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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VIP 영주님의 품격-207화 (207/250)

VVIP 영주님의 품격 207화

VVIP 영주님의 품격 207화

207화

* * *

네르바는 거대한 빛에 황급히 시선을 돌렸다.

모든 기사들이 화약을 매단 채로 아스카에게 돌격했다.

대부분의 기사들은 도달하기도 전에 죽었지만 몇몇 기사들이 목적을 이루는 데 성공했다.

그거면 충분했다.

콰콰콰콰쾅!

뒤늦게 빛을 따라온 폭음이 일대를 집어삼켰다.

끔찍한 외형의 구울들은 막대한 화염을 견디지 못한 채 휩쓸려 사라졌다.

“끔찍하군.”

네르바의 평가에 귀족들도 할 말을 잃었다.

제국에서 최근 개발된 신형 화약.

사전에 듣기는 했지만 설마 이 정도 위력을 보이리라고는 그들도 예상하지 못한 상태였다.

“하지만 이거라면 마족도 분명 치명상을 입었을 겁니다.”

마나 실드 정도로 견딜 수 있는 위력이 아니었다.

요새 같은 것도 한 번에 무너트리고 남을 정도의 위력이었으니까.

“부디 그래야 할 텐데.”

네르바는 이글거리는 대지를 바라보았다.

서서히 모래 먼지가 걷히며 아스카의 모습이 드러나고 있었다.

* * *

“쿨럭!”

케프리 남작은 마른기침을 내뱉었다.

한순간에 강렬한 열기가 산소를 앗아 가고 눈부신 빛에 실명까지 할 뻔한 위기였다.

그러나 케프리 남작은 어떤 피해도 입지 않은 상태였다.

‘성능 하나는 끝내주는군!’

처음 신형 화약을 쓰라고 들었을 때 케프리 남작은 네르바가 기사들을 모두 버림 말로 쓰는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로스니아 제국은 이 화약을 사용할 기사를 보호하기 위한 수단도 함께 준비했다.

그게 바로 특수한 처리를 한 가죽과 거기에 새겨진 마법진이었다.

프로반 백작의 비전 마법을 연구해서 배포했다는 이 마법진은 근처의 열기가 일정 수준을 넘어가면 강력한 냉기를 내뿜도록 되어 있었다.

거기에 망토 역시 열에 강한 소재로 만들어져 전혀 불타지 않았다.

‘아직 완성된 무기가 아니라는 게 아쉽지만.’

고작 한 번의 공격으로 활용하기에는 지극히 비효율적이었다.

화약의 생산 비용부터 망토나 마법진을 새기는 일까지.

실제로 이걸 잘 활용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제국 내부에서도 의견이 분분한 상태였다.

그러나 지금 상태로 봤을 때 조만간 제대로 활용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에버트! 살아 있나?”

케프리 남작의 부름에 에버트도 망토를 치우고 몸을 일으켰다.

“어찌 살아는 있습니다.”

에버트는 한숨을 내쉬었다.

열기야 망토와 마법진으로 막는다고 해도 폭발의 충격은 갑옷과 기사의 몸으로 온전히 감당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 다쳤던 발목이 충격을 받아 시큰거렸다.

“살아 있으면 됐어.”

케프리 남작은 아스카가 있던 곳을 돌아봤다.

아무리 엄청난 수준의 마법사라고 해도 마나 실드가 견딜 수 있는 충격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리고 그 한계란 건 의외로 그렇게 큰 편이 아니었다.

숙련된 기사의 검은 막아도 날아드는 바윗덩이는 막지 못하는 법.

신형 화약을 통해서 일으킨 대폭발 역시 마나 실드 따위에 막힐 것이 아니었다.

“크윽!”

역시나 먼지가 걷히고 슬쩍 드러난 아스카의 상태는 엉망이었다.

화약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던 아스카는 순식간에 위력이 몇 배로 강화된 화염에 마나 실드를 잃고 말았다.

“그래도 아직 죽지는 않았군.”

케프리 남작은 다시 검을 쥐고 아스카를 향해 다가갔다.

상대가 언제 정신을 차릴지 모르는 상황에서 굳이 시간을 끌 필요는 없었다.

촤악!

케프리 남작의 검은 그대로 아스카의 목을 잘라냈다.

