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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VIP 영주님의 품격-194화 (194/250)

VVIP 영주님의 품격 194화

VVIP 영주님의 품격 194화

194화

나와 자크론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도 검투 대회는 계속 진행되고 있었다.

시합의 횟수가 늘어날수록 참가자들의 수준은 높아졌다.

그리고 그중에는 기사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의 실력자도 있었다.

일전에 언급된 하멜을 비롯해 각 왕국에서 명성을 널리 떨치던 용병 업계의 에이스들.

게임을 통해 이미 알던 이들도, 모르던 이들도 있었지만 출중한 실력을 자랑한다는 것만은 같았다.

“제법 눈에 띄는 용병들이 있군요.”

16강의 참가자가 모두 정해졌을 무렵 로크가 말해왔다.

근위기사 단장의 눈으로 봐도 그들의 솜씨가 썩 훌륭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전하께서도 짐작하셨다시피 쉽게 넘어올 이들은 아닙니다.”

좋은 이야기만 나오지는 않았다.

로크 역시 용병 출신이기에 저만한 실력자들이 왜 용병으로 남아 있는지 짐작하는 것이다.

기사가 되는 것에 아무런 흥미가 없거나 혹은 기사가 되기에는 부적합한 자들.

“특히 저놈.”

로크는 손을 들어 막 시합을 마치고 퇴장하고 있는 어느 용병을 가리켰다.

압도적인 실력이 있으면서도 굳이 상대에게 심각한 부상을 주고 있는 바르고라는 용병이었다.

“미친놈입니다.”

로크는 녀석을 미쳤다고 말했다.

적나라한 표현이지만 동시에 정확한 평가였다.

손쉽게 제압하고 끝낼 수도 있으면서 일부러 상대에게 큰 부상을 입히는 것.

거기에 자신의 앞에 쓰러진 상대를 실실 비웃는 재수 없는 태도까지.

아무리 실력이 있더라도 밑에 둬선 안 될 유형이었다.

“마치 예전의 라이언 같군요.”

“아니, 내가 어디를 봐서 저딴 놈이랑…….”

로크의 신랄한 평가에 라이언이 억울해했다.

그러나 용병이던 시절에 귀족을 공격한 전력과 나에게 덤볐던 순간들을 생각하면 꽤 그럴듯하게 들렸다.

“그럼 라이언 경처럼 조지면 되지 않나?”

그 점에 착안해 로크가 라이언을 다룰 때처럼 하면 되지 않느냐고 농담 삼아 물었다.

바르고의 등급은 3티어이며, 스킬을 보면 거기서도 상위권이라 평가할 만했다.

하지만 로크는 4티어다.

과거 같은 티어였을 때도 라이언을 통제했으니 지금의 로크라면 그리 어려운 상대는 아니다.

“적당히 하는 정도로 통할 놈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제가 과하게 손을 쓰면 저놈도 자신이 괴롭힌 사람들과 똑같은 꼴이 되겠지요.”

내 농담에 로크는 꽤나 진지하게 대답했다.

미친놈을 통제하려면 말이 아니라 주먹이 나가야 하는 법.

그러나 나름대로 굽히던 라이언과 달리 바르고라는 녀석은 적당한 선에서 멈출 녀석이 아니라는 게 로크의 판단이었다.

그렇다면 결국 어디 한군데를 부러트려야 될 테고, 치료를 받아야 하니 전력으로는 써먹지도 못할 것이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이러한 로크의 의견에 탈론도 동의하고 나섰다.

“그보다 우려스러운 건 전하께서 약속하신 통행 허가서입니다. 다음 시합에서 저 녀석이 이기면 확정적으로 허가서를 받을 겁니다.”

뿐만 아니라 탈론은 경고까지 보냈다.

내가 직접 인장을 찍어준 허가서가 저런 문제투성이 놈에게 들어가면 안 된다고.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게 좋겠나?”

바르고에 대해, 로크는 통제하지 못한다고 했고 탈론은 허가서를 주면 안 된다고 했다.

나 역시 두 사람의 의견에 동의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갑자기 바르고를 실격시킬 수는 없다.

부상자가 나오는 건 검투 대회에서는 너무 당연한 일이니까.

