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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VIP 영주님의 품격-200화 (200/250)

VVIP 영주님의 품격 200화

VVIP 영주님의 품격 200화

200화

* * *

다니엘과 일부 기사들을 의식장에 남겨둔 채 나와 일행은 전투가 벌어지는 현장을 향했다.

아인츠발트나 제국군이 쉽게 무너지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오래 버틸 거라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이번 계획은 아스카의 심리를 이용한 부분이 커서 얼마든지 변수가 나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전하, 저쪽입니다.”

선두에서 길을 살피던 로크가 전장을 발견했다.

그에 나와 일행들은 잠시 숨을 돌렸다.

최대한 신속하게 경계를 서던 마족을 제거하고 서둘러 이동한다고 급격히 체력을 소모한 상태였다.

당장 급한 상황이 아니라면 일단 숨어서 체력을 회복해야 했다.

도망칠 구멍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더욱.

“부탁드립니다.”

“알았다.”

체력을 보존하기 위해 기사들의 등에 업혀 왔던 자크론이 앞으로 나섰다.

순간 이동 마법진을 설치하기 위해서였다.

로스니아 제국 쪽의 마법진도 있지만 그건 전투 도중에 파괴됐을 가능성이 높았다.

상식적으로 끊임없이 적의 지원군이 도착할 수 있는 장소를 내버려 둘 리 없으니.

그리고 파괴하지 않았더라도 어차피 제국이 이용하는 거라서 통제권은 우리에게 없었다.

“그럼 일단 지켜보자고.”

나는 한쪽에서 날뛰고 있는 아스카를 보았다.

조금만 더 가까이 다가가면 영웅 정보도 확인할 수 있을 거 같지만 굳이 위험을 감수하고 싶지는 않았다.

어차피 녀석에 대한 정보는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손에 들어오게 될 테니까.

* * *

아스카의 마법이 쏘아지자 아인츠발트는 정신없이 몸을 날렸다.

“하아! 하아!”

수십 분의 혈투.

아인츠발트는 철저하게 방어하고 피하는 것에만 전념해야 했다.

자신보다 월등히 강해진 아스카를 상대로 공세를 취하는 건 전혀 승산이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건 이번 계획과도 맞지 않는 일이었다.

“무슨 생각이냐? 아인츠발트.”

아스카는 다시 소극적으로 나오는 아인츠발트의 행동에 의문을 품었다.

아인츠발트의 검술은 공격을 막아내거나 자신의 주의를 끄는 용도로만 쓰이고 있었다.

절대 자신의 목숨을 노리고 휘둘러지지는 않는 것이다.

거기에 당할 생각은 없지만, 아예 공격을 해 오지 않는 건 전혀 다른 문제였다.

애초에 이길 생각이 없다는 것이니까.

“대체 왜 쓸데없이 시간을 끌고 있는 거지?”

아무리 고민해 봐도 아인츠발트의 행동은 철저하게 시간을 끄는 쪽에 맞춰져 있었다.

다른 지원군을 믿고 있는 것일까?

하지만 이는 불가능했다.

마족들도 바보는 아니기에 적의 지원군이 계속 들어오도록 놔둘 생각은 없었다.

당연히 순간 이동 마법진은 가장 먼저 집중 공격해 파괴하였다.

비록 그 과정에서 거센 반격에 휘말린 마족 하나가 죽었으나 어차피 부활할 테니 제물 하나만큼의 피해에 불과했다.

“그리고 타르타로스의 계약자는 어디에 있는 거냐?”

상대의 물음에 아인츠발트는 피식 웃었다.

아스카의 실력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역시 괴물처럼 강했다.

평생 강자의 입장으로 살아온 아인츠발트조차 지금의 아스카 앞에서는 약자에 불과했다.

하지만 전투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초조함을 느끼고 있는 건 아스카였다.

상대가 무엇을 노리는지 그리고 왜 이런 방식으로 싸우는지를 전혀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예상하다니.’

아인츠발트는 아인의 노림수에 감탄했다.

아인은 아스카가 먼저 조급함을 드러낼 것을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누구도 넘보지 못할 힘을 가진 아스카가 무언가를 두려워한다는 건 본래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아인은 자신이 그러했듯 아스카가 범차원 세력들에 대해 알게 되어 큰 충격을 받으리라 여겼다.

스스로가 가진 힘에 대한 자부심이 강할수록 더욱 그럴 것이라고.

그리고 타르타로스의 계약자의 존재가 아스카에게 심리적인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사실 또한 알아차렸다.

그 때문에 아스카는 의문스러운 행동을 보이는 아인츠발트를 상대로 섣불리 승부를 걸지 못했다.

아인츠발트가 보여준 납득되지 않는 행동들이 모두 자신을 함정에 빠트리려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내가 대답해 줄 거라고 생각하나?”

아인츠발트는 한계에 몰린 자신의 상태를 숨기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마족들은 강하다.

