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VIP 영주님의 품격 198화
VVIP 영주님의 품격 198화
19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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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뒤덮은 마법진에 놀란 건 마족들도 마찬가지였다.
아스카는 자신이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낼 전장에서 강한 인상을 주고 싶었는지 꽤 공들여서 마법을 준비했다.
그리고 그렇게 준비된 마법은 다른 마족들로서는 엄두도 못 낼 수준이었다.
번쩍!
마나를 모두 모은 마법진이 눈부신 빛을 뿜으며 막대한 에너지를 지상으로 투하했다.
그것은 재앙이었다.
공성병기가 있더라도 공략하기 쉽지 않은 산성이 에너지를 견디지 못하고 순식간에 허물어졌다.
단 한 번의 마법으로 성 하나를 그대로 무너트린 것이다.
“대단하군. 저런 마법이 있다고?”
마족들은 그 압도적인 위용에 그저 감탄했다.
약간의 대기 시간이 필요하기에 개인을 대상으로는 적합하지 않은 마법.
그러나 성에 틀어박힌 상대를 공격하기에는 이보다 효과적인 방법이 없을 것이다.
“지금이다!”
성이 무너진 틈을 노려 마법사들에게 고전하던 사교도들이 마구잡이로 달려들었다.
그들은 잔해에 깔리거나 쓰러져 있던 제국군을 향해 손을 뻗었다.
“크아악!”
“아악! 살려줘!”
사교도들의 손속은 잔혹했다.
비록 제대로 된 싸움법은 알지 못하는 이들이 다수지만 그들은 쉽게 죽지 않는다는 이점을 활용해 제국군을 유린했다.
대열이 완전히 무너진 제국군은 몰려드는 사교도들을 상대로 쉴 새 없이 밀려났다.
마족들은 그 모습을 여유롭게 감상하며 아스카를 추켜세웠다.
“훌륭합니다, 아스카 님. 이제 국경을 뚫는 건 시간문제입니다.”
“아직이다.”
“네?”
아스카는 이미 승리했다는 태도를 보여주는 마족의 말을 단칼에 부정했다.
성을 무너트리고 제국군을 밀어내고 있었지만 겨우 이 정도로는 승리를 가져올 수 없었다.
퍼퍼퍼펑!
아니나 다를까, 무너진 성 너머에서 갑자기 요란한 폭음이 들려왔다.
직후 거침없이 제국군을 몰아치던 사교도들이 아까처럼 잿더미가 되어 나가떨어졌다.
“어? 어어?”
마족들은 그 광경에 당황했다.
아스카의 마법이 성을 무너트리는 것에 집중되어 살상력은 떨어진다지만 그렇다고 보통의 인간이 견딜 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재수가 없으면 죽을 것이고 살더라도 당분간은 몸을 가누지 못해야 했다.
그런데 저 마법은 뭐란 말인가?
“마나 실드로 막은 건가?”
“아니, 아무리 그래도 저건…….”
엄청난 화력 앞에 마족들은 할 말을 잃었다.
지금껏 공들여서 모은 사교도들이 어느새 처음의 절반도 안 되는 숫자까지 줄어든 상태였다.
이 자리에 모든 사교도를 데리고 온 건 아니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뼈아픈 손실이란 사실은 변함없었다.
“이곳을 담당하는 이가 프로반 백작이라고 했던가?”
“그, 그렇습니다.”
아스카의 물음에 마족은 당황하며 대답했다.
현재 로스니아 제국에서 이름을 떨치는 마법사는 모두 셋.
프로반 백작은 그중 한 사람으로 동부 국경의 방비를 담당했다.
“성 내부에 재미있는 장난을 쳐놨군.”
아스카는 저 화력의 비밀을 알아차렸다.
그 비밀은 바로 성벽에 빼곡하게 새겨져 있는 엄청난 숫자의 마법진에 있었다.
미리 하나의 마법을 저장해 뒀다가 필요할 때 발동할 수 있게 조치를 해둔 특수한 마법진.
