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VVIP 영주님의 품격-211화 (211/250)

VVIP 영주님의 품격 211화

VVIP 영주님의 품격 211화

211화

* * *

콰콰콰쾅!

아스카와 싸움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갑자기 한쪽에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어찌나 큰 폭발이었는지 주변을 뒤덮고 있던 안개가 충격에 밀려나며 감춰져 있던 풍경을 모두 드러냈다.

“허…….”

이후 눈앞에 펼쳐진 참담한 광경은 아스카와의 싸움에서 잠시 눈을 떼게 만들었다.

삼중 마법을 사용하고서도 흉내 내기 어려울 정도의 거대한 폭발.

그 근처에 있을 구울들은 분명 흔적도 제대로 남기지 못하고 타올랐을 것이다.

하지만 난 그 사실에 전혀 기뻐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저곳은 구울들을 상대하고 있던 아인츠발트도 함께 있었을 곳이기 때문이다.

“크크큭!”

마치 그 사실을 증명해 주기라도 하듯이 아스카가 웃음을 흘렸다.

“어떠냐? 너희 인간의 방식을 흉내 낸 것인데.”

“우리 방식이라고?”

“그래. 로스니아 제국 놈들이 사용하던 특제 화약이다.”

화약에 대한 것이라면 그랜트와 함께 망명했던 키스타에게 들은 것이 있었다.

로스니아 제국에서 이번에 새로 개발한 신형 화약이 불꽃의 위력을 엄청나게 높여줘 마법사의 화염 마법과 조합하면 흉악한 힘을 낸다고 하였다.

그러나 로스니아 제국이 아스카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었기에 그대로 기억에서 잊혔었다.

설마 아스카가 마법도 아니고 인간들이 쓰는 무기에 흥미를 가질 줄은 몰랐으니까.

‘화약을 가까이 가져가면 위험하기 때문에 따로 제작한 망토가 꼭 필요하다고 들었는데.’

화약을 눈치채지 못한 다른 이유도 있었다.

워낙 위력이 강하다 보니 화약을 갖고 근접하는 이들의 목숨을 장담할 수 없었다.

사실상 아군을 자폭시키는 것이나 다름없기에 로스니아 제국 내부에서도 이 화약의 사용에 갑론을박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 결과 나온 해답이 바로 특제 망토.

그러나 구울 중에 망토를 사용하고 있는 구울은 보이지 않았다.

‘하긴, 애초에 구울이니까.’

아스카의 입장에서 구울은 쓰고 버리면 그만인 소모품이었다.

게다가 구울이 화약이 터질 때 망토를 사용하는 복잡한 전략을 제대로 이해하고 쓸 수 있을 가능성도 없었고.

그러니 아스카는 아무런 대비도 없이 구울에게 자폭을 지시한 것이다.

‘프로반 백작의 비전 마법을 구울에게 쓸 때부터 짐작했어야 했는데.’

아스카가 굳이 로스니아 제국을 먼저 공격했던 이유를 이제야 알 거 같았다.

네르바가 타르타로스의 계약자인지 확인하려는 목적만이 아니라 인간들의 전술을 알아보기 위해서였던 게 분명하다.

베이브나 다른 마족에게 전해 듣기는 했겠지만 직접 경험하는 것과 듣기만 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으니까.

그리고 그 결과 아스카는 로스니아 제국을 학습했다.

“저 화약의 위력이라면 아무리 아인츠발트라도 살아남기 어렵겠지.”

미리 알고 방비를 했다면 이야기가 다를지도 모르지만 저래서야 아무리 아인츠발트라고 할지라도 생존 가능성은 매우 낮았다.

설령 어찌어찌 목숨을 부지한다고 해도 전투를 이어나갈 몸 상태는 아닐 것이고.

‘한 방 제대로 먹었군.’

어쩐지 아스카가 서두르는 기미 없이 느긋하게 행동하는 거 같았다.

아스카 정도의 마법사라면 내 영웅들이 가까이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주변 지형을 통째로 휩쓰는 대규모 마법을 펼칠 수 있을 테니까.

그런데 아스카는 지금껏 그런 마법을 쓰지 않고 있었다.

이쪽의 전력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서 탐색전을 하는 줄 알았는데 사실은 아인츠발트가 당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어떠냐? 희망이 눈앞에서 타오르는 광경은?”

아스카는 뒤이어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기사들을 떨쳐냈다.

단순한 마나 블래스트였지만 그 마력은 고티어의 전투형 영웅도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위력이었다.

콰콰콰쾅!

“크으윽!”

3티어 이하의 기사들은 순식간에 나가떨어지고 4티어 이상의 전투형 영웅들도 충격이 엄청났는지 제대로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아인 네패스.”

기사들을 떨쳐낸 아스카는 여유로운 눈길로 나를 보았다.

녀석은 자신의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다.

“너는 확실히 까다로운 상대였다. 이 시대의 인간들은 충분히 우리 마족을 능가하고 대륙의 패권을 거머쥘 자격이 있었어.”

