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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VIP 영주님의 품격-204화 (204/250)

VVIP 영주님의 품격 204화

VVIP 영주님의 품격 204화

204화

* * *

아스카가 아지트로 귀환한 건 다소의 시간이 흐른 뒤였다.

프로반 백작과 안덴스의 저항이 생각보다 격렬했던 것도 있지만, 아스카는 마족들이 죽은 것에 대한 분풀이를 위해 일부러 그들을 가지고 놀다가 처치했다.

하지만 그사이 아지트에는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져 있었다.

“허?”

엉망이 된 아지트 내부와 전투의 흔적을 확인한 아스카는 인상을 잔뜩 구겼다.

타르타로스의 계약자.

처음으로 마주한 타르타로스의 존재인 위니스를 봤을 때부터 불안했지만 예상을 뛰어넘는 녀석이었다.

모습조차 보이지 않았으면서 자신을 부활시켰던 마족 세력을 모두 쓸어버릴 줄이야.

“기가 막히는군.”

너무 어처구니없어서 도리어 화도 나지 않을 지경이었다.

아스카는 제자리에 앉아 지금의 상황을 되짚어 보았다.

어디서부터 틀어져 일이 이 지경이 되었는지.

‘처음부터 세력이 약하다고는 생각했다. 하지만 적어도 더 작아질 일은 없을 줄 알았는데.’

과거 아스카를 따랐던 무리는 대륙의 광활한 영토 대부분을 손에 넣었었다.

그러나 부활한 이후 아스카에게 남은 건 한 줌과도 같은 소수의 마족이 전부였다.

그들만으로는 변변한 세력이라고 할 것도 없기에 아직까지도 남아 있는 사교도를 이용했지만 그들은 로스니아 제국의 힘 앞에 가볍게 쓸려 나갔다.

‘내가 이렇게 무력한 존재였나?’

아스카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힘은 충분하게 있었다.

당장 다시 로스니아 제국으로 가서 그곳을 죽음의 땅으로 바꾸는 것도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상대는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아스카의 힘을 깎아내고 있었다.

이는 아스카가 전혀 경험해 보지 못한 유형의 적이었다.

‘예전에는 이런 일이 없었다.’

아스카가 대륙을 지배하고 있을 때 그 당시의 세력은 아스카가 이룬 것만이 아니었다.

이름 있는 마족들이 아스카의 무력에 반해서 그를 따랐고 그중에는 상당한 세력을 가진 마족들도 있었다.

반면 인간이나 다른 종족의 경우에는 세력의 규모가 변변치 않았다.

‘시대가 다르구나.’

자신이 봉인되어 있는 사이에 세상이 너무 많이 달라져 버렸다.

마족은 사실상 멸종을 눈앞에 두고 있는 처지였고, 반면 인간은 대륙 대부분의 영토를 차지하였다.

아예 사라져버린 종족도 제법 있었고 그 외의 종족들도 인간에게 밀려 명맥만 유지하는 중이었다.

아스카는 이렇게 달라져 버린 시대의 무게에 짓눌리는 느낌이 들었다.

아무리 강대한 힘을 가지고 있어봤자 시대의 흐름에 저항하는 건 쉽지 않았다.

‘그 여자는 처음부터 이 상황을 예상했나?’

아스카는 자신을 바라보던 위니스의 눈동자를 떠올렸다.

너무나도 큰 격차 때문에 도리어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던 존재.

그렇기에 한없이 두려웠다.

‘아인츠발트를 데려가면서 정보를 준 건 공정한 승부 같은 것 때문이 아니었다. 그 여자는 애초에 내가 이기리라 생각하지 않았던 거야.’

자신이 부활하는 동안 변해버린 시대에 절망하여 의욕을 잃을 걸 우려해서 정보를 준 게 분명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놈에게 남는 건 뭐가 있지?’

아스카는 타르타로스의 계약자에 대해 의문이 들었다.

어째서 자신들의 계약자에게 시련을 부여하는 것일까?

순수하게 힘을 내려주고 수단을 쥐여주는 가이스트와는 다른 방식이었다.

타르타로스의 행동은 차라리 시험에 가까웠다.

‘만약 시험이라면 왜 계약자를 시험하는 거지? 무엇을 보고 싶어서?’

베이브에게 들은 말이나 위니스가 해준 군주의 이야기를 생각해 보면 적어도 스카우트 같은 이유는 아니었다.