“하아.”

상대가 죽은 걸 확인한 케프리 남작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무수한 기사들의 희생으로 이루어낸 성과였다.

마무리를 가한 게 자신이지만 희생 없이는 이룰 수 없던 결과였기에 기쁘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오히려 희생까지 치러야 할 정도로 내몰려 버린 제국의 상황이 안타까웠다.

“이봐. 에버트라고 했나?”

“그렇습니다.”

케프리 남작의 부름에 에버트는 서둘러 대답했다.

“제던 자작님의 밑에 있다고 했었지? 그러지 말고 내 밑으로 올 생각은 없나?”

“감사한 제안이지만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그럴 거 같았지.”

케프리 남작은 굳이 두 번 권유하지 않았다.

제던 자작은 제법 권력도 있고 평판도 좋은 귀족이었다.

게다가 돌아온 아드리안 황태자 아래에서 상당히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거기에 비하자면 자신은 그리 내세울 게 없었다.

카시안 공작의 세력과 싸우면서 휘하 병력도 거의 다 잃고 이제는 정말 소수의 인맥밖에 남지 않은 상태였다.

“돌아가서 술이나 진탕 마시도록 하자고.”

“그러지요.”

케프리 남작이 돌아가기 위해 몸을 돌리는 순간이었다.

콰작!

섬뜩한 소리와 함께 케프리 남작의 목이 뜯겨 나갔다.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참상에 에버트는 충격을 받아 입조차 열지 못했다.

분명 죽었다고 생각한 아스카가 어느새 다시 목이 붙은 채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방심한 상태였다지만 설마 너희 같은 놈들이 한 번이라도 나를 죽이는 일이 가능할 줄이야.”

아스카는 제국의 저력에 다시금 놀랐다.

불이 닿으면 폭발하는 물질이 있다는 건 알았지만, 이렇게 무기로 대대적으로 활용하는 방식을 아스카는 전혀 알지 못했다.

마족들도 미처 그런 걸 알려줄 생각은 하지 못했었고.

덕분에 어이없게 목숨을 한 번 잃었으나 그뿐이었다.

“이래서 나는 죽음이 싫다. 아무리 강해도 한순간에 모든 걸 잃을 수도 있으니까.”

절대 죽을 일이 없는 진정한 불사.

아스카는 한 번의 죽음으로 그 열망을 다시금 떠올렸다.

상대를 두려워하고 속앓이를 하는 건 자신에게 맞지 않는 일이었다.

언제나 두려움을 느껴야 하는 건 자신이 아니라 상대였으니까.

“이 자식이!”

정신을 차린 에버트가 아스카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러나 발목의 통증 때문에 어설픈 공격에 불과했다.

아스카는 마나 실드 없이 순수한 육탄전으로 에버트를 쳐 날렸다.

콰아앙!

무지막지한 괴력에 에버트의 몸이 나가떨어졌다.

“커헉!”

에버트는 입에서 피를 토해냈다.

부러진 뼛조각이 장기를 찌른 상태였다.

즉사하지 않았다고 해도 이런 상태로는 오래 살아남을 수 없었다.

아스카는 에버트를 내버려 둔 채 남은 제국군에게로 시선을 보냈다.

“최대한 시신을 온존해서 많은 구울을 만들려고 했지만 생각이 바뀌었다.”

아스카의 주위로 핏빛의 마나가 넘실거리며 일대를 잠식했다.

“모두 다 쓸어버려 주마.”

* * *

전장을 주시하던 네르바는 곧 이변을 알아차렸다.

마법사들이 당황하며 날뛰었기 때문이다.

“위험합니다! 황태자 전하, 어서 피하셔야 합니다!”

“마나 실드를 준비해라! 빨리!”

“황태자 전하의 곁으로 모여라!”

마법사들은 서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네르바의 곁으로 모여들었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한 근처의 귀족들도 서두르고 있었다.

거리가 먼 이들은 아예 몸을 돌려서 달아나기도 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거지?’

네르바는 어찌할 줄을 모르고 당황하다 이윽고 아스카의 존재를 발견했다.

그리고 그 앞으로 모습을 드러낸 거대한 마법 또한.

‘저게 무슨?’

그것은 매우 거대하고 흉측한 손이었다.

