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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VIP 영주님의 품격-189화 (189/250)

VVIP 영주님의 품격 189화

VVIP 영주님의 품격 189화

189화

* * *

“사절단이라고?”

제던 자작의 보고를 받은 아드리안 황태자는 의문을 표했다.

로스니아 제국은 각국을 상대로 선전 포고를 했기에 사실상 모든 외교가 단절된 상태였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사절단이라니?

물론 전쟁을 이끌던 카시안 공작이 죽고 자신이 나섰으니 접촉을 시도해 본 것 자체는 이상하지 않았다.

그러나 시기가 좀 일렀다.

‘아직 다 끝난 것도 아닌데.’

아드리안 황태자와 그를 따르는 귀족들은 카시안 공작가의 잔당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많은 귀족들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카시안 공작의 막강한 영향력만큼 그를 따랐던 이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우두머리를 잃고도 이 정도이니. 카시안 공작을 먼저 제거하지 못했다면 굉장히 힘들었겠지.’

카시안 공작의 죽음과 안덴스 후작의 배신.

카시안 공작 세력의 핵심을 완전히 날려버린 상황이었기에 아드리안 황태자는 나름대로 상황을 긍정적으로 보았었다.

게다가 주력부대가 패퇴했기에 사기 역시 바닥으로 떨어졌을 테고.

하지만 그래도 그들은 제국의 정예였다.

패색이 짙은 상황에서도 끝까지 맞서고 저항하는 경우가 늘어났다.

항복하면 반역을 눈감아 주겠다는 아드리안 황태자의 말도 두 번은 통하지 않았다.

도망칠 생각이 있는 이들은 이미 예전에 도망친 뒤였으니까.

남아 있는 카시안 공작의 세력은 이미 죽음을 각오한 상태로 그에게 덤볐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미 온 사절단을 내칠 수는 없지.”

상황이 어쨌든 아드리안 황태자는 사절단의 방문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적어도 아직 제국과 대화를 해보고 싶어 하는 국가가 남아 있다는 소리였으니까.

그리고 이번 사절단을 대하는 자신의 태도에 따라서 다른 국가들도 사절단을 보낼지를 결정하게 될 것이다.

“이런 곳에서 사절단을 맞이해도 되겠습니까?”

아드리안 황태자가 사절단을 만나는 쪽으로 이야기를 꺼내자 제던 자작은 걱정이 들었다.

아직 아드리안 황태자는 황궁으로 돌아가 옥좌를 차지한 상태가 아니었다.

카시안 공작의 세력을 완전히 정리하기 위해서 전장을 헤매고 있었다.

“황태자 전하의 위엄이 바로 서지 못할까 우려스럽습니다.”

“위엄은 자리가 만드는 게 아니야.”

제던 자작의 걱정에 아드리안 황태자는 고개를 내저었다.

“이 로스니아 제국의 힘과 나의 혈통이 위엄을 만드는 것이지. 어디에 있든 내가 앉아 있는 그곳이 바로 옥좌라는 걸 명심하게.”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제던 자작은 당당한 아드리안 황태자의 모습에 혀를 내둘렀다.

과연 로스니아 제국의 미래를 이끌어나갈 황태자다운 모습이었다.

“그럼 사절단을 불러들이겠습니다.”

제던 자작이 사절단을 맞이하러 떠난 사이, 사절단의 방문 소식을 들은 귀족들이 몰려들었다.

타국의 사절단이 방문한 이상 흐트러진 모습을 보일 수는 없는 노릇.

귀족들은 어느새 저마다 차려입은 상태가 되어 있었다.

물론 이는 아드리안 황태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솔직히 마음 같아서는 한참 기다리게 하고 싶기도 했지만.’

상대의 기를 죽이기 위해서 장시간 기다리게 하는 건 각국의 군주들이 흔히 쓰는 책략이었다.

그러나 아드리안 황태자는 그 방법을 알고도 쓰지 않았다.

이 장소가 황궁이 아니기에 그런 방식을 쓰기 적합하지 않은 데다 빌헬름이 그러했듯 타국을 무시한다고 여길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내가 아쉬울 때지.’

아드리안 황태자는 카시안 공작이 일으킨 전쟁을 계속 이어나갈 생각이 없었다.

반제국 동맹의 소행은 괘씸했고 그에게도 복수를 할 정당한 명분은 되었다.

하지만 승리를 자신하기 어려웠다.

