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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VIP 영주님의 품격-203화 (203/250)

VVIP 영주님의 품격 203화

VVIP 영주님의 품격 203화

203화

* * *

모여 있는 마족 중 하나가 내 이름을 불렀다.

영웅 정보를 보기에는 조금 거리가 있지만 분명 그 녀석이 베이브일 것이다.

앞선 두 놈은 이미 로스니아 제국을 공격할 때 확인했지만 고문을 통해 얻은 정보에 따르면 베이브가 아니었다.

나머지 셋 중 하나는 탈론과 내 첫 일격에 죽어 나자빠졌고.

지금껏 얻은 정보에 따르면 베이브는 신중한 녀석이니 이런 상황에 방심하거나 상대를 깔볼 리 없었다.

게다가 내 모습을 확인하지 않고도 내 이름을 부른 건 이미 타르타로스의 계약자가 나라는 사실을 짐작했다는 뜻이다.

그 정도라면 베이브로 의심할 만했다.

게다가 마족들이 보여주는 태도도 그렇다.

무의식적으로 마족들은 베이브를 둘러싸고 있었다.

자신들 사이에서 가장 보호해야 할 대상을.

“모두 뭉쳐! 흩어지면 각개격파 당한다!”

베이브로 추정되는 마족이 발 빠르게 지시를 내렸다.

괜히 흩어지면 오히려 탈론의 화살에 각개격파 당한다는 걸 깨닫고 마족들은 한데 뭉쳐서 마나 실드를 펼쳤다.

그러면 아무리 나와 탈론이라도 단시간에 마나 실드를 뚫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 자리에 있는 건 나와 탈론만이 아니다.

“저 녀석은 생포하고 나머지는 죽인다.”

내 명령과 함께 마족을 상대하기 위해 준비한 영웅들이 앞으로 뛰쳐나갔다.

4티어 이상의 전투형 영웅으로 구성한 전력이었다.

모르타르, 루시우스, 릴리아나에 새롭게 합류한 마벨과 그랜트까지.

내 왕국의 영웅 중 이 그룹에 속하지 않은 건 뒤에서 화살을 날릴 탈론과 마법을 걸어줄 나.

그리고 아스카의 등장을 대비해 후방을 지키고 있는 아인츠발트뿐이다.

“하압!”

콰앙!

가장 먼저 선두로 나선 로크가 대검을 휘둘러 마나 실드를 후려쳤다.

당연히 마나 실드에는 흠집조차 나지 않았지만 공격은 쉴 새 없이 이어졌다.

그렇게 공세가 이어지다가 잠깐 물러나는 타이밍에는 화염과 얼음이 날아들었다.

자크론과 티아라였다.

“버텨라!”

그러나 마족들은 굳건하게 버텼다.

실력 있는 마법사는 뭉치면 뭉칠수록 위력이 흉악해지는 법이다.

여러 겹의 마나 실드로 공격을 막아내면서 한 마족이 그 안에서 반격에 나섰다.

범위는 좁지만 단일 대상으로 괜찮은 위력의 삼중 마법이었다.

“그렇게 둘 줄 아느냐!”

그러나 마족의 반격은 제대로 된 성과를 내지 못했다.

우리가 공격조라면 방어조도 따로 있었으니까.

협회에서 소집한 원로들이 마족의 공격을 상쇄시켰다.

“협회까지!”

협회의 존재를 알아차린 베이브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이대로라면 이 장소에서 빠져나가는 일조차 쉽지 않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안 되겠군. 일단 후퇴한다.”

“어디로?”

“내가 틈을 만들겠다.”

베이브의 시선이 나와 탈론을 향했다.

그 직후 정육면체 형태의 공간이 만들어져 나와 탈론을 가두었다.

“이건 결계인가?”

탈론의 화살에 마법을 걸어주기 위해 근접하고 있던 상태였기에 한꺼번에 갇히고 말았다.

아인츠발트에게 듣기로 이 결계는 대상을 가둘 뿐 아니라 힘도 어느 정도 빼 가는 듯했다.

게다가 이렇게 가둬놓은 상태에서 외부에서 공격을 날린다면 회피는 불가능했고.

‘하지만 그러지는 못하겠지.’

방어조인 마법사 협회의 원로들은 여전히 굳건했다.

그들을 뚫고 공격을 날리는 건 아무리 마족들의 실력이 대단해도 쉬운 일이 아니다.

대신 자신들의 목숨을 한 번에 앗아 갈 치명적인 공격을 막아냈으니 이 틈을 타서 도망치려고 할 것이다.

