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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VIP 영주님의 품격-196화 (196/250)

VVIP 영주님의 품격 196화

VVIP 영주님의 품격 196화

196화

【 함정 】

아드리안 황태자를 따르는 제국의 영주들은 반역자들의 세력을 무너트리며 마침내 그들을 벼랑 끝까지 몰아넣었다.

이제 이 로스니아 제국에 남아 있는 카시안 공작의 잔당은 아트라시아 후작 단 한 사람.

그 외의 세력은 모두 죽거나 제국에서 달아난 상태였다.

하지만 이런 압도적인 전황과 달리 아트라시아 후작과 맞서는 이들의 표정에는 괴로움이 가득했다.

“정말 끈질기게도 버티는군.”

“우리도 지난 전투의 피로가 누적되어서 힘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것 같소.”

영주들은 이를 갈았다.

황제의 자리를 노려도 될 정도로 세력을 결집했던 카시안 공작이었다.

그렇기에 반역자들을 몰아넣는 과정에서 아드리안 황태자를 따르는 영주들 역시 상당한 피해를 감수해야만 했다.

문제는 그렇게 피해를 입은 뒤 영주들의 행동이 소극적으로 변했다는 것이다.

아드리안 황태자의 편에 서서 싸웠지만, 과연 그가 자기들이 만족할 만한 보상을 내줄지 자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그 황태자니까.’

다른 황족이라면 모를까 제국의 미래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아드리안 황태자가 섣불리 재화를 뿌릴 것 같지는 않았다.

그리고 이런 영주들의 걱정은 곧 한 가지 문제를 일으켰다.

‘보상이 별로 없다면 무리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괜히 병력만 상하는데.’

‘어차피 나 말고도 누군가 아트라시아 후작을 처치하겠지. 뒤에서 구경이나 해야겠다.’

‘공에 눈먼 놈들은 어디에나 있으니 내가 굳이 선봉을 맡을 필요는 없지.’

이미 아트라시아 후작은 만신창이였다.

영주 중 한 사람이 선봉을 맡고 몰아붙이기만 하면 무조건 이길 수 있을 정도로.

하지만 어떤 영주도 선봉을 맡고 싶어 하지 않았고 이 때문에 예상치 못하게 토벌이 지연되고 말았다.

‘저거! 저거! 이러다가 내 기사단 다 상하겠네!’

전장을 지켜보던 한 영주는 자신의 기사단이 아트라시아 후작과 충돌하는 걸 보며 혀를 찼다.

주변에 있는 다른 영주들은 원군을 보내줄 생각이 없는지 뒷짐을 지고 구경만 하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그의 기사단은 아트라시아 후작의 힘만 빼놓은 채 처참한 결과를 맞이할 것이다.

“어쩔 수 없지! 어서 후퇴하라!”

이에 참다못한 그는 후퇴 명령을 내렸다.

갑작스러운 후퇴 명령에 주변에 있던 이들 모두가 당황했다.

“아니, 후퇴라니?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오?”

“이제 조금만 더 몰아붙이면 우리의 승리요!”

노발대발하는 다른 이들의 모습에 후퇴를 지시한 영주가 눈을 부라렸다.

“내 기사들은 많이 지쳐서 안 되오. 그대들이 싸우시오.”

“아니, 내 기사단은 좌익을 맡아야 해서 곤란하오.”

“크흠! 나도 따로 지시해 놓은 일들이 있어서.”

“내 기사단은 적의 기습을 대비해 후방에 남겨야 해서 무리요.”

직접 나서라는 말에 영주들은 불에라도 덴 것처럼 화들짝 놀라 시선을 피했다.

그렇게 승기를 다 잡아놓고서도 숨통을 끊지 못하는 상황이 얼마나 지났을까?

“아드리안 황태자님의 지원군이 도착했습니다!”

혼란스러운 전장을 가로지르며 전령 한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영주들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그를 보았다.

“지원군이라니? 그런 소리는 못 들었는데?”

“그런 건 아무래도 좋지 않나? 그보다 병력은 몇 명인가? 기사와 마법사는 얼마나 있지?”

유리한 상황에도 좀처럼 결착을 내지 못하던 영주들은 지원군이 왔다는 말에 반색했다.