아스카가 한 걸음씩 앞으로 다가왔다.

기사들이 아스카를 막으려고 했으나 제대로 몸을 가누는 기사는 몇 되지 않았다.

무리하게 몸을 일으키려다가 고꾸라지거나 엉망인 몸으로 겨우 무기를 들 뿐이었다.

“하지만 애초에 그럴 자격을 먼저 가졌던 건 나였다. 군주의 존재를 과거에 알았더라면 아인츠발트 같은 녀석이 날 막기도 전에 군주에 올랐을 터.”

“대체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지?”

뜬금없는 이야기에 의문을 표하자 아스카는 피식 웃었다.

“너무 억울해하지 말라는 소리다.”

“조롱이냐?”

“동정이다.”

“남에게 동정을 받을 만큼 실패한 삶을 산 적은 없는데.”

누군가를 짓밟고 올라가는 과정에서 들어야 할 말은 위로가 아니다.

증오와 분노.

그리고 욕설과 시기.

이런 어두운 것들이 아니더라도 동경과 부러움을 받아야지 동정을 받는 건 말이 안 된다.

애초에 동정이라는 건 목적을 이루지 못했을 때 받는 거니까.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군.”

그렇기에 난 아스카를 동정했다.

쐐애액!

방심하고 있는 아스카의 뒤편으로 날아드는 무시무시한 검기.

콰콰콰쾅!

지형을 통째로 바꿔버리는 일격에 아스카가 당황하며 몸을 비틀었다.

촤아악!

그러나 완벽한 기습 상황이었기에 몸을 제대로 피해낼 수는 없었다.

아스카의 팔 하나가 그대로 절단되어 허공을 날았다.

“어떻게!”

폭발 속에서 멀쩡하게 등장한 아인츠발트의 모습에 아스카의 눈빛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놀라기는 했다.”

아인츠발트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분명 화약은 예상한 범위가 아니었기에 나도, 아인츠발트도 깜짝 놀랐다.

설마 로스니아 제국의 화약을 아스카가 사용할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그저 그뿐이다.

예상하지 못했다고 해서 그대로 당할 이유는 없었다.

“이전의 나라면 분명 큰 피해를 입었겠지.”

분명 갑작스러운 대규모 폭발은 8티어 전투형 영웅인 아인츠발트에게도 위협적이었다.

그러나 아인츠발트는 맨몸이 아니었다.

[성천의 레비아탄]

루안이 나에게 만들어 줬던 최상급의 갑옷을 아인츠발트가 입고 있었다.

특히 화염에 대한 내성이 발군인 만큼 신형 화약을 통한 자폭에서도 아인츠발트를 수월하게 지켜냈을 것이다.

본래라면 내가 사용해야 할 장비지만 아스카를 상대로 저 갑옷을 입는 건 비효율적이었다.

애초에 후방에 있는 마법사에게 갑옷의 중요성은 매우 낮으니까.

마나 실드를 펼치기 전 기습에 대비하는 용도로는 쓸 만할지 모르나 단지 그뿐이다.

전투 도중 마나 실드를 뚫고 나를 공격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상대에게는 아무리 좋은 갑옷도 쓸모가 없으니까.

게다가 좋은 장비는 강한 영웅의 손에 있을 때 더 효과를 발휘하는 법이다.

그러니 내가 정면에서 아스카를 상대해야 할 아인츠발트에게 내 갑옷을 넘긴 건 너무 당연한 선택이었다.

그게 가장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열기까지는 막지 못했을 텐데.’

아무리 갑옷이 좋아도 열기 자체를 어찌할 수는 없다.

로스니아 제국도 망토에 걸어둔 마법으로 열기를 막는 방식을 쓰고 있으니까.

그런데도 아인츠발트가 몸 성히 나온 걸 보면 그 정도 수준에 오르면 육체도 평범하지 않다는 의미였다.

이미 확인한 사실이기는 하지만.

‘전투형 영웅은 내구도가 높으니까.’

검 한 자루로 지형을 바꿔버리는 무력을 가진 게 아인츠발트다.

육체가 그걸 받쳐줄 능력이 안 된다면 공격할 때마다 몸이 망가지게 되겠지.

그러지 않는다는 것 자체가 아인츠발트의 몸이 단단하다는 증거였다.

“아스카. 애초에 로스니아 제국 하나만 상대하고 인류를 다 파악했다는 게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나?”

아스카는 오만했다.

아무리 마족들이 나에게 죽었어도 아스카는 자신의 실력 자체는 의심하지 않았다.

그저 타르타로스의 계약자라는 미지의 존재를 경계했을 뿐.

그러나 내가 아스카와 정면으로 싸우지 않고 마족들을 먼저 제거한 건 나 스스로 아스카보다 약하다는 걸 드러낸 행동과 다름없었다.

아스카도 아마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그 사실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정말로 실력에 자신이 있다면 복잡한 전략을 짤 필요 없이 정면에서 깨부수면 되니까.