애초에 실력자를 스카우트하고 싶으면 시험할 게 아니라 그냥 힘만 줘도 충분할 정도로 범차원 세력의 강함은 궤를 벗어난 상태였다.

‘단순한 호기심 따위는 아니다. 가이스트라는 세력과 충돌하면서도 멈추지 않는 건 다른 노림수가 있다는 걸 테니.’

하지만 더 이상의 추측은 불가능했다.

아스카는 타르타로스에 대해서도, 가이스트에 대해서도 아는 게 너무 부족했다.

‘내가 지배자로 있던 시대에는 이런 걸 알지도 못했지.’

놓쳐버린 기회가 너무 아쉬웠다.

그때 아인츠발트가 나타나서 자신을 봉인하지만 않았더라도.

당시 자신이 너무 늙지만 않았더라도.

아니, 자신이 죽음을 피하고자 엉뚱한 곳에 한눈을 팔지 않고 대륙 정복에만 충실했더라도 분명 이룰 수 있었을 것이다.

“빌어먹을!”

아스카는 그 생각이 패배자의 발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 욕설을 내뱉었다.

후회라는 건 그에게 어울리는 행동이 아니었다.

지금 그가 해야 할 일은 자신의 힘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아니, 오히려 잘됐다.

베이브라는 녀석은 마족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껄끄러운 구석이 있었다.

아스카가 섣부른 행동에 나서지 않았던 건 베이브를 지켜보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혹시나 타르타로스의 계약자를 해치웠다가 뒤통수를 맞을 여지가 있었으니.

그러나 지금 그 가능성은 사라진 상태였다.

베이브의 상태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무사하지는 못할 터.

이제 자신을 제약할 수 있는 존재는 남아 있지 않았다.

* * *

마족 아지트를 철저하게 소탕하고 이틀 뒤.

마법사 협회의 도움을 받아 우리는 왕국으로 복귀하는 데 성공했다.

그 결과 마법사 협회는 가지고 있던 보주를 모두 잃고 절망에 빠졌지만, 아스카를 제외한 마족들을 모두 소탕했다는 것에 있어서는 긍정적인 반응이었다.

“그 한 놈이 문제인데.”

자크론은 마법사 협회의 원로들이 보여주는 반응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 듯했다.

그럴 만도 한 게 솔직히 다른 마족들은 아무리 합쳐봐야 아스카 하나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위니스가 괜히 끼어든 게 아니다.

“멀리서나마 직접 보니까 알겠더구나. 그놈은 이길 수 없다.”

자크론은 단언했다.

지금의 우리 전력으로는 아스카를 이길 수 없다고.

“제일 위협적인 건 죽은 자들을 조종하는 능력이야. 사교도의 기원이 된 놈이라서 그런지 굉장히 골치 아픈 능력을 가졌어.”

일반적으로 약자가 강자를 상대하려면 어느 정도 희생을 감수하고 차륜전으로 밀어붙여야 한다.

그러나 아스카를 상대로는 차륜전을 하는 게 쉽지 않았다.

희생자가 나온다면 아스카가 희생자를 마법으로 움직일 테니까.

그렇기에 소수 정예의 병력을 선발해서 싸우는 게 최선이었다.

그런데 보통 국가라면 아스카와 맞설 정도의 정예를 구성하는 게 불가능했다.

당장 한 왕국을 모두 뒤지더라도 5티어 영웅은 있을까 말까.

4티어라면 나라마다 몇 명쯤은 있겠지만 그런 정도로는 아스카의 발목조차 붙잡을 수 없다.

게다가 아스카가 마족이란 것도 문제였다.

마법만 강한 게 아니라 육체 능력도 크게 떨어지는 편은 아니니까.

상대가 개인이든 다수든 아스카는 이를 충분히 감당할 능력이 있었다.

“게다가 불사라니, 말 다 했지.”

“베이브 녀석에게서 정보를 구한다면 어떻게든 될 겁니다.”

“그게 그리 쉽게 구해지는 것이겠느냐?”

자크론의 반박에 나도 말문이 막혔다.

베이브를 생포하는 데 성공했지만 아직까지 아스카의 불사에 대한 해법은 찾아내지 못한 상태였다.

“전하.”

마침 다니엘과 아인츠발트가 들어왔다.

내 휘하에서 고문에 있어서는 최고의 실력자들이라고 할 만한 둘이다.

다니엘은 급소와 심리전을, 아인츠발트는 끔찍한 고통을 주는 기술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둘의 조합으로도 베이브에게서 아스카의 약점을 들을 수는 없었다.