“지금이다!”

아니나 다를까.

베이브를 비롯한 마족들이 마나 실드를 펼쳐놓은 채 몸을 돌려 달아나기 시작했다.

아마 이 아지트 어딘가에 숨겨둔 순간 이동 마법진을 사용하는 게 목적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베이브의 행동은 충분히 예상 범위 안이었다.

당연히 막을 준비도 해놨다.

사실 이 아지트에 가장 먼저 발을 디딘 건 기사들이 아니었으니까.

휘릭!

뛰어나가던 마족들의 앞으로 시커먼 그림자들이 떨어져 내렸다.

다니엘을 비롯한 3티어 이상의 암살자들이 마족들이 도망치려는 방향을 틀어막았다.

‘도망은 안 되지.’

숨바꼭질에는 취미가 없다.

게다가 마족이 작정하고 숨어버리면 이를 찾아내는 건 일국의 군주라도 불가능하다.

이 드넓은 대륙을 모두 뒤질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그러니 반드시 여기서 끝장을 볼 것이다.

“비켜라!”

그때 마족 중 유달리 덩치가 큰 녀석이 앞으로 나섰다.

멀리서 봤던 아스카도 꽤 위협적인 덩치를 갖고 있었지만 저 녀석도 만만치 않았다.

콰아앙!

녀석은 대담하게도 자신에게 향하는 공격을 모두 받아내며 암살자들을 몸으로 날려버렸다.

아무리 마족이 순수한 육체 능력도 뛰어나다지만 저렇게 적극적으로 육체 능력을 활용하는 마족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크아악!”

무식한 힘에 암살자들이 형편없이 나뒹굴었다.

마치 트럭으로 사람을 친 것 같았다.

하지만 방어를 도외시했기에 마족의 상태도 좋지 않았다.

수많은 칼날이 마족의 몸 여기저기에 박힌 상태였다.

동족들을 탈출시키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 것이다.

“가라, 베이브!”

나름대로 눈물겨운 광경이었다.

하지만 그 정도는 얕은수에 불과하다.

콰창!

나와 탈론을 가둔 결계는 단검을 꺼내서 휘두른 공격 한 번에 깨져버렸다.

‘마나 실드도 단숨에 부수는데 이런 결계라고 해서 다를 건 없지.’

외부의 공격을 막는 게 아니라 내부에 대상을 가두는 게 목적인 마법이라는 차이는 있다.

하지만 내 비전 마법인 마나 웨폰 앞에서는 큰 의미가 없었다.

콰앙!

결계를 깬 것과 동시에 탈론이 쏜 화살이 뒤를 보인 마족들을 향해 쇄도했다.

무시무시한 속도로 날아든 화살은 베이브의 다리 한 짝을 날려버렸다.

“크악!”

베이브의 비명이 짧게 퍼져 나갔다.

죽일 생각이라면 아예 급소를 노렸겠지만, 녀석에게서는 들을 정보가 있기에 다리만 날린 것이다.

“베이브!”

마족들이 기겁하며 베이브를 부축하려 했으나 내 기사들은 장님이 아니었다.

훤히 빈틈을 드러낸 상대를 봐줄 이유가 없었다.

“하압!”

5티어 영웅인 그랜트의 검이 마족 하나의 심장을 꿰뚫었다.

본래 쓰던 기형검은 어찌 되었는지 무기가 바뀐 상태였지만, 그렇다고 그랜트의 실력이 하락하는 일은 없었다.

나에게 온 다음에 치유 마법을 통해서 그랜트의 상처를 회복시켰기 때문이다.

덕분에 그랜트는 예상보다도 훨씬 빠르게 싸울 수 있는 몸 상태를 갖추었다.

갑자기 빚이 늘어났다면서 당황하기는 했지만.

휘릭!

그랜트에 이어 릴리아나도 화려하게 움직였다.

교묘한 움직임으로 마치 미끄러지듯 마족의 틈으로 파고들어 정확하게 안면에 칼날을 꽂아 넣었다.

‘릴리아나의 실력은 정말 매서워졌군.’

아인츠발트조차 인정한 재능은 뭐가 달라도 달랐다.

그랜트의 몸이 어느 정도 회복되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릴리아나와 대련을 시켰는데 그랜트는 정말 형편없이 깨졌다.

로스니아 제국에서 처음으로 대련할 때는 그야말로 종이 한 장 차이라는 느낌이었는데 이제는 격차가 확연해진 것이다.

