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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VIP 영주님의 품격-206화 (206/250)

VVIP 영주님의 품격 206화

VVIP 영주님의 품격 206화

206화

* * *

아스카가 로스니아 제국을 다시 침공한 건 확인이 필요해서였다.

사전에 파악했던 대로, 아인츠발트와 타르타로스의 계약자가 로스니아 제국에 있는지 아닌지.

그리고 지금 아스카는 그 의문에 대한 답을 알아낸 상태였다.

로스니아 제국은 타르타로스의 계약자가 있는 곳이 아니었다.

‘시간은 충분히 줬다. 피해를 우려한다면 이렇게 많은 병력을 동원하지는 않았을 거야.’

자신의 실력에 대해 잘 안다면 절대로 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여기에는 아인츠발트나 타르타로스의 계약자가 없다.’

아드리안 황태자를 계약자로 의심했던 추측이 틀렸다는 소리였다.

그리고 그 대가로 남아 있던 마족들이 희생되었으니 오판의 대가는 뼈저리게 치른 셈이었다.

‘그렇다면 네놈들도 모두 내 부하로 삼아주지.’

아스카가 로스니아 제국을 목표로 삼은 이유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모든 세력들을 잃은 상태로 홀로 싸우는 게 무모하다는 건 아스카도 알고 있었다.

어떻게든 힘을 키워야 했고 가장 좋은 방법은 구울의 숫자를 늘리는 일이었다.

마나는 넘쳐나니 시신을 보충해야 하는데 로스니아 제국은 딱 좋은 상대였다.

이렇게 어마어마한 대군을 한곳에 잘 모아주었으니.

‘이 정도 숫자의 군대라면 아무리 타르타로스의 계약자라도 쉽게 상대할 수는 없겠지.’

아직까지 대륙을 정복하지 못하고 있는 건 제국이라는 세력을 꺾을 능력이 없다는 의미였다.

아스카는 이를 기반으로 제국군을 부린다면 충분히 싸워볼 만하다고 판단했다.

“구울을 아무리 공격해 봐야 소용없다! 마족을 해치워라!”

로스니아 제국의 지휘관들은 곧장 부대를 둘로 나누었다.

아무리 구울들을 무찔러 봐야 후방에 있는 아스카를 처치하지 못한다면 헛고생에 불과했다.

그리하여 제국은 아스카를 무찌르기 위하여 정예를 따로 준비해 두었다.

“거창!”

그렇게 아스카를 무찌르기 위해 나선 제국의 기사들은 마상용 창을 내세워 앞을 가로막는 구울 무리를 무자비하게 분쇄시켰다.

뛰어난 기사들이 일제히 펼치는 기마 돌격 앞에선 구울이라고 해도 전혀 힘을 쓸 수 없었다.

기사들은 깔려서 짓이겨지는 구울들을 뚫고 순식간에 아스카의 앞까지 접근했다.

“마법이 아닌데도 구울들을 이렇게 쉽게 처치하다니.”

아스카는 그 모습에 감탄했다.

과거 영웅들을 제외하고 자신의 구울을 이토록 쉽게 처치하는 이들은 본 적이 없었다.

베이브의 말에 의하면 로스니아 제국은 최근 실력 있는 기사들이 죽으면서 전력이 크게 떨어졌다는데도 이 정도였다.

전성기의 로스니아 제국이 어땠을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하압!”

특히 눈에 띄는 건 유독 허전한 소매를 드러내고 있는 외팔의 기사였다.

아스카는 몰랐으나 그의 정체는 케프리 남작이었다.

본래라면 카시안 공작을 방해하고 반기를 든 대가로 반역자가 되었어야 할 케프리 남작은 네르바 덕분에 목숨을 건진 뒤 네르바의 아래에서 종군하고 있었다.

네르바는 카시안 공작과 싸우기 위해서 케프리 남작처럼 인정받지 못했던 출신이 낮은 이들을 끌어온 상태였다.

“흐음.”

네르바는 케프리 남작의 활약을 보다가 구울 하나를 앞으로 내보냈다.

기사의 복장을 한 구울은 네르바의 명령에 따라서 케프리 남작을 향해 사납게 달려들었다.

카앙!

“크윽!”

말 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구울과 충돌하는 순간 케프리 남작은 상당한 충격을 받고 말았다.

“구울 따위가 어떻게?”