“또 실패로군.”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이틀간 이어진 모진 고문에도 베이브는 전혀 입을 열지 않았다.

다른 마족들과는 다르다.

“그렇게 끈질길 줄은 몰랐는데.”

가이스트가 괜히 베이브를 계약자로 정한 게 아니었다.

이미 모든 걸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베이브는 아스카라는 마지막 희망을 믿고 악착같이 버티고 있었다.

“인질 같은 걸 쓸 수도 없으니 큰일입니다.”

다니엘은 인질을 붙잡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안타까워했다.

동감이었다.

마족은 이미 종족 자체가 망해버린 상황이고 그나마 있던 동족들도 죽었다.

아스카는 인질이 될 수 있는 상대도 아니니.

“이대로라면 그 녀석이 죽는 게 더 빠를 겁니다.”

“그럴 일은 없다.”

이미 몇 번이나 실신했다가 깨어난 베이브였지만 녀석이 죽을 가능성은 높지 않았다.

고문을 잘한다는 건 죽지 않게 고통을 잘 준다는 의미와도 같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런 일에 쓰게 될 줄은 몰랐지만 플레턴에게서 배운 치유 마법은 마족인 베이브에게도 유효했다.

즉사하지만 않는다면 어떻게든 목숨을 붙여놓은 상태로 고문을 이어갈 수 있는 것이다.

설마 이 마법을 이렇게 악랄하게 쓰게 될 줄이야.

‘이거 스승님의 무덤을 찾아서 사과라도 해야 되겠군.’

사람들을 위해서 쓰라고 한 마법인데 엉뚱하게 고문에 쓰이고 있었으니.

물론 아스카를 무찌르기 위한 목적이지만 여러모로 죄스러웠다.

“그 녀석만 잡으면 다 해결될 줄 알았지만 이대로라면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할지도 모르겠구나.”

“생각해 둔 바가 없는 건 아닙니다.”

과거의 영웅들이 그러했듯이 아스카를 다시 봉인하는 방법을 생각해 보기는 했다.

죽이는 게 깔끔하다는 건 알지만 우리가 죽일 방법을 찾을 때까지 아스카가 가만히 있을 리 없다.

상황이 여의치 않다면 일단 봉인하는 방법도 염두에 둬야 했다.

문제는 그렇게 되면 아인츠발트가 다시 기약 없는 세월 동안 봉인에 얽매여야 한다는 거지만.

‘어쩌면 그게 정답일 수도 있어.’

위니스가 이야기한 군주가 된다면 어쩌면 아스카를 죽일 수 있는 방법이 생길지도 몰랐다.

확신할 순 없지만 그렇게 되면 내가 아인츠발트를 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장담할 수 있는 영역은 아니기에 일단은 아스카를 죽일 방법을 찾는 게 우선이었다.

그리고 그걸 알고 있을 것으로 유력한 게 현재 잡혀 있는 베이브였고.

“그런데 말이다.”

그때 자크론이 갑자기 미묘한 눈길을 보냈다.

“아스카를 잡으면 넌 어쩔 생각이냐?”

“그야 끝까지 가야겠죠.”

엄밀히 말해서 마족은 중간에 끼어든 훼방꾼에 가까웠다.

범차원 세력인 가이스트가 아니었다면 애초에 그리 신경 쓸 필요도 없었다.

물론 대륙을 정복하는 과정에서 녀석들과의 충돌이 예견되기는 했으나 가이스트가 힘을 주지 않았다면 마족 잔당의 위협은 대단한 수준이 아니었다.

차라리 로스니아 제국이 더 곤란했지.

그러니 마족을 완전히 정리한다면 원래 목표대로 대륙을 통일할 것이다.

“아직 남은 곳은 많습니다. 반제국 동맹과 로스니아 제국. 그 둘을 정복한다고 끝도 아니고요.”

그래 봤자 대륙의 절반이다.

아스카가 전성기 때 다스렸던 영토보다도 살짝 부족한 수준이라는데.

대륙 반대편에는 로스니아 제국에 전혀 밀리지 않는 또 다른 제국도 있었다.

‘그쪽은 인간 말고 다른 종족의 숫자도 많다고 했던가.’

대륙의 서부 자체가 인간 문명의 중심지였다.

그곳까지 점령하려고 한다면 정말 시간이 빠듯할 것이다.

그래도 내가 죽기 전까지는 마무리해야 되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군주니 뭐니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채 제2의 아스카가 되어버리겠지.’