‘카시안 공작이 죽은 게 아쉽군.’

지금의 릴리아나라면 아인츠발트를 제외했을 때 충분히 최강이라고 불릴 만한 실력을 갖춘 상태였다.

그래서 조금 아쉬웠다.

아무리 그래도 명성을 얻으려면 실력자를 꺾을 필요가 있는데 카시안 공작만큼 유명한 상대는 흔치 않기 때문이다.

뭐, 로스니아 제국이 사라지면 카시안 공작의 명성을 기억하는 사람도 없어지겠지만 말이다.

“크윽! 베이브…….”

기사들은 뒤이어 덩치 큰 마족마저 제거했다.

이곳 어딘가에 부활이 가능한 장소가 있을 테니 이걸로 끝은 아니겠지만 이제는 시간문제였다.

“마족들을 찾아라!”

이미 승기를 잡은 시점에서 기사들은 미리 지시받았던 대로 마족들의 의식장을 찾기 위해 요란스럽게 주변을 뒤지기 시작했다.

작은 물건 같은 것도 아니고 제물로 쓰일 사람의 몸을 준비할 장소가 필요하기에 작정하고 뒤지면 그리 어려울 건 없었다.

“이제야 가까이서 보는군.”

그동안 난 베이브에게 다가가며 영웅 정보를 확인했다.

[마족 정보]

이름 : 베이브

국적 : 없음

소속 : 크로노스

유형 : 복합형

등급 : 6티어

칭호 : 베일

‘6티어라.’

마족들을 이끄는 몸에 가이스트의 계약자이니 7티어일 가능성도 고려했는데 의외로 다른 마족과 같은 6티어였다.

물론 이것만으로도 상당한 수준임은 분명했다.

당장 나도 6티어에 오르고 얼마 지나지 않은 상태니까.

게다가 육체 능력으로 따지면 베이브가 나보다도 훨씬 위에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아무리 복합형이라도 육체 능력이 마법 능력보다 높지는 않을 거고 이 자리에는 5티어 전투형 영웅만 셋이었다.

다리까지 한 짝 날아간 이상 베이브는 이미 끝난 상태였다.

“아인 네패스. 역시 네놈이었군.”

베이브가 힘겹게 고개를 들어 나를 보았다.

“우리가 너무 신중했다. 처음부터 널 타르타로스의 계약자로 생각하고 공격했어야 했는데.”

베이브의 말을 들어보니 역시 마족들도 어느 정도 나에 대해 짐작하고 있던 모양이었다.

그런데도 나를 노리지 않은 건 아인츠발트의 존재가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애초에 마족들에게는 불리한 싸움이었어.’

아스카의 존재는 너무 사기적이지만 세력 대 세력으로 보자면 마족들은 형편없을 정도로 세력이 약했다.

그나마 사교도가 있었지만 그들은 음지에 속하기 때문에 외부에서 활동할 순 없었다.

덕분에 마족들은 숨어 있는 덴 유리했지만 정보를 모으는 분야에서는 상대적으로 크게 뒤떨어졌고.

‘숨어 있는 흑막이 배후에서 뭔가를 꾸미는 건 결국 한계가 있다는 소리지.’

거대한 조직은 움직이면 반드시 흔적을 남기게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은밀하게 움직이면 필요한 정보를 제때 얻지 못할 수밖에 없다.

물론 이미 인류와의 전쟁에서 패배한 마족이 자신들을 드러내는 건 불가능한 일이지만, 결국 그 문제가 마족들의 발목을 붙잡았다고 할 수 있었다.

“이제 와서 그런 말을 해봤자 뭐가 달라지지?”

이미 체크메이트다.

아스카가 남아 있기는 하지만 불사를 깰 수 있는 방법만 찾으면 어떻게든 죽일 수 있다.

“네가 졌다. 마족.”

“그런 모양이군.”

베이브는 얼굴을 감싸 쥐더니 나직이 물었다.

“타르타로스의 계약자. 너는 타르타로스와 어떤 조건으로 계약을 했지?”

뜻밖의 질문이었다.

분노를 참지 못하고 원망이나 저주를 쏘아붙일 줄 알았는데 베이브는 갑자기 계약에 대한 걸 물어 왔다.

“나는 가이스트와 계약을 맺으며 이 대륙을 그들에게 바치기로 했다. 너 또한 분명 상당한 대가를 걸었겠지?”

“왜 그런 걸 묻는 거지?”

이 자리에 있는 이들의 충성심이라도 흔들어볼 생각이라면 어리석은 행동이다.