거기에 책임을 물을 수는 없는 법이다.

판정이 내려진 이후에도 공격했거나 시합장 바깥에서 공격한 거라면 모를까, 바르고는 규칙 안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다음 시합의 상대가 반드시 놈을 이겨줘야겠지요.”

“대진을 바꾸자? 그러면 국왕인 나보고 대회를 조작하라는 건가?”

은근한 어조로 떠보았으나 탈론은 흔들리지 않았다.

“전하께서는 처음부터 대진에 관여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탈론의 되물음에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내가 바라는 건 실력자들을 거두는 것이었고, 이를 위해서는 초반에 실력자들이 맞붙어서 상잔하는 경우를 피해야만 했다.

그렇기에 이 검투 대회의 대진은 그때그때 임의로 조정되고 있었다.

하지만 이 사실을 딱히 탈론에게 전달해 준 적은 없었다.

“어떻게 알았지?”

“이 대회의 목적을 생각하면 실력자들이 초반에 붙는 상황은 피하고 싶으실 테니까요. 제가 아는 전하께서 설마 운에 맡기시지는 않겠지요.”

정확한 판단이었다.

하지만 단지 실력자의 탈락을 막고 싶기 때문만은 아니다.

“다음 대진을 바꾸지.”

저런 귀찮은 녀석을 탈락시키기 위한 목적이 더 크니까.

* * *

“이야, 좋구만!”

대기실로 들어온 바르고는 참가자들에게 제공되는 음료를 마시며 씩 웃었다.

처음에는 심심풀이로 참가한 대회인데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어중이떠중이가 아니라 이름을 날린 실력자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덕분에 그 실력자들이 자신의 앞에서 바닥을 기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나도 어쩌지 못할 만큼 너무 강해 보이는 놈도 있지만.’

바르고는 자신을 제외한 남은 15명의 참가자 중 5명을 떠올렸다.

그중 4명은 자신과 비등하거나 근소한 차이를 보였지만 나머지 1명은 가히 압도적이었다.

이변이 없다면 분명 그가 우승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상황을 봐서 내가 놈과 붙을 가능성은 없겠지.’

바르고는 영악했고 대회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어느 정도 파악을 마친 뒤였다.

이 대회에서 실력자들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맞부딪친 적이 없었다.

‘우연으로 지금까지 안 붙었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소리지.’

틀림없이 주최 측이 개입하고 있었다.

그게 대회의 흥행을 위해서인지 왕실 인장이 찍힌 통행 허가서를 남발할 수 없기 때문인지는 모른다.

어쩌면 두 가지 모두 해당할 수도 있고.

하지만 덕분에 바르고는 마음이 편했다.

이대로라면 16강전까지는 이변 없는 승리가 가능할 테니까.

8강에서는 대진을 들은 뒤에 기권하거나 시합에 나서면 그만이었다.

“바르고 참가자.”

그때 대회의 진행을 맡은 안내자가 대기실로 들어와 바르고를 불렀다.

“다음 대진이 정해졌나?”

“그렇습니다. 16강 다섯 번째 시합으로 상대는 아놀드입니다.”

상대의 이름을 들은 바르고는 씩 웃었다.

역시나 예상대로 자신이 위험하게 여기고 있는 5명의 이름이 아니라 다른 참가자의 이름이 나왔다.

“알았다. 맞춰서 나가지.”

바르고는 이번 상대는 어떻게 손봐줄까 고민하며 느긋하게 다른 시합들을 지켜봤다.

그런데 그렇게 몇 번의 순서가 돌아 바르고의 차례가 되었을 때, 그의 앞에 선 상대는 아놀드가 아니었다.

“어? 어어?”

바르고는 당황하며 상대의 얼굴과 이름을 재차 확인했다.

창을 다루는 용병 마벨.

그가 위험하다고 여긴 5명 중에서도 우승 후보라 볼 수 있는 가장 압도적인 실력자였다.

“이봐!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내 상대는 아놀드라며!”

바르고는 즉각 안내자를 돌아보며 소리쳤다.

그러자 안내자는 능청스럽게 대꾸했다.

“제가 그랬나요? 잘못 말했나 보네요. 아놀드 선수는 다음 시합에 나오고, 지금은 바르고 참가자와 마벨 참가자의 시합입니다.”

