 정도로 대단한 보물이었음을 고려하면 시대가 얼마나 달라졌는지를 알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아인에게서 받은 갑옷은 아예 격이 다르다고 평가해도 좋을 만큼 이 시대를 기준으로도 독보적인 장비였다.
“이 검도 마찬가지고 말이지!”
아스카는 부활과 함께 강해졌으나 아인츠발트는 전혀 성장하지 못했다.
본래라면 얼마 버티지도 못해야 했으나 아인츠발트는 그 차이를 아인에게서 받은 장비로 채워 넣었다.
반면에 아스카는 따로 가지고 있는 장비가 없었다.
애초에 마법사에게 장비는 의미가 없는 데다 무한한 마나를 가졌기에 더욱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으니까.
방어구를 마련할 바에야 마나 실드를, 무기를 들 바에야 마력으로 찍어 누르면 그만인 게 아스카의 전투 방식이었다.
그리고 고대에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 어떤 존재도 아스카나 아인츠발트의 발치에도 닿지 못했으니까.
“하…….”
아스카는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마법사로서 아스카의 경지는 이 대륙 역사상 유례가 없는 수준에까지 닿았다.
로스니아 제국의 40만 대군을 혼자서 휩쓸어 버리는, 머릿수라는 게 일절 통하지 않는 무력을 가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무력이 무색하게도 아스카는 별다른 힘을 쓸 수 없었다.
혼자였으니까.
효율적으로 싸우는 방법을 모르니까.
강자이기에 아스카는 진정한 전투를 알지 못했다.
그 사실을 아스카는 비로소 느끼고 있었다.
‘이 정도인가?’
아무리 많은 숫자가 덤벼봐야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느꼈던 과거와는 다르다.
선두에는 자신도 쉽게 뚫을 수 없는 강자인 아인츠발트가 있다.
그 곁에는 하이에나처럼 치고 빠지기를 반복하며 자신의 발을 묶는 기사들도 있었고.
멀리서 견제를 해오는 마법사나 탈론의 화살도 껄끄럽고 마나 실드를 무력화시키는 아인의 비전 마법에는 기가 막혀서 말도 나오지 않는다.
더구나 그들이 실력 이상으로 힘을 발휘하게 해주는 장비들까지.
이 모든 게 고대에는 상상도 못 할 것들이었다.
‘그때 알아차렸어야 했는데.’
아스카는 베이브에게 마족들이 인류와의 전쟁에서 패배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을 때를 떠올렸다.
그때 눈치챘어야 했다.
이 시대가 자신이 살았던 시대와는 완전히 다른, 사실상 다른 세계와 마찬가지라는 걸.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상식으로는 재단할 수 없는 곳이라는 것을.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나름대로 신중을 기했다고 여겼으나 그건 타르타로스니 가이스트니 하는 존재에 대한 두려움과 베이브를 신뢰하지 못했기 때문에 생긴 망설임에 불과했다.
자신은 진정으로 이 시대에 대해서 이해하지 못했고, 마족을 무찌르고 패권을 손에 넣은 인간에 대해서도 이해하지 못했다.
그나마 로스니아 제국을 휩쓸면서 느낀 거라고는 프로반 백작이 사용하는 비전 마법에 대한 흥미와 화약이라는 신병기에 대한 호기심뿐이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이 시대에선 부수적인 것에 지나지 않았다.
진짜 핵심은 비전 마법도, 화약이라는 병기도 아니었으니까.
촤악!
정신없이 공격을 주고받는 사이 이번에는 릴리아나의 검이 아스카의 허벅지를 갈라냈다.
마나 실드를 탈론의 시야에서 벗어난 후방으로 돌렸으나 아인 또한 탈론이 아닌 다른 기사들에게 마나 웨폰을 부여하며 대응하고 있었다.
어떻게든 아인부터 처리하고 싶었으나 아인츠발트도 그렇고 다른 기사들도 목숨을 잃는 한이 있더라도 아인을 향해 길을 열어줄 생각은 없어 보였다.
‘어중간한 마법으로 요격하는 방법은 통하지도 않을 테고.’
마나로 이루어진 공격은 무용지물.
간접적인 수단을 선택하기에는 사정이 여의치 않았다.
그나마 즉발로 쓸 만한 건 화염 마법 정도인데 그건 마법사 협회에서 꾸준히 대응하고 있었다.
‘분석이 부족했다.’
아스카는 자신이 이렇게 밀리는 이유를 짚었다.
상대의 수가 많아서, 장비가 좋아서라는 문제가 아니다.
자신 또한 이런 정보를 사전에 알았다면 나름대로 대비책을 세웠을 것이다.
그러나 아스카는 그런 정보를 사전에 파악해서 얻는 게 불가능한 입장이었다.
상대의 전력을 파악하려면 일단 싸우면서 부딪쳐 봐야 하는데 아인은 지금까지 이미 알고 있던 아인츠발트 외의 전력을 보여준 적이 없었으니까.
그나마 가지고 있던 세력은 로스니아 제국을 공격하는 데 모두 소모해 버렸고.
당시만 해도 그게 중요한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지금 와서 보니 승패를 뒤집을 수도 있는 큰 실책이었다.
‘몰랐다.’
아스카는 전술이나 전략에 대해서 생각보다 무지했다.