아마 프로반 백작의 비전 마법일 것이다.
아스카가 성을 무너트리기는 했으나 그 마법진 중 일부가 남아 자동으로 사교도들을 요격한 것이다.
“과연 로스니아 제국인가.”
아스카의 설명을 들은 마족들은 로스니아 제국이 보여주는 저력에 감탄했다.
만약 이 사실을 모른 채 자신들끼리 정면으로 돌파하려고 했다면 분명 낭패를 봤을 것이다.
“도무지 방심하지 못하겠군.”
“하긴 전쟁에서도 이놈들이 골치였지.”
인류와 마족의 전쟁은 역사상 전례가 없는 규모를 자랑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마족들은 인류의 저력을 똑똑히 목격했다.
아무리 죽이고 죽이더라도 끝없이 쏟아져 나오는 압도적인 머릿수.
훨씬 부족한 실력임에도 적절한 병과를 구성하고 연계를 펼쳐 악착같이 맞서는 끈질김.
그렇게 체력과 마나를 소모한 뒤에 실력자들을 투입하는 각개격파 전략.
당시 실력자의 비중이 유독 높았던 게 로스니아 제국이었다.
“그럼 제가 직접 들어가겠습니다.”
이대로라면 사교도들이 전멸할 게 눈에 뻔히 보이는지라 하는 수 없이 마족 하나가 앞으로 나섰다.
그는 무너진 성으로 다가갔다.
잔해의 아래에는 처참하게 당한 사교도들과 뒤엉킨 제국군의 모습이 보였다.
‘실력자부터 빠르게 제거하는 게 좋겠지.’
마족은 프로반 백작부터 해치울 생각으로 이리저리 고개를 돌렸다.
‘마법사가 너무 많군.’
프로반 백작을 찾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마법사의 숫자가 한둘이 아니었고, 그들이 마법을 쓰기 시작하자 아무리 예민한 마족의 감각으로도 프로반 백작을 구분할 수 없었다.
“대체 어디에 있는 거지? 음?”
그때 마족은 정면에 무너진 성벽의 파편에 마법진 하나가 새겨져 있는 걸 발견했다.
키이잉!
그가 확인하기 무섭게 마법진으로부터 기이한 소음이 들려왔다.
마법진이 발동하는 소리였다.
콰드드득!
마족을 포착한 마법진에서는 어마어마한 풍압이 쏟아졌다.
땅거죽을 뒤집고 여러 잔해를 날려버리는 위력은 마족마저 휘청이게 만들었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고작 풍압 따위가 아니었다.
콰콰쾅!
하나가 발동하기 무섭게 근처에 있던 다른 마법진들도 연달아서 마법을 쏟아냈다.
엉뚱한 방향으로 쏘아진 마법들은 갑자기 급격하게 경로를 바꾸더니 모두 마족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이, 이게 무슨?”
사방에서 쏟아지는 엄청난 숫자의 마법 폭격.
마족은 이 경험한 적 없는 상황에 당황했다.
“놀랐느냐?”
그때 프로반 백작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에게는 두 가지 비전 마법이 있었다.
하나는 마법진에 마법을 저장하는 것.
이 과정에서 마법의 위력이 다소 감소하지만 저장할 수 있는 마법의 가짓수에는 제한이 없기에 시간만 충분하다면 얼마든지 강한 위력을 낼 수 있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그렇게 발동한 마법 전부를 특정 대상으로 유도하는 마법이었다.
그는 이 두 가지 비전 마법을 활용한 필중 전략으로 과거 전쟁에서 무수한 마족들을 쓰러트린 전공을 쌓았다.
비록 전장에서 그와 마주한 마족들이 모두 죽음을 맞이한 탓에 마족들에게는 이 사실이 전혀 알려지지 않았지만.
“준비된 전장에서는 누구도 날 이길 수 없다!”
성을 한 번에 무너트린 마법은 그런 프로반 백작도 당황할 정도로 놀라웠다.