놀랍게도 구울은 상당한 수준의 검술을 구사하고 있었다.

이성을 잃고 맹목적으로 달려드는 일반적인 구울의 모습과는 다른 광경이었다.

“캬아악!”

구울은 뒤이어 케프리 남작을 몰아쳤다.

이미 첫 충돌에서 말의 기동성을 상당 부분 상실한 케프리 남작은 구울을 떨쳐내지 못하고 붙들렸다.

이대로는 아스카에게 향할 수 없었기에 케프리 남작은 다른 기사들에게 아스카를 맡기고 구울과 전력으로 맞부딪쳤다.

채채챙!

‘제기랄!’

무기를 주고받을수록 케프리 남작의 표정은 급격히 일그러졌다.

처음 충돌에서 받은 대미지가 빠르게 누적되고 있었다.

이는 케프리 남작이 외팔이라는 점이 문제였다.

충격을 받거나 흘려내는 일을 철저하게 한 손에만 의존하다 보니 보통의 기사들보다 대미지가 쌓이는 속도가 훨씬 빨랐다.

반면에 구울은 자잘한 부상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고 맹공을 퍼부었다.

“물러서십시오!”

그때 한 명의 기사가 끼어들어 케프리 남작과 맞서던 구울을 기습했다.

콰앙!

달리던 말이 정면으로 충돌하자 구울은 그대로 고꾸라졌다.

휘릭!

기사는 뒤이어 말에서 뛰어내려 바닥을 구르더니 쓰러져 있는 구울의 안면을 향해 둔기를 내려찍었다.

콰작!

그야말로 깔끔한 공격으로 자신을 애먹인 구울을 퇴치하는 모습에 케프리 남작은 순간 멍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기습을 통해 빈틈을 유도했다지만 상당한 실력자였다.

“그대는 누구지?”

“제던 자작님 휘하의 기사 에버트라고 합니다.”

기사의 정체는 은퇴한 기사 에버트였다.

젊은 시절 제던 자작의 밑에서 종군했던 에버트는 발목 부상 이후 촌장 노릇이나 하며 살아가던 몸이었다.

하지만 마족의 침공으로 국경이 무너졌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전장으로 나왔다.

“조력에 감사하네. 솜씨가 대단하군.”

“케프리 남작님께서 놈의 시선을 붙잡고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에버트는 구울이 다시 움직이지는 않는지 살핀 뒤 힘겹게 말에 올랐다.

케프리 남작은 에버트의 동작에서 부자연스러움을 느끼고 놀라서 물었다.

“다쳤나?”

“예전에 발목을 다쳤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아직도 기사로 활동하는 거지?”

“당연히 은퇴했던 몸입니다. 하지만 제국이 위험한 상황에서 기사였던 자가 어떻게 가만히 있겠습니까? 다시 복귀해야지요.”

케프리 남작은 새삼스러운 눈으로 에버트를 보았다.

아예 팔 하나를 잃은 자신과 비교할 정도는 아니지만, 발목 부상 역시 기사로서 남지 못할 큰 부상에 속했다.

그런데도 이렇게 싸우는 모습은 상당히 감명 깊었다.

“전투가 끝나고도 죽지 않았다면 나를 찾아오게. 같이 술이나 한잔하지.”

“그거 좋지요.”

에버트는 케프리 남작의 제의를 받아들였다.

과연 술을 마실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었지만.

‘구울 놈들의 기세가 만만치 않군.’

멀리서 본 케프리 남작의 솜씨는 이름 있는 기사들 못지않았다.

하지만 고작 구울 하나에 막혀서 고전하고 있었다.

복장이나 검술을 구사하는 걸로 보아 특별한 구울인 듯했지만 상당히 신경 쓰였다.

콰콰쾅!

그때였다.

말의 고삐를 당기는 순간 전방에서 엄청난 풍압이 몰려와 일대를 휩쓸었다.

그 위력이 얼마나 강한지 말이 균형을 잡지 못하고 나자빠질 정도였다.

“크윽!”

에버트는 버티지 않고 재빨리 뛰어내려 바닥을 굴렀다.

다친 발목에 부담이 되지 않으려면 몸으로 바닥을 뒹구는 게 최선이었기 때문이다.

“자네 괜찮나?”

쓰러진 에버트의 곁으로 어느새 케프리 남작이 다가왔다.

“저는 괜찮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거 설마 마족의 마법입니까?”

