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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VIP 영주님의 품격-201화 (201/250)

VVIP 영주님의 품격 201화

VVIP 영주님의 품격 201화

201화

【 괴물 】

분노한 아스카의 힘은 끔찍한 악몽과도 같았다.

죽은 이들이 일어나 달려드는 상황, 심지어 그 대상이 조금 전까지 싸우던 아군이었다는 사실에 로스니아 제국군은 큰 충격을 받았다.

프로반 백작이 전력을 다해 몰려드는 적들을 상대했지만 중과부적이었다.

“백작 각하, 퇴각하셔야 합니다!”

돌아가는 전황을 살피던 제던 자작이 프로반 백작을 향해 소리쳤다.

전투가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제국군의 피해는 엄청나게 불어나고 있었다.

성이라도 끼고 있었다면 모를까 지원군이 오기도 전에 무너져 전혀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게다가 순간 이동 마법진까지 파괴되어 아군의 지원을 바라는 것도 무리였다.

“퇴각이라니? 이 자리에서 죽을지언정 그럴 수는 없다!”

하지만 프로반 백작은 퇴각이라는 말에 발끈했다.

딱히 정치에는 연을 두지 않은 채 살아온 그였지만 귀족으로서 자신의 의무만큼은 제대로 인지하고 있었다.

제국의 국경을 지켜야 할 자신이 퇴각한다는 건 주어진 의무를 저버리는 불명예스러운 행위였다.

“휘하 부대를 모두 죽이실 생각입니까?”

제던 자작은 그런 프로반 백작의 마음을 이해했지만 그것이 고집에 불과하다는 걸 알았다.

남은 마족은 겨우 하나뿐이지만 그 하나의 전력이 이 자리에 있는 제국군 전체를 압도했다.

이대로 계속 싸우는 건 모두를 죽음으로 내모는 일이었다.

“지휘관이라면 올바른 판단을 내리십시오. 지금은 싸움을 피해야 할 때입니다!”

“제던 자작의 말대로다.”

프로반 백작을 주시하던 안덴스 역시 앞으로 나서며 의견을 보탰다.

반역자로서 작위를 상실하고 평생 군에 묶이게 된 안덴스는 본래라면 귀족들에게 말을 걸지도 못할 처지였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그런 행동을 지적하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이 전장에서 안덴스는 죄인이 아니라 유능한 마법사였기 때문이다.

“승산은 없어. 남은 병력이라도 살려야 한다.”

프로반 백작은 안덴스와 시선을 마주쳤다.

자신과 대등한 수준에 있는 마법사인 그마저 퇴각해야 한다고 말하자 더는 고집을 피우기 어려웠다.

“그리 말한다면 어쩔 수 없지.”

프로반 백작은 침통한 얼굴로 명령을 내렸다.

“퇴각 명령을 내려라! 지금 즉시 전 병력은 후방으로 물러난다!”

프로반 백작의 지시가 내려지자 위태롭게 전선을 유지하던 병사들이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병력의 규모가 워낙 커 명령이 이행될 때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먼저 퇴각하시지요.”

제던 자작은 그 시간 동안 프로반 백작을 데리고 빠져나갈 생각이었다.

그러나 프로반 백작은 이를 완강히 거부했다.

“난 이 국경의 지휘관이네. 나까지 도망칠 수 있겠는가?”

“하지만…….”

“게다가 놈이 뒤를 추격한다면 그걸 막을 사람은 나밖에 없어.”

이 말에는 제던 자작이나 안덴스도 반박하지 못했다.

성이 무너져서 다수의 마법진이 소실되었지만, 여전히 남은 마법진의 숫자는 적지 않았다.

그 마법진을 이용한다면 프로반 백작 혼자서도 아스카가 부리는 망자의 군대를 잠시나마 붙들 수 있었다.

“그럼 제가 곁을 지키겠습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한 가지 조건이 있었다.

이 무시무시한 사태를 초래한 아스카가 프로반 백작을 노리지 않아야 한다는 것.

제던 자작은 이를 위해서 자신이 직접 프로반 백작의 곁을 지킬 생각이었다.

“아니, 자네는 물러나게.”

그러나 안덴스는 그런 프로반 백작의 행동을 저지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지휘권을 양도받을 만한 귀족은 자네밖에 없지.”