카시안 공작을 비롯한 반역자들을 모두 정리했을 때 로스니아 제국의 국력은 더는 예전 같지 않을 테니까.

그렇게 되면 이후 전쟁에서 패배할 경우, 그 피해는 아무리 로스니아 제국이라도 쉽게 받아낼 수 없었다.

제국의 숙원이 중요하다고 한들 거기에 제국의 운명을 베팅하는 건 어리석었다.

‘다시 힘을 모아야지.’

아마 자신의 대에서는 정복 전쟁이 재개될 가능성이 없을 거라고 생각되었다.

그러나 그저 전쟁을 멈춘다고 모든 게 해결되는 건 아니었다.

제국이 빠르게 힘을 찾기 위해서는 빌헬름 때문에 끊어진 타국과의 외교를 정상으로 되돌려야만 했다.

전쟁으로 경제적인 피해를 입고 있는 건 로스니아 제국도 다르지 않았으니.

‘대부분 국가들과의 무역에서 일방적인 이득을 보고 있었는데 그걸 다 날렸으니.’

아드리안 황태자는 빌헬름의 어리석은 행동으로 제국이 입은 손실을 계산하며 인상을 찡그렸다.

그야말로 막대한 재물에 많은 사상자까지 발생한 상황.

그 덕분에 빌헬름이 죽은 건 다행이지만 마냥 기뻐할 수는 없었다.

“황태자 전하를 뵙습니다!”

그때 네패스 왕국의 사절단이 들어왔다.

아드리안 황태자는 언제 그랬냐는 듯 조금의 빈틈도 없는 고고한 자태를 풍기며 사절단을 내려다봤다.

“저는 이번 사절단의 책임자를 맡고 있는 펜버 자작입니다.”

“자작이라.”

아드리안 황태자는 펜버 자작의 작위를 한 번 언급했다.

딱히 거기에 대해서 왈가왈부한 건 아니지만 백작조차 되지 않은 귀족이라는 걸 강조한 것이다.

펜버 자작은 그 사실을 알아차렸으나 유연하게 받아넘겼다.

“황태자 전하, 저는 백작의 작위를 받기로 내정되어 있습니다.”

아인이 실제로 승작을 약속했기에 펜버 자작은 이를 말하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

아드리안 황태자도 이를 받아들였다.

문제 삼자면 못 할 건 없으나 그가 원하는 건 대화였지 전쟁이 아니었으니.

“그래. 그대들은 무슨 일로 이 제국을 찾은 것이지?”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저의 주군이신 네패스 국왕 전하께서는 로스니아 제국이 향후에도 전쟁을 이어나갈 생각이 있는지 확인하고 오라 하셨습니다.”

펜버 자작이 노골적으로 용건을 꺼내자 제국의 귀족들은 당황했다.

보통 이런 격식 있는 자리에서는 제 속내를 바로 드러내지 않은 채 빙빙 돌려가며 말하는 게 일반적이었으니까.

펜버 자작 역시 원래라면 그런 격식에 따를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는 뒤에 수행원들 사이에 섞여 있는 아인의 지시였기에 그럴 수 없었다.

‘이거 장난 아니군.’

펜버 자작은 아드리안 황태자나 제국 귀족들의 입에서 자신을 벌하라는 말이 나올까 노심초사했다.

그렇다고 아인이 지켜보는 앞에서 지시를 어길 수도 없는 노릇.

역시 고위 귀족의 작위는 쉽게 얻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러나 이런 기회가 아니면 언제 백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펜버 자작은 아인이 점령했던 약소국의 귀족이었다.

그곳에서는 나름대로 건재한 세력을 이끌며 백작의 작위까지 갖고 있었다.

하지만 네패스 왕국이 침략하면서 그의 조국은 멸망했다.

현실적인 성격의 펜버 자작은 딱히 아인에게 복수를 꿈꾸지는 않았다.

한편으로는 이런 혼란한 시대에서 강대국에 흡수되는 게 나쁘지 않다고도 생각했고.

그렇기에 네패스 왕국에 맞서는 대신 일찌감치 항복을 선택했다.

문제는 작위의 강등만큼은 피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이해는 하지.’

아인에게 항복하고 작위를 유지한 인물로는 콘라드 후작이나 힐리스 백작이 있다.

그러나 이들이 항복할 때 네패스 왕국의 세력은 지금처럼 크지 않았다.