어떤 생물이라고 짐작할 수도 없을 정도로, 어지간한 건물보다도 더 큰 손이 자신들을 향하고 있었다.

“어떻게 저럴 수가!”

그 손의 정체를 알아차린 마법사들은 미친 듯이 발작하고 있었다.

놀랍게도 저 거대한 손은 생물의 것이 아니었다.

애초에 저만한 크기의 생물이 존재하지 않으니 당연하겠지만, 문제는 손을 이루고 있는 것이 순수한 마나란 사실이었다.

“실체화라니, 마나를 저렇게 눈에 보일 정도로 모은다고?”

마법사가 아니라면 느낄 수조차 없는 게 마나였다.

그런데 아스카는 마법사가 아닌 이들이라도 한눈에 볼 수 있을 정도로 말도 안 되는 밀도로 마나를 모은 상태였다.

“죽어라.”

다음 순간 마나로 이루어진 거대한 손이 네르바를 비롯해 수뇌부가 있는 곳으로 떨어졌다.

마법사들이 최선을 다해서 펼친 마나 실드는 순수한 마나의 덩어리를 감당하지 못했다.

콰콰콰콰쾅!

마나 실드를 깨부순 손은 수뇌부와 충돌하는 순간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로스니아 제국에서 준비한 폭발보다도 그 위력이 확연히 앞서는 수준이었다.

“다음은 너희다.”

게다가 아스카의 공격은 한 번으로 그치지 않았다.

몇 개의 손들이 더 만들어져 40만 제국군을 향해 쏟아졌다.

몇 번이나 폭발이 일어나며 그때마다 수천의 목숨이 허망하게 스러졌다.

푸욱!

그때 엉금엉금 기어온 에버트가 아스카의 몸에 검을 찔러 넣었다.

아스카는 힐끔 시선을 내려 에버트를 보았다.

마나 실드는 일부러 사용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래. 그럴 줄 알았지.”

자신들의 목숨이 위태롭다는 걸 알고도 덤벼든 기사들이었다.

도중에 반격을 당해 죽을 수도 있었고 망토가 제 기능을 못 해 아군에게 죽을 수도 있었다.

그런 것을 모두 감수한 인물들이기에 아스카는 에버트가 어떻게든 자신을 공격할 거라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무의미하다.”

굳이 마나 실드를 쓰지 않아도 자신을 죽일 수 있는 존재는 없었다.

설령 아인츠발트라고 할지라도.

그런데도 처음에 마나 실드를 사용한 건 마나 실드를 뚫으면 이길 수 있다는 거짓된 희망을 주기 위해서였다.

지금은 반대였다.

에버트의 상태로는 마나 실드를 뚫을 가능성이 없었기에 아스카는 굳이 마나 실드를 쓰지 않은 채 에버트가 오기를 기다렸다.

그가 절망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왜 굳이 손의 형상을 한 공격을 한 줄 아느냐?”

아스카는 발을 들어 에버트의 머리를 짓눌렀다.

투구를 쓰고 있지만 힘주어 밟는다면 얼마든지 뭉개버릴 수 있는 수준이었다.

“네놈들이 벌레 같은 놈들이라는 걸 깨닫게 해주기 위해서다.”

콰작!

아스카는 에버트를 마무리하고 몸을 돌렸다.

로스니아 제국 40만 대군과 마족 하나의 싸움은 그렇게 일방적인 학살로 막을 내렸다.

* * *

“전하!”

네일이 내 허락도 받지 않고 집무실 안으로 뛰쳐 들었다.

절차를 지킬 생각도 못 하는 다급함에서 난 네일이 가져온 소식이 아스카와 관련되어 있을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아스카가, 아스카가 로스니아 제국에 나타났습니다!”

다행이라고 한다면 아스카의 공격 목표가 우리가 아니란 사실이었다.

아직 아스카의 불사를 깰 방법을 찾지 못한 상태였기에 조금 더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어떻게 됐지?”

“로스니아 제국에서 각 지역의 군대를 모두 소집해서 토벌에 나섰습니다만…….”

네일은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그것으로 싸움의 결과를 알 수 있었다.

아무리 큰 희생이 있었더라도 로스니아 제국이 이겼다면 이렇게 네일의 말문이 막히지는 않았을 테니까.

“아드리안 황태자는 어떻게 되었지?”