게다가 로스니아 제국의 40만 대군을 상대하면서 아스카의 기세는 더욱 살아났을 것이다.

로스니아 제국은 대륙 최강국 중 하나.

대륙의 절반을 양분할 수 있을 정도로 절대적인 군사력을 자랑한다.

내가 로스니아 제국을 정면에서 깨부술 능력이 있었다면 진작 점령했을 것이다.

그러니 아스카는 내 군사력이 로스니아 제국보다 부족하며 자신에게도 정면으로 대적할 수준은 아니란 걸 짐작했을 것이다.

그 정도라면 충분히 자신감을 찾을 만도 했다.

하지만 세력의 강함과 개인의 강함에는 큰 차이가 있다.

내가 로스니아 제국을 정복하지 못한 건 그 말도 안 되는 군사력을 감당하지 못해서였지 그곳에 있던 카시안 공작이나 프로반 백작 같은 실력자들을 감당하지 못해서는 아니니까.

게다가 로스니아 제국이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그들의 군사력이 인류의 대표가 될 수는 없다.

나라마다 환경이 다르고 집중하는 분야에도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당장 그 예시로 우리 왕국에는 탈론을 중심으로 한 드래고니안 부대가 있다.

이는 로스니아 제국에는 없는 부대다.

레이칸 왕국에서 이주해 온 전사들은 어떻고?

크레시안 왕국 시절의 북부 전사들도 다른 지역의 기사들과는 다른 병과였다.

거기에 마법사 협회도 그렇다.

로스니아 제국 정도는 되어야 마법사를 전문으로 양성하는 집단이 있지 타 왕국에서 마법사들은 소규모 조직으로 연명하는 수준에 불과하다.

이런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저 최강국을 무너트렸다는 것만으로 다른 곳도 이길 수 있다고 자신했다면 그건 지나친 오만이다.

“이해는 한다.”

그렇기에 아스카를 동정했다.

아스카의 오만에는 나름대로 그럴듯한 사정이 있으니까.

“처음부터 강자로 태어났으니까 약자를 파악하려는 노력 따위를 한 적은 없겠지.”

인류와의 전쟁이 있기 전 마족은 대륙의 패권을 쥐고 있는 종족이었다.

그나마 인류가 문명을 발전시키며 그 뒤를 따라가고는 있었지만 마족에게 인류는 머릿수만 많은 종족에 불과했다.

그래서 전쟁에서 마족이 패배한 것이다.

상대를 얕보고 방심하고 있었기에.

태생부터 강자였던 마족들은 자신의 위에 서 있는 자들을 끌어내리려고 하는 인류의 욕망을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경향은 아스카나 아인츠발트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아스카는 불사에 집착하지만 힘 자체에는 집착하지 않는다.

이미 충분히 강하기에 더 강해질 필요성을 못 느낄 테니까.

아인츠발트도 다르지 않다.

고결한 성품을 타고난 영웅이자 요정족의 소명.

듣기에는 좋다.

타고난 힘이 그냥 주어진 게 아니라 어떤 숭고한 목적을 위해서라고 생각한다면, 적어도 주변에 폐를 끼치지는 않을 테니까.

하지만 그런 생각이나 마음가짐 자체가 강자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강하니까 남들을 살필 여유가 있고 그 때문에 아인츠발트는 기약 없는 봉인까지 받아들였다.

그러나 난 아인츠발트의 그러한 숭고함이 진실하지 않다는 걸 이미 확인했다.

만약 아인츠발트가 한 점의 비겁함도 용납하지 못하는 자라면 로스니아 제국을 미끼로 이용하려는 내 계획에 동참할 리가 없으니까.

아무리 내가 타르타로스의 계약자나 영웅의 후손 같은 대의명분을 내세우고 마족들을 해치워 온 실적을 들이민다고 한들 이를 받아들일 리 없다.

하지만 아인츠발트는 생각보다 쉽게 받아들였다.

이유는 딱 한 가지.

아스카가 아인츠발트보다 강해졌기 때문이다.

자신의 힘만으로는 아스카를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기에 아인츠발트는 상대적인 약자의 입장이 되었다.

그래서 로스니아 제국을 이용하는 방법을 선택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래서야 네가 다른 마족들이랑 다를 게 뭐냐?”

타고난 힘이 더 강한 것 빼고 아스카는 이전의 마족들과 다를 게 없는 존재였다.

베이브가 그러했던 것처럼 인류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고 잘못 파악하고 있었다.

“결국 너나 베이브나 다른 마족들 모두 타고난 힘에 휘둘렸을 뿐인데.”

아래에서부터 올라간 게 아니라 처음부터 정점에 있었기에 저들에게는 효율이나 절박함이라는 마음이 결여되어 있다.

그게 마족들이, 정확히는 강자가 가지고 있는 약점이다.

밑에서부터 올라간 게 아닌 태생적인 강자들은 그런 마음을 끝내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놈들의 앞길은 추락밖에 없다.

안주는 퇴보와 다를 게 없는 단어니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