체력이 떨어졌다는 명분으로 지원군들에게 피해를 감수하도록 지시를 내리면 될 거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그들의 기대는 이어진 전령의 말에 처참하게 박살 났다.

“지원군은 100명입니다.”

“100명? 겨우?”

전장에서 싸우고 있는 인원의 숫자를 헤아리면 양측을 합쳐서 10만에 근접했다.

그런데 그런 전장에 참가시킬 지원군의 숫자가 겨우 100명이라니?

전령을 보는 시선이 험악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에 전령은 다급하게 설명을 덧붙였다.

“황태자 전하께서 가장 뛰어난 기사 100명을 선발해서 보내셨습니다.”

전원이 기사란 말에 그제야 영주들의 표정이 조금 풀렸다.

하지만 여전히 문제는 있었다.

이미 적과 아군이 뒤엉킨 전장에 기사단을 내보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자칫 아군을 적으로 오인해서 공격할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다.

“일단 후방에서 대기하게. 우리가 틈을 봐서 투입할 타이밍을 전달해 두지.”

“그건 안 됩니다.”

영주들의 말에 전령은 바로 고개를 내저었다.

평상시라면 그로서는 쉽게 대할 수 없는 이들이었지만 지금은 꼭 이 말을 해야 했다.

“오늘까지 아트라시아 후작의 목을 베라는 황태자 전하의 분부가 있으셨습니다. 해서 지원군은 바로 돌격할 겁니다.”

“아니, 그게 무슨 소리인가? 그게 마음만 먹는다고 되는 게 아니야!”

“어설프게 끼어들려고 하지 말게! 자칫 잘못해서 아군을 공격하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당연히 영주들은 전령의 말에 즉각 반발했다.

하지만 그들의 외침은 무의미했다.

“저에게 소리치셔도 소용없습니다.”

황태자가 지원군으로 보낸 기사들은 전령으로서는 통제할 수 없는 이들이었다.

실제로 그들은 전장을 둘러보고는 바로 측면을 파고들었다.

마침 아트라시아 후작이 있는 방향이었다.

“저, 저런!”

“전공에 눈이 멀었나!”

한데 뒤엉켜 있는 아군을 신경 쓰지 않는 거침없는 행동에 영주들은 기겁했다.

그러나 이후 벌어진 상황은 그들의 예상과 달랐다.

스르릉.

선두에서 말을 달리고 있던 기사가 검을 뽑아 드는 순간, 눈앞에 갑자기 길이 열렸다.

마치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하기라도 한 것처럼 양측의 병력이 모두 물러난 것이다.

그 믿을 수 없는 광경에 영주들은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대체 어떻게 된 거지?”

놀란 건 영주들뿐만이 아니었다.

적과 뒤엉켜서 치열한 백병전을 치르던 이들은 갑자기 느껴지는 무시무시한 압박감에 몸을 떨었다.

“뭐지? 이 느낌은?”

“뭔가가 온다!”

목숨이 걸린 상황에서 극한으로 예민해진 감각이 보내오는 경고.

눈앞에 있는 적의 존재를 잊을 정도로 강렬한 기운이었다.

자신이 어느 세력이라는 걸 생각할 겨를도 없이 두 세력의 군대는 몸을 피하기에 바빴다.

히히힝!

그리고 그렇게 열린 틈 사이로 기사단이 침입했다.

앞을 가로막는 자들이 없었기에 기사단의 속도는 전혀 줄지 않았다.

그들은 순식간에 전장 한복판에서 싸우던 아트라시아 후작의 앞까지 도달했다.

“무슨!”

상대의 가공할 존재감을 느낀 건 아트라시아 후작도 마찬가지였다.

제국에서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기사이자 이제는 그 유일한 생존자인 아트라시아 후작은 일평생 느껴본 적 없는 두려움에 압도되었다.

‘도대체 저 기사는 누구지?’

아트라시아 후작은 이 두려움이 오직 선두의 한 명에게서 기인했다는 걸 알아차렸다.

투구 아래에 휘날리는 백발을 본 그는 상대가 누구인지 떠올리려 노력했으나 아무리 애를 써도 생각해 낼 수 없었다.

‘백발의 실력자가 누가 있지? 아니, 애초에 이 정도의 위압감을 내뿜을 수 있는 상대가 있을 수 있나?’