전방을 살핀 에버트는 눈살을 찌푸렸다.

앞에서 달려나가던 기사단이 처참하게 찢긴 채 고깃덩어리가 되어버린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마나 블래스트인 거 같은데 무슨 위력이…….”

중무장한 기사들을 처참하게 갈아버리는 위력에 에버트는 혀를 찼다.

마법사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마나 블래스트는 인간 마법사가 아닌 마족 또한 기본적으로 쓰는 마법이었다.

하지만 그 마나 블래스트가 이렇게 흉악한 위력을 보인 건 난생처음이었다.

“프로반 백작 각하께서 저 마족 때문에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본능이 당장 이 자리를 벗어나 도망치라고 경고를 보내왔다.

그러나 에버트는 이를 무시했다.

어차피 목숨을 버릴 각오는 하고 나선 몸이었기에.

‘제자 놈 다 가르치지도 못했는데.’

다만 아쉬운 건 제자였다.

마을에서 자경단을 이끌고 있는 제자를 아직 충분히 가르치지 못한 상태였다.

“여기 있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말이 다쳤는데 그 발목으로 어떻게 움직이겠나? 숨어 있거나 후방으로 물러나게.”

“제가 그러려고 전장으로 돌아온 줄 아십니까?”

케프리 남작의 말에 에버트는 인상을 찌푸렸다.

굳이 다친 발목을 이끌고 복귀한 이유는 제국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이렇게 짐 덩어리 취급을 받을 순 없었다.

“그럼 그 발목으로 따라올 수 있겠나?”

“아무렴 외팔이보다는 낫지 않겠습니까?”

에버트는 최대한 다친 발목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신경 쓰며 몸을 일으켰다.

그 와중에 자신이 외팔이라는 걸 지적받은 케프리 남작 역시 표정이 굳어졌다.

설마 면전에서 자신이 외팔이라는 걸 대놓고 언급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상대가 대단한 귀족도 아니었기에 더욱 충격적이었다.

“살아서 돌아가면 반드시 나를 찾아오게.”

“음. 꼭 그래야 합니까?”

“반드시.”

케프리 남작의 목소리에는 진심이 서려 있었다.

에버트는 흥분해서 실수했다는 걸 깨달았지만 이미 늦은 상태였다.

* * *

콰콰쾅!

아스카는 한 차례 더 마법을 날려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기사들을 쓸어버렸다.

기사들의 돌파력은 상당했지만 그들도 아스카의 마법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퍼퍼퍼펑!

저 멀리서 아스카를 요격하기 위한 마법들이 날아왔지만 그건 넓게 펼쳐놓은 마나 실드를 뚫지 못하고 있었다.

‘숫자는 많지만 구울들을 뚫을 수 있는 전력은 한정되어 있군.’

아무리 잘 훈련된 강군이라고 해도 기사들과 달리 일개 보병들은 구울을 넘지 못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아스카를 노리는 기사들의 숫자나 방향은 한정된 상태였다.

더구나 일렬로 달려드는 덕분에 한꺼번에 쓸어버리기도 편했다.

‘역시 인간이 모두 강한 건 아니야.’

아스카는 과거에 자신이 알던 인간들과 지금의 인간들을 비교했다.

그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강자들의 숫자는 한정되어 있었다.

다만 로스니아 제국은 어마어마한 인구만큼이나 강자의 숫자 역시 상당히 많았다.

‘보통의 국가라면 이쯤 되면 공격을 멈출 만도 한데.’

아스카가 날려버린 기사가 벌써 수백이었다.

이 정도로 피해가 나오면 나머지 기사들은 겁을 먹어서 움직이지 못하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로스니아 제국의 기사들은 앞의 피해를 보고서도 거침없이 몰려들고 있었다.

‘내 마나가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거라면 어리석은 생각이야.’

아스카는 기사들이 무엇 때문에 그러는지 이해했다.

아무리 구울 군대를 이끌어봐야 결국 자신은 혼자였다.

마법은 마나라는 자원을 끊임없이 소모해야 하기에 전투가 길어지면 마나가 바닥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마법사의 이야기였다.

아스카는 보통의 마법사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마나를 가진 데다 베이브가 부활시키면서 새로 만든 보주 덕에 회복력 역시 엄청났다.

거의 무한에 가깝게 마나가 모이니 아무리 전투가 길어져도 마나가 떨어질 일은 없었다.