안덴스의 말에 제던 자작은 말문이 막혔다.

실제로 프로반 백작이 빠지면 가장 높은 작위를 가진 귀족은 제던 자작이었다.

“하, 하지만 누군가는 프로반 백작 각하를 보호해야 합니다.”

“그 역할은 내가 하지.”

안덴스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그런 안덴스의 행동에 제던 자작과 프로반 백작 모두 놀란 시선을 보냈다.

살고 싶다는 이유로 카시안 공작을 배신하고 황태자에게 붙은 안덴스였기 때문이다.

그 누구보다 자신의 목숨을 아낄 그가 죽음을 감수하려는 행동을 보일 거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진심인가?”

“이런 말을 농담으로 하겠나?”

프로반 백작은 안덴스의 생각을 이해할 수 없었으나 캐묻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게다가 제던 자작보다는 안덴스가 남는 쪽이 더 믿음직한 게 사실이었다.

제던 자작의 실력 역시 나쁘지는 않지만 안덴스에 비할 바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든든하군. 제던 자작, 자네에게 지휘권을 줄 테니 병력을 데리고 후방으로 퇴각하게.”

“백작 각하…….”

“이건 명령이야.”

제던 자작은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속으로 삼켜야만 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제국의 장병들이 죽어 나가고 있었다.

“명을 따르겠습니다.”

제던 자작은 프로반 백작을 향해 인사를 올린 뒤 안덴스를 돌아봤다.

“죽지 마라, 후배.”

안덴스는 후배라는 호칭에 인상을 찡그렸으나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미 제던 자작이 저 멀리 뛰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후배라.”

대신 프로반 백작이 제던 자작의 말을 짚었다.

“뭐?”

자신을 놀리려는 듯한 기색을 느낀 안덴스는 프로반 백작을 사납게 쏘아보았다.

조금이라도 섣불리 입을 열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흉흉한 기세에 프로반 백작은 아쉬워하며 입맛을 다셨다.

그래도 덕분에 불편했던 마음이 조금은 풀리는 것 같았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잘 지켜주게.”

“쓸데없는 걱정 마라.”

안덴스는 프로반 백작의 앞으로 나서며 전장을 주시했다.

죽을지도 모르는 자리에 나선 목적은 절대 순수한 것이 아니었다.

이 자리에서 싸우다 죽는다면 자신의 죄를 조금이라도 용서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렇게만 되어준다면 남겨진 가족들은 지금보다는 나은 처지가 될 것이다.

“내 실력은 너도 잘 알잖나?”

안덴스의 물음과 동시에 두 사람의 주위는 두꺼운 마나 실드로 둘러싸였다.

프로반 백작은 그 깔끔한 솜씨에 감탄했다.

마법진이 준비된 상황에서는 어떤 마법사도 자신을 능가할 수 없었지만, 아무 준비도 없는 상황에서는 역시 안덴스가 더 나았다.

“시작하지.”

안덴스의 준비가 끝나자 프로반 백작도 마법을 발동시켰다.

아직 손상되지 않은 마법진들이 저장된 마법을 일시에 쏘아냈다.

앞을 제대로 보기 힘들 정도로 형형색색의 마법이 일제히 뿜어지는 장관에 안덴스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미 프로반 백작의 실력은 알고 있었지만 역시나 훌륭했다.

게다가 위력 역시 흠잡을 데가 없었다.

아스카가 일으켰던 수만의 망자들은 무수한 마법의 폭격에 쓸려 나가며 전장에 큰 공백을 만들었다.

‘또 저놈인가?’

아인츠발트에게 농락당해 흥분해 있던 아스카마저 그 위력에 정신을 차렸다.

처음 전투에 나섰을 때부터 느꼈지만 제국 마법사의 수준이 만만치 않았다.

어째서 마족들이 인류에게 패배했는지 이해가 될 정도였다.

‘저 비전 마법은 위협적이다.’

아스카는 냉정하게 상대의 전력을 가늠했다.

마법진이 준비된 장소여야 한다는 다소 까다로운 조건이 필요하지만, 그에 대한 리턴으로 자신보다 뛰어난 마법사조차 이길 가능성이 있었다.

저런 마법사가 아인츠발트와 함께 자신을 몰아붙인다면 상당히 곤란했다.

