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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VIP 영주님의 품격-191화 (191/250)

VVIP 영주님의 품격 191화

VVIP 영주님의 품격 191화

191화

동맹에 대한 이야기가 타결된 뒤 본격적인 협상이 시작되었다.

우선 난 네르바의 요청에 따라 지금까지 협회에서 모아온 마족들에 대한 자료를 모두 넘겨주었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괜히 숨길 필요가 없었다.

네르바는 이를 확인한 뒤 내 말을 조금은 신뢰하는 모양새였다.

제법 긴 세월 동안 마족을 조사한 기록이 남아 있었으니 적어도 즉석에서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라는 건 증명되었으니까.

“동맹의 적은 마족에 한정되나?”

“아니면 같이 손잡고 반제국 동맹이라도 치고 싶나?”

협정서에 쓰인 문장을 본 네르바가 의문을 표했다.

동맹을 제안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로스니아 제국의 침공을 도울 생각은 없었다.

로스니아 제국도 네패스 왕국을 돕고 싶지는 않을 거고.

그렇기에 동맹은 마족을 상대하는 것으로 한정되어 있었다.

“아니, 괜찮은 생각 같군.”

네르바는 딱히 문제 될 부분이 아니라 여겼는지 이 조항을 가볍게 넘겼다.

하지만 사실 마족을 상대로 동맹을 하겠다는 이 조항이야말로 여기서 가장 중요한 내용이었다.

‘영원한 동맹은 없다.’

나는 결국 로스니아 제국까지 집어삼켜야 했다.

그런데 동맹에 대한 문서가 남아 있으면 내 행동에 제약이 걸리게 된다.

그래서 일부러 마족을 상대할 때만 동맹을 맺는 조항을 넣은 것이다.

‘로스니아 제국에서도 반기면 반겼지 반대할 조항은 아니고.’

마족 한정이라면 동맹을 맺은 것에 대해 제국 내부에서 반발이 일어날 부담은 없다.

마족은 인류가 함께 싸우는 게 당연하다는 인식이 있으니까.

로스니아 제국에게 동맹은 굳이 불필요하다고 여기는 쪽도 있겠지만 그 정도는 네르바가 누를 수 있는 수준일 것이다.

“이렇게 갑자기 얼굴을 보고 협정까지 하게 될 줄이야.”

협정을 슥 훑던 네르바가 고개를 끄덕였다.

본래라면 이 정도로 중대한 협정은 절대 단시일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양쪽의 실무자들이 짧으면 며칠, 길면 몇 주 이상을 달라붙어서 꼼꼼하게 살피고 사소한 것 하나하나 수정하며 싸워야 한다.

그러나 마족에 한정된 동맹이라는 것과 네르바가 제국의 외교를 되돌리려는 목적을 품었기에 날치기에 가깝게 일이 진행되었다.

“그런데 네패스 국왕, 그대는 반제국 동맹을 어떻게 할 거지?”

협정 문제가 마무리되자 네르바의 시선이 예리해졌다.

그가 반제국 동맹을 공격하지 않겠다고 말했으나 그것이 전쟁의 끝을 이야기하는 건 아니었다.

로스니아 제국이 그렇듯 나 역시 정복 전쟁을 이어오고 있는 입장이니까.

게다가 현재 반제국 동맹은 크게 약화된 상태였다.

어찌어찌 카시안 공작이 이끌고 온 제국의 침공을 막아내기는 했으나 그 과정에서 입은 피해는 매우 심대했다.

무모하게 대규모 회전을 감행했던 크라이더 왕국이나 집중 공격을 받았던 사트리안 왕국 모두 전력이 크게 꺾인 것이다.

나로서는 놓치지 말아야 할 기회였고 네르바는 이를 우려하고 있었다.

‘반제국 동맹까지 먹어버리면 그때는 로스니아 제국이라도 긴장하지 않을 수 없겠지.’

네르바로서는 마땅히 견제해야 할 일이었다.

본인이 전쟁을 해나갈 생각이 없다고 해도 제국에 위협이 되는 세력의 성장을 두고 볼 수는 없을 테니.

“역시 침공할 생각인가?”

“전혀.”

하지만 네르바에게 이런 속내를 그대로 드러낼 수는 없었다.

어차피 어떻게 말해도 믿지는 않겠지만.