쐐액!

그때 아스카의 눈앞으로 투창이 날아들었다.

콰앙!

마나 실드를 뚫을 위력은 아니었으나 묵직한 소리에 아스카는 눈길을 보냈다.

아까 특별한 구울을 보냈던 외팔의 기사가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죽었을 줄 알았는데 제법이군.”

구울의 정체는 동부 국경에서 해치운 실력 있는 기사였다.

일반적인 구울과 달리 다소 신경 써서 제작했기에 살아생전의 무력을 어느 정도 보유하고 있었다.

거기에 구울이라는 특징 때문에 방어를 무시한 채 공격을 퍼부을 수 있어 어지간한 기사라도 감당하기 어려운 녀석이었다.

“이미 옛적에 한 번 패했다는 늙은 마족 따위가.”

케프리 남작의 조롱에 아스카의 눈매가 꿈틀거렸다.

“그런 팔을 단 걸 보면 그쪽도 패배한 건 마찬가지 같은데?”

아스카는 케프리 남작의 도발을 기꺼이 받아주었다.

대부분의 세월을 봉인당해 있었지만 살아생전 입심으로도 남에게 얕보인 적은 없었다.

휘릭!

케프리 남작은 아스카의 말을 무시한 채 달려들었다.

콰앙!

깔끔한 공격이 이어졌으나 아스카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외팔이치고 놀라울 정도로 실력이 좋은 기사지만 결국에는 외팔이였다.

무기를 양손으로 휘두르지도 못하니 마나 실드를 뚫을 위력이 나올 리 없었다.

“어이가 없군. 그런 공격으로 뭘 어쩌겠다는 거지?”

“어쩌기는!”

다음 순간 케프리 남작은 허리춤으로 손을 가져가더니 무기를 바꿔 들었다.

검 대신 날카로운 침이 박힌 메이스가 케프리 남작의 손에 쥐여졌다.

콰아앙!

검보다 훨씬 강한 충격이 마나 실드를 때렸으나 아스카는 여전히 여유로웠다.

어차피 외팔이라는 게 달라지지 않는 이상 무기를 바꿔봐야 그 안에 담긴 힘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지금이다!”

그런데 그 순간 케프리 남작이 어딘가를 향해 소리쳤다.

케프리 남작의 외침과 함께 느껴진 기척에 아스카는 황급히 시선을 돌렸다.

상당히 은밀하게 다가온 기사 하나가 아스카의 후방으로 접근해 있었다.

에버트였다.

‘그리 강해 보이지는 않는데?’

아스카는 에버트를 살피고 대략적인 강함을 판단했다.

차라리 눈앞의 외팔이 기사가 더 강하면 강했지 에버트는 아스카에게 위협이 될 수준이 아니었다.

그래도 무언가 노림수가 있는 것 같아서 경계하는데 그때 케프리 남작이 아스카를 비웃었다.

“여기에 속다니.”

“뭣?”

다음 순간 케프리 남작은 갑자기 메이스의 손잡이를 비틀었다.

그러자 메이스에서 매캐한 냄새가 퍼져 나왔다.

‘설마 독?’

아스카는 어이없는 눈으로 케프리 남작을 바라보았다.

미리 대기 중에 뿌린 거라면 모를까, 마나 실드를 펼친 상태에서 독이 통할 리 없었다.

“겨우 그딴 게 통할 거라 생각하나?”

게다가 아스카는 독이라면 나름대로 내성도 가지고 있었다.

구울들이 가지고 있는 시독을 가까이하면서 자연스럽게 생긴 내성이었다.

“이게 독 같나?”

케프리 남작은 전혀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는 아스카를 비웃었다.

과연 고대의 마족다웠다.

인류가 지난 세월 다듬고 가공해 온 화약을 제대로 알아보지도 못할 줄이야.

파앙!

에버트는 급하게 신호탄을 쏘아 보냈다.

로스니아 제국은 처음부터 기사들이 아스카를 상대로 유효한 피해를 주리라 예상하지 않았다.

그래서 준비한 전략이 바로 기사들이 직접 나서 화약을 준비하는 것이었다.

우우웅!

신호탄을 확인한 제국 마법사들이 일제히 마법을 발동시켰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무수한 불덩어리가 서로 뒤섞인 채 이 장소를 향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하늘에서 불의 비가 떨어지는 듯한 광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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