위니스의 언급에 따르면 군주가 될 경우 수명의 제약이 없어지는 모양이다.

하지만 보통이라면 그런 자리에 오르기 전에 이미 늙어 죽는다.

나도 전 대륙이 피의 연회로 개판이 나고 내전에 휩쓸린 상황이기에 이렇게 세력을 키울 수 있었던 것이니까.

안정된 상황이었다면 여기까지 오는 데만 해도 훨씬 많은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어쩌면 평생이 걸렸어도 불가능했을지 모르고.

그런 걸 생각하면 군주라는 자리에 오르기 위해서는 능력만이 아니라 운도 따라주어야만 했다.

아스카는 그 운이 잘 따라주지 않은 케이스에 속했고.

“끝까지라.”

“이미 알고 계시면서 왜 물으십니까?”

“이 늙은이는 하루라도 빨리 은퇴해야 할 거 아니냐? 이번 일만 정리되면 그만두려고 그런다.”

“농담이 심하십니다.”

“아니, 이놈이?”

절대 놔주지 않겠다는 의도가 묻어나는 내 농담에 자크론이 눈에 쌍심지를 켰다.

“내가 이 나이 먹고도 여기저기 불려 다녀야겠냐? 처음 봤을 땐 네놈을 따라오면 잘 대해줄 것처럼 말하더니 사람을 부려먹기만 하고.”

“대가는 충분히 드렸지 않습니까?”

몇 년 만에 대영주라면 챙길 건 충분히 챙겨준 셈이다.

자크론으로서는 딱히 바라지도 않던 자리라는 게 문제였지만.

“그게 어디 그냥 준 거냐? 빌려준 거면서.”

뭐, 이것도 틀린 말은 아니다.

자크론은 가족들과 연을 끊었고 작위와 영지 등은 나중에 다시 회수될 예정이니까.

“차라리 이대로 꿀꺽해 버릴까 싶다.”

“설마 가족들이랑 다시 만나실 생각입니까?”

자크론의 말에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어느 변방의 한적한 영지도 아니고 그 규모를 생각하면 섣불리 평민 가정에 넘겨줄 만한 게 아니었다.

아무런 각오나 교육도 없이 귀족 작위를 받았다가는 목이 떨어진다.

특히 내 왕국에서는.

“미쳤냐? 그쪽은 돈 좀 쥐여준 걸로 됐어.”

“그럼 누구에게 주신단 말씀입니까? 귀족 명부에 등록되지 않은 생판 남에게는 작위를 줄 수 없습니다.”

아무리 대영주라도 지나가던 사람에게 갑자기 작위를 주거나 할 수는 없다.

귀족이 되기 위해서는 나름대로의 절차란 게 필요했으니까.

내전으로 혼란스러웠던 때라면 또 모를까 지금은 각 대륙의 내전도 거의 마무리된 상태였다.

로스니아 제국의 선전 포고 때문에 억지로 동맹과 협정이 체결된 엉터리 평화였지만.

‘덕분에 약소국 정리하기도 쉬웠지.’

얼마 전까지 싸우던 이들이 외세에 맞서서 갑자기 힘을 합친다.

듣기에는 좋지만 실제로 그런 일은 일어나기 매우 어렵다.

내가 전쟁의 명분으로 삼은 것도 그 부분이었다.

특정한 세력에게 공격받을 만한 빌미를 만들었고 약소국은 굳이 그들을 도와서 나에게 맞서려고 하지 않았다.

그렇게 힘을 조금 깎은 뒤에 아인츠발트를 중심으로 정예 병력을 보내니 압도적인 전력 차이로 순식간에 무너졌고.

“길거리에 뿌리는 한이 있더라도 너에게 주는 건 배가 아파서 말이다.”

“하나뿐인 제자에게 너무하십니다.”

“스승을 부려먹기만 하는 녀석이. 게다가 네가 협회장 되면서 내 이름을 썼냐? 플레턴 놈 제자로 들어갔지.”

이 부분은 할 말이 없었다.

협회장의 자리를 노리면서 협회에서 제명된 자크론의 이름을 거론할 수는 없었으니까.

나는 협회의 역사에서 자크론의 제자가 아닌 플레턴의 제자로만 기록될 확률이 높다.

자크론은 그게 짜증 나는 모양이었다.

하긴 내 스승이 되어서 협회에 엿 먹이는 게 목표 중 하나였는데.

뭐, 방법이 전혀 없지는 않다.

“협회장 권한으로 제명 풀어드릴까요?”

협회가 아주 뒤집어지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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