게다가 약소국 출신인 만큼 펜버 자작의 세력은 로베른 왕국 출신 귀족인 둘과 비교했을 때 제법 손색이 있었고.

그러니 약소국 출신의 작위를 그대로 유지시켜 주는 건 오히려 다른 귀족들에 대한 차별이 될 수 있었다.

‘그렇지만 백작과 자작의 격차는 매우 크다.’

고작 한 단계의 차이일지언정 백작은 고위 귀족인지를 판가름하는 작위였다.

세력이 특별히 크지도 않고 아직 네패스 왕국에서 마땅한 능력도 보이지 못한 펜버 자작에게 이번 사절단에 나서는 것보다 확실한 기회는 없었다.

설령 그것이 자신의 목숨을 건 도박이라 할지라도.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마땅히 맞서야지요.”

펜버 자작은 아드리안 황태자를 향해 당당하게 선언했다.

네패스 왕국의 국력은 아직 로스니아 제국에 미치지 못했다.

아무리 로스니아 제국이 최근 들어 급격히 약화했다고 해도 그들이 쌓은 힘의 역사는 수백 년에 이르니까.

그러니 절대 단시일에 따라잡을 순 없었다.

하지만 로스니아 제국과 맞설 힘을 가진 세력도 네패스 왕국뿐이었다.

반제국 동맹의 힘까지 합친다면 로스니아 제국의 야망이 쉽게 이뤄지지는 않을 것이다.

“저런 무례한!”

“저 건방진 자의 목을 치셔야 합니다!”

펜버 자작의 당당한 대답에 제국의 귀족들은 노발대발하며 그를 죽여야 한다 소리쳤다.

아드리안 황태자는 펜버 자작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귀족들의 반응을 예상하지 못했던 건 아닐 테고 실제로 펜버 자작은 이미 목숨을 걸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긴. 이 자리가 죽을 자리가 될 수도 있다는 걸 모르지는 않았을 테니까.’

죽일 테면 죽여봐라.

대신 그때는 전쟁이다.

펜버 자작에게서는 그런 기색이 흘러나왔다.

“되었다.”

“황태자 전하.”

“선전 포고는 우리가 했다. 거기에 맞서겠다는 걸 두고 벌을 내릴 순 없지.”

아드리안 황태자의 말에 귀족들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선전 포고를 날린 건 제국이었으니.

상대를 죽이겠다고 해놓고 왜 저항하냐고 항의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게 다 빌헬름 그 미친놈 때문이지. 제국이 이 꼴이 되다니.’

귀족들은 이미 죽은 빌헬름을 욕하면서 분노를 식힐 수밖에 없었다.

“네패스 왕국의 사절단은 들어라. 우리 로스니아 제국은 전쟁을 이어갈 생각이 없다.”

아드리안 황태자의 말에 펜버 자작은 몸을 떨었다.

혹시나 자신을 죽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이미 내뱉어진 말을 주워 담을 수도 없는 노릇이지.”

그러나 이어지는 아드리안 황태자의 말에는 다시 긴장했다.

무언가 원하는 게 있다는 소리였으니까.

“황태자 전하께서는 무엇을 바라십니까?”

“조공을 바쳐라.”

조공이란 말에 펜버 자작은 말문이 막혔다.

로스니아 제국이 원하는 공물이라는 게 푼돈 따위일 리 없었다.

게다가 조공을 바친다는 행위 자체가 상대에게 굽실거리는 모양새였고.

‘과연. 전쟁하기 전에 이쪽이 먼저 머리를 숙인 것으로 만들자는 건가.’

로스니아 제국이 선전 포고를 했지만, 상대가 항복했으니 특별히 자비를 베풀어준다는 형태로 이야기를 마무리하려는 게 분명했다.

실제로 약소국이라면 이를 거부할 순 없었다.

어쨌든 국가는 남겨주는 것이니 아예 멸망하는 것보다는 낫기 때문이다.

그러나 네패스 왕국은 먼저 고개를 숙이기에는 조금 과한 덩치를 갖고 있었다.

로스니아 제국이 과거만 못하기도 하고.

“조공이라 하시면 어느 정도를?”

고민하던 펜버 자작은 조심스럽게 조공의 양을 물었다.

“그거야 그대들의 정성에 달린 것이겠지.”

아드리안 황태자는 구체적인 물목이나 수량을 언급하지 않았다.