베이브는 복수를 위해서 힘을 빌린 입장이지만 나는 위니스에게 휘말린 쪽이니까.

그래서 그런지 계약의 조건은 꽤 널널했다.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면 대륙을 정복해라.

지금까지의 상황을 보면 위니스가 바라는 건 대륙 정복 이후에 있는 모양이지만.

“놈들은 절대 손해 보는 장사를 하지 않아. 당연히 그렇겠지. 결국 놈들은 자신들의 군주를 위해서 일하는 집단이다. 범차원 세력들의 존재의의는 군주에 있어.”

“그래서?”

“내가 이기든 네가 이기든 이 대륙에 이로울 일은 없단 말이다.”

“그럴지도 모르지.”

가이스트란 놈들 자체가 평화와는 거리가 먼 성향일 테니 마족들이 이겨봐야 좋을 건 없다.

하지만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위니스가 노리는 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어떤 식의 결말이 나오든 그게 이 대륙에 긍정적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그런 걸 신경 써줄 이유는 없다.

“하지만 그게 뭐 어쨌다는 거냐?”

그게 꼭 나에게만 국한되는 이야기는 아니니까.

이 대륙에 존재하는 여러 군주 중에서 과연 누가 승리한들 좋은 결과가 나올 일이 있을까?

무언가를 지키려고 싸우는 사람보다는 빼앗기 위해 싸우는 쪽이 더 적극적인 법이다.

그래서 지금껏 내가 군주들을 꺾어왔고, 로스니아 제국에서는 빌헬름이 아르센에게 승리할 수 있었다.

평화는 듣기에는 좋지만, 실상은 힘을 가진 이들에게 목줄을 채우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힘이 없는 자라면 평화를 부르짖겠지만 힘이 있는 자가 굳이 평화에 매달릴 이유는 없는 것이다.

“혹시 뭔가 착각하고 있는 것 아닌가?”

“착각이라고?”

“네가 싸우고 있는 상대는 영웅이 아니야.”

난 내 영웅이라는 명성을 부정했다.

젊은 나이에 경지에 이른 천재 마법사.

거기에 마족을 토벌하고, 치안을 위해 교단에 지원하기도 했다. 그렇기에 많은 이들이 나를 영웅이라고 부르고 있다.

하지만 그건 그냥 만들어진 이미지이자 허명에 불과하다.

진짜 나란 존재는, 야망을 위해서 나를 믿는 상대를 죽이려고 했다가 권력을 위해서 마음에도 없는 혼인을 했다.

도움을 요청한 타국의 대영주인 라파엘 백작의 영토를 강탈하는가 하면, 고개 숙여 항복한 이들이 보복을 꿈꾸지 못하게 은밀하게 처리한 적도 숱했다.

게다가 최근에는 아무런 원한도 없는 약소국들을 짓밟고, 로스니아 제국을 마족을 잡을 미끼로 써먹기까지 했다.

그러나 난 내 행동을 후회하지 않는다.

이러한 과정에서 상대를 무너트리고 나아가는 행위가 내가 상대보다 낫다는 걸 증명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우월감.

경쟁심이나 승부욕이 추구하는 본질적인 욕망.

난 이를 위해서 기꺼이 누군가를 죽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애초에 남들의 위에 서려는 자가 좋은 사람일 리가 없지.”

타르타로스에 속한 인물인 위니스는 절대군주에 대한 과도한 신앙심을 보인 적 있다.

하지만 나는 절대군주가 선량한 존재일 거라고는 전혀 생각해 본 적 없다.

자신의 사람들에게는 다정할 수 있으나 결국 그 자리까지 세력을 키우기 위해 분명 많은 이들을 짓밟았을 테니까.

그런 사람만이 아래에서부터 기어올라 정점에 도달할 수 있는 법이다.

“하…….”

베이브는 멍한 얼굴로 나를 보더니 갑자기 뭔가 깨달았다는 듯 눈을 빛냈다.

“그랬군. 그런 거야.”

베이브는 유쾌하게 웃었다.

“우리가 이기지 못하는 게 당연하지! 인간은 동족을 죽이기 위해서 무기와 전술을 개발한 놈들이었는데, 그런데 고작 타고난 힘으로 짓밟아 버리는 게 전부였던 우리가 당해낼 재간이 있을 리 있나!”

그러나 그 눈에는 얼핏 두려움이 서려 있었다.

강대한 마족이 한낱 인간을 상대로 공포심을 드러낸 것이다.

“이 괴물 같은 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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