규모가 규모이니 전투에는 아드리안 황태자 행세를 하고 있는 네르바 역시 참가했을 것이다.

후방에서 지켜보는 것뿐이겠지만.

“생사 불명입니다. 시신을 확인할 수 없을 정도로 큰 피해가 나온 모양입니다.”

설령 병력이 전멸하는 한이 있더라도 보통 지휘관의 생사는 쉽게 판단되는 법이었다.

지휘부는 아무래도 전장을 판단하기 위해 다소 거리를 두는 편인 데다, 주변에 있는 이들의 복장에 다소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것이 전혀 파악되지 않을 정도라면 이는 지휘부와 일반 부대를 가릴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피해를 냈다는 소리였다.

‘냉병기로는 아예 불가능하지.’

마법으로 쓸어버린 게 분명했다.

아무리 그래도 로스니아 제국이 이리 빠르게 당할 줄은 몰랐지만.

실제로 제국의 드넓은 영토를 생각해 봤을 때 맞서지 않고 도망치는 길을 선택했다면 아무리 아스카라도 이리 쉽게 제국군을 없애지는 못했을 것이다.

‘아스카도 아드리안 황태자가 계약자가 아니란 건 알았을 테고.’

그럼 다음 아스카의 목표는 안 봐도 뻔했다.

쓸데없이 엉뚱한 곳을 돌면서 내가 공포에 질리기를 바라는 게 아니라면 아스카는 이곳으로 오고 있을 것이다.

“네일, 즉시 왕궁을 비워라.”

내 왕국에서 싸울 생각은 없다.

말릭만 봐도 주변 지형을 완전히 초토화시키는 수준의 엄청난 위력을 선보였었다.

아스카가 작정하고 마법을 사용한다면 인류는 지도를 새로 그려야만 할 것이다.

가능하다면 아무것도 없는 평야나 왕국 밖에서 싸우는 게 맞았다.

하지만 아스카와 길이 엇갈릴지도 모르니 안전을 위해선 왕궁을 모두 비우는 게 최선이었다.

“그리고 기사단을 모두 소집하고 마법사 협회에 연락해라.”

로스니아 제국의 실수는 40만이나 되는 대군을 불러들인 것이었다.

정예만 모아서 싸웠다면 패배했을지언정 희생이 많이 나오지는 않았을 텐데.

난 제국과 같은 실수를 반복할 생각은 없었다.

이쪽의 전력은 최대한 가려서 뽑을 것이다.

나머지는 구울들을 막아주는 정도로 충분하니까.

“알겠습니다.”

네일이 명령을 전하러 떠난 뒤 아인츠발트가 안으로 들어왔다.

표정으로 봐서 벌써 소식을 들은 모양이었다.

“로스니아 제국이 당했다는 게 정말입니까?”

“그런 모양이군.”

“맙소사. 설마 제국을 먼저 공격할 줄이야.”

아인츠발트는 아스카의 공격 목표가 우리일 거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충분히 그럴 만한 추측이었다.

그리고 어차피 시간문제였다.

로스니아 제국 다음은 우리 네패스 왕국이란 건 뻔한 수순이니까.

“어쩌면 다시 봉인당해야 할 수도 있다. 각오는 되어 있나?”

아스카를 죽일 방법을 찾기 전에 싸울 때를 대비해 이미 아인츠발트에게는 다시 봉인을 해야 하는 수가 있다는 말을 전한 상태였다.

난 봉인에 대해 잘 알지 못하지만 레이칸 왕국에서 봤던 기억이 어느 정도 있고, 결정적으로 마법사 협회에서 방법을 찾아냈다.

봉인이란 게 흔한 마법은 아니지만 사교도의 마법보다는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이니까.

지부장과 협회의 마법사들을 모두 동원해서 갈아 넣으니 어떻게든 마법을 준비할 수 있었다.

“기꺼이.”

아인츠발트는 기약 없는 봉인을 다시 한번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 고결한 행동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누군가 알아주지도 않고 언제까지 고통받아야 할지도 알 수 없는 일.

나라면 그렇게 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영웅이 아니었다.

“날 믿어라. 비열한 수를 쓰더라도 아스카를 이길 테니까.”

그리고 영웅이 아니기에 얼마든지 비열한 수를 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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