한때 광활한 대지를 다스렸던 위대한 지배자였으나 그 모든 건 순수한 힘만으로 이루어 낸 것이었다.
아스카가 전장에 나타나기만 하면 어떤 전장이든 이기지 못하는 곳이 없었기에.
거대한 영토를 다스리는 복잡한 일은 아랫것들이 담당하면 그뿐이었다.
그러나 그게 문제였다.
너무 강해서 전략이나 전술을 익히는 것에 게을렀고 효율적인 마법을 탐구하지도 않았다.
아스카는 순수하게 힘 그 자체에만 집중하며 살아왔다.
마족으로서는 당연한 일이었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했지만 인류는 달랐다.
이놈들에게는 힘으로 부딪치는 방식이 통하지 않는다.
특히 아인은 더욱 그랬다.
‘마치 이 방식으로 싸움을 걸어오리라는 걸 알고 있기라도 한 거 같군.’
아인의 비전 마법은 지금껏 아스카가 보아온 그 어떤 마법과 비교해도 이질적이었다.
마법사인데도 마법사를 상대하기 위해서 준비된 마법.
차라리 마족 중 누군가가 그런 마법을 개발했다면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마법사의 숫자 자체가 적은 인간이 이런 마법을 개발한 건 기이한 일이었다.
언젠가 자신과 싸우게 되리라는 걸 알고 있기라도 했던 것처럼.
‘아니, 만약 정말 알았다고 해도…….’
아스카는 만약 자신이 훗날 강자와 싸우게 될 것을 알았을 때 이렇게 맞춤형 전략을 준비해 올 수 있을까 고민했지만, 답은 부정적이었다.
지금껏 아스카가 힘의 부족을 느낀 것은 아인츠발트와 처음 대면했던 과거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으니까.
게다가 그 당시에도 패배의 요인은 세월로 인한 노화의 문제가 크다고 여겼다.
나이가 들고 죽음이 가까워질수록 아스카는 죽음을 극복할 방법을 찾아 헤매기만 했다.
그래서 힘을 기르는 것조차 성실하게 하지 못했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그런데도 그 시대에 아스카와 겨룰 수 있었던 상대는 아인츠발트가 유일했으니까.
그 전에 정면으로는 대적할 수 없는 강자와 겨뤄본 경험은 단 한 번도 없었고 그런 경우를 상정해 본 일조차 없었다.
“인정한다.”
상처가 늘어나고 있었다.
아스카는 자신에게 승산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괜찮았다.
이기지는 못해도 죽지는 않을 테니까.
이번에는 배웠으니 싸움의 기회는 나중으로 미루면 될 일이었다.
다시 수백, 수천 년의 세월이 지난다고 해도 그때 승리를 취하면 된다.
이번 패배로 배운 게 있으니 다음에는 반드시 승리하리라고 아스카는 다짐했다.
“하지만 너희는 날 죽이지 못해!”
사방으로 퍼져있던 핏빛의 마나가 아스카의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갑작스러운 이변에 마법사들은 불길함을 감지했다.
“위험하다!”
“물러나시오!”
마법사들이 소리를 질렀으나 이미 늦었다.
아스카의 주위로 모여든 마법은 아스카의 마나를 집어삼키며 타오르기 시작했다.
심상치 않은 조짐을 느낀 기사들은 황급히 몸을 뒤로 빼냈으나 범위를 벗어날 순 없었다.
“이 몸은 절대 죽지 않는다.”
콰콰콰쾅!
아스카는 자신의 마나를 연료로 삼아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화약으로 터트린 것과 비슷한 충격이 일대를 휩쓸었다.
아인츠발트는 선두에서 그 충격을 받아냈으나 다른 기사들까지 그럴 순 없었다.
“끄아악!”
루안이 만든 네임드 장비들이 처참하게 부서지며 기사들의 고통스러운 비명이 주변을 뒤덮었다.
“크으으…….”
마벨은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리며 자신의 왼쪽 어깨를 감쌌다.
지금껏 경험해 본 적 없는 쓰라린 고통도 괴롭지만 무엇보다 견디기 어려운 건 허전해진 팔이었다.
“아아악! 앞이 안 보여!”
“사, 살려줘!”
곳곳에서 비명이 흘러나왔다.
이 자리에 있는 기사들은 모두가 산전수전 다 겪은 이들로 어지간한 고통 정도는 웃으며 넘길 정도로 대범했다.
하지만 그런 인내심도 신체가 짓이겨지고 뜯겨 나간 고통까지 막아줄 수는 없었다.
누군가는 눈에서 피를 줄줄 흘리며 울부짖었고, 누군가는 시뻘겋게 타오른 손을 흔들며 몸부림쳤다.
처참한 광경이었다.
그리고 릴리아나는 그런 끔찍한 현장에서 떨고 있었다.
두려움 때문이 아니다.
고통스러워서도 아니다.
이런 현장에서 아스카를 상대로 매우 근접한 곳에 있었음에도 릴리아나는 상당히 멀쩡한 상태였다.
장비가 좋은 덕도 있겠지만 진짜 이유는 그게 아니었다.
“빅터 경?”
릴리아나의 앞을 빅터가 막아서고 있었다.
부서진 방패를 든 채 힘없이 서 있던 빅터는 릴리아나의 부름에 대답하지 못한 채 앞으로 고꾸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