그 때문에 기껏 준비한 마법진 대다수가 쓰지도 못한 채 망가졌으니까.
하지만 지금 남아 있는 것만으로도 화력은 충분하다 못해 넘쳐났다.
그가 이곳에 자리를 잡은 세월 동안 새겨둔 마법진의 숫자는 프로반 백작 자신조차 다 헤아리지 못할 지경이었기에.
“크아아악!”
마족은 다급하게 마나 실드를 펼쳤지만 무용지물이었다.
그를 공격하는 마법 중에는 마나 실드와 상극이라고 할 만한 관통력 높은 마법들의 숫자 역시 엄청났기 때문이다.
얼마 버티지 못하고 마나 실드가 깨지며 마족의 몸 여기저기에 상처가 나더니, 기어이 급소가 드러나 목숨을 잃었다.
“저런…….”
후방에서 동족의 죽음을 목격한 마족들은 혀를 찼다.
부활이 가능하도록 제물과 의식을 모두 준비한 상태였지만 그들도 안심할 수는 없었다.
아직도 프로반 백작에게는 많은 마법진이 남아 있는 모양이니까.
반면 마족에게는 준비된 제물의 수량이 넉넉하지 않았다.
“이거 나도 몸을 사려야겠군.”
준비된 제물이 특히 부족한 어느 마족은 꺼리는 기색으로 뒷걸음질 쳤다.
아인츠발트에게 죽으면서 이미 제물을 소모했는데 여기서 또 제물을 잃으면 그때는 정말 자신의 목숨이 날아갈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제물에 여유가 있는 마족도 앞으로 나서는 건 쉽지 않았다.
그 여유란 것도 어디까지나 다른 마족에 비해 상대적일 뿐 절대적인 관점에서는 그리 넉넉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스카는 그런 마족들의 소극적인 행동에 얼굴을 찡그렸다.
이런 상황이 생길지도 모른다고 예상하기는 했으나 직접 눈으로 보니 짜증이 솟구쳤다.
‘부활이 가능하다고 해도 횟수가 한정적이니 제 목숨을 아끼려고 드는군.’
그가 살았던 시절에도 이런 부류는 흔했다.
제물이 넉넉할 때는 정말 자신이 불사신이라도 되는 것처럼 오만하게 굴다가 제물이 떨어지자 언제 그랬냐는 듯 소심해지는 녀석들.
개인적으로는 지독히 혐오하는 부류였지만 지금은 이를 지적하기도 힘들었다.
남아 있는 마족은 하나하나가 소중한 전력이라는 걸 아스카도 부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인츠발트를 상대하는 건 자신 혼자서도 충분하겠지만, 타르타로스의 계약자는 그 수준을 짐작하기 힘든 미지의 전력이었으니까.
“아스카 님.”
그때 아스카의 뒤로 한 무리의 마족들이 사교도를 이끌고 추가로 합류했다.
“늦었군.”
사실 원래의 계획대로라면 마족들은 모두가 합류해서 한꺼번에 공격을 개시해야 했다.
그러나 일부 마족들이 늦어지면서 계획이 어그러졌고 아스카는 하는 수 없이 먼저 공격에 나섰다.
“송구합니다. 오는 도중에 사소한 문제가 생겨서…….”
마족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합류 직전 사교도들을 이끌어야 할 사제장이 갑자기 피를 토하며 죽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렇게 영문도 모른 채 사제장이 죽자 사교도들은 혼란에 빠졌고 통제에 문제가 벌어졌다.
‘분명 독살이다.’
누구의 소행인지는 모르나 사제장의 죽음은 틀림없는 독살이었다.
죽은 사제장의 시신에 독에 당한 흔적이 역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대체 누가?’
사제장이 먹는 음식은 다른 사교도들도 함께 섭취하고 있었다.
유일하게 다른 거라고 해봐야 심장을 뽑아 먹는 의식뿐.