“지금 장난쳐? 아니, 애초에 왜 저런 실력자가 벌써 나오는 거야?”

바르고는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안내자가 실수로 상대를 잘못 말해주는 일.

기분은 나쁘지만 그럴 수 있다고 치자.

하지만 누가 봐도 유력한 우승 후보인 마벨을 왜 지금 자신과 붙이는지는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의 실력이 어중이떠중이들과 동급으로 취급될 수준이 아니란 건 눈이 장식이 아니라면 알아차릴 수밖에 없을 테니까.

그러니 마벨과 자신이 싸우는 일이 생긴다면 그건 최소 8강에서나 가능한 이야기였다.

“그야 대진은 무작위로 정해지는 거라서요. 운이 없으면 이런 일도 있는 거죠.”

바르고의 항의에 대해 안내자는 태연하게 무작위라는 표현을 썼다.

실제로 대회의 규칙을 설명하는 항목을 보면 시합은 무작위로 진행된다고 적혀 있었다.

“웃기지 마!”

그에 바르고는 발끈해서 소리쳤다.

어디까지나 말로만 그럴 뿐이지 실제로는 무작위가 아니라는 사실을 모를 수가 없었다.

이번 16강의 앞선 시합에서도 실력자끼리 붙는 경우는 한 차례도 일어나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자신만 우연히 가장 강한 상대와 엮였고 하필 그때 안내자가 상대를 잘못 알려줬다?

이걸 곧이곧대로 믿을 사람은 바보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안내자는 끝까지 뻔뻔한 태도로 일관했다.

‘제기랄!’

그런 안내자의 모습에서 바르고는 이게 절대 사고나 우연 따위가 아니라는 걸 알아차렸다.

16강을 통과하면 다음은 당연히 8강.

그리고 대회에 부상으로 약속된 통행 허가서는 모두 10장이었다.

이번 시합을 이기기만 하면 통행 허가서가 확정적으로 손에 들어오는 것이다.

그러니 주최 측에서 자신을 탈락시키려고 수를 쓴 게 분명했다.

‘나 따위한테는 통행 허가서를 내줄 수 없다는 거냐?’

바르고는 울화통이 터졌지만, 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이 검투 대회는 무려 국왕인 아인 네패스의 이름으로 진행되고 있었으니까.

게다가 실제로 한쪽에서 아인을 비롯해 여러 귀족이 관람하는 중이다.

이런 곳에서 용병에 불과한 자신이 항의를 해봤자 그게 통할 리 없었다.

‘분하지만 어쩔 수 없지. 여기서 항복하는 수밖에.’

바르고는 기권을 하기 위해서 손을 들었다.

그러나 그보다 심판의 선언이 빨랐다.

“시합 개시!”

“뭐? 잠깐만 기다리라고!”

바르고는 다급하게 심판을 불렀으나 심판은 바르고에게 눈길조차 보내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바르고의 행동을 무시한 건 심판만이 아니었다.

맞은편에 서 있던 마벨이 엄청난 속도로 바르고를 향해 달려들었다.

“항복! 항복이다! 항복이라고!”

바르고는 다급하게 항복이라고 소리쳤으나 마벨은 그대로 창을 내질렀다.

시합 직전에 미리 언질을 받은 게 있었기 때문이다.

‘너에게 딱히 원한은 없다만.’

마벨은 냉혹한 눈으로 바르고를 봤다.

이 대회에 나오기 전까지 마벨에게 바르고는 이름조차 들어본 적 없는 상대였다.

하지만 대회에서 보이는 바르고의 행태는 분명 눈에 거슬렸다.

그리고 바르고 같은 용병이 왕실의 인장이 찍힌 허가서를 갖고 행패를 부리면 용병에 대한 여론 역시 나빠질 건 예정된 일.

그렇기에 주최 측이 대진을 조작했음에도 마벨은 이를 묵인하기로 했다.

아니, 더 나아가서 8강 참가자를 제외한 2장의 허가서가 바르고에게 넘어갈 수 없도록 확실하게 짓밟을 생각이었다.

콰앙!

마벨이 내지른 창이 바르고의 갑옷을 세게 때렸다.