아무리 로스니아 제국의 정예라고 해도 본래라면 마족들을 상대로 승산은 없었다.

이름 있는 기사들까지 반역으로 죽어 나간 상황이기에 더욱.

하지만 지금의 전황은 로스니아 제국에 전혀 나쁘지 않았다.

물론 많은 희생자가 나오고는 있었지만, 마족들 역시 차근차근 제거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부활할 거라는 걸 알기에 방심하고 있었다.

그 부활 장소에서 무엇이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는 줄도 모른 채.

“그런데 아스카. 그거 알고 있나?”

“무엇을?”

“네가 상대해야 할 존재는 네 예상보다도 더 강하고 똑똑하다.”

아스카의 주의를 돌리기 위해서 꺼낸 말인데 막상 이 말을 꺼낸 아인츠발트도 스스로가 어이없게 느껴졌다.

객관적으로 아인의 실력은 아스카에게 전혀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스카는커녕 휘하의 마족 하나와 붙고서도 승리를 장담하지 못할 수준.

물론 이는 아인이 약해서가 아니라 마족이 강하기 때문이지만.

하지만 이 모든 평가는 어디까지나 일대일로 싸운다는 가정이 있을 때나 유효했다.

아인은 지금 모습을 보이지도 않은 채 계략만으로 마족들의 전력을 소모시키고 그들의 목숨을 빼앗고 있었다.

그런 아인에게 이런 전력에 대한 평가 따위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것이다.

‘로스니아 제국을 방패로 세우고, 사교도로 위장한 첩자들이 부활 장소를 습격하게 한다. 그리고 제압한 마족들을 통해서 베이브의 위치와 아스카에 대한 정보까지 캐낸다라.’

물론 불확실한 요소가 많은 계획이었다.

하지만 거기에 대비하기 위해 아인은 전력을 이끌고 직접 이 자리에 와 있었다.

‘어디인지는 모르겠지만 근처에 있겠지.’

아인츠발트는 혹시나 자신이 어딘가를 살펴보지 않도록 시선에 주의했다.

행여 여기서 아스카가 아인의 존재를 알아차리면 어떤 문제가 터질지 알 수 없었으니까.

아스카의 신경은 온전히 자신에게 집중되어야 했다.

“넌 절대 그분을 이기지 못해.”

아인츠발트의 도발에 아스카는 말문이 막혔다.

자신의 실력에 대한 확신이 있었던 아스카에게 범차원 세력들은 그의 자부심을 철저히 짓밟는 존재였다.

특히 위니스를 직접 마주했을 때 받았던 충격이 무척 컸다.

그때 아스카는 위니스가 자신을 그 자리에서 죽일 수 있다는 걸 본능적으로 느꼈다.

자신이 목숨을 건질 수 있던 건 어디까지나 상대가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

그 일은 기나긴 세월 봉인된 상태에서도 굳건히 버텼던 아스카마저 굴욕과 두려움을 느끼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아인츠발트의 입에서 그 계약자마저 엄청나다는 이야기가 나오다니.

“하…….”

아스카는 동요를 억누르지 못했다.

그러나 이내 이를 악물었다.

그 모든 두려움을 떨쳐내기 위해서라도 자신은 계약자를 쓰러트리고 군주의 자리에 올라야 했다.

그래야만 진정한 불사를 손에 넣을 수 있으니까.

“네놈이 틀렸다는 걸 보여주마.”

콰콰콰콰!

아스카의 주위로 핏빛의 기운이 넘실거렸다.

아인츠발트는 그 거대한 힘에 몸을 떨었다.

자신마저 압도당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스카와는 상당한 격차가 있었다.

분명 이 대륙의 어느 누구도 아스카의 상대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일대일이라면 말이다.

“라이트닝 플레어!”

후방에서 갑자기 솟구친 번개가 아스카를 노렸다.

그러나 그 기습 공격은 아스카에게 아무런 대미지도 주지 못했다.

아스카는 이미 주위에 마나 실드를 두르고 있어 기습에 대한 방비가 충분히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인 역시 이 공격으로 이득을 볼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잠깐의 틈만 만들면 충분했으니.

타악!

아스카의 시선이 돌아간 틈을 타 아인츠발트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의 실력을 잘 알고 있는 아스카는 다시 아인츠발트에게 시선을 돌렸다.

마법사가 아무리 강해봐야 멀리서 공격하는 것으로는 자신의 마나 실드를 뚫지 못한다.

그러나 아인츠발트라면 근접한 상황에서 마나 실드를 뚫을 힘이 있었다.

“어?”

그런데 아인츠발트는 아스카를 향해 움직이지 않았다.

아인츠발트는 그대로 아스카를 지나쳐 마법이 날아온 방향으로 도주하고 있었다.

다른 인물도 아니고 그 아인츠발트가 자신에게 등을 보이고 달아나는 모습에 아스카는 순간적으로 머리가 멍해졌다.

‘이게 무슨?’

아인츠발트는 고결한 영웅이었다.