양이 부족하다면 받지 않을 것이고, 충분하다면 그 첫 조공을 기준으로 매해 그 정도를 요구할 게 분명했다.

“알겠습니다. 돌아가서 황태자 전하의 뜻을 전하겠…….”

펜버 자작은 일단 이 정도에서 물러나기로 했다.

조공을 바치라는 것 자체가 자존심 상하는 요구였지만 전쟁을 할 생각이 없다는 확답은 받은 상태였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괜찮은 성과였다.

게다가 조공과 관련된 부분은 아인이 알아서 해야 할 일이지 일개 사절에 불과한 그가 간섭할 영역은 아니었고.

“그럴 필요 없다.”

그때였다.

이만 물러나려는 펜버 자작을 밀어내며 나오는 사절단의 수행원이 있었다.

펜버 자작은 순간 멍한 얼굴로 앞으로 나온 수행원을 보았다.

아인이었다.

가장 정체를 숨겨야 할 사람이 스스로 나올 거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기에 펜버 자작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어, 어찌해서…….”

“비키도록.”

“알겠습니다.”

펜버 자작은 아인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으나 명령에는 따를 수밖에 없었다.

펜버 자작이 보인 기이한 행동에 로스니아 제국의 인물들도 당황했다.

스스로를 사절단의 책임자라고 말한 이가 존댓말을 쓰고 굽히는 모습을 보였으니까.

‘누구지?’

변장을 한 아인의 얼굴은 쉽게 알아볼 수 없었기에 의문은 더욱 깊어졌다.

아인은 자신을 주목하는 시선들을 받아내며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만.”

아드리안 황태자는 아인이 펜버 자작이 서 있던 장소보다 더 앞으로 나오자 이를 지적했다.

사절단이 일국의 군주를 만날 때 허용되는 거리에는 그 나라의 국력이나 사절단 대표의 작위 등이 영향을 미쳤다.

이 장소가 황궁이 아니라고 한들 그런 절차까지 무시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아인은 점점 거리를 좁혔다.

처처척.

그런 아인의 모습을 본 로스니아 제국의 기사들이 검을 붙잡았다.

여차하면 당장 뽑아서 아인을 벨 기세였다.

“여기.”

아인은 몇 걸음을 더 움직이고 멈췄다.

아드리안 황태자와의 거리가 상당히 가까워진 상태로, 제국의 기사들은 이미 아인의 바로 옆까지 다가온 상태였다.

한 걸음을 더 움직였다면 분명 검을 뽑았을 것이다.

“나의 위치는 이곳이다.”

아인은 자신을 둘러싼 제국의 기사들은 무시한 채 자신의 위치를 정했다.

아드리안 황태자는 아인이 멈춰 선 거리를 살피고는 미간을 찌푸렸다.

“혹시 그대는 네패스 국왕인가?”

자신의 경고를 무시하고 좀 더 걸어왔지만, 완전히 접근하지는 않았다.

가장 근접하도록 허용되는 거리에 정확히 멈춰 선 모습.

타국의 군주에게만 내주는 거리였고, 그중에서도 위세가 좋은 국가의 군주에게만 허용되는 거리였다.

아드리안 황태자는 이를 통해서 아인의 정체를 짐작했다.

“무슨 이유로 사절단의 수행원 행세를 한 것인지 모르겠군.”

“내 사절단에 내가 있으면 안 되는 이유라도 있나?”

아드리안 황태자는 얼굴을 찡그렸다.

아인의 말장난 때문이 아니었다.

기껏 정체를 숨기고 있다가 이렇게 당당하게 나타난 목적이 유추되지 않아서였다.

‘전쟁을 하지 않겠다고 말했지만 이렇게 대놓고 자신을 드러낼 정도의 신뢰는 없을 텐데.’

아드리안 황태자는 아인의 속내를 파악하고자 부단히 머리를 썼다.

그런 아드리안 황태자의 앞에서 아인은 눈을 가늘게 떴다.

아드리안 황태자의 영웅 정보에 생각지도 못한 내용이 떠오르고 있었다.

[영웅 정보]

이름 : 네르바 로스니아

국적 : 로스니아 제국

소속 : 피레타 공작가

유형 : 외교형

등급 : 4티어

칭호 : 위대한 전략가

스킬 : 계략(4), 연기(4), 군략(4), 안목(4), 거래(4), 현혹(3)

‘이것 봐라?’

그는 진짜 아드리안 황태자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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