꿰뚫지는 못했으나 그 충격에 바르고는 바닥을 데굴데굴 뒹굴었다.

“크윽! 큽!”

바르고는 가까스로 충격을 받아넘긴 뒤 주위를 둘러봤다.

주최 측의 조작이야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상대인 마벨 역시 자신의 말을 듣지 않을 줄은 몰랐다.

‘그럼 구경꾼들은?’

그렇다면 이제 남은 건 대회를 구경하러 온 관중뿐이다.

주최 측이나 상대는 조작해도 관중까지 조작하지는 못할 터.

하지만 바르고는 이내 그들에게 도움을 청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앞쪽 열이 다 비었잖아!’

선수의 목소리가 닿을 수 있을 만한 거리에 있는 관중석은 모두 비어 있었다.

이래서야 관중들은 항복이라고 소리쳤는지 아닌지 알 방법이 없다.

“개새끼들!”

바르고는 그제야 이번 시합이 시합을 빙자한 처형식이라는 걸 깨달았다.

“내가 대체 뭘 그리 잘못했다고!”

바르고의 원통한 외침에 마벨은 혐오를 숨기지 않았다.

자신보다 약한 상대를 굳이 치명적인 부상을 입혀가면서 이겨오던 악질적인 행동.

거기에 동종업계 종사자들에게는 지켜야 할 불문율이라는 게 있다.

서로에게 피해가 갈 수 있는 행동을 해선 안 된다는, 어느 업계에나 있을 법한 기본적인 내용.

고향까지 등지고 타국으로 온 지금의 용병들에게 그 불문율은 어떤 때보다 훨씬 강력하게 작용했다.

“네놈이 다음 시합으로 넘어가면 동업자들에게 피해가 가겠지. 경쟁이 심해져 일거리를 구하기 힘든데 여론까지 나빠지게 둘 수는 없다.”

“지랄! 용병에게 동업자가 어딨어? 다 각자 사는 거지!”

바르고의 악에 받친 외침에 마벨은 피식 웃었다.

“그렇게 말해줘서 고맙군.”

그래도 대진을 조작하고 이렇게 손을 쓰는 게 마음이 편하지는 않은 상황이었다.

다행히 바르고는 불쾌한 언행으로 마벨의 죄책감과 부담을 지워주었다.

“이런 엿 같은…….”

뒤늦게 말실수를 깨달은 바르고가 입을 열기 전, 마벨의 창이 다시 한번 움직였다.

직후 섬뜩한 소리와 함께 다섯 번째 시합이 종료되었다.

* * *

“훌륭한 창술입니다.”

탈론이 마벨의 솜씨에 박수를 쳤다.

로크도 거기에 감탄했고 자크론은 별다른 언급은 하지 않았지만 나름대로 마벨을 인상 깊게 본 눈치였다.

“이길 수 있겠나?”

난 로크에게 마벨을 이길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4티어 영웅인 로크에게 이런 질문을 한 까닭은 마벨 역시 4티어에 오른 용병이었기 때문이다.

마치 과거의 탈론처럼.

“전력을 다하면 질 거 같지는 않습니다.”

로크는 적어도 패배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는 이기기 위해서 부상을 각오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의미였다.

일개 용병과 일국의 근위기사 단장이라는 위치를 생각한다면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마벨은 그런 용병이었다.

물론 그와 같은 실력 있는 용병의 예시로 이미 탈론이 있지만…….

‘마벨은 영입 조건이 더 쉽지.’

같은 4티어 용병이었던 시절, 탈론의 영입 조건은 숨어 있는 원수를 찾아 복수하도록 도와주는 것이었다.

이 조건은 게임에서 어떤 랭커가 공유하지 않았다면 영원히 알려지지 않았을 수도 있을 정도로 달성이 어려웠다.

탈론도 자신의 원수가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했으니까.

반면에 마벨은 탈론보다 훨씬 쉬운 영입 조건을 갖고 있었다.

그저 귀족 작위를 주면 되니까.

이는 초반이라면 모를까 어느 정도 세력을 키운 뒤에는 절대 어려운 것이 아니다.

다른 용병들의 조건도 마벨과 비슷한 정도.

좀처럼 없을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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