한참이나 넋을 놓고 있던 아트라시아 후작은 적이 거의 코앞까지 다가오고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이런! 지금은 그딴 걸 생각할 때가 아니었는데!’

너무 강렬한 기운에 그만 넋이 나가고 말았다.

자신의 잘못을 알아차린 아트라시아 후작은 급히 말고삐를 틀었다.

‘순순히 당하지는 않겠다!’

다른 기사들과 비교했을 때 아트라시아 후작이 가진 최대의 강점은 뛰어난 기마술이었다.

그는 말 위에서라면 제국 최강으로 이름을 떨쳤던 카시안 공작을 상대로도 밀려본 적이 없었다.

“받아라!”

서로 충돌하기 직전, 아트라시아 후작을 태운 말이 앞발을 힘차게 들어 올렸다.

동등했던 서로의 높이는 순식간에 아트라시아 후작에게 유리해졌다.

쐐액!

게다가 아트라시아 후작은 상대의 속도를 계산해 정확한 타이밍에 공격을 가했다.

본인의 검술뿐 아니라 말과의 훈련과 교감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아트라시아 후작의 비기였다.

촤악!

다음 순간 두 기사는 서로를 스쳐 지나갔다.

워낙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라 주변에 있던 이들은 상황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

“이, 이럴 수가…….”

그때 붉은 핏물이 아트라시아 후작의 얼굴을 적셨다.

떨어져 나간 그의 팔에서 튀어 오른 핏물이었다.

“내가 졌다고?”

아트라시아 후작은 팔이 잘린 것보다 자신의 패배가 믿기지 않았다.

체력이 바닥났거나 말을 잃은 상태라면 모르겠지만 지금 자신의 상태는 전혀 나쁘지 않았다.

위압감을 풍기는 상대에게 주눅 들기는 했지만, 평생을 익혀온 검술과 비기는 그런 상태에서도 평상시와 다를 바 없이 훌륭하게 펼쳐졌다.

단지 그 결과가 잘려 나간 팔로 돌아왔을 뿐.

‘어찌 내 비기를 이리 쉽게 뚫었단 말인가!’

하다못해 상대도 똑같이 당했다면 이해라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인지하지 못했을 찰나의 순간을 아트라시아 후작은 분명하게 느꼈다.

상대는 아무런 부상도 입지 않은 채 그의 공격을 피해 갔다.

“그대는 대체 누구지?”

아트라시아 후작은 엄청난 통증을 뒤로한 채 상대를 돌아봤다.

자신의 팔을 가져간 상대가 누구인지 조금이라도 알고 싶었다.

다행히 상대는 아트라시아 후작을 향해 돌아오고 있었다.

그 이유가 친절하게 답변해 주기 위해서가 아니란 사실은 흉흉한 기세만으로도 알 수 있었지만.

“내 이름은 아인츠발트다.”

“아인츠발트?”

지금껏 들어보지 못한 낯선 이름이었다.

아트라시아 후작은 무명의 기사에게 자신의 비기가 무너졌다는 것에 치욕을 느꼈다.

“이름조차 들어본 적 없는 무명의 기사에게 내가 패배했다니.”

한평생 쌓아왔던 자신의 검술이 부정당한 느낌이었다.

그 허무함은 떨어져 나간 팔보다도 더 아팠다.

“죽을 때가 되긴 했군.”

아트라시아 후작은 그나마 멀쩡히 붙어 있는 반대쪽 손을 움직였다.

비상시를 대비한 짧은 단검으로 자신의 목을 겨눴다.

“아인츠발트. 그대의 승리다.”

아트라시아 후작은 그대로 단검을 목에 찔러 넣었다.

상대에게 죽지 않고 스스로 자결을 선택한 것이다.

아인츠발트는 힘없이 쓰러지는 아트라시아 후작의 최후를 눈에 담았다.

본래대로라면 자신과는 마주칠 일도 없었을 후대의 인간.

하지만 지금 아인츠발트는 그를 죽여야만 했다.

‘이걸로 내 이름은 확실히 알려지겠지.’

아트라시아 후작은 제국에 마지막으로 남은 이름 있는 기사였다.

아인츠발트가 이름을 떨치기 위한 제물로 가장 적당한 상대였던 것이다.

실제로 아트라시아 후작의 최후를 목격한 이들은 아인츠발트의 이름을 연호했다.

“아인츠발트!”