‘이 자리에서 죽이는 게 좋겠군.’

아스카는 곧장 프로반 백작을 노리고 마법을 날렸다.

콰콰쾅!

핏빛의 마나가 일렁이기 무섭게 강력한 충격파가 안덴스가 펼쳐놓은 마나 실드를 뒤흔들었다.

안덴스는 단 한 번의 공격에 마나 실드의 절반 이상이 파괴되는 걸 보며 혀를 찼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위력이군. 대체 어느 정도 수준의 마법사인 거지?’

별다른 준비도 없이 가볍게 날린 공격이 자신의 전력을 다한 공격과 그리 다를 게 없었다.

동시에 이런 아스카를 상대로 상당한 시간을 번 아인츠발트의 무력에 대해서도 의문이 들었다.

‘이런 마족을 정면에서 상대하다니. 그 녀석은 대체 정체가 뭐야?’

요정족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든 무력이었다.

제국 최강으로 불리던 카시안 공작조차 어린아이로 느껴질 정도로 아인츠발트의 실력은 차원이 달랐다.

한데 그런 아인츠발트가 갑자기 순간 이동 마법진을 통해서 사라져 버렸다.

안덴스는 짙은 의문이 피어올랐다.

‘무언가가 있다.’

반드시 알아봐야 한다는 직감이 들었으나 안덴스는 그것이 불가능하단 걸 알았다.

하늘을 뒤덮을 만큼 거대한 마법이 그들을 향해 맹렬히 쏟아지고 있었다.

* * *

동부 국경에서 제국군과 마족의 전투가 이어지는 사이, 네르바는 귀족들과 함께 회의를 진행하는 중이었다.

“도대체 마족들이 무엇을 노리고 침략해 온 건지 조금이라도 짐작되는 부분이 있으면 말하라.”

하지만 회의는 지지부진했다.

마족들이 제국을 침공한 목적에 대해 도무지 짐작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나온 의견은 이것이었다.

“과거 전쟁에서 마족들을 가장 많이 죽인 건 우리 제국의 기사들이었습니다. 그에 대한 보복이 아닐지.”

과거 전쟁에 대한 복수.

아예 근거 없는 주장은 아니었지만, 네르바는 그럴 가능성이 한없이 낮다고 생각했다.

그보다는 차라리 로스니아 제국을 무너트려 전 인류에 공포를 퍼트리려는 목적이라는 쪽이 좀 더 설득력 있을 것이다.

그래 봤자 각국이 단합할 계기가 될 뿐이라 어느 쪽이라도 그리 가능성 있는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여기서는 답을 얻을 수 없겠군.’

결국 한참 이어진 회의에도 불구하고 그럴듯한 답은 나오지 않았다.

‘꼭 생포해야 할 텐데.’

혹시나 자신의 짐작대로 마족의 침공이 네패스 왕국과 관련된 것이라면?

그 의문을 풀기 위해서는 마족이 반드시 생포되어야 했다.

네르바는 애써 답답한 마음을 가라앉히며 전선에서 긍정적인 보고가 올라오기를 기다렸다.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흘러 해가 떨어질 때쯤 전선에서 보고를 받은 마법사가 허둥지둥 앞으로 나섰다.

“화, 황태자 전하! 제던 자작으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귀족들은 그런 마법사의 어설픈 모습에 인상을 찌푸렸으나 이를 지적하지는 못했다.

실력 있는 마법사를 모두 지원군으로 보낸 터라 남은 이들이 미숙하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저 마법사는 본래라면 이런 자리에 나올 만한 위치도 아니었다.

“고하라.”

네르바 역시 마법사의 사소한 결례 같은 건 신경 쓰지 않았다.

대신 기다리던 보고가 왔다는 소식에 온 신경을 기울였다.

네르바의 찌를 듯한 시선이 정면으로 자신을 향하자 마법사는 바짝 긴장한 채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의 입에서 나온 내용은 처참했다.

마족의 공격에 성이 무너졌다는 것부터 문제였지만 이어지는 싸움에서 제국군이 입은 피해는 가히 엄청난 수준이었다.

족히 수만의 병력이 죽었고 지휘관인 프로반 백작과 안덴스마저 생사를 알 수 없었다.