“왕국의 세력을 급격하게 키우는 사이에 이미 내부적으로 많은 문제가 나오고 있다. 이 상태로는 이제 전쟁을 이어나가지 못해.”

적당히 그럴듯한 변명을 꺼내자 네르바는 수긍하는 눈치였다.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는지 보여주기식인지는 모르겠지만.

“하긴. 그만큼 급격하게 성장했으니.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내부적으로 많은 문제가 터져 나오겠지.”

“게다가 전쟁을 치를 자원도 이제 없다. 조공을 바칠 수 없는 이유지.”

이 말은 사실이었다.

사실 다른 무엇보다 군자금의 문제가 컸다.

군대 육성에 들이는 돈을 아끼지 않는 데다 왕국 내정에도 아낌없이 들이붓다 보니 카시안 공작과 거래해서 얻었던 것들도 슬슬 바닥을 드러냈다.

“그렇게 사정이 안 좋은가?”

“로스니아 제국에서는 쉽게 상상하기 힘든 일이겠지.”

오랜 세월 부를 축적해 온 로스니아 제국과 신생국에 불과한 네패스 왕국.

두 국가 사이의 격차는 아직도 아득했다.

“애초에 내전을 겪은 나라치고 정복 전쟁에 수십만 대군을 써먹을 수 있는 국가가 있다는 것 자체가 비정상적이야.”

로스니아 제국의 부유함은 정말 상식을 벗어나 있었다.

“뭐, 이 제국이 남다르기는 하지.”

네르바는 조금은 기분이 좋아진 모양이었다.

그런 네르바가 전쟁을 막으려고 할 정도로 로스니아 제국도 슬슬 압박을 받고 있겠지만.

그래도 이미 재정 적자가 시작되어 신음을 흘리고 있을 타국들과 비교해 보면 여전히 여유로운 편이었다.

그래서 꼭 손에 넣고 싶은 영토였고.

* * *

내가 직접 로스니아 제국을 찾아가 협정을 맺었다는 이야기는 곧 각지로 퍼져 나갔다.

아드리안 황태자를 사칭하고 있는 네르바가 이 사실을 대대적으로 공표했기 때문이다.

이는 문답 무용으로 선전 포고를 때려버린 빌헬름이나 전쟁을 이끌어간 카시안 공작과 달리 아드리안 황태자가 평화를 바란다는 신호였다.

전쟁으로 지쳐 있던 국가들에게는 틀림없이 긍정적인 의미로 해석될 것이다.

‘반제국 동맹도 당장은 이를 반갑게 여기겠지.’

기적적으로 한 차례의 공격을 막아냈으나 그뿐이었다.

반제국 동맹은 가지고 있던 군사력 태반을 상실했고 로스니아 제국에는 아직도 수십 만의 정병이 있었다.

카시안 공작의 잔당들 때문에 내전이 이어지고는 있으나 결과는 뻔한 상태.

그 내전이 아무리 길게 이어져도 반제국 동맹이 국력을 회복하기 전에 로스니아 제국이 내전을 마무리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니 평화적인 성향의 군주가 나타나는 게 기꺼울 수밖에 없다.

‘뭐, 의외라는 반응도 많지만.’

하고 많은 협정 중에 나와 네르바가 맺은 협정은 마족에 관한 것이었다.

이는 서로 간의 전쟁에만 집중되어 있던 각국의 시선을 다시 마족들에게로 돌리는 일이었다.

당연히 마족들도 이번 협정에 관해서는 예민하게 받아들일 터.

협정의 당사자인 나와 네르바를 의심하게 될 것이다.

‘위니스가 밝힌 정보가 있으니 나를 강하게 의심하겠지.’

타르타로스의 계약자.

아스카로서는 반드시 제거해야만 할 상대였다.

그러나 나에 대한 의심이 집중될 것을 알고서도 이런 협정을 맺은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당장은 나를 의심하겠지만 그 화살은 곧 내가 아니라 로스니아 제국으로 향할 테니까.

‘아인츠발트가 잘해줘야 할 텐데.’

왕국으로 복귀한 우리 일행에 아인츠발트는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마족에 대한 동맹의 대가로 로스니아 제국의 내전에 약간의 도움을 주기로 하고, 아인츠발트를 네르바에게 내주었기 때문이다.