스스로를 희생해 저주를 뒤집어썼고 파수꾼이 되어 봉인지를 지켰다.

게다가 자신이 부활했을 때는 단신으로 마족들의 아지트까지 쫓아왔다.

그런데 그런 아인츠발트가 자신을 두고 달아나는 순간이 오리라는 건 아스카로서는 상상도 못 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 잠깐의 빈틈을 보인 건 큰 실수였다.

화악!

순간 이동 마법의 빛.

그것을 확인한 아스카는 눈이 뒤집혔다.

‘분명 마법진은 없앴는데! 게다가 왜 저런 곳에?’

애초에 적이 후방에서 나타났던 것도 이상하던 차에 순간 이동 마법진이라니?

게다가 넘어올 때가 아니라 넘어갈 때 발생하는 마나의 파장이 흘러나왔다.

“설마…….”

아스카는 그제야 상황을 이해했다.

상대는 순간 이동 마법을 사용해서 달아날 생각이었다.

자신을 기습한 것도 아인츠발트가 달아날 빈틈을 만들기 위해서였고.

‘대체 무엇 때문에?’

아스카는 서둘러 전장을 살폈다.

아인츠발트가 보였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대한 답이 필요했다.

그러다 아스카는 곧 전장이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

남은 마족의 숫자는 단둘.

다른 마족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기막힌 우연으로 한꺼번에 죽은 게 아니라면 분명 부활해서 다시 돌아와야 하는데 말이다.

‘저놈들 설마!’

아스카는 그제야 왜 적이 후방에 있었는지를 이해했다.

적들은 마족들이 부활하는 의식장을 노린 것이었다.

“제기랄!”

아스카는 달아나는 아인츠발트를 붙잡으려 했으나, 아무리 아스카의 마법이 경지에 올랐어도 순수한 움직임에서 그를 따라잡는 건 불가능했다.

아인츠발트는 눈 깜짝할 사이에 순간 이동 마법진 안으로 뛰어들었다.

아스카는 아인츠발트가 사라진 장소를 멍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완전히 당했다!’

부활하지 못하고 있는 마족이 넷.

거기에 의식장을 지키고 있을 마족 하나.

총 다섯 마족의 생사가 불투명해졌다.

콰콰쾅!

아스카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제국군을 향해 공격을 퍼부었다.

마나를 아끼지 않는 무차별적인 공격에 용맹하게 싸우던 제국군도 기세가 크게 꺾였다.

“너희 둘!”

아스카는 그 틈을 노려 살아남은 마족들을 빼냈다.

“당장 의식장으로 가라! 어서!”

“네? 아, 알겠습니다!”

마족들은 잠깐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내 동족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 서둘러 의식장으로 향했다.

아스카는 마족들을 보낸 뒤 허탈한 얼굴로 제국군을 보았다.

급하게 보내기는 했으나 이미 마음 한편에서 다른 마족들이 죽었다는 예감이 들었다.

순간 이동 마법진은 절대 쉽게 만들 수 있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의식장을 장악한 적들이 여기까지 와서 순간 이동 마법진을 준비할 정도라면, 이미 의식장에 남아 있는 마족은 없다고 봐야 했다.

결국 아스카가 할 수 있는 건 분풀이뿐이었다.

“깨어나라.”

아스카는 손을 뻗었다.

싸늘하게 식어가던 사교도들과 제국군의 시신이 아스카의 마나에 몸을 꿈틀거렸다.

“네놈들의 더럽혀진 영혼을, 분노를 이 자리에 강림시켜라!”

아스카의 외침과 함께 사방에서 시커먼 연기가 치솟았다.

“허억!”

죽었던 이들이 몸을 일으키는 광경에 제국군은 충격에 빠졌다.

그것도 한둘이 아니라 전장에 널려 있던 엄청난 숫자의 시신이 일제히 움직이고 있었다.

“저게 대체…….”

프로반 백작이나 안덴스 역시 이 믿기지 않는 광경에 넋을 놓고 말았다.

그야말로 상식이라는 게 통하지 않는 엄청난 마법이었다.

“모두 죽여버려라! 단 한 명도 남김없이 모두!”

아스카의 명령과 함께 망자들의 군대가 제국군을 습격하기 시작했다.

* * *

두 마족이 의식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늦은 상태였다.

다니엘은 이미 뒷정리를 모두 끝마친 뒤 빠져나간 지 오래였다.

의식장 안에는 비참하게 죽어 있는 마족 네 구의 시신만 남아 있었다.

“말도 안 돼!”

한 번에 동족이 넷이나 죽은 엄청난 피해에 마족들은 넋이 나갔다.

베이브가 주도하여 크로노스란 조직이 설립된 이후로 지금껏 이토록 심대한 피해는 입은 적이 없었다.

설령 희생이 나왔어도 그건 겨우 하나였으니까.

이렇게 많은 수가 한꺼번에 죽은 건 처음이었다.

어처구니없는 참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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