설마 심장에 독을 탈 수는 없었을 테니 사제장이 먹을 음식에만 은밀히 독을 넣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범인의 정체를 밝히는 데 큰 난제를 만들었다.
‘그럼 지금 내부에 첩자가 있다는 소리인데.’
사제장에게 외부인이 접근한 사례는 전무.
이는 사교도로 위장한 첩자가 반드시 존재한다는 소리였다.
마족은 그 사실을 알아차리고도 차마 보고할 수 없었다.
자신이 세력을 키운 사교도에 첩자가 있다는 건, 지금껏 전혀 그 사실을 모른 채 정보를 빼돌릴 틈을 보여주었다는 소리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사실을 안다고 해서 첩자를 색출할 좋은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설마 첩자가 순순히 자신의 입으로 첩자라고 밝히지는 않을 테니.
그럼 마족이 취할 수 있는 행동은 둘 중 하나였다.
첩자의 가능성을 남기지 않기 위해 사교도를 싹 죽이거나 자기가 입을 영구히 다무는 것.
마족은 둘 중 입을 다무는 쪽을 선택했다.
그러면 그냥 늦은 것으로만 혼나면 되기 때문이다.
반면 만약 전자를 선택할 경우에는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웠다.
“변명은 됐다.”
아스카는 마족을 노려본 뒤 몸을 돌렸다.
마음 같아서는 하나쯤 본보기로 처단하고 싶었지만 이도 쉬운 선택이 아니었다.
인류에 대한 복수를 원하는 마족들과 달리 아스카의 최우선 목표는 어디까지나 군주의 자리에 오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는 이해관계가 일치하기에 함께하고 있었지만, 결국 이 다른 목적은 한순간 서로의 사이를 틀어지게 만들 수도 있었다.
마족들도 당연히 그 사실을 알았고.
‘다른 떨거지들은 상관없지만 베이브 그놈은 의뭉스러운 구석이 있지.’
아스카가 가장 경계하는 마족은 베이브였다.
또 다른 범차원 세력인 가이스트의 계약자.
베이브는 다른 마족들을 제쳐두고 혼자서만 가이스트와 접촉하며 정보를 얻고, 그중 자신이 선별한 정보만 마족들에게 공유하고 있었다.
아스카가 보기에 그런 베이브의 행동은 무척이나 의심스러웠다.
남은 마족의 수가 적은 이상, 인간에게 죽게 될 경우를 철저히 대비해야 하는 게 당연하니까.
그런데 베이브는 자신은 죽을 일이 없다는 것처럼 마족들에게 가이스트의 정보를 통제했다.
‘가능하면 그놈은 내 손으로 죽이는 게 좋아.’
아스카는 베이브가 아무런 제약도 없이 자신을 살려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되살아난 자신은 분명 예전보다 강해졌지만, 그 부활 방식에는 여전히 의문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어째서 마나가 나오는 장소가 10곳이나 필요했고 그걸 다 채우지 못해 가이스트의 지원까지 받았는가?
마나는 꾸준하게 공급되니 여차하면 한 곳만 확보해도 시간에 따라 부활에 필요한 마나를 전부 모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아스카는 베이브가 정확히 10곳을 확보해야 했던 다른 이유가 있다고 짐작했다.
그러나 지금껏 베이브는 그런 내용에 대해 전혀 알려주지 않았다.
‘하지만 놈도 나름대로 믿는 구석이 있겠지.’
이러한 이유로 인해서 마족들과 아스카는 서로의 거리를 전혀 좁히지 못했다.
“어서 합류해서 제국군을 무찔러라.”
“즉시 따르겠습니다!”
아스카의 명령이 떨어지자 마족은 더 혼나기 전에 서둘러 행동에 나서려 했다.
그런데 그 순간이었다.
화악!
무너진 성에서 밝은 빛무리가 반짝였다.
마족들은 그 빛의 정체를 알아차리고 표정이 굳어졌다.
순간 이동 마법의 발현.
로스니아 제국 지원군의 등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