* * *

“아인츠발트라.”

네르바는 아인이 굳이 남기고 간 기사를 보며 의문을 표했다.

고작해야 한 명의 기사를 남겨두는 게 내전에 무슨 도움이 될지 회의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인은 네르바에게 적극적으로 아인츠발트를 추천했다.

‘딱히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인데.’

네르바는 네패스 왕국의 이름 있는 기사들에 관해 떠올렸다.

그러나 그중 어디에도 아인츠발트라는 이름은 존재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지. 내전에 그대의 도움이 필요하리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네르바의 말에 아인츠발트는 고개를 숙였다.

당연한 반응이었다.

상식적으로 기사 한 명이 전황에 끼칠 수 있는 영향은 미미했으니까.

소규모 전투라면 모를까 수만의 대군이 격돌하는 전장에서는 아무리 뛰어난 기사라도 제한적인 활약만 가능했다.

그러나 아인츠발트는 그런 인간적인 영역을 넘어선 지 오래였다.

“제 실력을 보이겠습니다.”

“흠. 뭐, 좋다.”

네르바는 4티어 기사에게 신호를 보냈다.

적어도 그를 이길 정도의 실력이 되면 아무리 많은 군대가 부딪치는 전장에서도 눈에 띄는 활약 정도는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후 이어진 대련은 네르바의 예상을 완전히 벗어나 있었다.

척!

아인츠발트는 가볍게 검을 뽑은 뒤 그대로 상대의 목에 겨누었다.

상대 기사는 어떤 방어 동작이나 회피도 행하지 못했다.

아인츠발트의 움직임을 전혀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

뒤늦게 자신의 목에 검이 겨눠진 것을 깨달은 그는 식은땀을 흘렸다.

일반인이라면 그럴 수 있을지도 모르나 전장에서 구를 대로 굴렀던 뛰어난 기사인 그가 검의 궤적을 놓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설령 상대가 카시안 공작과 동급의 실력자라 할지라도 이런 상황은 말이 안 되었다.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두 기사의 접전을 기대했던 네르바도 그제야 상황이 심각하다는 걸 깨달았다.

도대체 뭘 믿고 기사 하나를 지원으로 보냈는가 했더니 아인츠발트의 실력이 상식을 벗어난 상태였다.

“하, 한 번 더 기회를 주십시오!”

기사는 다급하게 기회를 달라고 소리쳤다.

이래서는 안 된다.

황태자의 앞에서 아예 반응조차 못 하는 추태라니?

상대가 강하고 말고를 떠나서 자신에 대한 평가가 곤두박질칠 일이었다.

네르바는 그런 기사의 행동에 인상을 찡그렸다.

이미 패배한 자가 기회를 달라고 말하는 건 결과에 승복하지 못하는 행동이었으니.

하지만 네르바는 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제대로 실력을 파악해야 한다. 저 기사는 위험해.’

기사가 아예 꼼짝도 못 하고 제압당하는 걸 봤기에 조바심이 났다.

만약 아인츠발트가 마음먹고 자신을 죽이려고 할 경우,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당시의 상황이 얼마나 같잖았을까.’

아인 본인만 해도 큰 명성을 가진 마법사였다.

마법사 협회의 원로들과 겨뤄서 협회장 자리를 따냈다는 이야기는 이미 널리 퍼졌고.

그런 인물에게 저런 괴물 같은 기사까지 있었다?

고작 한 명의 호위만 곁에 두고 있던 상황에서 아인은 얼마든지 자신을 죽일 수도 있었다.

아니, 설령 한 명이 아니라 수십의 호위를 뒀다고 한들 똑같았을 것이다.

“하압!”

이번에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게 두려웠는지 두 번째 대결에서 제국의 기사는 빠르게 선공을 취했다.

쩌엉!

그러나 그가 맹렬하게 휘두른 검은 아인츠발트의 검과 닿기 무섭게 그의 손을 떠나 허공으로 치솟았다.

허무하게 검을 놓쳐버린 기사는 충격에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원래 이 정도 차이까지는 아닌데.’

아인츠발트는 안쓰러운 눈으로 그를 봤다.

등급 같은 건 볼 수 없으나 아인츠발트는 숱한 경험을 통해 상대의 강함을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었다.