“새로운 제국 최강의 기사!”

“위대한 제국의 검!”

사실 그들도 아인츠발트에 대해서 모르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아군 기사단의 선봉에 섰기에 그들은 당연히 아인츠발트가 아드리안 황태자의 사람이라고 착각했다.

그렇게 아인츠발트는 제국의 기사도 아니면서 제국 최강의 기사로 불리게 되었다.

* * *

“베이브, 그 소식 들었어?”

아트라시아 후작을 죽인 기사 아인츠발트의 이름은 마족들에게도 전해졌다.

로스니아 제국과 네패스 왕국의 협정 때문에 그렇지 않아도 두 국가를 예의 주시 하던 상황.

소문이 퍼지기 무섭게 그들은 아인츠발트의 존재를 확인했다.

“그래. 아인츠발트. 그 고대 요정족 검사가 로스니아 제국에 나타났다고 하더군.”

베이브는 아인츠발트의 등장에 두 가지 감정을 느꼈다.

하나는 두려움.

아스카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아인츠발트 역시 그들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강자였다.

더구나 타르타로스의 계약자에게 갔을 것이 뻔한 상황이기에 그 힘이 더 상승했을 가능성도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베이브는 안도했다.

아인츠발트는 분명 엄청나게 강하지만 드러난 것보다 드러나지 않은 상대가 더 무서운 법.

다행히 이번에 아인츠발트의 위치를 파악했으니 움직임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아드리안 황태자와 같이 있다지?”

“아드리안 황태자? 황태자라면 예전에 죽은 거 아니었어?”

아인츠발트에 대해서 조사하던 마족들은 곧 아드리안 황태자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피의 연회에서 죽었다고 알려진 사람이 갑자기 살아서 나타났기에 그렇지 않아도 관심이 가던 차였다.

그런데 그 곁에 아인츠발트가 붙어 있기까지 한 상황.

“설마 아드리안 황태자가 타르타로스에서 말했던 계약자인가?”

마족들은 아드리안 황태자를 타르타로스의 계약자로 의심했다.

“하지만 그럼 네패스 국왕은 뭐지?”

동시에 의문도 들었다.

아스카의 말도 있고 지금껏 보여온 행보를 봤을 때 타르타로스의 계약자로 가장 그럴듯한 인물은 아인이었다.

우연이든 고의든 그들과 번번이 충돌하며 싸워왔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인의 재능은 마족들이 봐도 상식을 크게 벗어난 상태였다.

“흠.”

베이브는 아인을 놓고 고민에 빠졌다.

타르타로스의 계약자라고 당연히 의심하던 상대가 사실은 그렇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것.

하지만 그렇다면 아인은 순수하게 그만한 재능을 타고난 인간이라는 의미가 된다.

마법사 협회에서 원로들을 모두 꺾고 협회장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마족들도 이미 알고 있었다.

“정말 에이든 같은 존재인가?”

“솔직히 이 정도면 이미 에이든은 넘어선 거 아니야?”

에이든의 실력은 지금의 마족들과 비교하자면 한 수 아래였다.

분명 인간 중에서는 독보적이고 마족들도 우습게 볼 수 없는 실력자였지만 그렇다고 두려움을 느끼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다른 원로들보다 젊을 뿐, 에이든은 나름대로 연륜이 있는 마법사였다.

반면에 아인은 에이든과 비교해도 훨씬 어렸다.

“뭐, 어쨌든 그 인간이 계약자가 아니란 거잖아? 신중하게 고민해서 다행이네.”

마족들은 아인을 먼저 습격하지 않은 것에 안도했다.

만약 아인을 습격했다면 아드리안 황태자가 제국에 귀환하지 않고 계속 숨어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그들은 언제 상대가 나타날지 몰라 불안에 떨어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그래. 로스니아 제국이라는 게 좀 걸리지만, 준비는 충분히 되어 있으니까.”

인류는 계속 전쟁을 하면서 힘을 깎아 먹는 게 좋다.

그렇지만 타르타로스의 계약자에게 시간을 주는 건 전혀 유리할 게 없다는 걸 마족들은 잘 알고 있었다.

로스니아 제국이 반역자 토벌을 끝낸 지금이 바로 절호의 기회였다.

“우리는 제국을 치고 계약자를 죽인다.”

마침내 마족들이 전면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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