그 믿기지 않는 보고에 귀족들은 넋이 나가고 말았다.

지원군을 넉넉하게 보내지는 못했지만, 최대한 실력자들로 추렸다.

비록 머릿수는 부족해도 그 능력은 충분하고도 남았을 터.

더구나 프로반 백작은 방어에 있어선 어떤 마법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실력을 자랑하는 몸이었다.

그런 프로반 백작의 패배는 제국 마법사 전체의 패배와 다를 게 없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나다니!”

놀란 건 귀족만이 아니었다.

뜻밖의 패전 소식에 네르바는 아연실색해서 소리쳤다.

“그럼 마족들은? 놈들은 뭘 하고 있느냐?”

정말 국경이 뚫렸다면 제국 영토 전체가 위태로웠다.

그나마 거리가 있으니 다른 지역은 방비를 하겠으나 동부는 당장 쑥대밭이 되어도 이상할 게 없었다.

이 사실을 깨달은 동부 귀족들의 안색도 창백하게 질렸다.

“전투 이후 상황에 대해서는 전혀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제던 자작은 병력을 수습해서 퇴각하느라 후방의 마족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나마 마지막에 전선에 남은 마족은 하나뿐이지만 그대로 퇴각할지 계속 진군할지 짐작하는 일조차 불가능했다.

“아인츠발트는 어떻게 되었지?”

시원찮은 대답만 나오자 네르바는 아인츠발트에 대해 물었다.

마족의 생포에 실패하고 국경까지 뚫린 상황.

정말 네패스 왕국이 이번 일에 관련되어 있다면 아인츠발트에게 어떤 특이 사항이 있었을 가능성이 컸다.

“따로 올라온 보고가 없습니다. 하지만 퇴각하는 이들의 무리에는 포함되지 않은 듯합니다.”

찝찝한 보고였다.

네르바는 제던 자작에게 아인츠발트의 생사를 확인하라고 지시를 내린 뒤 한숨을 내쉬었다.

이미 상당히 늦어진 시간이었지만 회의는 오히려 이제부터라고 말해도 좋았다.

제국에 들이닥친 위기를 어떻게든 해결해야만 했다.

“지원군을 요청해라.”

“제국 전역의 군대를 모두 소집하겠습니다.”

네르바의 명령에 귀족들은 즉시 제국의 군대를 모두 모으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네르바는 고개를 내저었다.

물론 제국의 군대도 중요했지만 지금 네르바가 지원을 요청하려는 상대는 그들이 아니었다.

“네패스 왕국에 지원을 요청하라는 소리다.”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에 귀족들은 놀란 눈으로 네르바를 보았다.

로스니아 제국 외부의 일이라면 타국의 도움을 받는 경우도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번 일은 어디까지나 제국 내부에서 벌어진 상황.

아무리 협정을 맺었더라도 타국의 군대를 제국에 들어오게 하는 건 쉽게 결정할 일이 아니었다.

“황태자 전하. 부디 명령을 거두어주십시오.”

“그렇습니다. 어찌 이 위대한 제국의 영토에 타국의 군대를 들이려고 하십니까?”

귀족들의 반대에 네르바는 인상을 썼으나 그들을 설득하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알았다.

이번 문제는 제국 내부의 문제였다.

아무리 마족이라는 존재가 인류가 함께 힘을 맞서야 할 상대라지만 제국에는 제국의 자존심이란 게 있었다.

‘이런 멍청한 작자들!’

그러나 이는 상대의 전력이 어지간할 때나 통하는 이야기였다.

프로반 백작에 안덴스 등.

제국의 이름 있는 마법사들의 생사가 불분명한 이 위기에 자존심을 세우겠다는 건 현명한 선택이 아니었다.

도움을 요청할 명분이 없는 것도 아니고 엄연하게 협정을 맺은 상대인데.

이래서야 협정을 맺은 것 자체가 의미가 없었다.

‘잠깐, 이거 설마?’

네르바는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이대로 귀족들이 자존심을 세워 협정을 무시한다면 아인으로서는 협정으로 무엇 하나 잃을 게 없었다.

오직 제국만 독박을 쓴 꼴이었다.

‘처음부터 이걸 예상하고 있던 건가?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건 비약이겠지. 설마 그럴 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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