지금 상대한 제국의 기사는 분명 상당히 강한 축에 들었다.

하지만 처음에는 방심하다 당했고 이번에는 심리적으로 부담을 느껴 무리한 공격을 하다 빈틈을 노출했다.

그렇기에 서로의 실력 차이 이상으로 형편없는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아인츠발트는 적당히 해줄 생각은 없었다.

여기서 확실하게 실력을 뽐내고 이름을 퍼트리라는 게 아인의 지시였기 때문이다.

‘이 제국을 미끼로 쓸 생각인가.’

아인이 무슨 꿍꿍이인지 예상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갑자기 복귀한 황태자.

그 곁에서 아인츠발트가 자신의 이름을 밝힌 채 실력을 발휘한다면 마족의 눈과 귀는 아드리안 황태자를 향하게 될 것이다.

타르타로스의 계약자로 아드리안 황태자를 의심하게 되는 것이다.

‘충분히 할 만한 일이다.’

영웅이라 불렸던 아인츠발트에게 이런 협잡이 그리 달가운 이야기는 아니었다.

하지만 아스카를 막기 위해서라면 꼭 필요한 일이었다.

마족들을 끌어내야만 전 대륙에 놈들에 대한 위험성을 각인시키고 또 놈들의 전력을 줄일 수 있었으니까.

아인이나 휘하 측근들의 실력도 결코 과거 영웅들에 비해 부족하지는 않지만 젊음을 되찾은 아스카를 상대로는 불안한 게 사실이었다.

그렇다고 그만한 수준의 전력이 더 존재하는 것도 아니었고.

‘로스니아 제국은 강하다. 하지만 이곳은 이미 내전으로 상황이 나빠졌어.’

제국의 이름 있는 기사들이 죽어나가고 있었다.

정치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아무리 마족의 위협이 있더라도 이 싸움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기사들의 편을 드는 것도 의미가 없는 게, 그들을 이끌어나갈 카시안 공작이 이미 죽은 상태였다.

실제로 제국 최고의 기사들은 카시안 공작 잔당에 섞여 있었지만 내전의 승기는 아드리안 황태자에게 기울었으니.

“그대 실력이 정말 대단하군.”

네르바는 아인츠발트의 실력을 칭찬하며 고민에 빠졌다.

이렇게 뛰어난 실력자가 있는데 회유를 시도해 보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아인이 바보가 아니라면 자신이 이 기사를 회유하려고 할 건 예상했을 터.

어떤 회유에도 넘어가지 않을 만큼 신뢰하거나 절대 배신하지 못할 약점을 쥐고 있거나.

적어도 둘 중 하나는 분명했다.

“작은 재주일 뿐입니다.”

“아니, 아니야. 아주 훌륭했네.”

하지만 그 사실을 알고도 네르바는 아인츠발트를 회유할 수밖에 없다는 걸 깨달았다.

카시안 공작의 죽음과 그를 따르는 잔당들의 토벌은 필연적으로 제국 기사의 질을 떨어뜨리고 있었다.

일전에 죽은 필립 후작이나 카시안 공작만 해도 제국에서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실력자들.

거기에 현재 적대 중인 이들 중 그랜트 백작이나 아트라시아 후작 역시 알아주는 뛰어난 기사였다.

이들의 자리를 대체할 만하며 다시 제국 최강의 이름을 거머쥘 기사가 그에게는 절실히 필요했다.

‘아예 명망 있는 기사들을 내칠 수는 없는 문제니까.’

케프리 남작을 거둔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조금이라도 뛰어난 기사를 확보해서 카시안 공작의 공백을 채워보려고 한 것이다.

그러나 역시 외팔이라는 문제와 무명에 가까운 명성은 큰 흠이었다.

안덴스 후작도 작위를 몰수했기에 아무리 뛰어난 실력이라도 명성을 얻지는 못할 테고.

‘그러니 필요하다면 타국의 사람이라도 받아들이는 게 맞겠지.’

한 가지 다행스러운 건 적어도 흔드는 시도라도 해볼 만큼 제국이 가진 게 많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명예를 중시하는 기사라도 눈앞의 부귀영화에 흔들리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

제국 최강의 명성을 가졌던 카시안 공작조차 황제의 자리가 아른거리자 변심했었다.

네르바는 그 점을 공략해 볼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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